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오묘하고, 차갑지만 세련된. Marrakech가 빚어낸 사운드는 인센스 향처럼 뭉근하고도 고혹적인 매력이 돋보인다. 그들의 음악은 하나의 장소이자 풍경이고, 동시에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과도 같다. 때로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로, 때로는 야자수 가득한 휴양지로 우리를 안내한다.
다른 길을 걸어오던 두 사람이 만나, 음악이라는 공통 언어로 연결되었다. 각자의 성격과 삶을 대하는 방식은 다를지언정, 추구하는 음악적 취향과 방향성은 마치 쌍둥이를 보는 듯 닮아 있다. 두 명의 멤버가 하나의 가닥으로 작품을 만들어 가는데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근 발매된 [Colors]는 한층 더 성장한 Marrakech의 색감이 담긴 두 번째 EP이다. 2020년 처음으로 선보였던 EP [Shape]에서 그들의 모양을 그려 냈다면, 이번 앨범은 트랙마다 채색을 입히는 과정을 보여준다. Marrakech의 멤버 영욱과 성하를 만나 밴드 결성 에피소드부터 앨범 작업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간단하게 ‘Marrakech’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밴드 Marrakech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욱, 조성하입니다.
Q. 밴드 결성 계기가 궁금합니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 함께 활동하게 되셨나요?
성하 : 전공이 실용음악이라 대학교 입학 후, 학교생활을 하던 중 교양 수업에서 영욱이를 처음 만났어요. 과가 달라서 원래는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우연히 같은 수업에 배정되고, 심지어 옆자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됐죠. 취향도 성향도 잘 맞는다고 느껴져 팀 결성을 제안했는데 흔쾌히 동의했고, 그렇게 Marrakech가 되었습니다.
영욱 : 그 수업이 ‘법과 지식 재산권’이었는데, 옆자리다 보니 서로 필기한 내용을 보여주거나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금세 가까워졌던 기억이 나요.
Q. 밴드명 또한 독특한데 모로코의 도시 지명이 아닌 향수 이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글을 보았어요. 어떤 특징이 느껴지는 향인가요?
성하 : 약간 중성적인데 우디한 느낌이 강하고 독특해요. 성년의 날 선물로 받았는데 처음엔 저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향이라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가지고 있으니 써보기 시작하면서, 그 이후론 꾸준히 이 향수만 썼어요.
영욱 : 살짝 스파이시한 느낌도 들고, 겨울에 어울리는 향이에요.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현지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이국적인 향입니다. 지금은 많아졌는데 당시에는 이런 향이 흔치 않았거든요. 특유의 독특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어감도 좋아 팀명으로 정하게 되었어요.
Q. 음악을 들어보면 굉장히 이국적인데, 이런 그루브와 사운드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하게 되는 것인가요?
영욱 : 억지로 이국적인 무드를 풍기기 위해 애쓰진 않아요. 성하와 제가 처음 만났을 때, 통한다고 느꼈던 지점이 바로 음악 취향이 일치하는 부분이었거든요. 둘 다 외국 음악을 많이 듣고, 동경했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운드가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Q. 동기 부여를 위해 자주 듣는 장르나 아티스트의 앨범이 있나요? 평소에는 어떤 곡을 즐겨 듣는 편이신가요?
성하 : 공통적으로 프랑스 음악을 자주 듣습니다. 장르 또한 다양하게 듣는 편이에요. 샹송, 디스코, 하우스 등등 구분하지 않고 들으려고 노력해요. 최대한 편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영욱 : 아티스트를 꼽자면 Daft Punk를 가장 많이 이야기하게 돼요. Daft Punk는 팀 결성 초창기 때부터 저희끼리도 자주 언급했어요. 그리고 The Blaze라는 밴드의 음악에서도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Q. 데뷔 이후, 약 5년 정도는 소속사 없이 인디펜던트로 활동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러다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와 함께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영욱 : 활동을 이어가면서 ‘함께할 조력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때마침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에서 먼저 연락을 주셨고, 여러 차례 미팅을 거치면서 서로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 들어오게 되었죠.
Q. 인디펜던트로 활동할 때와 소속사에 합류한 이후, 차이가 있었을까요?
영욱 : 예전엔 모든 걸 직접 했지만 지금은 회사에서 저희가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하 : 저희가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을 먼저 살펴주시고, 신경 써 주신다는 점이 확실히 체감됩니다.
Q. 본격적으로 새로운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9월 16일, EP [Colors]가 발매되었어요.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성하 : 첫 EP [Shape]에서 음악적 모양을 그려냈다면 이번 [Colors]에선 그 안에 담긴 색을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저희가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리스너들이 음악을 듣고 스스로 상상하게끔 여지를 남겨두는 거예요. 예를 들면, 모양, 질감, 색깔. 이런 추상적인 것들을 어떻게 그려낼지 전적으로 맡기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모순적일 수 있는데 앨범명을 [Colors]라고 정했지만 사실은 색깔이 정해지지 않은 거죠. 저희가 마음대로 뿌려놓은 사운드에서 듣는 사람들이 직접 색감을 입혀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앨범명을 [Colors]라고 정하게 되었어요.
Q. 그러면 작업을 마친 이후, 제목을 짓는 편이신가요?
영욱 : 네, 저희는 그런 편이에요. [Shape] 작업할 당시, 수록되지 못한 곡들은 나중에 어떤 식으로 풀어볼지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추상적인 개념들이 더해져 윤곽이 잡히면 이걸 아우를 수 있는 제목으로 나타나는 편이에요.
