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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Inside] 오존(O3ohn), 어지러이 널린 일상의 파편들을 가만히 응시하는 어느 청년의 지극히 개인적인 노래

발행일자 | 2018-03-14

Deep Inside #11, 오존(O3ohn)
어지러이 널린 일상의 파편들을 가만히 응시하는 어느 청년의 지극히 개인적인 노래


 

 

2016년 5월, 미국의 인디펜던트/언더그라운드 힙합 레이블 ‘스톤즈 스로우 레코드(Stones Throw Records)’의 쇼가 뜬금없이 서울 한복판에서 열렸다. 이들과 협업해온 스트릿 패션 브랜드 ‘스투시(Stussy)’, 근래에 가열찬 행보를 보이고 있는 국내의 공연기획사인 ‘20/20’의 작품이었는데 한편으론 고마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솔직히 말하건대-‘대체 한국에서 이걸 누가, 몇 명이나 보러 갈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보러 갔지만. (심지어 혼자 가서 엄청 잘 놀다 왔다, 하하하;)

여하튼 난데없이 2년 전의 개인적 기억을 끄집어낸 것은 이 날이 내가-이 글의 주인공인-‘오존(O3ohn)’이라는 음악가를 생전 처음으로 만난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이벤트의 오프닝 밴드 ‘신세하 앤 더 타운(Xin Seha & The Town)’의 기타리스트로 무대에 오른 그는 시종 밝게 웃고 있었고, 그가 연주하는 기타 역시 그 웃음만큼이나 기분 좋은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존(O3ohn)’, 본명은 오준호로 기타를 베이스로 하는 셀프-프로듀싱 싱어송라이터다. ‘O3ohn’이라는 독특한 이름 표기는 분자 ‘오존’의 원소기호가 ‘O3’라는 점, 더불어 러시아어의 ‘3’가 알파벳 ‘J’와 같은 발음이라는 점을 두루 아우른 중의적인 작명이라고 한다. 팬들에겐 이미 익히 알려진 것처럼 초중고등학교 동창인 친구 ‘신세하(Xin Seha)’의 밴드 ‘신세하 앤 더 타운’의 기타리스트로 처음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전역 시점인 2014년 겨울, 당시 첫 앨범 [24Town]을 준비하고 있던 신세하가 먼저 제안을 했다고. 한편 그 시기에 이미 본인의 오리지널을 창조해보고 싶다는 열망도 품고 있던 그였다.

 

오존(O3ohn)

이 열망이 가시적으로 발현되어 ‘솔로 아티스트’ 오존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된 것은 2016년 10월, 이전까지는 사운드클라우드에 드문드문 습작을 공개하던 그가 그 중 몇몇 곡들을 추리고 다듬어서 담은 데뷔 EP [O]를 공개하면서부터다. 다분히 개인적인 이야기와 여기서 비롯된 감정들을 바탕에 둔 채 종종 포근하게 다정하고, 때론 쓸쓸하며 헛헛한,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어떤 고독의 정서가 뭉근하게 배어있는 네 곡의 노래들은 온전히 그 자신에 의해 쓰여지고, 편곡되고, 연주되고, 불려지고 녹음되었다.

기타를 중심으로 한 최소한의 소리들이 넉넉한 여백을 지니고 배열되는 단출한 편곡, 그래서 덤덤하게 노래함에도 되려 더욱 도드라지는 오존의 목소리는 소절 하나하나를 끝맺는 미세한 떨림마저 슬며시 귓가에 남아 여운을 만들어내며 노래의 일부가 된다.

<오존(O3ohn) / [O]> Cover Artwork
의미를 알 수 없는 노랑 생명체, 더 의미를 알 수 없는 하와이…
아티스트가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끄적인 낙서가 그대로 커버가 되었다고.
 

다양한 음악들을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 중에는 ‘존 메이어’도, ‘언니네 이발관‘도, ‘프랭크 오션’도 있다. 실제로 첫 EP를 통해 드러나는 ‘오존’의 음악에선 ‘존 메이어’의 팝이 지닌 은근한 블루스의 요소, ‘언니네 이발관’의 담백한, 어딘지 유약하기도 한 기타팝의 감성, 또 ‘프랭크 오션’의 음악처럼-또한 대부분의 PBR&B 계열 음악들이 그러하듯-너른 공간감으로 표현되어 근사한 부유감과 잔향의 여운을 주는 사운드 등이 두루 감지되어 그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들에게서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혹자는 ‘혁오’를 위시해 최근 등장하고 있는 몇몇 인디팝 아티스트들과의 어떤 공통분모를 그에게서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음악은 그 무엇과도 같지 않고 그 무엇도 굳이 레퍼런스로 삼지 않으며 ‘오존만의 것’을 단단한 심지로 지니고 있었고 아마도 그래서, 오존의 음악을 들어본 이들은 저마다 각각 그의 미래에 대해 어떤 ‘기대’를 품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이었고.

