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Big Thing] 변하지 않을 마스터피스, 몽니

Next Big Thing
변하지 않을 마스터피스, 몽니

올해로 데뷔 12년차 밴드 ‘몽니’는 단 한 번의 멤버 교체 없이 긴 세월을 걸어왔다. 이 올곧은 걸음은 십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 멈출 생각이 없다. 올해에만 세 번의 싱글과 여섯 곡을 꾹꾹 눌러담은 밀도있는 EP까지 펼쳐놓은 이들.

포루그 파로흐자드라는 시인의 유고 시집 속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 보자’라는 시가 문득 생각난다. 긴 세월 간 스치는 매일 같고도 다른 풍경, 사람, 상황과 그 속의 풍랑들. 추운 계절이 시작되면 너무도 많은 것들이 스러지고 얼어가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과 다시 숨을 틔우는 계절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속엔 어쩌면 당연하게 ‘몽니’의 음악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은정 : 올해 연달아 싱글들을 내놓긴 했지만, EP 단위로는 꼭 1년 만이에요. 이번 EP [Analog Melody]에 수록된 ‘너와 너’는 선공개 되기도 했었는데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 곡에 대한 감정이 어쩐지 남다를 것 같아요. 

김신의 : 부인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감정이 변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더욱 두터운 신뢰를 쌓아가며 사랑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고 행복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언제나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 아이가 태어나면 친구같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고 나이가 들어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두 딸과 그렇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에요.

두은정 : 그렇다면 이 곡 제목을 ‘너와 너로 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신의 : 두 명의 딸이 있어요. ‘너와 너에서 ‘라는 단어는 두 딸을 의미하고 있어요그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의미도 담고 있어요자식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부모의 마음은 같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요많은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제목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너와 너라고 쓰게 되었어요.

두은정 : 이번 EP 녹음 과정에서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김신의 : 멤버들의 연주 녹음이 모두 끝난 후에 마지막으로 보컬 녹음이 진행돼요. 연주 녹음이 끝나고 보컬 녹음을 하기 위해 멤버들이 연주한 걸 듣고 있는데 ‘와… 몽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묘하고 좋았어요. 왜냐면 멤버들이 연주를 정말 잘 했어요. 덕분에 보컬 녹음도 잘 마무리했죠.

공태우 : 이번 앨범은 특히 힘을 많이 빼고 녹음을 진행했어요. 이전 앨범들은 ‘연주를 잘 해야지!’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녹음했다면 이번 앨범은 ‘힘을 빼자.’라는 마인드를 갖구요. 결과물은 마음에 무척 들어요. 되려 힘을 너무 빼서 중간중간 졸리기도 했죠.

이인경 :선공개 되기도 했던 ‘너와 너’라는 곡 보컬 녹음 도중에 보컬 신의 오빠가 잠시 노래를 끊길래 혹시 노래 도중에 울컥했나 싶었어요. 그래서 멤버들 모두가 숙연해져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노래하던 중 숨이 차서 그랬었다고…(웃음)

정훈태 : 녹음실 바로 옆에 핫도그 집이 새로 생겼었어요. EP를 준비하면서 녹음실을 거의 매일 갔었는데 녹음실에 멤버들이 모이면 매일 핫도그 값을 걸고 내기 가위바위보를 했던 기억이 남아요.

두은정 : 각 곡에서 녹음, 믹싱 등에서 특히 신경 쓴 작업적 포인트가 있다면요. 

몽니 : 수록곡 중 ‘다 괜찮다’ 라는 곡의 사운드를 애초에 빈티지하고 드라이하게 계획하고 녹음에 쓰일 개인 악기 선정부터 믹스까지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요. 베이스 같은 경우에는 주로 녹음했던 재즈 베이스류의 메인 악기가 아닌 프리시전 베이스를 사용했고, 드럼은 가능한 뮤트를 많이 하고 플레이도 화려하지 않게 자제하며 녹음했어요.

타이틀 곡 ‘바람’은 보라카이 여행을 하면서 쓴 곡인데 여행이라는 설렘과 좋은 감정들을 곡에 담고 싶었어요. 이번 앨범 중 이 곡에서는 특별히 아코디언 연주가 들어가요. 그래서 멜로디 악기인 일렉 기타와 겹치지 않기 위해 적절하게 서로 양보를 해가며 편곡을 했고요.
‘길 없는 거리’같은 경우는 몽환적인 느낌의 코러스가 중요했어요. 화성을 많이 쌓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느낌이 나는 사운드로 믹스 되었어요. 또 간주 부분에서는 기타 사운드가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 것이 포인트라고 할 수 있어요.

두은정 : EP 타이틀을 [Analog Melody]로 정한 이유에 대해 멤버 각자가 소개해주세요.

김신의 : 요즘 음악도 감성도 모두 디지털화되었고, 오히려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따라 하려고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어요. 예전의 감성이 그리웠죠. 실제로 이번 EP 앨범명 후보 중에 ‘다시 그때를’이라는 후보도 있었어요. 그만큼 모두가 아날로그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그런 이름으로 정하게 되었어요.

공태우 : 전체적으로 곡들의 스타일이 잔잔하고 어쿠스틱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아날로그’ 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었고, 멤버들 또한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던 찰나 적절한 타이틀이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인경 : 저는 개인적으로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멜로디라고 생각해요. 훌륭한 멜로디라는 건 시대를 가리지 않죠.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향수, 세대를 막론한 훌륭한 멜로디들에 대한 향수가 탄생시킨 제목입니다.

정훈태 : 어느 순간부터 디지털 문화가 마냥 좋지 않다는 걸 느껴요. 비교적 불편했지만, 인간적인 맛이 있었던 아날로그 문화를 그리워하기도 해요. 그런 따뜻하고 인간적인 음악을 담고 싶었어요.

 

두은정 : 그 중 타이틀곡을 ‘바람’으로 선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몽니 : 모두가 바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조금 여유를 가지고 잠시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나’에게 주는 행복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 ‘Analog Melody’ 앨범을 통해서 특정한 대상을 정하지 않고 모두에게 공감과 위로 그리고 휴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해서 타이틀로 선정하게 되었어요.

두은정 : ‘길 없는 거리’의 곡 작업을 하며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이인경 : 앞서도 얘기했듯 이 곡은 코러스가 매우 중요한 곡이에요. 특히 허밍 부분의 코러스 라인이 연약하면서도 몽환적으로 표현되길 바랐기 때문에 여성의 목소리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녹음하게 되었는데 훌륭한 프로듀서와 믹싱 엔지니어님 덕분에 좋은 목소리로 재탄생 되었어요.(하하)

두은정 : 이 곡을 작곡한 베이시스트 인경님이 직접 느끼는 곡의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이인경 :  불안하고 외로운 사랑에 관한 노래입니다. 많은 분이 공감하실 것 같아요. 가사가 전하는 메세지에도 귀를 기울여 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은정 : 각자 몽니에서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스타일 혹은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방향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신의 : 내년에 정규앨범을 준비하는 걸 목표로 많은 곡을 써낼 것이고, 곡을 많이 모아서 가장 좋은 곡들을 추려서 앨범을 낼 계획입니다. 팬분들이 기억하는 몽니 초창기 때의 음악을 그리고 기존의 몽니가 가지고 있었던 사운드를 다시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방향성 그리고 사운드를 찾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공태우 : 빈티지하고 최소한의 악기 구성으로 낼 수 있는 사운드를 좋아해요. 앞으로도 적은 구성으로 꽉 찬 사운드를 내는 것을 시도하고 싶어요. 음 하나하나 모두 잘 들리는 음악을 만들고 싶구요.

이인경 : 더욱더 완성도 있는 몽니의 음악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멤버 모두가 곡 작업에 항상 열중하고 있고 더욱 진실 되고 감동적인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정훈태 : 어쩌면 전적으로 저만의 생각이기도 하지만 신스 사운드를 활용한 음악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두은정 : 10년 넘게 함께 활동해오며 각자가 느끼는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10년 넘게 끈끈한 팀워크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신의 : 리더인 제가 가장 나이가 많고 모두 동생들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형에 대한 두둔과 결정을 따라와 주는 것이 큰 것 같아요. 그리고 이끌어 갈 수 있는 형의 존재가 있다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주고 팀의 멤버로써 사랑해주는 좋은 마음이 비롯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이인경 :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항상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줘요. 만약 존중과 배려가 없었다면 팀은 유지될 수 없었을 거로 생각해요. 그 점이 가장 큰 비결인 것 같아요.

공태우 : 꾸준히 곡을 만들고 발표하며 우리를 불러주는 곳, 찾아 와주시는 팬분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 같아요. 이것은 앞으로도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고 부지런하게 음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훈태 : 멤버들이 각자의 역할을 잘 알고 있어요. 저는 막내로서 역할을 잘 알고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두은정 : 오랜 시간 활동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은 수많은 곡이 있었죠. 스스로 몽니의 디스코그라피를 돌아보며 각자가 가장 좋아하는 곡을 꼽아본다면,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지가 궁금하네요.

김신의 : ‘소년이 어른이 되어’, ‘소나기’, ‘그대와 함께’ 이 3곡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나요. ‘소년이 어른이 되어’는 곡 스타일과 멜로디도 좋지만 그런 가사를 썼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소나기’는 몽니를 있게 해준 그리고 몽니의 색깔과 음악적인 방향을 제시하며 원동력이 되었던 곡이기도 해요. ‘그대와 함께’는 팬분들과 함께 호흡하며 즐겁고 행복 할 수 있는 곡이기 때문에 좋아해요. 비록 가사만 보면 마냥 행복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이 곡으로 팬들과 많은 추억을 쌓고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인경 : ‘레미제라블’이라는 곡이요. 제가 느끼는 최고의 명곡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앞으로 다시 이런 곡이 나오기를 고대해요. 곡 구성, 편곡, 연주, 노래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몽니의 대곡이자 마스터피스라고 생각해요.

공태우 : 2016년에 발표한 EP 수록곡인 ‘Grandmom’. 이 곡이 애착이 많이 가는데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만든 곡이에요. 이 노랠 가끔 혼자 듣는데 듣고 있으면 주름진 할머니의 따스한 손이 느껴져요.

정훈태 : ‘더는 사랑노래 못쓰겠다’라는 곡이요. 길진 않지만 드럼 솔로 타임이 있어요. (웃음)

 

두은정 : 곧 데뷔 15년 차를 앞두고 있는 ‘몽니’입니다. 앞으로는 어떤 방향의 음악을 들려주게 될까요.

김신의 : 진실한 음악으로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구요. 사운드나 악기 편성 곡의 편곡 등의 부분들은 곡의 특징마다 다를 수 있지만 곡 하나하나에 진실함을 담아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이인경 : 우리의 음악이 감동을 주고 힐링이 되기를 바라요. 그냥 스쳐 듣는 음악이 아닌 오래도록 플레이리스트에 간직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공태우 : 꾸준히 발전하는 몽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선후배 뮤지션들과의 협업도 좋고 새로운 음악으로 진취적인 활동을 하고 싶기도 해요.

정훈태 : 15년 차라고해서 풋풋함을 잃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성숙함을 놓치고 싶지도 않구요.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며 변하지 않고 성숙해지는 음악을 보여주고 싶어요.



Editor
 / 두은정
(촬영, 인터뷰)
youngwave@poclanos.com

[Next Big Thing] 마치 오래된 미래, 구원찬

Next Big Thing
마치 오래된 미래, 구원찬

발매 전 신곡을 미리 들어보는 일이 음원 유통사 직원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라고 한다면 다른 의미로는 그것이 일종의 행운이라고 느끼기도 하는데, 그 행운은 기대작의 음원을 미리 듣는 것보다도 ‘좋은 예감’이 드는 신예 뮤지션의 앨범과 미리 조우할 수 있는 것, 또 그것의 흥행을 점쳐보는 일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구원찬의 곡을 처음 접한 건 다름 아닌 발매 전 다소 무심하게 재생을 해본 뮤직비디오를 통해서였다. 단번에, 그러니까 재생하는 순간 이후의 상황을 직감으로 느끼는 곡이 종종 있다. 새로운 보물을 발견한 이 기쁨을 누군가에게도 나누려 노력할 거라는 사실을.

94년생, 올해로 스물넷의 구원찬은 알앤비의 형식을 빌린 잘 짜인 구성의 팝 앨범을 본인의 이름으로 선보였다. 어느 별에서 뚝 떨어졌나 싶은 이 젊은 신예는 이미 3년 전부터의 발매 이력이 있는 ‘경력있는’ 뮤지션. 돕맨션(Dopemansion)의 ‘반쿠디(Vankudi)’라는 이름으로 그를 먼저 알았던 이들이라면 지금의 방향성이 다소 의아할 수도 있겠고 알앤비 보컬리스트로 알려지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알앤비보다 팝으로 분류되길 원한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면 또 한 차례의 의문이 스쳐갈 수도 있겠다. 그러나 피셔맨과 작업한 가장 최근의 EP까지 ‘해치운’ 그의 모습을 보고 나면 그의 음악을 즐기기엔 나의 시계가 너무 느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

구원찬의 첫 EP ‘반복’은 그의 보컬만큼이나 감정을 풀어내는 서사, 전반적인 스토리텔링이 확실한 앨범이다. 특히 인상적인 소울풀 넘버 ‘감정관리’부터 그보다 조금 더 팝의 무드가 짙은 타이틀곡 ‘행성’, 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었다는 ‘행성’의 뮤직비디오까지 감상하고 나면 공간감이나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부유하는 배경 속에서도 반짝거리는 그만의 확실한 감정선이 돋보인다. 예쁘고 빛나는 곡이야 여럿이겠지만 특히 그의 노랫말에 집중하게 되는 건 4곡 내내 연인 혹은 스스로에게서 느끼는 관계의 사계를 마치 쉬지 않는 시계축처럼 그린 점 때문일지도. 마치 그는 그 자신 같은 곡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 혹은 자신에 대한 말을 나누며 형형히 반짝이는 눈이나 확신에 가득 찬 어조에서 이후에 그가 내보일 세계에 대해 내가 짐짓 어떤 확신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두은정 : 데뷔 EP ‘반복에 이어 ‘피셔맨’과 작업한 새 EP까지 한 달 텀으로 연달아 내놓았죠.
 
구원찬 : ‘반복이라는 앨범은 2013, 4년도에 썼던 앨범이에요과거의 나이기도 하죠. 제 곡이 전부 다 저 자신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2017년도의 내가 작업을 하고 지금의 내가 가진 감성과 더 맞으니까. 아무래도 그런 식의 애착은 좀 더 가는 것 같아요.
 
두은정 :  EP의 곡들은 모두 꽤 이전에 작업한 곡들인 거군요.
 
구원찬 : 돕맨션 때의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써둔 곡들이죠.
 
두은정 : 본래 솔로로 내려는 생각이 있던 곡들인가요?
 
