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향
- Artist Room306,
- Release2025-11-08
- Genre Chill, Electronic, Pop,
- Label영기획(YOUNG,GIFTED&WACK Records)
- FormatAlbum
- CountryKorea
- 1.마중 Greeting
- 2.이사 Moving
- 3.회수 Collecting
- 4.아득 I Dimming I
- 5.여정 Traveling
- 6.반동 Backfiring
- 7.영원 Lasting
- 8.아득 II Dimming II
- 9.풍화 Weathering
- 10.전송 Sending
- 11.매듭 Sealing
| 영원한 건 없다고 한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고 한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고 한다.
야만의 시대에 권력자들이 영생을 좇은 것도, 인류가 일찌감치 사후세계에 대한 동경과 공포를 찬미해 왔던 것도, 강산이 변하는 세월 동안 만나온 연인이 헤어짐과 재결합을 반복하는 것도, 우리가 사랑해 마지 않았던 해체한 아이돌이나 밴드가 재결합하길 원하는 것도, 인생의 궤적 안에서 이사를 하며 떠나왔던 지역과 장소에 돌아갈 일 없어 향수를 느끼는 것도, 부끄럽고 밉지만서도 시간의 흐름에 떠내려가며 돌아갈 수 없어 왠지 그리워지는 나의 모습들을 어떻게든 붙잡아두려는 것도,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며 존재할 리 없는 그리움과 아쉬움을 느끼는 것도, 마지막 연락이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더 이상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인연들을 기억해 내려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것도, 반려동물과의 추억들을 악착같이 수집하며 무지개다리를 밀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종결과 결말을 조금이라도 늦춰보려는 우리네 모습들이다.
시간 안에서 쌓아왔던 모든 것들은 결국 불가결하게도 무너지고 떠나가지만, 무정하게도 시간은 멈추는 일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크레딧이 올라가고 난 검은 화면의 영화이지만 멈추지 않는 시간과 기억들은 끝나버린 영화를 양분 삼아 서사의 집필을 멈추지 않고 많은 것들을 빚어낸다. 추억, 깨달음, 회한, 그리움, 아쉬움, 외로움, 동질감, 변화, 증오, 감사, 미소, 따스함, 전이, 사랑. 모든 형태의 결말은 레테의 강을 거슬러 형태를 바꾸어 무수한 잔향을 남기며 끝나지 않는 재생산을 일으킨다. 정지된 사건이 영원함을 유발하는 이 아이러니 속에 우리는 그 모든 잔향을 꼭 쥐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사람들임에 대하여.
긴 시간 동안 일어난 여러 사별들을 떠올리며 생기는 갑작스러운 그리움과, 앞으로 언젠가 찾아올 Room306의 종료에 대한 살짝 이른 아쉬움. 이 두 가지 생각을 원동력으로 다시금 음악의 형태 안에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세 장의 앨범으로 자아와 관계에 대한 절망과 기쁨, 번뇌와 연대 등 삶 속에서 움직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온 우리는, 이제 멈춤과 동시에 남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야함이 자명하다.
[마중] 차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던 얼굴, 새벽녘 밥 짓는 냄새와 따뜻하게 잡아주던 주름진 손, 시골 공기에 빛나던 별 무리와 뒷마당 언덕배기 위 밤나무와 같은 그리움은 이제 더 이상 돌아올 순 없어도 여전히 우리의 안에서 우리를 마중하고 우리를 형성하고 살아가게 한다.
[이사] 터전이라는 단어는 그 무게가 상당하다. 단순히 지리적 위치로만 존재하는 것을 넘어 한 개인과 연결된 모든 사건, 관계, 선택, 감정, 행위 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장소이기에. 그래서 이사 역시 단순히 삶을 영위하는 위치를 옮기는 것을 넘어 터전에 묶여있는 무거움을 떠나보내는 이별로 다가온다.
[회수]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 속 우리는 일상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였는지, 과거가 현재의 우리를 빚어내는 데 어떤 식으로 작용했는지는 잊고 삶을 이어 나간다. 과거에 남기고 온 내가 실재한다면, 현재의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늘 자신과 작별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아득 I] 멀어진 것들, 멀어질 것들에 대한 자유로운 형상.
[여정] 창문에 진하게 틴트를 먹인 차들. 서로의 얼굴을 확인 할 수 없는 채로 같은 도로 위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규칙을 지켜가며 각자의 행선지로 이동한다. 느슨한 공동체. 무심하게 서로를 지나쳐가는 도로 위에서는 묘하게 가벼운 이별들이 수도 없이 이루어져 알 수 없는 그리움이 피어난다.
[반동] 아득히 풀벌레 우는 여름밤에 계단참에 앉아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취한 것도 아니었고, 연인과의 불화도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와의 관계가 끊어져 버린 참이었다. 원치 않는 종결이었다. 마음으로는 무던히 모든 것을 넘기고 유지하고 싶었지만, 내 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기라도 한 듯했다. 마음에 일어난 이유 모를 반동으로 뱉어버린 말실수와 후회, 후회가 이끄는 사과에 대한 집착, 그 집착으로 인해 이어지는 새로운 말실수와 또 다른 후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악순환 속에 미간에 잔주름을 잔뜩 쥔 채 그는 관계를 끊어내기로 결정했고, 끝난 악순환 뒤 계단참에 남은 잔향은 스스로를 겨눈 악의였다.
[영원] 무수히 달력을 넘겨왔던 오래된 연인일수록 모든 것이 정리된 후 남을 회한이 두려워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기 쉽지 않을 터. 전하지 못한 마음은 마음의 옷장 속 습기가 되어 눅눅하게 관계를 유지하며 점차 미지근하고 축축하게 변질되어 간다. 끊어내야 함을 알면서도 두려움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 속 마음에 남은 또 다른 잔향.
[아득 II] 멀어진 것들, 멀어질 것들에 대한 또 다른 자유로운 형상.
[풍화] 영원할 것 같이 20대를 함께 보냈던 그 사람들은 이제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깎여나가 아득한 추억의 자국만 남아버린 그 사람들. 휘청휘청, 불안정한 자세로 겨우 삶을 붙들고 있던 우리들이었기에 여전히 걱정과 그리움을 남기고 있는 조용한 이별들이다.
[전송] 피할 수 없는 여행을 맞이할, 작고 소중한 너(희들)에게. 떠나간 이후에도 영원히 마음속에 남아 우리의 삶에 동행할 것임을.
[매듭] 모든 것들과의 만남을 마중하고 난 이후 지나간 모든 것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어떤 매듭을 지어야 하는가. 가끔은 내려놓은 듯이, 가끔은 승천할 듯이, 가끔은 주워 모은 듯이. 가끔은 희미해질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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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edits
Room306 [잔향]
Produced by FIRST AID Mixed and mastered by FIRST AID
All songs (except 아득 I, II) written and played by FIRST AID 아득 I, II written and played by 채지수 All songs sung by 이히읗 & FIRST AID
Executive Produced by 하박국HAVAQQUQ of 영기획YOUNG,GIFTED&WACK Record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