 

“’신세하 앤 더 타운(XinSeha& The Town)’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해온 그가 솔로 아티스트로 등장해 EP [O]를 불쑥 내민 순간, 우리는 가슴 깊숙한 곳을 찌르는 근사한 음색과 훌륭한 송라이팅 능력을 두루 지닌, 진짜 괜찮은 싱어송라이터를 만나게 되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낭만과 서늘한 우수를 함께 품고 있는 오존의 노래는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동시에 ‘힙’한 것을 찾는 이들의 촉각을 잡아 끄는 지점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포크라노스 컴필레이션 [Emerging] 공식 소개글 中

 

오존(O3ohn) – untitled01 M/V

[O] EP 이후 몇 개월이 지나 해를 넘긴 2017년 초에 공개된 싱글 ‘Kalt’는 전작에서 품기 시작한 기대의 감정을 이윽고 ‘믿음’의 형태로 슬며시 치환시킨다. 꽤 매력적인 음색의 여성 보컬리스트 ‘JOONIE’와 함께한 이 노래에서 오존은 [O]에서 일관되게 그려냈던 고독에 대해 다시 한 번 노래하고 바로 이 ‘고독’의 감정을 그려내는 특유의 심상이야말로 자신이 지닌 고유의 개성임을 분명히 밝힌다. 태생적으로 혼자이면서 또 결코 혼자일 수 없는, 그래서 늘 관계를 애타게 갈구하고 그 속에서 때론 상처 받고 깊은 고독과 마주하는 존재가 인간이고 이것은 우리 모두의 지극히 보편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렇게 관계와 관계 속에서 갖가지 감정의 조각들을 흩뿌리는 무수한 일상의 순간순간을 오존은 가만히 응시하고, 이를 차분하게, 그리고 조금은 서글프게 노래한다. 그리고 그 노래는 이미 단 맛 쓴 맛 죄다 맛본 닳고 닳은 어른의 그것이 아닌, 아직 미처 다 자라지 못한-그래서 소년과 어른의 경계에 서 있는-한 청년의 개인적 노래로 들린다. (한편 ‘JOONIE’는 이 노래 외에 달리 활동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그 정체(?)에 대해 나로선 딱히 알 길이 없다. 아티스트에게 직접 물어볼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이내 그러지 않기로 했다)

오존(O3ohn) – kalt(feat. JOONIE) M/V

그 해 여름, 네이버의 ‘온스테이지’에 등장해 몇 곡의 라이브를 선보였다. 여기에 등장했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 이미 그가 인디씬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이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어 있었다는 의미일 터다.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 기존의 곡들이 아닌 당시 시점에서는 미공개였던 세 곡의 노래를 기타, 베이스, 드럼의 심플한 구성으로 노래했는데 이 중 ‘Rolling’과 ‘언제부터’는 앞으로 이야기할 EP 2연작에 수록되었다. 특히 ‘Rolling’ 같은 경우 라이브와 레코딩의 편곡에 꽤 큰 차이가 있으니 비교해서 들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될 것이다.

 

[온스테이지] 356. 오존(O3ohn) – Rolling

이후 공개된 정식 레코딩에 비하면 다소 투박한 편곡. 반면 더 흥겹기도 하다.
예컨대 레코딩이 산책이라면 라이브는 드라이브랄까.

2018년의 시작과 함께 두 장의 EP <jon1>, <jon2>를 한 달의 간격을 두고 연이어 공개했다. [O]와 동일하게 저마다 꼭 네 트랙씩을 수록하고 있는 각각의 EP들은-역시 [O]와 동일하게-모두 온전히 그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지고 녹음되었다. 꾸준히 작업하며 쌓아둔 곡들 중에서 수록곡들을 추려 트랙리스트를 구성한 것 또한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jon2>의 경우 전곡의 가사를 영어로 썼다는 점이 이채롭다. (왜 하필 ‘네’ 곡인 건지 역시나 아티스트에게 물어볼까 했지만 역시나 굳이 그러지는 않기로 했다)

<오존(O3ohn) / jon1 & jon2> Cover Artwork

어쿠스틱 발라드 ‘Somehow’로 문을 여는 첫 번째 파트 <jon1>은 전체적으로 전작 [O] EP의 색채를 일정 부분 이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영롱하게 울려펴지는 기타의 전주에 이어 오존 특유의-따사로우면서 한편으론 헛헛하기도 한-음색을 다시금 만나게 되는 ‘Somehow’의 아름다운 기타 선율에는 짙은 우수가 배어있고 그 위를 떠돌듯 부유하며 떠나보낸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관조하듯 읊조리는 오존의 노래는 덤덤하기만 해서 도리어 더욱 애달프다.

[MV] 오존(O3ohn) – Somehow / Official Music Video

이번에도 역시 그간 오존의 모든 뮤비를 만들어온 새가지 비디오(SEGAJI VIDEO)의 작품이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도시 속 건축물의 디자인이 지닌 구조적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근사한 그림이 된다.

