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지난 달, 바이닐 디깅을 위해 도쿄에 다녀왔다. 미약하게나마 커지고 있는 국내 바이닐 시장 규모에 대해 마냥 비관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작년 가을부터 이어진 시티팝 바이닐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엔 어려움이 다소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바이닐과 음악 그 자체를 좋아한다지만, 선택과 소비의 자유가 지극히 제한된, 소위 말하는 ‘팔릴 음악’들로만 채워진 바이닐 꾸러미들 속에서 나의 취향을 탐구하는 것은 여간 께름칙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취약한 산업 구조 때문인 것을 알기에 이해는 할 수 있다만, 지갑은 쉬이 열리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일본에 다녀오게 되었다.

 

유년기 내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던 것에 질린 나는, 낯선 나라에서 즐겁게 지내다 오는 것도 능력 중 하나라고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본행은 작지 않은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닷새 내내 신나게 디깅을 하고, 마지막 이틀은 심신의 안정을 위해 의도적으로 공항 근처 허허벌판에 잡은 숙소에서 보냈다. 로밍 날짜를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마지막 이틀은 인터넷도 없이 지냈다. 일어는 할 줄도, 읽을 줄도, 들을 줄도 모르는 나에겐 철저히 단절된 이틀이었다. 의도치 않은 극한의 고독 속에서 나를 마주할 수 있었고, 나의 정체에 대한 고찰의 바다 속에서 헤엄치다 서울로 돌아왔다. 나의 정체와 좌표를 끊임없이 묻는 세상에 던질 어떤 단단한 것을 쌓는 고찰이었다. 내가 일본에서 찾은 것은 훌륭한 바이닐들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있었다.

 

이번 편에서는 존재의 이야기를 담은 앨범들을 소개한다. 나 자신일 수도 있고, 타인일 수도 있고, 그 관계를 이루는 어떤 존재일 수도 있다. 반대로, 무(蕪)와 허(虛)도 있다. 철학적인 말들로 조금 더 예쁘게 가다듬을 수 없는 것은 아쉽지만, 그건 다른 훌륭한 분들께서 많이 해두신 것 같아 패스해본다.

 

1. 사비나앤드론즈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 (Our Time Lies Within)>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는 생업이 간호사인 사비나앤드론즈가 아티스트로서 가졌던 5년 간의 공백을 아쉬움 없이 메워주는 앨범이다. 그녀의 긴 공백과 쏙 닮은 이 앨범에는 응급실 환자들의 생사를 지켜보며 음악의 존재적 가치와 허무의 바닥까지 쳐본 그녀의 긴 호흡과 촘촘히 다져진 감정선이 담겨 있다. 타이틀 ‘Don’t Break Your Heart’를 셀 수 없이 반복해 들으며 감히 상상해 보았다. 짐작도 할 수 없는 그 긴 터널 속에서 음악에 대한 믿음 하나만을 가지고 걸어온 그녀의 시간을. 나는 학업을 미루고 이 일을 한 지 2년차에 들었다. 학생으로서의 신분에 기준을 둔다면 이건 공백이다. 반대로, 음악 하겠다고 아등바등하던 고교 시절이 있었으니 학업에 열중하던 때가 공백이 될 수도 있겠다. 두 개의 신분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두 배로 즐겁고 두 배로 괴로운 일이다. 공백이 끝으로 바뀌는 것은 종이 한 장의 차이와도 같아서, 순간의 의지에 따라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는 내적 갈등을 안고 지내야 한다는 것. 생업을 이어나가는 중에 아티스트로서의 위기를 느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알고서 듣는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는, 그렇게 때문에 더 아찔하다. 음악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는 강했지만, 이 아름다운 앨범이 순간의 고뇌로 없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끔찍하다.

 

2. 그림자 공동체 <거울의 숲>

<거울의 숲>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이방인’이다. 음악에 있어 장르란, 누군가의 국적이나 고향처럼 최소한의 소속감이나 정체를 대변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긴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것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림자 공동체의 음악은 참 난감하다. 록이기도 하고, 포크이기도 하다. 얼터너티브라고 하면 그것도 부분적으로 맞다. 하지만 그 무엇도 아니다. ‘4개의 느리고 꽤 조용한 곡들입니다. 볼륨을 크게 틀고 들어주세요.’라는 설명이 전부인 <거울의 숲>. 그림자 공동체라는 이름도 낯선데, 그 어떠한 정보도 조회가 불가한 미지의 발매다. 옹알이는 듯한 말에 가사가 궁금하지만 그 역시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강한 리버브로 가사조차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4개의 곡. 부유하는 온갖 요소들이 제각기 흘러가다 하나의 합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다시 흩어지는 걸 반복하며 듣는 이의 정신을 흐려 놓는다. 정의되고 어딘가 귀속된 것, 기왕이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속 편한 우리의 마음과 다르게, 정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거울의 숲>을 듣다 보면 여간 약 오르는 것이 아니다. 너무 좋은데, 이 좋음의 출처를 알 수 없으니. 귀에 울리는 이 느리고 조용한 곡들이 주는 벅찬 울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혹자는 공중도덕의 새 프로젝트로 의심한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3. 루시의 조용한 친구들 <루시>

개인적으로 젠더의 이슈는 가장 기피하고 싶은 주제이다. 어떤 성별을 가졌든 개개인의 기준에 따라 언쟁으로 이어지는 주제이기도 하고, 우리 인간이 의지대로 고를 수 없는 가장 원초적인 것은 언제나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으니까. 여성 혐오, 여성 비하의 개념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 누군가는 생활 속 직접 경험을 통해, 또는 간접 경험을 통해 이미 인식하고 있던 것들이다. 의사를 표출하고 각자의 관점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고, 젠더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가시화되면서 극단적인(심지어 때로는 공격적인) 워딩이 등장한 것뿐이다. ‘루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간으로써의 주체를 위협받는 가상의 인물이다. 꽃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녔다 하여 누군가에게 꽃처럼 대해질 이유도 없으며, 인형 다루듯 함부로 대해질 이유도 없는 ‘루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기 이전에 그녀도 우리 모두와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것. 너무도 당연하지만 이 사실은 종종 너무도 쉽게 잊혀져  남성과 여성을 막론하고 누군가의 큰 상처로 남는다. 요조와 Needle&Gem(니들앤젬)의 에릭(Eric)의 프로젝트로 세상에 나오게 된 <루시>. 참 좋아하는 곡이고 누구나 한 번쯤은 잊고 있던 성에 대한 느슨한 잣대를 다시금 돌이켜볼 수 있는 앨범이지만, ‘루시’들의 존재와 그 안타까움을 노래하는 작품들이 많아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4. 요조 <나의 쓸모>

 

나의 <나의 쓸모>에 대한 잊지 못할 추억을 갖고 있다. 재작년 10월, “개입”이라는 이름으로 요조와 배우 양종욱이 함께한 공연이 있었다. 요조가 노래를 마치면 양종욱이 등장해 요조의 속마음을 전하는, 흡사 뮤지컬과도 같은 라이브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서 <나의 쓸모>에 수록된 대부분의 트랙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는데, 사회인으로서의 첫 출근날부터 ‘나의 쓸모’를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정말 내가 이 회사에서 쓸모가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나 자신 자체에 대한 고찰이었던 것 같다. 어느 밤 엄마와 아빠가 뜨겁게 안아버렸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 나의 존재, 나의 쓸모. 이것을 따져봐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에 대해.

 

5. 이랑 <신의 놀이>

‘신의 놀이’라니. 아주 기가 막힌 앨범명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존재와 내가 좇는 것에 대해 쉼없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결국엔 다 ‘신의 놀이’란 말인가. 아주 뚜렷하고 직접적인 딕션 덕분에 가사 제공 서비스가 없는 것이 아쉽지 않다. 말을 건네듯, 일기를 읽듯 그냥 이야기할 뿐이다. 이것이 노래인지, 음정을 얹은 혼잣말인지 분간이 안되어 갸우뚱하다보면 어느새 트랙이 끝나있다. 재기발랄한 멜로디 뒤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잘 들어보라. 평범한 것을 평범하지 않게 노래하는 것은 물론, ‘하하, 호호’ 의성어만 등장하는 트랙 ‘웃어, 유머에’는 그 어떤 노래보다 냉소적이다. 여러모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겨놓은 앨범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무엇이 맞고 그른 것인지, 그것을 판단하는 ‘나’는 결국 얼마나 맞고 틀렸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신의 놀이’에 맡겨보자.

 

6. 루싸이트 토끼 <L+>

단순한 감정을 노래하는 음악은 너무나 많지만, 감정의 주체인 자아들의 의식을 노래하는 음악은 그리 많지 않다. 단순히 ‘너’와 ‘나’가 아니고, ‘너에게 나’와 ‘나에게 너’로 확장되는 이 앨범의 철학은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특유의 심오함이 난 참 재미있다. 나에게 <L+>는 아주 특별한 앨범이다. 모든 제작 단계에 함께할 수 있었던 앨범인 것은 둘째 치고, 한창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때에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이기도 하다. 불현듯 <L+>이 생각났던 건 다시 날씨가 쌀쌀해지던 작년 가을. 어쩐 일인지 그 반 년 사이에 사운드는 더욱 깊어졌고, 가사가 던지는 존재론적 무게는 실로 더욱 묵직해져 있었다. 지금보다 한참 몰랐을 때, 이 ‘좋음’을 정말 좋은 만큼 인지할 수 있기 전에 함께했던 앨범이라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L+> 제작 당시 팀장님이 ’좋다’는 감탄사를 다소 과하게 남발하신다고 생각했으니까. 당시 팀장님은 무려 <L+>의 앨범 소개글을 나에게 맡기는 실수를 하셨다. 보기보다 심오한 철학을 지닌 이 앨범의 소개글 한 줄이 나오지 않아 이틀 밤을 꼬박 샜고, 영이라든가 혼이라든가, 영원, 궁극, 관계, 우주 등 잡히지 않는 온갖 것들이 문장에 들어갔다 나왔다. 어쨌든, 이 모든 추억을 제하고도 <L+>가 선사하는 좋음의 무게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 있어서 <L+>는 일관되게 아름답다. 참, 당분간은 루싸이트 토끼가 한국에서 앨범을 내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굉장히 슬프다.

