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Big Thing / 이것은 새로운 세계, YESEO(예서)
국내의 전자음악씬은 물론이거니와 그 안에 속하는 여성 전자음악 아티스트는 ‘씬’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전자음악’의 카테고리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새로움이 시작된다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성별로써, 장르로써, 하나의 파트로서의 소비 당하지 않고 지금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의 태동. 최근 씨피카, 예서 같은 젊은 일렉트로닉 아티스트의 등장은 어쩌면 미미하지만 끈질기게 이어져온 시작을 잇는, 새로운 물결에 대한 예고 같기도 하다.
전자음악씬의 새로운 기대주인 YESEO(예서)는 정식 음반 외에도 자신의 데모 작업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네이버 뮤지션리그, 사운드 클라우드 등을 통해 빠르게 이름을 알려왔다.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은 퓨쳐베이스 아티스트 ‘imlay’와 함께 작업한 결과물들은 새로운 시도에 대해 두려움 없는 그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개 경험해본 적 없는 것에 대해 ‘새롭다’고 정의 내리곤 한다. 상상해본 적 없던 새로운 세계의 시작, YESEO(예서).
두은정 : 예서 씨가 처음 음악을 해야겠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예서 : 대개 어릴 때 가수가 꿈인 경우가 많잖아요.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거나 남들 앞에서 박수받는 걸 좋아한다던지. 제가 그런 타입이었어요. 그렇지만 그런 끼를 억누르고 내내 모범생처럼 지내다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상태에서 일종의 반항의 시기가 온 거죠. 고등학교까지 인문계로 간다면 정말 영영 음악을 못 할 것 같아서 진학을 앞두고 부모님께 음악을 하고 싶다 말씀드렸어요. 아버지가 예고에 합격한다면 음악을 하게 해주겠다 하셨어요. 사실 안 붙을 줄 알고 그러신 거죠.(웃음) 결국 예고에 합격하게 됐고 광주 출신인 제가 서울로 올라오면서 음악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어요.
두은정 : 바라던 예술고에서는 어땠어요? ‘아,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 음악을 해서 좋아’라는 기분이었을까요.(웃음)
예서 : 사실 처음에는 아이돌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음악을 하고 싶었던 거거든요. 예고에 들어오면 다 악기도 다루었고 음악을 하던 친구들이니까 아이돌 음악이나 대중음악 얘길 하면 ‘쟤는 음악을 깊게 들을 줄 몰라’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더라고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주변 친구들처럼 댄스 음악보다는 알앤비 음악을 듣게 됐어요. 그런 장르는 처음 접해보는 거라 여러 아티스트의 음악을 많이 듣게 됐죠.
두은정 : 일렉트로닉 장르 음악은 어떤 식으로 시작하게 됐나요.
예서 : 성인이 되고 칩거하는 기간을 가지면서(웃음) 집에서 곡을 많이 썼었어요. 알바를 하고 그 돈으로 아이패드를 사면서 개러지 밴드(GarageBand)라는 앱으로 작업을 시작했었어요. 원랜 곡을 기타로만 쳤었는데 ‘Ásgeir(아우스게일)’의 ‘King And Cross’라는 곡을 듣게 됐거든요. 그게 드럼만 미디 드럼이고 신스가 쓰이는 어쿠스틱한 셋의 음악인데, ‘나도 이렇게 곡을 쓰면 뭔가 새로운 느낌이 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개러지 밴드로 작업을 하게 된 거죠. 그게 트랙을 최대 8개까지만 만들 수 있어요. 한참 부족하니까 이후엔 로직(Logic)으로 작업을 하게 됐죠. 재작년, 그러니까 2015년 10월부터예요. 일렉트로닉 장르의 작업은 그때부터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두은정 : ‘꼭 전자음악을 해야만 해’같은 결연한 시작은 아니었네요.
예서 : 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방향이 생기게 된 거죠.
두은정 : 그런 의미에서 전자음악을 하는 것이, 예서라는 뮤지션이자 사람 그 자체에게도 어울리는 것 같나요?
예서 : 사실 제가 힘이 있고 기승전결이 있는 보컬이 아니잖아요. 원래 예고를 다닐 때만 해도 비욘셰, 셀린 디온 같은 스타일의 보컬을 좋아했거든요. 아무래도 집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크게 부를 수가 없잖아요.(웃음) 그래서 이런 스타일이 된 거예요. 처음에는 이런 목소리를 녹음해서 듣는 게 싫었는데, 지금은 재미있다고 여겨져서인지 제게 어울리는 것 같아요.
두은정 : 그렇다면 앞으로 예서라는 뮤지션에게 장르적인 변화, 곡 스타일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도 있겠네요.
