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Inside #3
‘신세하(Xin Seha)’, 과거를 찢고 불쑥 튀어나온 슈퍼괴짜 미래소년
‘??!!??!!??’
몇 해 전, 정확히는 2015년 초였다. 유튜브를 통해 ‘신세하(Xin Seha)’를 처음 만난 순간의 느낌은 정말이지 딱 이랬다. ‘맞닿음’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였다.
<신세하(Xin Seha) / 맞닿음> 공식 뮤직비디오
아직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신세하의 뮤직비디오다.
원채 특이한 캐릭터들이 넘쳐나는 동네가 인디펜던트/언더그라운드 씬이다. 2000년 언저리부터 이 동네에 머물며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껴온 만큼 별의별 별종들을 다 만나봤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별종은 또 처음이었다. 내심 ‘아, 언젠가는 같이 한 번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해가 바뀌었고 신세하의 소속사인 ‘Greater Fools Records’와 우리가 함께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윽고, 그의 2016년 싱글인 <티를 내 (Timeline)>의 공식 코멘터리를 내가 쓰게 되면서 이 개인적 바램은 결국 실현되었다.
신세하(Xin Seha). 레이블 ‘Greater Fools Records’ 소속의 음악가다. 1993년생의 젊은 피로 가수, 작곡가, 비트메이커, 프로듀서다.
신세하(Xin Seha)
인간 신세하가 일상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는 나로선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본인의 음악으로 발화하는 ‘신세하’라는 기믹(Gimmick)은 굉장히 재미있다. 신스팝, 뉴웨이브, 훵크(Funk), 브레잌스(Breaks), 시카고 하우스, 로맨티시즘, 레트로, 힙(Hip), 프린스, 마이클 잭슨, 스톤즈 스로우(Stones Throw) 레이블,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 등 다양한 키워드들을 아무런 맥락 없이 산발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다분히 복합적인 요소들의 산물인 듯한 음악의 스타일, 80년대 뮤직비디오에서 튀어나온 듯한 패션과 포즈, 그 시대 흑인들을 연상케 하는 남성적인 구레나룻과 이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야릇하게 귓가를 핥고 깨무는 중성적 뉘앙스 가득한 보컬, ‘청춘’으로 상징화되는 소년의 이미지까지. 대체 어떻게 이런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 걸까. 단순히 자신의 기호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탄생한, 본연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라면 그것 자체로 흥미롭고, 행여 치밀하게 계산되어 창조된 캐릭터라면 그건 “신세하는 천재”임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뉴욕의 포토그래퍼 Jamel Shabazz가 촬영한 1981년의 브루클린 소년들
올드스쿨 힙합 문화에 대한 이해나 관심 유무에 따라 X나 멋있어 보일 수도, 혹은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사진이다.
아무튼 신세하는 이런 포즈의 달인이다. 거울 보며 연습이라도 하는 걸까 싶다.
*사진 출처: Red Bull 공식 홈페이지 (redbull.com)
이 슈퍼 별종(Super Freak)*이 그 특유의 개성과 재능을 처음 드러낸 것은 현재 ‘Greater Fools Records’의 동료 아티스트인 ‘김아일(QIM ISLE)’과의 작업을 통해서였다. 이전에는 다분히 개인적인 ‘습작’ 수준의 작업물들을 텀블러 등에 업로드하고 있었는데 그걸 듣고 ‘뻑이 간’ 김아일이 자기 앨범을 같이 만들자고 ‘꼬셨다’. 그 결과물이 2014년에 발매된 ‘김아일’의 첫 정규작 <Boylife In 12”>를 통해서였다. 80년대 뉴웨이브의 영향을 짙게 받은 듯 몽롱함 가득한 신스 사운드와 심플하지만 차진 리듬 워킹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당시 한국 힙합 씬에선 도무지 유사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참신했는데 때로는 추상적인, 때로는 펑키한 바이브를 담은 그 모든 멋진 비트들이 모두 당시 겨우 스물두 살이었던 신세하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슈퍼별종(Super Freak)은 싱글 ‘티를 내 (Timeline)’의 소개글에서 내가 처음 썼던 표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nk–mqXxrE
<김아일(QIM ISLE) / V*$*V> 공식 뮤직비디오
김아일은 레전더리 힙합그룹 ‘ATCQ’의 래퍼 ‘큐팁(Q-Tip)’을 연상케 하는 랩을 한다.
그리고 2015년. 필자가 ‘맞닿음’ 뮤직비디오를 처음 본 그 해다. 이 노래가 담긴 본인의 처녀작 <24Town>이 세상에 공개된 해이기도 하다. 이 앨범에 대해서는 예전에 썼던 글의 일부를 인용해본다.
“처음으로 온전히 자신의 것인 이 앨범을 통해 마침내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표출한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독특한 개성뿐 아니라 컨셉트, 음악, 비주얼 등 모든 예술적 영역을 스스로 관장하는 프로듀서로서의 영민함이 이 데뷔작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뉴웨이브, 신스팝, 훵크(Funk) 기반의 댄스뮤직 등 80년대의 유산들에 시선을 두고 이를 감각적으로 재해석한 사운드는 역시나 이 시기의 이미지들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한 패션, 비주얼을 촉매 삼아 강렬한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수록곡 ‘맞닿음’, ‘내일이 매일’ 등의 뮤직비디오에서 나타나는 복고풍의 패션, 보깅(Voguing) 댄스, 키치함 가득한 포즈와 카메라워크 등이 음악과 혼연일체가 되는 그 순간, 우리는 ‘신세하’라는 전대미문의 캐릭터를, 그 진수를 비로소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앨범이 그저 그의 ‘의식의 흐름’에 따른, 작업하던 시점에서 가장 흥미 있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자연스레 표현한 것일 뿐 딱히 의식적으로 특정한 장르, 스타일을 추구한 결과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신세하(Xin Seha) / 내일이 매일> 공식 뮤직비디오
듣고 있노라면 이태원 케잌샵으로 달려가고 싶어지는 노래다.
