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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Inside] 무일관성 속 집요한 탐미주의

발행일자 | 2017-06-16

Deep Inside #6

무일관성 속 집요한 탐미주의, 지극히 주관적인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노래하는 밴드 ‘데카당(Decadent)’.

더러는 보편적 정서, 공감의 영역에 속하겠지만 결국에 가서는 지극히 개인의 판단, 그러니까 주관에 의존하게 되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다. 아름다움, 멋스러움, 감동, 영감, 긍정, 부정, 호, 불호…정말 셀 수 없이 많은 것 같다. 이를테면 ‘맛있음’ 같은 것. 내 경우를 예로 들면 난 계란 넣은 라면을 좋아한다. 그게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계란이 안 들어간 라면이란 내겐 그저 ‘미완성’의 무엇일 뿐이다. 반면 아내는 계란라면을 인정하지 않는다. 계란의 비릿함이 국물 맛에 배어 나와서 싫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베이직 라면은 오직 포장 안에 들어있는 재료들을 포장 뒷면에 적힌 조리법대로 조리한 것을 의미한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서 두 사람이 같이 살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어쨌거나 이것은 옳고 그름의 영역은 결코 아니다. 그저 각자의 기준과 취향이 다를 뿐. (그래도 라면은 계란라면이다. ㅇㅇ)

 

유럽의 세기말, ‘데카당스(Décadence)’라는 흐름이 있었다. 단어 그 자체는 ‘퇴폐’, ‘몰락’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전파된 퇴폐적인 경향 또는 예술운동을 가리키는 용어다.* ‘데카당스’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은 주로 탐미, 퇴폐, 향락, 관능, 도착 등으로 이들은 주로 극단적일 정도로 강렬한 에고에서 발화, 기존의 보편적 미의식을 거부하며 현실과 예술을 괴리시키며 예술 그 자체로서의 예술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일련의 데카당스 작품들이 선보인 비정상적 에로티시즘은 19세기 말의 엄격한 도덕성, 성윤리의 잣대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엔 종종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했다. 마치 오스카 와일드가 마태복음의 이야기를 빌려 창조해낸 잔혹하도록 아름다운 여인 ‘살로메’처럼. *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 살로메(Salome)> 초판 내 삽화들

살로메 초판에 삽입된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Vincent Beardsley)의 삽화들 역시 특유의 악마적, 퇴폐적 미감으로 동시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비어즐리는 아르누보(Art Nouveau)의 대표적 작가로 통한다.

 

그리고 21세기, 2017년의 서울. ‘데카당(Decadent)’이라는 밴드가 있다. 홍대 씬에 불현듯 뚝 떨어진 이 젊은 밴드는 데카당스 운동이 지니고 있던 ‘예술 그 자체로서의 예술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아름다움”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보편적 아름다움과는 무관하게, 게다가 그 어떤 일관성도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자신들이 바라보는 아름다움을 좇는다. 그리고 이들이 좇는 아름다움에 공감하는 이들이 차츰 이들의 음악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2016년 5월 경에 결성되었다는 이 밴드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올해 초 즈음이다. 포크라노스 팀 내에서도 특히나 국내 인디씬 동향에 관심이 많은 두은정 사원(신인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 코너 ‘Next Big Thing’을 진행하고 있다)이 음악이 아주 독특한, 그리고 라이브가 무척 매력적인 밴드가 있다고 했다. 호기심이 일어 유튜브를 검색해보았다.

 

<데카당(Decadent) / Peter Parker> 라이브 @ Freebird

‘Peter Parker(피터 파커)’는 마블 히어로 ‘스파이더맨’의 실체, 생활인으로서의 이름이다.

