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lack AC [Hunting Trophy]

발행일자 | 2018-08-22


 

“곡의 분위기는 시종 불온하기 짝이 없고, 촘촘하게 음절을 쪼개 뱉어 가파르게 내달리는 리듬과 일체가 되는 Moldy와 Vanda의 랩은 잔뜩 날이 서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한편으로는 춤을 추고 싶을 만큼 흥겹고 신난다. “

 


 

Black AC
Hunting Trophy
2018.08.16.

 
현재의 한국 힙합씬에서 주로 소비되는 음악들을 가장 큰 덩어리들로 툭툭 끊어 분류해보자. 대략 세 부류 정도가 뚜렷하게 눈에 띄는 큼직한 덩어리들을 이룰 것이다. 우선 프로덕션에서부터 실제 구현되는 음악의 형태까지 모든 면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양대 장르(?) 트랩(Trap)과 붐뱁(Boom Bap)이 양 대척점에 설 것이고, 랩-싱잉 스타일에 알앤비, 팝의 DNA를 대거 투여해 탄생한 이지리스닝 성향이 강한 음악들(이걸 뭐라고 부르면 적당할까? 잘 모르겠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이 이 두 지점 사이 어딘가에 두루뭉술하게 위치하는 그림이 내 머릿속에는 그려진다. 아마 한국 힙합, 소위 ‘국힙’을 소비하는 리스너들의 관점도 대개는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여하튼 그들 대부분이 저 세 개의 키워드 내에서 각각 대표적인 음악가들의 이름을 몇 명이라도 어렵잖게 떠올릴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며, 그래서 이 세 가지 경향들을 현재 ‘국힙’의 ‘주류’, 혹은 ‘트렌드’라고 칭해도 딱히 틀린 이야긴 아닐 것이다.

이 같은 기준으로 ‘Grack Thany(그랙다니)’를 바라봤을 때 그들이 서 있는 현재 위치는 확실히 주류의 바깥쪽이다. 프로듀서(겸 디제이), 래퍼 등 다양한 음악가들이 모인, 어쩌면 레이블보다는 ‘집단 혹은 무리’(Collective)로서의 성향이 더 짙은 듯한 이 서울의 언더그라운드 레이블은 힙합을 큰 줄기로 베이스뮤직, 그라임, 정글, 바운스, 드럼앤베이스, 트랜스 등 힙합, 전자음악의 다양한 서브장르들을 넘나들며 힙합이라는 장르, 스타일의 기존의 관습에 부합하지 않는, 되려 이를 해체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듯한 음악을 선보여왔다. 얼터너티브 힙합, 그리고 비트뮤직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 사이에서 그랙다니 음악의 전반적 성향을, 동시에 ‘국힙’의 관습을 탈피하고 전복, 혁신을 꾀하는 ‘대안적 존재’라는 관점에서 이들의 정체성, 태도를 바라볼 수 있을 거 같다.

‘Black AC’는 프로듀서 ‘Sylarbomb(사일러밤)’과 함께 그룹 ‘TFO’의 한 축이었던 래퍼 ’BAC’이 프로듀서로의 본격적 행보를 시작하면서 새롭게 내건 이름으로 지난 3월, Moldy와 So Loki가 피쳐링한 싱글 [Young Sang]으로 처음 등장했다. TFO의 래퍼로서만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의외일 수도 있겠으나 사실 그는 이미 그랙다니의 컴필레이션 <8luminum>에서 두 곡의 비트를 만들어 수록하면서 이후 행보에 대한 단초를 넌지시 남긴 바 있다.

‘Young Sang’에서 합을 맞췄던 래퍼 Moldy(몰디)가 재차 등장하고 역시 <8luminum> 앨범에서 좋은 호흡을 보여줬던 래퍼 Vanda(반다)가 합세하는 등 그랙다니에서 래퍼 포지션에 있는 음악가들이 총출동한 새 싱글 ‘Hunting Trophy’에서 그의 비트는 ‘사냥꾼’(래퍼)들에게 제공된 가상의 ‘사냥터’다. 특유의 묵직한 베이스와 일그러진 노이즈를 바탕에 깔고 그 위에 타이트하게 쪼개지며 곡의 전개에 따라 다채롭게 변주되는 리듬, 조화와 부조화를 넘나들며 불길하고 음습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다양한 전자음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해 창조된 이 판에서 사냥꾼들은 그들이 ‘바보’라 칭하는 대상들을 가차없이 사냥해 여기에 해쉬태그를 달아 벽에 진열하고(#HUNTING TROPHY) 낄낄댄다. ‘헌팅 트로피’ 자체가 유흥적 사냥(트로피 헌팅)의 전리품을 의미하듯, 그들에게 있어 바보들을 사냥하는 이 일련의 행위들은 그리 무겁지 않은, 그저 유흥인 것으로 비춰진다. 이 컨셉트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그들의 사냥감이 되어 끝내 ‘헌팅 트로피’로 진열되는 그 바보들이 정작 ‘돈과 팔로워의 수치’에 목을 매는 이들, 즉 가장 ‘헌팅 트로피’에 집착하는 존재들이라는 아이러니다. 곡의 분위기는 시종 불온하기 짝이 없고, 촘촘하게 음절을 쪼개 뱉어 가파르게 내달리는 리듬과 일체가 되는 Moldy와 Vanda의 랩은 잔뜩 날이 서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한편으로는 춤을 추고 싶을 만큼 흥겹고 신난다. 그건 그들의 사냥이 그저 유흥이듯 그들의 음악 역시 결국은 그저 유흥이기 때문이려나.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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