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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STAGE!] 뮤직비디오 감독 hobin

발행일자 | 2020-04-14

[BACKSTAGE!] 뮤직비디오 감독 hobin

<BACKSTAGE!>는 무대 바깥의 이들을 위한 시리즈 인터뷰입니다. 아티스트와 리스너간의 선순환을 도모하고, 나아가 씬의 발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조명할 예정입니다. 조명이 꺼지고, 콘페티가 모두 땅으로 떨어진 다음 날에도 쇼는 계속될 것이니까요.

오랜만에 돌아온 <BACKSTAGE!>가 만나볼 세 번째 주인공이자 2020년 첫 주인공은 뮤직비디오 감독 호빈(hobin)입니다. 선우정아, 서사무엘, 백예린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최근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자신만의 감성과 표현을 지닌 그가 궁금했지만 21세기 정보의 바닷속에서도 그의 이야기는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우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단독으로는 인터뷰가 거의 처음이신 것 같은데요, 실제로도 그러신가요?

네. 크루로 했던 적은 있는데 저는 딱히 안 하는 편입니다. 할 것도 없습니다. (웃음)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안 했던 것 같습니다.

한 4년 전에 보그에서 취재했을 때 외에는 찾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동안 인터뷰를 안 하시다가 그래도 이렇게 이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제가 감사합니다.

커리어 초반부터 짚어나가면서 질문을 드릴 건데요, 찾아본 바로는 2015년 전후로 처음 영상을 시작하신 것 같더라고요.

네. 그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뮤직비디오의 경우에는 저도 연도는 정확히 생각이 안 나는데 연차로는 5, 6년 차쯤 된 것 같습니다.

비메오를 보니 베이 에잇(VEI-8) 2015F/W 필름이 제일 앞에 있더라고요.

그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뭐부터 시작했다’라고 명시할만한 것은 없는데 ‘뮤직비디오 데뷔작’은 있습니다. 그 해였던 것 같긴 합니다.       

그게 혹시 언노운 드레스(unknown dress)인가요?

네. 맞습니다. 사실은 말씀드릴 수 없는 입봉작이 하나 있고, 바로 다음에 한 게 언노운 드레스였습니다.

그러면 처음에 영상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어떻게 했더라… 사실 저는 뭔가 말할 게 별로 없는 게, 원래 ‘영상을 해야지’ 했던 사람은 아니어서 연차도 얼마 안 됐고, 영상 쪽 관련 학과를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전공은 원래 건축인데, 학교는 너무 재미있게 다녔지만 (건축 일을) 제대로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음악을 잠깐 하다가 기회가 생겨 패션 쪽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해온 일 중에) 제일 오래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영상 일을 한 기간이랑 패션 쪽 일을 한 기간이 비슷해지긴 했는데, 20대 때는 거의 계속 패션 쪽 일을 하다가 그래픽 디자인도 하고, 옷도 하고, 브랜드 기획도 하고 그랬죠. 어린 나이니까 화가 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화가 많은 성격은 아닌데, 그때 당시만 해도 지금만큼 재미있는 브랜드들이 있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생님들 아니면,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돈을 벌기 위한 패션 사업이 더 많았어요. 근데 저는 디자이너 브랜드이긴 하지만 상업적인 브랜드 쪽에 있었습니다. 음악도 그렇고 영상도 그렇겠지만, 어느 정도 베끼기도 하고 창작을 하기도 하잖아요? 어린 마음에 그게 좀 상처였던 것 같습니다. 좋은 기술을 가진 분들, 좋은 감성을 가진 분들이 그냥 베끼고 그걸 팔고, 팔면서 그걸 잘했다고 칭찬하고 있고, 돈 많이 벌었다고 좋아하고 있고… 그런 시절을 지나면서 잠깐 제 브랜드도 했다가 망했습니다. 화나서 하면 망해요. (웃음) 복구 기간이 지난 후에, 그래도 제일 오래 했던 일이 음악 아니면 패션 쪽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외주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랜서로 기획 일 같은 걸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작은 브랜드에서부터 형, 누나, 동생, 친구들이 하는 브랜드들, 지금으로 치면 ‘20F/W, S/S’ 이런 일들을 받아서 기획해주고, 디자인해주고, 사진도 잠깐 찍었으니 사진 찍어주고 하다가… 그렇게 한 포맷으로 보이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브랜딩이라는 분야가 되긴 했지만, 당시엔 그런 개념이 없었거든요. 패션도 그렇고 건축도 그렇고 영상도 그렇겠지만, 테마가 있어야 가치관이나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들이 굉장히 멋있는 영상물들, 패션 필름이라는 항목 아래에 뭔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근데 한국은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 당시만 해도 그냥 광고 형태로만 나오고 그래서 잘하시는 분들한테 “왜 영상 안 하시냐, 영상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다들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영상 감독님들을 막 찾으러 다녔죠. 근데 말도 안 되는 금액에 하시려는 분들도 없었고, 광고가 아닌 패션 필름으로 생각해주시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못 찾고, “기획은 다 해 놨고 나는 현장에서 할 일도 없으니까, 돈은 안 받을 테니 영상을 꼭 찍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씩 허접한 영상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모르는 지식으로. 다행인 건 원래 제일 좋아하는 게, 지금도 그렇지만, 그림 그리고 영화 보는 게 제일 좋아하는 취미여서 그런 게 조금 도움이 되었나 봅니다. 그래서 허접한데 덜 허접한 게 나왔습니다. (웃음) 그래서 그게 쓰임이 생기고, 쓰임이 생기는 게 주변 디자이너들이나 브랜드들에 조금씩 알려지면서 또 의뢰가 들어오고…

