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Inside] 2017, 너는 참 좋은 해였다

Deep Inside #10
2017, 너는 참 좋은 해였다
[Top 5 albums of the year]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 수록 시간이 점점 더 빨리 가.”

 

서두부터 대단히 ‘아재’스럽다만 사실 이 말은 옛날부터 주변에 있는 선배, 형들이 툭하면 내게 던지던 공통적인 넋두리다. 그땐 그저 한 귀로 흘려 들었건만 시간은 흐르고 흘러, 불행하게도 이젠 내가 그 넋두리의 주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진짜로! 요즘 내가 체감하는 ‘시간’이라는 것은 마치 육상경기에 방불케 하는 대단히 숨가쁜 무엇이 되어버린 거 같다. 확실히 시간의 체감속도는 스스로의 나이듦에 비례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고 그 상승곡선을 타고 2017년도 어느새 막바지에 와있다. 동시에 내 마흔두 살도 함께 끝자락에 섰다.

 

여하튼 마냥 반갑지만은 한 해의 끝에서, 이 꼭지의 에디터가 아닌 ‘포크라노스’라는 브랜드의 런칭부터 현재까지 실무를 줄곧 책임져온 한 사람의 스태프의 입장에 서서 2017년의 포크라노스를 되돌아본다. 2015년 런칭 이후 꼭 3년차였던 이 브랜드의 올해는 우리들의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꽤 의미심장한 변화와 진화들이 일어났던 것 같다. 이런 변화 속에서 개인적으로 특히 좋았던 점은 무엇보다 더 많은, 젊고 신선한 음악가들과 함께 일하게 되면서 포크라노스가 다루는 장르의 풀이 이전보다 한층 넓어졌다는 것. 게다가 2017년은 앞서 두 해에 비해 내 개인적인 음악취향을 무차별 폭격하는, 취향저격 음반들이 대거 쏟아진 해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올해의 마지막 ‘Deep Inside’는 올 한해 내가 가장 사랑했던 다섯 장의 음반을 꼽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내 나름의 소소한 연말 기분내기 같은 거랄까. 자 그럼 레스기릿!

 

 

#1 [데카당 / ㅔ] (EP / 2017)

 

데카당 / 봄 (Live @ 온스테이지)

 

올 한 해 내 SNS의 타임라인에서 ‘최애’라는 단어가 쓰인 포스트 중 상당수는 분명 ‘데카당(Decadent)’과 연관이 있다. 이들의 첫 EP [ㅔ]는 내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도무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무정부적이면서 젊음의 치기처럼 뾰족하게 모가 난 사운드, 여기에 지독히도 자의적인 노랫말을 제멋대로 강약을 오가며 불러 젖히는 보컬의 기묘한 불협화음. 데카당의 음악은 뭐랄까, 종종 ‘부조화 속 조화’라는 느낌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상상이지만 ‘디안젤로(D’angelo)’가 ‘빌랄(Bilal)’, ‘앤더슨 팩(Anderson .Paak)’ 등을 모아놓고 “야, 우리 좀 싸이키델릭한 거 같이 해볼래?” 하고 뭔가를 만들면 아마 이런 게 나오지 않을까 싶은 소울과 블루스, 싸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가 혼재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들만의 음악문법을 펼쳐놓는 밴드다.

 

요새 듣는 음악들이 죄다 왠지 뻔하게 느껴진다면, 신선한 자극이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이 음반을, 그리고 최근에 발매한 싱글 ‘우주형제’와 ‘너와 나’를 들어보길 권한다. 내가 ‘최애’라는 수식어를 썼을 정도면 확실히 이건 장난 아닌 거니까.

 

 

데카당 / 우주형제 (Live @ 클럽FF)

 

◊‘Deep Inside’ 6회 ‘데카당’편

https://blog.naver.com/poclanos/221030739523

 

 


#2 [Fisherman, 구원찬 / Format] (EP / 2017)

 

 

Fisherman, 구원찬 / 조율 (audio)

 

 

EP [Format]은 최근 흑인음악의 트렌드를 완전히 역주행하는, 포근한 정서의 복고풍 알앤비-팝 음악들을 담은 EP [반복]으로 등장해 서서히 주목 받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구원찬’이 솔로 EP로부터 불과 한 달 만에, 비트메이커/프로듀서인 ‘피셔맨(Fisherman)’과 함께 발표한 프로젝트 음반이다.

