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Brave new sound! 소리와 영상의 신선한 조합, 밴드 실리카겔과의 인터뷰
네오 사이키델릭, 슈게이징, 드립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신선한 사운드로 매 공연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 밴드 ‘실리카겔’. 연주하는 다섯 명의 멤버와 영상을 담당하는 세 명의 정식 VJ 멤버가 함께 팀을 꾸려나가는 이들은 어찌 보면 밴드로서는 다소 생소한 조합. 그래서였을까.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성기완은 아직 정식 데뷔 앨범도 내지 않았던 시기의 이 밴드에게 ‘Brave new sound!’라는 표현을 썼다. 새로운 형태의 퍼포먼스뿐 아니라 첫 EP부터 최근 발표한 디지털 싱글에 이르기까지 음악적으로도 실리카겔만의 확고한 색깔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데뷔 EP를 들어왔던 청자라면 이번 <두개의 달>은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그것은 지난 곡들과 ‘다름’이 아닌 ‘색다름’쪽에 가깝다. 공연에서 선보이는 셋 리스트의 곡까지 합친다면 ‘여덟 색깔의 다채로운 공감각 스펙트럼’이라는 그들의 모토처럼 한 가지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시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 곡의 시대적 배경은 다소 모호하지만 캐릭터는 확실하다. 곡 내레이션에 등장하는 ‘난쟁이’는 크로마키를 이용한 애니메이션 합성으로 작업된 이번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한다. 그것도 실리카겔 멤버들이 직접 그 캐릭터로 분하여. 그들은 앞서 언급한 모호한 시대적 배경 그러나 확실한 캐릭터, 세계관들이 뒤엉켜 곧 터져버릴 듯한 거대한 행성처럼 보인다. 6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힘차게 그러나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이 곡처럼 말이다.
‘달’을 스토리적 매개체로 삼았던 프랑스 작가 폴 오스터는 ‘태양은 과거고 지구는 현재며 달은 미래다’라는 문장을 본인의 글에서 중요한 키로 삼았는데, 이처럼 ‘달’이라는 존재는 여러 문학, 영화의 매체에서 미래적 대상으로 비유되며 일종의 시대나 시차를 표현하기 위해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실리카겔이 선보인 이번 신곡에서의 ‘달’이라는 단어도 이 맥락에 해당되는 음악적 키워드처럼 보인다. 아마 실리카겔은 이번 <두개의 달>로 본인들의 내일을 설명하고 있는 듯처럼 보인다. 마치 사람들이 이제까지 들어온 곡이 본인들의 전부가 아니라는 듯.
최근엔 “특정장르로 분류하기 힘든 개성 있는 스타일”, “수년 간 홍대에서 본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밴드다” 등의 호평 속에 EBS ‘스페이스 공감’의 2016년 ‘5월의 헬로루키’로 선정되었다. 신예 밴드로서 착실한 노선을 밟으면서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스타일 역시 영민하게 지켜가고 있는 실리카겔. 올해 디지털 싱글 <두개의 달> 발매 이후 더욱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여전히 성장 중인 이들은 사람들이 한 번도 닿아본 적없는 달의 뒷면을 곧 보여줄 것만 같다. 지금, 실리카겔과의 인터뷰.
‘too moons’
두은정 : <두개의 달>은 러닝타임이 6분이 넘는 대곡이에요. 실리카겔은 곡 작업에서 멤버들의 참여도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긴 곡을 멤버들끼리 어떤 식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완성해갔는지가 궁금하네요.
구경모 : 이 곡은 짜임새 있게 갔다기보다 기본 틀만 설정을 해놓고 멤버들 각자 성격, 특성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주할 수 있게 곡을 ‘놔두었’어요. 곡 자체의 내러티브나 자연스러움을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을 했죠. <두개의 달>은 비교적 자연스러운,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곡이에요.
두은정 : 편곡 과정에서 멤버의 참여로 변화가 된 부분이 있다면.