구원찬 : 원래 저의 목표였는데 돕맨션이라는 팀을 하기로 하고 나서 제 음악을 그 방식으로는 풀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장르의 특성상그러다 보니 언젠가 나 혼자 작업을 하자는 생각으로 계속 모아두었죠구원찬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을 때 어떤 음악이 구원찬이라는 이름하고 어울리지 않더라도 할 말이 있잖아요내 이름이내가 구원찬인데.(웃음)

두은정 : ‘반복’이라는 이 EP가 처음에는 사랑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반복해서 듣다 보니 되려 이성 간의 관계보다는 사람 대 사람에 대한 얘기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구원찬 : 물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쓴 곡도 있다 보니 가사를 봤을 때 그렇게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은 해요. 앨범 전체를 말하자면 사실 제가 좀 더 중점적으로 둔 포인트가 ‘사람’이었어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어찌 됐던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사람을 만나는 건 당연한 거고 공동체 생활이나 이런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게 사람이잖아요.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접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접점으로 그 사람과 더 얘기를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동화가 되는, 그런 다음에 이 사람이 맘에 들면 더 자주 만나고 그 상대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네가 좋다’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계속 형성이 되어가는 과정이 있는 거고. 그러다 갈등도 생기고 멀어지게 되는 그런 상황이 흘러가면 또다시 어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거죠.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이런 과정을 행성에 비유를 했어요.

두은정 : 저는 왜 이게 사랑 이야기가 아닐 거 같단 생각을 했냐면 전체적으로 가사가 감정적 묘사보다 상황에 대한 묘사의 비중이 더 큰 것 같았어요. ‘행성’에서 ‘착륙하고 있어’라는 가사에서 특히 그런 걸 느꼈어요.

구원찬 : 쉽게 설명하자면 누군가에게 대화를 건다던가 누군가와 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를 착륙에 비유했어요.

두은정 : 분명히 ‘행성’의 뮤직비디오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어요
 
구원찬 : ‘행성의 가사만 들었을 때는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많았어요저도 이 가사가 이해하는데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어서 더더욱 뮤직비디오를 찍게 된 것 같아요더 잘 설명하고 싶으니까요.

두은정 : 뮤비 아이디어는 어떤 식으로 내고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었나요.

구원찬 : 회의를 많이 했어요. 감독님들도 ‘행성’ 그 자체에 대한 걸 최대한 많이 표현하려고 했죠. 남녀가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껴안거나 스킨십을 하는 그런 느낌은 아니잖아요.

두은정 : 그죠. 오히려 같은 장면에서도 분절되어 있는 느낌.

구원찬 : 서로 알아가려고 하는 그런 포인트들을 직접적으로 대화를 하고 스킨십을 하고 그런 게 아닌 나름의 의미 있는 표현들로 대체하려고 하신 것 같아요.

두은정 : 신체에 숫자를 쓰고 더듬는 이런 장면들이 특히 무슨 의미일지 궁금했어요.

구원찬 : 거리가 좁혀지는 걸 표현한 거죠, 카운트처럼. ‘행성’에서 가장 직접적인 표현이 ‘나를 사랑해줘’인데 뮤직비디오에서 그 가사가 나오는 순간 장면에 숫자가 딱 0이 되거든요. 그게, 이 행성이 맘에 든 거죠. 내가 이곳에 정착하고 싶은데 정착을 하려면 내가 농사도 지어야 하고 집도 지어야 하고 내가 이런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데 정말 나의 바람대로 네가 나를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너를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너도 나를 받아줬으면 좋겠다. 이런 거죠.

 

두은정 : 뮤비가 사실 직접적인 장면들이 있기보다는 비유의 나열이 많다 보니 노래를 들으면서 가사를 한 번 더 보게 되고 자꾸 나름의 해석을 하면서 보게 되더라고요그런 것들이 좋았어요이번엔 새 앨범 얘기를 해볼까요.
 
구원찬 : 이번 앨범은 ‘피셔맨’이라는 친구와 제가 프로젝트로 낸 앨범이에요그 친구가 21살이에요음악을 제대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17살 때부터 힙합 신 쪽에서는 이미 유명하기도 하고 엄청 재능 있는 비트메이커로 알려져 있어요지금은 기리보이 크루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고 개인 앨범도 준비하고 있는 친구예요. 그 친구하고 저하고 스무 살 때부터 알았는데 그때부터 가지고 있던 서로에 대한 호감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게 됐죠. (전체적으로)새로움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곡과 가사를 풀어냈어요피셔맨과 제가 처음으로 음악적으로 섞이는 첫 작업물이기도 하고 그 안에 담긴 가사들도 처음 느낀 감정나를 다시 포맷함으로써 새롭게 시작하자 이런 내용을 많이 담았고요긍정적인 얘기들마지막 조울이라는 트랙에서 긍정적인 마음이 현실과 부딪히는 내용으로 마무리가 되는 앨범이에요.
 
두은정 : 전체적으로 이전 ep보다 좀 더 팝에 가깝고 좀 더 대중적인 앨범이라는 말을 했죠저는 타이틀곡인 기다려가 특히 그런 트랙인 것 같은데.
 
구원찬 : ‘기다려라는 곡은 제가 많이 힘들었을 때 썼던 가사인데 사실 마인드 컨트롤하는 내용이에요어쨌든 나는 잘 될 거고 좋은 사람이 올 거고 나는 그걸 계속 기다린다는 가사제가 지금 몸담고 있는 직업 자체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거기도 하니까 앞이 그려지지 않는 깜깜한 그런 상황에서 나 할 수 있어어쨌든 더 좋은 상황이 올 거야같은 생각을 하며 쓴 거죠일종의 노동요같은.(웃음)

 

 

 

두은정 : 원찬 씨를 보고 알앤비 싱어송라이터라고들 하죠.
 
구원찬 : 저는 그냥 가요’ 아니면 ’. 그게 더 저도 덜 부담스럽고요멋있는 카피나 표현들 사실 너무 감사하죠그래도 그것보다는 쉽게친근하게 다가가지는 거면 좋겠어요저도 좀 더 다양한 걸 하고 싶으니까.



Editor
 / 두은정
(촬영, 인터뷰)
youngwave@poclan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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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과 블루스

내가 기억하는 알앤비는 2000년대 초반의 신파극에 가까웠던 구구절절한 발라드 알앤비다사랑이 죄가 되고 순애보가 전설로 남는사랑이 뭔지도 몰랐던 초등학생의 나조차 가만히 듣고 있자면 무언가 가슴 깊숙이 뭉글뭉글 올라오던알앤비 가요 말이다. SG워너비휘성거미박효신 등 그 특유의 알앤비 창법과 폭발적인 가창력을 갖춘 여러 뮤지션들이 가요 무대에 오르면 구석 어딘가에서는 포그머신이 스모그를 뻐끔거리고노래가 끝나면 노래 속에서 못다 이룬 사랑의 한으로 가득 찬 가슴을 부여잡고 노래방으로 달려갔다.  
 
10여 년이 흐르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시대가정서가사랑방식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밥은 잘 먹는지잠은 잘 자는지 소식이 궁금해 애태우던 마음들은 은근슬쩍 떠보기식의 밀고 당기는 마음들에 자리를 내주었다. ‘을 지나 chill’에 더 가깝다힙합과 트랩이 유행하면서 자연스레 알앤비 리듬에 얹히는 가사의 양이나 속도도 눈에 띄게 많고빨라졌다소재도 더 다양하다
 
멜로디와 소울그루브예전만큼 신파적이지는 않은 스토리텔링까지 모두 갖춘 오늘의 리듬과 블루스를 소개한다.

01. DUVV <WITH YOU IN MIND>
타이틀곡 없이 발매하려 했지만결국 한국의 리스너들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로 타이틀 곡 선정을 앞두고 잠시 고민을 하던 그녀는 뉴욕 출신의 알앤비 보컬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DUVV트랙 하나하나 일곱 팀의 서울 로컬 프로듀서들과 함께하며 그녀만의 대담한 시도는 더욱 빛을 발했다전혀 연고가 없는 한국에서이제 막 무럭무럭 몸집을 키우기 시작한 언더그라운드 알앤비 씬에서 그렇게 툭 나온 것이 <WITH YOU IN MIND>. 신에게 올리는 사이렌과도 같은 소름끼치는 인트로와 브릴리언트(BRLLNT), 문이랑(MOON YIRANG), 타마 로즈(Tama Rhodes) 등의 프로듀서들과 함께한 트랙들을 지나면 가창이 없는 마지막 트랙에 이른다보컬은 두 말 할 것 없고각 트랙의 완성도는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개인적으로는 올해의 최고 R&B 넘버로 꼽는다.
02. COTT <D2ep>

일년 전에 나온 COTT의 데뷔 싱글이다. 따뜻하고 깊다. 과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두 개의 트랙 뒤에는 과한 여운이 밀려온다. 애써 동요하려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사랑과 인간 관계에 늘 크게 흔들리는 듯한 앳된 소년의 목소리는 오늘의 알앤비 정서를 대변한다.

 

03. 비니셔스(Vinicius) <Sailing>
에스닉한 전주를 지나 본격적인 트랙이 시작되는 구간에서 한 번 흠칫한다이런 그루브를 지닌 프로듀서가 또 있었나 싶은 생각이 가장 먼저 스치고곧장 다른 디스코그래피를 훑어 보며 기발매 이력이 있는지 확인해본다놀랍게도, <Sailing>은 비니셔스(Vinicius)의 이름으로 낸 최초의 음악이었다.
04. Jimmy Brown <She Lovin’ It>

Chris Brown의 성을 따올 정도로 흑인음악에 큰 영향을 받은 그는 흑인 음악 특유의 분위기와 본인의 색깔을 잃지 않으려 하는 따끈따끈한 신인, Jimmy Brown. 대담하게 달려드는 듯한 느낌보다는수줍게 툭툭 뱉어내는 모습에 더 가깝다티피컬한 힙합 알앤비의 전형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이 데뷔 싱글을 뒤로또 어떤 음악이 나올지 기대된다.

05. 리코(Rico) <Everything>
국내서 흔치 않은 알앤비의 발라드 성향 하위 장르인 슬로우잼(Slow Jam)’에 특화된(?) 아티스트리코(Rico). 1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스 알앤비/소울 앨범부문 및 노래부문에 모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던 <The Slow Tape>의 그다최근 제리케아(Jerry.k)의 흑인음악 레이블 데이즈얼라이브(Daze Alive)’에 합류하며 그 동안의 작업물들이 정식 발매작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는데그 중 가장 최근 싱글인 ‘Everything’은 리코 (Rico) 특유의 호흡이 인상적인 싱글이다리코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얼마 전 김설탕의 ‘Deep Inside’ 연재에 실린 적 있다.
06. 구원찬 <반복>
발매된 지 이틀을 막 지나고 있는 R&B 신인 구원찬의 데뷔 EP <반복>. 밴드 실리카겔의 보컬 김한주가 타이틀곡 행성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화제성도프로모션 하나 없이 조용히 나온 발매작이지만 벌써부터 반응이 뜨겁다음절 하나하나에 또박또박 음을 부여하는 가창도 아니고 랩도 아닌멜로디소울그루브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요즘식 총체적 알앤비의 전형이랄까아차, ‘Sweether’는 ‘sweeter’의 오탈자가 아니다. ‘Sweet’과 ‘Her’를 붙인 단어란다역시 알앤비다.

Editor / 김은마로
eunmaro10@poclanos.com

[Deep Inside] 균형과 조화의 미학이 빚어낸 한 편의 짧은 동화

Deep Inside #8
균형과 조화의 미학이 빚어낸 한 편의 짧은 동화 [구원찬 / 반복]

 

 

200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내가 아직 20대였던 시절, 내 소소한 취미생활 중 하나는 중고 CD(씨디)를 사는 거였다. 당시 내가 자주 가던 가게는 이화여대 앞이었는데 이화여대 정문에서 신촌기차역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었다. 아주 작은 가게였는데 늘 가게 입구에 가판을 꺼내놓고 중고 CD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팔았다. 오만가지 잡다한 음반들로 가득한 여기엔 종종 근사한 보물들이 숨어 있었는데 제값을 주고 사려면 2만원이 훌쩍 넘는 외국 힙합/알앤비 음악의 수입반이나 행여 정품으로 사려고 해도 구하기 힘든 희귀한 음반들을 이따금씩 여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런 음반들을 고작 5천원, 7천원 정도의 헐값에 살 수 있으니 구미에 맞는 물건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다. 그래서 이곳은 내게 늘 탐험의 대상인 미지의 세계, 보물섬이었고 난 틈만 나면-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그곳으로 달려가 수북하게 쌓인 씨디 더미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인디아나 존스 박사가 되었다.

 

https://youtu.be/BAtPipmmlkI

<Mos Def / Body Rock (feat. Tash & Q-Tip)> (Official MV)
그곳에서 건진 여러 음반들 중 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이 싱글이다.
이 노래는 전설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레이블 ‘Rawkus’ 전성시대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음악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소위 음악 산업 안에서 일하게 되면서 또 다른 형태로 이어졌고 또 확장되었다. 10년을 넘게 이 산업에 종사하며 정말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일들을 해왔는데-음원/음반 제작과 유통에 관련해서 내가 실무로 경험해보지 않은 일은 거의 없는 거 같다-그 수많은 경험들 속에는 하나의 공통적인 요소가 있었다. 새로운 음악가,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음악들과의 만남. 지난 11년 동안 정말 많은 음악가들, 음악들을 만났다. 그래서, 그렇게 만난 모든 음악들이 다 좋았냐고 하면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 난 취향이 꽤나 단호한 사람이고 어떤 면에선 솔직히 편협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건 저 시간들이 나에게 수많은 ‘보석’들을 선사했다는 것, 그 보석 같은 음악들이 지난 11년 동안 내게 끊임없이 영감을, 감동을, 그리고 에너지를 주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다.

 

어느 여름날, ‘구원찬’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그는 내게 음악 칼럼니스트인 ‘BLUC(블럭)’님의 소개로 연락을 했으며 ‘포크라노스’를 통해 자신이 셀프-프로듀싱한 EP를 유통하고 싶다고 했다. 몇 개의 메시지들, 메일을 주고 받은 후 음반에 수록될 곡들을 먼저 들어볼 수 있었다.

 

아, 또 하나의 즐거운 발견이구나.’

 

아무래도 나는 이렇게 또 하나의 ‘보석’을 발견한 것 같았다.

 

구원찬(Ku One Chan)

 

구원찬’ A.K.A. ‘Vankudi’

 

구원찬. 본래는 ‘Vankudi(반쿠디)’라는 예명으로 힙합/알앤비 그룹 ‘DOPEMANSION(돕맨션)’의 멤버로 2014년에 음악씬에 처음 등장했다. 보컬리스트인 그 외에 MC인 ‘AXAX Kuddy'(후에 ‘김심야’), 프로듀서/비트메이커 ‘FRNK$EOUL'(후에 ‘FRNK’)의 3인조 유닛인 ‘돕맨션’은 힙합, 비트뮤직, PBR&B 등을 넘나들며 전위적, 미래적인 무드의 음악을 들려줬다. 더러 만듦새가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트랙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은 상당히 신선했고 또 인상적이었다. 이후 ‘김심야’와 ‘FRNK’는 ‘돕맨션’의 진보적 성향을 더욱 심화시킨 그룹 ‘XXX’를 결성, 현재도 활동하고 있다.

 

<DOPEMANSION / Smoke Seoul> (Official M/V)

<XXX / 승무원> Official MV
이 트랙이 담긴 EP [KYOMI(교미)]는 작년에 굉장히 즐겨 들었던 한국 힙합 음반 중 하나다.

