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예린이 두 번째 정규 앨범 [tellusboutyourself]를 발표했다. 밴드 사운드 위주였던 전작과 달리 수록곡 전반에 미디 프로그래밍을 도입하며 사운드의 변화를 꾀했고 신스팝, 하우스, 개러지 등의 장르적 다양성 또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음악적 성장의 배경에는 프로듀서 구름이 늘 함께했다. 두 사람의 음악을 향한 순수한 고집으로 완성된 본작은 하나의 장르에 치우치지 않는, 그야말로 한국 대중음악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순간을 선사했다.
앨범이 발표된 지 약 두 달이 지난 지금. [tellusboutyourself]를 재해석한 리믹스 앨범 또한 발매되었다. 백예린의 음악세계를 같이 구축해왔던 구름, 전위적인 힙합을 추구하는 그룹 XXX의 FRNK를 필두로 sogumm & 오혁의 ‘야유회’ 등 다양한 트랙에 참여하며 주목받고 있는 프로듀서 glowingdog (글로잉독), 한국 일렉트로닉 씬을 대표하는 KIRARA, 사이키델릭 록 밴드 실리카겔의 김한주, ‘The BLANK Shop’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윤석철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장르 프로듀서들이 백예린을 위해 한 곳에 모였다.
다양한 시도 끝에 또다시 음악적 성장을 이뤄낸 백예린, 그리고 그의 파트너 구름과 함께 이번 정규 앨범과 리믹스 앨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디로 활동을 시작한 지 한 일 년이 되셨네요. 음악이나 아티스트 활동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면 어떤 부분인지 궁금해요.
예린 / 큰 소속사에 소속되어 있는 것과 인디로 하는 것 간의 차이를 아직은 느끼지 못했어요. 코로나19가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코로나19 때문에 지금 모두가 힘들고 큰 소속사들도 공연이나 쇼케이스를 못하고 있고 그런 부분이 다 어려우니까. 사실 지난 1년간은 크게 느끼진 못했어요.
이런 시기라서 특별히 느끼신 것이 있으세요?
예린 / 저는 페스티벌이나 공연 같은 대외적인 활동을 못 하니까 다른 아티스트분들은 앨범을 안 낼 줄 알았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많은 아티스트분들이 음원을 더 많이 내고 언택트 공연 같은 것도 더 많이 하려고 노력을 하시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지금 앨범이 나와서 지금 잘될까?”, “사람들 마음이 힘든데 앨범이 나온다고 해서 잘 들어주실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다들 코로나19 때문에 힘든 것들을 음악으로 더 풀고 위로를 받는다고 하시는 게 있더라고요.
구름 / 언젠가는 이 음악 산업의 모습이 어떤 계기를 기점으로 바뀔 거로 생각했거든요. (저도) 클래식한, 옛날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음악산업이 바뀌고 있는 게, 코로나19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기에 그에 맞춰서 바뀌는 거잖아요. 코로나19가 없어진다고 해서 지금 하는 게 다시 없어지고 예전 방식을 다시 취할 거라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이걸 기준으로 많은 패러다임이 바뀌고, 전기자동차 같은 존재처럼 바뀌는 것이 생길 것이고, 저도 이런 상황을 보며 미래 음악 산업에 대한 인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럼 음악 산업의 변화라는 점에서는 요즘의 상황은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구름 / 다 끝나고 보면 긍정적인 것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밴드 연주 위주로 만들어진 저번의 앨범과 비교하면 전곡 MIDI(프로그래밍 비트)로 만들어진 점이 대중에게 큰 변화를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어떤 경위로 이런 음악 스타일을 하게 되셨어요?
예린 / 제가 19년도 초반에 오빠한테 MIDI 레슨을 살짝 받았어요. 제가 프로처럼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곡의 스케치를 전달하면 편곡하는 입장에서 제가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어떤 스타일을 하고 싶은지 저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잖아요. MIDI를 조금 배워서 오빠한테 샘플 쓰는 걸 배우고, 그러면서 제가 스케치를 14곡 중 13곡을 다 해서 오빠한테 먼저 줬어요. 준 것 중에 제 비트를 쓴 곡도 있고, 더한 곡도 있고, 제 건반에 쓴 곡도 있고 그래서 이 음반이 (기존 작품과는) 달라진 것 같아요.
대중에게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보여주자는 의도도 있었던 거예요? 작업하셨을 때 특히 조심한 것이나 의식한 것이 있으신가요?
