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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ALBUM INTERVIEW] 애리의 처음, [SEEDS]

발행일자 | 2020-02-13

애리의 첫 번째 앨범
/ ” SEEDS “

“나는 언제까지 이걸 반복하고 사려나?” 우리의 다음은 처음을 반복한 형태일까, 혹은 처음과는 전혀 다른 형태일까,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초등학교 때 몰래 적어두었던 “내 꿈은 가수”라는 글을, 5년 후에는 기억도 못 하다가 10년 후에는 실천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원하는 모습을 구현해내기 위해, 자신의 처음과 다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가 있다. 2018년 10월 발매된 ‘애리’의 첫 번째 앨범 [SEEDS]의 이야기다.


Q. 헬로루키 대상 축하드려요. 소감이 어때요?

최대한 제 음악을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경연에 참여했어요. 이제까지 지원해 온 일들이 많은데, 서류심사를 통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그 사실만으로 굉장히 기뻤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예선-본선-결선까지 지나왔네요. 힘든 일도 있었지만 너무 재미있었어요. 특히 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여러 사람의 열정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대단하다, 즐겁다라는 감정들이 주를 이루던 시간이었어요.

 

[2019 상반기 헬로루키 오디션] 애리(AIRY) – 어젯밤

Q.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을 땐 어땠어요?

생각도 못 한 일이었죠. 정말 많은 힘이 됐어요. 그전까지는 인정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거든요. 스스로도 부족함을 느꼈고, 무시당하는 일도 많았고요. 슬프고, 화나는 감정들이 일반적인 상태였어요. 안 좋은 생각이지만, “내가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갈망을 갖던 때가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정말 큰 힘이 됐어요.

Q. ‘루키’ ‘신인’이라는 단어들이 명확한 의미를 가지잖아요. 이 단어들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궁금해요.

기분 좋으면서도 동시에 불안해요. 다음 작업에 대한 부담일 수도 있고요. 작년에 [SEEDS] 앨범이 많은 주목을 받았잖아요. “너무 좋아요, 이 스타일을 버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감사하면서도 많은 고민이 들더라고요. 이 스타일도 결국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고,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의 일부일 뿐인데, 어떻게 하면 좋지? 다음 작품에서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면 실망했다는 얘기를 듣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어요.

Photo taken with Focos

Q.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비 오는 날 씨앗으로 틔우는 여정’에서 다른 스타일에 대한 여지가 보이던 걸요.

네, 일부러 마지막 트랙으로 넣었어요. 앞의 네 곡과 느낌이 사뭇 다르죠. 다른 곡들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는데, 이 곡은 휴대폰으로 녹음했어요. 비 내리는 날, 조율 안 된 통기타 들고, 두세 번 만에 녹음한 곡이에요. 정말 즉흥적이었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나는 언제까지 이걸 반복하고 사려나”라는 가사가 있어요. 저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에요. 모르니까 궁금하고요. 나의 다음은 지금과 유사할까? 전혀 다른 모습이려나? 하는 기대가 있어요. 기대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저의 다음을 준비하고 싶어서 이 질문을 앨범의 끝에 실었어요.

Q. 그 질문의 대상일 수 있는 다음 작업물이, 1월 1일에 발매를 앞두고 있어요. 어떤 곡이에요?

‘신세계’라는 곡이에요. 얘기하면서 보니까, 곡 제목이 1월 1일이라는 날짜와 잘 어울리네요. 살아가면서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과 만나고, 교류하잖아요. 자연스레 그 존재와 함께 하는 더 넓은 세계를 접하게 되고요. 그 과정에서 점점 ‘확장되는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애리 [SEEDS]

Q. [SEEDS]는 어떤 앨범이에요?

여러 의미로 눈물 나는 앨범이에요. 사실 평소에도 눈물이 많은 편이긴 해요. 앨범 발매되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너무 행복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해요. 첫 앨범이다 보니까 여기까지 지내온 시간과 노력한 일들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생각나요. 너무 많은 것들이 떠오르니까, 한편으로는 훌훌 떠나버리고 싶기도 하고요.

Q. 작업하면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어요?

‘에덴’이라는 곡을 작업할 때였어요. 믹싱 과정에서 주절거리는 듯한 독백을 넣고 싶었어요. 주변에서 무서울 것 같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믹싱 엔지니어분께서 “재미있는데요?”라고 해주셨어요. 저보고 “하고 싶은 거 해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라고 하셨는데, 그게 되게 재미있었어요. 존중받는 느낌이라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나요.

Q. 앨범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뭐예요?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거요. 사운드라든가 외적 스타일이라든가, 앨범을 아우르는 느낌 같은 것들이요.

 

[MV] 애리(AIRY) – 없어지는 길(Disappearing Ways) / Official Music Video

Q. 공연장에서 공연하던 순서를, 그대로 앨범에 실었다고 들었어요.

제 곡이 길어서 밴드 셋으로 공연을 하면, 30분 동안 최대 네 곡을 할 수 있거든요.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순서를 짜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해졌어요. 항상 ‘어젯밤’을 첫 곡으로 공연을 시작했어요. 사운드가 가장 강렬해서요. 친한 음악가분들은 장난을 치기도 해요. ‘어젯밤’ 첫 마디가 따! 하고 끝날 때 “나다! 나를 봐라!” 이런 게 느껴진대요. 그게 또 기분 좋더라고요.