사실 영상은 패션 쪽 일의 한 카테고리로만 일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크루 했던 친구들이 다 한 파트씩 하잖아요? 음악 하는 애, 사진 찍는 애… 저는 그 안에서 제가 제일 형이고 누군가의 일을 조절해주고 정리해주는 그런 파트에 있었는데 “형도 형의 목소리를 내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라는 조언을 많이 해 줘서,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나마 영상은 좀 자유도가 있어서… 돈을 안 받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그런 일들을 좀 더 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영상이 제일 좋아지고 ‘이것만 해도 평생 공부할 게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태 같아서 할 게 많은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영상을 해야겠다고 어느 순간 서른이 넘고, 그 시기에 다들 겪는 힘듦과 비슷한 걸 겪은 후에, 일 하나를 제대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데뷔작이 대부분 그때 나왔거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영상을 해 봐야지’ 정도였는데, 그렇다고 그당시에는 그렇게 진지하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잘하는 분들이 너무 많았고 지금처럼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장비도 잘 안 빌려주고 장비도 무겁고 비싸고… 근데 생각해보면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요샌 너무 쉽게 쉽게 되긴 하니까.

비메오 초기에 올라온 것들을 보면 조기석 작가님이랑 한 아트 필름도 있고, 표현 요소도 강하고 오브제도 강렬한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초반의 스타일이 인상 깊었어요. 지금이랑 많이 다르기도 하고요.

그때는 사실 저는 미술과 패션 기반이었으니까, 영화 연출을 모르던 시절이니까 숨기고 싶어서. 숨긴다기보다는 모르기 때문에 잘할 수 있는 강점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고, 표현하는 게 그때는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저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요소이자 잘하는 쪽이었기 때문에… 그때도 재미있게도 영상 팀인데 영상 팀에 저랑 미술감독 한 명이랑 같이 일했습니다. 이상한 조합이죠? (웃음)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인데. 오히려 지금처럼 거꾸로 공부하게 된 게 저는 좀 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할 게 훨씬 많이 남았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초반에 언노운 드레스의 뮤직비디오를 하게 되신 게 어떻게 보면 첫 뮤직비디오였던 건가요? 그건 어떻게 하게 되신 건가요?

지금은 제가 인스타그램을 하진 않는데, 당시에는 주변에서 다들 하니까 ‘재미있겠다’ 싶어서 저도 한동안은 했습니다. 근데 셀카를 올리는 것도 싫고, 사생활이 보이는 것도 싫어서 그냥 작업물 정도만 올렸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일스타그램”이라고 “그만 좀 하라”고 그랬는데, 그런 걸 올렸을 때 그때 당시 패션 필름들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연락을 주신 게 마이 큐(MY Q) 님이었습니다. 마이 큐 님이 언노운 드레스의 회사에 아트디렉터로 계셨습니다. 그래서 연락을 주셔서 “여기 회사에 이런 음악을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너무 매칭이 잘 될 것 같아서 진행해 보면 어떻겠어요?” 해서 “저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언노운 드레스의 뮤직비디오를 봐도 쉽게 가는 장면들이 없잖아요. 그래서 인상 깊었거든요. 그 후에 2016년에 종현님, 그리고 NCT 127 분들 뮤직비디오도 하셨는데, 이때는 앞서 하셨던 거랑 프로덕션 규모도 그렇고 클라이언트의 크기도 그렇고 많은 게 크게 다르잖아요? 그래서 이 시기에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거든요.