 

Editor / 김은마로
eunmaro10@poclanos.com

[Next Big Thing] “Yes, our life is dance!”

Next Big Thing / “Yes, our life is dance!” 더 한즈(The Hans)


 

소위 ‘난 놈’들은 언제, 어디서든 입에 오르내리기 마련이다. 댄서블 록밴드 ‘더 한즈(The Hans)’는 작년 한 해 2016 EBS 스페이스 공감 6월의 헬로루키로, K-루키즈에서의 장려상 수상 등 신인밴드 경연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왔다. 
애초에 공동의 목표 의식을 가지고 시작된 팀은 아니었지만 같은 이름으로 성취하는 것들이 늘어나며 ‘진정한’ 한 팀이 됐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어쩐지 소년 만화의 마지막 장면을 몰래 엿본 기분이 든다. 비슷한 팀은 많을지언정 ‘한즈’같은 팀은 없다는 평가도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정신없이 웃고 왁자지껄 떠드는 그들을 보면서 내일에 대한 몇 가지 물음은 어쩐지 틀어막게 됐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겠다 생각하는 것도 모두 다르지만 그래도 지금이 가장 재미있다고 말하는 밴드. 더 한즈(The Hans)의 어쩐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춤.

 

 

두은정 : ‘더 한즈’의 경우는 사실 일반적인 밴드들의 결성 계기와는 다른 느낌이에요. 어떤 결과나 목표를 생각하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 ‘하다 보니’ 팀이 되었고 예상치 못한 결과들을 이룬.

김강윤(드럼) : 맨 처음 울산에서 같이 어울리던 성광(보컬)이와 중관(기타)이가 ‘우리도 서울에 다시 올라가서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시기 만들었던 곡이 민트페이퍼 컴필레이션 앨범에 실리게 되었고, 어찌 보면 그게 이 밴드의 작은 시작이었죠.
저희 넷이 처음 모이게 된 건 대학 동기이기도 하지만 사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아니었어요. 세션으로 처음 합류하고서 처음엔 한즈가 오래 할 팀이 아니라고 생각한 게, 애초에 보컬인 성광이가 군대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군대를 미룬 상황에서 성광이가 공연을 하다 다리를 다치고 면제를 받게 됐고 처음의 계획보다 밴드 활동을 오래 하게 되었는데 저희가 어떤 목표점이랑은 상관없이 그냥 지금 당장 주어진 공연, 그다음, 다음 주의 공연들을 이어오다 보니 이렇게 계속 지속하게 된 것 같아요.

배성광(보컬) : 오히려 목표가 없으니까 넷이서 진짜 재밌게 하게 돼요. 뭐든지 다 재밌게 하니까 그게, 보였나 봐요. 진짜 재밌게 하는 게 보이니까 사람들도 저희를 즐겁게 받아들여주시고. 오히려 생각을 하고 의식을 했다면 더 안 되지 않았을까.

김강윤(드럼) : 아시겠지만, 저희가 워낙 비글 네 마리예요.(웃음)

 

 

두은정 : 혹시 지금도 그런 의식은 딱히 가지고 있지 않은 건가요. 팀을 결성하고 과정에서 얻어지는 결과들을 마주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도취되는 목표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김강윤(드럼) : 저희 같은 경우는 넷 다 밴드로서 하고자 하는 것들이 모두 다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되려 팀이 사이좋은 상태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굳이 현실적인 목표점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서고 싶어 하는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 같은 게 될 수도 있겠지만, 저희는 항상 앨범 소개 글에 쓰듯 우리가 하는 것들이 그냥 ‘춤’ 자체이고 싶어요.
저희 이번 EP 마지막 트랙인 ‘Wall’의 가사를 보면 ‘Yes, our life is dance’라는 가사가 후크처럼 들어가요. ‘우리의 삶은 춤사위다.’ 밴드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같은 경우는 본인들을 ‘느린 춤’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그것에 빗대자면 저희 음악은 ‘격변하는 춤’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목표점이라고 한다면 그런 일종의 ‘춤사위’가 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들었을 때 치유받고, 어떤 상황에서 우리 음악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 것들이 추상적인 목표예요.

두은정 : 지금의 한즈는 딱히 한계를 정하지 않고 지금 재미있는 그 자체로 유지되고 있는 거군요.

배성광(보컬) : 이건 지금 생각났는데, ‘일단은 1위 한 번 찍고 그다음에 생각해보자’ 이런 얘기는 했었어요.

김강윤(드럼) : 맨 처음 클럽 공연을 시작할 때는 주말 공연 라인업에 들어가고 싶은 게 꿈이었죠. 처음 성광이에게 밴드 제의를 받을 땐 한 달에 3천만 원 벌기를 목표로 얘기했던 적도 있고요.(웃음)

 

 

두은정 : 올해 드디어 두 번째 EP [All About Hans]가 발매됐죠. 밴드 구성원으로서 곡 작업에서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전승호(베이스) : 사실 저희가 녹음을 하면서 타이틀곡 선정에 있어 의견이 항상 달라졌어요. 한 곡 녹음이 끝날 때마다 ‘이걸 타이틀곡으로 하자’, ‘이 곡으로 하자’ 이렇게 매번 얘기가 바뀌었거든요. 그만큼 한 곡 한 곡 너무나 정성을 들이기도 했고. 저희가 ‘더 한즈’로 지내온 시간들 안에서 서로 합을 맞추면서 만들어져온 곡들이라 선지  모든 곡이 타이틀곡으로 선정돼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사실 마지막 곡 녹음할 때까지도 ‘이게 타이틀곡’이라는 생각으로 진행했었어요.

김강윤(드럼) : 드러머로써 이 친구들을 보자면, 밴드라는 건 기본적으로 그들만의 사운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딱 특색이 있어서 그것을 보러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첫 EP 때는 그 특색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번 두 번째 EP는 그 우리만의 사운드가 뭔지 이제 알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어떤 곡이든지 템포, 장르 이런 것들과 상관없이 우리 곡들을 합주를 하고 녹음을 하는데 뭔가 알 수 없는 ‘아련한’ 무언가가 있더라고요. 저희 ‘한즈’만의 사운드요. 그런 것들을 조금 더 부각되게끔 녹음에 신경 썼고, 공연도 그런 지점을 염두에 두고 해나갈 예정이어서 그런 부분을 캐치해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김중관(기타) : 저희만의 사운드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녹음을 하면서 더 좋은 톤, 더 좋은 소리, 더 좋은 것을 하기보다는 원래 평소에 우리가 내던 사운드를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평소와는 다른 걸 더 해본다거나, 다르게 eq를 만져본다거나 그런 것 없이 그냥 평소에 하던 것들 그대로요.

배성광(보컬) : 저희는 모든 곡들이 곡마다 성격이 다 달라요. 예를 들어서 ‘Say’같은 곡은 관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무드의 곡이라 생각해서 녹음 부스 안에서도 몸을 움직이고 오만상을 찌푸려가며 작업을 했고요.(웃음) ‘흔들흔들’의 경우는 곡 자체에 감정 이입을 엄청 했어요. 소위 ‘썸’이 한창 진행되다 보면 상대의 마음이 헷갈려 짜증 날 때가 있잖아요. ‘이제 좀!’ 이런 느낌으로.(웃음) ‘wall’의 경우는 녹음을 하면서도 제가 감동을 받게 된 곡이기도 해요. 이렇게 곡마다의 개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게끔 보컬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그게 예상치 못하게 잘 담긴 게 특히 ‘stars’라는 곡인데요. 이걸 녹음할 때 굉장히 부드러운 톤으로 불렀는데 곡 의도와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두은정 : 앨범의 모든 수록곡들이 타이틀곡 같다고 했는데 곡 구성, 트랙 배치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김강윤(드럼) : 저희는 사실 이번에 2번 트랙 ‘흔들흔들’과 5번 트랙 ‘wall’을 더블 타이틀로 했는데요. 첫 번째 트랙같은 경우는 이 앨범의 킬링 파트가 될 만한 곡들을 항상 넣고요. 2, 3번째에 타이틀곡을 배치하고 뒤쪽으로 갈수록 조금 더 진지하고, 우리의 내면을 보여줄 수 있을만한 곡들을 넣어요. 첫 EP 때와 지금의 배치가 비슷한데 둘 다 뒤로 갈수록 조금 더 딥해지는 경향이 있죠. 복잡한 홍대 거리, 유명한 술집에서 술을 먹고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 술이 깨면서 문득 외로워지는, 그런 느낌의 넘버들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두은정 : 사실 첫 EP 때는 구어체의 긴 문장으로 된 제목의 곡도 있었죠. 이번 앨범은 주로 짧은 단어로 구성된 트랙들이 제목으로 된 만큼 어쩐지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직관적인 느낌이에요.

전승호(베이스) : 저희가 앨범 작업을 마무리할 때 즈음 타이틀곡 ‘흔들흔들’과 ‘Wall’은 마스터링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제목이 정해지지 않았었어요. 제목을 짓기 위해 가사를 중점에 두고 회의를 했던 적도 있어요.

배성광(보컬) : 강윤이 형이 ‘흔들흔들 어때?’라고 제의해서 바로 ‘콜’해서 정해지기도 했어요.

