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넘넘 (numnum) [It’s a TRAP!]

발행일자 | 2018-10-17

 

“뉴웨이브적인 신스 사운드와 록킹한 밴드 사운드가 공존하는 이 강렬하고 유쾌한 댄스뮤직은 사운드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하지만 역시나 여기의 이윤정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더해졌을 때 ‘넘넘’의 음악으로서 완성되고 비로소 밴드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넘넘 (numnum)
It’s a TRAP!
2018.10.11.

 

‘아이콘’이 되어버리는 어떤 이들이 있다. 확고한 아우라와 자신만의 세계로 ‘상징’이 되고 ‘우상’이 되는, 시대를 초월해 언제까지나 그렇게 기억되는 존재들 말이다. 이들은 대체로 후천적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기보다 애초에 남들과는 다른 감각과 시선을 지니고 있던, 태생부터 ‘One of a kind’인 경우가 더 많은 거 같다. (물론 이런 감각에 후천적 노력들이 더해졌겠지만) 한국 대중음악 역사 속의 아이코닉한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윤복희, 나훈아, 김창완, 심수봉, 조용필, 유재하, 서태지, 신해철, 엄정화, GD…적잖은 이름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여기에서 결코 이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이윤정’이다.

 

1995년, 스무살에 처음 들었던 ‘삐삐밴드’의 앨범 <문화혁명>을 통해 접한 이윤정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빨간 펑크 머리에 펑크 의상을 입은 그녀가 “딸기가 좋아”라며 악을 써대는 그 모습은 여전히 모순적 권위들로 가득했던 90년대 한국에서, 혹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파격적인, 혹은 인상적인 순간 중 하나 아니었을까? 이때부터 그녀의 이미지는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기믹을 연기하는 것이라기보다 규격, 획일화, 시스템에서 탈피해 그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역시나. 그녀의 파격은 삐삐밴드를 떠난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본격적으로 전자음악으로 노선을 선회한 이윤정의 첫 솔로 앨범 <진화>는 여전히 이윤정스러우면서도 비슷한 시기에 ‘테크노’를 표방하며 무대 위에서 신나게 살풀이(?)를 해대던 이정현, 채정안 등의 음악과는 감히 비교 불가능한 음악적 성취를 담은, 한국 전자음악의 중요한 기록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고 미술작가 ‘이현준’과의 프로젝트인 일명 ‘토털 아트 퍼포먼스’팀 ‘EE’ 역시 꾸준히 실험적이고도 흥미러운 음악과 비주얼을 선보이며 파격적인 행보를 지속해왔다. (2015년에는 뜬금없이 ‘삐삐밴드’가 재결합, EP를 발매하기도 했는데 이는 밴드의 20주년을 기념하는 이벤트였다)

 

 

어쨌거나 그간의 이 모든 행보를 통해 감지되는 ‘이윤정’이라는 음악가(라기보단 그냥 ‘예술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지만)의 특별함은 ‘파격’, 심지어는 ‘혁명’의 범주에 들어갈 만한 것들을 그저 ‘재미로’ 뚝딱 해버리는 것 같은 특유의 쿨한(?) 태도에 있다. 삐삐밴드의 ‘문화혁명’에서 시작되어 전자음악가 이윤정으로의 ‘진화’를 거쳐 현재의 EE로 오는 모든 과정 속 그녀가 세상에 보여준 모습들은 대부분 당대의 보편적 감각이나 인식들을 훌쩍 뛰어넘는 다분히 문제적인 것들이었건만 정작 그녀에게 이 모든 것들은 그저 ‘흥미 위주의 난입’인 것만 같았고 그래서 내 머릿속 이윤정은 늘 즐거운 혁명가이자 매드 싸이언티스트, 그리고 ‘아이콘’이었다.

 

 

그 이윤정이 새로운 밴드를 결성했다. 밴드의 이름은 ‘넘넘 (numnum)’, 본래 ‘베리베리 (veryvery)’였지만 비슷한 이름의 보이그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꿨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넘넘’의 의미는 충분히 짐작 가능할 것 같다) 프론트우먼인 이윤정 본인과 밴드 ‘뷰티핸섬’ 출신의 베이시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이재(베이스), 밴드 ‘LEMON’의 프로듀서이자 연주자인 승혁(기타/프로그래밍), 그리고 드러머 도연의 4인조인 이 밴드가 무려 ‘붕가붕가레코드’를 통해 발표한 첫 싱글 ‘Its’ a Trap’은 여전히 ‘흥미 위주의 난입’을 하는 이윤정을 만날 수 있어 반갑고 또 기쁘다. 뉴웨이브적인 신스 사운드와 록킹한 밴드 사운드가 공존하는 이 강렬하고 유쾌한 댄스뮤직은 사운드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하지만 역시나 여기의 이윤정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더해졌을 때 ‘넘넘’의 음악으로서 완성되고 비로소 밴드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밴드 스스로 “이제 시작이라 무엇을 할 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만들 예정”이라 밝혔듯 이 밴드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는 알 수 없지만, 철저하게 ‘재미’를 추구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재미가 결코 평범한 방법으로 구현되지는 않을 거라는 점만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사실 지극히도 당연한 짐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그 ‘이윤정’이 만든 밴드니까.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