그걸 하고 난 다음에 고민이 생겼지, 그 당시에는 고민은 없었습니다. 제가 ‘이 일을 생업으로 살아야겠다’고 했을 때의 굉장히 큰일이긴 했습니다. 그때는 별생각 없었고, 규모가 커지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그때도 미술감독 딱 한 명 데리고 있었습니다. 어리석게도 그렇게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죠. 근데 신기하게도 그때 당시에 SM 엔터테인먼트에 계시던 민희진 이사님도 그렇고, 담당자분도 그렇고 새로운, 신인 감독들을 발굴해서 재미있는 걸 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근데 너무 신인인, 저 같은 애를 데리고 오신 거였습니다. (웃음) 나이야 신인은 아니지만. 근데 사실 저는 일 자체는 ‘잘했다, 못 했다’를 차치하고서라도 그냥 그분들을 만나서 이 일을 하고, 큰 회사 규모의 일을 배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잘 가르쳐 주셨고, 많이 혼나기도 혼났지만. (웃음) 그러고 나서 느낀 바가 사실은 더 많습니다.

그 이후로 한동안은 아예 대형기획사 일들을 안 했습니다. 자의적으로. 연락이 사실 많이 오기도 했었고, 오퍼를 주셔도 그 당시에 할 수는 있었습니다. 원래는 그냥 일의 종류보다는 일의 물성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어떤 일이든 재미있게 할 수 있는데, ‘이런 일만 하다가는 내가 너무 늦게 찾은 이 영상 일이 싫어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순간 들기도 했었고, ‘내 색깔도 많이 없다고 생각했던 상태에서 이런 일들을 계속 쌓다 보면 색깔 쌓는 작업이나, 목소리를 내는 작업을 당분간 할 수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또 그런 시절이 그 당시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잠깐 멈추고 다시 패션 필름으로 돌아가서 그냥 개인 작업을 좀 더 늘리면서 일을 했습니다.

이런 고민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 후로는 작품이 많이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2017년에는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들, 선우정아의 “구애(求愛)”, 핫펠트(HA:FELT)의 “새 신발”도 있었는데요. “구애(求愛)”는 사실 안무가님이나 무용수분의 역할도 크긴 하지만 “새 신발”은 그 당시에 인상적이었거든요. 뮤직비디오 자체가 가지는 전체 그림도 그렇고, 정말 1차원적이고 원초적인 생각이지만, ‘아 외국을 로케로 이렇게도 풀 수 있구나’를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는지, 혹은 기획을 기존부터 가지고 계셨는지 궁금해요.

좋아했던 장르에 대한 밀도를 만드는 기간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노운 드레스를 보면 댄스 필름의 형식을 띠고 있지 않습니까? 이야기는 조금 모호하게 놔두고. 당시에도 그 일을 하면서 느꼈던 게, 이전부터 저는 ‘표현을 하는 거에 대한 여러 가지 기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패션 필름이 다행히도 저한테는 너무 감사했던 게, 영상적인 규격이나 포맷에 대한 장벽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만들었을 때 정서랑 느낌이 전달되면 좋은 필름이다’라고 해주는 장르여서. 그런 걸 매번 시도하다 보니까 ‘그러면 내가 모르는 분야에서도 재미있는 표현법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다가, 원래도 현대미술이나 현대무용을 좋아해서 그런 것들을 뮤직비디오나 패션 필름에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에 언노운 드레스 (제의)가 들어와서 마침 공부하고 있던 거를 보여드렸더니 너무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했는데, 사실 너무 얕게 알고 있을 때 하다 보니 너무 장르에 대한 존중이 없이 제가 하고 싶은 것만 갖다가 쓴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댄스 필름은 거의 안 찍었습니다. 그걸 연구하는 기간이 필요해서 많이 보러 다니고, 그러다가 “구애(求愛)”를 할 때쯤에 무용수 친구들도 조금 생기고, 무용 감독을 쓰면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무용 감독을 해 주는 친구한테도 ““구애(求愛)”라는 곡이 이런 곡인데 나는 뭔가 장면이나 서사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몸짓과 어떤 행위로 표현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본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걸 더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와중에 다이나믹 듀오 분들 회사에서 “예은 씨(핫펠트)가 나오니까 한번 만나서 얘기를 해 봐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근데 원초적인 건데, 그사이의 시기가 영상 자체에 대해 공부를 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2016, 2017년이. 아이돌 비디오를 찍고 난 후에, ‘내가 왜 이 장르를 좋아하는 걸까?’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면서 원래 좋아했던 영화도 감독 별로 다 다시 보고 영화 책도 엄청 많이 보고, 지금도 사실 봐도 봐도 끝이 없는데, 그러면서 어떤 메시지 혹은 주제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좀 더 담겨 있는 영화들을 제가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술이 멋있고 자극적이고 센 것보다는 이야기 하나가 주는 감동이, 이야기 하나가 주는 질문이 저한테 훨씬 더 큰 파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 너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쯤에 들어서 그때 저한테 생긴 두 가지 기술, 현대무용이랑 영화 두 개를 같이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은 씨에게 “저 요즘 이런 거 공부하고 있고 표현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괜찮으세요?”라고 했더니 자기도 그런 거 한번 해보고 싶다고 그랬죠.