김강윤(드럼) : 원래 ‘Wall’같은 경우도 제목이 ‘War’였어요. 뭔가를 하려고 하면 벽에 가로막히는 그런 상황들이 제목과 잘 맞는다고 판단했죠.

두은정 : 이번 EP에서 사람들이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포인트가 있을까요.

김강윤(드럼) : 저희 이번 앨범 커버를 보면 1집에 나왔던 소년이 다시 등장하고 그 소년이 조금 더 성장하는, 그런 콘셉트예요. 앞으로 저희가 앨범을 낼 때 그 소년의 성장 과정을 같이 지켜봐 주시면 좋겠어요.

 

 

두은정 : 이 인터뷰는 사실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신인 뮤지션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이기도 해요. 이제 막 두번째 미니앨범을 내놓은, ‘시작하는’ 한즈가 생각하는 ‘시작’이란 무엇일까요.

김강윤(드럼) : 한즈에게 시작이란 그냥 ‘시작’ 그 자체요. 시작이라는 말이 사실 거창하잖아요. 저는 끝보다 시작이 더 거창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이 사는 게 비행기랑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중학교 때 친구에게 너는 어떻게 사는 게 꿈이냐고 물어봤는데 걔가 가늘고 길게 살고 싶대요. 근데 그 친구가 부연 설명을 한 게, 높이 확 날았다가 막 빙빙 돌며 낙하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비행기가 공항에서 출발할 때나 도착할 때나 똑같듯 그렇게 살고 싶다는 얘길 듣고 어쩌다 그게 제 인생의 좌우명처럼 됐거든요. 시작이란 게 그런 것 같아요. 거창하게 시작해도 끝날 때 추하지 않게 끝나는 게 중요한 거.

전승호(베이스) : 제가 한즈로 활동한지 벌써 1년 반 정도가 지났고 처음 만났던 순간이나 처음 합주했던 순간들이 많이 생각이 나는데요. 시간이 지나 정규 앨범이 나와도 시작을 아련하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밴드가 되고 싶어요.

김중관(기타) : 시작은 ‘용기’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 말을 시작하는데도 여러 생각이 한 번에 들면서 뭘 말해야 할지도 무얼 말하고 싶은지도 정리가 안 됐는데요. 시작이란 건 일단 이렇게 하는 거 같아요. 일단 이렇게 용기 내서 하고 나면 그다음부터가 진짜 ‘시작’인 것 같아요.

 


Editor / 두은정 (촬영, 인터뷰)
youngwave@poclanos.com

[Deep Inside] 2000년대 한국에 재림한 댄스뮤직의 화신

Deep Inside no.2
2000년대 한국에 재림한 댄스뮤직의 화신! 치명적 그루브 메이커, 그 이름나잠 수(NAHZAM SUE)’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다. 2000년대 초반 즈음에 ‘마빈 게이(Marvin Gaye)’ 같은 옷차림을 하고 다닌 적이 있다. 마치 골무처럼 생긴 니트 모자를 쓰고 빈티지한 티셔츠와 자켓, 나팔바지처럼 밑단이 넓은 청바지, 컨버스를 신고 다녔다. 당시에도 이미 홍대에서 놀고 있던 나는 굳이 따지자면 언더그라운드-힙합 씬의 일원이었는데 이런 옷차림은 집단 내에서 아마 내가 유일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큼직한 NBA, NFL 져지와 뉴에라 캡, 오버사이즈의 청바지를 입고, 새하얀 에어포스원, 또는 팀버랜드 부츠를 신고 다녔고 나도 한땐 그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저렇게 변해버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 시기의 내가 과거의 소울(Soul), 훵크(Funk) 음악에 깊게 경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빈 게이(Marvin Gaye)

 

시작은 힙합(Hip Hop)이었다. 어릴 때, 그러니까 이미 90년대 초부터 AFKN에서 새벽에 틀어주는 뮤직비디오들을 주구장창 보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의 힙합, 알앤비 음악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사랑은 계속 이어졌다.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뭔가를 사랑하게 되면 더 깊이 파고 들어가고 싶어진다. 더 많이 알고, 또 이해하고 싶어진다. 힙합, 알앤비 음악의 뿌리가 된 음악들로 자연스레 눈을 돌렸다. 과거의 소울, 훵크, 재즈, 블루스 음악들로 시간여행을 시작하게 된 거다.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커티스(Curtis Mayfield), 로저(Roger Troutman,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 릭(Rick James), 지풍화(Earth Wind & Fire), 레이(Ray Charles), 콜트레인(John Coltrane), 몽크(Thelonious Monk)…여기는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세계였고 난 헤어나올 길이 없이 푹 빠졌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내 취향은 현재까지도 굳건한 내 정체성의 근간이 되었다.

 

오하이오 플레이어스(Ohio Players)의 명반 <Honey>의 아트워크.

아아…꿀이…꿀이 흐른다.

 

여하튼 다시 내가 ‘마빈 게이’ 코스프레 하고 다니던 시절로 이야기를 되돌리면 당시의 나는 늘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이 생겨나고 어느덧 한국에서도 힙합, 알앤비 음악을 하는, ‘흑인음악’ 아티스트들은 참 많아졌는데 정작 소울, 훵크 음악을 하는 밴드는 좀체 없었던 거다. (당시에 이런 류의 음악을 했던 밴드는 ‘아소토 유니온’, 여기서 파생된 ‘윈디시티’와 ‘펑카프릭 부스터’ 정도가 유일하지 않았나 싶다) 오히려 해방 이후 서구 물결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던 우리 아버지 세대에는 디스코, 훵크를 연주하는 밴드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이를테면 ‘함중아와 양키스’ 같은. 물론 개중에는 아직도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는 철호 형님의 밴드 ‘사랑과 평화’도 있긴 하지만-사.평의 노래 ‘한동안 뜸했었지’는 한국 가요사의 대표적 명곡이다-여전히 한국에는 이런 음악을 지향하는 밴드, 아티스트가 턱없이 적다고 느껴진다.

 

 

<함중아와 양키스 / 풍문으로 들었소>

요즘 사람들에겐 ‘범죄와의 전쟁’ OST에 수록된 ‘장기하와 얼굴들’의 커버로 친숙할 노래다.

 

그런 의미에서 ‘나잠 수(Nahzam Sue)’는 너무나도 반가운 아티스트다.

그의 이름을 알린 희대의(?)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Sultan of The Disco)’, 그리고 본인의 솔로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이 일관되게 60~8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소울, 훵크, 디스코 음악들, 그러니까 흑인음악 카테고리 내의 ‘댄스뮤직’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잠 수(Nahzam Sue)

 

‘나잠 수(Nahzam Sue)’.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보컬, 프로듀서이자 솔로 아티스트, 그리고 믹싱/마스터링 엔지니어다. 심지어 뮤직비디오 감독도 한다. 한국 인디음악 씬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의 일원이다. 붕가붕가에서 그를 소개하는 공식적인 자료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나잠수’가 아니라 ‘나잠 수’다. 이 요상한 이름은 그가 커리어를 시작한 밴드인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이하 술탄)를 처음 시작할 당시 사용했던 예명 ‘압둘라 나잠’에서 유래했다.

‘나잠 수’ 하면 일단은 ‘술탄 오브 더 디스코’다. 적어도 이 글을 여기까지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이 밴드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들어보지 않았을 리가 없을 터. 강력한 댄스 바이브, 파격적인 의상과 안무 등으로 무장한 이 밴드는 2014년, ‘무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한국 밴드 최초로 초청되는 쾌거를 이뤘다. ‘심지어’ 글래스톤베리에서 다시 한 번 초청(!!), 2016년에 또 다시 영국을 찾았다. 최근에는 일본 데뷔 앨범을 발매, 곧 일본 전국투어를 앞두고 있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탱탱볼> 라이브 @ 온스테이지

 

이 비디오 한 편이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특질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인디 아이돌, 중동 석유왕자 컨셉트를 내세우며 개그적 요소가 충만했던 초창기를 지나 본격적으로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이후의 술탄은 음악적으로는 70년대 소울/디스코/훵크의 음악적 유산을 충실히 계승한다. 그러면서도 키치함과 우스꽝스러움의 경계를 애매하게 넘나드는 B급 정서 충만한 비주얼과 퍼포먼스는 여전히 유효했다. 탄탄한 완성도의 밀도 높은 그루브와 시선을 잡아 끄는 퍼포먼스의 결합을 통해 디스코/소울 음악의 황금기를 새로운 감성(+똘끼)으로 재현하는 밴드가 바로 ‘술탄 오브 더 디스코’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웨ㅔㅔㅔㅔ (feat. Black Nut)> 공식 뮤직비디오

 

이 비디오를 소개하는 건 개인적으로 이 음악이 ‘술탄 오브 더 디스코’와 솔로 ‘나잠 수’의 연결지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음악이 대체로 70년대에 근간을 두고 있는 것에 반해 이 싱글만은 다분히 80년대의 바이브를 뿜어내고 있다. 80년대, 그러니까 신디사이져가 등장한 이후 대중음악이 ‘격변’을 겪으며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는 시기다. 풍부한 신쓰 사운드, 이와 어우러지는 리드미컬한 기타 리프, 심플하고 직선적인 리듬…’웨ㅔㅔㅔㅔ’는 확실히 80년대다. ‘이 싱글은 어쩌면 나잠 수’가 자신의 솔로를 통해 80년대 스타일의 댄스뮤직을 좀 더 본격적으로 시도하게 된 하나의 계기가 아닐까-라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한 번 해보고 싶다.

2016년, 그의 솔로 활동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 해 봄과 가을에 각각 싱글을 하나씩 공개했고 10월에는 정규앨범 발매를 예고하고 있었다. (이미 그 전인 2013년에 싱글 ‘울어요 그대’를 공개한 바 있으나 어떤 연속성이 없는 단발성 발매였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소품의 성격이 강했다) 그리고 첫 정규앨범 <Till The Sun Goes Up>이 공개되었다.