구경모 : 드럼의 경우, 제가 드럼을 미리 찍어놓은 데모 음원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건 연주하기 불가능한 파트라는 판단을 내린 후 드러머인 건재가 자기가 알고 있는, 할 수 있는 선에서 합리적으로 베리에이션과 변화를 주었죠. 드럼은 그래서 전반적으로 숨이 들쭉날쭉해요. 반복적이라기보다는 좀 더 자유로워 보이는 파트 중에 하나 중에 하나예요.
두은정 : 그런 걸 의도한 건가요.
구경모 : 건재 같은 경우 평상시에도 드럼을 프리하고 재즈스럽게 연주하는 편이라 그 부분에 대해선 어느 정도 감안을 하고 일부러 작업을 했어요. 기타 파트는 두 기타리스트인 웅희와 민수가 도와줬는데, 민수가 주로 메인 테마를 연주하는 파트를 맡아줬어요. 맨 처음에는 다소 멍청해 보이고 엉뚱해 보이는 뉘앙스를 원했었는데 같이 녹음, 편곡을 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논조가 확실한 톤이 됐어요. 이를테면 좀 더 쭉쭉 뻗어나가는 느낌이랄까요. 각종 신스와 여러 가지 퍼커시브(percussive)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면에서는 신디사이저를 맡고 있는 한주가 많은 도움을 줬죠. 한주 같은 경우는 이 곡을 어떻게 더 재미있고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내줘서 지금 같은 다채로운 무드가 형성된 것 같아요.
서로가 상반되기 때문에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되는 모습을 유도하려고 ‘충돌’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경모)
두은정 : <두개의 달> 앨범 발매 소개 글을 보면 유난히 ‘충돌’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돼요.
구경모 :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에 있던 좋은 생각들이 모이고 융합이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그게 ‘새로운 것’이 더 좋은 것이 된다고 생각해요. 만약 ‘이 좋은 요소들이 서로 상반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단어죠. 서로가 상반되기 때문에 부딪히고 무언가 어긋나고 어딘가 부서지고 파괴되고 다시 합쳐지기도 하면서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되는, 그런 모습을 유도하려고 했어요.
두은정 : 이번에 레이블에 소속된 후 경모 씨 곡으로 첫 앨범을 내게 된 기분은 어떤가요.
구경모 : 제가 붕가붕가레코드 소속이었던 밴드 ‘아침’을 굉장히 좋아해요. 지금은 ‘아침’ 대신 밴드 ‘별양’을 하고 계신 권선욱 씨를 특히 좋아하고요. 한때 연정을 품었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로요. (김건재 : ‘아침’은 같이 자취할 때 매일 아침마다 들었었어요. 그래서 항상 ‘뭐냐, 그거 또 듣냐(웃음)’라고 하곤 했죠.) 그래서 좋아하던 팀이 소속되어있던 붕가붕가레코드에 들어가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감격스러운데 이곳에서 내게 되는 첫 디지털 싱글이 ‘구경모’의 곡이라는 게 감격스럽더라고요.
두은정 : <두개의 달> 발매는 여러모로 기념비적이네요.
김한주 : 우선 경모 형이 작곡한 이 곡이 실리카겔을 대표할 수 있는 구실을 톡톡히 하게 됐죠. 저는 그 사실이 참 좋아요. 곡과 더불어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내보이는 자체가 저희에게는 처음이니까. 여러모로 <두개의 달>을 발표하면서 팀 역사에 ‘처음’이 된 이슈가 많아요.
김건재 : 제가 실리카겔로서 실리카겔을 좋아하는 이유가 ‘긴 음악’에 있었는데 요즘 이 친구들이 자꾸 짧게 짧게, 있는 것마저도 자꾸 토막내서 내더라고요. 한주가 보통 만드는 7분, 8분짜리 곡은 아니지만 간만에 6분짜리 대곡이 나왔네요. 3분이면 음악을 뭘 들죠?(웃음) 사실 이 발언은 스스로를 까는 발언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제가 3분대의 곡을 만들었기 때문이죠. 아무튼 결론적으로 러닝타임이 긴 음악이 발표되어서 좋고, 개개인이 자유롭고 즐겁게 놀면서 연주할 수 있는 분위기의 곡이라 더 좋습니다.