사실은 “새 신발”이랑 한 곡이 더 있습니다. 두 곡의 이야기를 붙여서, “하나는 조금 표현적으로 나머지 하나는 이야기적으로 만들어서 두 개 이야기를 붙이면 좋지 않겠어요?”라고 얘기했더니 좋아하셨고, 같이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은 씨 얘기 중에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그러면 그걸 다른 식으로 풀어서 얘기하면 좋지 않을까요?”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로 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절대로 연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걸 가진 분들로 하고 싶었고, 외국 로케이션을 선택한 이유는 크게 이유는 없습니다. 사실 저 때까지만 해도 저는 패션 필름을 하다 보니까 외국 모델들이 훨씬 편했습니다. 그래서 외국인으로 표현하는 게 제가 조금 더 많은 앵글과 기법을 가진 것 같다고 얘기를 했더니 자기도 너무 해외 나가고 싶다고, 호의적으로 해 주셔서 이 노래랑 맞는 분위기의 나라를 고르다가 독일이 좋을 것 같아서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두 개가 그나마 제일 잘 접목했던 영상 중에, 그 연도에서도 제일 많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온더레코드(ONTHERECORD) 런칭 때 올라온 영상들도 인상적이었거든요.

네. 1415랑 예인(YEIN) 씨 꺼 말씀하시는 거죠? 그것도 좋아해 주시는 분이 있군요…(웃음) 그건 아마 예은씨 꺼 보고 연락을 주신 것 같았습니다. 아티스트 친구들 만나서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고, 어떤 음악을 앞으로 해나갈 것이고, 어떤 색깔을 가지고 싶은지에 대해서 많이 여쭤보고, 각각의 색깔이 다르신 것 같아서, 그건 제가 풀면 어떻겠냐고 얘기를 해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음악 잘하는 친구들이어서 저는 뭐 그냥 흉내만 낸 것 아닐까 싶습니다. (웃음)

네 팀의 색깔이 각각 선명하게 구별되기도 하고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백년해로도 그렇고 최근에는 백예린 님과 하셨던 “0310”, “포포”, 서사무엘의 “Costal Wave”까지 어떻게 보면 감독님께서 푸셨던 방법이 변주되면서 쭉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 것들은 호빈 님만 하실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그렇게 풀어나가실 때 어떤 것들을 제일 고민하시는지도 궁금했어요. 각 아티스트와 그들의 음악을 가지고 제작하실 때 어떤 걸 가장 고민하시는지?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저도 자잘하게 음악을 하기도 했었고, 음악을 만들 때 즉흥적일 때도 많지만 거의 다 백그라운드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음악이 탄생하기까지. 그래서 그걸 제일 먼저 궁금해합니다. “음악은 어쩌시다가 만드셨어요?”라는 질문을 거의 먼저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반대로 그런 배경지식 없이 음악을 들었을 때의 인상을 바로 말씀드리기도 하지만 거기에 이분의 배경까지 붙여넣으면 더 확장될 때가 있습니다. 그랬을 때 내가 듣는 인상이 대부분의 대중이 들었을 때의 인상일 거고, 설명을 들었을 때 덮이는 인상이 새롭게 보일 다각도의 인상일 텐데 이 두 개가 조금 더 넓게 보일 방법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금 더 활로가 생기는 편입니다. 그래서 담당자들이랑 얘기하기보다는 아티스트랑 직접 얘기하는 걸 더 선호하는 편이고, 근데 아티스트분들 중에서도 얘기를 별로 안 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그걸 물어가는 과정이 어렵다기보다는 저는 재미있어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많이 묻고… 요새는 많이들 비디오에도 넣고 하시는데, 숨겨 놓는 걸 좋아해서, 이분과 나의 커넥션이잖아요? “너와 내가 만나서 새로운 창작품이 나왔으니까, 우리 둘만 아는 걸 넣어주려고 해”라고 하면 자기 얘기도 하고 근래의 이야기도 해주시고, 왜 음악을 하게 됐는지 그리고 왜 이런 앨범을 기획했고 앞으로는 어떤 가사를 만들 거고…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이게 좀 더 넓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조금 숨겨 주면서 이야기를 확장해 가죠.