 

<나잠 수 / Till The Sun Goes Up> 아트워크

여기서부터 이미 심상치 않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본격적으로 80년대의 R&B, 댄스, 팝 음악을 구현한다. 그의 솔로 활동을 함께 하는 밴드 ‘빅웨이브즈’가 함께 작업했다. 빈티지한 소리를 뿜어대는 아날로그 신쓰와 드럼머신이 그루브를 지배하는 댄서블한 곡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드문드문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도회적이고 서정적인 슬로우/미디엄 템포의 진득한 곡들, 아울러 그와는 다른 씬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아티스트 ‘신세하(Xin Seha)’, ‘로보토미(Lobotomy)’의 리믹스까지 포함해서 총 열세 곡의 다채로운 악곡들을 빽빽하게 수록하고 있는 풀렝스(Full-length) 앨범 <Till The Sun Goes Up>은 앞서 기술했던 ‘나잠 수’의 음악적 지향을 아주 있는 힘껏 드러낸다. 동시에 이 ‘작은 거인’이 댄스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재능이 가히 ‘천재적’임을 재차 증명한다.

프린스(Prince), 잽(Zapp & Roger), 릭 제임스(Rick James) 등이 자연스레 연상되는데 특히 미네아폴리스 사운드의 흔적이 짙게 느껴진다. 드문드문 ‘피펑크(P-Funk)를 연상시키는 곡들도 있다. 미네아폴리스 사운드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 받는 거장 ‘프린스’가 이 앨범이 발매된 해인 2016년 초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우연을 굳이 결부시키면 이 앨범은 한층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족이지만 아직 ‘프린스’의 음악을 접해보지 않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꼭 들어보길 바란다. 동시대에 활약한 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잭슨’에게 조금 가리워진 감이 있긴 하지만 사실 프린스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천재’ 음악가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ejWV6NBvWKk

 

<Prince / Why You Wanna Treat Me So Bad?> 라이브 @ Capitol Theatre

밝은 기운 가득한 풍성한 신쓰 사운드에서 피펑크(P-Funk)적 향취가 물씬 느껴지는 첫 트랙 ‘ZomB-boy’가 기분 좋게 포문을 연다. 유쾌한 그루브와 재미있는 가사가 잘 어우러지는 가운데 타이트한 랩 플로우와 명료한 딜리버리가 인상적인 <작은 것들의 신>의 주인공 ‘넉살’이 특유의 선명하고 촘촘한 라임을 더하는 곡이다. 좀비들이 대거 등장하는 유쾌한 뮤직비디오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명곡 ‘Thriller’의 뮤직비디오를 일견 연상시키기도 한다.

 

 

<나잠 수 / 좀비보이(ZomB-Boy) (Feat. 넉살> 공식 뮤직비디오

 

 

<Michael Jackson / Thriller> 공식 뮤직비디오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위 비디오와 비교하며 감상하면 꽤나 흥미로울 것이다

 

이어지는 ‘Pink Lip’는 필자 주변에서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섹스송(Sex Song)’이다. (필자와 필자 주변의 알앤비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섹슈얼한 무드의 알앤비 일체를 ‘섹스송’이라 칭하곤 한다) 야한 노래다. 가사가 정말 노골적으로 야하다. 댄서블한 사운드 때문에 자칫 놓칠 수도 있지만 가사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해서 들으면 수위가 꽤나 높음을 알 수 있다. (후반부로 가면 정말 장난 아니다) 가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창법으로 보나 섹슈얼리티 충만한 가사로 보나 이 노래의 모티베이션은 확실히 ‘프린스’다. 쫀득쫀득한 신쓰 사운드가 귀에 착착 붙는 트랙이다.

‘미워 아이니’는 이 앨범 전반에서 느낄 수 있는 나잠 수 특유의 가사적 재치가 잘 드러나는 곡이다. 앨범 초반부의 분위기를 쭉 이어가는 직선적인 댄스 그루브와 함께 ‘미워’, ‘워 아이 니 (我爱你/사랑해)’, ‘아이 니 쥬(I Need You)’ 등 저마다 다른 의미, 다른 언어들을  ‘미워 아이 니’, ‘미워 아이 니 쥬’ 등으로 교묘하게 엮은 훅의 말장난이 재미있는 곡이다.

숨가쁘게 달려온 초반부를 지나 타이틀과 동명의 곡인 ‘Till The Sun Goes Up’이 숨을 고르며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기존의 ‘나잠 수’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도회적인 무드와 멜랑콜리로 가득한 이 미디엄-템포 R&B 넘버는 매끈하게 잘 빠진 팝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근래 부쩍 늘어난 시티팝 리스너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블랙스플로테이션'(Blacksplotation/미국의 흑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흑인 관객들을 위한 영화의 총칭으로 흑인들이 출연하며 주로 훵크, 소울 음악들이 배경음악으로 활용되었다)의 오프닝크레딧, 혹은 90년대 전자게임을 연상시키는 비주얼의 뮤직비디오 역시 시티팝적인 요소가 그득하니 시티팝 컬렉터들은 꼭 한 번 들어보시라.

 

 

<나잠 수 / Till The Sun Goes Up> 공식 뮤직비디오

 

이 앨범 최고의 ‘문제적 트랙’이라 할 수 있는 ‘사이버가수 아담’은 한 시대를 풍미…까지는 아니고 스쳐가며 제법 사랑 받았던 사이버가수 ‘아담’을 소재로 한다. ‘아담’은 일본의 사이버 아이돌 ‘다테 교코’를 레퍼런스로 한국의 아담소프트가 제작해 발표한 3D 가수로 지금 생각하면 중2병의 끝판왕과도 같은 갖가지 설정들이 어마어마했다. 태어난 곳이 ‘에덴’이라던지, 특기는 기타 애드리브라던지 하는 것들. (심지어 99년 2집이 망한 이후 입대했다는 설정까지 있다ㅋㅋㅋ)

 

문제의 사이버가수 아담

심지어 CF도 찍었다.

 

이렇듯 어이없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나잠 수’는 그(?)의 흥망성쇄에 빗대어 존재학 또는 존재론의 영역까지 이 앨범이 다루는 메시지를 확장시킨다. 풍부한 신쓰 사운드와 훵크의 그루브는 사뭇 경쾌하면서도 왠지 모를 멜랑콜리의 기운을 풍기는데 ‘이미 죽을 때를 알고 태어난 아름다운 사이버가수 아담’이라는 첫 구절이 귀를 때리는 순간 그 멜랑콜리는 명확하게 실체화 된다. 타의에 의해 탄생되었다가 시대의 흐름에 밀려 버림 받은 비극적 존재 아담의 더없이 슬픈 이야기가 바로 이 노래다.

 

 

 

<나잠 수 / 사이버가수 아담> 공식 뮤직비디오

 

뉴웨이브의 향취를 솔솔 풍기는 몽글몽글하고 서정적인 신쓰 사운드, 풍부한 멜로디가 마치 팝 발라드의 정석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성적인 트랙 ‘아무 말’이 차분하게 중반부를 정리하고 나면 흡사 ‘릭 제임스(Rick James)’를 연상케 하는 자극적인 일렉트릭 훵크 ‘왜때문에’가 후반부의 문을 열어젖히며 다시금 약동을 시작한다. 중독적인 훅, 토크박스의 사용이 인상적인 곡이다. 이어지는 ‘Get High! (지까짓게)’ 역시 절로 피-펑크의 유쾌한 기운이 절로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맥스 러브’는 수록곡 중 가장 먼저 싱글로 공개되었던 곡으로 앨범의 전체 구성상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그야말로 ‘작렬’하는 트랙이다. 락킹한 사운드와 비트, 여기에 그루브를 부여하는 기타 리프가 뜨겁게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가운데 ‘맥스(Max)’ 상태의 사랑을 표현하는 격한 가사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육삼 빌딩, 피라미드, 한반도를 거쳐 지구, 태양, 은하계, 심지어 블랙홀(!)까지 간다. 초속 2만키로(!?)로 달려 계기판을 터트린다. ‘너무 매우 정말 완전 심각하게’ 사랑을 갈구하는, 적어도 내가 들어본 중 이 세상에서 ‘가장 빡세게 달리는’ 러브송이다. B급 정서 살벌하게 폭발하는 뮤직비디오는 덤이다.

 

 

 

<나잠 수 / 맥스 러브(Max Love)> 공식 뮤직비디오

 

풍부한 멜로디의 발라드 넘버 ‘불꽃’이 대망의 엔딩을 장식한다. 90년대 슬로우잼의 뉘앙스가 감지되는 R&B 넘버인 이 곡은 떠나간 연인을 향한 후회와 갈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앞서 ‘아무 말’의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달려온 여정의 마무리로 손색이 없는 노래다.

총 세 곡의 보너스 트랙을 수록해 구성을 더욱 풍성히 하고 있다. 우선 나잠 수 본인이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문제적 정규작 ‘The Golden Age’에 수록되었던 풍부한 브라스 사운드의 훵크 넘버 ‘들러리’를 신쓰 사운드 난무하는 강렬한 댄스뮤직으로 탈바꿈시켰다. 나머지 두 곡은  그리고 ‘뉴웨이브’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인 아이코닉한 아티스트 ‘신세하(Xin Seha)’, 풍부한 음악적 스펙트럼으로 뭐라 장르를 규정짓기 힘든 음악을 창조하는 전자음악가 ‘로보토미(Lobotomy)’가 각각 ‘Pink Lips’와 ‘사이버가수 아담’의 리믹스 트랙을 헌정하고 있다.

