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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Big Thing] 아무도 찾을 수 없던 퍼즐 한 조각, 신해경

발행일자 | 2017-03-24

 

나에겐 일종의 강박적인 버릇이 있는데 영화나 책, 음악 등의 작품을 감상 후엔 꼭 관련된 다른 사람의 평을 찾아보는 것이다. 가끔은 시집 뒷부분에 있는 ‘해설’ 부분을 먼저 읽고 단어가 문장 포인트를 기억해두며 읽어나갈 정도인데, 인터뷰, 감독의 변 외에도 재밌는 건 역시나 같은 작품을 본 사람들의 후기이다. 같은 작품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취향의 연대를 느끼며 그가 풀어내는 감상의 풍경을 천천히 읊어가는 일. 때론 작품을 마주할 때보다 이 과정이 더 오래 걸릴 때가 있다. 내가 좋다고 생각했던 포인트들을 다른 이의 감상 지점과 비교하고 좋았던 감정들을 복기할 때의 벅찬 감정 때문에 작품을 더 오래 더듬어내린다고 해야 할까.
사실 신해경의 [나의 가역반응]은 이런 맥락에서 오래, 아주 많이 더듬어온 앨범이다. 세상에 선보인 지 고작 한 달이 된 이 트랙들은 내가 일종의 짜릿함마저 느낀 이 음악이 다른 사람에게도 역시나 같은 감정으로 느껴진다는 그 희열 만으로 재생을 여러 번 반복하게 만들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그와 인터뷰 분량만큼이나 꽤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의 인상은 내 예상 범주 바깥의 ‘맑음’이었지만 그게 퍽 자연스러워 자주 웃음이 났다. 그의 음악을 통해 이미 간파한 줄 알았던 모습과 다르게, 좋았던 순간에 대해 씩씩한 얼굴로 조잘조잘 대답하는 그를 보며 무시무시한 ‘첫 등장’에 넉다운 당했던 내가 다음 앨범을 선뜻 예상해보려는 건 어쩐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지금을 예상한 적 없듯 그 누구도 다음을 예측할 수 없을 음악가, 신해경과의 인터뷰.

 


두은정 : EP [나의 가역반응]이 발매된 이후 ‘신해경’이라는 뮤지션과 이 앨범에 대해 마치 퍼즐 맞추기를 해나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앨범이 발매된 이후SNS에서 모두들 이름, 앨범 타이틀에 대해 각자의 추측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보며 본인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해요. 혹시 그런 걸 의도하거나 예상했는지도 묻고 싶고요.

신해경 : 사실 시인 이상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다 알아보실 거라 생각했어요. 그중 의도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게 ‘권태’같은 경우에 이상의 시 ‘권태’와 제 곡과는 맥락이 완전히 달라요. 이상의 ‘권태’는 삶에 대한 권태라면 제 곡 ‘권태’는 연애에서 느끼는 권태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애초에 의도한 게 아니었어서 ‘앨범 첫 트랙 제목도 이상의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다’라는 글들을 보고 그제야 ‘어라, 맞네.’라는 생각을 했었죠. 사실 저는 곳곳에 있는 그런 키워드들을 알아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했어요. 분명 제가 의도한 맥락들이지만 그걸 궁금해하고 언급해주시는 것만으로 신기했죠.

두은정 : 예를 들면 ‘잊었던 계절’에서 ‘제라늄의 꽃말을 잊어갈 때’라는 가사에 대한 추측들도 그랬죠.

신해경 : 그 부분은 사실 음절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데 가사를 끼워 넣기가 힘들었어요. 마침 제가 전에 꽃말을 따로 찾아본 적이 있어서 그걸 기억해놨다가 제라늄 꽃말을 가사에 넣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죠.

두은정 : 그런 의미에서 가사에 대해 얘길 해보자면, 해경 씨 이번 앨범에 전체적으로 가사에서 ‘그대’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잖아요. 그래선지 어떤 곡에서는 그 대상이 명확해 보이는데, ‘나’의 감정에 대해 노래하지만 자전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전적으로 타인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했거든요. 해경 씨가 생각하는 하나의 명확한 대상이 존재하는지가 궁금했어요.

신해경 : 예를 들어 노래를 들을 때 이런 표현이 나오면 이성의 대상을 상상하게 되잖아요. 저는 성별을 아우르는 표현이 ‘그대’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그녀’라고 하면 명확하게 여성을 지칭하게 될 것이고 ‘그 남자’라는 표현을 써도 이 곡의 대상이 명확하게 남성이 될 테니까요. 그런 것 때문에 ‘그대’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하게 됐죠. 그런 구분이 없이 들을 수 있고. 무엇보다 꼭 이게 연애 대상에 국한된 표현은 아니었어요. 내 좋은 친구를 떠나보낼 때의 아쉬운 감정을 생각하면서 쓰기도 했었어요.