최웅희 : 제가 옛날부터 ‘내가 음원을 낸다면’을 가정하고 생각한 게 있어요. 뮤지션에게 첫 음원이이라는 게..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첫 키스를 아무나 하고 싶다기 보다 진짜 의미 있는 사람과 하고 싶다는 생각.(웃음) 그런 마음 덕에 제 역사에 있어서의 첫 음원은 꼭 애착 있는 사람들과 애정 있는 곡으로 하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로 그게 그대로 이루어져서 너무 좋아요. 내 인생 첫 음원을 만들었는데 그게 ‘실리카겔’이라니.
이건 음악을 혼자만 하거나 친구들끼리 할 때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에요. (웅희)
두은정 : 데뷔 EP 발매 이후 반 년 만에 소속사가 생긴 거죠. 그간 인디신의 걸출한 뮤지션들을 배출해온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이하 붕가붕가)와 함께 하게 되었어요.
김건재 : 원래 합주실 벽에 기대 있거나 하는데 이제는 합주하다 나와서 널브러져 있을 소파가 생겨 참 좋습니다.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타닥타닥’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니까 ‘그래, 이제 나도 열심히 업무를 시작해야지!’하는 생각도 들고요. 사실 제가 밖에 나오는 자체를 생각보다 안 좋아해서 나가더라도 혼자 돌아다니는 편이거든요. 소속사가 생기니 그 안에서 회사 식구들과 일종의 동질감, 연대의식이 느껴져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실리카겔 외에도 다른 밴드의 세션을 겸하고 있는데 세션 활동을 하러 간 공연장에서 붕가붕가 소속의 뮤지션을 만나는 경우가 있어요.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면 정말로 같이 한 솥밥 먹는 식구 느낌이 드는 기분이 들죠. 무엇보다 저는 게임 같은 걸 해도 길드 하나를 들어가면 오래 버티는 습관이 있는데, 길드가 사라지거나 도산하지 않는 이상은 계속 붕가붕가 소속으로 있을 것 같네요.(웃음)
김한주 : 사실 붕가붕가에 ‘도전’을 해보자고 의견을 제시한 게 저예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건강하게 일이 진행이 되어 기분이 좋아요. 앞으로도 구성원들과 평화롭게 음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웅희 : 제 차례인가요? 음, 모두들 가족이 생겼을 때의 기분을 생각해 보세요. (실리카겔 : 우리에게 질문하는 거예요?) 네. 질문한 거예요. 저는 우리가 진짜 가족 같아요. 곰사장(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님이 우리 아버지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진짜 가족 같아서 너무 좋아요.
김한주 : 사실 어머니가 곰사장님이라면?
최웅희 : 그건 싫어, 다들 놀릴 거 같아.(웃음) 결론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아까 건재 형의 말처럼 소속감이 느껴지는 것과 동료애가 넘쳐나는 것. 그래서 너무 좋아요. 이건 음악을 혼자만 하거나 친구들끼리 할 때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에요. 솔직히 이런저런 밴드를 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해본 적은 없거든요.
김한주 : 웅희랑 저랑 예전에 스쿨밴드를 같이 했었어요.
최웅희 : 맞아요. 그런 식의 경험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내가 평생하고 싶은 밴드다’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죠. 밴드를 이렇게 진지하게 한 적도 처음일 뿐이 더러 제가 복덩이인지 밴드에 들어오자마자 겹경사도 많고.(일동 웃음) 그중 하나가 붕가붕가와의 협업이기도 하고요. 너무 좋은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music video
두은정 : 뮤직비디오의 스토리와 곡의 내레이션은 같은 선상에서 같은 시기에 작업이 진행된 것인가요.
