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을 기본으로 하는 비교적 심플한 밴드 편성으로 레코딩한 <로맨스>의 전반적인 사운드는 확실히 좀 더 단출하다. 하지만 그 단출함 덕분에 이 앨범 속 김사월은 이전보다 훨씬 가까운 존재로 여겨지고, 특유의 청아한 음성으로 나지막이 부르는, 연애의 생생한 순간과 감정들을 담은 모든 노랫말들은 그래서 한층 생명력을 얻는다. 기꺼이 자신의 개인사를 드러낸 그녀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청자들 개개인의 경험, 속사정들과 자연스레 포개진다.”
김사월
로맨스
2018.09.16.
비가 추적추적 내린 지난 일요일의 홍대, 잔잔한 노래 몇 곡이 이어 흐르던 지하 공연장의 노래 소리가 잦아들자 얼마간의 적막이 찾아왔다. 이윽고 서서히 무대의 막이 오르고 은은한 조명 아래 등장한, 긴 머리에 버건디색 베레모와 검은 상의, 겨자색의 품이 낙낙한 코듀로이 팬츠를 조화롭게 입어 마치 70년대의 프랑스 어딘가에서 온 것만 같은 그녀의 투명한 목소리가 적막을 깨고 노래를 시작하자, 어째서일까. 종일 내린 비 탓에 조금은 눅눅하게 느껴졌던 공기의 질감이 어쩐지 조금 바뀐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시점의 어느 비 내리는 일요일에 김사월은 돌아왔다.
사랑은, 연애는, 이별은 언제나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하지만 동시에 가장 보편적이기도 한 무엇이다. 그 양가적 속성 덕분에 ‘로맨스’는 언제나 세상 모든 크고 작은 이야기들의 시작이자 끝이었고 동시에 모든 예술가들의 창작의 모티브이자 원동력, 그리고 확고한 주제였다.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소설, 시, 그림, 그리고 노래들은 저마다 들뜬 감정으로 사랑을 찬양하고, 또 애증의 불구덩이에 이성을 던져 넣은 채 사랑을 증오하기도 했다. 사랑, 이 달고도 쓴 사랑이야말로 어쩌면 삶의 이유, 혹은 본질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첫 앨범 <수잔> 이후 3년, 김사월의 두 번째 앨범 <로맨스>는 제목 그대로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나’-김사월 그 자신이거나 혹은 전작의 주인공 ‘수잔’일지도 모르는 그녀-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나누고(혹은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종국엔 헤어지는, 그렇게 아주 보편적인 사랑의 모습을 큰 얼개로 하는 열두 개의 노래들은 그녀 스스로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연애 편지, 혹은 일기처럼 아주 구체적이고 그래서 더 생생하다. 그 사랑은 뜨겁고, 낭만적이고, 마냥 달콤하지만 동시에 한없이 불완전하다. 사랑으로 채워지고, 채워져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솔직한 욕망은 온전히 충족되지 못해 차츰 결핍되고, 그래서 이 사랑은 점점 삐걱이다가 끝끝내 어긋나고야 만다.
전작 <수잔>이 풍부한 현악, 관악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동반한 세심한 편곡으로 다분히 영화적인 풍경을 그려냈던 데 비해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을 기본으로 하는 비교적 심플한 밴드 편성으로 레코딩한 <로맨스>의 전반적인 사운드는 확실히 좀 더 단출하다. 하지만 그 단출함 덕분에 이 앨범 속 김사월은 이전보다 훨씬 가까운 존재로 여겨지고, 특유의 청아한 음성으로 나지막이 부르는, 연애의 생생한 순간과 감정들을 담은 모든 노랫말들은 그래서 한층 생명력을 얻는다. 기꺼이 자신의 개인사를 드러낸 그녀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청자들 개개인의 경험, 속사정들과 자연스레 포개진다.
전반적으로 포크를 음악적 바탕으로 두고 있는 것은 여전하지만 이전의 김사월과는 다른 모습들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앨범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넘실대는 오르간이 70년대 가요의 밴드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옆’은 그간 그녀의 그 어떤 노래들보다도 댄서블하고 ‘세상에게’는 다분히 ‘팝’적인 접근을 보여주는 곡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제일 많이 듣고 있는 곡인 ‘오렌지’는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든 보싸노바 넘버로 그녀의 투명한 목소리가 사실 보싸에도 아주 제격이라는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게 한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이야말로 김사월의 노래를 듣기에 딱 좋은 계절인 것 같다.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