예서 : 확실히 있을 것 같아요, 나중이라면. 곡을 처음 쓸 땐 거의 한글 가사가 백 퍼센트였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가사를 굉장히 중요시 생각했거든요. 미디를 시작하면서는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빌보드 차트에 있는 노래를 내가 미디로 비슷하게 찍어낼 수 있단 사실이 재미있던 거죠. 지금은 미니멀하다기보다는 뭔가 많이 나오는 요소의 음악인데 아마 나중에는 처음 하던 음악과 비슷해지지 않을까요.
두은정 : 사실 ‘예서’라는 뮤지션이 알려지게 된 시점이 네이버 뮤지션 리그를 통해서이기도 하고, 그 시점에 발매된 ‘Bud’라는 싱글도 한층 더 관심을 받게 된 계기가 된 것 같거든요. 함께 수록된, imlay가 작업한 리믹스 버젼까지도 예서 씨 원곡과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예서라는 뮤지션과는 같고도 다른 결을 가졌단 생각이 들어요.
예서 : ‘Bud’는 사실 피아노 곡이었는데요. 이게 이렇게 완성이 된다면 내가 일렉트로니카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해서 편곡을 넣게 된 거죠. 사실 이 원곡이 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심심하다고 느껴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일렉트로니카라는 장르에 이 노래를 넣을 거라면 리믹스 버전을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고, 고민 끝에 imlay 씨와 함께 작업하게 되었죠. 리믹스 작업 기간을 그 친구에게 일주일 정도를 줬어요. 아주 타이트했죠.(웃음) 그 친구는 아무래도 짧은 작업 기간이 당황스러웠을 테고, 애초에 원곡을 크게 바꿀 생각도 없던 것 같아요. 이 곡을 자기 스타일화 시켜서 좀 더 재밌게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고요.
두은정 : 리믹스 버젼 ‘Bud’는 싸비 부분에 변주가 계속 있죠.
예서 : 네, 맞아요. 그게 imaly가 주로 본인이 하는 스타일을 가져와서 잘 버무린 것 같아요. 저는 그 후렴 부분 작업하는 걸 옆에서 듣고 있었거든요. 만드는 순간을 보고 있는데 그게 굉장히 좋았어요. HONNE(혼네) 공연에 오프닝 게스트로 섰을 때 그 리믹스 버전을 틀었거든요. 처음 2절까지는 원곡을 들다가 브릿지부터 리믹스 버전이 섞이게 했어요. 누군가는 리믹스 버전 ‘Bud’를 듣고 꽃봉오리가 자라나는 과정을 빠르게 감아서 재생한 것 같단 표현을 한 게 재밌었어요.
두은정 : 이번 싱글 <No City For Love>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자면, 예서 씨의 일상에서 영감을 받은 거죠?
예서 : 네, 이번 EP는 인스트루멘탈을 제외하고 총 세 트랙인데 세 트랙 전부 다 그래요. 한 트랙씩 설명해보자면, 첫 트랙 ‘No City For Love’라는 곡 첫 부분 가사가 ‘Anything can’t make me excited’예요. 그게 한국어로 ‘이제 어떤 것도 나를 흥미롭게 하지 않아’라는 내용이고 사실 이게 이 곡 내용의 전부이기도 해요.(웃음) 후렴엔 ‘I want more, I don’t want to baby’라는 가사가 반복되는데요. 성인이 되고 나니 뭔갈 얻으려면 또 뭔가 내가 싫어하는 걸 하게 되더라고요. 그걸 느끼고 충격을 받은 거예요. 이게 스물한 두살 때쯤 만든 곡인데, 더 이상 아무것도 흥미롭지 않고 근데 내가 무언갈하고 싶어질 때 또 무언갈 포기해야 하고 이런 우울하고 허무했던 시기가 담겨있어요. 일종의 일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두 번째 트랙인 ‘Fxxx With Kiss (Skit)’라는 곡은 누군가와 일적으로 미팅을 하게 될 때면 예서 씨는 어떠어떠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그렇게 정의 내려지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헛소리하지 마!’라는 일침이 담긴 내용이고.(웃음) ‘Fill My Holes’는 <님포매니악>이란 영화를 보고 쓴 곡이에요.
두은정 : 저도 <님포매니악>을 재밌게 봤어요. 예서 씨는 어땠어요?
