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Nerdy coke [인터뷰]

발행일자 | 2018-11-29


 

“훗날 2018년의 한국 힙합을 되돌아보면 아마 ‘가장 뜬금없었던, 하지만 동시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발견 중 하나’로 이 앨범이 회자되지 않을까. 아무튼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들이 이 앨범을 통해 한국 힙합의 어느 한 귀퉁이에 새로운 색깔 하나를 슬며시, 그러나 아주 뚜렷하게 칠했다는 것.”

 


 

Nerdy coke
인터뷰
2018.11.24.

 

2018년 11월은 힙합이라는 장르의 팬인 나에게는 꽤나 흥미롭고 또 즐거운 달이 되고 있다. 국내외에서 좋은 싱글/앨범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때문이다. 우선 해외에서는 2010년대 나의 최애 아티스트 중 한 사람인 ‘Anderson .Paak’이 세 번째 정규앨범 [Oxnard]를 드디어 공개했고 과거 뉴욕 힙합의 상징과도 같았던 ‘딥셋(The Diplomats)’이 갑자기 새 싱글로 돌아와 반가움을 안겼다. 아버지 윌 스미스처럼 본인 또한 연기와 음악 양쪽에서 활약하는 다재다능한 ‘제이든(Jaden Smith)’도 새로운 프로젝트 [The Sunset Tapes: A Cool Tape Story]와 수록곡 ‘Plastic’의 근사한 뮤비를 공개했는데 더불어 ‘타일러(Tyler, The Creator)와 사귀는 사이라며 갑작스런 커밍아웃까지 해버렸다. 국내 역시 흥미롭긴 매한가지. 먼저 한국힙합의 상징적인 이름 ‘드렁큰 타이거’의 마지막 앨범이 나왔고 BANA의 ‘이센스’와 ‘XXX’가 정규작 공개를 앞두고 나란히 싱글을 공개했다. (아마 이 글이 공개될 즈음 XXX의 첫 정규작이 이미 발매되어 있을 거 같다) 그랙다니(Grack Thany)의 랩 에이스로 왕성한 작업량을 자랑하는 허슬러 ‘몰디’는 또(!) EP를 공개했는데 전작 [Internet KID] EP로부터 불과 5개월 만이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앨범이 최근에 불쑥 나타났다. 신예 듀오 ‘Nerdy Coke’의 첫 앨범 [인터뷰]다.

 

총 31 트랙, 플레잉타임만 무려 81분 45초의 대작, 여기에 저스디스, 쿤디판다, 테이크원, 제이클레프, 김아일, 시마호이, 사일러 등 양과 질 모두 “호사스럽다” 느껴질 정도의 피쳐링진. Nerdy Coke(이하 너디코크)의 멤버 ‘유오닐’과 ‘손시아’ 두 사람은 이 앨범에 수록된 모든 트랙들을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했고 앨범 전체의 마감 또한 마스터링을 제외한 모든 과정을 손수 해냈는데 여기에 걸린 시간만 무려 3년이라고 한다. ‘3년’ 동안 준비한 ‘31트랙’짜리 ‘데뷔’ 앨범. 음악 외적으로 드러난 기본적 정보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흥미로운 이 앨범은 속을 들여다보면서 이제 더더욱 흥미로워진다.

 

 

[인터뷰]에서 우선 주목하게 되는 점은 프로덕션이다. 너디코크가 만들어내는 비트들은 현재 힙합 세계(?)를 양분하는 트랩, 붐뱁 그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 동시에 그 스스로도 어떤 하나의 ‘스타일’로 정형화되지 않는다. 다양한 사운드 소스를 흥미롭게 활용해 저마다의 트랙들에 모두 특색을 부여하고 다양한 무드를 조성해내고 있는데 그럼에도 앨범의 전체적인 흐름이 매끄럽게 전개된다-는 인상을 주는 건 그만큼 그들이 트랙 배열 등 ‘앨범의 구조’를 잘 설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일 것이다. 스킷을 적극적으로 활용, 앨범으로서의 통일성을 업그레이드하는 동시에 그들이 의도한 이야기의 서사를 보다 도드라지게 하려는 점 또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특히 이 스킷 트랙들이 클래시컬한 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의 무드를 빌려오는 동시에 여기에 다양한 상황, 분위기를 연기하는 성우의 목소리 연기까지 십분 활용함으로서 앨범에 영화적, 혹은 뮤지컬적인 성격을 뚜렷하게 부여하고 있다는 점은 이 앨범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다. (개인적으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어떤 장면들을 자꾸만 떠올렸다)

 