예린 / 1집(“Every letter I sent you.”)보다는 변화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음악에서 조금 벗어나서 예상하지 못하는 것들을 들려주고 싶었고, 사람들이 “예린이가 할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음악들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좀 벗어나서, 너무 많은 것을 욕심부려서 다 담거나 너무 새로운 모습만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런 부분은 조심하면서 저번 앨범과 이어지기는 하지만 어쨌든 새로운 매력이 있는, “저는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요”하면서 보여주는 그런 걸 의도한 것 같아요.
구름 / 어쨌든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린의 포지션이 ‘포크 가수’ 같은 지칭처럼 계속 같은 특정 장르에 포함되는 아티스트인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 어쨌든 아티스트는 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변화해야 하니까 변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누군가가 들었을 때 “다른 걸 하려고 했구나” 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만 조심하려고 했죠. 왜냐하면 여기서 변화를 해야 했던 이유가 있어야 하니까, 그런 걸 찾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변화하는 것에 이유를 찾으셨어요?
구름 / 개인적인 것이긴 했는데, 이전 앨범은 옛날 방식으로 작업을 한 거였어요. 음악이 좋고 거기에 무슨 내용을 담느냐도 있지만, 지금의 가요를 듣는 사람들에게 이런 음악을 대중가수가 만들어서 가져가면 어떻게 이해하고 소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서 시작했거든요. 이번 앨범 같은 경우는 오히려 굉장히 현대적인 작업을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70, 80년대 처음 전자음악이 생겼을 때의 클래식에 해당하는, 그 당시의 산업이 격변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우울한 사람들이 만든 신나는 음악 같은 걸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어쨌든 지금은 우울한 시기이기도 하고, 디트로이트에서 테크노가 만들어진 시절이라든가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노래가 되게 신나고 파티 뮤직 같은데,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어둡고.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때의 신나고 우울한 디트로이트 테크노, 시카고 하우스 같은 음악에 매력을 느끼셨다고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셨나요?
구름 / 사실 지금은 ‘내가 무언가를 배워야지’, ‘찾아야지’ 하면 쉽고 빠르게 찾고 배울 수가 있잖아요. 옛날 시카고 하우스 같은 걸 들으면 잘 만들어진 현대적인 사운드인데, 지금 많이 쓰는 악기도 많이 있지만, 당시 그 사람들은 누구 친구가 쓰는 거, 비행기 타고 와서 구해온 LP 같은 그런 것들로 만든 음악들이니까.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엄청 가난하고 주어진 게 없는 상황인데 거기서 신나게 놀아보겠다고, 음악을 틀어보겠다고, 만들려고 했고. 지금 언택트 공연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든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그런 최선을 다하는 느낌이나 방식 자체가, 그 어떤 분위기나 이런 게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의 음원을 들으면서 80년대, 90년대의 음악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혹시 신디사이저 같은 악기를 고를 때 “새로운 것보다는 빈티지한 악기를 써보자” 같은 생각이나 시도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구름 / 그런 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은 해요. 예린이가 노래를 부르는 방식 같은 것이 요즘 가수 같은 느낌보다는 클래식한 느낌이 있다고 생각해서. 가사를 쓰는 방식도 그렇고, 자연스럽게 잘 어울려서 그쪽으로 흘러간 것 같아요.
피아노나 기타로 작곡을 할 때가 많았던 저번 앨범까지와 달리 이번 앨범은 전곡을 MIDI로 작곡했기 때문에 비트를 먼저 만들고 거기에다가 노래의 멜로디를 만든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작곡 방식에 변화가 생겨서 힘든 점이 없었나요?
예린 / 제가 2019년 3월에 EP([Our love is great])를 냈잖아요. 그때 이미 녹음을 다 해놓고, 오빠가 믹싱을 다 하고 있었어요. 저는 혼자 할 게 없으니까 오빠한테 조금 배운 걸 방에서 계속한 거예요. 1집은 피아노나 기타로 반주를 하면서 동시에 멜로디랑 가사를 쓰면서 작업을 했는데, 이번에는 마음에 드는 비트를 먼저 찾고, bpm을 맞추고, 그러고 나서 건반을 먼저 치고, 거기에 멜로디랑 가사를 붙였거든요. 아예 기존 방식에서 역방향으로 작업을 했는데 사실 엄청 장난치는 것처럼 작업한 거예요. 제가 가이드 같은 걸 만들어서 오빠한테 들려주고, 좋다고 쓰고. 이런 식의 작업이라 생각보다 다들 좋아해줘서 다 쓰인 것 같아요. 힘든 점이라기보다는 너무 편하고 재미있게 작업을 했어요.