 

본인의 음반 [반복] EP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얼반, 컨템포러리 알앤비의 무드를 재현하고 있다면 이 음반은 좀 더 네오소울적인 색채가 짙다는 인상. 특유의 몽글몽글한 질감의 사운드로 구현하는 동화적인 멜로디의 선율이 심플한 힙합 비트와 공존하는 ‘피셔맨’ 특유의 사운드와 스무스한 구원찬의 보컬은 어디 하나 모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데 음반을 들으면서 왠지 모르게 ‘뮤지끄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를 자꾸 떠올렸다. 낭만이라곤 1도 없는 사람의 가슴 속에도 낭만꽃이 피어날 것 같은, 로맨틱한 무드로 가득한 음반이다.

 

아, ‘피셔맨’도 최근 본인의 두 번째 EP [청담]을 발표했다. 아름다운 음악들을 담고 있으니 꼭 시간을 내서 들어보기를.

 

 

Fisherman, 구원찬 / 처음 (audio)

 

 

구원찬 / 행성 (official MV)

 

◊‘Deep Inside’ 8회 ‘구원찬’편

https://blog.naver.com/poclanos/221116197620

 

 


 

#3 [Grack Thany / Grack Thany presents ‘8luminum’] (compilation / 2017)

 

 

 

VANDA, BAC & Youngcook / 정치인 (audio)

 

주류 관습을 거부하는 태도를 좋아한다. 동시에 흥행과 무관하게 자기 곤조를 우직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작가주의적인 태도 역시. 그런 의미에서 대안적인 힙합 음악 컬렉티브인 ‘그랙다니(Grack Thany)’는 최근 내가 한국의 힙합씬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집단 중 하나다. ‘사일러밤’, ‘션만’, ‘몰디’, ‘BAC’, ‘반다’, 노피치온에어’, ‘행인’, ‘본린 윤’ 등으로 구성된 이 집단은 시종일관 언더그라운드적인 태도를 유지해왔고 실제로 이들이 그간 발표해온 결과물들은 최근 한국힙합 전반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올해 후반에 발표한 ‘그랙다니’의 컴필레이션 앨범 [8luminum]은 이 집단의 태도, 지향점을 밀도 높게 함축해 담아낸다. 불길한 무드를 조성하며 음반의 첫인상을 빚는 ‘행인’의 첫 트랙 ‘폭파’에서부터 재즈, 훵크의 바이브로 산뜻하게 음반을 매조지는 ‘션만’의 마지막 트랙 ‘포물선’까지, 수록된 열두 트랙 모두 현재 대중들이 주로 소비하고 있는 힙합의 그것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랙 하나하나가, 또 그 하나하나가 모여 앨범이라는 덩어리가 되었을 때 청자에게 선사하는 매력과 흡입력은 굉장하다. 내가 꼽는 ‘올해의 한국 힙합 앨범’이다.

 

 

TFO / Bomb (audio)

 

 

VANDA, BAC / 50m Bass

 

 


 

#4 [리코(Rico) / White Light Panorama] (Full-length / 2017)

 

 

리코(Rico) / Paradise (official MV)

 

 

정말 오랜만에 음악 때문에 소름이 돋았다. 도입부를 듣는 순간 고압전류로 척추를 직격 당한 기분이었달까. ‘리코(Rico)’의 노래 ‘Paradise’ 얘기다. 솔직히 한국에서 이렇게 멋진 네오소울 넘버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D’angelo’의 2집 [Voodoo]에 ‘DJ Premier’와 함께 작업한 ‘Devil’s Pie’라는 트랙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곡을 연상시킨다)

 

