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Inside no.5
자유로운 영혼의 동양청년 김오키, 한국 프리재즈의 파이오니어가 되다
재즈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이전의 글*에서도 한 번 언급했듯이 아주 어릴 때부터 힙합을 좋아했고 그때부터 힙합이 라이프스타일에 깊게 뿌리를 내린 내게 재즈에 대한 애정은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채 쉽지 않은 음악인 탓에 장르에 대한 지식은 일천한 편인데 기껏해야 음악을 들으며 밥(Bop), 스윙(Swing) 등의 큰 카테고리를 구분할 정도나 될까.
하지만 지식의 깊이가 애정의 깊이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100곡 정도 써보라고 하면 그 목록 안에는 반드시 ‘몽크(Thelonious Monk)’나 ‘아트 블래키(Art Blakey)’의 이름이 들어있을 것이다. ‘로이 하그로브(Roy Hargrove)’의 하이브리드 재즈 프로젝트 ‘The RH Factor’의 <Hard Groove> 앨범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흑인음악 레코드 중 하나이고 작년에는 ‘카마시 워싱턴(Kamasi Washington)’의 강력한(!!) 데뷔 앨범과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가 ‘마일즈 데이비스‘를 재해석한 <Everything’s Beautiful> 앨범 등을 한참 동안 귀에 달고 살았다. 아, 작년에 결혼을 하면서 ‘선우정아‘에게 축가를 부탁했는데 그때 심사숙고 끝에 내가 고르고 부탁한 노래는 다름아닌 ‘스탄 게츠(Stan Getz)’와 ‘주앙 질베르토(Joao Gilberto)’의 ‘The Girl from Ipanema’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곡을 재즈라고 할 순 없지만) 나와 아내, 둘 다 평소에 좋아하는 노래였고 무엇보다 재즈를 잘 부르는 정아에게 꼭 맞는 노래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흔쾌히 축가 부탁을 들어준, 게다가 너무나 멋진 노래를 불러준 선우정아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렇듯 재즈를 무척 좋아하지만 동시에 재즈를 하나도 모르는 내가, 오늘은 패기 넘치게 한 재즈 음악가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본래 ‘무식하면 용감하다‘ 하지 않았나. 지금부터 시작할 글의 주인공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창조적인 색소폰 플레이어로 알려진 아티스트, 바로 ‘김오키‘다.
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 / Moanin’
내겐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노래 중 하나다.
<김오키 동양청년 / 칼날> 라이브 @ 온스테이지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중 ‘칼날‘이라는 에피소드를 모티브로 만든 곡이다.
<Marky Mark & The Funky Bunch / Good Vibrations> MV
지금은 나름 헐리우드의 흥행배우로 자리매김한 ‘마크 월버그‘의 찬란했던 과거.
심지의 그의 형은 무려 ‘뉴키즈온더블럭(New Kids On The Block)’의 ‘도니 월버그‘다.
여하튼 이 곡은 당시 팝–랩의 아주 대표적인 곡 중 하나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
흑인음악을 좋아하게 되어 자연스레 춤을 추게 되었고 젝스키스, 구본승 등의 백댄서로, 또 스트릿댄서로 활동하던 김오키가 재즈에 매료되어 색소폰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군 제대 후 우연히 듣게 된 트럼페터 ‘마일즈 데이비스‘의 연주. 당시 자신의 춤이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고 느낀 그가 댄서 생활을 과감히 접고 몇 달 간 학원을 다니며 색소폰의 기본기를 배우고, 이후로는 오롯이 독학을 통해 한 사람의 색소폰 주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그를 아는 이들에게는 ‘뻔한 레퍼토리‘ 같은 이야기다. 조금만 덧붙이자면 그때 김오키가 들은 곡은 ‘Autumn Leaves’의 인트로라고 하는데 그 인트로 부분에서 ‘마일즈 데이비스‘가 연주한 악기는 당연하게도 색소폰이 아니라 트럼펫이었다. 김오키가 이 소리를 색소폰으로 착각해서 색소폰을 배우러 갔던 것이다.
김오키(KIMOKI)
현재 대부분 음원사이트에 등록된 공식 프로필 사진이다.
예사롭지 않은 비주얼. 그의 인스타그램 등을 보면 역시나 예사로운 사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내 음악은 딱히 재즈는 아냐. 그냥 오부리* 치는 거지 뭐“
김오키는 자신의 음악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굳이 ‘재즈‘라는 카테고리 안으로 자신을 밀어넣을 생각이 없으며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연주로 표현하는 것이 자신의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평단, 또 예리한 귀를 지닌 리스너들은 그가 불어대는 ‘오부리‘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2013년에 내놓은 처녀작 <Cherubim`s Wrath(천사의 분노)>로 14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재즈 & 크로스오버 최우수연주상‘을 수상한 것이다. 정규 음악 교육을 받고 그 중 상당수는 버클리 등 해외 재즈 명문교에서 수학하는 등 ‘제대로 된‘ 코스를 밟아온 연주자들이 주를 이루는 재즈씬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갑자기 돌출한 이 크랙이 단 한 장의 앨범, 게다가 데뷔작에서 이러한 성취를 이끌어냈다는 점은 사뭇 흥미로울 뿐 아니라 어떤 의미로는 묘한 쾌감마저 선사하기도 한다.