재미있고 새로운 걸 도전하는 즐거움 같은 것도 느꼈던 작업이었네요. MIDI로 만들어진 비트와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가져다주는 편안한 분위기나 무드가 앨범 전체적으로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댄스 트랙도 비트가 과하게 화려하거나 강하지도 않아서 앨범의 편안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은 것 같아요. 자신이 평소에 듣는 음악이나 취향 또한 너무 화려한 음악보다 어느 정도 자제한 음악을 선호한다고 생각하세요?
예린 / 밸런스가 있는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특정 누구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가사도 그렇고, 저는 요즘 음악보다는 옛날 음악을 더 좋아하고. 유재하도 좋아하고 빛과 소금도 좋아하고… 굳이 뽐내지 않아도 빛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에서는 새로운 프로듀서 방민혁 씨와 같이 작업하셨네요. 어떤 계기로 같이 작업하게 되었나요? 재즈로 시작해, 요즘은 잔잔한 일렉트로닉을 솔로 작품으로 선보이는 방민혁 씨를 보며 예린 씨의 음악 스타일과 맞다고 느꼈어요.
구름 / 같이 하게 된 건… 늘 예린이가 저랑만 (작업을) 했어요. 이게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저와 작업하는 것 외의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일단 틀린 거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변화하려고 하고 있으니까 내가 잘 다루지 못하는 거,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거, 시장에 이해도가 있는 그런 사람이랑 같이하고 싶었고. 원래 민혁 형은 저랑 되게 오래 알고 지냈거든요. 대학교도 같이 다녔고 잘 아는 분이라 처음에는 그냥 같이해본 거예요. 잘 맞으니까 그냥 다 같이 하자고 한 거죠.
예린 / 그리고 저는 방민혁 오빠가 합류해서 너무 좋았던 이유는… 저희는 약간은 내성적이고, 집에만 있거나 작업실에만 오거나 하는, 우리끼리만 노는 사람들이라서요. 작업방식에도 삶의 방식에도 그게 티가 나는 것 같아요. 뭔가 많은 새로운 경험을 하기보다는 둘이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방민혁 오빠 같은 경우는 굉장히 저희랑 대조되게 밖에도 많이 나가고, 경험도 많이 쌓고 테크노 클럽도 가보고 저희랑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제 앨범의 변화는 오빠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왜냐하면 중간에 테크노 브레이크 같은 게 들어가 있는 것도, 그런 부분이 사실 오빠가 좋아하는 걸 적용해봤던 건데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거예요. 그런 부분이 성격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됐고, 저도 이런 많은 경험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럼 이번 앨범에서 특히 방민혁 씨의 영향을 받은 부분은 댄스곡이신가요?
구름 / 주로 그런 느낌이죠.
댄스곡에 대해서는 두 분이 미리 “이번 앨범에서는 이런 걸 해보자” 같은 생각이 있었다기보다는 방민혁 씨가 그런 아이디어를 낸 거예요?
예린 / 그런 게 있지만 저는 제가 원래 하던 음악이 콘서트에서도 그렇고, 부르면서 우울한 노래들이 많고 발라드 노래들도 많아서 ‘내가 좋아하는 게 이게 진짜 맞을까?’, ‘내가 무대에서 지금 하고 싶은 노래가 이런 노래들일까?’ 하는 생각을 했을 때 전혀 아니었거든요. 제가 듣는 음악도 조금 신나고 리드미컬한 음악들이 많고. 그래서 저도 무대에서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그걸 이제야 푼 느낌이 있어요. 제가 처음 비트를 만들었을 때도 어느 정도 신나게 하려고 염두에 두고 방민혁 오빠가 들어오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죠.
구름 / 원래 빠른 템포의 곡을 예린이가 갖고 있었고, 그걸 같이 작업을 하는 거잖아요. 민혁 형이 아니라 다른 분이 왔으면 이게 전부, 예를 들어 스웨디시 하우스가 될 수도 있고 덥스텝 음악이 됐을 수도 있었던 건데. 민혁 형이 들어와서 딥하우스나 디트로이트 테크노나 이런 것들이 나오게 된 것 같아요.