구경모 : 맨 처음 <두개의 달>이라는 곡을 계획했던 것은 정확하게는 2014년이에요. 곡으로 완성되어 내보여진 것은 올해, 2016년이죠. 사실 <두개의 달>을 쓰면서 가장 중요했던 요소는 ‘난쟁이’였는데 이 난쟁이의 운명에 대해서는 곡을 쓸 때부터 결정이 되어있었어요. 난쟁이가 나타나고 결국엔 사라졌다라는 식의 기승전결이 있는 간단한 내용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고요. 지금의 뮤직비디오 시나리오처럼 구체적인 스토리가 나온 건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죠.
cover
-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가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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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실리카겔
발매일 2015.08.21.
두은정 : 독특한 패키지의 커버로 주목받아온 실리카겔에게 커버에 관한 질문을 빼놓을 수 없죠. 지난 EP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가지 시각>에 이어 ‘이규찬’ 씨과 실리카겔 VJ 멤버 ‘이대희’ 씨가 공동으로 이번 커버 작업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이 두 명의 디자이너가 하나의 결과물을 위해 어떤 피드백과 작업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네요.
김한주 : 여기 있는 구성원 외에 이규찬 군은 EP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가지 시각> 때도 디자이너로써 참여를 했었고 이번에도 저희가 디자이너로써 섭외를 하게 됐어요. 이대희 형은 실리카겔 VJ 멤버이고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죠. 이번 <두개의 달>은 그 두 명이 커버 디자인 담당으로써 긴밀하게 작업을 한 케이스예요. 아무래도 규찬이가 먼저 일종의 ‘재료’를 제시하면 대희형과 그 재료에 있어 괜찮을지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형태입니다. 이 둘이 멤버들에게 중간 과정 물에 대한 컨펌을 요구할 때가 있었는데, 처음 재료 자체를 만드는 건 규찬 군이었고 그걸 가공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아이디어 내는 것을 대희형과 함께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어요.
두은정 : 실리카겔 멤버들이 ‘이런 형태로 결과물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직접적으로 요구하진 않았나요?
김한주 : 커버 작업이 마무리될 때쯤 보여준 시안이 있는데 아무래도 모든 멤버들의 취향에 부합하기는 힘들었죠. 그래서 뻔할 순 있지만 곡 제목이 ‘두개의 달’이니까 ‘달’이라는 오브제를 직접적으로 이용해 디자인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으로 모아졌어요. 지금 선보이게 된 커버는 그런 식의 피드백 끝에 모든 멤버들이 의견이 통일된 이후 그 요구가 적절하게 들어간 결과물이죠.
두은정 : 앨범 발매와 함께 공개된 공연 발매 기념 공연 포스터와 앨범 커버가 ‘달’이라는 같은 오브제를 사용하되 노란색과 파란색의 상반된 색감을 차용하고 있죠. 이번 앨범에 있어 중요한 두 가지 디자인물이 이렇게 다른 색감과 형태를 사용한 것이 재미있어요.
김한주 : 디자이너들이 같은 형태, 다른 색깔의 시안을 여러 개 제시했었는데 팀 내에서 투표를 통해 결정하게 된 거라 전적으로 멤버들의 취향이 반영된 경우라고 할 수 있어요.
두은정 : 그동안 한주 씨가 작곡한 sister 같은 곡들은 프로그레시브한 느낌에 다소 강한 기조의 곡들이예요. 최근 <두개의 달> 발매 쇼케이스 당시 실리카겔의 전곡을 어쿠스틱 셋으로 편곡하여 진행했죠. 이 어쿠스틱 편곡을 진행하며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췄나요.
