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d Wide Web

  • 1.부식토
  • 2.네트워크
  • 3.Treegaze
  • 4.여백
  • 5.유리

 

…우리는 두 사람을 따라 전기 없는 웹 혹은 전자적인 숲에 접속한다. 해저에 뻗은 랜선 대신 부식토에 묻힌 균근이 잡음 섞인 신호를 전송하고, 숲에 울리는 낮은 주파수의 공진은 네트워크가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두 사람은 이곳에 조심스럽게 장비를 설치한다…

 

《Wood Wide Web》은 오랜 친구이자 음악적 동료인 장명선과 피아노 슈게이저가 함께 발매하는 첫 EP의 제목이다.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구상은 네이처트로니카(nature-tronica)로 대표되는 장명선의 창작법을 피아노 슈게이저와 함께 점검하며 그려졌다. 창작의 소재로 자연을 사용할 때는, 아무리 긍정적인 의미를 담으려 하더라도 인간적인 관점을 통과할 수밖에는 없게 된다. 이런 접근에서 자연은 어쩔 수 없이 인간적인 의도에 맞춰 다듬어지고, 때로는 오로지 인간적인 용도를 위해서만 변형된다. 이는 편의를 위해 자연을 가공하고 파괴하는 것과 별다르지 않게 오로지 인간만을 자연의 중심 혹은 상위에 둔 접근이며, 동시에 우리의 결정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이 보잘것없는 인간의 감각과 상상력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전부일 것이다. 울창한 숲을 이루는 개개별의 생물체가 무엇을 어떻게 감각하고 사유하며 그것이 인간이 느끼거나 생각하는 것과 적절하게 호환될 수 있는지는 결국에 모르는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Wood Wide Web》은 가용한 도구를 활용해 그들만의 방식으로 전자적인 자연을 구현하기를 시도한다.

 

이 ‘우드 와이드 웹’은 두 음악가가 EP의 전반적인 방향성을 정하고자 선택한 단어로, 이는 또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결정적인 이해 불능에 대한 근사한 사례기도 하다. WWW으로 익숙한 월드와이드 웹(World Wide Web)을 비튼 이 표현은 캐나다의 산림과학자 수잔 시마드(Suzanne Simard)가 1997년 8월호에 투고한 논문 「야외 서식 외생균근 수종 간 탄소 이동」를 싣는 과정에서 『네이처』가 제안했다. 시마드의 연구팀이 노숙림의 자작나무와 미송을 조사하던 중 숲을 구성하는 나무들끼리 균사체와 뿌리가 긴밀하게 얽힌 유기적인 연결망, 이른바 균근 네트워크(mycorrhizal networks)를 형성해 각종 영양분부터 신경 물질까지 전달한다고 밝힌 것이다. TCP/IP로 대표되는 통신규약을 엮어 전례 없던 디지털 연결망을 형성한 WWW는 이런 발견에 더할 나위 없는 비유가 되어주었다. 숲이 어림도 못 할 만큼 오랫동안 현대 인류의 최신 발명품처럼 소통해 왔을지도 모른다는 인상은 빠르게 퍼져나가, 심지어 시마드가 숲 전반을 보살피는 거대한 고목으로 제안한 ‘어머니 나무’가 영화 〈아바타〉까지 가닿을 정도였다.

 

…큰 나무를 주시하던 당신은 버섯이나 고사리의 생체 전기로 연주되는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를 떠올리고 그런 것인지 묻는다. 고무 피막 너머로 삐져나온 집게의 이빨이 버섯의 육질을 살짝 파고들자, 버섯갓 밑으로 풀풀 퍼지는 포자를 들이마신 기계가 작동을 시작한다…

 

