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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Big Thing] 마치 오래된 미래, 구원찬

발행일자 | 2017-10-31

Next Big Thing
마치 오래된 미래, 구원찬

발매 전 신곡을 미리 들어보는 일이 음원 유통사 직원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라고 한다면 다른 의미로는 그것이 일종의 행운이라고 느끼기도 하는데, 그 행운은 기대작의 음원을 미리 듣는 것보다도 ‘좋은 예감’이 드는 신예 뮤지션의 앨범과 미리 조우할 수 있는 것, 또 그것의 흥행을 점쳐보는 일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구원찬의 곡을 처음 접한 건 다름 아닌 발매 전 다소 무심하게 재생을 해본 뮤직비디오를 통해서였다. 단번에, 그러니까 재생하는 순간 이후의 상황을 직감으로 느끼는 곡이 종종 있다. 새로운 보물을 발견한 이 기쁨을 누군가에게도 나누려 노력할 거라는 사실을.

94년생, 올해로 스물넷의 구원찬은 알앤비의 형식을 빌린 잘 짜인 구성의 팝 앨범을 본인의 이름으로 선보였다. 어느 별에서 뚝 떨어졌나 싶은 이 젊은 신예는 이미 3년 전부터의 발매 이력이 있는 ‘경력있는’ 뮤지션. 돕맨션(Dopemansion)의 ‘반쿠디(Vankudi)’라는 이름으로 그를 먼저 알았던 이들이라면 지금의 방향성이 다소 의아할 수도 있겠고 알앤비 보컬리스트로 알려지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알앤비보다 팝으로 분류되길 원한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면 또 한 차례의 의문이 스쳐갈 수도 있겠다. 그러나 피셔맨과 작업한 가장 최근의 EP까지 ‘해치운’ 그의 모습을 보고 나면 그의 음악을 즐기기엔 나의 시계가 너무 느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

구원찬의 첫 EP ‘반복’은 그의 보컬만큼이나 감정을 풀어내는 서사, 전반적인 스토리텔링이 확실한 앨범이다. 특히 인상적인 소울풀 넘버 ‘감정관리’부터 그보다 조금 더 팝의 무드가 짙은 타이틀곡 ‘행성’, 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었다는 ‘행성’의 뮤직비디오까지 감상하고 나면 공간감이나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부유하는 배경 속에서도 반짝거리는 그만의 확실한 감정선이 돋보인다. 예쁘고 빛나는 곡이야 여럿이겠지만 특히 그의 노랫말에 집중하게 되는 건 4곡 내내 연인 혹은 스스로에게서 느끼는 관계의 사계를 마치 쉬지 않는 시계축처럼 그린 점 때문일지도. 마치 그는 그 자신 같은 곡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 혹은 자신에 대한 말을 나누며 형형히 반짝이는 눈이나 확신에 가득 찬 어조에서 이후에 그가 내보일 세계에 대해 내가 짐짓 어떤 확신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두은정 : 데뷔 EP ‘반복에 이어 ‘피셔맨’과 작업한 새 EP까지 한 달 텀으로 연달아 내놓았죠.
 
구원찬 : ‘반복이라는 앨범은 2013, 4년도에 썼던 앨범이에요과거의 나이기도 하죠. 제 곡이 전부 다 저 자신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2017년도의 내가 작업을 하고 지금의 내가 가진 감성과 더 맞으니까. 아무래도 그런 식의 애착은 좀 더 가는 것 같아요.
 
두은정 :  EP의 곡들은 모두 꽤 이전에 작업한 곡들인 거군요.
 
구원찬 : 돕맨션 때의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써둔 곡들이죠.
 
두은정 : 본래 솔로로 내려는 생각이 있던 곡들인가요?
 
구원찬 : 원래 저의 목표였는데 돕맨션이라는 팀을 하기로 하고 나서 제 음악을 그 방식으로는 풀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장르의 특성상그러다 보니 언젠가 나 혼자 작업을 하자는 생각으로 계속 모아두었죠구원찬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을 때 어떤 음악이 구원찬이라는 이름하고 어울리지 않더라도 할 말이 있잖아요내 이름이내가 구원찬인데.(웃음)

두은정 : ‘반복’이라는 이 EP가 처음에는 사랑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반복해서 듣다 보니 되려 이성 간의 관계보다는 사람 대 사람에 대한 얘기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구원찬 : 물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쓴 곡도 있다 보니 가사를 봤을 때 그렇게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은 해요. 앨범 전체를 말하자면 사실 제가 좀 더 중점적으로 둔 포인트가 ‘사람’이었어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어찌 됐던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사람을 만나는 건 당연한 거고 공동체 생활이나 이런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게 사람이잖아요.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접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접점으로 그 사람과 더 얘기를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동화가 되는, 그런 다음에 이 사람이 맘에 들면 더 자주 만나고 그 상대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네가 좋다’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계속 형성이 되어가는 과정이 있는 거고. 그러다 갈등도 생기고 멀어지게 되는 그런 상황이 흘러가면 또다시 어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거죠.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이런 과정을 행성에 비유를 했어요.