사운드 프로덕션 못잖게 ‘이야기’의 측면 역시 중요하다. 앨범 전체를 쭉 감상하고 나면 ‘이야기’야말로 사실 이 앨범의 핵심이라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인터뷰]는 두 멤버의 뮤지션으로서의, 또 한국을 사는 청년으로서의 삶, 특히 이 중 2013년부터 2018년에 이르는 특정한 시기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 다양한 각도와 방법으로 서술한다. 유오닐과 손시아는 자신들의 내밀한 개인사, 그리고 그 경험들을 통해 축적된 생각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랩을 하고, 혹은 노래를 하기도 한다. 피쳐링 아티스트들의 조력을 얻기도 하는데 이 중 상당수의 트랙에서-마치 프로듀서 앨범의 그것처럼-자신들은 부스 바깥으로 물러나고 시마호이, 사일러, 쿤디판다, 테이크원, 제이클레프, 김아일 등 피쳐링 아티스트들에게 보컬 퍼포먼스 일체를 맡기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여기 경찰 불러줘 철컹철컹, 음악 모르는 사장님들 철장에 넣어”

– 수록곡 ‘철컹철컹’ 중

 

 

그들이 과거에 다른 이름으로 음반을 냈던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序幕:서막)면서 이야기의 막이 열린다. 이어지는 ‘철컹철컹’은 장난스러운 가사의 후렴구가 처음엔 그저 재미있게 들리지만 막상 두 사람이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서 겪는 일들을 다루는 두 개의 벌스를 듣고 나면 더 이상 장난으로 들리지 않게 된다. 장미빛 미래를 꿈꾸며 기획사에 들어갔지만 음악을 음악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회사의 태도, 상업적으로는 성공에 가까워졌지만 음악이 즐겁지 않은 상황에 환멸을 느끼고 결국 회사와 헤어지는 과정이 생생하게 다뤄지는 곡이다. 결국 차선을 바꾸고(기획사를 나와서) 원하는 곳으로 내 마음대로 핸들링(하고 싶은 음악)을 해서 큰 사고(음악적 성취)를 내겠다는 내용을 담은 ‘드라이브’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물질적 풍요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돈에 대한 심정은 조금 복잡하지만 (‘뭐 때문일까’) 그럼에도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삶의 태도를 바꿀 생각은 없다 (‘Skit 1 / 날 좀 내비둬’). 상업적 성공에 대한 강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초심으로 돌아간(‘미정’) 그들은 이제 삶의 다른 면들도 둘러보게 되고 그 속에는 또래의 청춘답게 이성 관계에 대한 것도 있다.

호감이 생긴 이성과 시작된 대화를 토크쇼에 비유한 ‘Talk show’, 짝사랑을 향한 복잡한 마음을 표현한 ‘난 너가 헤어지길 바래 근데 그걸 티내면 안된다는걸 아네’, 평소엔 안 듣던 발라드를 이별하니까 듣게 되더라는 ‘안듣던 발라드 (Rough)’ 등은 이성과의 관계에 이리저리 요동치는-평범한 청춘다운-모습을 보여주지만 하지만 그런 경험들을 통해 이들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정신은 되려 더 단단해진다. (‘이별’, ‘편지’). 이윽고 최후반부에 배치된 두 트랙 ‘希望:희망’, ‘성공 (Live)’은 자신들의 삶에 태도에 대해 확신을 가진 이들이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는 지금 이 삶’이 이미 성공이며 그들에게 진정한 성공의 의미는 이런 것-이라 외치는 당찬 선언이고 끝으로 마지막 트랙이자 스킷 ‘終幕:종막’까지 듣고 나면 결국 이 모든 이야기들이 그들 자신의 인생사를 얘기하는 ‘인터뷰’였음을 이해하게 된다. 한편 ‘성신여대 반지하 작업실 동료’였던 ‘Justhis’가 중반부에 등장해 타이트한 벌스를 수놓는 ‘미정’, ‘Khundi Panda’가 특유의 날카로운 톤과 유려한 완급 조절로 트랙을 끌어가는 ‘돛대’, 환상적인 곡 해석력과 랩디자인이 감탄스러운 ‘김아일’ 피쳐링의 ‘Silence’를 비롯, 각각의 트랙들에서 저마다의 개성으로 빛을 발하는 TakeOne, Jclef, Syler 등 피쳐링 아티스트들의 좋은 퍼포먼스도 이 앨범을 듣는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요소다.

 

공들여 구축한 사운드 프로덕션과 이야기의 서사, 여기에 더해진 다양한 아이디어들, 적절하게 선택되고 배치된 피쳐링진의 운용 등 ‘좋은 앨범’으로서의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점, 더불어 사운드적으로, 또 가사적으로도 기존의 랩/힙합 음악들과는 다른 노선을 택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해 이들만의 뚜렷한 개성이나 태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작품이라는 점 등 랩/힙합 음악 팬들에게 청취를 권할 이유가 충분한 앨범이다. 훗날 2018년의 한국 힙합을 되돌아보면 아마 ‘가장 뜬금없었던, 하지만 동시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발견 중 하나’로 이 앨범이 회자되지 않을까. 아무튼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들이 이 앨범을 통해 한국 힙합의 어느 한 귀퉁이에 새로운 색깔 하나를 슬며시, 그러나 아주 뚜렷하게 칠했다는 것.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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