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il]이라 명명된 최규철, 아니 OoOoot의 이 데뷔작은 드러머 중심의 연주 앨범이 아니라 오히려 프로듀서/비트메이커가 연주자들의 조력을 더해 완성한 비트뮤직 앨범에 가까운 성질을 지니고 있을뿐더러 장르적으도 꽤나 다채로운 구성을 취하고 있다.
OoOoot(최규철)
Soil
2021.10.25
몇 년 전, 인디펜던트 음악에 빠삭한 몇몇 지인들이 “딱 네가 좋아할 음악을 하는 밴드가 있다”며 너도 나도 추천을 해줘서 알게 된 밴드가 있는데 바로 –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알고 있을 이름인 – ‘까데호’였다. 그리하여 처음 들어본 이들의 음악은 실제로도 딱 내 취향이었던 지라 이 발견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갑던 와중, 또 하나 개인적으로 반가운 지점을 발견했는데 그건 당시 이 밴드의 드러머가 다름아닌 ‘최규철’이었다는 점이다.
[Live] SGLIVE EP.8 ‘CADEJO’ Live Session
당시 처음 접했던 까데호의 라이브 영상.
심플하고도 단단한 리듬을 수놓는 최규철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내가 처음 인디펜던트/언더그라운드 씬에 발을 들였던 2000년대 초반의 인디록 씬은 주로 펑크, 하드코어, 모던록 부류의 음악들이 큰 갈래를 이루고 있었는데 당시에 하드코어 씬을 대표했던 밴드 중 하나가 ‘쟈니로얄(Johnny Royal)’이고 최규철은 바로 이 쟈니로얄 출신이다. 거의 20년 전에 좋아했던 밴드 출신의, 하지만 그 뒤로 전혀 근황을 알지 못 했던(솔직히 까맣게 잊었던) 아티스트의 근황을 이렇게 알게 되니 아무래도 반가울 수밖에. 이후 차차 알게 된 것은 사실 그가 쟈니로얄 이후로도 꾸준히 음악 활동을 영위해오고 있었다는 것. 최규철은 상기한 까데호의 결성멤버였을 뿐 아니라(첫 믹스테입 발표 이후 제주도로 거처를 옮기면서 밴드를 탈퇴했다) ‘삐삐밴드’, ‘H2O’, 3호선버터플라이’ 등 걸출한 밴드를 거친 박현준, ‘넘넘 (numnum)’의 허키 시바세키(이승혁)와 함께한 밴드 ‘LEMON (레몬)’, 김오키 주축의 재즈 콤보인 ‘김오키 뻐킹매드니스’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최근 ‘OoOoot’이라는 예명으로 본인의 첫 솔로 작품을 내놓았다. 게다가 무려 열세 트랙을 빼곡하게 눌러 담은 정규앨범. 작품의 라이너노트에서도 같은 지점을 언급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드러머의 앨범이라고 하면 주로 재즈에서 접할 수 있듯, 드러머가 중심이 되고 여기에 베이스, 피아노, 색소폰 등 여타 악기 연주자들이 협연하는 구성의 특정 장르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아트 블래키(Art Blakey)와 재즈 메신저스의 위대한 하드-밥 명작 [Moanin’]처럼.
OoOoot 로고
이 로고로 미루어보건대 아마 ‘우웃’이라 읽어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Soil]이라 명명된 최규철, 아니 OoOoot의 이 데뷔작은 드러머 중심의 연주 앨범이 아니라 오히려 프로듀서/비트메이커가 연주자들의 조력을 더해 완성한 비트뮤직 앨범에 가까운 성질을 지니고 있을뿐더러 장르적으도 꽤나 다채로운 구성을 취하고 있다. 큰 맥락에서 바라보면 주로 힙합, 재즈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가운데 앱스트랙트 힙합, 앰비언트, 다운템포, 모던 재즈, 소울, 훵크 등의 요소를 두루 아우르고 있는 작품으로 허키 시바세키, 까데호의 이태훈과 김재호, 김오키, 진수영, 강상훈, 이규재, 허아민, 이승규 등 여러 동료 음악가들이 각각의 트랙에서 적재적소에 등장해 근사한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들을 한데 모은 만큼 예측 불가한 – 나쁘게 얘기하면 들쑥날쑥 산만한 – 진행이 필연적일 듯하지만 뜻밖에 기승전결이 꽤 선명한 작품이다. 몽환적인 무드의 신스 사운드와 스산한 기타 리프가 어우러지는 인트로 ‘Branch’를 지나 연이어지는 ‘Harvest’, ‘Mustard’까지의 초반부는 LA 비트씬 류의 추상적인 힙합, 앰비언트 성향의 곡들로 초현실적인 무드의 사운드와 힙합 비트의 조합이 돋보이는 구간. 한편 듣는 순간 ‘까데호 재질’이 느껴지는 ‘Norankang’은 예상대로 까데호의 김재호, 이태훈이 협연한 곡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며 중반부로 넘어가는 기점이다. 앨범의 중반은 델로니어스 몽크를 연상시킬 정도로 그윽한 진수영의 피아노가 근사한 ‘Consider’, 김오키의 색소폰이 짙은 멜랑콜리를 자아내는 ‘WatchTower’, 허아민의 해먼드 오르간과 김재호의 베이스 사운드가 곁들여지며 근사한 펑키 그루브를 조성하는 ‘Appointed’까지 재즈적인 곡들이 연이어지며 편안한 감상을 유도하는 구간이다. (전통적인 장르 문법에 가장 충실한 곡들이 모여있는 구간으로도 볼 수 있겠다) 이윽고 등장하는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곡 ‘Soil’은 국내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든 멋진 재지 브레이크(Jazzy breaks). 해외에선 브레이크, 레어 그루브(Rare Groove) 씬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팬덤이 있는 장르지만 국내 음악가가 이쪽 장르를 시도하는 건 정말 흔치 않기에 특히나 반갑고, 또 값지게 느껴지는 곡이다. 한편 이 곡은 구성적으로는 ‘Appointed’의 펑키한 분위기를 자연스레 이어 받으면서 후반부를 여는 장치로 기능한다. 심플한 리듬이 돋보이는 다운템포 성향의 ‘Adullam’, ‘Throughout’을 지나 IDM(intelligent dance music)과 프리재즈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 실험적인 곡인 ‘Day and Night’, 탭댄스와 드럼의 조합만으로 강렬한 리듬의 향연을 펼쳐내는 ‘LakeWood’, 다양한 소리들의 불규칙한 조합으로 불길하고 음습한 분위기를 만드는 아웃트로 ‘Life’까지 이 앨범의 종반은 작품 내에서 가장 전위적인 태도를 취하는 곡들을 연이어 만나게 되는 구간이다.
앨범을 감상하는 동안 어떤 곡에선 제이딜라를, 어떤 곡에선 몽크를, 또 어떤 곡에선 에이펙스 트윈을 떠올렸을 만큼 광범위한 영역을 넘나들며 결이 다채로운 음악들을 선보이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조금도 억지스럽지 않다는 점, 각 곡의 훌륭한 완성도와 더불어 앨범 전체로도 자연스러운 맥락을 지니며 뚜렷한 기승전결을 지닌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 등은 최규철이라는 음악가가 긴 음악 활동 동안 쌓아온 내공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대중적인 작품이라곤 도저히 말할 수 없지만 가끔은 익숙한 대중음악의 문법 밖으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은 리스너들에게 꼭 한 번 감상해보라 권하고 싶다. 분명 꽤나 흥미롭고도 신선한 경험이 될 거다.
Editor / 김설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