2017년. 이제까지 나잠 수 음악의 시대적 레퍼런스라 할 만한 70/80년대와의 간극은 무척이나 크다. 디스코, 훵크의 시대는 종언을 고한지 벌써 오래이고 이들의 유산은 근래에는 그저 팝 음악의 소재로 부분적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마크 론슨’과 ‘브루노 마스’의 노래 ‘Uptown Funk’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디스코와 훵크는 유행의 최전선에 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잠 수는 계속 댄스음악을 만든다. ‘당신의 척추를 직격’하기 위해. 당신의 몸이 춤추게 만들기 위해. 2000년대의 한국에 재림한 ‘마지막 디스코와 훵크의 화신’. 바로 ‘나잠 수’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나잠수’가 아니다. 나잠 수’다.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Deep Inside’ 코너의 모든 글은 에디터의 개인적 주관을 반영한 것으로 본사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일절 무관합니다)

[SPECIAL] 2016 포크라노스 뮤직비디오 TOP 15

“당신의 2016년은 어땠나요?”

포크라노스에게 2016년은 장르, 스타일, 씬에 경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음악을 활발하게 선보인 한 해였습니다.

듣는 재미 만큼이나 강렬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통해 알고 있는 음악이 새롭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가사나 멜로디로 내가 상상만 하던 음악을 눈으로 보는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 특히 뮤직비디오는 새로운 시청각적 경험을 선물해주는 것 같은데요. 포크라노스의 스태프들이 작년 한 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곡들의 뮤직비디오 중, 특히 주목해야 할 15개를 선정해 소개합니다. 포크라노스는 여러분이 이미 여러 번 재생했거나 처음 접하게 될 음악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기쁨을 다시금 느껴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스태프들의 코멘트와 함께 추천하는 2016 포크라노스 뮤직비디오 top 15를 소개합니다.

 

 

김사월X김해원 / 허니 베이비 (Honey Baby) M/V

2년 만에 신곡을 발표한 김사월X김해원. 슬픔이 묻어나는 관능적인 무드의 곡들을 선보여온 이들이 신곡 제목이 ‘허니 베이비’라고 공표했을 때, 과연 이런 귀여운(?) 제목을 가진 곡은 어떤 느낌일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었습니다. 스스로 가진 것들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CIFIKA / My Ego M/V

2016년은 특히 신인 뮤지션들의 신작들이 많았는데요. 특히 전자음악계의 기대주 ‘씨피카’의 첫 EP 타이틀곡 ‘My Ego’의 감각적인 뮤직비디오를 빼놓을 수 없죠. 씨피카는 특히 EP 발매 이후 샤이니 종현이 씨피카의 곡을 sns를 통해 적극 추천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었죠.

 

 

이랑 /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M/V

책과 음반의 결합. 이랑의 새 음반은 그녀의 ‘마지막 앨범’이라는 말 만큼이나 꽤 파격적인 포맷이었습니다. 이보다도 더 놀라웠던 건 러닝타임 내내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는, 퍼포먼스에 가까운 뮤직비디오. 곡, 가사의 창작 영역을 넘어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이랑의 의지가 엿보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신의 놀이’의 가사가 떠오르네요.

 

 

CHEEZE / 어떻게 생각해 M/V

어반-팝 듀오 치즈가 레이블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합류 후 처음으로 공개하는 미니앨범 [Q]의 수록곡 ‘어떻게 생각해’의 뮤직비디오. 보기만 해도 연애하고 싶어지는 기분은 뮤비 속 달달한 장면들 때문일까요, 아니면 달총의 사랑스러운 보컬 때문일까요?

 

 

오존(O3ohn) / untitled01 M/V

‘신세하 앤 더 타운’의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알려온 오존이 그간 사운드클라우드에서 공개했던 곡들을 모아 드디어 첫 EP를 발매했습니다. 그의 데뷔작을 기다리던 이들에게도 희소식일테지만 오존을 처음 접해보는 이들 역시 데모곡들이 올라와 있는 그의 뮤지션리그를 꾸준히 찾을 만큼 인상적인 신보였습니다.

 

 

선우정아 / 순이 M/V

‘우리 모두 누군가의 순이’라는 말이 이렇게 와닿을 수 있을까요? 곡도 잘쓰고 노래도 잘하는 팔색조 선우정아의 새로운 모습.

 

 

나잠 수 / ZomB-boy (Feat. 넉살) M/V

대체 나잠 수의 매력은 어디까지일까요? 술탄오브더디스코의 멤버이자 작곡자, 프로듀서, 엔지니어, 디자이너, 심지어 비디오 감독까지 겸임하는 다재다능함을 선보였던 그. 솔로 앨범에서도 그의 야심과 역량을 100%로 발휘했다고 하는데요.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와 ‘Beat It’이 만난 듯한 ‘ZomB-Boy’의 뮤직비디오에는 깜짝 등장하는 인물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고.

 

 

Bye Bye Badman / Genuine M/V

2010년 이후 락 페스티벌 라인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밴드 바이바이배드맨이 내놓은 1년 만의 신보입니다. 기존 바바배의 느낌은 물론 새로운 시도가 느껴지기도 하고요. 여름 내음이 물씬 풍기는 이들 덕분에 꽁꽁 싸맨 지금, 한여름 락페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드네요.

 

 

실리카겔 / 두개의 달 M/V

2016년 한 해 인디씬의 루키를 딱 한 팀만 뽑는다면 단연 실리카겔 아닐까요? 처음 이 뮤직비디오가 발표될 때만 해도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들이 있었건만 어느새 2016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 케이루키즈 대상을 휩쓴 위용의 밴드가 되었네요. 네오-사이키델릭, 개러지, 슈게이징 등 여러 가지 장르가 섞인 그들의 곡들만큼이나 독특한, 단연 실리카겔의 ‘똘끼’를 느낄 수 있는 자체 수공업 뮤직비디오입니다.

 

 

신세하 (Xin Seha) / 티를 내 (Timeline) M/V

80년대 뉴웨이브의 낭만적 정서를 특유의 감각으로 재창조한 싱글 ‘티를 내’. 음악뿐 아니라 그가 표현해내는 복고적 무드의 감각적 아트워크 역시 매번 새 결과물을 기대하게 하죠.

 

 

10cm / 봄이 좋냐?? M/V

지난 봄, 인디 챠트가 아닌 모든 음원사이트의 탑100 챠트를 박살내며 봄캐럴 시장의 판도를 뒤바꾼 그들! 따뜻한 봄, 커플들을 시기하는 마음은 역시 누구나 같았던 거겠죠.

 

 

푸르내 / 야생의 밤 M/V

홍대씬의 루키로 불리던 밴드 ‘얄개들’의 유완무와 이경환, 이들의 오랜 친구였던 김성준이 만나 ‘푸르내’를 만들었습니다. 청춘 그 자체였던 ‘얄개들’을 지나온 이들만의 표현해낼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느껴지는 곡. 떠오르는 신인 배우 금새록이 출연하기도 한 뮤직비디오이기도 하죠.

 

 

호랑이아들들 / 마음의 바닥 M/V

한국적 리듬을 가진 3인조 록 밴드 ‘호랑이아들들’. 올 한 해 홍대 클럽에서 가장 많이 공연을 한 밴드로도 손꼽혔던 이들의 신보는 그간 숱한 라이브를 통해 다져진 내공이 엿보입니다.

 

 

브로콜리너마저 / 천천히 M/V

작년 한 해 유난히 ‘열일’한 브로콜리너마저입니다. 재발매한 ‘앵콜요청금지’를 시작으로 리더 윤덕원의 솔로까지 쉴 틈이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은 곡들을 발매하고 공연을 해낸 브콜너.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를 추천하게 된 이유는 ‘서두르면 쏟아질 것 같아 천천히 걸었네’라는, 잔잔하게 마음을 관통하는 이 노래의 가사 때문인 것 같아요.

 

 

정크야드(JNKYRD) / Tired of Being Tired (Flat Tires) M/V

정크야드는 이 EP를 ‘사소하고 개인적인 얘기들을 큰 문제인 듯 말하는’ 앨범이라 표현했는데요. 앨범의 7곡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곡 ‘Tired of Being Tired (Flat Tires)’의 뮤직비디오는 수많은 멍멍이들(?)이 등장합니다. 직접 보고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정크야드의 이 신박한 뮤직비디오를 소개합니다.

 


 

언젠가 M-tv, M-net 같은 케이블 채널들을 틀어놓고 하염없이 뮤직비디오를 보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골라보고 싶은 뮤직비디오만 선정해서 보는게 아닌데도 다음에 어떤 뮤직비디오가 나올지 엄청난 기대로 채널을 고정시키던 재미가 있었지요.

포크라노스에서는 매번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일종의 ‘음악 방송’을 시작하려합니다. 앞으로는 홈페이지 메인 화면의 온에어 채널을 통해 포크라노스가 직접 선곡하는 음악, 뮤직비디오, 공연 영상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매일 꺼지지 않은 온에어 창을 통해 때로는 신청곡을 받고, 어느 때는 그 날의 날씨와 어울리는 음악을 선정해보기도 하면서 말이죠.

2017년에도 장르, 스타일, 씬에 경계를 두지 않고 각색각양의 뛰어난 아티스트와 음악을 엄선해 소개하는 창구이자 새로운 컨텐츠를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음악을 넘어 보다 새롭고 좋은 음악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Next Big Thing] 지금 피어나는 것들에 대하여, 서울문

 

[Next Big Thing] 지금 피어나는 것들에 대하여


각자 ‘바이바이배드맨’, ’24아워즈’, ‘챔피언스’의 멤버로 씬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겨온 이들이 뭉쳤다. 이들 모두의 활동 년수를 따지면 손가락 열 개도 더 넘게 접어야 하는 엄청난 연륜의 소유자들이지만, ‘우리 많이 시끄럽죠’라고 말을 거는 장난기 넘치는 얼굴들엔 여전히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갈망이 엿보인다. 그 때가 아닌 바로 지금 피어나는 ‘서울문’과의 대화.