 ‘구원찬=반쿠디’라는 사실을 알고 꽤 반가웠다. ‘돕맨션’의 음악을 꽤 즐겁게 들었던 기억이 있으니까. 솔직히 본인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미리 들려준 솔로 음반의 수록곡들, 그러니까 ‘구원찬’의 음악이 ‘돕맨션’의 ‘반쿠디’가 들려줬던 그것과는 굉장히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구원찬 / 반복] EP cover

 

이제 막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걸음을 시작한 ‘구원찬’의 데뷔 EP [반복]에서 가장 먼저 도드라지는 것은 최근 발표되고 있는 대부분의 알앤비 음반들과 확연하게 다른 음악의 컨셉트다. 근래 힙합/알앤비 음악들이 대체로 칠하고 몽환적인 바이브를 표현하는, 소위 ‘미래’적인 사운드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것에 반해 그의 음악은 되려 ‘복고’로 가는 듯한 인상이다. 적당히 도회적인 무드와 달콤한 서정성을 겸비한 그의 음악은 마치 2000년대 초반의 네오소울, 또는 컨템포러리한 알앤비 음악들의 스타일이나 정서와 매우 닮아있다. 그의 음악을 듣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Glenn Lewis(글렌 루이스)’, ‘Maxwell(맥스웰)’, ‘Donell Jones(도넬 존스)’, ‘Musiq Soulchild(뮤지끄 소울차일드)’, 혹은 ‘Eric Benet(에릭 베넷)’ 등의 이름이 어렴풋이 맴돌았다. 더불어 이러한 컨셉트의 음악을 따뜻한 질감의, 균형이 잘 잡힌 사운드로 그려내고 있는데 마치 쓴 맛, 신 맛, 단 맛이 고르게 균형을 이루는 잘 만들어진 커피처럼 적절한 조화 속 풍부한 맛을 전달한다. 어떤 면이든 과거 그가 속했던 그룹 ‘DOPEMASION’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Donell Jones / You Know That I Love You> official MV
한때 정말 좋아했던 노래. 개인적으로 이런 그루브의 음악이 가장 춤추기 좋다고 생각한다.

 

쫀득한 기타 리프가 시작부터 귀를 잡아 끄는 첫 곡 ‘동화’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자연스레 상대방에게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노래한다. 비슷한 경험을 해본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가사와 더불어 세련된 그루브가 산뜻하고 기분 좋은 무드를 형성한다. 이어지는 감미로운 발라드 ‘Sweether’는 본래 과거 ‘돕맨션’의 첫 EP [Young Adult`s Way]에 수록되었던 곡. Sweet와 Her의 합성으로 만들어진 제목처럼 달콤한 연가인 이 곡은 시퀀싱 중심의 사운드였던 원곡에 비해 피아노, 브라스 등이 가미되어 한층 담백하고 따뜻한 사운드로 그려지고 있다. 매끈한 네오소울 넘버인 ‘감정관리’로 넘어오며 시종 1인칭의 시점으로 전개되던 화자의 상황에 큰 변화가 생기는데 앞서 두 곡에서 시종 사랑의 달콤한 면들을 찬양해온 화자가 정작 이 곡에서는 이별 후 감정을 추스르려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처연하게 노래하고 있다. 곡이 전개될 수록 악기, 리듬이 변화하며 차츰 고조되는 사운드 구성을 통해 자연스레 청자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세련된 사운드와 그루브는 일견 ‘맥스웰’의 음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나는 네게 착륙하고 있어, 오래 있을 것만 같아.”

 

만남의 끝이 필연적으로 헤어짐이라면 헤어짐 뒤에 찾아오는 새로운 만남 역시 필연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 여겨도 되지 않을까. 음반의 마지막 곡이자 타이틀곡인 ‘행성’은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방황하지만 다시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되는, 우리네 삶 속 익숙한 장면 중 하나를 끄집어내 ‘우주여행’에 비유한 아름다운-그리고 왠지 ‘어린왕자’를 연상시키는-가사로 그려낸다. 개인적으로는 도입부의 기타 리프에서 이미 마음을 완전히 뺏겨버렸는데 그 리프를 들으면서 왠지 결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Lou Reed(루 리드)’의 노래 ‘Walk on the Wild Side’의 그것을 떠올리기도. 이 심플하지만 아름다운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차츰 소리를 채우고, 또 차츰 비워가면서 짙은 감동과 여운을 동시에 선사하는 이 서정적인 노래는 음반의 대미인 동시에 단연 백미이기도 하다.

 

<구원찬 / 행성> official MV
밴드 ‘실리카겔’의 프론트맨 ‘김한주’가 주연이다.

 

총 네 곡이 실린 이 음반을 끝까지 듣고 나서야 비로소 ‘반복’의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반복’은 삶이 지닌 하나의 속성, 우리 모두의 삶의 여정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만남과 헤어짐의 필연적 속성이며 이 EP는 그래서 그렇게 가장 보편적인 필연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짤막한 동화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그러하듯 우리들 또한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다양한 형태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할 것이다. 긴 여정 속에서 몇 번이고 누군가에게 ‘동화’될 것이며, 언젠가는 진정한 인연이라는 ‘행성’에 도달해 착륙하고 정착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풍경은 가장 보편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아름답기도 하다. 어쩌면 ‘반복’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가 그려내고자 한 풍경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대부분의 ‘처음’은 아무래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곤 한다. ‘돕맨션’의 ‘반쿠디’가 아닌 솔로 아티스트 ‘구원찬’으로서의 첫 걸음. 그는 처음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에도 불구, 애써 힘을 주거나 시류를 좇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음악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오롯이 전하는 것에 집중한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도무지 신예 아티스트의 처녀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음반 전반에서 느껴지는 안정감과 여유. 이건 아마도 그가 어떤 과욕이나 강박에 사로잡히지 않았기에, 본질에 충실하고자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조급하지 않게, 그저 자신의 페이스로 차근차근 나아가려는 이 조심스럽고 현명한 음악가의 기나긴 여행은 이렇게, 이제 막 시작되었다.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Deep Inside’ 코너의 모든 글은 에디터의 개인적 주관을 반영한 것으로 본사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일절 무관합니다)

[추천의 추천의 추천] 시와, 송희란, A-FUZZ, 미유

추천의 추천의 추천

포크라노스가 추천하는 아티스트들이 추천하는 추천곡

적당한 온도의 싱그러운 바람과 높고 파란 하늘이 기분 좋은 요즘만큼 음악에 빠져들기 좋은 계절은 없죠. 지난 한 달 포크라노스는 Bye Bye Badman(바이바이배드맨), 이한철, EE, 리코, 키라라, 골든두들, 더 핀(The Finnn), MOTTE(모트) 등 장르에 상관없이 음악계와 대중이 주목한 앨범들을 발매했습니다. 특히나 반가운 이름들이 많은 달이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매일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새로운 곡들을 듣다 보면 이 앨범을 만드는 아티스트들은 어떤 곡을 듣고, 또 좋아했는지 궁금해집니다.

 

포크라노스는 최근 특히나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여성 뮤지션들인 시와, 송희란, A-FUZZ(에이퍼즈),미유(Mi-Yu)에게 지난 한 달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물었습니다. 여기 네 팀이 추천한 곡들을 소개합니다. 이 음악들을 듣고 난 후 만나는 그들의 앨범은 한층 더 즐거운 음악 경험이 될 것입니다. 그들의 음악만큼이나 계절의 문턱을 넘는 요즘 듣기에 완벽한 건 덤!

 

시와

시와 / 완벽한 사랑 (2017.08.23)

2006년부터 노래하기 시작한 싱어송라이터 시와는 누군가 그녀의 음악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음악을 만들고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곡 속에 잠시 멈춘 듯한 아름다운 순간들은 자연스럽게 시와의 음악이 사람들 마음 안에 잔잔히 퍼져나가게 합니다. 4집 앨범을 향한 첫 번째 문 역할을 하는 최근 싱글 [완벽한 사랑]은 가을 공기가 가득 찬 조용한 밤 듣기 완벽합니다. 잔잔한 기타 반주 위로 선명히 들리는 시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사랑에 관한 곡을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곡이 될 것 같습니다.

 

소개하고픈 좋은 노래가 왜 이렇게 많나요, 라며 기분 좋은 비명을 지르던 시와는 추추추 시리즈 역대급으로 많은 곡을 골랐습니다. 시와의 음악에 담긴 감정들을 조금 깊이 들여다보았던 리스너라면 그녀의 추천곡들에 담긴 따뜻한 그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보내온 그녀의 인사말과 함께 시와의 추천곡을 만나보세요.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친구 같은 노래를 만들고 싶습니다. 노래에 담을 이야기와 감정을 소중히 여기며, 그 노래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랍니다.”

 

추천의 추천의 추천: 시와가 추천합니다.

 

 

퓨어킴 – How Are You, The Love of My Life

“일찍 잠들었다 새벽에 깨어 듣기 시작해 해 뜨는 시간까지 반복했어요. 이 곡의 피아노와 목소리는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까, 모두 다 알고 싶었어요.”

 

Selena Jones – You Don’t Bring Me Flowers

“이 곡을 부른 사람도 많고, 듀엣으로도 많이 불렸지만, 저는 셀레나 존스가 혼자 부른 버전이 좋습니다. 콘트라베이스로 시작하는 전주부터 감정의 굴곡이 목소리에서 크게 느껴지는 후반부까지. 너무 좋아해서 공연 때 커버도 했어요.”

 

윤종신 – 몰린 (With 이규호)

“이규호(KYO) 작사, 작곡의 노래 ‘몰린’. 윤종신 님의 데뷔 초 여리면서도 애절했던 목소리를 불러낸 명곡입니다! (강조)”

 

Tamaki Koji – Aitandayo

“몇 년 전 트위터에 윤종신 님이 올린 유튜브 링크로 알게 된 노래입니다. 안전지대의 보컬이었던 이 분. 아아아… 타마키 코지!! 한 단어, 한 단어 귀에 꽂히게 발음하면서도 감정을 잘 전달하는 이런 보컬을 제가 참 좋아합니다. 이 곡은 유튜브에 있는 라이브 버전으로 (보고) 들으세요.”

 

A Girl Called Eddy – Heartache

“10년 전에 매스사 소다 님이 재야의 인사였을 때 제게 소개해준 곡입니다. 그날 이후로 이 곡은 제 노래의 이상향이 되어… (크흡) 아직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계속 연마할게요.”

 

이소라 –Track 1

“음반이 나올 당시에도 많이 좋아했지만, 최근에 다시 꺼내 듣고서는 더 좋아하게 된 음반, 이소라 7집입니다. 요즘은 ‘트랙 1’이 제일 좋아요. 음악을 듣다가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응? 이거 정식 트랙 아니었어? 와… 이소라님… 이렇게 힘을 쫙 빼고 노래하고, 음반을 만드시는구나. 멋있다 ㅠ_ㅠ’ 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힘을 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요즘. 이소라 님은 나의 롤모델입니다.”

 

이아립 – 우린 곧 알게 될 거야

“아립 언니의 현자 같은 말씀을 노래로도 들을 수 있는 곡입니다. 언니는 종종 친구로서, 음악인으로서 저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곤 하는데요, 그게 이 곡 ‘우린 곧 알게 될 거야’ 의 가사에 나오는 인생의 진리 같은 말들이에요.”

 

투명 – The Good Song

“며칠 전, 길을 걸으며 이 곡을 듣는데 ‘그냥 울어도 좋아, 그냥 가만히 서 있어도 좋아, 자리에 주저앉아도 좋아’라는 가사가 나올 때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세상에 정말 신이 있다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평소 무대에 서는 사람은 어느 정도 무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투명의 멤버 현서 언니가 마치 영매처럼, 신의 말을 대신 전해준다고 느껴졌어요. 크게 위로받았습니다.”

 

 


 

송희란

 

 

송희란 / 그럴때면 (Feat. 빌리어코스티) (2017.08.27)

미성의 음색과 사랑스러운 곡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싱어송라이터 송희란의 이번 싱글은 빌리어코스티와의 듀엣곡입니다. 라디오 ‘볼륨을 높여요’에 삽입된 빌리어코스티의 짧은 로고송을 듣고, 그대로 끝나기엔 너무 아쉬운 곡이라 생각한 송희란이 후반 진행을 부탁했다고 하는데요. 빌리어코스티 작곡, 송희란, 빌리어코스티 공동 작사로 이루어진 이번 싱글은 쓸쓸한 기분이 드는 날 포근한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송희란의 추천곡들은 국내외뿐만 아니라 장르를 넘나듭니다. 아직 다 드러내지 않은 송희란의 또 다른 매력들을 상상하게 하는 플레이리스트에는 그녀의 음악 취향이 한껏 응축된 듯합니다. 새로운 계절의 문턱에 듣기에도 적절하고요. 올가을 송희란의 곡들과 함께 꼭 들어봐야 할 곡들입니다.

 

추천의 추천의 추천: 송희란이 추천합니다.

 

 

윤종신, 루싸이트 토끼 – 사라진 소녀

“가사, 멜로디, 심지어 코러스까지 뭐 하나 빠질 데 없이 질리지 않고 듣는 곡.”

 

Parachute – She Is Love

“처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순간 그때의 사람, 그때의 분위기가 인상 깊게 각인되었던, 모두에게 그렇게 되어줄 수 있는 어떤 날의 음악.”

 

Mondo Grosso – Now You Know Better W/ Amel Larrieux

“평소 좋아하는 에이멜 라리유가 노래로 참여한 몽환적이고 깊이 어우러진, 곡과 보컬의 매치가 완벽했던 곡.”

 

John Mayer – St. Patrick’s Day

“음악을 한다면 이런 걸 만들고 싶다, 고 생각하게 했던 딱 내 취향의 감성과 사운드의 곡.”

 

Ohashi Trio – Lady

“가장 좋아하는 곡을 손에 꼽으라고 하면 한번을 빠짐없이 말하는 곡. 보컬과 건반이 모든 걸 다 하는, 더 하지도 덜 하지도 않게 완전했던 곡.”

 

 


 

A-FUZZ(에이퍼즈)

 

A-FUZZ(에이퍼즈) / Where is Love? (2017.09.01)

2015년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 케이루키즈 우수상을 휩쓸며 데뷔부터 세상을 놀라게 했던 4인조 퓨전재즈밴드 에이퍼즈는 이후 쉴 틈 없이 왕성한 활동으로 그 놀라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사계절을 연주 음악으로 표현하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요. 살랑살랑한 봄을 노래한 ‘Breeze’,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여름을 표현한 ‘Highway Star’, 그리고 이번에 공개한 공허함과 외로움이 짙게 밴 가을 노래 ‘Where is Love?’까지 에이퍼즈만의 사계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재즈를 한층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음악부터 멤버 개인의 애정이 가득한 곡들을 총망라한 에이퍼즈의 플레이리스트는 록, 재즈, 블루스, 힙합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으로 재즈밴드란 단어 하나로 표현하기엔 부족한 에이퍼즈의 음악만큼이나 풍성합니다. 재즈팝 싱어 제이미 컬럼,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뿐만 아니라 싱어송라이터 적재, 그리고 아이돌 그룹 샤이니까지 에이퍼즈가 걸어온 길들만큼 놀랍지 않나요?

 

추천의 추천의 추천: 에이퍼즈가 추천합니다.

