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슬퍼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 Artist 황인경
  • Release2018.08.09
  • Genre Acoustic/FolkPop
  • Label스쿠터클럽
  • FormatSingle
  • CountryKorea

1. 언제든 슬퍼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전기뱀장어의 보컬 황인경이 들려주는 열두 가지 이야기 ‘12 stories, 12 concerts’
#10 언제든 슬퍼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blackbird fly blackbird fly
into the light of the dark black night
<Blackbird>, Beatles

1.
과거의 일들이 너를 만들었고, 밤이 되면 너는 울었다.

출처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신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라는 널리 알려진 말이 있습니다. 신앙의 관점에서는 어떤 긍정적인 의미가 있을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은 아닙니다. 대형 선박 사고로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 다리를 잃은 전쟁 난민, 강간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생존자 앞에서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이라는 말을 감히 꺼낼 수나 있을까요.

고통은 많든 적든 한 사람을 영원히 바꿔놓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슬픔은 희미해지지만, 고통이 머물다간 자리에는 유령 같은 자국이 남습니다. 남은 한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몸의 일부가 되어버리죠.

‘신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는 말은 마치 시련을 잘 극복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사실 저는 ‘견뎌’ 낸다는 게 대체 뭘 뜻하는지부터 잘 모르겠습니다. 슬픔을 겪고 나면 그 누구도 그 전과 같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살면서 겪어온 모든 슬픔의 총합입니다.

2.
슬픔은 일상

널어두지 않은 빨래가 문득 생각나는 것처럼 뚜렷한 이유 없이 불현듯 떠오르는 슬픔도 있습니다. 언제든 슬퍼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그런 슬픔에 익숙합니다. 딱히 슬픈 일이 없어도, 불운한 하루가 아니었다고 해도 말이죠.

아끼는 사람이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는 건 힘든 일입니다. 표정 없는 침묵이 자리한 그 마음이 본래는 티 없는 웃음이 있었던 자리였다고 생각하면 애달파집니다. 새로 발표하는 노래 가사에 ‘내 마음을 서럽게 하네’라고 썼습니다만,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그거라니 얼마나 초라한 마음입니까.

3.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더 좋은 위로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누군가 곁에서 울고 있을 때 ‘내 마음을 서럽게 하네’보다는 더 좋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시인 박준은 그의 산문집을 소개하며 위와 같이 썼습니다. 문학적 수사도, 장식도 없는 맨얼굴의 문장.

어차피 우리가 맨눈으로 보는 일상의 슬픔은 멋도 없고 폼도 안 나는 게 대부분입니다. 울어서 눈은 퉁퉁 부었는데, 따뜻한 위로의 말 따위 듣고 싶은 게 아니죠. 곁에서,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함께 울었으면 싶은 거겠죠.

곧 밤이 우리를 찾아오고, 우리는 새로운 슬픔에게 인사를 건넬 것입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쓴 것처럼,
슬픔이여 안녕[Bonjour Tristesse].

글_황인경

-Credits-
황인경 ‘언제든 슬퍼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In-kyoung Hwang ‘Fragile’

작사, 작곡, 편곡: 황인경
프로듀싱: 황인경
노래, 기타, 베이스, 프로그래밍: 황인경
코러스: 황인경

녹음: 황인경(스쿠터클럽 스튜디오)
믹싱: 황인경(스쿠터클럽 스튜디오)
마스터링: 김상혁(소노리티 스튜디오)
사진, 아트워크: 이응
제작: 황인경(스쿠터클럽)
유통: 포크라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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