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VC

1. PVC
2. 사랑열차
3. 그리스도

 


 

정제되지 않은 내밀한 서스펜스

밴드 푸르내의 김성준이 선보이는 첫 솔로 싱글 [PVC]

 

현대인들이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물질들 중 하나가 플라스틱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볼펜이나 휴대전화기, 컴퓨터 등 온갖 물건들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플라스틱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PVC가 그 중 하나다. PVC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보통 파이프를 많이 떠올린다. 하지만 PVC가 파이프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면 PVC는 과거 장난감 재료로 사용되었지만, 간과 신장에 손상을 입힌다는 사실이 밝혀져 아이들과의 접촉 빈도가 높은 물건에 사용하는 것이 규제되어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즉 PVC는 장난감들의 옷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옷이 PVC라면?

 

김성준의 싱글 [PVC]의 첫 곡 ‘PVC’는 화자가 과거 연인과의 추억 속에서 난데없이 PVC를 연상한다는 이야기의 노래다. 과거 연인의 기억 속으로 찾아 들어가지만 정작 그곳에 연인의 모습은 안 보이고 연인이 입고 있던 PVC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을 본 화자는 연인과의 기억을 매개해주는 PVC를 부르짖는다. “니가 입고 있던 PVC”는 현재의 화자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PVC로 만들어진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포근해지듯, 연인과의 과거가 나에게 포근하게 다가온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 과거는 PVC처럼 간과 신장에 손상을 줄 정도로 독성을 품고 있다는 것일까? 판단은 듣는 사람의 몫이다. 어쨌든 이 노래는 플라스틱 같은 딱딱하고 건조한 기타 사운드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반면 멜로디 라인은 은은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사운드의 이런 이중성은 PVC가 은유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어지는 곡 ‘사랑열차’는 90년대 펑크/얼터너티브를 연상시키는 강력하고 지저분한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곡이다. 화자는 열차 타고 자꾸 어디 간다고 하다가 육신 빼고 다 죽어간다고 울부짖는다. 희망과 절망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가사는 지저분한 기타 리프 위에서 먼지처럼 떠다닌다. 이 열차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꽃길? 아니면 황천길?

 

마지막 곡 ‘그리스도’에서 김성준은 차분하게 진행되는 드럼 비트와 자글거리는 기타 리프 위에서 성스럽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 세속의 인간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그리스도를 애도하다가 결국 인간에게 이용 계속 당하라고 냉소해버리는 이 불길한 전개. 그 와중에 드럼은 심벌 한 번 치지 않고 묵묵히 달린다. 중간중간 불현듯 나타나는 키보드 음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복음의 소화불량을 유발할 것만 같다.

 

밴드가 쉬는 기간 동안 각 멤버들이 개인적으로 만들어내는 작업물은 밴드를 할 때는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그 멤버의 개인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김성준의 첫 솔로 작업물인 [PVC]는 푸르내에서 그가 보여줬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곡들을 담고 있다. 물론 푸르내에서도 건조하고 냉소적인 그의 모습이 어느 정도 나타나긴 했으나, [PVC]에서는 그런 면들이 다른 색깔로 분출되고 있다. 드럼을 제외한 모든 파트가 홈레코딩으로 진행된 [PVC]는 정리되지 않은 다소 거친 모습으로 전개되긴 하지만, 그만큼 김성준의 정제되지 않은 내밀한 속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2018년은 황금개의 해. 개띠 김성준의 첫 솔로 싱글 [PVC]가 주는 서스펜스를 즐기면서 무술년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Credits-

All songs written, played, recorded, mixed, mastered by 김성준

Except all drums played and recorded by 천용산 in Flying Carpet Studio

Album designed by 김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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