 

 

두은정 : 씬에서 다들 오래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함에 있어 일종의 의지 같은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혜미(보컬) : 저는 ’24아워즈’를 하면서 뭔가 다른 팀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우선 저는 이루리 씨를 보고 밴드를 시작한 거나 다름없어요. 루리 씨 공연을 보고 너무 멋있어서 친했던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24아워즈’라는 팀을 하게 된 거죠. 밴드 활동을 하면서 자주 마주치게도 되고, 무엇보다 루리 씨는 대학 친구이기도 해서 계속 영향을 받게 된 것 같아요. 마음속으로 ‘아, 루리랑 같이 밴드를 해야겠다’ 이 생각을 계속했었거든요. 혜미(드럼)의 경우도 엄청 친하다거나 수업을 같이 들은 적은 없었어도 대학 시절 같이 어울려 다니는 무리에 항상 같이 있던 친구였고요. 저는 항상 멤버들에게 같이 하고 싶다고 돌려서라도 말을 계속 해왔거든요.(웃음) 뭔가 그 생각이 비슷해서 이렇게 서로 뭉치게 되고 이걸 꼭 해야겠다는 의지가 더 강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신혜미(드럼) : 저는 드럼이라는 파트 특성상 세션을 많이 해왔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 되게 많았어요. 제가 소속된 팀들은 물론 있었지만 저 스스로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고 음악적으로 해보고 싶은 걸  표출할 수 있는 내 팀을 언젠가 해야지라는 다짐을 해왔죠. 제가 먼저 스트레이트로 졸업을 하고 이후 루리 씨와 혜미 씨의 졸업 공연을 도와주면서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됐고 모두가 비슷한 경향이 있고 이야기가 잘 통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야, 우리 재밌게 팀 해볼래?'(웃음)라고 얘길 하게 됐죠. 처음에는 사실 재미 삼아 시작했다가 점점 암하는 자세가 진지해졌고 지금은 좀 더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지금 ‘챔피언스’라는 팀도 하고 있지만 분명 음악적 스타일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서울문’을 통해 보여드리고 싶기도 해요. 무언가를. 드러머, 세션이 아니라 팀의 구성원 ‘신혜미’이고 싶어요.

이루리(베이스) : 음악하는 사람들 모두 이런 마음일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 장르에 구애받는게 굉장히 싫거든요. ‘바이바이배드맨’을 하면서도 계속 새로운 걸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렇지만 팀이라는게 서로의 색깔을 계속 섞다보니 완전히, 온전하게 내가 하고 싶은걸 그대로 할 수 없었고 그래도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재미로 해왔었거든요. ‘서울문’도 또 다른,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함으로써 우리만의 새로운 걸 만든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매우 즐겁게 작업을 했고요. 아무래도 새로운 보컬, 새로운 연주자를 만남으로써 그들의 생각을 바라보며 ‘아, 이건 이런 방식으로 풀면 재밌겠구나’하는 것들을 배우고 있고요.

 

 

두은정 : ’24아워즈’에서 기타 파트였던 혜미 씨가 서울문에서 새롭게 보컬을 겸하면서 예전하고 다르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나요.

김혜미(보컬) : 일단은 라이브에서도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해야 하는 상황. 물론 녹음만 했을 땐 다양한 연주를 뽐낼 수 있을지라도 뭔가 라이브를 하면서도 좋은 기타 연주와 좋은 노래를 들려드릴 방법이 없을까 되게 많이 고민했었어요. 둘 다 욕심이 나서요. 예전엔 보컬 0, 기타 10으로 힘을 쏟았다면 지금은 5대 5로 배분하려고 하고, 확실히 기타 플레이가 많이 달라졌고요. 처음엔 제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고, 그 ‘허전해진’ 느낌이 익숙지 않아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노래할 때 코드만 나오는 곡이 있잖아요. 전 그런 코드만 나온다는 형식 자체가 처음엔 어려웠거든요. 내가 라인을 넣어야 할 것 같고. 24아워즈 할 때도 그런 압박감을 많이 가졌었어요. 아무래도 기타 멤버가 두 명이나 보니 나만의 라인을 보여줘야 하고. 서울문을 시작하면서도 제가 그런 감정을 느꼈는데, 합주를 많이 하면서 그런 점들을 내려놓게 된 것 같아요.

두은정 : 그러고 보면 이렇게 대화할 때와 노래를 할 때의 목소리 느낌이 많이 달라요. 대화를 할 때는 저음에 가깝네요.

김혜미(보컬) : 이상하게 노래할 때는 다른 존재가 되는 느낌이에요.(웃음)

이루리 : 저도 그래서 처음 녹음할 때 되게 놀랐어요. 사실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녹음을 위해서 곡을 불러보라 하고선 ‘어’ 했죠. 그때부터 곡 쓰는 방향이 정말 확 바뀌었어요. 사실 초반에 쓴 곡은 혜미 목소리를 고려하지 않은 곡이거든요. 처음 부른 작업물을 받자마자 느꼈어요. 이렇게 쓰면 안 되겠구나.

두은정 : 사실 모두들 이전 밴드에서 연주 파트를 맡아온 멤버들이어서 보컬이 누구일지, 어떻게 정해졌는지도 궁금했어요. 처음부터 내정되어 있던 건가요?

이루리(베이스) : 처음부터 혜미 씨가 불렀으면 좋겠다는 이미지는 가지고 있었어요. 무엇보다 뭔갈 하면 열심히 할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혹시 우리 둘 중에 누군가가 보컬이 됐다면 혜미 씨가 했던 노력만큼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신혜미(드럼) : 저 같은 경우에도 에둘러서 말하질 못하는 스타일이라 보컬에 피드백에 대해 얘길 하면 거기에 대해 스스로 고민을 많이 하더라고요. 연습도 정말 많이 하고요.

두은정 : 새롭게 첫 앨범을 낸 구성원으로서가 아닌 여태껏 음악을 해온 뮤지션으로써 새롭게 이 팀에 기대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루리(베이스) : 아무래도 보컬이 달라지고, 여자로 바뀌니까 곡을 쓰는 방식이 굉장히 많이 바뀌더라고요. 그리고 목소리의 특색도 있고요. 사실 사람들은 모두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을 거예요. 그 단점만을 보고 이 사람을 바꾸려 하는 건 사실 아니잖아요. 이 사람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는 곡을 쓰고 그런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특히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서울문’에 특히 더 잘 어울리는 곡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해야겠구나. 사실 음악에도 트렌드가 있잖아요. 그런 것을 따라가면서 억지로 보컬을 맞춘다던지 하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색을 잃지 말자. 그게 비록 시대를 지났다고 느껴지거나 좀 더 앞서간다고 느껴지더라도 그런 것에 구애받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두은정 : 드러머 혜미 씨는 서울문의 첫 신곡을 통해 시도해 본 요소가 있나요.

신혜미(드럼) : 저는 사실 지금 서울문에서의 드럼 플레이 자체가 처음 치는 플레이예요. 사실 어떻게 쳐야 하지 하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드럼이 너무 말이 많아도 튀고, 너무 말이 없어도 허전한 파트거든요. 중간지점을 찾기 위해 사실 멤버들에게 노래 추천을 많이 받았어요. 이런 스타일을 가진 아티스트가 또 누가 있는지 묻고 추천받은 앨범들을 아예 온라인 음원서비스 플레이어에 통째로 모두 넣어서 매일 들었어요. 카피도 하고, 연습도 하면서 몸에 많이 익히도록 노력했어요.

두은정 : 서울문 sns에는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컨텐츠들이 자주 올라와요. 이를 테면 컨셉 사진이나 직접 주제를 정하고 촬영한 재밌는 요소의 영상들이요.

이루리(베이스) : 서울문은 공연을 많이 한다기보다 다른 방식의 소통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면서 처음 시작이 된 콘텐츠들이에요. 사실 공연의 경우 거의 주말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스케줄적인 면에서 겹치게 될 때도 있고요. 뭔가 우리를 보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조금 다른 방법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곡은 작업하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그렇게 자주 발매를 할 수도 없으니까요.

김혜미(기타) : 기존의 팬분들께는 새로운 모습이겠지만 저희를 잘 모르는 분들께는 저희 음악을 들어볼 수 있게끔 하는 유입의 창구 같아요.

 

 

두은정 : 사실 모두 또래인 ‘서울문’ 멤버들이 겪고 있는 지금의 2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어쩌면 저 역시 그렇듯 성취감과 불안함이 함께 오는 시기인 것 같아요.

김혜미(보컬) : 왠지 더 불타올라요. 이 나이가 되면 더 그런 것 같아요.(웃음) 저는 어렸을 때 지금의 제 나이가 어른이고, 정말 많은 나이인 줄 알았거든요. 막 욕도 안 하고 살 것 같고, 누군가를 호칭할 때도 항상 ‘~씨’라고 호칭하게 될 줄 알았어요. 막 어느 새 파리에 가있고.(웃음) 그래서 지금 더 의지가 불타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도 있기야 하지만 걱정은 또 30대에 하지 뭐 같은 생각으로 말예요.

신혜미(드럼) : 저는 지금 힘을 많이 뺐어요, 사실. 더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고 음악적으로도 더 내려놓으려고 노력을 해요. 설레이고, 거기서 오는 불안함보다도 새로운 걸 더 새롭게 보려고 하는 마음이 들고요.