 

처음으로 접한 데카당의 비디오는 바로 이것. 첫인상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그간 들어본 한국의 그 어떤 인디록과도 다른 결의 음악. 그 속에는 뭐라 딱 꼬집어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정서,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것은 록 음악이라기보다 오히려 사이키델릭하고 록킹한 사운드가 가미된 네오소울(Neo Soul) 음악에 보다 가깝게 들렸다. 여하튼 평소에 흑인음악을 열렬히 좋아하는 내 개인적인 취향을 핀포인트로 저격하는 사운드. 이들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기대감이 대번에 커졌다. 결국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프론트맨인 보컬 ‘진동욱’, 드러머 ‘이현석’, 베이스의 ‘설영인’, 기타의 ‘박창현’, 엇비슷한 또래의 네 남자가 결성한 밴드다. 네 사람 모두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것이 결성의 계기인데 설영인과 진동욱이 먼저 밴드 결성을 도모했고 이후 박창현, 이현석이 합류하면서 현재의 4인조 라인업이 꾸려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데카당’이 지닌 의미가 좋아 이것이 결국 밴드의 이름이 되었지만 정작 팀명을 정하는 과정에서는 알보칠, 과수원, 원기옥, 색채감각 등 도무지 이 밴드의 음악이나 이미지와는 매칭이 되지 않는 갖가지 단어들이 난무했었다고.

 

<데카당(Decadent) / 색채감각> 라이브 @ FF

밴드명 후보 중 하나였던 ‘색채감각’은 결국 이들의 노래로 탄생했다.

 

결성 이후 공격적이다 싶을 정도로 왕성하게 라이브를 펼쳐왔다. 여느 밴드들과는 명백하게 차별화되는 음악의 색깔과 날카로운 개성이 차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것이 거듭될 수록 데카당의 이름을 언급하는 이들도 서서히 늘어났다. 그렇게 입소문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온 지 대략 일 년이 지난 2017년의 5월, EP [ㅔ]가 공개되었다. 밴드 ‘데카당’의 첫 스튜디오 레코딩 작품이다.

[데카당(Decadent) / ㅔ]

 

[ㅔ]. 데카당의 첫 글자 ‘데’의 모음 ‘ㅔ’가 앨범의 타이틀이 되었다. 자음은 그 자체로 발음이 될 수 없고 모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발음이 된다는 것에서 착안했다. 하나의 음절도, 단어도 아닌 이 타이틀은 자신들이 아직 미완의 상태라는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다. 총 네 곡의, 장르를 규정하는 것이 불가한 음악을 담고 있다. 소울, 포스트 펑크, 블루스, 재즈, 팝…다양한 요소들이 특별한 맥락이나 계산된 의도 없이 그저 거칠게 충돌하며 어우러져 탄생한 것 같은 음악. 거칠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이 날뛰는 것 같은 음악임에도 이것이 꽤나 단단하게 응집된 사운드로 연주되고 구현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몇 번이나 곱씹어 들으면서 앞서 언급했던 첫인상과 비슷한 감상을 재차 맛보았다. 록보다 되려 네오소울(Neo Soul)의 뉘앙스를 더욱 진하게 느꼈고 싸이키델릭, 펑크, 얼터너티브, 블루스, 심지어 재즈까지 다양한 요소들의 영향이 감지되었다. ‘앤더슨 팩(Anderson .Paak)’, ‘코디 체스넛(Cody Chesnut)’, ‘디앤젤로(D’angelo)’, ‘마틴 루터(Martin Luther)’, ‘질 스캇(Jill Scott)’ 등의 어떤 음악들이 왠지 모르게 뇌리를 스쳤는데 뭐 이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들의 어느 인터뷰를 보니 실제로 ‘멤버들이 각자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디앤젤로, 앤더슨 팩이 언급되기도 했더라. (그 밖에 ‘켄드릭 라마’, ‘포티셰드’, ‘시규어 로스’, ‘라디오헤드’, ‘히사이시 조’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언급되었다)

 

[Anderson .Paak & The Free Nationals / Put Me Thru] 라이브

작년에 앤더슨 팩과 프리 네셔널즈의 라이브를 직접 본 것은 내 인생 최고의 경험 중 하나였다.

