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아래 부는 바람
- Artist Teho,
- Release2026-04-13
- Genre Jazz, indie,
- LabelstudioLOG
- FormatSingle
- CountryKorea
- 1.Strata Nova
- 2.발 아래 부는 바람
“그림자는…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요?”
잠자코 강물을 바라보던 남자가 묻는다. 그는 얼마 전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자다. 단골 선술집 여주인의 전남편이 무심코 던진 질문에, 히라야마는 글쎄요 하면서 말을 더듬는다. 두 사람은 가로등 불빛을 등지고 앞뒤로 나란히 서서 서로의 그림자를 겹쳐본다. 기분에 따라 더 어두워진 것 같기도 하고,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결론 내리기를 포기한 그들은 어느새 그림자밟기 놀이에 빠져든다. 아이처럼, 사뭇 진지하게.
그렇게 두 사람은 어둠에 잠긴, 혹은 더 짙은 어둠이 다가오는 현실을 잠시 잊는다. 빔 벤더스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였다.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살아있는 순간의 덧없음과 작은 즐거움을 공유하는 모습. 이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장면이 반복되는 주인공의 일상 곳곳에서 나 자신의 모습이 자주 겹쳐 보였다. 내게는 그림자밟기와도 같은 음악. 그림자를 밟는다는 게 가능한가요. 글쎄요. 나는 점점 말을 더듬는다. 그러면서도 발을 멈추지 않는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나 진지하게.
마스터링을 마친 두 곡의 최종 음원을 상용 씨가 보내왔다. 첫 앨범부터 최근 6집까지 우리의 모든 음향 작업을 도맡아온 그이지만, 이번 프로젝트만큼은 간단치 않았다. 두 가지 면에서 기존 방식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첫째, 빈티지 릴 테이프(Reel-to-Reel) 아날로그 레코딩과 믹싱을 시도했다. 업계 표준이 디지털로 전환된 80~90년대를 기점으로 자취를 감춘 기술이다. 테이프 컴프레션 특유의 따뜻한 질감을 테호는 늘 그리워했었다. 아날로그 믹싱은 모니터 화면 위에서 마우스를 딸깍거리는 편집과는 차원이 다르다. 물리적 콘솔을 통해 전기 신호를 조절하는, 마치 라이브 콘서트의 덥 디제잉 퍼포먼스에 가까운 작업이다. 둘째, 네 명의 음악가가 각자 다른 날 녹음한 즉흥 연주 트랙을 합쳐 하나의 곡으로 만드는 실험을 했다. 그것도 메트로놈 클릭 없이. 앞서 연주된 악기 위에 차례로 소리를 쌓아 올리는 방식이었기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녹음 순서’였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을 기해—가위바위보를 했다.
2026년 1월 14일, 스튜디오 로그
상용 씨가 내게 테이프를 틀어준다. 영사기를 닮은 타스캠 릴 데크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회전한다. 첫 번째 들리는 소리는 수영이다. 어느 날 말도 없이 혼자 들른 수영이 솔로 녹음을 남겼다. 그가 조용히 피아노 뚜껑을 닫고 사라진 며칠 후, 드럼 세트만 덩그러니 기다리는 앙상블 녹음실에 상용 씨가 들어가 수영의 테이프를 들으며 드럼을 입혔다. 다시 며칠 후 바통을 이어받은 내 차례인 것이다. 두 악기가 합쳐진 소리를 들어보니 말문이 막힌다. 이대로 완벽하다. 나는 더 이상 보탤 음이 없다고 상용 씨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저도 그랬어요, 그가 대답한다.
녹음은 단 한 번에 끝냈다. 연주가 마음에 안 들면 테이프를 지우고 덮어쓰면 된다고 그가 친절히 말해줬지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기계를 돌려 다시 세팅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날로그의 세계’를 존중하고 싶었다. 내게는 초등학교 시절 카세트 라디오로 학급 친구들과 음악 합창 숙제를 했던 기억이 있다. 한 번 더 녹음하려면 더 나아질 거란 보장 없이 소중한 앞선 결과물을 지워야만 했던, ‘한 수 물리기’가 불가능했던 그 긴장감. 이제 나는 히라야마가 도쿄의 어느 공중화장실 구석에서 발견한 쪽지로 익명의 누군가와 시차를 둔 빙고 게임을 이어갔듯, 이 보이지 않는 연결을 즐기며 다음 수가 어떻게 놓일지 기다릴 뿐이다.
한 달 후 만난 태훈 씨 또한 색소폰 트리오까지 완성된 테이프를 듣고 “이대로 바로 내도 되겠다” 생각했단다. 하지만 종국에 그역시 멋들어진 기타 트랙을 얹었고, 마지막으로 상용 씨의 믹싱 마술을 거쳐 지금 당신이 마주하고 있는 더블 싱글 <발 아래 부는 바람>이 탄생했다. 한 사람 한 사람 통과하면서 조금씩 달라진 음악. 그런데 마치 겹쳐진 그림자처럼, 더 어두워지거나 무거워지지 않았다. 바늘 하나 종이 한 장 들어갈 틈 없는 음악이 나오진 않을까 했던 기우가 무색하게, 발아래에 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두둥실 가볍고 헐렁하다. 듣는 이 누구나 마음껏 자신의 상념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품이 넉넉한 음악이다. 다음은 정규 7집이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今度は今度、今は今).”
(김성완)
Credits:
Produced by Teho
Composed by 민상용, 김성완, 이태훈, 진수영
Arranged by 민상용, 김성완, 이태훈, 진수영
Alto Saxophone 김성완
Guitar 이태훈
Piano 진수영
Drums 민상용
Album Artwork 이주향
Music Video 정제현
Recorded at studioLOG
Mixed and Mastered at studioLOG by 민상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