이루리(베이스) : 저는 욕심 때문에 시작조차 못 한 일들이 너무 많거든요. 내가 너무 큰 걸 바랐기 때문에 이 곡도, 저것도 완성할 수 없던 것들이 너무 많아요. 끝내지 못한 작업물들이 만 개는 넘을 거에요. 빨리 내 솔로 앨범도 내보고 싶고, 사운드 클라우드에 개인적인 작업물도 올려보고 싶고 이런 생각을 한 지는 벌써 지금 몇 년이 지났는데도 한 곡조차 못 했어요. 근데 그 이유가 다 욕심 때문인 것 같아요. 뭔가 더 크고, 더 완벽한 걸 바랐기 때문에요.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사실 ‘서울문’ 멤버들은 그런 것들을 서로 다 알고, 느꼈기 때문에 어느정도 자기 욕심을 내려놓거나 양보하는 것 같아요. 서로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들끼리 만났기 때문에 우리의 작업들이 더 빨리 진행될 수 있던 것 같아요.

두은정 : 지금 ‘서울문’ 멤버들에게 ‘꿈’이 있다면.

이루리(베이스) : 우리나라에도 락스타라는 말이 통했으면 좋겠어요. 뭔가 하나의 이미지로.(웃음)

김혜미(보컬) : 그 얘기하니 생각이 나는 건데 왜, 어머니들은 자식들에 대해 남들에게 조금 더 과하게 얘기를 하시잖아요. 예를 들어 수학 점수가 70인데 ‘얘 수학 천재야’라고 하는 것처럼. 근데 그것처럼 저희 어머니도 어디 가서 저를 소개할 때 ‘얘 록커야, 록커’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럴 때마다 제가 굉장히 부끄러워하지만 한편으론 이게 안 부끄러운 일이 됐으면 좋겠어요.

 


Editor / 두은정 (촬영, 인터뷰)
youngwave@poclanos.com

[PICK] Funk면 어떻고 Punk면 어떤가

*Funk면 어떻고 Punk면 어떤가

유통사에서 일하기 전, 음악을 특정 장르로 분류한다는 것이 아주 못마땅하게(?)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만 명의 아티스트가 있다면 만 개의 제각기 다른 스타일이 있다고 믿는 나는, 이들을 장르로 분류한다는 것은 각각의 무궁무진한 개성을 진부한 틀에 한정짓는 것이라 생각했다. 과거 나에게 장르란 것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은, 음악을 수식하는 워딩이나 갈래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 많지 않았던 점도 있고, 음악을 듣는 데에 있어 장르를 따지는 것이 그닥 중요치 않게 여겨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대중들로 하여금 보다 새로운 음악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적절히 가공하고 분류하는 것이 일이 된 만큼, 앨범을 특정 기준에 의거해 분류시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장르에 대한 인식을 키우는 과정 중에 Funk와 Punk의 장르명을 혼동했고, 심지어 그 이전에는 둘 중 하나의 오탈자 정도로 여기고 있었으니 나의 답답함과 부끄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상태인 것을 확인하고는 내심 마음이 가벼워졌지만(?), ‘머리를 볶았으면 Funk, 세웠으면 Punk’라는 옆 부서 팀장님의 터무니없는 팁을 참고해 여러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직접 들어보며 이 둘의 차이를 확실히 알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번 편에서는 내가 겪었던 혼란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만한 앨범을 소개해볼까 한다.

Funk와 Punk의 정의는 귀로 직접 들으며 스스로 세워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나의 경험상, 한 줄 설명과 같은 것들이 명쾌한 답이 되어줄 순 없다. 앞서 말했듯, 하나의 장르 안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개성들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FUNK[훵크]

1. 나잠 수 <사이버가수 아담>

<사이버가수 아담> 발매 자료를 훑으며 추억에 잠기신 (불혹의) 팀장님으로부터 아주 흥미로운 얘기를 듣게 되었다. <사이버가수 아담>의 주인공인 아담은 정말 정규 앨범을 2장이나 낸 발라드 가수였다는 점. 20세기의 그래픽 기술로 탄생한 것 치고는 꽤 잘빠진 이 가수에게는 (어딘가 의도적으로 자아낸 듯한) 고도의 병맛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나름 아티스트 정보라고 알려진 내용이나 그가 결국 활동을 접게 된 슬픈 이유들조차 말 그대로 ‘실소를 금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물론, 이런 아담을 소재로 노래한 나잠 수는 두말할 것도 없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사이버가수로서의 존재론적 슬픔을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의 사운드에 담은 <사이버가수 아담>. 중독성 강한 그루비한 사운드는 둘째치고, 이 싱글이 불러일으키는 오프더레코드 이야기들은 너무나 흥미롭다. 옛날 사람들은 좋았겠다. 그렇게나 재밌는 것들이 많았으니.

 

2.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니온 라이트>

위 나잠 수가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가장 최신 발매작, <니온 라이트>다. 사실 <니온 라이트>는 Soul에 더 가깝고, 오히려 직전 싱글들인 <웨ㅔㅔㅔㅔ>나 <SQ>, <탱탱볼>이야말로 진짜 펑키한 앨범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온 라이트>를 고른 이유는, 현재 개별적으로 활동중인 멤버 나잠 수와 김간지X하헌진이 각각 술탄 오브 더 디스코와는 또다른 색깔의 음악을 풀어내고 있어, 큰 그림으로는 더욱 다양한 장르를 포용할 수 있게 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모습을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퍼포먼스 위주의 음악과는 다른, 조금은 더 점잖아진(?) 이 그루브 속엔 분명 그 내공이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들의 작품들과 함께 비교해 들어보길 권한다. 이들의 음악이 어떤 변화를 거쳐가고 있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꽤나 흥미롭다. 참,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뮤직비디오는 꼭 챙겨보기를 추천한다. 가관, 아니, 장관이다.

 

3. 스쿠비 두 (Scoobie Do) <Away>

스쿠비 두는 일본의 4인조 훵크/록 밴드로, 결성 당시 60년대 흑인 R&B 음악들을 커버하며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훵크와 록 모두를 그들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는 노장 밴드이다. Funk와 Rock을 그들만의 스타일로 구현해내는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Funk의 흥과 Rock의 역동성 모두를 느낄 수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생기는 입지와 안정감에 안주하지 않고, 결성된 지 10년이 조금 넘어서는 독자적인 레이블을 설립하기에 이른 이들. 이에 멈추지 않고 한국이라는 새로운 곳에서의 모험을 풀어내며 위 술탄 오브 더 디스코와의 공연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쩌다보니 FUNK의 세 앨범은 모두 붕가붕가레코드의 발매작으로 이루어졌는데, 추후 레이블 특선 편에서 더 흥미로운 앨범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PUNK[펑크]

1. 신해남과 환자들 <Like it!>

런웨이와 매거진 화보에서 주목받던 신해남이 펑크록 밴드 페이션츠(PATiENTS)와 뭉쳐 한 밴드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신해남이 모델로서 더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난데없는 직업 전향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녀에겐 이전에 밴드 다이브스로 무대에 오르던 이력이 있다. 두 달 전, 신해남과 환자들의 첫 데뷔싱글 <야간비행>을 발매할 때만 해도 펑크 락 범주에서는 비교적 차분한 전개와 서정적인 가사가 나왔고, 페이션츠의 음악에서 들리던 재기발랄한 건반이 곡을 전반적으로 감싸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두 번째 싱글 <Like it!>에서 이토록 상큼한 펑크를 보여줄 줄이야! 당돌한 가사와 시원한 사운드가 주는 청량감은 신해남과 환자들의 또다른 정체성인 듯 했다. 펑크의 장르 안에서도 엄연히 다른 두 스타일을 보여준 신해남과 환자들. 이 차이를 보는 맛이 쏠쏠하다.

 

2. The Brigade <Boys On The Street>

‘국내 펑크 락을 추천해주세요’라고 인터넷에 물어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레이지본과 포브라더스, 그리고 하이힐스 출신의 멤버들로 이루어진 The Brigade. 이들이 기반으로 한다는 Oi! Punk는 계급을 결속시키며 서브컬쳐의 부흥을 이끄는 목적으로 시작된 영국의 스트리트펑크인데, 그래서인지 어딘가 비장하면서도 의기투합하는 목소리가 유독 두드러지는 느낌이 강하다. 가장 먼저는 ‘너의 영광을 만방에 알려라’나 ‘지겹게 부대껴도 나아가자’ 등 집회나 스포츠 응원가 등에서나 들릴 법한 가사가 눈길을 끌고, ‘와다다다’하는 다른 펑크 계열과는 분명히 다르게 안정적인 호흡이 보이는 앨범이다.

 

3. DTSQ <The Brain Song>

사실 DTSQ는 개러지록을 기반으로 한 음악을 하지만, 펑크의 무드가 살아있어 꼭 소개하고 싶었다. 다른 펑크 음악의 느낌과 비교해보며 들어보길 추천한다. DTSQ의 발매작들은 가사가 모두 영어로 쓰였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그 중 <The Brain Song>은 나름의 서사(?)가 있다는 차이가 있다. ‘뇌’와의 신경전을 재치있게 풀어낸 가사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스틸페이스 레코드의 클럽에서 들을 수 있었던 ‘The Brain Song’의 라이브는 음원보다 훨씬 흥겨웠고, 대개 록음악이 그렇듯 노래가 끝나고는 한참 동안의 여운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Editor / 김은마로
eunmaro10@poclanos.com

[Next Big Thing] 아름다운 화염의 순간,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작년 한 해 그 어떤 팀보다도 뜨거운 활약을 해오며 오로지 신인으로서만 가질 수 있는 많은 타이틀들을 거머쥔 ‘안다영 밴드’는 자신들은 ‘사실 이럴 줄 몰랐다’라는 느릿한 말로 그 소감을 대신했다. 그들의 등장 이후를 헤아리게 될 새로운 결과물을 기다리던 팬들에겐 다소 갑작스러운 팀명의 변화에 대해서도 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단어들’이라는 여유도 부린다.
모두 90년생으로 구성된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 표현해내는 젊음의 정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뜨겁고 빠른, 그래서 곧 터져버릴 것 같은 무언가와는 어쩐지 달라 보인다. 본인들의 그 ‘느릿함’에 어쿠스틱한 무드를 얹어 이번 EP에 담아냈다.
사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의 공연을 볼 때면 매번 저들과 다른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몸을 털어 대거나 발을 구르는 동작들을 멀리서 관망하는 나 또한 여기를 부유하는 무언가처럼 느껴질 때면, 이런 게 차라리 이들이 말하는 ‘느린 춤’이 아닐까 하는 상상과 함께.
이들은 이 앨범을 한 권의 책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마치 마침표가 없는 한 권의 단편집 같은 이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을 소개한다.