 

 

Jamie Cullum – I Think, I Love

“약 10년 전 가을에 [The Pursuit]이라는 앨범으로 제이미 컬럼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감미로운 목소리와 피아노 연주가 너무 좋아 한동안 열심히 들었는데 그 중에서 이 곡이 너무 좋아 무한 반복하며 들었던 기억이 나요. 아직도 가을이 오면 한 번씩 꼭 이 노래를 듣는답니다.” (김진이)

 

Keith Jarrett – When I Fall In Love

“냇 킹 콜(Nat King Cole)의 원곡,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 삽입된 셀린 디온(Celine Dion)의 버전,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와 크리스 보티(Chris Botti)의 듀엣 버전으로도 유명한 곡이죠. 몇 년 전, 키스 자렛이 한국에 내한했을 때 앵콜곡으로 연주했었거든요. 한 음을 딱 치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 공연장에 계시던 관객분들 80%는 휴지로 코를 풀고 계시더라고요.” (송슬기)

 

Gregory Porter – Insanity

“인생곡을 골라야지! 하고 이 곡 저 곡을 들어보다, 그냥 이런 날씨에 잘 어울리는 노래를 골라보았어요. 그레고리 포터의 목소리는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 차갑고 가벼운 공기가 생각나요. 재즈를 어렵게만 생각하시는 분들께 추천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별을 겪으신 분들에게도…! ㅠㅠ 같은 앨범에 랄라 해서웨이(Lalah Hathaway)와의 듀엣 버전도 수록되어있답니다.” (송슬기)

 

샤이니 (SHINee) – Prism

“그냥 팬심으로 골라보았습니다…. 사랑해요, 샤이니. 여러분 모두 샤이니 들으세요.” (송슬기)

 

적재 – 우연을 믿어요

“몇 달 동안 딱 3곡만 반복해서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중 한 곡인 만큼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곡입니다.” (임혜민)

 

Shawn Mendes – There’s Nothing Holdin’ Me Back

“한 앨범에서도 수록곡을 골라 들을 때가 많지만 션 멘데스의 [Illuminate] 앨범은 전체 재생해서 몇 달 동안 들었던 앨범입니다.” (임혜민)

 

Monica – Before You Walk Out Of My Life

“어릴 때 라디오에서 한 번 듣고 21살에 다시 상봉했을 때의 감격이 있는 곡이에요! 살면서 계속 제목이 궁금했거든요.” (신선미)

 

 

 


 

미유(Mi-Yu)

 

 

미유 (Mi-Yu) / 너에게로 가는 길 (2017.09.15)

순식간에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해사한 목소리의 미유. 갓 스무 살을 넘긴 소녀는 어느새 2장의 정규 앨범과 2장의 EP, 그리고 여러 장의 싱글을 발표했으며, 프로듀싱까지 직접 해내고 있습니다. 그녀에 대해 많이 알려진 것은 없지만, 그녀의 음악은 이미 소리소문없이 많은 팬을 양산해냈죠. 앨범 커버와 뮤직비디오에 유독 많이 등장한 고양이들에 이어, 이번 싱글의 커버는 미유와 강아지입니다. 사랑에 빠진 소녀의 행복이 그대로 투영된 곡은 가을 산책길에 실려 온 기분 좋은 바람 같습니다.

 

추천곡을 처음 꼽아본다며 두근대며 보내온 미유의 플레이리스트는 그동안 알지 못 했던 그녀에 대해 조금 알 것만 같은 기분을 들게 합니다. 물론 요즘 같은 날씨에 듣기에도 완벽합니다.

 

추천의 추천의 추천: 미유(Mi-Yu)가 추천합니다.

 

 

랄라스윗 – 오월

“5월만 되면 이 노래를 자주 듣게 된다. 5월에 태어난 나에게 넌 특별하다고,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커피소년 – That’s Nothing

“언젠가 지치고 힘들 때, 위로가 되어주었던 노래.”

 

Miley Cyrus, Billy Ray Cyrus – Butterfly Fly Away

“가사가 와닿는 노래를 좋아하는 나에겐 팝송을 듣는 일이 거의 없다. 듣더라도 해석을 하나하나 찾아보며 듣는데, 이 노래는 이상하게 그냥 좋다.”

 

이영훈 – 일종의 고백

“시 같은 노래다. 몇 번을 들어도 처음 들어본 것처럼 좋다. 내 플레이리스트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곡.”

 

페퍼톤스 – Thank You

“기분이 조금 다운됐다 싶을 때 들으면 좋은 노래.”

 


 

Editor / 맹선호 
sunho@poclanos.com

[Next Big Thing] 한여름 끝의 시정(詩情), 더 핀

Next Big Thing
한여름 끝의 시정(詩情), 더 핀(The Finnn) 

6년 만에 돌아온 더 핀의 임장현은 정작 본인은 한 번도 쉰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가 써내려온 가사 속 구절을 곱씹다보면 문득 김향안의 일기 속 한 문장이 생각난다. ‘예술가는 흘러가는 구름을 무심히 보지 않는다. 형태와 빛깔, 구름이 주는 시정(詩情)을 예민하게 받는다.’


 

두은정 : 의도하건 의도치 않았건 오랜 휴지기를 거치면서 여러 감정이 들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이번 앨범을 기다렸지만 어떤 색깔의 음악일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구요. 그런데 참 ‘더 핀’스러워서 이후의 발매작에 대해 더이상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쨌건 오랫만에 내는 싱글이 ‘댄서와의 연인’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임장현 : 우선 ‘댄서와의 연인’은 기존의 노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곡 같아요. 어쨌건 절 오래 아셨던 리스너를 대상으로 발매를 한 거니까 원래 색깔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었고. 가끔 오랫만에 컴백을 해서 장르를 바꾸거나 변신을 해서 나오는 팀들이 있는데 사실 변화를 해서 성공한 사례를 본 적이 없어요. 들으시는 분들한테는 참 죄송한 말인데 안 하던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작업하기 힘든 것 같거든요. 나중에 정규 앨범이 발매가 되겠지만 나름대로 그 안에서 달라진 것들도 있는데요. 그래도 앨범이 이번이 세 개째인데 점점 갈 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 같아 이건 스스로에게 기특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네요.

두은정 : 음악 활동을 쉬는 동안 주로 무엇을 했는지.

임장현 : 저는 사실 쉰 적은 없어요.(웃음) 군대를 다녀오기도 했고, 그 군대 안에서도 사실은 계속 일하잖아요. 다녀와서도 계속 경제 활동을 하기도 했고요. 지금의 노래들은 군 입대 전 그러니까 2011년도에 노래를 다 만들어놨었어요. 군대 안에서의 그 2년이란 시간이 크잖아요. 전 그 안에서 가사를 쓰기로 작정을 했었어요. 제대할 때쯤엔 사회에 뭘 들고 나와야 조금이라도 그 속도를 맞출 수 있잖아요. 군대에서 가사쓰니까 너무 좋던데요.

두은정 : 어떤게 좋으셨어요.(웃음)

임장현 : 저는 수첩이 항상 있었는데, 남들은 그냥 하늘 보는 시간, 멍하니 있는 시간처럼 그냥 날아가는 시간이 제가 가사를 쓰니까 보이더라고요. 저는 그나마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느껴져서인지 덜 심심하기도 하고. 사회에서는 한 곡의 가사를 여러 달 쓸 수 없지만 거기는 시간의 방이잖아요. 한 곡의 가사를 세네 달씩 쓴 적도 있었어요. 제 노래가 가사가 많은, 스토리텔링식의 곡이 많고 멜로디가 많기 때문에 그 경우에는 라임을 짜기가 더 어려워요. 그래서 오래간 생각하면서 작업할 수 있어 좋았던 것 같아요.

두은정 : 뒤늦게 instrumental 버젼을 추가한 이유는 무언지. 저는 좀 더 연주적인 것에 귀 기울여줬으면 하는 맥락인 걸까 하는 생각을 했죠.

임장현 : 제가 한 곡짜리 싱글을 발매한 건 처음인데요. 다른 싱글들을 보니까 instrumental이 다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혹시나 제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 아니예요.(웃음) 한 곡은 너무 심심할 것 같기도 하고요. 온라인 시대가 되니까 이렇게 뒤늦게 추가할 수도 있고 그게 참 좋더라고요.

두은정 : 앨범 소개글을 안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굳이 꼭 읽어보는 편이기도 한데, 이번 싱글 소개글 마지막에 ‘그래서 댄서와의 연애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물음이 재밌었어요. 가사 속 스토리텔링에서 이미 작사자가 결론을 낸 상태에서 물어보는 걸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겠고.
전개적 배경, 결말을 정하는 편인지도 궁금해지더라고요. 나름의 해석을 많이 했거든요.

임장현 : 솔직히 이번 소개글의 경우엔 좀 급하게 쓰기도 했어요. 생각하신 것처럼 깊이 고민해서 쓴 문구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결말을 정하지 않는 영화들이 재밌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기도 하고 결말을 내는 가사는 안 써보기도 했고. 

두은정 : 저는 제목도 그랬고 나름의 해석을 많이 했거든요.

임장현 : 사람들이 제가 정말 어떤 댄서와 연애를 했었던걸까 이런 궁금증을 가질 것 같긴 해요. 그거에 대해서 그냥 모호하게 두고 싶었어요. 그 분들이 더 행복하게 상상할 수도 있는 거라서.

두은정 : 그렇게 말하니 정말 궁금해져요.

임장현 : 한 번 잘 상상해보세요.(웃음)

두은정 : 가사 얘기가 나온 김에. 최근에 ‘청춘’이라는 곡을 다시 듣는데 청춘이라는 단어가 너무 흔하게 쓰여서 그 뜻이 퇴색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노래 참 좋아했어요. 예전엔 ‘사라지고 갈라져도 그대에게 반할거’라는 가사가 이 노래의 전부를 대변해준다고 느껴졌는데 문득 다시 들으니 지금에 대한 표현과 청춘이라는 이 제목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를 실감하기도 했고. 그 때의 장현 씨 나이대를 생각하면 그 당시에 느껴지는 감정들에 충실한 가사들이었다고 생각해요.

임장현 : 기술적인 작업의 영역이라 실제로 작곡, 편곡은 단기간에 할 수가 있는데 노래를 열 개 이상 낸다고 했을 때 그 가사를 단기적으로 6개월 안에 쓴다고 하면 그 열 가지 아이디어를 다 얻기 쉽지 않아요. 저는 그럴 때마다 제가 옛날에 썼던 글이나 시를 참고해서 쓰는데, 말씀하셨던 ‘청춘’은 제가 예전에 써놓았던 시를 조금 변형한 거예요. 저는 인간의 청춘은 스물둘에서 스물다섯즈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시대에서는.

두은정 : 아. 저는 아직 제가 청춘인 것 같은데.(웃음)

임장현 : 음. 아닌 것 같아요. 근데, 괜찮아요.(웃음) 무튼 그 기간 안에서 할 수 있는게, 어떤 사람을 맹렬히 사랑하는 것 이외에 그것보다 더 우선 순위인게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서 그런 가사를 쓰고 그 단어를 제목으로 썼던 것 같아요.

두은정 : 그럼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글, 시 이런 것 지금도 자주 쓰세요?

임장현 : 지금은 아이폰이 생겨서 메모 어플에 가끔 쓰긴 하는데 예전에는 수첩도 가지고 다니고. 전에 조그만 mp3를 외출할 때 가지고 다니던 기억이 나요, 녹음기용으로. 메모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항상 좀 그런 것들을 많이 해놨던 것 같아요. 노래 같은 것들도 가이드 녹음도 많이 해두고. 근데 나중에 집에 와서 들어보면 다 쓰레기고.(웃음)

두은정 : 6년 만의 새 앨범이예요. 또 새로운 곡 금방 들을 수 있겠죠.

임장현 : 다음 발매 일정이 미뤄져서 9월에 네이버 뮤지션리그를 통해서라도 하나쯤은 미리 들려드리려 해요. 11월부터는 거의 매달 발매 일정이 잡혀있어요.


Editor / 두은정
(촬영, 인터뷰)
youngwave@poclanos.com

[Deep Inside] ‘밤의 사랑’을 노래하는 R&B 보이

Deep Inside #7
‘밤의 사랑’을 노래하는 R&B 보이 ‘리코(Rico)’, 슬로우잼의 바깥에서 딛는 본격적인 첫 걸음 [White Light]

 

 

 

아마 2012년 즈음이었나, 알앤비/힙합 프로듀서 ‘이치원'(EachONE)이 갑자기 메신저로 “형, 이거 들어봐요. 대박이에요”라며 어떤 음반의 압축파일을 하나 던져줬다. 집파일의 압축을 풀고, 윈앰프의 플레이리스트에 파일을 넣고, 몇 개의 트랙들을 재생해 듣는 사이 어느새 난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와아…한국에도 이런 톤으로, 이렇게 끈적하게 슬로우잼을 부르는 가수가 있었구나!’

 

당시에 내가 들었던, 속된 말로 ‘지렸던’ 그 음반은 바로 ‘리코(Rico)’의 첫 번째 믹스테잎 [Boys’ Voice]였다.

 

<Rico / 여기 있어> (from the Mixtape [Boy’s Voice])(Instrumental: Miguel / Quickie)

 

‘알앤비(R&B)’는 국내 대중들에게 대단히 친숙한 장르인 것 같으면서도 소수의 장르 열혈팬들을 제외하면 의외로 장르에 대한 이해도나 인식이 다소 낮은 음악이 아닐까. 알앤비의 창법만을 부분적으로 빌려와 한국식 가요에 덧씌운 음악들이 ‘알앤비’로 불리며 대중가요의 주류로 군림한 시절이 꽤나 길었던 탓도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본토 힙합/알앤비 음악 특유의 다소 노골적인 정서가 우리의 감성으로 받아들이기에 다소 생경했던 탓도 있을 거다. 힙합이 9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흥망성쇠를 반복하면서도 꾸준히 플레이어들을 배출하고 그 와중에 스타플레이어들을 탄생시키며 차츰 입지를 넓히고 자리를 잡아온 반면, 알앤비 음악은 여전히 독자적인 ‘씬(Scene)’조차도 확보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 주류 케이팝 음악들이 여전히 알앤비의 요소를 수없이 차용하고 활용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에 진짜 알앤비를 하는 음악가들의 수는 많지 않다는 점은 알앤비 음악 애호가로서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리코(Rico)’

 

그 많지 않은 한국의 알앤비 음악가 중 한 명으로 본명은 박형민이다. 2012년부터 믹스테잎 [Boy’s Voice] 3연작을 잇달아 공개하면서 힙합/알앤비 팬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사실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유독 남녀간의 사랑, 특히 ‘밤의 사랑’을 다루는 것에 최적화된 음악이 알앤비이고, 그 중에서도 발라드 성향 하위 장르인 ‘슬로우잼(Slow Jam)’은 소위 ‘섹스잼(Sex Jam)’, ‘Baby Making Music’으로 불릴 만큼 ‘육체간의 사랑’, 그러니까 ‘섹스’에 대한 묘사를 다루는 곡들이 많다.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기엔 다소 버거운 정서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코는 바로 이 슬로우잼을 본격적으로 표방하면서 씬에 등장했고 이는 알앤비 팬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Tyrese / How You Gonna Act Like That> 공식 뮤직비디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슬로우잼 넘버를 하나 소개한다.
‘타이리즈’는 국내에선 영화 <분노의 질주>, <트랜스포머> 시리즈 등에 출연한 영화배우로 익숙할 터.
하지만 사실 그는 원래 아주 훌륭한 알앤비 보컬리스트이며 슬로우잼을 특히 잘 부른다.