두 분이 평소에 즐겨 듣는 댄스음악은 어떤 거예요?
예린 / 저는 St. Vincent를 엄청나게 좋아해요. 처음에는 그녀가 되게 모던록 정도까지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Masseduction]을 들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관능적으로, 직관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모습을 보고 이번 앨범에서 저도 솔직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한테는 엄청나게 신나는 음악만이 댄스가 아니라 그런 전자 음악, 조금 BPM이 느리더라도 신나는 요소가 악기로 있으면 그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구름 / 저도 비슷한 거 같아요. 오히려 작업 중간에는 댄스음악보다 밴드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Andy Shauf 같은 음악을 들었던 것 같아요. 그게 엄청 느리고 잔잔한 포크인데, 그것도 신나게 들으려면 들을 수가 있잖아요.
꼭 댄스음악 아니어도 두 분 모두 신나는 요소가 있는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네요. 이번 앨범의 작업을 하면서 보다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된 것 같은데 Apple Music과 FLO에 공개된 플레이리스트를 봐도 그것을 느껴요. 그중에도 특히 제작 기간에 많이 듣거나 빠진 아티스트를 두 분이 한 팀씩 뽑아주시고, 그 아티스트의 어떤 부분이 이번 앨범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시는지 알려주시겠어요?
예린 / 저는 그 시기에 딱 들었던 게, Your Smith라는 아티스트가 있어요. 그 아티스트의 음악을 듣고 ‘아, 나도 이런 거 해보고 싶다.’ 했는데 그게 댄스음악이 아니었어요. 그냥 MIDI로 만든 그런, 간단하지만 대중적이고 되게 좋은 멜로디를 가진 음악이라고 해야 하나. 그걸 듣고 저도 MIDI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름 / 영향을 많이 받은 부분은 딱히 꼽을 수가 없는데 제가 2019 년에 제일 많이 들었던 앨범이 Kaytranada 의 [BUBBA]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작업 방식이 알앤비, 힙합과 댄스음악의 경계선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해요. 파티 음악 같으면서, 힙합 같으면서 밸런스가 되게 좋아서. 음악을 되게 쿨하게 하거든요. 잡히는 걸 막 쓴 거 같은데 되게 섬세하고. 그런 무드를 만드는 데에 되게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해야 하나. 킬링 멜로디 같은 것보다는 들었을 때 멋있게 들리는 무드를 잘 만들어서 작업하면서 되게 많이 들었어요.
이번 앨범과 양쪽에 놓으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을 두 분이 두 장씩 골라주시겠어요?
구름 / 제가 이 앨범도 많이 들었거든요. Video Age라는 팀의 [Pop Therapy]라는 앨범인데 되게 행복한 신스팝, 디스코 앨범이에요. 다른 한쪽에는 St. Vincent의 [Masseduction] 이걸 들으면 좋겠네요.
[Masseduction]의 경우 어떤 부분이 어울리거나 공통된 점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구름 / 어찌 됐든 예린이의 [tellusboutyourself] 앨범도 록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는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St. Vincent [Masseduction] 앨범도 어느 정도 전자음악적인 요소가 많이 있는데요. 작업하는 방식이 되게 다른 전자음악이지만, 그래서 뭔가 이렇게 섞어서 들어도 다 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tellsuboutyourself] 끝나고 [Masseduction] 1번 트랙에 쭉 가면 넘어가는 느낌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보컬리스트로서의 예린 씨의 개성이나 매력이 잘 전달되는 앨범인 것 같아요. “I am not your ocean anymore” 같은 노래는 Michael Jackson이나 Whitney Houston의 발라드곡을 연상시켰고 “Ms. Delicate”, “Loveless” 등에서는 소울풀하게 노래를 부르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보컬에 대해서는 어떤 것을 의식하고 작업하셨어요?