《Wood Wide Web》 또한 이런 시마드의 개념에서 착안해, 저속촬영으로 포착한 숲의 복닥거리는 하루처럼 여러 소리와 그 흐름이 시간의 진행에 따라 바글거리고 또 잦아드는 모습을 음향으로 묘사한다. 이를 위해 사용한 도구는 디지털 신시사이저로, 두 음악가가 이미 각자의 작업에서 능숙하게 사용하는 이 악기는 자연과도 특히 묘한 관계를 맺는다. 온갖 합성수지와 가공된 금속으로 이뤄져 전기로 작동하는 기계에서 0과 1을 변조해 만든 사운드만큼, 숲이나 자연과 멀게 느껴지는 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런 합성적이고 인공적인 성질 덕에 어떤 전자음악가들은 이 놀라운 기계를 할 수 있는 최대한 써먹어 자연을 착실히 옮겨오길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이는 실제 자연의 소리를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고, 훨씬 추상적인 방식으로 자연의 감각을 모의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그 활용법이 어느 쪽이든 간에, 신시사이저가 현실상의 숲과 제법 비슷하게 생겼어도 본질적으로 다르게 돌아가는, 허구적인 ‘자연’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작은 유리병 속에 생태계를 조성하는 테라리움이 실제 자연과 꽤 닮았으나, 사람의 손으로 ‘자연스럽지’는 않게 조정되는 특수한 환경인 것처럼.

 

《Wood Wide Web》에서 두 음악가는 어쿠스틱한 업라이트 피아노와 몽글몽글한 디지털 건반을, 신호를 합성한 신시사이징과 잡음을 채집한 필드 레코딩을, 자그맣게 들끓는 소리와 읊조리고 허밍 하는 목소리를 뒤섞어 그들만의 전자적인 자연을 조형한다. 이 풍경을 채색하는 건 풍부한 음색으로, 선율과 화성의 가지가 곳곳으로 뻗어나가게 하고 앰비언스의 토양을 두툼하게 깔아놓아 여러 소리가 풍성하게 번성할 바탕을 제공한다. 첫 곡의 제목인 ‘부식토’를 빌려오자면, 무기적이라고 할만한 전자음을 사용해 유기질로 가득한 땅을 비옥하게 골라놓은 셈이다. 그렇게 이곳에 심어져 자라는 소리는 어떻게 듣자면 우드 와이드 웹에 서식하는 수많은 생물과 미생물, 어쩌면 무생물과도 같다. 디지털 신시사이저로 만든 각 소리의 고유한 질감은 비브라폰부터 오르간에 테레민까지 다양한 실물 악기의 의태를 하는 한편, 사운드의 빈틈에 구석구석 스민 글리치는 필드 레코딩에 딸려 온 자연의 여러 잡음을 흉내 내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섬세한 신시사이징 덕에 희미한 전자 잡음들이 마치 풀벌레의 울음소리나 개천과 바람의 소리처럼 들리는 것일 테다. 하지만 전자음의 인공적인 추상성은 영악하게도 그 어떤 자연이나 생물이 내는 소리와도 전혀 닮지 않은 의성어로 청자를 속일 수 있고, 줄기와 뿌리가 엉망으로 뒤엉켜 들려오는 이 소리는 귓구멍을 타고 청자를 감염시켜 우리 머릿속에 유기체와 무기체가 얽히고설킨 삼림을 키워낼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귓전을 스쳐 지나간 소리는 날파리의 날갯짓을 녹음한 소리일까, 아니면 그와 진동수가 유사한 외마디의 신스음일까?

 

…두 사람이 조작하는 기계는 숲의 신경망이 발산하는 온갖 정보를 수많은 장치에 통과시켜 알아듣고 즐길 만한 소리의 연쇄로 변환한다. 그러니 나도 당신에게 나무들의 이치를 지레짐작해 옮겨 줄 뿐이다. 우드 와이드 웹을 브라우징하며 음악을 만드는 두 사람을 따라서…

 