 

고등학교 시절, 학업에 회의를 느낄 무렵 본격적으로 노래를 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느끼고 음악을 시작했다는 리코가 처음부터 알앤비를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평소에 가요보다는 팝송을 즐겨 들었고 그 팝송들이 주로 ‘시스코(Sisqo)’, ‘니요(Ne-yo)’, ‘마리오(Mario)’ 등의 상업적으로 빅히트를 거둔 컨템포러리 알앤비 아티스트들의 음악이었다고 하는데 당시만 해도 ‘이게 알앤비구나’라는 인식은 없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알앤비’라는 장르를 인식하고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트레이 송즈(Trey Songz)’, ‘제이 할러데이(J. Holiday)’ 등 슬로우잼 성향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접하면서부터. 이후 알앤비 음악들을 열심히 디깅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일찌감치 군입대를 택했고 그래서 그의 음악가로서의 커리어는 전역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Trey Songz / Neighbors Know My Name> 공식 뮤직비디오 (후방주의)

‘트레이 송즈’는 현시대 가장 대표적인 슬로우잼 아티스트라고 해도 무방할 터이다.

 

전역 이후 활동을 시작한 리코의 초반 행보는 그야말로 ‘Hustle Real Hard’라고 할 만하다. 앞서 언급한 첫 믹스테잎 [Boy’s Voice]가 공개된 것이 2012년 4월. 이후 두 번째 믹스테잎 [Boy’s Voice 2] (2012년 07월), 세 번째 믹스테잎 [Boys’ Voice 3] (2013년 1월), 오리지널 트랙도 포함한 네 번째 믹스테잎 [R&B Boy] (2013년 3월), 이렇듯 불과 1년 사이에 무려 네 장의 믹스테잎을 쏟아내며 왕성한 작업량을 과시한다. 힙합 믹스테잎이야 당시에도 드물지 않았지만 알앤비 믹스테잎은 대단히 생소했기에 이 시기 그의 이 작업들은 완성도와는 별개로 나름의 희소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2013년 6월, 마침내 리코의 첫 공식 싱글 [Work That]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Rico / Work That>

 

낮엔 져줬지만 밤엔 가만 안 둬”

 

‘Work That’의 한 구절인 이 표현이 리코의 개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싱글을 포함해 이 시기 리코의 음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본토 슬로우잼 음악의 스타일과 사운드를 충실히 구현하는 것 외에도 이 장르의 가사가 가진 특유의 노골적인 정서를 우리말로 어색함 없이 표현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노랫말들은 때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진득하게 성애를 묘사해내는데 이런 리코만의 표현법은 아마 커리어 초반에 쉴 새 없이 이어간 커버 작업들, 그리고 그 결실인 네 장의 믹스테잎들을 통해 만들어지고 또 다듬어진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리코(Rico)

 

같은 해 7월, 그의 신변에 변화가 생긴다. 베테랑 엠씨 ‘제리케이(Jerry.k)’가 설립한 흑인음악 레이블 ‘데이즈얼라이브(Daze Alive)’에 정식으로 합류하게 된 것. 제리케이의 노래 ‘사랑한다는 말’에 피쳐링한 것을 계기로 친분을 유지해오던 중 제리케이가 먼저 영입을 제안했다고 한다. 레이블 합류 직후 곧 발표된 두 번째 싱글 [Shawty]는 이 시기 그의 작품 중 비교적 라이트(?)한 축에 속하는 트랙으로 대중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지금도 여전히 ‘Works That’, ‘Special’ 등과 함께 그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역시 같은 해 후반기에 발표된 또 하나의 싱글 [Bad on the Bed]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리코 특유의 ‘침대송’ 슬로우잼인데 처음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현재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레이블 ‘비스메이저(VMC)’의 수장이자 래퍼인 ‘딥플로우(Deepflow)’가 이 뮤비를 연출했다.

 

<Rico / Shawty> 라이브 @ ‘데이즈 얼라이브’ 레이블쇼 <D3>

 

<Rico / Bad on the Bed> 공식 뮤직비디오

화끈한 가사에 비해 되려 비디오는 수위가 좀 낮아서 약간 아쉽다.

 

 

<Rico / The Slow Tape> Cover

 

폭발적인 페이스로 작업물을 발표해온 ‘허슬러’ 리코의 행보는 첫 앨범 준비와 함께 마침내 잠시 숨을 고르게 되고 마침내 2015년의 시작과 함께 대망의 첫 번째 정규앨범인 [The Slow Tape]이 세상에 공개된다. ‘이치원(EachONE)’, ‘버기(Buggy)’, ‘티케이(TK)’, ‘엔소울(N-Soul)’ 등 다양한 비트메이커들과 작업, 총 열 트랙의 진득한 슬로우잼 넘버들을 수록한 이 앨범이 다루는 이야기는 시작부터 끝까지 오직 단 하나 ‘섹스’다. 그 결과 1번 트랙인 ‘Intro’와 마지막 10번 트랙 ‘남김없이’를 제외한 무려 여덟 곡이 ’19세 이상 청취’ 판정을 받는 기염을 토하며 ‘침대송 제왕’의 위엄을 유감없이 뽐낸다.

 

19금 표시가 난무하는 트랙리스트. 이쯤 되면 위엄마저 느껴진다. (Image captured from Naver Music)

 

<Rico / ‘Til The Sune Comes Up> 공식 뮤직비디오

앨범 발매 직전에 선공개되었던 이 싱글은 노래 만큼이나 비디오도 19금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정통 슬로우잼 스타일을 사운드, 보컬, 정서 등 모든 면에서 완성도 있게 구현한 이 앨범은 힙합/알앤비 매니아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혹자들은 그를 ‘한국의 트레이 송즈’라 표현했다. 그의 음악에 관심을 표한 것은 이들뿐이 아니었다. 평단 역시 이 파격적인 앨범에 깊은 관심을 표했고 그 결과 제 1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수록곡 ‘Special’) 2개 부문에 후보로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이뤘다.

 

<Rico / Special> 공식 뮤직비디오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13회 한대음의 ‘최우수 알앤비&소울 노래’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이 시기 리코 스타일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노래

 

데뷔 앨범을 통해 ‘침대송’은 할 만큼 했다고 판단한 것일까. 이후 공개한 세 개의 싱글 [Think I’m in Love], [T.F.D (Prod. by 87sound)], [Open Your Mind]는 모두 기존의 리코와는 다소 다른 스탠스를 취한다. 사랑하는 여성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대폭 순화된 노랫말과 더불어 ‘Open Your Mind’, ‘Think I’m in Love’ 등의 트랙들은 사운드 면에서도 한결 밝아졌고 또 산뜻해졌다. 리코의 음악은 이미 이때부터 다음 스텝으로 이행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rE4y7_trpgs

<Rico / Think I’m in Love> 공식 뮤직비디오

뮤지끄 소울차일드, 글렌 루이스 등의 음악이 연상되는 산뜻한 업템포 트랙.
기존의 리코와 눈에 띄게 다름이 느껴진다. (그 와중에 여주 완전 존예로움…)

 

프로듀서 ‘이치원(EachONE)’과 작업한 마지막 싱글 ‘Open Your Mind’로부터 꼭 1년이 지난 2017년 여름, 리코가 새로운 앨범 [White Light]를 예고하며 수록곡 ‘Paradise’를 먼저 공개했다. 1집 이후의 몇몇 싱글들에게 감지된 변화에 대한 예감은 이 선공개 트랙을 통해 확신으로 바뀐다. ‘붐뱁(Boom Bap)’ 스타일 힙합 비트의 ‘장인’이라 할 수 있는 베테랑 비트메이커 ‘마일드비츠(Mild Beats)’가 프로듀싱한 댐핑 ‘쩌는’ 비트 위로 팔세토 보컬을 수놓는 리코의 바이브는 예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Rico / Paradise> 공식 뮤직비디오

이 노래가 별로라고 하는 사람과는 진지하게 절교도 고려하겠다. 그만큼 멋진 곡이다.

 

총 다섯 트랙을 수록한 미니앨범 [White Light]는 리코가 자신의 뿌리였던 ‘슬로우잼’의 바깥으로 나와 무수히 많은 갈래가 펼쳐진 광활한 알앤비 세계의 다른 영역들에 과감히 발걸음을 딛으며 외연의 확장을 꾀하는, 본격적인 변화의 첫 걸음을 담은 작품이다. 이를 위해 ‘데이즈얼라이브’ 레이블의 동료 아티스트인 래퍼 ‘던말릭(Don Malik)’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 리코의 음악에 새로운 색을 입히는 이 작업에 힘을 더했다고. 래퍼가 알앤비 앨범의 프로듀서로 나서는 상황이 의아할 수도 있는데 이런 과감한 시도는 던말릭의 음악적 역량에 대한 리코의 전폭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Don Malik / Untitled> 공식 뮤직비디오

96년생으로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불구, 트렌드를 좇기보다 전통적 ‘엠씨(MC)’로서의 애티튜드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 던말릭의 매력이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래퍼다.

 

 

<Rico / White Light> cover

 

앨범의 포문을 여는 타이틀곡 ‘Come My Way’는 질주감과 청량감을 동시에 선사하는 활발한 기타 리프를 중심으로 업템포의, 그러나 묵직함도 함께 느껴지는 힙합 비트가 어우러져 한껏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면서 새로운 리코의 컴백을 유쾌하게 선언한다. 사운드, 스타일에서의 확장과 변화뿐 아니라, ‘보컬리스트’ 리코의 역량 역시 한층 진화했음을 느낄 수 있는데 보컬의 완급조절, 그루브 등 모든 면에서 스텝업한 리코를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그 멋진 음색이 지닌 매력을 어떻게 해야 더 잘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진일보하지 않았나-라는 느낌을 준다.

 

<Rico / Come My Way> 공식 뮤직비디오

 

신예 여성 싱어송라이터 ‘SOMA’와 호흡을 맞춘 끈적한 알앤비 넘버 ‘Like This’는 흑인음악 레이블 NOP 소속의 싱어송라이터 ‘Livin’ Forest’가 프로듀스한 트랙으로 멜랑콜리한 기타 리프와 두 사람의 보컬이 조화를 이뤄 만들어내는 은밀하고 관능적인 바이브가 일품이다. 무대 위에 섰을 때 최고의 기분을 느끼는 아티스트로서의 자기 자신을 노래하는 이 트랙은 사운드의 결에서 수록곡 중 유일하게 과거 리코의 스타일과 접점이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가볍게 몸을 흔들게 하는 그루브가 매력적인 ‘Sign’은 미묘하게 썸을 타는 관계에 대해 노래하는데 ‘너가 내게 주는 작은 신호(Sign)를 찾으려 하는’ 화자의 속내를 리코 특유의 위트로 표현하는 노랫말이 재미있다. 이어 싱글로 먼저 공개되었던 ‘Paradise’를 지나고 나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Interlude’가 짤막하게 흐르며 미니앨범에 마침표를 찍는다. 30초 남짓의 이 짧은 트랙에서 리코의 보컬은 랩과 보컬의 경계선 위에 미묘하게 걸쳐 있는데 왠지 ‘앤더슨 팩(Anderson .Paak)’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마지막 트랙이면서 어째서 제목이 ‘Interlude’냐고? (‘인터루드’는 일반적으로 ‘간주곡’을 의미한다) 이제 와서야 비로소 밝히건대 [White Light]는 사실 그 자체로 하나의 온전한 완성작은 아니다. 이 미니앨범은 어디까지나 진정한 리코의 2집 앨범으로 향해 가는 여정의 첫 번째 파트일 뿐이며 그 여정은 뒤이어 공개될 두 번째 파트 [Panorama]를 거쳐 마침내 [White Light Panorama]라는 이름의 “완전체” 풀렝스(Full-length) 앨범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렇다. 리코의 손에는 아직도 남은 카드가, 최후를 위해 숨겨둔 패들이 더 남아있다. 모처럼 돌아온 리코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이 새로운 즐거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데이즈얼라이브 레이블의 수장 제리케이의 귀띔에 따르면 앨범의 나머지 파트는 [White Light]와는 또 완전히 다른 색깔의 음악을 담고 있다고 한다) 오랜 알앤비 음악의 팬으로서 빨리, 하루라도 빨리 나머지 음악들도 들어보고 싶다. 이 미니앨범은 내게 크나큰 즐거움을 선물하는 동시에 즐거운 기다림까지 함께 덤으로 안겨주었다.

 

<Rico / Come My Way> (Long-take ver.)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Deep Inside’ 코너의 모든 글은 에디터의 개인적 주관을 반영한 것으로 본사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일절 무관합니다)

[PICK] 레이블 특선 #2: 붕가붕가레코드

POCLANOS PICKS _ 레이블 특선 #2: 붕가붕가레코드

본인은 음악에 재능이 없음을 오래 전에 깨닫고, 음악하는 친구들 옆에서 ‘숟가락을 얹고 싶다’는 마음으로 레이블을 시작했다는 붕가붕가레코드(이하 붕가붕가)의 고건혁 대표(일명 곰사장). 대학교 재학 시절 뺸드뺀드짠짠의 2집, 3집 프로듀싱에 참여하며 9와 숫자들의 9(송재경)와 브로콜리너마저의 윤덕원, 장기하와 얼굴들의 장기하, 박종현(생각의 여름)과 함께 붕가붕가 레이블의 시초를 다져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마어마한 인물들의 조합이 아닐 수가 없다. 붕가붕가가 정식으로 설립된 2005년의 같은 달에는 전설 속에만 존재한다는 ‘관악청년포크협의회’의 앨범이 나왔고, 뒤이어 청년실업의 앨범과 ‘수공업소형음반’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레이블다운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랬다. 학교에서 만난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하는 취미활동, 그리고 비즈니스.

홈레코딩은 물론, CD를 직접 한 장 한 장 구워서 만드는 가내수공업으로 레이블 경영을 시작한 붕가붕가의 곰사장은 여전히 공연을 보다 마음에 드는 아티스트가 있으면 직접 손을 내밀기도 하고, 그렇게 본인이 발굴한 아티스트들의 모든 앨범 소개글을 직접 쓰기로 유명하다. 이는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 붕가붕가와 함께하고 있는 아티스트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이자 자신감이라고 본다. 물론 그 이전에, 개성과 색깔을 유지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아티스트들이 포진되어있는, 그런 이들의 인구조차 쉽사리 가늠하기 어려운 이 미지의 씬에 대한 간절한 마음과 호기심을 전제로 말이다.

보다 다양한 노출 플랫폼을 갖춘 여타 메이저 레이블들과 달리, 클럽 공연과 음원/음반 판매에 가장 많은 힘을 쏟는 인디 레이블이 그의 모토와 같이 10여 년 넘게 딴따라질을 지속하고 있는 이 현상은 분명 보기 드문 것이다. 그 와중에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음반과 공연을 제작하며 이 언더그라운드씬의 주축이 되어 주고, 노장 밴드들의 앨범을 꾸준히 끄집어 냄과 동시에 걸출한 신인 발굴에 게으르지 않는 붕가붕가.

한 번 들으면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굵고 강한 이름(붕가붕가)과 모토(지속 가능한 딴따라질) 때문일까, 모든 인터뷰에는 레이블명과 모토에 대한 설명이 빠지지 않는다. 오래 전 결별한 장기하와 얼굴들과의 친분,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과 금전적 상황 사이에서 얼마나 타협해야하는 지에 대한 질문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보다 더 반짝이는 것들이 많고, 그 중심에는 오랜 세월 변치 않고 굳건히 좋은 음악을 내주는 노장 밴드들과 새로 영입된 차세대 아티스트들의 풋풋한 행보가 있다.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레이블 특선(링크)에 이어, 이번 레이블 특선 편에서는 홍대의 대표적인 언더그라운드씬 레이블이자 무려 설립 13년차에 들어선 터줏대감, 붕가붕가레코드(이하 붕가붕가)의 발매작들을 소개한다.