예린 / 녹음을 대충 하는 편이었어요. 정규 1집도 그렇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도 있지만 저는 라이브를 잘하면 된다는 주의였어요. 근데 쉬면서 앨범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분들과도 작업하고, 청하 씨나 다른 분들과 작업을 하면 정말 열심히 (노래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테이크도 많이 받고 컴핑(comping) 할 때 좀 좋은 걸 쓸 수 있게 대비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게 저랑 너무 달라서 처음에는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는데 그 과정을 계속 보다 보니까, 그리고 다른 가수분들의 이야기도 듣다 보니까 저런 부분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번 앨범에서 “Hate you” 같은 경우는 세 번씩 녹음하고, 그리고 엄청 열심히 더 힘을 냈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 전까지는 너무 대충해서, 이번엔 좀 확실히 더 다르게 해보자는 생각도 해서 녹음도 많이 받고 노력을 좀 더 많이 한 것 같아요. “Ms. Delicate”에서는 장르가 변화되는 부분에서 목소리가 조금 바뀌는데, 그 부분은 Alina Baraz나 Jhene Aiko처럼 소리를 내보려고 도전했어요. 그리고 “Hall&Oates”는 Hall & Oates처럼 브리지 멜로디를 만들고 싶어서 뒤에 기교나 이런 것들도 보면 그때 당시 Hall & Oates의 느낌이 나게 했어요.
가사는 사랑이나 연애를 주제로 한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대중들에게는 공감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기록할 뿐만 아니라 고독감이나 불안감을 느끼며 갈등하면서도, 때로는 “Lovegame”이나 “Hate you” 등 연애나 상대방에 의존하지 말고 더 강하고 독립한 인간으로 성장하려고 하는 모습도 느끼고. 그런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지난 앨범까지도 사랑과 연애를 주제로 하는 노래는 많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연애에 관한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졌다면 어떤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린 / 확실히 회사도 바뀌고 저한테는 2019년이 변화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곡을 쓸 때 안 좋은 사람들이나 인간관계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인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썼어요). 원래는 사람 만나고 하는 것들을 너무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너무 좋아했는데 너무 내가 순수했구나, 순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 좋은 사람을 구분할 줄 아는 방법을 조금은 배운 것 같아요. 아직 모자라지만. 그리고 내 사람들을 챙기는 그런 걸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그래서 저번 앨범 타이틀곡인 “Square (2017)”나 “Popo”가 사랑의, 위로에 관한 노래였는데 이번의 타이틀곡은 우울한 부분이 많은 노래 두 곡이 타이틀이 됐잖아요. 우울함을 통해서 조금 더 강해진 제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요즘 멘탈이 조금 더 세진 것 같아요.
특히 “Hate you”의 후반 브릿지 가사가 멋있고 인상적이었는데 이 부분은 어떤 것을 생각하면서 쓰셨는지 궁금해요.
예린 / 저는 사람을 미워하는 거 자체가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배려를 한다거나 지나치게 그 사람을 생각해 준다거나 그런 걸 잘 안 하려고, 그런 일들을 많이 안 만들려고 평소에 노력을 많이 하거든요. 근데 그걸 되게 순진하게 그렇게 모든 사람한테 해줬던 것 같아요. 뭔가를 기대하고, 나한테 똑같이 잘해주는 걸 바라고 잘해주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항상 저만 상처받는 관계로 끝나더라고요. “Hate you”에서 그런 부분들을 “나도 싫어해”라고 말하지만 가사 끝에는 “그래도 너한테 이렇게 진심으로 신경 쓰고 좋아해 주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가사는 강하지만 어쨌든 그 안에도 그 사람을 케어하고 신경 쓰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그런 곡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누군가를 증오하는 마음보다는 좋아하고 신경쓰는 사람이 좀 너무 못되게 굴 때나 정신 못 차릴 때, 그럴 때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요.
CD 버전에서는 “Hate you” 뒤에 “tellhim”이라는 노래가 수록되고 있는데 “Hate you / tellhim”으로 하나의 곡으로 다뤄지고 있네요. “tellhim”은 제삼자에게 전 애인에 대한 소식을 물어보는 가사인 것 같은데 “Hate you”와 하나의 곡으로 되는 이유가 궁금해요.
예린 / 에피소드가 있어요. 원래는 King Krule한테 피쳐링을 부탁하려고 연락을 했어요. 서로 시차도 안 맞고 한 부분도 있어서 좀 연락이 계속 늦어지게 된 거예요. 발매를 얼른 해야 하는데. 무산되어서 안 하기로 했는데, 그 부분을 King Krule을 위해서 만들었죠. 그분의 스타일을 저희가 참고로 해서 만든 부분이 있었는데, 그걸 못하게 되었지만 트랙이 너무 좋은 거예요. 너무 아까워서 제가 그냥 멜로디를 붙이고, 어떻게 보면 “Hate you”라는 이야기가 지나간 후에 “그래서 개는 잘 지낸대?”라고 물어보는 곡이거든요.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I’m in love의 가사는 베를린에 체류하셨을 때 쓰셨다고 들었어요. 저번의 앨범에서도 “Berlin”과 “London”이라는 곡이 있어서 예린 씨에게는 방문해보신 해외의 도시 하나하나가 큰 영향을 가져다주는 것 같아요. 베를린과 런던은 각각 예린 씨에게 어떤 장소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을 떠나고 나서 기분이 달라진 걸 느낄 때도 있나요?