(제 작품에 관해) 좋게 말씀해주셨는데, 저는 요즘 제가 그러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요새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어쨌든 제 영상 자체가 좀 모호한 편이고 어렵다는 분도 꽤 많아서요. 제가 과도하게, 쓸데없이 세계관을 만들거나 캐릭터를 엄청 이상하게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뮤직비디오라는 플랫폼 안에서는 그걸 다 압축해야 하고, 소거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까 결국에는 설명하거나 감정을 끌어가는 영상의 플롯들을 다 없애는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애초에 의도한 것보다는 축소된 어떤 것들이 계속 나오더라고요. 물론 그 축소된 것 중에서 다행히 잘 버무려져서 좋게 전달될 때가 있고, 반대로 너무 어렵게 ‘뭔 얘기야? 봤는데 잘 모르겠는데?’라는 피드백들이 있어서 처음에는 그걸 즐기기도 했습니다. ‘찾아보면 다 있는데… 좀 잘 찾아봐 줘’ 이렇게. 당시만 해도 누군가와 교감을 하고 공감을 받는 거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땐 오로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표현하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의 온도나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그거에 대해서는 ‘이건 내가 시간이 지나면 더 폭을 넓힐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공감하는지에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결국 노래는 짧기 때문에, (뮤직비디오는) 앞에 말한 것처럼 어떤 상황과 시간, 많은 변수 안에서 많은 해석을 할 수 있는 유니크한 장르인 것 같습니다. 혼자 청음을 하면서 상상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미 음악이 그걸 대신해주는데 내가 굳이 이걸 확장해서 더 어렵게 만들어주면 보시는 분들이 더 어려워하시겠구나’. 그래서 그 많은, 거의 한 문단의 형식의 비디오들을 한 문장화 시키는 작업으로 많이 변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맨날 이만큼 적었다가 얘를 한 문장으로,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게끔 줄이려고 합니다.

사실 욕심은 정말로 길게, 장황하게 감정을 만들어가고 싶죠. 근데 이미 음악이 해주고 있는 역할이 많은데 제가 굳이 그걸 해치는 것 같아서 어떻게 보면 뒤늦게 뮤직비디오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생긴 것입니다. 좀 그런가요? 아주 예전에는 뮤직비디오를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음악을 표현한다는 건 너무 어려웠고, 감독 친구들이 다 똑같은 경험을 했겠지만, 그 노래를 계속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몇백 번 더 듣다 보면 더 힘들어질 때가 있고… 패션 필름 할 때 노래는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냥 재미있게, 음악 만드는 시간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아, 이것만이 내 살길이다’ 이러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그런 것조차도 못하니까, 어떤 한 곡을 뜯어서 분석하고 옆으로 보고 뒤로 보고 앞으로 보고 이런 작업이 당시에는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좀 재미있어졌습니다. 다시 ‘뮤직비디오가 이런 매력이 있구나’, 그래서 ‘아이돌(작업)도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요즘은 나쁜 의도만 없다면 누구의 음악이든지 재미있게 영상화시키고 시각화시키는 작업 자체가 너무나 매력적인 걸 내가 놓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근데 매번 어려운 건 어렵습니다. 한 문장으로 만드는 건 진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웃음) 오히려 옛날엔 시각으로 만드는, 움직이는 영상들이 더 쉽다면 쉬웠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설명을 안 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설명할 것들이 없었습니다. 이거에 이게 너무 어울릴 것 같아서, 그걸 좀 연구해서 나온 어떤 결과물들의 나열? 좋아 보이는 편집점에 대한 나열? 그런 것도 재미있었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제가 좀 욕심이 났나 봅니다. (웃음) 뭔가 감정을 서로 교감을 하고 싶고, ‘그걸 좀 더 해야 죽기 전에 이거보다 좀 더 이야기를 내가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욕심에 자꾸 시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때는 저도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뮤직비디오가 음악을 듣고 상상할 수 있는 폭을 제한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요. 감독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기존에 상상할 수 있는 생각의 여지가 감독님 덕분에 깊어지고 폭이 넓어진 것도 있거든요.