김한주 : 일단 어쿠스틱 셋을 준비하는 데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아무래도 정규 밴들 셋으로 하는 것보다 좀 더 한정된 소스로 음악을 표현해야 해요. 이 소스를 선별하는데 있어서나 정규 편성으로 채워낼 수 있는 공간감과 어쿠스틱을 비교하면 많이 다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장소와의 조화도 더 예민한 부분이 있어요. sister나 Ⅱ같은 곡은 속도감 있는 상황에 여러 가지 요소들이 들어차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어쿠스틱적으로 표현을 한다면.. 저는 풀어내고 싶었어요, 이 요소들을. 가운데 뭉쳐있는 이것들을 좀 더 넓은 공간에서 모든 것들이 여유롭게 이용될 수 있도록 말이죠. 현실적인 예를 들자면 템포를 평소보다 느리게 연주를 한다던지, 아니면 전반적으로 공간감은 여유 있는데 원래 있던 요소들이 빠지지는 않고 더 예쁘게 이용될 수 있는 그런 식의 편곡을 도모한 거죠. 소스 자체에서 향수가 느껴질 수 있을 만한 것을 사용했어요. 사건이 있으면 거기에서 연상되는 소리가 있을 수 있잖아요. 예를 들면 종소리가 들리면 ‘내가 성당 근처에 있구나’라는 즉각적인 연상이 되듯 말이에요. 구체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특정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로 인해서 바로 사람이 감정적으로 무언갈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가 편곡 작업에서 노력한 부분이에요.
두은정 : 웅희 씨는 처음 7인조였던 실리카겔 활동 중반에 투입된 세컨 기타리스트죠. 일명 ‘실리카겔 인턴 기간’이 끝나고 데뷔 EP 발매 이후 정식 멤버가 되었어요.
최웅희 : 처음은 실리카겔 내부에서 사운드를 보충해줄 세션을 쓰려고 의논 중에 한주가 저를 추천했어요. 다른 형들이 다행히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두은정 : 공연 때 기타 외에 다른 악기들도 함께 겸하고 있는데 실리카겔 공연을 하며 포지션이 변화된 건가요?
김한주 : 처음부터 건반도 함께 쳐주길 원했어요.
최웅희 : 그 외 연주하는 다른 악기들은 무얼 할지 딱히 정해놓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세션직을 한주가 처음 제의했을 때 ‘내가 그걸 왜 해. 그 팀 되게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잖아’라고도 했었어요. 다행히 막상 하다 보니 형들이 저를 편하게 대해주었고 그 와중에 앨범 발매 단독 공연도 잘 마무리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죠.
김건재 : 그건 단독 공연 끝나고 단체 채팅방에서 안 나가길래 계속할 건가 보다 생각했어요.(일동 웃음)
최웅희 : 사실 ‘아, 이제 끝인가 보다. 아니, 안돼. 여기서 끝날 순 없어!’라고 생각했죠. 채팅방에서 안 나간 건 제 시나리오에 있던 의도된 행동입니다.(웃음) 공연을 하다보니 점점 더 멤버가 되고 싶었어요. 마침 그때쯤이 실리카겔에서 연주 멤버를 5인조 체제를 생각하고 의논하던 참이라고 했어요.
김한주 : 원래 실리카겔 멤버들이 5인조로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우리만의 미묘한 개그 흐름이 있어요. 웅희가 엄청 웃기고 재밌는 친구거든요. 다행히 웅희군의 개그 스타일과 실리카겔의 대화 흐름이 꽤 잘 맞았어요. 만약 음악적으로 맞아도 얘기가 그런 식으로 안 통하면 적응이 안 돼서 밴드 생활이 힘들 수도 있으니까요.
두은정 : 드러머 건재 씨는 작년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가지 시각> 쇼케이스 당시 작곡한 곡이 공연 셋 리스트에 있었는데 그 이후엔 건재 씨가 작곡한 곡을 만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인지 곡 작업 스타일이 궁금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앨범에서 만나볼 수 있는지 여부도 궁금하고요.