*지난 레이블 특선 편과 같이 소속 아티스트들의 발매작 하나씩을 다뤄보고자 했으나 그 많은 아티스트(심지어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보다 많다)를 모두 다루기는 ‘무리’라는 판단 하에,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발매작들을 골라보았다.

 


 


01. 술탄 오브 더 디스코 <SQ (We Don’t Need No EQ IQ)>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개성 넘치는 발매작들 중 단 한 곡만을 추천해야한다면 조금의 고민도 없이 ‘SQ (We Don’t Need No EQ IQ)’를 꼽겠다. 러닝타임 내내 쉴 새 없이 난무하는 노골적인 단어 선택과 직관적인 ‘효과음’은 언어의 장벽도 극복하게 해주고, ‘I’m the beast’라든가 ‘I’m gonna make you sex maniac!’과 같은 발칙한 지름만 제대로 듣는다면 의미 전달에 대한 걱정은 잠시 내려 놓아도 좋다. 귀를 의심하게 하는 것은 가사뿐만이 아니다. 낯뜨거운 전개 속에서도 이들이 흥 넘치는 훵크 밴드임은 분명히 들린다. 탄탄한 베이스라인과 브라스가 뒷받침해주는 그루브는 물론, 훌륭한 연주 그 자체에 극강의 희열이 느껴진다. 화룡점정의 뮤직비디오 또한 놓치지 말 것.

 


02. 나잠 수 <Till the Sun Goes Up>

앨범명 그대로 해가 뜰 때까지 엉덩이든, 술잔이든 뭐라도 흔들어야 할 것 같은 훵키한 앨범이다. 나잠 수는 언더그라운드, 메이저 할 것 없이 걸핏하면 앨범 크레딧에 불쑥불쑥 등장하는데 (그뿐이랴, 그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리더/보컬/작곡자이면서 프로듀서, 엔지니어, 디자이너, 뮤직비디오 감독까지 해내는 만능꾼이다), 대체 어느 틈에 13개 트랙의 꽉 찬 정규를 준비했는지 모르겠다. 모든 트랙의 도입부에서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와 드럼 시퀀서의 사운드가 귀에 콕콕 박히면서 80년대로 시간이동을 하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단어 그 자체로는 이미 한 물 간 느낌의 역설적인 단어 ‘첨단’이 붙는 ‘첨단 그루브메이커’라는 수식어가 이보다 더 어울릴 수가 없다.

 


03. 로다운 30 <그땐왜>

로다운 30의 ‘록’은 풍만하고 따뜻하다. ‘블루스와 하드록을 기반’한다는 공식적인 설명 외에도, 윤병주(기타/보컬)와 김락건(베이스), 새로 영입된 최병준(드럼)의 원숙미 때문일까, 윤병주의 늘어지지 않는 보컬에도 불구하고 빈틈없는 공간감은 그대로다. 그래서 세 번째 정규 [B]를 발매하기에 앞서 공개했던 싱글 <그땐왜>가 유독 가볍고 담백하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곤함에 물든 걸음을 젖히고 사뿐히 움직이는 느낌일랄까.

 


04. 생각의 여름 <From a Tree Perspective>

지극히 ‘자연주의’에 어울리는 몇 안되는 우리나라 아티스트 중 하나, 생각의 여름. 속세에 지쳐 인적 드문 어딘가로 떠나는 초가을의 기차 여행이라든가 볕 잘드는 할머니 댁 마루에서의 낮잠, 아니면.. 전자파 따위는 먹히지 않는 어느 농촌에서 보내는 어느 오후. 그런 감상들이 떠오르는, 적당히 유약한 목소리와 적당히 차분한 연주들로 만나는 고요. 멜로디뿐인가, 한 권의 시집을 방불케하는 그의 가사들을 보면 물 따라 구름 따라 돌아다니는 음유시인을 방불케 한다. 그렇게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묘한 청량감을 주던 그의 음악이 실리카겔 김한주의 터치(?)를 받자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쏟아지는 별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05. 파라솔, 실리카겔 <Space Angel>

파라솔*과 실리카겔의 유례없는 콜라보레이션 ‘샴’, <Space Angel>. 조금의 타협도, 양보도 없이 제각각 녹음과 후반 작업까지 끝낸 뒤 붙였다는 트랙의 모습은 이와 같다. 나른한 지윤해의 보컬과 연주를 시작으로 마지막 한 마디 ‘비상벨소리’가 나오기 전까지는 온전히 파라솔이지만, 2분대부터 울려퍼지는 신디사이저 소리와 짙은 리버브의 보컬이 등장하며 실리카겔의 트랙으로 넘어간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감쪽같고 순식간이라 넋놓고 있다간 놓치기 십상이다.

*파라솔은 실리카겔과 함께 일회적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을 뿐, 붕가붕가레코드의 소속은 아니다.

 


06. 새소년 <긴 꿈>

발매된지 10년을 넘어서고 있는, 이제는 결별한 브로콜리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와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가 아직도 전형 수식어처럼 함께 회자되고 있는 붕가붕가레코드에서 주목해야할 차세대 아티스트는 단연 새소년이다. 홍대 부근의 클럽 공연을 통해 오로지 입소문만으로도 정식 데뷔 싱글이 나오기 전부터 시끌시끌했던 문제적 밴드. ‘긴 꿈’을 듣고 세 번의 혼란이 있었다. ‘분명 내가 기억하는 보컬 황소윤은 여자인데, 내가 모르는 사이 새 보컬이 영입된 걸까?’, ‘이거 기타 피치(pitch)가 자꾸 떨어지는 건 의도한 거겠지?(의도한 부분이 아니라면 어서 빨리 음원 자료를 다시 받아야 하니까)’, ‘(재빨리 크레딧을 확인해보며)삼인조가 맞다고? 세 명이서 낼 수 있는 사운드가 아닌 것 같은데, 세션이 또 있었겠지’. 보컬은 황소윤이 맞았고, 로파이한 질감을 위해 빈티지한 사운드 효과를 준 것이 맞고, 세션은 없었다. 가을에 발매가 예정된 EP를 기다리기엔, 이 꿈이 너무 길다.

 


 

 

Editor / 김은마로
eunmaro10@poclanos.com

 

[추천의 추천의 추천] 신해경, 코가손, 파라솔, 새소년

숨 막힐 정도로 뜨거운 여름이지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을 들게 하는 새로운 음악 소식은 선뜻 불어온 시원한 한 줄기 바람 같습니다. 지난 한 달 포크라노스는 75A, 오리엔탈 쇼커스, 쏠라티, 티어라이너, 더 한즈, 예서 등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에서 완성도 높은 앨범들을 발매했습니다. 새로운 음악을 듣다 보면 종종 우리가 듣고 있는 이 앨범을 작업하는 동안 아티스트는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궁금해지곤 합니다.

포크라노스는 지금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아티스트인 신해경, 코가손, 파라솔, 새소년에게 지난 한 달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물었습니다. 여기 네 팀이 추천한 곡들을 소개합니다. 이 음악들을 듣고 난 후 만나는 그들의 앨범은 한층 더 즐거운 음악 경험이 될 것입니다.

 

신해경 / 명왕성 (2017.07.29) 



지난 2월 발매한 [나의 가역반응] 이후 뜨거운 관심 속에 쇼케이스 매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출연 등 ‘올해의 신인’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한 신해경의 새로운 싱글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기대 속에 발매되었습니다. 2년 전 발표했던 곡인 ‘플루토’를 기반으로 발전시킨 러닝타임 6분에 육박하는 대작인 ‘명왕성’은 신해경이 그간 발표한 곡 중 가장 오랜 시간 작업한 곡이라고 하는데요. 음악적으로 아티스트의 욕심이 가장 많이 들어간 곡이라 애착 또한 크다고 합니다. 신해경 특유의 꿈꾸는 듯한 멜로디, 겹겹이 쌓여 부유하는 기타 사운드, 치밀하고 드라마틱한 구성이 극대화된 곡입니다.

신해경이 추천한 곡들은 국내외는 물론, 과거와 현재를 망라하는데요.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대표곡부터 이상은의 명반 중 하나인 6집 [공무도하가] 수록곡, 그리고 인디 신의 숨겨진 원석 같은 김라마의 곡까지 신해경의 취향과 그의 음악 뒤에 깔린 정서를 상상하게 합니다. 아티스트 신해경만큼이나 궁금한 그의 플레이리스트를 지금 만나 보시길 바랍니다.

 

추천의 추천의 추천: 신해경이 추천합니다.

 

 

▶ Connan Mockasin – I’m The Man, That Will Find You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이 대단했던 기억이 난다. 멋진 곡이고 자기만의 색으로 청자를 압도하는 곡” 
▶ 이상은 – 삼도천  
“곡 가사 중에 ‘너와 나 사이에 물이 흐르고 있구나’가 있는데, 간결하고 어렵지 않게 깊은 감정선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가사에 존경심을 표합니다.” 
▶ The Beach Boys – Good Vibrations 
“내가 들은 음악 중 가장 좋아하는 곡, 멜로디, 편곡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 김라마 – 망각 / 헌신 
“곡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와 가사가 대단하다. 9분가량 되는 러닝타임 동안 영리하고 집중도 있게 곡을 풀어나간다. 멋진 곡이라고 생각되고, 재능에 감탄하게 되는 곡.” 
▶ Bye Bye Badman – 너의 파도 
“근래 가장 많이 반복해서 들은 곡이다. 가사 중에 ‘너는 모르니?’ 이 부분 들을 때마다 내가 정말 물어보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하는 곡.”

 

코가손 / 오늘의 할 일 (2017.07.11) 

몇 차례의 멤버 교체와 밴드 포맷의 변화를 겪으며 어느새 활동 3년 차를 맞이한 밴드 코가손. 현재의 4인조 체제를 갖추고 처음 발표하는 이번 EP에는 ‘오늘’에 방점을 찍고 내일을 향해 가는 코가손의 다짐을 담았다고 하는데요. 첫 EP 명이 [오늘부터]였을 정도로 ‘오늘 전문 밴드’라고 해도 좋을 코가손의 2017년 오늘은 한층 풍부해진 사운드와 활력 있는 연주로, 거창하진 않지만 충분히 멋지고 청량한 하루를 선사합니다. 한층 입체적으로 등장한 코가손의 캐릭터 가손가 등장한 앨범 커버 아트, 부채, 티셔츠 그리고 앨범 명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오늘의 할 일’ 점착 메모까지,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코가손의 새 EP와 함께라면 무더운 여름 날씨도 잠시나마 잊힐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코가손 멤버들이 보내온 추천곡들은 ‘코가손스러움’이 물씬 묻어납니다. 여름, 사랑스러움, 귀여움 같은 키워드가 가득한 코가손의 플레이리스트를 지금 만나 보세요. 무더운 여름의 단점들이 잠시 사라지고, 청량하고 기분 좋은 가벼움이 가득한 여름이 주변을 가득 메울 거에요.

 

추천의 추천의 추천: 코가손이 추천합니다.

 

▶ Redbone – Come And Get Your Love  
▶ Marvin Gaye – What’s Going On 
“설명이 필요 없는 너무나도 유명한 두 곡이다. 이 노래들의 메시지처럼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중요한 ‘오늘의 할 일’은 서로 보듬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 (민혁) 
▶ Charly Bliss – Ruby  
“여전히 이런 바보 같고 귀여운 (좋은) 노래들이 꾸준히 나와서 행복하다.” (원준) 
▶ 전자양 – 던전 2  
“밤은 끝없는 미로, 그대만이 유일한 등불.” (원준) 
▶ Led Zeppelin – Fool In The Rain  
“’여름 안에서’ 편곡을 할 때 ‘이런 느낌으로 연주해봐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멤버들에게 추천했던 곡. 발랄하고 통통 튀는 리듬이 좋다. ‘여름 안에서’처럼 땀 흘리는 여름에 들으면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기분.” (용산) 
▶ Eugene Record – Here Comes The Sun  
“여름 안에서 넘실거리기 위해” (기원) 
▶ Real Estate – Darling  
“정신없이 사랑스럽고 귀엽고 싶어서” (기원)

파라솔 / 아무것도 아닌 사람 (2017.07.08)

 

약 2년 만에 정규 2집을 발표한 파라솔은 그 누구보다도 눈에 띄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앨범 발매에 앞서 한 달간 진행했던 파라솔 주관 공연에 오른 밴드들만 해도, 일본의 더 와이즐리 브라더스(The Wisely Brothers), 한국의 신해경, 김반장과 윈디시티, 오존(o3ohn)이라니. 매 공연이 순식간에 매진될 만했죠. 실리카겔과의 합동 공연 <샴> 역시 공연계를 뜨겁게 달궜고, 결국 밸리록 페스티벌의 무대로까지 옮겨가 많은 음악 팬들을 열광하게 했습니다. 지금은 첫 전국 투어로 광주와 대전에서의 공연을 마무리하고, 9월에 있을 대구, 부산, 창원 투어와 서울에서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파라솔의 플레이리스트는 앞으로의 활동과도 깊은 관계가 있어 보이는데요. 8월 19일에 내한해 파라솔과 함께 공연하는 미국의 인디 뮤지션 크리스 코헨(Chris Cohen)의 곡과 2016년 한국을 방문했던 덕테일스(Ducktails)의 곡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덕테일스가 내한했을 때 함께 공연하기도 한 파라솔의 지윤해가 덕테일스의 새 앨범에 참여했다는 놀라운 소식만큼 파라솔의 행보에는 경계나 한계 따위 없어 보이는군요.

추천의 추천의 추천: 파라솔이 추천합니다.

 

▶ Andy Shauf – The Magician 
“최근 가장 많이 들은 곡 중 하나입니다.” (지윤해) 
▶ Ducktails – Letter Of Intent  
“좋은 친구이자 곧 나올 새 앨범에 제가 베이스로 몇 곡 참여한 뮤지션인 Ducktails의 노래 중 좋아하는 곡입니다.” (지윤해) 
▶ Chris Cohen – Monad  
“8월 19일에 파라솔과 함께 공연하는 크리스 코헨의 곡.” (김나은) 
▶ Gilbert O’Sullivan – Alone Again (Naturally)  
“유명한 노래인데 최근에야 노래 가사를 보고 너무나 암울하여 충격 받은 곡.” (김나은) 
▶ Flaming Lips – She Don’t Use Jelly  
“나의 기준의 팝송 중 하나” (정원진) 
 Kurt Vile – Never Run Away  
“요새 보기 드문 멋있는 가수” (정원진)

새소년 / 긴 꿈 (2017.06.20)

 


싱글이 채 발매되기도 전부터 이토록 주목받은 밴드가 근래에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새소년에 대한 음악 신의 관심은 뜨거웠습니다. ‘새소년스러움’을 구성하는 로우파이한 질감, 빈티지한 느낌, 그리고 블루스, 사이키델릭, 록, 신스팝 등 여러 스타일을 관통하는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에는 음악 팬들뿐만 아니라 음악 관계자들도 주목할 수밖에 없었죠. 붕가붕가레코드에 합류해 발매한 첫 싱글 ‘긴 꿈’에는 실리카겔의 김한주가 프로듀서로, 파라솔의 지윤해가 사운드 엔지니어로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한 새소년 멤버들이 추천한 곡들 또한 이들의 음악만큼이나 흥미로운데요. 김밥레코즈를 통해 11월에 내한하는 마일드 하이 클럽(Mild High Club)부터 토로 이 모아(Toro y Moi) 등의 로파이 사운드부터 존 레논(John Lennon)과 오노 요코(Ono Yoko)의 아들이기도 한 션 레논(Sean Lennon)의 곡까지 멋진 곡들이 가능합니다. 새소년의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올가을부터 어마어마하게 밀려올 새소년의 물결을 기다려 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네요.