Q. 첫 EP [Shape]을 작업할 때와 이번 [Colors]를 준비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영욱 : 이전에는 모두 싱글 단위로 발매했기 때문에 [Shape]이 첫 번째 ‘앨범’이었어요. [Shape]을 발매한 이후, 다양한 공연과 작업을 하면서 쌓은 데이터를 [Colors]에 녹이려고 노력했어요.
성하 : 성숙함이 더 들어간 것 같아요. 저희가 느끼기엔 기존보다 한층 더 원숙해진 모습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Q.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하셨던 부분은 무엇일까요?
영욱 : 다채로움? 5개의 트랙을 통해 Marrakech라는 정체성은 보여주되, 비슷하게 들리지 않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췄어요. 루즈하게 들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다양성에 초점을 두고 작업했습니다.
성하 : 맞아요. 각 트랙이 비슷한 톤으로 들리지 않도록 최대한 다채롭게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Q. 작곡/작사 또한 공동 작업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는 편인가요?
성하 : 대부분 즉흥적으로 이뤄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정확하고, 명확한 키워드는 진심으로 ‘좋다’고 느껴야 한다는 점이에요. 저희가 작업하면서 즐거워하고, 결과물이 맘에 들어야 한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에요. 그래서 괜찮은 것 같다든지 어느 정도 호의가 들어 있다면 그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상처받지 않아요. 한 마디를 만들더라도 진심을 다해 좋다고 느껴지면 거기서부터 즉흥 연주가 시작되고 끝까지 마무리하게 되더라고요.
영욱 : 그동안 작업하면서 느낀 것은 애매하게 좋은 건, 결국 오래 못 가더라고요. 반대로 즉각적으로 ‘어? 좋은데!’ 싶은 건 묻어 놓고, 나중에 들어봐도 좋더라고요. 작업할 땐, 확실한 게 무조건 맞다고 봅니다.
Q. 그 과정 속에서 다양한 의견을 하나의 갈래로 조율해 나아가는 두 분만의 방법이 있는지도 여쭤보고 싶어요.
영욱 : 사실 크게 조율할 일이 많지 않아요. 간극이 크지 않거든요. 서로의 말에 경청하고, 서로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이해도가 높아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잘 통합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손발이 더 잘 맞다고 느껴져요.
성하 : 처음에는 설명할 시간이 좀 필요했지만 지금은 싱크가 맞아요. 여담으로 하나, 둘, 셋하고 동시에 말하기 게임을 한다고 가정하면 음악적인 부분에서 봤을 땐, 동시에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각자의 성격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순 있어도 음악에 있어선 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요.
Q. 함께 활동을 이어오며 ‘우리는 이런 밴드다’라고 정의할 수 있는 순간이나 전환점이 있었을까요?
영욱 : [Saint]를 만들었을 때예요. ‘우리는 이런 밴드다’라고 거창하게 말하긴 그렇지만 ‘이게 우리다, 이게 우리가 해야 하는 음악적 방향성이다’라는 확신이 들었고, 길이 보였어요.
Q. 공연을 준비함에 있어선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실까요?
성하 : 편곡에 공을 들입니다. 실제 음원처럼 구현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건 기본 베이스에요. 아예 발매한 원곡과 다르게 연주하는 것도 실상 보러 오신 분들의 만족도가 크지 않을 수 있어요. 때문에 원초적인 건 살리되 현장감을 중요시하여 편곡에 신경을 가장 많이 쓰고 있어요.
저도 영욱이도 경험이 많지 않아서 실험 중인 단계에요. 아직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어 셋리스트를 구성하는 데 있어선 민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둘 다 열려있어요. 저한테 전적으로 맡긴다고 하지만 그래도 영욱이 컨펌은 꼭 받아요.
Q. 음악적 측면에서 Marrakech의 최종 종착지는 어떤 모습일까요?
영욱 : 이 질문에 대한 저희의 정형화된 답이 있어요. 저희는 항상 처음 시작할 때부터 넘버원보다 온리원으로 누군가에게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항상 했거든요. ‘이런 류의 음악을 하는 팀이 국내에선 Marrakech 밖에 없는 것 같다’, 내지는 ‘이게 Marrakech 스타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성하 : 장르로 국한되기보다는 Marrakech라는 스타일로 기억되고 싶어요. 원래는 평생 사람들 기억에 남을만한 음악을 하자고 이야기했는데 그래도 빌보드 1위… 한 번 해보고 싶네요.
Q. 이후 발매 계획이나 예정된 공연을 말씀 주실 수 있나요? 남은 2025년 플랜이 있을까요?
영욱 : 9월 20일 <MEETING ROOM> 공연 이후로도 더 예정돼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올해 가기 전에 단독 공연을 꼭 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보고 계실, Marrakech의 팬분들에게 한 말씀해 주세요.
영욱 : 앨범이 너무 늦게 나와서 죄송하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열심히 5곡 준비했으니까 맘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공연에도 많이 찾아오시고, 새로 나온 앨범도 많이 들어주세요.
성하 : 저도 마찬가지로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리고, 이번에 나온 앨범 편하게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저희가 선보일 활동에도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더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리겠습니다.
Interview | 구은영
사진제공 | MAGIC STRAWBERRY S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