원래 그게 의도이긴 했습니다. (웃음) 다행히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거의 메인 질문에 해당하는 건데, 선우정아 님과 “쌤쌤’부터 “클래식”, “Fall Fall Fall”, “생애”, “To Zero”, “세레나데”, “도망가자”, “Shuthefxxup”, “멀티플레이어”까지 총 아홉 편을 하신 거 맞나요?

그랬나요? 아, 사실 몇 편은 비주얼라이저이긴 했습니다. 규모가 있는 뮤직비디오 편수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정아 씨 덕분에 좋은 작업을 제일 많이 했습니다.

최근에 그런 작업까지 포함하면 앨범에 수록된 곡 중에 영상을 가지고 있는 곡들이 한 아홉 곡 정도가 되더라고요. 정말 많은 걸 찍으셨잖아요? 밀릭(millic) 앨범을 하셨을 때도 영상을 많이 찍긴 하셨는데, 한 아티스트랑 이렇게 여러 영상을 만들고 호흡을 가져갈 때 가장 힘들거나 고민되는 부분이 있으셨다면? 아무래도 한 앨범에 있는 많은 곡을 다 다르게 풀어야 하는 거잖아요?

연작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걸 했던 분이 (선우)정아 씨. 원래는 자이언티가 연작을 제일 많이 했습니다. 공개가 되지 않은 게 많아서 그렇지. 밀릭은 사실 뮤직비디오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같이했었고, 뮤직비디오는 하나 나왔습니다. 그다음에 많이 한 게 비와이랑 작년에 세 개를 같이 했으니까 비와이가 되겠네요. 일단 자이언티 친구는 빼겠습니다. 너무 가까운 사이니까. 나머지 분들은 어떻게 보면 저도 그렇게 될 줄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일을 하게 된 거고, 그 일을 하다 보니 “한 번 더 해요”가 생긴 것입니다. 근데 저는 아까 말했듯이 무슨 일을 하든 장황하게 만들어 놓는 게 재미있습니다. 그런 장황한 것 중에 이만큼 못 쓴 게 있잖아요? 그럼 다음 곡에 이걸 조금 데리고 갈 수 있는 거죠. 그런 거에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이미 ‘세계관을 넓게 잡고 가야지’ 했던 것들, 비와이 작업물 같은 것들은 처음부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나중에 여기까지 갈 수 있으니까 장치를 미리미리 해 놓고 가자’ 이렇게 하고. 이걸 보는 사람들을 속이기도 했다가 감동을 주기도 했다가 멋있기도 했다가, 이렇게 하는 과정들이 저는 너무너무 재미있는 작업이었고.

정아 씨 같은 경우는 하다 보니까 더 확장된 건데, “구애(求愛)”에 등장하는 메인 댄서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 때 여자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 두 분이 원래 그냥 친한데, 그분들이 다 “백년해로”에 등장합니다. “고양이”는 고양이로 나오시고요. 댄서분은 어떻게 보면 약간 춤을 알려주는, 진혼곡 같은 걸 알려주는 선생님으로 나옵니다. 저승에 춤꾼처럼 나오는데, 크게 역할에 대한 그런 건 없었는데, 이 두 분을 쭉 가져와서 “백년해로”라는 이야기에다가 한 캐릭터 넣어주고 보니까 이분들의 의미가 조금 확장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나왔던 이영아라는 배우를 제가 다시 다른 비디오에 데리고 왔습니다. “남” 때도 그 고양이 친구가 장례식장 분위기로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댄서 친구랑 교감을 하고. 그래서 그 진혼곡이 좀 확장판이었고, 여기까지 하고 이 두 분은 많이 나와서 잠깐 멈춰 두었습니다. 아직 이분들이 또 나와야 할 이야기가 생각이 안 나서. 아무튼 ‘만약에 영아 씨가 안 죽고 프런트에 없었다면, 현세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라고 했을 때,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봐야지 해서 가지고 왔고. 사실 영아 씨는 다른 비디오에서 그걸 가져온 적이 있습니다. 룸306(Room306)이라는 친구들이 있는데 거기 영아 씨가 한 번 나와요. 그게 현세의 이야기고, 딸로 나옵니다.

