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Island)

  • Artist 표표
  • Release2023-10-10
  • Genre AlternativeRock
  • LabelWarmfish Label
  • FormatSingle
  • CountryKorea
  • 1.섬 (Island)

 

‘섬’ 라이너노트 for 표표

 

표표가 말하는 ‘섬’이 내게는 구체적으로 있다.

언제고 나는 그 ‘섬’으로 떠난다. 일정이 빽빽한 캘린더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통장 잔고를 확인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사무실에서도, 미팅과 미팅 사이를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도, 동료들과 깔깔거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잠들기 전에도 상관없다.

 

내 ‘섬’은 실제이면서 동시에 상상이다.

길 이름과 건물 번호까지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 도시이자, 누군가와 함께라는 상상이 투영된 무대. 6년간 살았던 파리를 배경으로 펼쳐놓는 나의 망상들.

 

추운 겨울, 시리고도 눅눅한 습기가 가득한 파리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도서관을 간다. 시간이 멈춘 이 도서관에서 아침부터 자리를 잡고 책을 읽는다. 점심에는 5유로짜리 잠봉이 올라간 인스턴트 숏파스타 샐러드를 먹고, 1유로짜리 자판기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난방 시스템이 좋을 리 없는 천고가 높고 오래된 도서관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호호 불어댄다. 다시 시간이 멈춘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책장에서 시간을 견디다 ‘발견된’ 책들을 읽는다. 마치 우리처럼.

 

저녁이 되면 우리는 책 속의 세상에서 나온다. 도서관 근처 단골 펍에 들린다. 머리 위에 매달린 빨간 난로의 따스함과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추위를 오롯이 느끼고 싶어서 추워도 테라스에 앉는다. 고픈 배를 해피아워로 저렴하게 파는 맥주와 기본 프레즐 안주로 채운다. 한 잔에 4유로. 각자 책에서 읽었던 얘기를 나눈다. 내가, 네가, 우리가, 그것이, 그 저자가, 그 연구자가, 그 건축이, 그… 한두 잔쯤 마시고 집으로 돌아간다. 추웠던 집에 온기를 불어넣고, 나는 늦은 저녁을 차린다. 따뜻하고 간단한 콩스프와 사놨던 빵과 치즈를 나눈다. 와인 한 잔도 곁들인다.

 

당신은 음악을 고른다. 라디에이터가 미처 덥히지 못한 찬 기운을 음악으로 메운다. 그러고는 설거지를 하겠지. 나는 8시간 시차를 고려해 담당자가 출근해서 읽을 수 있도록 한국에서 온 메일에 답신을 한다. 일을 마친 나는 소파에서 책을 보고 있던 당신에게 가 기댄다.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하며 네 독서를 방해한다. 단골 펍의 무슈가, 새로 맡은 원고의 담당자가, 새로 문을 연 식료품 집의 야채 품질이, 옆집 마담이… 낮고 나른하고 따스한 네 목소리를 즐겁게 듣다가 노란 조명 아래서 다시 또 각자의 책으로 여행을 떠난다.

 

내 섬엔 하루 20유로면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이 있다. 네 말처럼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그만큼 대단한 것도 없다. 이 ‘망상의 섬’은 실재이자 무대로서 삶에서 도망치지 않도록 나를 붙잡아주기도 하고, 인생의 키를 잡고 싶어 하는 내게 닻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나를 잠깐 쉬게 하는 그 섬에는 우리가 있다.

 

정수경/콘텐츠 기획사 후주 대표

 

 

 

 

Credits
Executive producer 이지성

Producer 최현준, 표표(김은영)

Composer & Lyrics 표표

 

Vocal 표표

Chorus 표표

Guitar 이지성

Bass 민경환

Drums 이동수

Synth Programming 최현준, 표표

Recorded by 이지성 @warmfish_label

Mix & mastering 이지성

Cover by 김나령

Liner notes by 정수경 @mee.mee.jung @tuck_on_hand

Music Video by Jigu Film

Management by Warm fish L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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