두은정 : 저는 왜 이게 사랑 이야기가 아닐 거 같단 생각을 했냐면 전체적으로 가사가 감정적 묘사보다 상황에 대한 묘사의 비중이 더 큰 것 같았어요. ‘행성’에서 ‘착륙하고 있어’라는 가사에서 특히 그런 걸 느꼈어요.

구원찬 : 쉽게 설명하자면 누군가에게 대화를 건다던가 누군가와 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를 착륙에 비유했어요.

두은정 : 분명히 ‘행성’의 뮤직비디오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어요
 
구원찬 : ‘행성의 가사만 들었을 때는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많았어요저도 이 가사가 이해하는데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어서 더더욱 뮤직비디오를 찍게 된 것 같아요더 잘 설명하고 싶으니까요.

두은정 : 뮤비 아이디어는 어떤 식으로 내고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었나요.

구원찬 : 회의를 많이 했어요. 감독님들도 ‘행성’ 그 자체에 대한 걸 최대한 많이 표현하려고 했죠. 남녀가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껴안거나 스킨십을 하는 그런 느낌은 아니잖아요.

두은정 : 그죠. 오히려 같은 장면에서도 분절되어 있는 느낌.

구원찬 : 서로 알아가려고 하는 그런 포인트들을 직접적으로 대화를 하고 스킨십을 하고 그런 게 아닌 나름의 의미 있는 표현들로 대체하려고 하신 것 같아요.

두은정 : 신체에 숫자를 쓰고 더듬는 이런 장면들이 특히 무슨 의미일지 궁금했어요.

구원찬 : 거리가 좁혀지는 걸 표현한 거죠, 카운트처럼. ‘행성’에서 가장 직접적인 표현이 ‘나를 사랑해줘’인데 뮤직비디오에서 그 가사가 나오는 순간 장면에 숫자가 딱 0이 되거든요. 그게, 이 행성이 맘에 든 거죠. 내가 이곳에 정착하고 싶은데 정착을 하려면 내가 농사도 지어야 하고 집도 지어야 하고 내가 이런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데 정말 나의 바람대로 네가 나를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너를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너도 나를 받아줬으면 좋겠다. 이런 거죠.

 

두은정 : 뮤비가 사실 직접적인 장면들이 있기보다는 비유의 나열이 많다 보니 노래를 들으면서 가사를 한 번 더 보게 되고 자꾸 나름의 해석을 하면서 보게 되더라고요그런 것들이 좋았어요이번엔 새 앨범 얘기를 해볼까요.
 
구원찬 : 이번 앨범은 ‘피셔맨’이라는 친구와 제가 프로젝트로 낸 앨범이에요그 친구가 21살이에요음악을 제대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17살 때부터 힙합 신 쪽에서는 이미 유명하기도 하고 엄청 재능 있는 비트메이커로 알려져 있어요지금은 기리보이 크루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고 개인 앨범도 준비하고 있는 친구예요. 그 친구하고 저하고 스무 살 때부터 알았는데 그때부터 가지고 있던 서로에 대한 호감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게 됐죠. (전체적으로)새로움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곡과 가사를 풀어냈어요피셔맨과 제가 처음으로 음악적으로 섞이는 첫 작업물이기도 하고 그 안에 담긴 가사들도 처음 느낀 감정나를 다시 포맷함으로써 새롭게 시작하자 이런 내용을 많이 담았고요긍정적인 얘기들마지막 조울이라는 트랙에서 긍정적인 마음이 현실과 부딪히는 내용으로 마무리가 되는 앨범이에요.
 
두은정 : 전체적으로 이전 ep보다 좀 더 팝에 가깝고 좀 더 대중적인 앨범이라는 말을 했죠저는 타이틀곡인 기다려가 특히 그런 트랙인 것 같은데.
 
구원찬 : ‘기다려라는 곡은 제가 많이 힘들었을 때 썼던 가사인데 사실 마인드 컨트롤하는 내용이에요어쨌든 나는 잘 될 거고 좋은 사람이 올 거고 나는 그걸 계속 기다린다는 가사제가 지금 몸담고 있는 직업 자체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거기도 하니까 앞이 그려지지 않는 깜깜한 그런 상황에서 나 할 수 있어어쨌든 더 좋은 상황이 올 거야같은 생각을 하며 쓴 거죠일종의 노동요같은.(웃음)

 

 

 

두은정 : 원찬 씨를 보고 알앤비 싱어송라이터라고들 하죠.
 
구원찬 : 저는 그냥 가요’ 아니면 ’. 그게 더 저도 덜 부담스럽고요멋있는 카피나 표현들 사실 너무 감사하죠그래도 그것보다는 쉽게친근하게 다가가지는 거면 좋겠어요저도 좀 더 다양한 걸 하고 싶으니까.



Editor
 / 두은정
(촬영, 인터뷰)
youngwave@poclan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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