도시 빈민층의 삶을 처절하게 그려낸 조세희의 연작 단편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잘 알려진 <Cherubim`s Wrath(천사의 분노)>는 형식적으로는 프리재즈(Free Jazz), 아방가르드(Avant Garde)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앨범의 핵심은 전위주의가 아니라 김오키의 ‘현실 인식‘이다. 그저 형식을 파괴하고 뒤틀며 새로운 어딘가로 향하기 위한 전위가 아닌, 음악가가 현실을 바라보며 느끼는 ‘시대유감‘을 음악의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현실 기반의 전위주의, 그리고 무질서다. 앨범에 담긴 소설과 동명의 곡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속에서 그려지는 음습하고 불온한 기운 가득한 묵시록적 세계는 다름 아닌 김오키가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세상, 대한민국 그 자체였을 것이다.
<김오키 동양청년 /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라이브 @ 온스테이지
집단화된 즉흥연주가 그로테스크한 기운과 에너지를 쉴 새 없이 뿜어낸다.
<로다운30 feat. 김오키 / 더뜨겁게> 라이브
매번 명확하게 다른 음악적 컨셉트와 주제의 작품들을 선보인 그의 이번 앨범은 잘 만들어진 한 장의 ‘재즈힙합‘ 앨범이라 칭해도 결코 무리가 없을 만큼 힙합의 성향이 강하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The RH Factor’나 ‘로버트 글래스퍼‘의 음악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포문을 여는 15분 30초짜리 대곡 ‘Fuc ma dreams’에서부터 이 같은 기운은 뚜렷한데 심플한 비트와 반복적인 룹을 연주하는 피아노, 래퍼 ‘ejo’의 정갈한 랩이 어우러지는 전반부는 ‘재즈힙합‘ 그 자체다. 스무스한 전반부를 지나 ‘거대한 뿌리‘에서부터 함께 연주했던 이규제의 플룻, 그리고 연이어 김오키의 색스 솔로잉이 한 차례의 거센 고조를 만들어내고 난 뒤 종반부 클라이막스 직전까지 잠시 찾아오는 평온, 개인적으로 이 구간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왠지 모르게 래퍼 ‘커먼‘(Common)의 앨범 <Be>의 엔딩 트랙 ‘It’s Your World part 1 & 2’를 떠올렸다. 힙합 리스너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담고 있을 이름, 故‘제이딜라‘(J Dilla)가 프로듀스한 트랙이다. 확연히 다른 두 곡이건만 왠지 두 곡의 이미지가 기묘하게 겹쳐지는 순간이 잠시 있었다.
<김오키 / Fuc ma dreams>
인터루드처럼 트랙들 사이사이에 배치된 3개의 ‘Impasto’* 트랙들은 힙합 비트메이커인 ‘4kapas'(포커페이스)가 프로듀스했다. 리얼 연주가 아니라 시퀀싱으로 만들어진 트랙들이라는 점에서 전작 <Luvoki>의 연결고리라고도 볼 수 있겠고, 이 앨범의 힙합 성향을 일관되게 유지시키는 장치적 요소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트랙들 역시 ‘제이딜라‘의 음악을 연상케 하는 지점들이 있는데 특히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Impasto 3’를 들으면서 고인의 유작인 <Donuts> 앨범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J Dilla / One Eleven>
그간 그가 선보인 작품들이 대체로 장르를 특정하기 쉽지 않은 면이 있었다면 적어도 <fuckingmadness>는 힙합, 재즈, 소울 등의 장르적 문법이 꽤나 명쾌한, 게다가 이 장르 음악들의 매력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는 앨범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여지껏 김오키의 음악 중 가장 대중들의 귀에 친절하게 느껴질 작품이 아닐까 싶다. 반면 이 근사한 음악들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방식으로 ‘친일청산‘이라는 주제의식을 발화하고 있는지 유추해내는 건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적어도 현재까지 그의 디스코그라피 중 가장 ‘흑인음악‘의 뉘앙스가 강한 작품이며 그런 점이 개인적 취향에 100% 부합했기 때문에 앨범을 감상하는 시간 내내 더없이 행복했다. 근 몇 주 새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신보와 더불어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음반 중 하나이기도 하다.
김오키가 음악 씬에 등장한 것은 이제 불과 4~5년 남짓. 그러나 이 짧은 시간 동안 그는 꽤 뚜렷한 족적을 남겨왔다. ‘파격‘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행보다. 제도권 교육과 씬의 틀 밖에서 탄생했기에, 그의 음악은 형식이나 권위에 얽매이지 않았다. 또 지극히 전위적인 음악임에도 작가 본인의 뚜렷한 시대인식을 발화한 결과물이기에 청자들에게 강렬한 페이소스를 전할 수 있었다. 스스로는 자신의 음악을 ‘오부리‘라 칭할지언정 그의 음악에 담긴 짙은 ‘소울‘만은 결코 싸구려가 아니었다. 마치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그래서 더 굳세게 피어난 진홍색 장미 같은 음악, 그게 김오키의 음악 아닐까.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Deep Inside’ 코너의 모든 글은 에디터의 개인적 주관을 반영한 것으로 본사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일절 무관합니다)
*1 Deep Inside 2 ‘2000년대 한국에 재림한 댄스뮤직의 화신, 치명적 그루브 메이커 그 이름 나잠 수(NAHZAM SUE) http://bit.ly/2jzdyVX
*2 ‘오부리’는 즉흥적인 연주를 뜻하는 한국식 은어로 본래는 ‘멜로디 라인과 동시에 연주하는 보조적인 멜로디 파트’를 의미하는 ‘오블리가토'(obbligato)에서 나왔다
*3 김오키 인터뷰 “공간이 없어지면 싸울 수 밖에 없다” @ 문화웹진 ‘채널예스’ http://bit.ly/2pNyDuz
*4 ‘impasto'(임파스토)는 회화의 기법 중 하나로 ‘반죽된’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 그 어원이 말하듯 유화물감을 붓, 손가락, 팔레트나이프 등으로 두텁게 칠해 질감, 입체감을 내는 기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