예린 / 베를린은 저한테 처음 가본 유럽 도시의 향기가 있어요. “Berlin”이라는 곡을 쓴 것도 어쨌든 제가 거기서 뮤비를 찍었고 사진 촬영을 했기 때문에 거기서 머물면서 몸으로써 느낀 걸 담아서 쓴 거였어요. 사실 런던은 안 가봤어요. 록스타들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저런 느낌인 도시구나’ 정도로만 보고 있었고 저한테는 어떤 클리셰(cliche)인 것 같아요. “London”은 곡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노래가 그런 느낌이 나서 그렇게 (제목을) 정했고. 저는 한국을 벗어나서 어떤 활동을 했을 때 되게 힘든 것 같아요. 원래도 밖에 안 나가기도 하고, 집에서 너무 멀어진 느낌이 들어서. 사실은 외국에 나가는 게 그렇게 행복하기보다는 좀 외로운 느낌이 많이 들고 우울할 때도 잦은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리믹스 앨범도 함께 발표되었는데, 그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예린 / 이번 앨범은 여러모로 다양하고 새로운 장르를 도전했기 때문에 편곡 방향 역시 다양할 수 있는 앨범이라고 느꼈어요. 평소 좋아하던 프로듀서 분들과 새로운 작업도 해보고 싶었던 중에 ‘이들은 제 앨범을 어떻게 해석하실까’하는 궁금증으로 시작해 부탁드리게 되었어요.
구름 / 예린이는 앨범 작업을 대부분 저와 함께 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분이 합류하면 어떤 느낌의 결과물이 나올지 늘 궁금했어요. 그래서 리믹스 앨범에 대한 생각은 앨범 작업 과정에서부터 이미 어느 정도 갖고 있었어요.
참여 프로듀서의 리스트를 살펴보면 힙합, 일렉트로닉, 록 등 그 장르가 다양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음악적 시도가 있었던 이번 앨범과 참 어우러지는 그림이었는데요. 콜라보 아티스트는 어떤 방식으로 선정했나요?
예린 / 평소 좋아했던 분들께 부탁을 드렸어요. (웃음) 저와 다른 장르와 씬에 계신 분들이 어떤 식으로 작업하시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분들의 앨범을 듣고 감명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제안하게 된 것 같아요.
구름 / 평소에도 잘하신다고 생각했던 분, 혹은 작업을 맡겨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분들을 생각해서 예린과 대화를 나누어 결정하게 되었어요.
구름 씨는 편곡 작업도 함께 겸했는데, 이번 리믹스 앨범 작업에서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썼나요?
구름 / 보컬 음악의 경우, 그 음악의 주인은 보컬이기 때문에 (보컬을 위해) 많은 부분을 비워요. 리믹스 작업의 경우 그런 제약으로부터 편하게 접근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 같은 상황이나 감정도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예린이의 가사를 보고 느낀 마음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보려 했습니다.
예린 씨는 새롭게 해석된 리믹스 음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예린 / 너무너무 재밌는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프로듀서 분들께서 아무 제약 없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어 더 재밌었다고 얘기해주셔서 기뻤고요. 이렇게 멋진 분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제 음악을 편곡해 주셔서 감동이었고, 기회가 있다면 참여해 주신 분들과 함께 더 많은 작업을 함께 하고 싶어요.
비주얼 면도 아티스트로써의 예린 씨 개성의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145office의 홍연수 씨와 자주 같이 작업하신 것 같은데 어떤 점으로 그분한테 신뢰를 갖고 계셔요?
