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의 추천의 추천
포크라노스가 추천하는 아티스트들이 추천하는 추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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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을 첫 싱글 ‘불꽃들이 터지면’을 시작으로 꾸준히 싱글을 공개 중인 싱어송라이터 탐구생활이 포크라노스로 추천곡을 보내왔습니다. 탐구생활이 꾸준히 그려내고 있는 일상의 소소한 면모에서 전혀 예상치 못 했던 추천곡들과 함께, 음악이 전하는 즐거움을 ‘추천의 추천의 추천’에서 만나시길 바랍니다.
탐구생활
탐구생활 / 점과 선 (2018.10.25)
특유의 몽환적 무드의 크랜필드와는 달리, 우리가 발 디딘 현실의 언어와 표현들로 무겁지 않은 기타 팝을 선보이고 있는 탐구생활은 일상의 단면들을 부지런히 음악으로 그려내는 중입니다. 거창한 인생을 노래하진 않지만, 행복, 사랑, 사람을 담은 탐구생활의 음악엔 인생에서 꼭 필요한 요소는 다 담겨있는 듯합니다. 그것도 담백하게요.
가벼운 미소가 지어지는 일상의 사진을 보는 듯한 탐구생활이지만, 보내온 추천곡들 곳곳엔 의외성이 가득합니다. 이상요상한 신예 래퍼(!)를 시작으로 70년대의 이탈리아 영화 음악, 거기에다 거대한 야외 파티가 떠오르는 슈퍼스타 DJ까지, 인생만큼 예측하기 힘든 면모를 드러내는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탐구생활이 전하는 즐거움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추천의 추천의 추천: 탐구생활이 추천합니다.
Hobo Johnson – Peach Scone
이제는 국내에서도 제법 유명해진 ‘NPR Tiny Desk Live’의 2018 contest 영상을 통해 알려진 미국의 신예 래퍼. 하지만 단지 래퍼라고 하기에는 그 포지션이 너무도 독특하다. 동네 친구들만 모아 급조한 듯한 밴드 러브메이커스(The Lovemakers)의 미니멀한 반주에 맞춰 쏟아내는 이상요상한 라이밍과 맛깔 나는 보컬 톤,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한 표정과 액션들이 기분 좋은 혼란의 사운드를 만든다. 음원도 준수하지만, 라이브가 워낙 매력적이라 계속해서 영상을 보게 된다.
Armando Trovajoli – Dramma della gelosia
이탈리아 영화음악의 거장 아르만도 트로바졸리가 작곡한 1970년작 영화 ‘Dramma della gelosia(질투의 드라마)’ 메인 테마. 다른 세계와 시대의 음악에서는 당연하게도 다른 풍경이 느껴지는데 가끔 그런 음악에 푹 빠지는 일은 너무도 즐겁다. ‘질투의 드라마’라는 제목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천진난만하고 낭만적이다.
The Vaselines – You Think You’re a Man
거칠게 보이려 애쓰는 듯한(하지만 잘 되지는 않는) 마이너 풍의 전주가 끝나면 밝고 귀여운 멜로디들이 쏟아진다. 상반되는 곡의 진행이 자신이 어른이라 생각하는 애 같은 남자에 대한 가사를 더 재미있게 들리게 한다. ‘남자는 10살 이후로는 전혀 자라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The Magnetic Fields – The Book of Love
밴드가 99년에 발표한 [69 Love Songs]는 제목 그대로 69곡의 사랑 노래가 담긴(CD 한 장에 23곡씩 3CD) 무지막지한 앨범이다. 이 앨범을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사준 적이 있었는데 얼마 후 다시 만났을 때, 그가 가장 좋다고 했던 곡이 바로 ‘The Book Of Love’였다. 나는 평소 앨범에서 귀담아듣지 않았던 곡인데 새롭게 들려왔다. 중후한 목소리로 낭만과 희극을 오가는 가사가 근사하다.
Fatboy Slim – The Rockafeller Skank
그냥 이런 음악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설레고 신난다. 혹자는 이 곡을 들으면 98 프랑스 월드컵 하이라이트 영상이 떠오른다고 하지만, 나는 그때 축구를 보지 않아서 이 끝내주는 곡을 축구에 대한 연상 없이 실로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 음악은 정말 여러 방식으로 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하는 4분 하이라이트.
Nick Drake – Know
기타 연주만 생각나고 제목이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아 모처럼 닉 드레이크 전집을 뒤졌다. 이 노래는 그런 노래다. 어쿠스틱 기타 4, 5번 줄로만 연주되는 단 4개의 음 위에 허밍과 가사 역시 반복될 뿐이다. 노래가 끝나면 ‘내가 뭘 들은 거지’ 싶으면서도 내가 그 순간에 깊이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하게 된다. 이 노래는 그런 노래다.
Bill Evans – Come Rain or Come Shine
러닝 중에는 재즈를 듣지 않는다. 달릴 때 몸의 일정한 리듬에 방해가 되어 상대적으로 더 피로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좀 다르다. 가사 없이 연주로만 채워진 재즈 앨범은 글을 쓰는데 필요한 유연한 사고에 도움을 준다. 최근에는 음악보다 글을 더 자주 쓰고 있어서 그런지 [Portrait In Jazz(1960)]의 첫 트랙인 이 곡을 들으면 당장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진다. 이 글 역시 그렇게 쓰여진 글이다.
Editor / 맹선호
sunho@poclan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