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밤

  • Artist 푸르내
  • Release2016.03.03.
  • Genre Rock
  • Label푸르내
  • FormatAlbum
  • CountryKorea

1. 겨울남자
2. 유령
3. 아주 먼 곳
4. 유소년의 비애
5. 밤공기
6. 야생의 밤
7. 꽃
8. 마음
9. 사탄

 


낯설지만 친근하게 – 푸르내 1집 <야생의 밤>

2013년에 결성한 밴드 푸르내는 2016년이 되어서야 그들의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하기에 이른다. ‘얼마나 앨범에 정성을 들였길래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그들의 1집 <야생의 밤>을 레코드 샵에서 집어 들었다. 때는 2016년 3월 3일이었다. 추위가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지만 거리에 은은하게 피어나는 화사함이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봄과 함께 나타난 푸르내의 첫 앨범을 집에 돌아와서 플레이어에 걸었을 때 첫 곡 ‘겨울남자’의 마이너 기타리프가 시작되었다. 봄에 찾아온 겨울남자라… 이 역설적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려던 찰나에 곡은 따뜻한 기타연주로 채워지고 있었다. ‘겨울남자’는 이러한 역설적 상황을 온몸으로 표현하려는 듯이 차가움과 따뜻함을 곡 전체에 교차시키고 있다. “언젠가 나에게 당신의 진실을 말해줄 사람이 나타나 준다면…” 진실을 찾아 고독하게 헤매는 인간의 심정을 담고 싶었던 것일까. 의문을 던지는 이 가사가 머리 속을 맴돌고 있을 때 다음 곡 ‘유령’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령’의 매력은 기타, 베이스, 드럼의 쫀쫀한 리듬 워크와 그 위에서 노니는 리드기타의 하늘거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에서 가장 신나는 곡인 이 노래를 듣다 보니 어느새 수줍게 어깨를 들썩이는 내 몸이 유리창에 비치고 있었다.

다음 트랙 ‘아주 먼 곳’은 80년대 가요의 절제된 감수성을 전달하는 아련한 분위기가 가득한 곡이다. “언젠가는 나도 남겨질 테니”라는 마지막 가사는 이 노래의 감성 전체를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이 쓸쓸한 가사를 내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덤덤하고 건조하게 노래를 하는 보컬을 듣고 있으니 그의 눈빛이 문득 궁금해졌다. 이 궁금함을 뒤로하고 이어지는 ‘유소년의 비애’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도 어떤 쓸쓸함이 은은하게 묻어나는 곡이다. 쓸쓸함은 푸르내의 뿌리인 것일까…? 하나의 감성으로 이 밴드의 느낌을 확정 지을 수는 없지만, 쓸쓸함은 푸르내가 가진 대표적인 감성들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감정의 흐름을 끊기지 않고 표현하는 것만 같은 리드기타가 수를 놓는 ‘유소년의 비애’를 지나면 더욱 더 느리고 잔잔한 넘버인 ‘밤공기’가 이어진다. 마치 어두운 지하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 곡을 들으면서 나는 그 특유의 차가움에 등골이 서늘해져 창문이 열렸는지 몇 번을 확인했다. 창문은 닫혀있었지만 방안은 온통 밤공기로 가득했다. 이 앨범으로 인해 봄이 몇 달 미뤄질 것만 같았다.

다음 트랙은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었던 ‘야생의 밤’이다. 이 뭔가 신남과 차분함 사이에서 달리는 느낌이 이상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욕망에 이끌려 거리를 방황하는 자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가사는 또 그렇게 건조한 목소리에 실려서 오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다시 야생처럼 이름 없이…” 그렇다. 야생엔 이름이 없다. 야생이라고 하니 또 야생화가 생각이 나는데 때마침 다음 곡이 ‘꽃’이다. 상대적으로 경쾌하게 시작하는 이 곡은 곡 후반부에서 쓸쓸한 감정을 보이면서 마무리된다. 여러 감수성을 한 곡에 잘 담아내는 푸르내의 능력에 또 한번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마음’은 푸르내의 첫 싱글 “시장속으로”에도 실렸던 곡인데 이 앨범에는 좀 더 빠르게 재녹음한 버전이 실려 있다. 한층 업된 분위기의 드러밍과 후렴구에 삽입된 키보드 사운드는 흐물흐물 춤을 추기에 정말 적격이었다. 흥분된 후주가 끝나고 나니 이 앨범의 마지막 연주곡 ‘사탄’이 흘러나왔다. 이 곡을 들으면서 나는 앨범 커버를 쳐다봤다. 한결 우아한 느낌을 주는 앨범 커버와 시크한 사악함이 배어있는 사탄을 함께 감상하고 있자니 모순된 감수성이 이제 더 이상 모순이 아니라 야릇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렇듯 2016년 봄에 찾아온 푸르내의 첫 앨범은 뭔가 모순된 감성을 한 곳에 어우러지게 하는 야릇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차갑기도 하면서 따뜻하고, 신나기도 하면서 차분한 그 오묘함. 이러한 푸르내만의 특이성은 마치 리스너들과 밀당을 하는 듯 하다. 다시 말해, 친근하다고 느끼는 순간 낯설어지고, 낯설다고 생각하면 또 어느새 친근하게 손을 흔드는 음악. 푸르내는 그 대립의 한 가운데를 자극하는 실험을 행하고 있었다. 봄손님 푸르내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개발될 내 감성의 한 구석에 단단히 자리를 잡아버렸다.

 

-Credits-
all song written, arranged, performed, recorded, mixed, mastered by 푸르내
(except drum played by 권우석)
recorded, mixed at 서강연습실, 다솜빌라
cover art, illustrations by 기린
designed by 김이화
promotion by 이난수(useless prec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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