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소라에게

  • Artist KIRARA (키라라)시와
  • Release2026-01-23
  • Genre ElectronicAcoustic/Folk
  • LabelPPS
  • FormatEP
  • CountryKorea
  • 1.소라에게 (Original Ver.)
  • 2.소라에게 1/3
  • 3.소라에게 2/3
  • 4.소라에게 3/3
  • 5.소라에게

“우연이면서 동시에 필연일지 모르는 관계 속에서 나는 한 통의 편지를 만났다. 1970년대 초 독일로 떠났던 간호사 공순향이 함께 독일로 떠났던 친구 ‘소라’, 나와 이름이 같은 누군가에게 쓴 편지는 50년의 시간을 지나 나를 독일로 떠나게 했다.”

 

김소라

 

 

《파독: 소라에게》는 1973년 부터 3년간 독일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공순향이 함께 독일로 떠난 친구 소라에게 쓴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소라’ 나와 이름이 같은 누군가에게 보내진 이 편지는 마치 시공간을 가로질러 나에게 도착한 것 같았고 나는 이 편지와 공순향이 독일에서 지낼 당시 사진을 단서로 그녀가 근무했던 독일 슈바인푸르트를 비롯한 독일 지역을 2023년에 추적하며 그 여정을 이미지와 소리로 기록했다. 그녀가 밟은 장소를 추적하며 파독간호사로 한국을 떠나 독일에 홀로 남겨진 그녀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교차하는 경험을 했고, 이 여정을 전시의 형태로 발표했다.

 

전시는 과거와 현재의 중첩된 이미지를 중심으로 독일에서 모아온 엠비언트와 공순향의 딸이자 음악가인 시와가 편지를 보고 만든 음악을 재료로 전자음악가인 키라라가 새롭게 구성하여 만든 사운드가 전시공간에서 서로 만나고 흩어지며 새로운 시공간을 구현했고, 당시 일본에 머물고 있었던 기획자 강정아에게 공순향의 편지에 답장을 부탁해 <묘비를 배회하는 여자>라는 글을 받아 작은 책으로 제작해 전시 공간에 배치했다. 이미지와 사운드, 글은 독일의 시간들과 교차하며 전시를 관람하는 이들이 각자의 ‘소라’를 마주하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소라야!

맑은 풀 냄새 풍기는 기숙사 뒷뜨락에서 너를 생각한다.

고국에서 먼 이곳 독일에 올 때 같은 지역으로 병원 배정 받을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넌 북쪽 끝 함부르크와 난 남쪽 뮌헨 근처 시립병원 으로 나누어지게 되었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

어쩌면 다행으로 여기고 싶다.

항상 함께이던 우린 서로를 큰 의식 없이 살아왔던 것 같다.

헤어져 있는 지금 나는 네가 필요함을 느끼고.

 

소라야 너도 동감할 수 있겠지?!

연 3일 동안 사나운 꿈으로 아직도 그것에서 깨어나지 못한 양, 머리 에 지긋한 압박감을 느낀다.

조금 떨어진 울타리에선 아카시아 냄새가 향기롭다.

아카시아처럼 청순한 아름다움과 향기로움을 인간인 내가 가질 수 있다면 하는 때 아닌 염원에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소라!

지금은 대략 6시 반은 지났을 거다.

왠지 답답한 마음에 근무를 마치고 기숙사 방엔 들어가지 않고 가운을 입은 채로

이 잔디밭에 홀로 앉아 넘어가는 저녁 햇살을 마주하고, 네 생각에 깊이를 둔다.

조용한 새들의 지저귐이 쌀쌀한 저녁나절 바람을 타고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오늘 또 하루가 저무는 지금 과연 나는 무엇으로 오늘 을 남겼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것도 없다.

단지 나의 이런 마음을 네게 전하는 것뿐…

무의미하게 지내버린 이곳에서의 214일. 남은 881일 어떤 자국을 남 길 수 있을까?

 

소라!

하늘 저 끝으로 한 점 비행기가 긴 줄을 긋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처음에는 선명하던 그 선의 뚜렷함이 이제는 흩어져 자취를 감춘다.

 

소라야

기숙사 2층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나는 주위에 어둠이 깃들 때까지 너와 대화하련다.

앉아서 바라보는 짙은 초록색 풀밭 위로 하얀 꽃들이 예쁘구나.

네가 내 옆에 있다면 내 작은 주먹 가득 따다 네 머리, 네 가슴에 꽂아주고 싶구나.

그리고 꽃반지도~

 

소라야

촘촘히 쌓인 우리의 추억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이젠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와락 그날들에의 애착이 몰려온다

 

소라야

어둠이 내린다. 내가 앉은 이 뜨락에.

