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ho4

  • Artist Teho
  • Release2023.11.30
  • Genre Jazz
  • LabelstudioLOG
  • FormatAlbum
  • CountryKorea
  • 1.이진법으로 만든 신
  • 2.땅을 파헤치는 손
  • 3.Etruscan Dance
  • 4.Raving in 1798
  • 5.바닥에 닿지않는 걸음
  • 6.아름다운 강산
  • 7.어색하게 기울인 고개
  • 8.날개 아래 하얀 깃털
  • 9.보이지 않는 불

 

머리글

 

11월 16일 목요일

 

온종일 비가 내렸다. 오후에 잠시 코인 세탁소를 다녀왔는데, 거기서 스며든 한기가 시간이 지나도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나중엔 두통도 더해졌다. 건성으로 저녁을 차려먹고 매트리스로 기어들어갔다.

 

꿈에서 나는 어느 목조 주택의 중정에 서있었다. 안뜰이라기보다는 옥외 수전이 있는 시멘트 마당이었다. 간유리가 끼워진 흑단색 미닫이문들이 마당을 디귿자로 둘러싸고 있었다. 밤이었고 간유리 너머로 형광등 조명 아래 흐릿한 실내를 누군가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다. 그중 열려있는 문 앞으로 다가가서 결국 그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스웨트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삼십 대쯤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인상이 좋은 한국계 혼혈의 얼굴이었다. 국적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언젠가 당신이 한 번 들를 거라고 요셉이 얘기했어요, 그녀가 한국어로 말했다. 문간에서 잠시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곧 나는 집안으로 초대되었다. 쪽마루와 연결된 문턱을 그녀가 손으로 짚을 때 백금 반지 두 개가 각기 다른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걸 보았다. 하나는 작고 빨간 루비가 박혀있었다. 안에서 기다리던 한국인 어머니가 나를 반겼다. 우리 셋은 함께 이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나무 계단 입구 왼쪽 붙박이 책장에 낡은 책이 빽빽이 꽂혀있었다. 이층에 도착했을 때는 화창한 한낮이었다. 방 전체가 밝은 크림색 무광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활짝 열어둔 여닫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의 각도와 맞은편 건물 풍경을 보자마자 나는 직감적으로 이 집이 흐로닝언 광장에서 마티니 성당 북쪽으로 이어지는 아우드에빙 스트라트에 놓여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오월 중순이라는 것도. 창가에는 나무 요람이 놓여있었고 모녀가 나를 그 방으로 데려온 이유는 갓난아기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기 얼굴이 정면으로 보이는 방향으로 다가섰다. 몸집이 새처럼 작고 귀여운 아기였다. 그뿐만 아니라 자세히 보니 정말로 몸이 새와 같았다. 처음에 포대기 담요로 보였던 것은 사실 검정과 은은한 갈색 그리고 윤기 있는 회색과 흰색이 섞인 깃털이었고, 가늘고 연붉은 다리와 몸의 비례에 잘 맞는 조그맣고 귀여운 사람 아기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나는 양손을 모아 샘물을 떠마시는 모양으로 조심히 아기를 감싸 들어 올렸다. 아기는 들릴 듯 말 듯 조용한 숨을 쉬며 내 두 손안에 폭신하게 누워 잠들어 있었다.

 

꿈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안대를 풀고 시계를 확인하고 다시 돌아온 십일월의 이쪽 세계를 고개 돌려 한 바퀴 둘러본다. 아기새, 혹은 새아기,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모를 그 어린 것의 보드라운 느낌과 온기가 손에서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 몇 분간의 얼떨떨한 시차 적응 끝에 나는 아무래도 저쪽이 꿈, 이곳에 거주하는 상황이 현실이 맞는 것 같다, 고 마음을 굳혔다. 어느새 양손에는 다시 냉기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아차, 테호의 새 음반 소개 텍스트를 오늘까지 유통사로 넘겨야 한다. 그런데 아까 그 꿈에 어떤 메시지랄까 그런 게 있었나, 전송 단추를 누르기 직전에 그런 생각이 끼어든다. 잘 모르겠다. 암시는 현실의 문을 통과할 때 비로소 암시로 드러나곤 한다. 즉흥음악에는 어떤 메시지가 있는가, 어찌 보면 꿈에 대한 질문과 비슷하다. 많은 부분 무의식과 얽혀있고, 의미나 기능이 꽤 분명해 보일 때조차 소스 코드 분석이 어렵다. 즉흥음악에 따라붙는 표제나 해설은 아무리 잘 써도 사후약방문 혹은 쩨쩨한 변론처럼 읽힌다. 차라리 나는 필립 로스의 <왜 쓰는가>를 인용하고 싶어졌다. ‘순전한 장난기’와 ‘죽을 듯한 진지함’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입니다, 라는. 나는 앞서 작성했던 글을 모두 지우고 대신 오늘의 꿈 이야기를 쓴다. 이제야 테호의 음악과 비슷해졌다. 마침표. 전송.

 

(김성완)

 

Credits
작곡 민상용 깅성완 이태훈 진수영

편곡 민상용 김성완 이태훈 진수영

Recorded at studioLOG

Mixed and Mastered by 민상용 at studio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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