후렴구의 허밍 ‘우우우’를 제목으로 한 ‘Oooh’,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뮤지션리그를 통해 프로토타입(?)을 먼저 공개한 적이 있는 ‘언제부터’는 적당히 낭만적이고 적당히 달콤하며 또 적당히 담백해 비교적 편안하게 귀에 감긴다. 두 곡 모두 ‘관계’, 구체적으로는 ‘너’와의 관계에 대한 기대감 또는 설레임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편 이 파트의 마지막 노래인 ‘Thoms Piano’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의 상실감, 언제까지고 온전히 다 치유될 수는 없는 아픔에 대해 조용히 노래한다. 앞서 ‘Somehow’와 마찬가지로 우울의 정서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그의 특유의 감성을 오롯이 맛볼 수 있는 노래로 오존은 ‘만약 언젠가 자신의 부모님을 떠나보낸 후에, 이후 부모님을 떠올릴 때의 자신의 마음은 어떨까’를 생각하면서 이 곡을 썼다고 이야기했다.

오존(O3ohn) – Thoms Piano M/V

 오존(O3ohn) – 언제부터(Live) [CASPER RADIO]
<jon2>의 첫 곡인 ‘R’을 플레이하고 조금 흠칫했다. 그간 들어왔던 그의 음악과는 사뭇 다른 첫인상 때문이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일단 ‘리듬’이다. 그간 발표한 그의 어떤 노래보다도 이 노래는 리듬이 전면으로 부각되어 사운드의 중심에 서는데 밝고 경쾌한 리듬이 댄서블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선율을 구성하는 소리들의 은근한 변화들도 귀를 기울여 듣게 하는 재미가 있다. (정확히 어떤 악기의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로폰, 혹은 비브라폰 같은 종금류 타건악기의 소리가 마치 물방울이 떨어지듯 리듬 사이사이에 톡톡 떨어져 곡의 느낌을 굉장히 퍼커시브하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선율의 바탕이 된다.

한편 곡이 전개될수록 다양한 결의 기타의 소리들이 곡 중간중간에 끼어들어 변화를 준다. 오존은 여전히 비교적 차분하게 노래하지만 그럼에도 청량한 흥겨움이 있는, 이를테면 ‘오존 식(式)의 미니멀한 댄스뮤직’이랄까. 개인적으로 두 번째 파트의 가장 특징적인 트랙이면서 이전과는 조금 다른 오존을 담은 이 파트의 개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트랙이기도 하다.

오존(O3ohn) – R
‘온스테이지’에서 먼저 공개했던 노래 ‘Rolling’은 앞에서도 언급했듯 편곡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라이브에서 직선적으로 질주하던 리듬은 시계의 초침이 똑딱이듯 정적이고 차분해졌으며 오존의 노래와 기타 역시 여기에 발맞춰 호흡을 늦추고 느슨해졌다. 덕분에 온스테이지의 라이브 버전보다 훨씬 편안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곡으로 변모했다. 화사한 느낌마저 든다. 이어지는 ‘Seeyouin’에서 급격하게 분위기를 반전 음습하고 침울한 무드를 조성한다. 블루지하게 울리는-다소 퇴폐적인 무드까지 만들어내는-기타의 소리를 배경으로 독백처럼 들리는 오존의 노래는 내면의 심연 어딘가로 깊이, 더 깊이 침잠해 들어간다. 제목처럼 이 파트의, 그리고 ‘jon’이라는 전체 프로젝트의 마지막 노래인 ‘Finale’은 지인에게 빌린 테이프레코더로 녹음한 곡이다. 로파이한 질감, 차분하게 음을 짚어가는 일렉트릭 건반의 소리, 알앤비나 소울의 뉘앙스가 느껴지는 오존의 팔세토 섞인 보컬은 차분하게 끝을 향해 걷고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다. ([O] EP의 마지막 트랙이었던 ‘her’와 어딘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당신은 ‘고독’, 혹은 고독으로부터 비롯되는 ‘우울’을 어떻게 다루는가? 한때 나는 이 감정들을 극복의 대상으로 여겼다. 이따금씩 우울의 심연에 발을 들이게 될 때마다 그 어둠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 있는 힘껏 발버둥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감정들은 ‘지금의 나’ 그 자체라서 사실 벗어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행위 그 자체가 되려 스스로의 감정을 더 갉아먹으며 핍박한다는 것을. 이후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그냥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울하면 우울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그저 ‘이것이 지금의 나’라고, 그 모습을 어떤 식으로든-행여 궁상맞고 한심하기 짝이 없더라도-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맘껏 슬퍼하고 맘껏 우울해하며 내 속에 있는 어두움의 밑바닥까지 깊숙히 침잠해 들어가보는 것, 이 행위가 되려 일종의 평화를 가져다줬고 이건 이후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가장 자연스럽고 유효한 방식이 되었다.

동일한 맥락에서 오존의 음악을 바라보게 된다. 우울하고 슬플 때 더 슬픈 노래를 듣고 영화를 보며 감정을 동화하고 쏟아내 어떤 카타르시스를 획득하는 것처럼,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종종 내 안 깊숙한 곳에 있는 근원적 외로움과 마주하고, 이를 보듬어안으며 마음에 위안을 얻는다. 그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고독의 순간, 그리고 우울의 낭만이다.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Deep Inside’ 코너의 모든 글은 에디터의 개인적 주관을 반영한 것으로 본사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일절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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