예린 / 저랑 언니는 친구로 처음에 만나서 일 자체를 생각했다기보다는 서로 응원하는 입장이었어요. 옆에서 저를 보면서 저번 앨범도 그렇고 제가 맨날 다 혼자 하다 보니까 이렇게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는 게 안쓰러웠나봐요. 걱정하기도 하고. 그래서 계속 뭔가 필요하면 자기가 해줄 테니까 얘기하라고 먼저 말하더라고요. 이번 뮤비랑 옷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변화가 많았잖아요. 그 변화를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는 게 사진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진에서 제가 비주얼적인 면을 보여줬을 때 사람들도 약간 놀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언니는 그런 일도 많이 해봤으니까 조금 더 전문적인 분이랑 함께 해나가면 좋을 것 같아서, 그게 참 잘된 것 같아서 서로 잘 지내고 있어요.
[tellusboutyourself] 앨범의 비주얼이나 사진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요.
예린 / 보통 저는 앨범을 기획할 때 곡이 다 있는 상황에서 곡 마다 찍고 싶은 사진의 느낌이나 장소 같은 걸 PPT로 만들어서 직원분들께 보여드려요. 그와 맞는 포토그래퍼를 찾고, 장소를 찾고. 포즈 아이디어나 같은 것도 포토그래퍼랑 논의하고 그런 식으로 일을 해왔어요. 사람이 취하고 나서의 감정 같은 것들을 표현하고 싶어서 클럽 화장실 같은 곳을 많이 찾아보았는데, 그런 부분들에 제 의견이 많이 반영되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오래 활동하는 아티스트로서 아티스트 커리어를 쌓아가는 점을 생각하면 특히 존경하시는 아티스트가 있으신가요?
예린 / 오빠가 동경사변 노래를 많이 들려주어서 시이나링고 영상을 많이 보게 된 거예요. 그분이 진짜 오래 활동하시고 있기도 하고, 앨범마다 하나씩 컨셉이 있고 어떤 세계관이 있고. 저는 이런 가수가 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엄청나게 큰 계획을 짜고 큰 자본을 들여서 해야 하는 작업이니까. 그래서 저는 그분 영상들을 보면서 ‘아, 나도 이렇게 뭔가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생각하죠. 어쨌든 일본 여성 가수라고 하면 그분이 제일 먼저 떠오르거든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계속 오래 하고 싶어요. 컨셉도 계속 바꿔보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도 해보면서.
구름 씨도 예전에 저와 인터뷰를 했을 때도 동경사변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줬는데, 음악이나 커리어의 어떤 부분에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구름 / 프로듀서로써 시이나링고가 많이 귀감이 됐던 것 같아요. 사실 그분이 원래 약간 록스타잖아요. 1집부터 들으면 되게 록 음악을 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이렇게 밴드를 하면서도, 오히려 지금의 앨범을 들어보면 오케스트레이션 성향이 강해진, 빅밴드 형태도 그렇고 어떤 그 사람만의 변화가 있고 그런 계기도 있고, 그렇게 지나가면서 하나하나의 앨범을 냈던 게 저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아티스트는 계속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같은 틀이라고 해도 만들고 또 납득시키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그 사람이 다른 팀이나 외부활동을 하면 스스로 아티스트로써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으로써 일할 수 있는 모습도 되게 멋있는 것 같고. 자기가 다른 사람이랑 한 곡들을 자기가 불러서 낸 앨범도 있잖아요. ([逆輸入 ~港灣局~]) 그런 것들도 들어보면 밸런스를 맞추는 것 같아요. 이런 작업을 하는 나와, 내 음악을 하는 나와, 내 친구들이랑 있는 나. 이 아티스트의 모든 모습이 되게 멋있고 그것이 되기 어려운 거라는 걸 알아서. 그런 부분을 좀 더 리스펙트합니다.
이번 앨범의 작업을 통해서 아티스트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어떤 부분이 성장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예린 / 저는 일단 두 번째 정규 앨범인데, 항상 저는 아티스트들한테 소포모어 징크스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걸 조금 잘 깬 것 같아요. 1집에 담긴 얘기를 솔직한 얘기라고 해주는 분도 많았지만 저는 조금 불투명한 가사를 썼다고 생각해요. 조금 은유적이고. 이번 앨범에서의 가사는 조금 더 저의 최근 생각, 최근 고민, 그리고 저 안에서의 어떤 갈등에 대해서 진짜 솔직하게 썼다고 생각하거든요. 만들어낸 얘기 없이 제가 느꼈던 감정을 메모로 해놓았던 걸 그대로 옮겨서 쓴 거라서, 그래서 사람들한테 제 모습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조금 사라진 그게 제일 큰 변화인 것 같아요.
Interview | 야마모토 다이치
Edit | 키치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