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자

  • Artist 사공 (Sagong)
  • Release2026-09-04
  • Genre Folk
  • Label사공 (Sagong)
  • FormatAlbum
  • CountryKorea
  • 1.지저귄다
  • 2.
  • 3.이상한 마을
  • 4.물빛
  • 5.넌 무슨 생각해? (Feat. 차울)
  • 6.바다유리
  • 7.
  • 8.멀리서 봐도 비극
  • 9.오름수위
  • 10.
  • 11.나쁜꿈

인간이란 찰나의 삶. 그 속에는 이해보다 먼저 견뎌야만 하는 시간이 존재하며, 해답보다 오랫동안 품어내야 하는 고독이 있다. 삶과 삶 사이, 이음새처럼 놓인 청춘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기로 이야기되곤 한다. 하지만 실은 녹슨 고리처럼 다음으로 쉽사리 넘기지 못한다.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두려운, 누군가를 이해하고 이해 받고 싶지만 쉽게 속마음을 보이지 못하는 마음, 세상과의 틈을 느끼며 분투하는 연약한 진심. 사공의 《Escapist》는 세상과 나의 존재가 끊어지지 않으려 미약하게 붙잡고 있는 그 적막한 시간을 기록한 앨범이다.

 

누군가의 늦은 밤, 몸과 함께 포개어진 작은 방,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짙은 마음을 기타와 목소리로 기록하는 포크라는 장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가장 사적인 감정이 가장 보편적인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사공의 노래를 들으며 또다시 느낀다. 사공의 앨범은 포크라는 장르의 계보 위에서 자신의 가장 내밀한 언어를 고요히,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어색한 미소와 함께 꺼내 놓고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변변하지 못해 완벽히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포크는 그렇게 화자와 함께 내밀한 고백을 계속해서 이어간다.

 

이번 사공의 앨범을 관통하는 것은 ‘청년 고독’이다. 세상을 향한 냉소도, 현실로부터의 도피도 아닌, 속으로는 온 마음을 다하지만 겉으로는 인색하리만치 표현하지 못하는 서툶.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들키는 것이 두려워 한 걸음 물러서는, 그 열없음.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선뜻 먼저 문을 열지 못하는 망설임과 써야 할 마음이 많이 남았음에도 슬픔과 외로움에 녹아날까 두려워하는 마음. 완벽한 대답을 기대하다 가장 평범한 말 앞에서 깊이 상처받는 ‘청년 고독’. 그렇기에 사공이 말하는 《Escapist》의 도피는 세상을 떠나는 행위가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나가고 싶지만 아직 준비되지 못한 상태, 용기를 불 피우기 위해 잠시 자신 안에 머뭇거리는 시간에 가깝다.

 

그 서사의 중심에는 두 개의 노래가 놓여 있다. 경쾌하고 이국적인 분위기이지만 상반된 가사를 품은 〈넌 무슨 생각해?〉는 가장 평범한 질문으로 가장 깊은 고독을 드러낸다. 우리는 종종 상대의 생각을 묻지만, 진실은 이해받고 싶은 자기 마음의 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은 끝내 명쾌한 대답을 얻지 못한 채 〈바다유리〉로 이어진다. 바다유리는 처음부터 둥근 존재가 아니었다. 수없이 부딪히고 파도에 깎이는 시간을 견딘 끝에 비로소 손으로 쥘 수 있는 모양이 된다. 상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렇기에 앨범에서 사공이 말하는 성장은 치유가 아니라 시간이며, 위로가 아니라 견딤일지도 모른다.

 

새가 지저귀는 나의 작은 방에서 시작된 이 앨범은 아프고 서럽고 기쁜 날의 풍경들과 기묘하고 이상한 꿈들을 따라가다 조심스레 바깥으로 걸어 나간다. 후회의 종소리와 침잠하는 비극을 지나 감정은 천천히 차오르고, 마지막 곡이자 연극적인 분위기의 〈나쁜꿈〉에 이르러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도피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조금 달라진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시인 릴케는 우리가 지금 품고 있는 질문의 답을 직접 살아보라고 말했다. 사공의 《Escapist》 역시 청춘의 질문에 성급한 답을 내놓기보다는 존재하고, 살아가고, 계속 실존하려 한다. 청춘이라는 이름의 긴 유예와 웅크린 외로움이란 이름의 시간을 통과하며 수많은 무언가를 찾아 헤매지만, 우리는 반드시 나 자신이 된다. 그리고 그 조용한 항해 끝에서, 날카로운 유리였던 마음은 어느새 바다유리가 되어 다시 청춘의 빛을 품는다. 은은하게 연명되는 삶 속에서 청년은 고독의 시간을 지나가고, 우리는 사공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청춘을 계속 지켜보기로 한다.

 

– 조혜림 대중음악평론가

 

 

[Credit]

 

All Songs Written, Composed & Arranged by 사공

All Instruments & Vocals by 사공 (except where noted)

Produced & Mixed by 사공

 

1. 지저귄다

 

2. 방

• Pedal Steel Guitar by Joe Christopher Smith

 

3. 이상한 마을

Piano by 성하은

Bass by 송남현

Drums by 장재민

 

4. 물빛

• Percussion by 송세빈

 

5. 넌 무슨 생각해?

Vocal & Chorus by 차울, 사공

Drums by 장재민

Percussion by 송세빈

 

6. 바다유리

Drums by 장재민

Percussion by 송세빈

 

7. 종

Drums by 장재민

 

8. 멀리서 봐도 비극

Drums by 장재민

 

9. 오름수위

 

10. 쉼

 

11. 나쁜꿈

 

Recorded by B.A. Wheeler at East Seoul Studio, 403 studio

Mastered by Aepmah @AFMLaboratory

Liner Notes by 조혜림

Artwork & Design by noamchoi

Photography by 김사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