이젠 일어서 기숙사 나만의 방으로 들어가야겠다. 그럼 안녕! 오늘은 이만 쓸래~

 

 

 

 

독일에서 친구 순희(예명: 소라)에게

 

 

돌고 돌아 음악이 된 마음, [파독: 소라에게]

 

편지는 우리가 쓸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글이다. 발신인과 수신인이 동일한 일기도 있지만 기본적 속성이 다르다. 일기는 오히려 독자가 나뿐이라는 생각에 실제 나를 왜곡해 담거나 현실과 다른 상상의 영역에서 날개를 펼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편지는 수신인이 명확하다. 그리고 대부분 그는 내가 가장 의지하는 이다. 멀리 떨어진 이에게 소식을 전할 방법이 편지뿐이던 시대에도, 이메일에서 SNS까지 분초 단위로 안부를 전할 수 있게 된 지금도 편지는 각기 다른 이유로 특별한 노력과 애정을 필요로 한다. 수신인의 이름을 쓰고 한참 펜을 굴리다가는 결심했다는 듯 시작되는 너에게만 보내는 이야기. 이름과 첫 문장 사이 존재하는 마음의 무게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70년대 파독 간호사 공순향이 자신의 친구이자 역시 파독 간호사였던 소라에게 보내는 편지의 시작은 ‘소라야!’다. 평범한 ‘소라에게’도, ‘소라야’라고 나지막이 부르는 것도 아닌 느낌표가 붙은 ‘소라야!’. ‘맑은 풀 냄새 풍기는 기숙사 뒷뜨락에서 너를 생각한다’라는, 일상적이면서도 무척이나 뜨거운 문장으로 시작된 편지는 사흘 동안 나를 괴롭힌 사나운 꿈, 바라던 바와 달리 멀어진 친구와의 거리, 향수병이라 이름 붙일만한 아득한 그리움, 그런 순간에도 변함없이 향기로운 아카시아 향과 아름답게 지저귀는 조용한 새 소리를 차례로 펼쳐 놓는다. 아마도 그에게 일상이었던 하루의 마무리, 기숙사 2층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먼 곳에서 아마 자신과 닮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친구를 부르는 마음의 무게와 온도가 여전히 생생하다.

 

[파독: 소라에게]는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 ‘마음’의 여정을 따라간 여러 예술가가 힘을 모아 완성해 낸 앨범이다. 앨범의 시작에는 사진을 기반으로 한 음악과 전시로 자신만의 창작 세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예술가 김소라가 있다. 음악가 시와의 의뢰로 그의 어머니인 공순향의 칠순 기념 서적을 만들던 그는 공순향이 자신과 동명이인인 친구 소라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공순향이 살았던 낯선 땅, 독일로 향한다.

 

발걸음을 뗀 김소라는 거침이 없다. 그는 수천 조각이 넘는 퍼즐을 맞춰 나가는 사람처럼 공순향이 근무했던 시립병원이 위치한 슈바인푸르트에서 공순향이 여행한 유럽 도시 가운데 하나인 루트비히스부르크까지 50년 전 공순향이 독일에 남기고 온 흔적을 차근차근 밟아 나간다. 여기에 귀국 직전 들른 프랑크푸르트 프리마켓에서 산 100년 된 사진, 지하철에서 주운 메모처럼 물리적 매체에 갇힌 누군가의 순간이 우연의 우연을 거쳐 김소라에게 닿는다. 공순향의 편지와 사진으로 시작된 여정이니 당연하다는 듯, 그곳이 당연히 나의 자리라는 듯.

 

긴 시간을 돌고 돌아 21세기의 소라를 움직이게 한 뜨거운 마음은 그대로 음악이 되었다. 딸 시와가 공순향의 편지에 음을 붙인 노래 ‘소라에게’를 기본 틀로 김소라가 독일에서 녹음해 온 엠비언트와 영상에서 추출한 소리가 더해졌다. 편지를 매개로 탄생한 우연의 음악을 유려하게 지휘한 건 전자음악가 키라라의 솜씨다. 견고한 솔로 작업은 물론 굵직한 리믹스 작업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그의 손끝에서 공순향의 편지는 세 개의 노래로 다시 태어났다. ‘소라에게’ 원곡을 미니멀하고 나긋한 템포로 매만진 ‘소라에게 1부’, 시와의 내레이션과 얽혀 들어가는 거리의 소음이 천천히 저물어가는 저녁 해를 닮은 ‘소라에게 2부’, 덤덤하게 써 내려간 문장 위에 선명히 떠오른 외로움을 찢어질 듯한 파열음으로 묘사한 ‘소라에게 3부’가 그들이다.

 

앨범에 담긴 노래를 가만히 들으며 편지 한 통에 어린 마음과 시간을 생각한다. 오직 하나의 수신인을 특정했던 짧은 글은 이토록 긴 시간을 돌아 건너 비로소 음악이 되었다. 파독 간호사 공순향과 친구 소라, 공순향의 딸이자 음악가인 시와와 전자 음악가 키라라, 그리고 이 모두를 연결한 예술가 김소라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과 우연이 겹쳐야 이런 음악이 만들어질까. 문득 이 수많은 우연과 필연으로 만들어진 온기가 50년 전, 집을 떠나온 먼 곳에서 보고 싶은 친구의 이름을 부르던 공순향의 하루치 피로를 달래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길고 긴 시간을 돌아 음악이 된 마음, [파독: 소라에게]다.

 

김윤하 / 대중음악평론가

 

 

[Credit]

프로젝트 디렉터 | 김소라

 

작사 | 공순향, 시와

작곡 | (1) 시와 / (2)-(5) 시와, 키라라

편곡 | (1) 시와 / (2)-(5) 키라라

 

노래 | 시와

기타 | 시와

앰비언트 사운드 컴포지션, 편집 | 키라라

앰비언트 레코딩 | PPS

 

믹싱, 마스터링 | (1) 천학주 / (2)-(5) 키라라

 

 

제작 | PPS

음원 유통 | 포크라노스

 

디자인 | 김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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