그렇게 전자적인 자연을 구성하는 유기체이자 무기체의 서식법을 익혀 본다면, 우드 와이드 웹을 구성하는 소리가 이룬 크고 작은 연결망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들을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우드 와이드 웹에는 다양한 양태로 존재하는 소리가 가득한데, 그 종을 분류하자면 실제로 녹음해 온 자연의 소리, 신시사이저로 모의한 전자음, 그리고 양편을 오가면서 연결 짓는 두 음악가의 음성으로 둘 수 있겠다. 이때 피아노 슈게이저와 장명선은 이 특수한 숲의 연구자로서 그 바깥에서 소리의 생태를 관찰하기도 하지만, 또한 거주자로서 숲의 안쪽에 들어가 그 일부가 되기도 한다. 《Wood Wide Web》을 감상하는 가장 큰 재미가 바로 여기, 여러 유형의 소리가 한 트랙에서 겹치고 얹히며 부산하게 체계화되는 과정을 듣는 것에 있다. 음반을 여닫는 〈부식토〉와 〈유리〉가 무척 인상적인 이유 또한 언어를 배제한 일종의 ‘기악곡’으로서 우드 와이드 웹의 복잡다단한 생태를 전망해 주기 때문이다. 생물이 저만의 소리로 우는 만큼, 기계도 제각각의 울음소리를 가지며, 이는 인간이 만들고 내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숲을 환하게 밝히는 〈부식토〉에서 이 세 갈래의 소리가 어떻게 솟아오르고 내려앉다가 이윽고 한 줄기로 꼬이고 또 어떻게 그 두께와 잔향으로 우드 와이드 웹의 공간감을 차차 넓혀나가는지, 한편 날이 저무는 듯한 〈유리〉에서 전경에 뜨는 피아노 연주나 목소리들의 허밍과 코러스가 어떻게 배경의 풀벌레와 신시사이저의 은은한 울음소리와 소란하게 대화하는지. 일정한 흐름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소리의 움직임을 들으며 우리는 이 생태계의 형상을 짐작할 수 있다. 《Wood Wide Web》은 이를 일종의 살아감으로, 즉 삶이 죽음이 부패와 탄생을 거쳐 서로에게 퇴적되는 순환 과정으로 부른다.

 

어쩌면 두 음악가의 목소리가 노랫말을 데리고 등장하며 팝송의 구조에 조금 더 가까운 수록곡들에서 이런 살아감의 면모를 좀 더 실감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네트워크〉에서 왈츠풍의 박자를 따라 장명선의 가창 주위로 몰려드는 여러 질감의 전자음이 이윽고 코러스로 등장하는 목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피고 지며, 〈Treegaze〉의 첫 절반에서 작게 읊조리는 피아노 슈게이저의 목소리가 짙게 왜곡된 소음의 몸체 사이로 위태로이 숨어들고, 〈여백〉에서의 듀엣이 빗소리와 물소리를 맞으며 여러 갈래의 신시사이저나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발을 맞춰 나가는 모습에서 말이다. 이런 가창과 허밍은 언제나 사운드의 핵심을 차지하지 않는 대신, 종종 《Wood Wide Web》에서 살아가는 다른 소리에 덮여 목소리가 음악에 행사하곤 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그들에게 내어준다. 이렇게 인간 중심적인 주객 관계를 흐려보려는 이런 접근은 음악에서 위치와 역할을 달리하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거기에 담긴 노랫말에서도 시도된다. 이 세 곡에서 ‘나’를 주어로 삼은 화자는 자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우리’의 기억과 마음을 지켜내기를 바라면서, 스스로 믿음을 가져보고자 하므로. 식물의 감각을 번역하려는 작사법이 물론 다른 생물의 관점을 완벽히 전할 수는 없겠지만, 그 입장을 상상하며 옮기는 과정에서 인간의 농도는 조금이나마 줄어들고 그 대신 다른 무언가에 옮아버릴 여지가 열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인간에게 균사를 뻗고 포자를 뿌리며 우리의 감각과 생각을 더럽히는 이 힘은 우드 와이드 웹처럼 작동하는 자연의 것일 수도, 어쩌면 이를 디지털 신시사이저의 세계와 결합한 음악의 것일 수도 있다.

 

…신호를 채집한 기계가 화면 여백에 혼란한 파장을 띄운다. 바삐 순환하는 연결망에선 기계와 자연이 서로를 따라 하며 섞이고, 목소리와 울음소리는 더 이상 분간할 수 없어진다. 테라리움의 유리 벽 안에 서식하는 생태계는 우리가 발을 맞출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인다…

 