아직은 미공개인데, 정아 씨 노래 중에 한 곡이 있는데 거기 주인공으로 이 딸이 다시 나옵니다. 제 계획은 영아 씨랑 이번에 “도망가자”에 나왔던 서영화 배우님이랑 같이 나오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선우정아 월드를 넓혀가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정아 씨도 재미있어하고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에서도 재미있어하시고. 정아 씨가 정말 고민을 많이 하고 곡을 만드시는 분인데 사람들은 그냥 평면적으로 듣지 않습니까? 그걸 좀 입체적으로 들었으면 해서 했던 제일 첫 큰 작업이 “쌤쌤”이었습니다. ‘이번엔 제대로 한번 준비를 해서 하자’. 사실 제일 먼저 말해야 했던 부분이, 뭐가 힘들었는지 물어보셨잖아요? 사실 셋 다 돈이 별로 없는 친구들이었습니다. 비와이가 그나마 제일 많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 거의 1인 아티스트 기반의 비용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어떻게 쪼개서 이 많은 비디오를 헤쳐 나가는가’에 대한 고민이 제일 컸지 사실 작업 자체는 저는 너무너무 또 하고 싶고, 재미있어하는 작업이죠. 사실 (백)예린 씨 것도 원래는 편 수가 더 많습니다. 지금 공개된 두 곡 말고도 원래는 더 찍어 왔습니다. 근데 일단 그렇게 무거운 비디오는 아니라서 ‘이건 시기적으로 조금 뒤에 내자’. 그렇게 조금씩 이 친구의 음악을 더 넓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욕심이기도 합니다. 일할 게 많으면 저는 재미있게 하는 편이라서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종사자 입장에서 호빈 감독님의 작품 중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프로덕션의 규모가 안 보인다는 것 같았어요.

(규모가) 작았다, 컸다 해서요? (웃음)

그런 것도 있고, 그래도 종사자들이 일하다 보면 ‘어느 정도 품이 들었겠구나’ 하는 게 보이잖아요? 근데 호빈 감독님 작품을 보면 항상 가늠이 안 되더라고요.

(돈은) 늘 없습니다. (웃음) 없거나 다 쓰거나. (예산을 받으면) 다 쓰려고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제 제가 다 쓰면 모든 스태프가 다 힘들어해서 절약해서 하려고 하지만.

그렇죠. 사실 그런 부분은 모든 분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하니까요. 유독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소속 가수분들과도 협업을 많이 해주셨는데, 포크라노스에서 나오는 작품들하고도 인연이 있으셔서 최근에는 공(gong)님이 저희랑 같이하게 되셨어요. 앞으로 나올 것부터 하시기로 했는데, 공 님과는 다른 형태의 협업이기도 하고 규모가 있다면 규모가 있는 작업이었어요.

그건 사연이 좀 많습니다. 3년 전에 찍은 것입니다. 엄청 예전에 찍은 작업인데, 공 형님 인생 역경이 많아서 늦게 나오게 된 거라서 저도 참 속상한 게 있습니다.

심지어는 곡도 아직 한참 많이 가지고 계시거든요.

엄청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그 형도 음악밖에 안 하는 사람이라. 저는 고향이 부산인데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는데, 어떻게 보면 서울 친구들이라고 보는 친구 중에 제일 오래된 형 중의 한 명입니다. 그때는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시기도 했었고. 힙합이라는 장르를 알려준 형이었고, 잘 됐으면 좋겠죠.

이제 인터뷰가 막바지입니다. 최근 구인을 올리셨어요. 조금 더 크게 앞으로 가시기 위한 건가요?