예서 : 그 영화 포스터에 ‘Fill My Holes’라는 카피가 있어요. ‘내 모든 걸 채워줘’라는 뜻인데, 그게 성적인 의미를 뜻한다기보다는 내 모든 외로움, 내 모든 구멍을 말하는 건데 그 영화를 보고 저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소재도 그랬고 내용도, 엔딩까지도 그렇고요. ‘No City For Love’와 ‘Fill My Holes’라는 곡 가사 구성이 거의 비슷해요. 그 작업을 할 때도 우울하고 허무한 감정을 느꼈어요. 그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을 보면서 너무 슬픈 거예요. 외로움을 성적으로 채우려고 하는 모습들 같은 거요. 물론 저는 그렇게 살지 못 했고 외로움을 채우는 장치도 그와 같지는 않지만, 외로움을 겪는 모습 그 자체에 은근한 동질감을 느꼈어요.
두은정 : 사실 앨범 얘기를 하면서 인생이란 게 일종의 등가교환 같다는 말이 나왔잖아요. 뭔가를 해냈을 때 후련함과 동시에 외로워지기도 하고요. 혹시 첫 앨범을 냈을 때도 그런 류의 허무감 같은 게 있었나요?
예서 : 제가 곡을 쓸 때 로직 프로젝트 파일명을 곡명으로 제대로 적는 게 아니라 작업한 그 날짜로 적어 저장하기도 해요. 확인해보니까 그게 5월 28일에 쓴 곡인데 발매를 7월에 했거든요. 굉장히 빨리 세상에 나오게 된 건데, 내려고 쓴 곡이 아니라 그 당시 쓴 곡 중에 처음으로 내는 게 좋겠다 싶어서 낸 거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사실 기대도 크지 않고 실망도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서 : 그럴 것 같아요. 편곡에서는 오히려 ‘여기에서 확 눈길을 끌만한 무드를 넣으면 좋겠다’같은 게 있는데 멜로디와 가사를 쓰는데 있어선 그러지 못할 것 같거든요. 저의 얘기나 제가 충격을 받은 얘기라든지(웃음) 영화에서 가져오거나. 결국엔 제가, 저를 통해서 느끼는 것들의 얘기를 쓰게 될 것 같아요.두은정 : 영화 얘기가 나온 김에 얘기해보자면, 예서 씨가 요즘 가장 영향을 받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예서 : 제가 주로 영향을 받는 게 영화, 영상이랑 사진과 단어. 그중에서도 단어가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함축된 것을 제가 풀어나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두은정 : 예서 씨의 곡만큼 공연 역시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아요.
예서 : 올해 정말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예요.
두은정 : 저는 사실 그게 궁금해요. 예서 첫 단독 공연의 첫 곡이 무얼까.
예서 : 와. 그게 공연의 주제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다를 것 같은데요. 앨범을 내고 그 앨범에 맞춰 하는 쇼케이스라면 앨범의 첫 번째 트랙에 있는 곡을 할 것 같고, 그냥 지금처럼 싱글 앨범을 발매하다가 공연을 하게 된다면, 뭔가 지금 드는 생각은 처음 냈던 그 곡을 할 것 같아요.
두은정 : 영상이나 사진 같은 매체가 포함된 공연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던데 라이브 공연이나 공연 영상을 보면서 영향을 받은 것이 있을까요.
예서 : 저는 음악과 관련된 유튜브 영상을 많이 보는 편인데 apc(에이블톤 라이브 디제잉 컨트롤러)라는 장비가 있는데 그게 트랙이 드럼 치는 부분만 나온다던가, 코드 트랙만 나온다던가 해요. 그걸 하나하나 섞을 수 있어서 분리되어 있는 것을 틀면 자기 마음대로 셋을 바꿀 수 있어요. 그걸 어떤 분이 하시는 하시는 걸 보고 나도 공연에서 저런 걸 해보고 싶다 생각한 적이 있어요. 전자음악을 하는 외국 아티스트들 경우는 항상 VJing 영상을 틀잖아요. 그런 영상들도 굉장히 열심히 보고 있어요.
두은정 : 공연 외에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예서 : 곡이랑 영상, 사진, 글이 하나가 된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게 올해의 목표예요. 그리고 원래는 제가 프로듀싱을 혼자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강박, 부담감이 있었는데 최근에 그게 많이 사라졌어요. 덕분에 다른 뮤지션들과 곡을 함께 작업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하반기나 내년부터는 합동 작업을 하면 좋겠다 싶어 이것저것 많이 들어보고 있어요. 다른 뮤지션들과 같이 곡을 쓰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찾아보는 중이에요. 무엇보다 제일 관심이 많은 건 다른 장르의 아트워크와 함께 하는 것이고요. 다들 많이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두은정 : 마지막 질문이에요. 이 인터뷰는 신인 뮤지션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여서 주로 마지막은 ‘처음’이나 ‘시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묻곤 해요. 그런데 예서 씨에게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고 싶네요. 내일은 뭐 할 거예요?예서 : 내일, 곡 쓸 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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