김건재 : 우선 제가 만드는 곡은 대체로 긴 편이에요. 제가 작업하는 스타일이 다소 거칠어서 곡이 나올 땐 하루나 몇 시간만에도 끝내놓고 거기서 손을 안 대기도 하고요. 작업을 하다가 제가 처음 생각한 게 아니라는 판단이 내리면 그걸 전부 지우는 경우도 있어요. 원래 틀을 짜놓고 곡을 써본 적이 없는데 ‘산으로 가는 걸 막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최근엔 아예 섹션을 나누어 놓고 최대한 이 안을 벗어나지 말자고 생각하며 작업을 하고 있어요. 보통 제가 곡을 써서 멤버들에게 들려줄 때 ‘여기는 칠 수 있어? 여기서 리듬은 어떻게 가는 게 좋을까?’라고 묻곤 하죠. 사실 제가 막상 멤버들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구하지 않는 편이기도 해요.
김한주 : 실제로 쇼케이스 때 건재형이 작곡한 곡을 제가 편곡 정리를 했어요. 그런 식의 도움을 주려 한답니다.
김건재 : 최근 작업한 곡은 민수가 들어보고 괜찮았는지 시키지도 않은 기타 백킹트랙까지 데모를 떠주었어요. 경모도 베이스와 드럼 작업 트레이드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이런 멤버들 반응을 보면 최근 작업한 곡들은 전에 들려주던 곡보다는 다들 거부감을 덜 가지는 것 같아요.
두은정 : 아무래도 앞으로 정규 앨범에 수록될 곡들이 궁금하네요. 다음 앨범에 대한 일종의 힌트가 될 수도 있을 듯 한데, 다른 멤버들이 작곡해온 곡들과 아직 많이 노출되지 않은 건재 씨 곡과의 차별성이 있다면.
김한주 : 평소에 장난친다던지, 이야기하는 걸 보면 굉장히 짓궂은데 막상 곡에는 본인 내면에 있는 착한 모습이 많이 느껴지는 편이에요. 생각보다 원래 되게 착하거든요.(웃음) 짓궂게 대하는 모습 이면에도 되게 상냥한 모습이 있는데 그런 부분이 곡에서 잘 보여요. 제가 만약에 실리카겔이 아닌데 실리카겔 멤버 각각이 쓴 곡을 들려주고 ‘누가 제일 착할 것 같냐’고 물으면 건재형일 거예요. 선한 기운이 많이 느껴져요.
김건재 : 그러니까 곡만 듣고 만났다가는 큰일 날 수 있어요.(웃음) 제 개인적인 생각을 덧대자면 가사 같은 경우는 사람마다 풍기는 그런 기운이 있잖아요. 저는 주로 상냥한 어투의 반말을 많이 쓰는 편 같아요. 예를 들어 한주가 가사에서 ‘~하네요’라는 어미를 자주 쓴다면 저는 ‘~하네’를 주로 사용하죠. 곡의 배경은 소소함보다는 아무래도 웅장한 편을 좋아해요.
두은정 : 건재 씨는 실리카겔 외에도 다른 세션 활동도 겸하고 있죠.
김건재 : 해오(HEO)라는 팀의 세션도 했었고 지금은 주로 이채언루트의 세션 활동을 하고 있죠. 사실 개인적인 연주 측면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실리카겔에서 가장 저 다운 연주를 해요. 다른 팀 세션 활동을 할 때면 그 팀이 그간 만들어온 것들이 있다 보니 저는 당연히 그들이 그려온 그 선을 넘지 않아야 하죠. 실리카겔에선 좀 더 정직한 연주를 하는 저를 만날 수 있어요.
김한주 : 예전에 해오 세션 활동을 할 때 건재형의 공연을 봤는데 정말 잘 치더라고요. 확실히 다른 매력이었어요.
두은정 :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실리카겔의 향후 활동 계획은요.
구경모 : 올 하반기에 정규 1집을 계획하고 있어요. 지금처럼 재미있는 음악들로 구성될 것이고 발매를 기점 삼아 활동 범위를 차차 넓혀갈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