 

두은정 : 사람들이 [나의 가역반응]이라는 이 앨범에서 느끼는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우주 혹은 바다. 광활한 어딘가에서 부유하는 듯한 느낌도 들고요. 사운드적인 면에서 그런 공간감을 살리는 걸 의도한 걸까요.

신해경 :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특히 믹싱할 때 그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살리는 데에 집중했어요. 애초에 제 곡 자체가 공간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비율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죠. 초기 작업부터 계속 그런 것을 염두에 두었고 의도했다고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두은정 : 말씀하신 대로 믹싱 작업에서 그런 포인트를 살린 부분이 있다면.

신해경 : ‘권태’나 ‘몰락’의 경우로 예를 들어보자면 사실 ‘권태’가 처음엔 그런 공간감이 많은 곡은 아니었어요. 1번 트랙인 ‘권태’에 이어 2번 트랙 ‘몰락’을 들을 때 그런 공간감이 갑자기 있다가 없어지면 듣는 사람이 어색할 수도 있겠다는 걸 생각하고 조율을 하게 됐죠.

두은정 : 지금의 [나의 가역반응]은 얼마 만에 나오게 된 앨범인가요.

신해경 : ‘모두 주세요’ 이후로 작년 3월부터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어요. 하박국 대표님 만나기 전에는 ‘몰락’, ‘다나에’ 그리고 ‘화학평형’이 반 정도 만들어진 상태였어요. 이미 만들어진 ‘모두 주세요’ 포함 모두 4곡.

두은정 : 지금이 3월이니 정말 한 해가 지났네요. 1년이 굉장히 정신없이 지나갔겠어요.

신해경 : 제가 이렇게까지 작업 기간을 오래 잡았던 적이 없어요. 하박국 대표님께 처음 연락받은 날짜를 아직도 기억해요. 6월 22일. 사실은 이게 제가 군에 입대했던 날짜이기도 하고.(웃음) 그때 감각이 선연해요. 멍한 느낌. 물론 음악 들어주셔서 좋다고 하는 게 가장 최고인데 그날은 제가 그간 느껴온 경험들과는 조금 달랐어요. 그런 기억이 되게 오래 남아요.

두은정 : 신해경의 이번 앨범에 대해 ‘잘 만든 팝’이라는 평이 있어요. 어떤 트랙에선 포크의 냄새가 나기도 하고요. 장르적인 면에서 신해경 본인이 직접 얘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까요?

신해경 : 사실 이번 앨범 만들 때 ‘영기획’에 소속된 이후 처음 발매될 앨범이니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사용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근데 제가 안 하던 거라서 안 되더라고요.(웃음) 이런 것보다 근본에 집중해보자는 생각을 했죠. 근본적으로 ‘록 앨범’을 만든다고 생각했고, 록을 기반으로 이 궤에서 더 멀리 가지 않길 바랐어요. 포크적인 요소나 이런 것들은 제가 좋아하는 록 밴드들의 과거 앨범들을 들을 때 여러 장르적인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 그런 방향으로 작업하게 됐죠.

두은정 : 해경 씨가 말한 좋아한다는 그 록 밴드와 앨범이 궁금하네요.

신해경 :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The Clash’의 ‘London Calling’라는 앨범인데, 전체적으로는 펑크 앨범처럼 보이지만 여러 장르가 섞여있고 그 비율이 정말 좋거든요. 정말 명반이잖아요. 그걸 들으면 근본적으로 ‘펑크’라는 이 장르가 여러 가지를 잘 흡수하여 만들어진 앨범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원래 이런 장르를 했는데 갑자기 다른 장르를 시도할 때 주변에서 ‘그런 걸 왜 해’라며 일종의 일탈처럼 느낄 수도 있는 것들이 이 안엔 없거든요. 이 앨범을 워낙 좋아해서 제게 그 영향이 없잖아 있을 거예요.

 

두은정 : 예명이기는 하지만 뮤지션으로써 ‘더 미러’에서 ‘신해경’으로 이름을 바꾼다는 건 일종의 결단이기도 했을 것 같아요. 특히 이제 ‘더 미러’ 버젼의 ‘모두 주세요’를 음원 사이트에서 더 이상 들을 수 없기도 하고요. 발매 기점으로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을까요.

신해경 : 사실 ‘더 미러’ 시절에 만든 음악은 샘플링을 많이 이용했어요. 그런데 ‘모두 주세요’ 기점으로 그걸 제가 잘 못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샘플링 같은 경우는 서칭을 많이 하고, 음악을 잘 알고, 클리어받은 음원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래선지 그 한계가 너무 명확한 거예요. 제가 원래 ‘록’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이젠 보다 기타 사운드에 좀 더 충실해지자는 목적으로 ‘모두 주세요’를 만들게 됐죠. 사실 이전작들의 반응 차이가 극명하거든요. ‘모두 주세요’를 발매한 이후 주변에서 좋다고 얘기해주시는 이야기들을 듣고 ‘아, 이게 맞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전 작품에 대해선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껴왔어서 기왕 새 앨범을 내는 거면 새로운 이름으로 바꿔버리자는 생각을 한 거죠.