▶ Mild High Club – Windowpane 
“11월에 내한한다는 기쁜 소식..(신 나) 2016년에 많이 들은 음악 중 하나입니다.” (강토)
▶ Toro y Moi – The Flight 
“마찬가지로 많이 들은 뮤지션” (강토)
▶ KWAYE – Little Ones 
“요즘 가장 즐겨듣는 아티스트입니다. 극도의 세련된 레트로 팝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황소윤)
▶ Childish Gambino – Redbone 
“여름밤에 어울리는 끈적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황소윤)
▶ Sean Lennon – On Again Off Again 
“추천받아 들었던 노래인데 계속 들었던 거 같습니다. 따뜻하면서도 불안한 느낌이 좋았습니다” (문팬시)

 

Editor / 맹선호 
sunho@poclanos.com

[Next Big Thing] 사랑이 가장 빛나는 순간, 위수

Next Big Thing
사랑이 가장 빛나는 순간, 위수

지난 해 가을 첫 싱글 [내일도 또 내일도]를 시작으로 4곡이 담긴 첫 EP를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위수. 그는 사랑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자신만의 어조로 담담히 풀어놓는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나 상황이 누군가를 만나 벅차는 감정들로 피어오를 때, 위수는 보편적이면서도 남다른 순간을 노래한다. 누군가의 입을 빌려 나의 감정을 설명해야 한다면 그건 아마도 위수의 이 곡들이 아닐까. 노랫말을 들으며 상상했던 꾸밈없는 모습 그대로인 싱어송라이터 ‘위수’와의 인터뷰.

두은정 : 작년 발매된 첫 싱글에 이어 그 곡들이 수록된 EP를 발매했어요. 아무래도 최근 발매된 이번 앨범을 준비하기 까지의 과정이 가장 궁금해요.

위수 : 이번 EP가 4곡인데 그 중 두 곡은 앞서 싱글로 발매가 되었던 곡들이에요. 원래는 세 곡을 더 준비하려고 했는데 제가 발매가 6월이었고 3월달부터 한달에 한곡씩 뮤지션리그에 업로드하려 했었어요. 아무래도 혼자 발매를 준비하다보니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앨범 준비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게 됐어요. 색다른 알바를 찾다가 대형 마트 안에 있는 동물 테마 파크에서 일하게 됐죠. 원래 앨범 준비할 땐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대신 전 동물들을 보면서 기분은 ‘힐링’했지만 체력적으로 부쳐서 내내 몸살이 났죠. 그 때문에 아쉽게도 처음 계획했던 세 곡이 아닌 두 곡만 진행하게 됐어요.

원래 EP라는게 컨셉이라는게 있어야 하잖아요. 제가 그간 우연찮게 다 사랑 노래를 써왔어서 새로운 곡들은 아무래도 그만큼 더 달달한 사랑 노래들을 쓰게 됐던 것 같아요. 사실 신기한게 사랑 노래, 밝은 노래를 잘 안 쓰거든요. 막상 앨범을 발매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다 밝은 곡들이어서 저 스스로도 의외예요.


두은정 : 그러고 보니까 첫 데뷔싱글이 [내일도 또 내일도]는 ‘축가’를 모티브로 한 곡이예요. 이틀테면 결혼이라는게 사랑의 결실이라고들 하잖아요. 이를테면 드라마에서 해피엔딩이라고 했을 땐 ‘누구와 누구와 결혼했습니다’로 끝나곤 하니까요.

위수 : 사실 [내일도 또 내일도]는 제가 결혼식장에 갔을 때의 감정을 쓴 곡인데 어릴 때 결혼식장을 가면 무조건 울었어요.

두은정 : 묘한 위압감이 있죠.

위수 : 네, 거기에 말로는 설명 못할 감정들 있잖아요. 기쁜데 슬프기도 한 그 감정을 노래를 꼭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사실 결혼식장에서 제일 즐거운 순서가 축가잖아요. 축가를 제 3자가 아닌 결혼을 하는 당사자가 부르면 정말 멋있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서 그런 입장에서 써보게 된 곡이거든요.

실제로 이 곡이 제가 앨범을 내려고 쓴 곡이 아니라 원래 같이 팀을 하려던 친구가 본인 사촌오빠 결혼식에 축가를 불러달라면서 제 자작곡이면 좋겠다고 부탁하더라고요. 원래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는 것을 마침 곡으로 쓰게 된거죠. 주변인들이 많이 좋아해주셔서 혼자 준비하면서 용기를 얻었고요. 그런 마음으로 저의 첫 발을 내딛게 한 곡인 것 같아요.

 


두은정 : 보편적인 질문이면서도 가장 또 궁금한게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거든요. 위수 씨가 처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위수 : 누구나 다 한 번씩 경험해보게 된다는 동네 피아노 학원이 첫 시작이었죠. 제가 7살 무렵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학원 선생님들이 무언가 많은 시도를 하셨어요. 아이들에게 다양한 악기를 다루어보게 한다던지 작곡 수업을 한다던지. 와중 선생님들이 저의 재능을 발견하시고 클래식 작곡을 제의하셨어요. 사실 그 때는 형편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체험식으로 몇 달만 해보고 말았어요. 이후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졌던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깨작깨작 혼자 음악을 해왔다면 문득 결연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과 식사하는 식탁에서 음악을 할거다, 정식으로 배우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사실 긴장을 했는데 저희 아버지가 꿈이 생긴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봐주시고 기뻐해주시더라고요. 그 때부터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다소 막연하게 곡을 쓰는 걸 하고 싶다는 정도였는데, 음악을 하다보니 점점 제 목소리로 표현을 하는 일이 많아지고 주변에서도 ‘너는 노래를 해야 해’라는 말을 많이 듣다 보니 꿈이 싱어송라이터로 기울게 된 것 같아요.

두은정 : 지금은 그 결정이 맞는 것 같나요?

위수 : 네, 재밌어요. 되게 재밌어요. 어렸을 때, 입시를 할 때만 하더라도 제 목소리에 대한 스스로의 신뢰가 없었거든요. 대학교를 들어가고 나서는 보컬 전공이 따로 있잖아요. 보컬들만의 각기 다른 색깔로 제 곡들의 색깔이 바뀌는게 되게 신기했었어요. 대학을 2년을 그렇게 다니고 나니 제가 노래를 점점 더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마음 속에 잠재된 열망이 있이 커져서 결과적으로 휴학을 했고 이렇게 혼자 노래를 하게 된 것 같아요.

두은정 : 음악을 하는 뮤지션 ‘위수’로써 보컬로써의 비중, 작곡가로써의 비중이 각각 어느 정도인 것 같아요?

위수 : 사실 처음에 곡을 쓸 때는 아무래도 음악에 대해 공부를 했다 보니까 화성적인 이론이나 이런 것들을 못 놓겠더라고요. 듣는 사람이 편해야 좋은 음악이라 할 수 있잖아요. 점점 그런 걸 느끼고 제가 가진 다른 것들로 표현을 하는데 집중을 하는 것 같아요. 그게 목소리고요. 요즘은 가사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곡을 쓸 때 가사부터 쓰는 편이거든요. 요즘 제 음악에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목소리 그리고 가사인 것 같아요.

두은정 : 가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가사를 쓸 때는 아티스트마다 방식이 다르잖아요. 멜로디가 먼저 나오고 가사를 뒤이어 붙이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위수 씨는 어떤가요.

위수 : 저는 원래 일기장에 쓴 말들을 함축해서 가사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EP를 내고난 요즘은 방식을 바꿔보자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떠한 단어를 보고도 ‘확대 해석’을 해보기도 하고요. 사실은 일기장에 있는 것들을 가사로 쓰는게 가장 많아요.

두은정 : 어떻게 보면 위수 씨 곡들은 정말 솔직한 자기 고백이네요.

위수 : 그렇죠.(웃음) 제 경우는 아무래도 진실된 느낌을 듣는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커요. 모티브가 없을 때도 간접 경험이 가장 와닿는 편이죠.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그 허구 속 주인공의 입장이 된다거나 하는 것은 아직 저에겐 어려운 것 같아요.

두은정 : 저는 지금의 이야기를 들으며 개인적으로 가졌던 위수 씨에 대한 이미지와 대화를 나누고 난 뒤의 이미지가 그대로 유효한 것 같아요. 순수하고 꾸밈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곡을 쓰는 방식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니 정말 내 생각대로구나, 하는 판단이 드네요.(웃음)

위수 : 간접적인 경험을 한 제 느낌을 표현하는거지, 어떤 작품을 보고 이것에 대한 감상을 쓰는 건 어렵지 않은데 확실히 그러네요.

두은정 : 지금 하고 있는 것들 외에 현재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분야가 있다면요.

위수 : 음, 원래 저는 피아노로 곡을 쓰는데 최근에 갖고싶었던 일렉기타를 구매했어요. 그래서 기타로도 곡을 써볼 생각인데 요즘 덕분에 너무 신나요. 또 분야라고 하기보다는 작업을 하면서 미뤄뒀던 혹은 겁이나서 못했던 그런 그냥 막연히 하고싶던 일들에 좀 관심을 더 가지려고 하고있어요. 하고 싶었던 타투를 하거나, 머리에 탈색을 하거나 그런것들이요. 물론 당분간만이겠지만요.(웃음)

 

두은정 : 작곡가로써, 혹은 보컬로써 앞으로의 계획은.

위수 : 싱어송라이터로써 계획을 세우고싶어요.  제 목소리에 맞는 곡의 스타일들을 더 찾아가면서 정말 새로운 스타일들도 시도 해보고 싶고, 제 감성을 더 깊은 곳에서 끌어올릴 수 있는 연습도 해야할 것 같아요. 또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공연을 따로 하지 않고 있어요. 방구석에서 혼자 곡을 쓰고 부르다보니 제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이 제 음악을 스트리밍 하는것 외에는 닿을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음원 외의 다른 경로로 저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요즘 고민하고 있습니다.


Editor / 두은정
(촬영, 인터뷰)
youngwave@poclanos.com

[Next Big Thing] 지금 막 자라난 한 뼘, 새소년

Next Big Thing
지금 막 자라난 한 뼘, 새소년

언젠가 새소년의 공연을 처음 보던 날이 생각난다. 이맘때 여름은 어지러울 정도로 더웠고, 뜨거운 공기 가득한 클럽 안에서 흘러나온 음악은 록, 팝, 블루스 할 것 없이 한데 뒤섞인 것들이었다. 사춘기를 겨우 지나온 소년의 목소리를 한 보컬은 뜻밖에 갓 스무 살의 여성이었고 다소 어수룩한 표정으로 뱉는 멘트 후에는 그 좁은 클럽 무대를 자기만의 온도로 데우는 것에 열중하는 장면들이 가득 찼다. 그 열기를 따라가는 와중 신나기보다 놀라워서 이 감정을 무슨 표현으로 표현할지에 대해 꽤 고민했던 것 같다. 새소년을 알고 난 후의 것들은 전부 손바닥 뒤집듯이 내 예상을 비껴가는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데뷔곡을 ‘긴 꿈’으로 선택한 것, 허밍으로 따라부르던 가사가 ‘달사람’, ‘조가비’같은 단어들로 이루어져있단 걸 알았을 때의 충격들 말이다.

밴드를 결성한 지 1년여, 보컬 황소윤을 주축으로 드러머 강토, 베이스를 맡은 문팬시까지 3인조 체재의 새소년은 꽤 오랜 시간을 거쳐 첫 싱글 <긴 꿈>을 세상에 내놓았다. 열여섯 무렵 혼자 곡을 만들어온 보컬 소윤은 고교 시절의 데모곡들을 모아 이미 성인이 되기 전 비공식 앨범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이 중 일부가 새소년의 주요 곡이 되었으니 이들의 세계는 사실 오래전부터 조금씩 꿈틀대고 있던 일.

새소년이란 이름의 셋이 오랫동안 매만지고 다듬어온 곡을 천천히 듣고 나니 어쩐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인데, 고작 4분여의 곡이 달려가는 동안 이들은 새로움과 시작이 같은 표현이라 말하는 것만 같다. 키가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은 어떤 느낌일까. 키가 작았던 중학교 시절의 나는 그것을 상상했고 성장통을 겪는 친구들의 ‘밤새 자라난’ 고통에 대한 후일담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댔던 것 같다. 아마 새소년에게는 내내 이런 소리가 들리고 있지 않을까. 시작이라는 표현은 이제 여기, 오로지 이들에게만 붙여도 될 것 같다.


두은정 : 이미 많이 들었던 질문이겠지만 새소년이 오랜 시간 준비해온 ‘긴 꿈’ 발매에 대한 소감을 묻고 싶어요.

문팬시 :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어요. 싱글을 준비하면서 힘든 상황을 겪어보니 EP는 또 어떻게 하나 고민했는데 요즘은 그새 생각이 또 바뀌었어요. 빨리 내고 싶어지고, 빨리 곡 작업도 하고 싶어지고. 이렇게 어떤 결과가 나오는게 너무 재미있어요.

황소윤 : 물론 다른 프로듀서들도 함께 했지만 우리 셋이서 만들어내는 첫 번째 결과물 이었잖아요.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걱정은 물론 셋이서 힘든 과정도 겪었는데 막상 나오고 나니까 ‘순산’을 한 기분이 들어요. ‘긴 꿈’ 발매로서 만족한다기 보다는 앞으로 나올 EP의 작업을 훨씬 건강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그간 저희끼리만 듣던 음악을 사람들과 같이 들으니까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녹음이나 믹싱같은 작업에서 집중해서 들어오며 느끼지 못 했던 감상이 발매 뒤에 들으니 느껴지기도 하는게 다르더라고요. 아무튼, 좋아요.(웃음)

두은정 : 보컬 소윤과 드러머 강토는 같은 학교 출신이기도 하죠.

강토 : 이 얘기를 이 표현으로 꽤 많이 했던 것 같은데 학교 다닐 때는 안 친했어요.(웃음) 마주칠 일도 없었어요.

황소윤 : 저는 사실 강토오빠의 모습을 많이 봤어요. 아무래도 강토오빠가 선배다 보니 선망하는 것도 있었고요. 그 후 우연히 공연 뒷풀이 자리에서 얘기를 나누다 같이 연습해보자 얘길 하면서 인연이 시작됐어요. 실질적인 팀의 시작은 클럽 살롱 노마드 오픈마이크를 통해서였죠. 지원을 했는데 덜컥 공연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어서 제가 만든 곡을 가지고 함께 연습을 했어요. 그 때가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주일 뒤쯤. 그 이후에는 클럽 공연을 시작하고 헬로루키까지 지원하게 된거죠.

두은정 : 2016년 5월의 헬로루키 공개오디션이었죠. 사실 그 때 새소년은 대진운이 좋지 않았다고 해야하나.(웃음) 그 달에 로바이페퍼스, 실리카겔에,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같은 유난히 쟁쟁한 팀들이 많았잖아요.