 

쫀득쫀득한 기타 리프와 느긋한 그루브를 자아내는 리듬 위로 보컬 ‘진동욱’의 날카롭게 날이 선 보컬이 자유분방하게 노래하는 첫 곡 ‘봄’은 보컬, 사운드 모두 네오소울의 DNA를 듬뿍 함유하고 있다. 이 밴드의 음악이 씬의 어느 밴드와도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음을 시작부터 확실히 드러내면서 ‘이것이 데카당의 바이브’임을 어필하는, 아주 적절한 오프너인 셈. 솔직한 마음을 얘기하면 이 노래는 처음 듣는 순간 좀 반했다. 수록된 네 곡 중 제일 좋아하는 노래다.

 

[데카당(Decadent) / 봄] 라이브 @ 온스테이지

 

이 작품 내에서 가장 강렬한 사운드와 에너지를 선사하는 ‘빈’은 곡의 시작과 동시에 기타, 베이스, 드럼 모두 자신들이 낼 수 있는 맥스의 사운드를 뿜어내며 내달린다. 혼돈, 퇴폐로 가득한 세기말적 풍경을 그려내는 듯 사정없이 울부짖는 이 사운드야말로 과연 ‘데카당스’의 세계가 아닐까 싶다.

 

 

한 차례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서늘한 고요가 찾아온다. ‘금붕어’의 초반부는 미니멀한 사운드 안에서 차분히 전개되며 짙은 우수를 자아낸다. 그러나 곡은 어느 순간순간 극적으로 소리를 확장하고 세를 뻗어나가면서 아주 짧지만 굵은, 그러나 강렬한 울림을 몇 차례나 만들어낸다. 소울과 싸이키델릭이 기묘하게 뒤섞이는데 이 독특한 어우러짐이야말로 ‘데카당’이라는 밴드의 진면목 아닐까 싶기도 하다.

 

[데카당(Decadent) / 금붕어] 라이브 @ 클럽FF

 

단지 네 곡을 담은 단촐한 미니앨범이다 보니 ‘대미’라는 거창한 단어는 적절하지 않을 것 같지만 어쨌거나 그래도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트랙 ‘A’는 끈적한 슬로우잼(Slow Jam) 풍의 네오소울 넘버다. (행여 본인들이 이 곡을 그렇게 규정하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린다) 곡을 들으면서 ‘앤써니 해밀턴(Anthony Hamilton)’의 음악들을 드문드문 떠올렸는데 감미롭게 서정적이며, 또 진득하게 달콤하다. 이건 명백히 밤을 위한 노래, 사랑을 나누기 위한 노래다. ‘봄’과 더불어 가장 애정이 가는, 참으로 아름다운 곡이며 그렇게 아름다운 마침표다.

 

[데카당(Decadent) / A] 라이브 @ 온스테이지

 

당초에는 밴드 이름과 동명의 곡인 ‘데카당’ 등을 포함, 총 여섯 곡이 수록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곡의 완성도 등을 이유로 그 두 곡은 아쉽게도 수록을 포기해야 했다고. 사실 그 시점에서 이미 이 앨범은 미완의 성격이 짙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완의 EP 한 장이 담고 있는 날카롭게 날이 선 개성, 농밀한 소울과 그루브를 함유한 사운드는 내 호기심을, 기대감을, 자꾸만 자극하며 밴드의 다음 걸음을 궁금해지게 만든다. 이들의 재능이 활활 불타올라 만들어지는 ‘지극히 주관적인 아름다움’의 끝은 도대체 무엇일지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조바심을 내지는 않겠다. 자고로 맛있는 음식일 수록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즐길 필요가 있는 법 아니겠나. 그러니 난 그저 가만히, 하지만 꾸준한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려 한다. 게다가 이 젊은 밴드의 여정은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막 떼었을 뿐이니까. 미처 하나의 음절조차 되지 못한 미완의 글자 [ㅔ]의 모습 그 자체처럼 말이다.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Deep Inside’ 코너의 모든 글은 에디터의 개인적 주관을 반영한 것으로 본사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일절 무관합니다)

 

각주
*1 네이버 지식백과 ‘문학비평용어사전’에 서술된 내용을 인용
http://bit.ly/2sdKXs9

*2 [오스카 와일드 / 살로메]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데카당스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가 마태복음 14장 6~11절에 실린 유대 헤로데 왕의 세례 요한 참수 사건을 각색하여 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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