저는 그냥 여기가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이것도 사실 평생에 가장 무리를 해서 저한테 쓰는 게 스튜디오를 가진다는 거. 그전까지는 스튜디오도 없었고 애들이랑 공장 같은 데에서 같이 지내고 이랬었는데, 애들이 다 나이가 들면서 결혼을 많이 해서, “우리 좋을 때 헤어지자. 어차피 친구들처럼 지내면 되니까”. 그래서 친구들의 규모를 늘리고 싶은 생각은 원래도 없었고 아까도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말도 안 되는 미술감독을 데리고 있던 시절이 지나고 분야가 좀 더 명확하고 일을 분배해줄 수 있고 서로의 역할을 조정할 수 있는 형태의 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PD도 뽑고, 조감독은 원래 있고, 조연출도 원래 있었는데 이 친구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해서 조연출 한 명 다시 뽑아야겠다 싶어서 그 정도로 올린 것입니다. 제 비디오를 좋게 봐주셨다고 하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대부분 저는 사람이 주제가 됩니다. 전체 비디오가 다 사람이 주제고, 제 모든 관심사는 사람이거든요. 어떤 친구는 자연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는데 저는 사람이 무조건 일차적인 관심사라서 오히려 사람이 제일 어렵습니다. 누군가 함께 있는 거, 함께 일하는 거… 그런 것들이 사실 어려운 성격입니다. 그래서 볼륨을 늘릴 생각은 없습니다. 주변에 친구 감독들 보면 혼자 일하는 친구들도 꽤 많습니다. 아예 혼자 활동하시거나 한 명 정도 데리고 하시는데, 그게 너무 부럽다기보다는 그런 게 성격상 맞는데 또 같이 있으면, 에너지가 생기고 행복해질 때가 있습니다. (웃음)

필름 메이커스에도 배우 모집 공고를 내시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막연한 환상인데 감독님은 다른 노하우가 있으신 줄 알았어요.

노하우는 없습니다. 제가 올린 건 아니고 아마 저희 조감독이 찾을 때 급하니까 올린 것 같습니다. 정말 여러 형태로 사람을 찾고 있긴 합니다. 요새는 좀 고민입니다. 사실 좀 욕심이지만 좋은 기회로 작년 말쯤에는 연기자분들과 작업을 몇 번 했습니다. 사실은 너무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못한 분들에게 말도 안 되는 연기 디렉팅을 하면서 만들다 보니까 누가 봐도 연기적인 게 부족하고, 그래서 그런 걸 안 보이게끔 찍다 보니까 영상 자체가 조금 건조하거나 그걸 숨기기 위한 장치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법만 연구가 되고, 오히려 주변에 영화 하는 친구들 만나보면 연기로 어떻게 더 감정을 살릴지 연구를 해야 하는데 사실 그게 무섭기도 하고. 그런 배우들을 못 쓰니까.

뮤직비디오라는 장르 자체가 배우분들이 별로 안 하고 싶어 하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미지를 소비하는 장르이니까. 근데 정말로 시나리오가 좋고 음악이 좋으면 하고 싶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런 부분을 좀 더 연구하고 공부해서 이분들을 설득해서 작업해 봐야지’, 그리고 ‘그게 좀 더 확장되면 재미있는, 쓰레기라도 괜찮으니, 음악 영화 같은 것도 죽기 전에 한 번 만들어 봐야지’ 이런 꿈 같지 않은 꿈이 있어서 했는데 너무 행복했습니다. 제가 이만한 세계관을 만들어 놨는데 그분이 이 세계에 들어가 주셔서 연기해 주시니까 행복했어요. 그거는 아직도 기억이 많이 나서 또 언젠가 그런 기회가 생기면 계속 그런 작업을 조금씩 해 보고 싶은데, 그래도 이 비디오만의 특별함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연기할 때 ‘이 장르도 이런 매력이 있구나’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기도 하고, 그거에 관해 설명하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그냥 뭐 이미지 찍고 가면 되지’ 이런 분들이 꽤, 반 이상 그렇게 오십니다. 그러면 캐릭터 설명을 주구장창 해도 결국엔 그 감정을 이끌어 나가는 시간이 뮤직비디오는 안 되고, 찍는 순서도 드라마나 영화처럼 못 찍게 됩니다. 저희는 시간이 타이트하니까 힘들어하시죠. 감정 내는 기계처럼 일하시니까. 그래서 최근에는 ‘이런 걸 어떻게 하면 없앨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감독님 작품을 관심 있게 봐주시는 분들께 짧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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