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무조건적으로 듣는 이를 압살시키거나 때려 눕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나름의 이야기와 이유가 있다. 물론 이유가 있는 폭력이라고 하여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들의 음악은 가끔은 과하고 가끔은 깜짝 놀랄 만한 전개를 펼쳐도 그것이 결국 듣는 사람에게 설득이 된다.
FFRD
폭력의 역사
2022.01.05
동찬과 덥인베인으로 구성된 ‘FFRD’의 이름에는 Four Five Records라는 뜻이 있다. 작업실 4번 방을 썼던 덥인베인과 5번 방을 썼던 동찬이 모여 결성했고, 두 사람 모두 클래식 작곡에서 전자음악으로 전향했다. 이들은 2019년 [현대음악]으로 다소 간결한 형태를 지닌 작품을 발표했고, 2020년에 발표한 [WHAT YOU NEED]는 좀 더 예측 불가능한 전개와 구성으로 듣는 이를 첫 트랙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지막 트랙이 끝나는 시점까지 집중시켰다.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해온 FFRD가 이번에는 [폭력의 역사]라는, 앨범명에서부터 확실한 콘셉트가 느껴지는 작품을 공개했다. 이 앨범은 사실 앨범을 접하기 전 소개글을 먼저 읽었고, 자연스럽게 그것이 감상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글에 담긴 내용을 차치하더라도 두 사람이 앨범에 담은 내용은 생각보다는 무식하다고 할 만큼 무조건적으로 소리를 휘두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설명 못할 광기는 분명히 있다. 특히 한 곡 안에서도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전개와 여러 소리를 쌓고 덜어내는 방식이 흥미 그 이상으로 자극을 주지만, 한 곡에서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에도 그러한 자극이 유효하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또한 무조건적으로 듣는 이를 압살시키거나 때려 눕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나름의 이야기와 이유가 있다. 물론 이유가 있는 폭력이라고 하여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들의 음악은 가끔은 과하고 가끔은 깜짝 놀랄 만한 전개를 펼쳐도 그것이 결국 듣는 사람에게 설득이 된다.
첫 곡 ‘call of void’가 연설의 목소리로, 내용이 아닌 분위기를 통해 서사로 해석할 가능성을 열어뒀다면 이어지는 ‘killer d&d’는 ‘fuck you that’이라는 단 세 단어로 의도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이어 ‘덫’ 전까지 앨범을 착실하게, 알차게 자극적인 소리를 끊임없이 올리며 앨범의 방향을 분명하게 만든다. 아마 과거 클럽에서 폭력적이고 어두운 전자음악을 들으며 희열을 느꼈던 분들이라면 이번 앨범이 제법 마음에 들 것이다. 이들의 거침 없는, 광폭에 가까운 모습 안에는 과거의 댄스 음악이 있고 격렬하게 춤 추기 좋은 요소가 있다. 소리뿐만 아니라 구조 자체도 강렬하고, 마지막 두 곡이 오히려 앨범이 지닌 여운과 서사를 강하게 뒷받침하며 이 앨범이 지닌 에너지를 잘 설명한다. 이것을 한의 정서라 해야 할지, 아니면 코로나-19 사태에 일렉트로 모쉬 핏을 못해서 안달이 난 극히 일부의 한국인의 마음을 대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앨범을 듣는 사람은 새해를 시작할 에너지가 좀 더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음악을 듣는 행위에 불과하지만 속에 쌓여 있는 것을 그 행위만으로도 어느 정도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부정과 긍정의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순환시킬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점에서 앨범은 충분히 나에게 매력적이었다. 영기획 10주년 기념 공연에서 이들은 어떤 라이브를 선보일지도 예측이 어려운데, 궁금한 분들은 예매를 권한다.
Editor / 블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