모든 과학이 그렇듯, 시마드의 가설은 후대 연구자들에게 의심되고 반박되었다. 균근이 영양분 전달용 연결망을 구성한다는 학술적인 근거가 여전히 부족하며, 식물들끼리는 친밀하고 긴밀한 공생만이 아니라 치열하고 비열한 경쟁 또한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우드 와이드 웹과 어머니 나무의 개념 자체가 숲의 작동법을 그럴싸하게 말이 되게 비유하는 우화이며, 여전히 인간적인 관점으로 자연을 이상화하고 낭만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과학적인 논증과 허구적인 상상을 총동원하더라도 우리는 결국에 숲이 어떻게 살아가고 느끼는지를 알지 못하고, 자연은 우리가 투사하는 깨끗한 바람보다 훨씬 더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운 난장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시마드의 식견이 미흡하다고 비판하기보다, 그가 인간으로서의 생과 자연이라는 관심사를 면밀히 엮여 양쪽이 순환하는 연결망을 그려본다는 점에 집중해 볼 수 있겠다. 이런 일화는 좀 더 자연 중심적이고자 애쓰는 인간과 그런 인간에게 끈끈하게 얽혀 들어간 자연이 어떻게 서로에게 지속적인 영향력을 주고받는지를 보인다. 이때, 어머니 나무와 우드 와이드 웹은 충분히 반증할 수 있는 이론인 동시에 그런 만큼 충분히 매료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Wood Wide Web》에서 재배한 자연이 재현과 모의의 틈새에 뿌리를 내린 채, 양쪽에서 무언가를 가져오고 또 가져가는 것처럼.

 

과학과 허구 사이에 놓인 음악은 그만의 사이언스-픽션으로서 실험과 상상을 능숙하게 잇고, 양쪽이 몇 단계의 매개를 거쳐 호환되는 곳에서는 고유한 특성과 힘을 지닌 소리가 잔뜩 만들어진다. 《Wood Wide Web》에 자라난 이 소규모의 생태계 또한 그렇게 다종다양한 영역 간의 연결과 순환을 거쳐 저만의 생명력을 얻었다. 이 전자적인 자연은 시간을 타고 재생되면서 우리 머릿속에 줄기와 덩굴을 뻗고 그루와 뿌리를 내려 온갖 소리를 전달한다. 그 소리엔 넉넉한 양분이 담겨있을지도, 어쩌면 끈적한 균류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 인간부터가 수많은 미생물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데, 공기의 진동과 청신경을 타고 들어오는 이 하얗고 푸른 곰팡이를 영영 받아들이지 말라는 법은 없을 테다…그러므로 우드 와이드 웹의 두 사람은 전기 없이 웹에 접속해 이 전자적인 숲에 기계 장치를 심어두고, 그들은 연결망의 한구석에 세운 실험실에서 신호를 키우고 잡음을 뒤섞어 배양한 소리를 데이터의 균사체에 실어 널리 퍼뜨린다. 나는 당신에게 《Wood Wide Web》의 접속법을 전해주고, 우리는 테라리움이 머릿속의 유리병을 부리나케 빠져나가 사방으로 퍼져가는 장관을 밖이자 안에서 듣는다. 당신은 그 풍경이 근사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나 혼자 멋대로 그리 생각한 걸지도. 문득 우리 입에서 흙 맛이 느껴진다…

 

– 나원영 (대중음악 비평가)

 

Credits

 

주최, 주관 : 장명선

프로듀싱 : Piano Shoegazer, 장명선

작곡 : Piano Shoegazer, 장명선

작사 : Piano Shoegazer (Track 3, Track 4), 장명선 (Track 2)

편곡 : Piano Shoegazer (All Tracks), 장명선 (All Tracks), 박정웅 (Track 3), 이승현 (Track 3)

드럼 녹음 : b.gun at Surf!Recordings (Track 3)

기타, 보컬, 베이스 녹음 : Piano Shoegazer at Studio Pangaea

보컬 : Piano Shoegazer, 장명선

연주 : Piano Shoegazer 신스, 피아노 (All Tracks), 베이스 (Track 3), 박정웅 기타 (Track 3), 이승현 드럼 (Track 3)

믹스, 마스터링 : Piano Shoegazer

아트 디렉터 : 송보경

사진 : 송보경

메이크업 : 유선영

촬영 보조 : 함선영

디자인 : 김가빈

미술 : 김가빈, 김민주, 김성혜

의상 협찬 : JIMINLEE

글 : 나원영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유통 : 포크라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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