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주 오래 돼서야

  • Artist 전유동
  • Release2023.11.06
  • Genre Acoustic/Folk
  • Label전유동
  • FormatEP
  • CountryKorea
  • 1.떠날 채비를 해요(앞전 와류)
  • 2.이어진 문장(좁은 입)
  • 3.왜관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
  • 4.둥글게 굴러가는 네모난 나 (2023 rerecorded)

 

소개글
약함을 고백하는 동심의 철학자

전유동의 음악을 듣는 일은 두 가지 종류의 감성적 준비를 요한다. 준비를 하거나 아예 하지 않거나. 말장난 같지만 일상에서 무수히 스치는 배경음악 듣듯 마음을 비운 채 무방비를 준비하거나 반대로 복잡한 생각을 고스란히 동반하는 게 실제로 도움이 된다. 자연스레 그의 세계에 온전히 함께할 수 있다. 혹은 그를 바라보는 세계와 내 세계를 견주어 볼 수 있다. 전유동의 노래가 유독 선명히 뇌리에 박힌 첫 순간을 기억한다. [인천의 포크 싱글 시리즈]로 기획한 ‘주안’(2019)을 아무런 준비 없이 들으며 노래의 풍경이 ‘들리는’ 경험을 했다. 노골적으로 삽입한 실제 전철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그보다 선명하게 타닥타닥 흔들리는 노래 화자의 연약한 마음과 전차의 소리가, 움직임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즈음 함께 대화를 나눴던 싱어-송라이터 천용성은 그런 전유동이 앨범을 만든다고 했다. 기타 연주를 잘하고, 노래를 참 잘하는 음악가라 덧붙였다. 그렇게 1집 [관찰자로서의 숲](2020)이 발매한 후 올해 2집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이 나오기까지 한동안 전유동은 (남들이 잘 노래하지 않는) 새와 자연을 노래하는 새 관찰자, 자연 예찬가로 불리거나 인식되기도 했다.

흐트러짐 없이 깔끔한 기타 톤과 스트로크는 곱고 정갈한 그의 목소리와 닮았다. 동시에 가사의 소재가 독특하고, 문장에 리듬감이 있다. 다양한 새는 물론, 벌레(‘무당벌레’(2020))와 공룡(‘디스폴로도쿠스’), 나무(‘은행나무’(2021))와 채소(‘토마토’(2023))를 때로는 절묘하게, 때로는 아무 상관 없이 지금 내 심정과 연결 짓는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기도 하다. 전유동이 실제로 애정을 담고 일상의 순간마다 정밀하게 관찰하고 관심을 보이는 신선한 소재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노래를 짓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주제의 방향과 사운드가 확장을 거듭한다. 곧으면서도 유연한 태도가 유지된다. 그의 음악은 다루고 있는 소재와 감성처럼 세밀한 정경과 마음의 깊이를 잘 들여다보는 동심의 시(poem)이기도 하지만, 사유의 팔을 뻗어 그늘에 가린 부분을 담백하게 걷어내고 희망을 품는 동심의 철학이기도 하다. 순간을 세심하게 들여다봄에 따라 시야를 넓히고, 그러면서도 쉽게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전유동표 음악의 태도를 난 좋아한다.

첫 곡 ‘떠날 채비를 해요(앞전와류)’ 전까지 나는 ‘앞전와류’라는 단어를 딱 한 번 들어본 적 있다. 의미를 잘 기억하지도, 지금도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다. 준비하는 심정으로 노래를 듣기 전 앞전와류를 먼저 검색해 봤다. 대표적으로 호박벌과 같은 곤충이 하늘을 비행하는 원리라고 한다. 새가 날갯짓을 하는 것과 거의 반대 수준의 역학 원리를 갖고 있어 무척이나 비효율적인 구조다. 그래서 훨씬 많은 날갯짓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앞전와류를 둘러싼 이야기를 노래의 가사와 비교해 보는 순간 다소 경건해졌다. 앞전와류의 개념과 가사의 힘겨운 다짐이 어떠한 은유로 우리 생의 순간들과 연결되는지 연상된 까닭이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아니 개념의 실제와 마찬가지로 노래는 긍정적이고, 덤덤하다. 이 곡에 특별히 쓰인 휘슬 소리가 이 노래의 치열하지만 힘찬 비행을 묘사하고 응원한다. 첫 곡의 기조는 계속해서 유지된다. ‘이어진 문장(좁은 입)’의 경우 아픈 상처를 누르고 확인하며, 다소 쓸쓸하고 비장하게 “그대의 의미가 다치지 않게” 비를 기다리지만, 노래가 품고 있는 건 계속해서 나아가는 전진의 무드다. 화자의 가족사가 하루 일기, 초단편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지는 ‘왜관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는 “무뚝뚝한 아버지”의 표정이 마치 기차가 실제 목적지에 거의 당도하듯 종반에 이르러 느려지는 템포와 함께 오늘날 “예전에 없던” 모습으로 반전되며 미지근하던 이야기의 온도를 확연하게 뒤바꾼다. 마지막 곡 ‘둥글게 둥글게 굴러가는 나’는 앞서 인상적이었던 태도가 집약해 있다. 연주에 쓰인 멜로트론의 투박하면서도 영롱한 울림처럼, 네모난 모습으로 툭탁대고 마모되며 어디로도 가는지 모른 채 굴러가지만, 그건 불행이나 저주가 아니라 나와 우리의 춤일 따름이다.

흔히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라고 알려진 격언은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은 것을 이긴다.’라는 노자의 전언에서 비롯됐다. 기타 포크가 나아갈 수 있는 전형적인 어쿠스틱 발라드, 포크록에서 출발해 이젠 가요와 포크, 팝과 록 사운드를 중심으로 어떤 소재와 사운드든 다루는 그의 시각과 노래는 여전히 부드러움을 담보한다. 한편으로 이번 EP [아주 아주 오래 돼서야]를 통해 모처럼 그의 약함을 보았다. 전유동의 능숙한 고백의 현장을 다시 감탄하며 바라봤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끄러운지. 그런데도 그로부터 피어나는 두려움과 불안, 우울과 지질한 일상에 마냥 잠식하지 않고 어떻게 자기의 자연을 일구어 가는지. 1집에서 천용성은 그가 숲 지기인 숲 자체가 되고자 한다 했다. 2집에서 평론가 김윤하는 그가 이제 자연 속에서 노래한다고 했다. 전유동의 숲과 자연은 시시때때로 우리를 괴롭히는, 단순한 약육강식의 세계는 아닐 거다.

– 정병욱 / 대중음악평론가

 

 

 

 

Credits

Composed & Lyrics by 전유동
Arranged by 전유동
박재준, 복다진, 송현우 (1, 2, 4)
Vocal 전유동
Chorus 전유동
Acoustic Guitar 전유동Electric Guitar 전유동 (3)

Bass 송현우 (1, 2, 4)

Drum 박재준 (1, 2, 4)

Piano 복다진 (1, 2, 4)

Mellotron 복다진 (4)

Whishle 최힘찬 (1)

Percussion – 전유동 (3)

MIDI Programming 전유동

 

Recorded / Mixed by 인천음악창작소

Mastered by 강승희 @소닉코리아

Production or Support by 인천음악창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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