Q. 그 곡들로 첫 앨범을 발매하고 싶었던 이유는요?

평소에 만만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한가 봐요. [SEEDS] 앨범을 통해서 강렬한 이미지를 보이고 싶었어요. 센 느낌을 줄 수 있는 곡들을 모으다 보니, 그렇게 다섯 곡이었어요. 공연에서 보이고 싶었던 이미지와, 앨범에서 보이고 싶었던 이미지가 같았던 거죠.

Q. 계속 얘기한 강렬한 이미지 외에, 씨앗이라든가 숲이라든가 하는 자연의 이미지도 강해요.

‘에덴’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제목을 못 정했을 땐, ‘에덴’을 ‘자연가’라는 이름으로 불렀어요. 제주도의 곶자왈이라는 숲에서 정말 큰 충격과 위로를 받고 만든 곡이에요. 아름답고 웅장하고, 생명이 돋아나는 게 자연이잖아요. 반면 경쟁하고 환경에 맞춰 변화하고, 죽어가는 것도 자연이고요. 그 설명히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나도 자연의 일부라서 힘들기도 하고 힘내기도 하고, 사는 게 그런 거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자연이 좋았어요.

Q. 숲을 배경으로 공연하면 정말 잘 어우러질 것 같아요.

처음 앨범을 작업할 때부터, 숲에서 라이브 영상을 촬영하고 싶었어요. 한 음악가의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바닥에는 풀만 자라있고, 주변은 울창한 나무로 쌓여있고, 사람 키보다 높은 바위가 하나 있어요. 그 바위 위에 앉아서 혼자 공연하고, 관객들이 그 모습을 아래에서 지켜보더라고요. 그런 것도 해보고 싶어요.

 

[온스테이지2.0]애리 – 에덴

Q. 이후엔 어떤 이미지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좋아하는 게 많아요. 학생 때는 펑크 밴드를 커버해서 공연하기도 했고, 발라드 부르는 것도 좋아해요. 앨범을 낼 때는 공통의 것들을 모아서 내보이잖아요. 여러 이미지를 보여주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고민이에요. 이런 것들을 원하면서도, 확 바꿀 수 있을까? 그렇다고 서글픈 감정을 다 보여준 건 아니거든요. 제가 발매한 다섯 곡 외에도, 서글픈 감정의 곡들은 여전히 존재해요.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아직 남은 게 있어서 고민이에요. 그래도 여러 모습을 빨리 보여주고 싶어요.

Q. 이런저런 과정들을 거쳐오면서, 스스로 달라졌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어요?

제가 창작한 곡으로 이루어내는 모든 활동이, 그 자체로 일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요. 앨범 발매가 굉장히 훌륭한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했고요. 종종 음악을 짝사랑한다고 얘기하는데, 여전히 음악에 절절매면서도 그 음악으로 칭찬받을 때면 너무 행복해요. 정말 오랫동안 짝사랑한 기분이라서 아직도 설레고 즐거워요.

Q. 오랫동안의 짝사랑이라 하면, 언제부터 이어온 건가요?

초등학교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어요. 혼자서 부른다든지, 가창 대회를 나간다든지, 노래하는 것 자체를 좋아했죠. 자우림, Radiohead, Portishead, 언니네 이발관, 네스티요나 등을 알게 되면서 음악에 푹 빠졌어요. 13살 때 ‘나의 비밀’이라고 숨겨둔 글에 “내 꿈은 가수”라고 적었더라고요. 수년 동안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그 글을 발견하곤 무척 놀랐어요. 꿈을 잊은 채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공연 동아리 활동을 해오면서 그 마음을 달랬던 것 같더라고요. 중학교 때부터 밴드부를 하고 싶었는데 반대에 부딪혀 홧김에 풍물부에 들어가기도 하고, 고등학교 땐 실용음악 동아리, 대학교 땐 밴드부 활동도 했어요.

Q. 앨범을 발매한 지도 1년이 지났잖아요. 그 시간들은 어떻게 보내왔어요?

어떻게 하면 저를 더 알릴 수 있을까, 제 앨범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가기도 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수집하기도 했어요. 그들의 음악 외에도 영상, 아트워크, 옷차림까지 모두 좋아했던 거구나 느꼈어요. 이런 콘텐츠들을 만들고 싶다,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어요.

 

[MV] 애리(AIRY) – 낡은 우편함(Old Mailbox) / Official Music Video

Q. [SEEDS] 앨범에서도 다양한 걸 많이 준비하셨잖아요. 뮤직비디오도 세 편이나 선보였어요.

마음만으론 다섯 곡 전부 찍고 싶었어요. ‘비 오는 날 씨앗으로 틔우는 여정’도 혼자 촬영한 영상이 있어요. 아직 공개하진 않았고 공연장에서 잠깐 튼 정도인데, 이 영상도 언젠가 꼭 공개하고 싶어요.

Q. [SEEDS]가 어떤 앨범으로 남길 바라요?

많이 알려지는 것들이 있고 비교적 덜 알려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제가 10년 넘게 듣고, 좋아하는 음악들만 봐도 그래요.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이 음악이 얼마나 유명한가는 중요하지 않거든요. 그냥 좋은 음악인 거니까요. 제 앨범도 그런 앨범으로 남으면 좋겠어요. 모두한테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한테는 위로가 되는 음악이면 영광일 것 같아요.


글 : 이지영
사진 제공 : 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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