올드스쿨 패션과 포즈, 떡대 좋은 형들(?)의 보깅 댄스까지 비디오의 비주얼도 쩐다.
이 앨범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음악가 신세하의 미덕은 자신이 동경하고 좋아하는 과거의 유산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되 그저 ‘모사’의 수준에서 멈추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그가 레퍼런스로 삼고, 또 변주해온 그 모든 요소들은 이미 다른 많은 음악가들 역시 수도 없이 써오지 않았나. 신세하의 스타일은 분명 과거의 유산들을 바탕으로 쌓아 올려진 것이지만 그 속에는 신세하 개인의 고유한 시선과 이에서 비롯된 타인들과는 다른 해석이 함께 존재한다. 이를테면 같은 풍경을 보며 그린 다른 관점의 그림인 셈이다. <24Town>은 불과 처녀작일 뿐으로 이 작품만으로 ‘신세하는 이런 음악가’라고 규정하는 것은 썩 바람직하진 않을 것이다. 동시에 이 앨범은 대단히 호불호가 갈릴 만한 스타일을 담고 있어 ‘보편적 감성에서 좋은’ 음악은 아니라는 확실한 태생적 맹점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이 작품이 ‘신세하’만의 뚜렷한 개성을 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신세하(Xin Seha) / 대-인 Dance (Xin the Shuffle Lover)> 라이브 @ 온스테이지
프린스를 연상케 하는 곡으로 쫀쫀한 질감의 기타 리프는 ‘혁오’의 프론트맨 ‘오혁’이 연주했다.
2016년 초반에 공개한 싱글 <티를 내 (Timeline)>는 전작들에서 보여준 본인의 개성이 결코 순간의 관심에서 기인한 휘발성의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을 들여 섬세히 세공해가고 있는 무엇임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영롱하고 로맨틱한 신스 사운드와 몸을 들썩이게 하는 펑키한 리듬이 공존하는 이 노래는 미니멀 하우스, 신쓰 훵크 등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던 전작에 비해 뉴웨이브, 슈게이즈팝, 트위팝의 노선이 좀 더 도드라지는 인상을 준다.
<신세하(Xin Seha) / 티를 내 (Timeline)> 공식 뮤직비디오
흥미로운 점은 이 곡의 리믹스 버전을 ‘이집션 러버(Egyptian Lover)’가 작업했다는 점이다. 80년대 LA 댄스뮤직 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그는 분명 신세하가 자신의 캐릭터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크건 작건 어떤 영향을 끼쳤을 터. 그런 의미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협업인 셈이다.
싱글 발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한 스테이지에 서는 이벤트가 성사되었다. ‘스투시 서울’과 공연 기획사 ’20/20’의 주최로 무려 ‘스톤즈 스로우(Stones Throw)'(!!) 레이블의 20주년 기념 파티가 서울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창립자인 ‘피넛 버터 울프(Peanut Butter Wolf)’를 위시하여 ‘날리지(Knxwledge)’, ‘얼 스웻셔츠(Earl Sweatshirt)’ 등 대단한 아티스트들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바로 이 라인업에 ‘이집션 러버’가 포함되어 있었고, 신세하 역시 오프너로 이 이벤트에 참여해 무대에 올랐다. 이 역시 꽤나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담을 조금 덧붙이자면 故’제이딜라(J Dilla)’를 위시하여 ‘매드립(Madlib)’, ‘매드빌런(Madvillain)’, ‘메이어 호손(Mayer Hawthorne)’, ‘턱시도(Tuxedo)’ 등 이 아이코닉한 레이블을 통해 레코드를 발표해온 굉장한 아티스트들의 팬인 필자는 이 쇼를 너무나도 행복한 마음으로 즐겼다.
이런 아티스트들을 라이브로 보는 날이 내게도 올 줄이야, 실로 행복한 밤이었다.
피벗 버터 울프라니! 피벗 버터 울프라니!!!! ㅠㅠ
신세하의 새로운 EP <7F, the Void>가 곧 발매를 앞두고 있다. 그가 최근 네이버 ‘뮤지션리그’에서 선공개한 수록곡 ‘Balcony’를 통해 감지되는 2017년의 신세하는 <24Town>의 신세하와는 분명히 다르게 느껴진다. 빨리 새 앨범 전체를 뜯어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증폭된다.
Balcony by 신세하 (Xin Seha) ◀ 바로가기
<신세하(Xin Seha) / Balcony> @ 뮤지션리그
개인적으로는 이 노래를 들으며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를 연상했다.
이 슈퍼괴짜는 과거를 찢고 불쑥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존재가 결코 아니며 현재에 존재하며 동시에 미래를 보는 존재다. ‘혁신’까지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롭고 신선한 것을 만들어내 동시대 모든 청춘의 감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극한다. 행여 그동안 자신이 일상적으로 접해온 ‘보편적 감성’의 무엇이 지루하다고 느껴졌다면, 신세하의 음악과 대면해보기를 권한다. 그를 좋아하게 되건, 혹은 그 반대이건 간에 분명 그것은 당신에게 충분히 새롭고, 또 자극적인 경험이 될 테니까.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Deep Inside’ 코너의 모든 글은 에디터의 개인적 주관을 반영한 것으로 본사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일절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