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LEX*ion
- Artist NET GALA,
- Release2019.05.31
- Genre Electronic,
- LabelNBDKNW
- FormatEP
- CountryKorea
1. EXXTNT
2. Quarrel
3. Altrauma
4. KIKI
5. Botched Silver Orgel Broken Platform
re:FLEX*ion [NET GALA]
“음악을 듣는 것은 신체의 자세, 다시 말해서 일종의 내적 긴장으로서, 이 긴장은 움직임으로 표출될 때는 이완되는, 그러니까 스스로를 부정하는 긴장이다. 음악을 듣는 사람은 ‘집중’해야만, 다시 말해서 자신의 근육과 신경을 어떤 식으로든 정지시켜야만 제대로 들을 수 있다.”
– 빌렘 플루서, 「음악을 듣는 몸짓」
음악을 듣기 시작하는 순간, 그러니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재생 버튼을 누른 다음 소리가 흘러나오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우리를 휘감는 것은 일종의 예측불가능성이다. 이 다음에 어떤 소리가 자신의 귀를 흔들 것인지,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선율이 흘러나올 것인지 아니면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는 소음이 엄습할지, 듣는 이는 파악할 수 없다. 심지어 오랜 시간 동안 팬이었던 아티스트의 신보를 듣는다고 해도 그 예측불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청자 자신의 경험, 아티스트가 쌓아 온 고유의 사운드와 태도, 장르나 레이블 등의 사회적이고 산업적인 분류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그러한 예측불가능성은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희석되기 시작한다. 더불어 시간 예술이라는 음악의 필연적 조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를 익숙함이란 바닷속으로 떠내려가게 내버려 둔다. 하지만 때로 그 모든 요인을 거슬러 음악 자신의 궤적 속에서 예측불가능성을 획득하고자 시도하는 음악이 존재한다.
근원을 추적할 수 없는 머나먼 거리의 소음으로부터 세츄레이션(saturation)이 잔뜩 걸린 신시사이저의 파괴적 개입까지 이르는 첫 트랙 “EXXTNT”의 소리를 듣는 순간, 당신은 NET GALA의 첫 EP [re:FLEX*ion] 역시 그러한 예측불가능성을 소구하는 레코드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청자의 예상을 끊임없이 뒤엎으려는 EP의 시도는 명시적인 영역 – 고음의 신시사이저 루프를 갑작스레 폭발시키는 “Quarrel”, 채찍처럼 귀를 때리는 노이즈와 불길하게 울려 퍼지는 킥 드럼을 조화시킨 “Altrauma” – 부터 보다 예민하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 지점 – 상이한 리듬 패턴들을 넘나드는 동시에 옭아매는 “KIKI”의 비트, 앞선 트랙들의 격렬함과는 대조적으로 소리의 조밀한 집합 아래서 변주를 모색하는 “Botched Silver Orgel”,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원거리의 신스와 팽팽한 현처럼 튕김을 반복하는 근거리의 신스가 주도권을 다투는 “Broken Platform” – 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그 시도를 구성하는 소리들은 마치 서로가 지닌 신체를 절단하려는 듯이 그 날카로움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소리들에 대해 장르적으로 간단하게, 그러니까 디컨스트럭티드 클럽(Deconstructed Club)이라고 흔히 이야기되는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의 총체로서 이 레코드를 설명할지도 모른다. NET GALA가 퀴어 크루에 속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삼아 (주로 서구로부터 끌어온) 퀴어 클럽 문화의 맥락을 도입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장르성과 퀴어성의 맥락들이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는 동시에, 그 열린 틈새로 기존의 맥락들을 흘려보내는 것이 예측불가능성을 활용하는 [re:FLEX*ion]의 또 다른 방식이다. 점멸하는 파열음, 휘몰아치는 비트, 잦아들듯이 포개어지는 전자음들은, 거기에 어떤 외부적 맥락을 섣불리 접붙이기 전에 소리 자체에 집중하라고 외치듯이 자신들의 존재를 확고히 한다.
이렇게 예상을 불허하는 전개와 소리들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re:FLEX*ion]은 자신이 빚어내는 예측불가능성을 자신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고립의 형태로 귀속시키는 대신 끊임없이 어떤 ‘가능성’을 찾아 헤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아마 그것은 각각의 소리들이 서로를 ‘절단’하기 위해 날을 벼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단절’에 이르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끊임없이 충돌하고 불화하는 소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과 날 사이에 접촉면을 형성하면서 계속해서 자신들 사이에 이어지고 있는 가느다란 선을 유지해 나간다.
그 가느다란 선이 각 트랙 내부에서의 소리와 소리 사이뿐만이 아닌, [re:FLEX*ion]이라는 작품 전체 단위에서도 이어진다고 여기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또렷하지만 불안하게 흔들리는 멜로디(“EXXTNT”, “Quarrel”), 어지러이 뒤섞이고 충돌하는 비트(“Altrauma”, “KIKI”),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가라앉듯이 휘몰아치는 소리(“Botched Silver Orgel”, “Broken Platform”)가 각각 중심이 된 일련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가 절단이란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형태를 갖춰 나가는 기이한 과정을 상상해보게 된다.
그것은 듣는 이의 근육과 신경을 정지시키는, 어떻게 보면 정말로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re:FLEX*ion]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지로부터 발생하게 되는 반사 작용(reflex)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터넷 속에 흩어져 있는 작은 데이터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상상하며 자신의 이름을 만들어낸 아티스트는, 그 데이터들이 절단됨으로써 비로소 이어지는 댄스 음악의 장 속에서 존재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탐사한다.
글쓴이 – 음악전문웹진 [weiv] 편집장 정구원
-Credits-
Produced by NET GALA
Mixed by NET GALA; except Track 2 Mixed by Kim Kate @ Mad Flux Audio
Mastered By Kim Kate @ Mad Flux Audio
Artwork by Bakya
NBDKNW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