강토 : 어쩌면 헬로루키가 안 된게 다행인게 우리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지금의 구성원들로서만 낼 수 있는 밴드의 느낌은 아예 없지 않았을까. 그 당시에는 소윤이가 만든 곡을 제가 드럼 카피하고 베이스 카피하면서 연주만 하는 형태였는데, 만약 그 때 헬로루키가 됐다면 새소년은 그 상태로 발전해나갔겠죠.

두은정 : 첫 베이스 멤버가 탈퇴한 후 베이스 자리는 꽤 오래 공석이었어요.

황소윤 : 사실 이전 멤버보다 지금 베이스를 맡은 팬시오빠가 밴드 구성원으로써 더 오래 활동했어요.

문팬시 : 그러고보니 벌써 일 년여네요.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만도 않았고 이것저것 많은 일들 겪으며 몰입하다보니 시간이 참 빨리 가요. 이런 마음이 드는 걸 보니 그간 열심히 했나봐요. 처음 멤버 영입 제의를 받고 이 팀이 하는 음악은 마음에 들었는데 혹시 음악적 감성이 맞지않아 제가 오히려 방해를 하는 상황이 되진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있었죠. 그 이후엔 서로가 잘 맞춰와서 이렇게 잘 풀린 것 같아요.

황소윤 : 사실 저희 밴드 자체가 순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팬시오빠가 들어오던 시기가 레이블에도 갓 소속되고, 유독 복잡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시기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시오빠가 힘든 상황에도 잘 융화가 된 것 같아 다행이예요.


두은정 : 그러고보면 기타 멤버를 공개적으로 구인한 적도 있었는데.

황소윤 : 베이스는 거의 틈이 없이 바뀌었고 기타 멤버는 올 초에 찾아보다 결국 지금의 3인조로 형태로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이 되었어요. 그 과정이 다른 멤버들이 말한 밴드로서의 결집성을 가지게 된 계기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새 멤버들이 들어와야 한다’, ‘음악적으로 뭔가 더 풍성하면 좋겠다’ 같은 얘기들을 많이 했었는데 이젠 셋이 하는게 편하고, 셋이 하는게 재미있고요. 지금은 우리 셋이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잘 모색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일종의 전우애를 가지게 됐고요.

두은정 : 사실 새소년은 여러 세션 멤버와 함께 꽤 오래 4인조 셋으로 공연해왔죠. 결과적으로 3인조가 되면서 사운드적인 측면이나 퍼포먼스적인에서 보완해야겠다 느낀 점이 있을 것 같은데.

강토 : 저는 보완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저의 역할에 더 충실하게 몰입해야겠다 생각했어요. 한 파트가 없어지면서 사운드가 비는 퍼포먼스에서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확실히 세 명이서 했을 때 에너지가 집중되는게 있더라고요.

황소윤 : 사실 세션이 자주 바뀌는 것들이 밴드에게 있어선 불안한 요소거든요. 셋이 할 땐 각각의 연주가 돋보이는 장점도 있고요. 단점은 반대로 연주가 너무 잘 보이니까.(웃음) 아무래도 합이 더 중요해졌죠.

두은정 : 갓 데뷔 싱글을 발매한 지금도 여전히 ‘어리다’, ‘젊다’라는 평을 듣고 있기도 하지만 보컬 소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솔로 데모 <16-19>를 제작하기도 했죠.

황소윤 : 사실상 지금처럼 적극적인 활동을 하진 않았어요. 제가 한 솔로 활동은 말 그대로 데모앨범을 만들어낸 정도고, 본격적인 활동은 새소년 하면서 이루어졌다고 봐요. 데모앨범 제작은 내 삶에서나 대외적으로도 하나 남겨둔다 생각하고 음악이라는 걸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음악을 정리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시작한 거였어요. 어떤 야망이나 큰 포부로 한 일은 아니고, 16살 때부터 19살까지의 제가 참 재미있는 시절을 보냈는데 제가 ‘재미있게 놀았던’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거나 나 자신의 기록물로 남겨두면 좋지 않을까 했죠. 그래서 실은 엄청나게 서툴고 생경한 형태의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두은정 : 그게 실질적인 새소년의 모태가 되었죠.

황소윤 : 제가 워낙 스펙트럼이 넓은 음악을 하다보니까 밴드 음악으로써 발전시킬 수 있는 곡들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곡들도 있었어요. 밴드 음악 형태를 띄고 있는 몇 곡들을 새소년 안에서 발전시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아직도 저는 새소년의 음악과 황소윤의 음악을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저는 새소년에서 셋이 같이 만들어가는 사운드가 좋아요. 아까 강토오빠가 말한 일종의 ‘에너지’가 느껴질 때 희열감을 느끼기도 하고 지금 이 셋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도 좋고요. 새소년은 새소년답게 이끌어나가고, 데모앨범에 수록된 팝적이거나 좀 더 대중성을 띄거나 밴드 음악으로 발전시키기 어려운 다른 곡들은 황소윤으로서 작업을 해나가고 있는 중이예요.

두은정 : ‘소윤’의 솔로버젼 <긴 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스스로 느끼는 데모앨범에 수록되었던 <긴 꿈>과 지금의 <긴 꿈>과의 차이점은.

황소윤 : 한 번도 이런 류의 곡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엄청 밝고 스트레이트하고 가사가 오글거릴 정도로 감상적인 곡은 <긴 꿈>이 처음이었는데 음악에서 새싹처럼 푸릇푸릇한, 신선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아쉬운 부분 없이 지금 발매된 <긴 꿈>, 제가 처음 만들었던 <긴 꿈> 모두 좋아요.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이번에 선보인 <긴 꿈>은 조금 더 성숙한 느낌인 것 같아요.

두은정 : 더이상 황소윤 혼자만의 곡이 아닌 세 멤버 공동의 곡이 되면서 각자가 생각하는 이 곡의 포인트 같은게 달랐을 것 같아요.

문팬시 : 지난 주 주말인가, 비가 엄청 많이 왔고 친구들이 차를 렌트해서 놀러가다가 저를 태워서 바래다주는 길이었어요. 제 앨범이 나왔다고 친구들과 다 함께 음악을 들었는데 인트로가 왠지 슬픈 느낌이 들더라고요. 비 오는 날 듣는 느낌이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다들 비 오는 날 <긴 꿈>을 다시 들어보셨으면 해요.

 

두은정 : 사실 긴 꿈의 가사 자체는 엄청나게 희망찬 느낌이죠.

황소윤 : 안 그래도 작업할 때 염려되서 그 부분에 대해 강조했었어요. 자칫 1차원적으로 마냥 밝은 느낌이 될까봐 프로듀서에게도 그런 얘기를 미리 전달했죠.

두은정 : 곡을 다듬어 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포인트는.

문팬시 : 신경을 안 쓴 부분은 없지만 확실히 후렴과 아웃트로가 중점적이었죠.

황소윤 : 사실 편곡 과정에 있어서 <긴 꿈> 버젼이 상당히 많아요. 아웃트로도 꽤 긴박하게 만들어지기도 했고요. 지금 발매된 곡은 팬시오빠 말대로 신경 안 쓴 부분이 정말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격변을 거친 버젼인데, 아웃트로 같은 경우는 막상 작업에 들어가보니 빠르게 진행되기도 했어요. 그 부분이 M/V만 봐도 그렇고 사실상 서사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두은정 : 보컬이 남자인 줄 알았다는 의견도 있더라고요.

문팬시 : 사실 충격을 받았어요.

황소윤 : 저도요. 어떻게 나를 남자로 알지?(웃음)

두은정 : 뭐랄까, 개인적인 감상은 변성기를 겪고있는 사춘기 남자아이 느낌이랄까요.

황소윤 : 허스키한 느낌이 있다고들 하고요. 게다가 밴드 이름까지 ‘새소년’이다보니 보컬이 여자겠구나 유추할 수 없는 것 같기는 한데 생각보다 그런 반응이 많아서 놀라긴 했죠. 물론 재밌기도 하고요.

두은정 : 사실 보컬의 성별을 구별하기 어려울만큼 지금 발매한 단 한 곡만으로는 새소년이란 밴드를, 그리고 앞으로 발매할 앨범의 색깔을 유추하기 어렵죠.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의 공연 레파토리를 보자면 록, 블루스, 팝 등의 장르를 넘나드니까요. 사실 그래서 <긴 꿈>은 다소 예외적인 곡이라고 느껴지기도 해요. 진짜 잘 하는 건 숨겨두고 ‘우린 이런 것도 할 수 있어요’하는 느낌이랄까. <긴 꿈>으로 새소년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밴드 색깔을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문팬시 : 솔직히 이번 곡에 대한 반응이 이렇게까지 좋을 줄은 몰랐어서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나중에 다른 곡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되기도 해요.

황소윤 : 저희 밴드의 특징이 다양한 장르, 다양한 색깔을 가진거라 생각하는데 새소년이 가진 가장 대중적인 곡, 사람들에게 가장 다가가기 쉬운 곡이 <긴 꿈>이라고 생각했죠. 말씀하신대로 제일 잘 할 수 있는 곡을 아직은 숨겨두고 있는게 맞는 것 같아요. 다음에 나올 싱글이 <파도>이니만큼 앞으론 전혀 다른 색깔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도 되고요. 사운드적인 면에서나 편곡적인 면에서나 그간 중구난방이었던 스타일의 곡들을 한데로 모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까지는 4인조 혹은 그 이상의 편곡을 지향해왔다면 지금은 셋이서 라이브를 해내거나 빈티지한 색깔을 내보는 것에 집중을 하고 있어요. 첫 싱글이 <긴 꿈>이라는 점과 그 다음 발매될 싱글이 <파도>라는 점이 저한테는 굉장히 기대가 돼요.

두은정 : 앞으로의 새소년은.

문팬시 : 그간 셋이서 ‘재미있게 하자’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딱 그거 말고 나머지는 욕심이랄까. 좋은 일에 대한 욕심보다 안 좋은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Editor / 두은정
(촬영, 인터뷰)
youngwave@poclanos.com

[PICK] 여름, 지금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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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지금 만나러 갑니다

봄에는 꽃이 핀다지만 여름에는 하늘이 핀다열린 하늘을 뚫고 태양이 조도를 밝히면, (더운 바람에 지친우리 모두 물과 술(!) 등 온갖 액체를 탐하며 일말의 시원함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지 않는가그 중심에는 바다가 있고푸르름이 있고더할 나위 없는 활기가 있다사람이 모이고 사랑도 모인다꿈이든 꿀이든한여름 밤의 무언가는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사시사철 태양이 작렬하는 동남아에서 질풍노도를 거치며 자라온 탓일까이제는 일년에 무려 세 개의 계절을 거쳐야 겨우 돌아오는 따뜻한 여름이 꽤나 각별하다마치 내가 그랬듯빛과 물을 따라 생명이 움직이는 숭고한 계절여름가장 따뜻하지만 쿨하고아무리 빳빳한 추억도 조금은 느슨하게 남는 계절이다진득한 더위와 장마는 고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더 극적인(?) 추억과 전개를 위해 존재한다고 애써 위로해본다
 
초여름이 되면 음원 시장에도 파도가 친다가장 시원하고 청량한 음악을 찾아 너도 나도 헤엄친다광란의 이열치열 밴드 연주나 로파이(Lo-fi)한 질감의 사운드혹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전개의 전자음악까지 이 여름을 더욱 화려하게 남길 음악들이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다그래서 이번에는 여름이다여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추천해본다너른 해변도 좋고 에어컨 아래도 좋다가벼운 옷차림과 손에 든 맥주 한 잔에 낭만을 더해줄 올 여름의 음악들을 만나보자.

01. 스멜스앤레노(Smells & Reno) <You Know>

듣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멜로딕한 테크 싱글이 나왔다스멜스(Smells)와 레노(Reno), 베테랑의 일렉트로닉 뮤직 프로듀서 둘이 내놓은 여름 맞이 싱글 <You Know>. 트랙 중반부에 가서야 등장하는 코러스에 가까운 보컬은 마치 겨우 쥐어 본 해변의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킨다아날로그 신스와 드럼머신에 따뜻한 여름과 시원한 여름 모두가 담겨있다.

02. 서울문 (Seoulmoon) <바다바다>

밴드 바이바이배드맨챔피언스, 24아워즈의 멤버들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3인조 밴드 서울문이전 싱글 발매작들까지만 해도 기타와 베이스드럼의 고른 비중과 적당한 저음으로 탄탄한 밴드 사운드를 내던 이들이 더욱 가벼워진 싱글 <바다바다>로 돌아왔다김혜미의 보컬은 더욱 맑고 청량하게 빛나고트랙 내내 흘러나오는 트로피컬한 사운드는 섬세하고 청량하다김혜미(보컬기타), 신혜미(드럼), 이루리(베이스)의 친절한 앨범 코멘트도 잊지 말고 챙겨보자!

03. E.L <JUNE>

4년 전 Sirena(시레나)로 활동하던 당시의 음악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사용된 사운드 소스들은 훨씬 다채로워졌고춉은 더욱 짧고 과감하게 이어진다첫 번째 트랙 ‘Forever Young’에서는 ‘Marble Soda’ 런치패드(Launchpad) 매시업을 라이브로 선보이며 시부야(Shibuya) 감성 특유의 톡톡 튀는 색채로 눈과 귀를 사로잡은 Shawn Wasabi의 재치가 엿보이고더 나아가 더 큰 범위의 퓨쳐 베이스(Future Bass)도 찾아볼 수 있다더 많은 음악적 시도를 예견한 그인 만큼앞으로의 발매작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04. 바이바이배드맨 <너의 파도>

현실에서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 그 새파란 청춘이바이바이배드맨의 음악 속에는 명백히 보인다젊음푸름싱그러움청량함을 이보다 더 직관적으로 표현해내는 밴드가 또 있을까한여름의 햇살을 머금고 제자리에서 조용히 반짝이는 바다의 물결처럼이 요소들은 결코 과하지도 인위적이지도 않다귓속에서는 청춘이 고동치는데보컬과 연주는 담담할 뿐이다.  

05. AKUA <Drink! Refreshing Dream, sink into AKUA>

국내 홍대씬에서도 보기 드문 슈게이징 록’ 밴드, AKUA(아쿠아). 이름 뒤에는 그들의 데뷔 EP명이기도 한 ‘Fresh Always On’이 늘 함께한다짙은 리버브와 로파이(Lo-fi)한 무드가 기반이 되는 이들의 사운드는 마치 한 겹의 얇은 막을 가운데 두고 듣는 듯하다물 속을 부유하듯먹먹하다음악보다는 울림에 가까운 소리.

06. Anar <Rio>

‘Rio’라니들어보기도 전에 빤히 아름다울 것을 예상했다먼지 뭉치와 함께 오랜 시간 구르다 나온 듯한 바랜 엽서와도 같은 커버를 보고 반쯤 확신이 들었고첫 번째 트랙 ‘De janeiro’를 듣고는 이 뻔한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으로 눈이 절로 감겼다재즈 힙합의 매력을 깨우쳐준 소중한 EP. 빈티지한 음질이 유독 멋스럽다기분 탓인지 한국의 여름과는 잘 매칭되진 않는다아직 한 번도 가보지는 않았지만여기에는 분명 리우데자네이루의 여름이 묻어있다.


Editor / 김은마로 
eunmaro10@poclan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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