원래 ‘리코’의 팬이었다. 섹스송(?) 매니아(??)인 나는 그가 믹스테잎을 연이어 발표하며 씬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2012년부터 첫 정규였던 [The Slow Tape]에 이르기까지 음색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잠재력이 느껴졌던 이 보컬리스트가 집요하게 자신을 발전시키며 슬로우잼의 정수로 접근해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대단히 기쁘게 지켜봤던 한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Paradise’는 ‘리코=슬로우잼’이라는 내 머릿속 공식을 산산조각내며 새로운 리코의 컴백을 알린 트랙이었고 그의 통산 두 번째 정규작인 [White Light Panorama]는 역시나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리코’를 담고 있었다. 새 앨범은 네오소울, 트랩, 피비알앤비 등 ‘알앤비’라는 바운더리 내에서 다룰 수 있는 다양한 스타일들을 시도하며 음악적인 외연을 확장한다. 트랙 하나하나의 프로덕션이 대단히 훌륭할뿐더러 다채로운 스타일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트랙도 ‘리코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의 확실한 개성, 스타일이 그 모두를 하나로 묶으며 앨범의 통일성을 담보해낸다. 올해 나온 가장 훌륭한 알앤비 음반 중 하나이며 이후 한국 알앤비 음악을 논하는 자리에서 두고두고 거론될 만한 음악적인 성취, 완성도를 고루 갖추고 있다.

 

 

리코(Rico) / Don’t Talk to Me (feat. Bloo) (official MV)

 

 

리코(Rico) / Pistol Bae (feat. 버벌진트, 슬릭) (official MV)

 

◊‘Deep Inside’ 7회 ‘리코(Rico)’편

https://blog.naver.com/poclanos/221116197620

 

 


 

#5 [강태구 / bleu] (Full-length / 2017)

 

 

 

강태구 / Passenger (official MV)

 

솔직히 고백하면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지난달 중순만 해도 이 자리에 위치할 음반은 이미 달리 정해져 있던 터였다. 하지만 이달 초의 어느 날 밤, ‘Passenger’라는 노래를 듣는 순간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아니 바꿔야만 했다. 불가항력이었다.

 

포크 기반의 싱어송라이터 ‘강태구’가 제주도 그 어딘가에서 만들어낸 노래들을 담은 앨범 [bleu(블뢰)]는 음반으로는 전곡을 수록한 앨범의 형태로, 음원으로는 몇 곡씩을 끊어 수록한 싱글의 형태로 소개되고 있다. 현재까지 음원으로 공개된 곡은 총 네 곡.

 

사실 나는 ‘강태구’라는 음악가에 대해 잘 모른다. 이 음반을 통해 처음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뿐. 그래서 그에 대해, 이 음반에 대해 어떤 소개나 안내라 할 만한 이야기는 적어도 지금은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여기서 밝히고 싶은 것은 덤덤하게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내 안에서 무수히 많은 감정의 파도가 세차게 일렁였다는 것. 그래서 한참을 끝도 없이 먹먹해진 그런 밤을 보냈다는 것. 앞으로 난 아마 그에 대해, 그의 음악에 대해 좀 더 알아가게 될 거다.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다라 그의 음악을 만나게 된 것에 참으로 감사하다.

 

 

강태구 /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소리 (Live @ 온스테이지)

 

 

강태구 / 그랑블루 (audio)

 

 

이상으로 내 멋대로 고른 ‘올해의 음반’ 다섯 장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그리고 이 글을 마지막으로 ‘포크라노스’의 스태프이자 에디터로서의 나의 2017년도 공식적으로 종료, 당분간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남은 연말은 잠시 서울을 벗어나 저 멀리 강원도 어딘가에 머무르며 좋아하는 스노우보드를 매일 타고, 그간 미처 못 들어본 좋은 음악들도 찾아서 들으며 보내려고 한다. (이건 거의 매해 반복되는, 내 나름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끝으로 이 자리를 빌어 2017년 한 해 동안 보잘것없는 내 글들을 읽어준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Deep Inside’ 코너의 모든 글은 에디터의 개인적 주관을 반영한 것으로 본사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일절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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