두은정 : 혹시 ‘더 미러’ 이전에도 다른 음악 활동을 했었나요?

신해경 : ‘더 미러’ 이전에는 계속 집에서 곡만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사실 음악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는 과정을 겪었고요. 그 와중에 밴드 ‘이상의 날개’의 보컬, 기타를 맡은 문정민 씨를 만나게 됐고 그분이 먼저 컴필레이션 앨범 수록을 제안해주셔서 처음 음원을 발매하게 되었죠. 그때 이름을 급하게 짓는 상황에서 주변에 있던 시인 ‘이상’의 책을 발견했는데 원래 이상의 시 중 ‘거울’을 좋아했어서 고민 끝에 이름을 ‘더 미러’로 정해 발매하게 되었어요. 그때의 음악들은 ‘언젠가’나 ‘공화증 (空話症)’같은 각기 다른 느낌의 곡 제목도 그렇고, 일렉트로닉이었다가 다른 요소들이 섞이기도 하고 계속 왔다 갔다 해요.(웃음) 만들면서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본이 없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뭔가를 잘 못하고 있다고. 사실 ‘더 미러’의 발매작 자체가 몇 곡 없잖아요. 고작해야 네다섯 곡이지만 그 사이마다의 발매 텀이 긴데 그게 만들다가 접고 만들다가 안 돼서 접어버리는 그런 기간이 되게 길었어요.

두은정 : 그런 의미에서 해경 씨 사운드 클라우드을 알게 되고 거기엔 데모곡들이 많지 않을까 했는데 발매하셨던 곡들에 커버곡 두 개 정도만 있더라고요.

신해경 : 데모는 제가 너무 부족하기도 하고 부끄러워서.(웃음) 사실 ‘언젠가’같은 경우 제 친구들은 데모 버젼이 더 좋다고도 해요. 근데 올려도 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두은정 : 커버곡 중 한 곡은 밴드 ‘새소년’의 보컬, 기타 황소윤 씨의 솔로곡으로 먼저 공개되었던 ‘나는 새롭게 떠오른 외로움을 봐요’이기도 해요. 황소윤 씨와 함께 아트 크루를 꾸려 활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신해경 : 이전 ‘모두 주세요’ 커버 작업을 김문독이라는 디자이너 친구가 맡아서 해줬어요. 사진 작업이 맘에 들어 제가 먼저 작업을 함께 하고 싶다고 컨텍해서 연이 닿았죠. 굉장히 다재다능한 친구인데 그를 통해 무진(mujin)이라는 친구를 알게 됐고, 그들의 크루에 함께 하게 됐죠. 그때는 소윤이가 ‘소윤(soyoon)’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데모 앨범을 냈을 당시였고, 이미 제가 속하기 이전부터 그 안에서 크루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제게 그 앨범을 선물해준 게 고마워서 소윤이의 곡을 커버하게 됐고 결과적으로는 서로의 곡을 바꿔 부르게 됐죠.(*밴드 ‘새소년’의 유튜브 채널에서 ‘너의 살롱’ 커버곡을 들을 수 있다.) 이미 그 곡은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어 완전히 바꾸는 형태로 작업을 했어요. 저보다 동생이지만 존경의 의미를 담아서요.(웃음) 가사나 거기에 담기는 정서라든지, 정말 너무 잘 하는 친구예요.

 

두은정 : ‘이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를 들면 문학이라던지, 음악 외 관심 있는 예술 장르가 있는지에 대해 궁금했어요.

신해경 : 잘 알지는 못 하지만 영화 보는 걸 좋아해요. 사실 음악 말고 다른 매체를 직접적으로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두은정 : 좋아하거나 최근에 봤던 영화가 있나요.

신해경 : <바닐라 스카이>를 좋아해요. 저는 주로 집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걸 좋아하는데, 습관이 있다면 봤던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거예요. 영화를 아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옛날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선 <아비정전>. 그 외에도 재밌게 본 영화는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두은정 : 스물여덟의 신해경이  느끼고 있는 지금의 감정들이 궁금해요.

신해경 : 지금 생각하면 20대 초반에는 전력을 다 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때는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고 해야하나. 제가 학교를 가지 않아서 혼자 집중하기가 되게 힘들더라고요. 중반이 넘어가면서 느끼는 감정은 ‘난 왜 이 시점에 이 정도 밖에 못 할까, 되게 오랫동안 해온 것 같은데’였어요.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저는 나이라는 게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웃음) 그게 거침없이 지나잖아요. 근데 앞으로는 시간이 더 빨리 갈 거래요.

 


Editor / 두은정
(촬영,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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