 

 

두은정 : KT&G 밴드 디스커버리, K-루키즈, EBS 올해의 헬로루키까지 그동안 신인 팀을 경합하는 밴드 경연에서 특히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어요.
안다영 : 일단 너무 감사하죠. 모든 걸 할 때마다 될 거라고 생각하고 하는 경우가 없거든요. 결과에서 예상치 못하게 좋은 일들이 생기게 돼서 사실은 뭔가 인정받는 느낌이 드는데, 이건 실력에 대한 인정보다도 그간의 노고를 인정받는 느낌이에요. 경연을 준비하는 과정 외에도 곡에 녹여진 저의 개인적인 아픔이나 슬픔들도 인정받는 것 같아 그런 점에서 기분이 좋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김하람 :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원우형까지 소속되던 순간을 밴드의 완성이라고 치고 얘기를 하자면 사실 우리는 팀을 시작하자마자 ‘5월의 헬로루키’를 나가게 됐어요. 그게 지금의 팀으로써 고작 두 번째 무대였고요. 원우형이 새로 들어오는 건 우리의 내부적인 변화지 공연을 하는 셋 자체가 크게 바뀌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고 어쨌든 공연은 계속할 테니 시작하는 마음으로 뭐든지 하자고 생각했죠. 그 즈음엔 새로운 자극들이 필요했었고 뭔가를 계속 만들어내고 완성도 있게 깎아내기 위한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그런 경연들이 있다고 했을 때 무조건 나가자, 다 한 번 넣어보자 했었죠. 수상을 하자는 목표가 아닌 지금 조합의 우리끼리 더 단단해지기 위해서요. 만남의 빈도도 잦아지고 조금 더 부딪혀 보기도 했고 분명 도움이 된 부분이 있다고 느껴요.

 

 

두은정 : 밴드 구성으로는 처음 발표하는 앨범이에요. 팀이 꾸려진 후 처음으로 함께 만들게 되는 이번 앨범의 작업 과정에서 구성원으로써 가지는 마음가짐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안다영 : 제가 솔로에서 밴드를 하기로 마음먹을 때 결정적인 계기는 ‘더 재밌어서’였어요. 솔로 활동을 하면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물리적인 시간들이 있잖아요. 지금도 물론 외로운 순간은 존재하지만 나와 타인, 또 다른 타인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경우의 수가 너무 재밌었어요. 제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걸 가진 누군가와의 접점에서 생겨나는 것들이요.
김하람 : 저는 이 팀의 기타리스트로써 매번 사운드적인 공간감을 채우는 임무가 컸던 것 같아요. 물론 이번 앨범에서도 그 역할이 돌아왔죠. 항상 라이브 할 때나 합주를 할 때 자연스럽게 맡게 되는 역할이기도 했고요. 특히 이번 앨범을 구상하면서는 공간감을 채우면서도 어쿠스틱함을 표현해 내고자 했어요. 똑같은 걸 하더라도 모든 곡에서 그것만큼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두은정 : 팀 내에 또 다른 기타리스트로써 원우 씨의 생각도 궁금하네요.
강원우 : 그간 ‘안다영 밴드’로 선보인 모든 곡들은 다영이가 만든 곡들이잖아요. 사실 저는 제가 잘 모르는 장르라는 생각을 했어요. 평소에 제가 잘 듣던 음악 스타일이 아니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이번 음반을 만드는 입장에서 저는 배우는 입장이었어요. 제가 참여한다기보다는 이런 음악에서는 이런 게 어울리는구나 느끼며 배우는 과정이요. 일단 애들하고 하는 자체가 너무 재미있으니까, 그게 사실 제가 이번 음반을 참여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점이었던 것 같아요.
하람이한테 조언을 구해서 라이브 때랑은 다르게 시도해본 부분들도 있어요. 실제로 ‘And so it goes’라는 곡 같은 경우는 라이브를 할 때는 기타의 암 부분으로 떠는 느낌을 줬었거든요. 그 느낌이 음원에서는 거슬리더라고요. 다른 기회에는 좀 더 좋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솔직히 저는 제가 기타리스트라는 생각을 잘 안 해요. 프로듀서적인 모습을 가지고 싶어서 매번 기타만 쳐야 한다는 압박감 자체가 없어요. 기타리스트로서 제가 생각하는 멋있는 아티스트는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 기타 치는데 이것저것 다 잘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무척 동경해 왔었고 저도 그런 시도를 해보고 싶었는데, 사실 이번 음반에서는 그렇게 못 했어요.(웃음) 음반을 준비하는 기간의 라이브 때면 몰래 제가 좋아하는 그런 요소들을 슬쩍 넣어 보고 그런 식으로 저의 욕구를 해소했죠.(일동 웃음)
김하람 : 사실 처음 원우형이 들어올 때, 물론 기타 멤버가 한 명 더 있다면 좋겠지만 신시사이저도 다룰 수 있고 다른 효과를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다영 누나가 강원우라는 사람을 딱 데리고 온 거거든요.
강원우 : 마침 기억나는 게 있는 게 제가 들어오고 처음인가 두 번째 합주에 건석이가 도중에 일이 생겨 먼저 가야하는 상황에서 남은 제가 신스로 베이스를 연주했었어요.
김하람 : 추구하는 바도 있겠지만 실제로도 여러 가지 역할을 많이 해요. 라이브 때도 기타 대신 mpc를 연주한다던지.
안다영 : 사실 그래서 재밌는 것 같아요. 실제로 라이브 할 때 기타를 칠 때가 더 많지만 이 사람이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성향이나 기타 플레이 같은 것들이 어떤 면에서 사람이 그대로 나타나거든요. 연주에서. 나는 무조건 리듬 파트이기 때문에 리듬 악기만 쳐야 한다. 나는 연주자이기 때문에 코러스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 있겠죠. 그렇지만 제가 사실 원우 오빠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뭔가를 버려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거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두은정 : 싱어송라이터 안다영으로 불렀던 예전 ep의 곡들을 들어보면 지금과 목소리, 발성까지 완전히 달라진 느낌이에요.
안다영 : 제 경우는 음원과 라이브를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라이브에서는 폭발적으로 뿜어내거나 시청각적으로 시너지를 줄 수 있는 것들을 mp3 파일로 박제시키는 과정에서 우리가 좀 더 가져가야 하는 부분과 덜어내야 할 부분들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점에서 노래의 경우는 좀 더 힘을 빼고 부르되 그것을 통해 본능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예쁘게 부르려고 하지 않는다거나 소리를 내지르는 것도 있고요. 특히 가사가 있는 경우가 힘을 많이 빼고 부르자는 생각을 했죠.
보컬에서 발성의 변화는 일정 부분은 어떤 시도를 통해서 바뀐 것도 있었고, 노래를 많이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톤의 변화가 생긴 것도 있어요. EP [Waves, Smoke, River] 발표 당시에는 보컬은 보컬리스트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그것에 초점을 맞춰서 멜로디를 좀 더 살려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졌어요. 그래서 보컬을 악기 자체로 생각을 해서 기술적으로 잘 부르려고 하기보다 가사가 없이 여음을 부른다던지 하는 종류의 시도를 했죠.

 

 

두은정 : 싱어송라이터 안다영에서 안다영 밴드로, 다시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으로 눈에 보이는 큰 변화들이 계속돼 왔어요. 밴드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름을 바꾸는 걸 감행하기까지,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안다영 : 일단 안다영 밴드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건 팀이 꾸려지는 과정에서 참여한 여러 경연들에서 예상치 못한 좋은 성과가 있었고, 공공연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이 있는 그런 곳에서 ‘안다영’이라는 이름을 계속 쓰는 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성격이 다분히 느껴진다고 생각한 거죠. 때문에 안다영 밴드라는 이름으로 어쩔 수 없이 활동할 수밖에 없었어요. 어쨌든 밴드를 하기로 결정을 했으니까 고민을 통해서 얻어진 게 아닌 이름 말고 이제는 잘 갖추어진 옷을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은정 : 새로운 이름은 문장이네요.
안다영 : ‘시규어로스’의 앨범 이름에서 어순을 바꿔서 따왔어요. 회의를 하던 중 잔향이라는 단어를 넣자, 이름이 문장이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들이 있었는데 누군가 저 앨범 이름을 던진 거죠. 어순을 그대로 가져가자니 저희가 지향하는 바와는 다른 점이 있었고 적절하게 어순을 바꾼 거죠.
강원우 : 이건 어떻게 보면 제 의견이 반영된 거기도 해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이름으로 쓰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었어요.
두은정 : 사실 안다영 밴드는 그동안 포스트록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에서 ‘시규어로스’가 연상되는 팀으로 언급되기도 했었고요. 어떻게 보면 그런 이야기들을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했을 것 같은데.
안다영 : 물론 그 팀은 너무 좋지만 우리는 ‘시규어로스 처럼 될 거예요’라는 말은 하지 않아요. 듣는 사람들에 의해서 같은 카테고리로 구분되어 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굵직한 큰 틀은 비슷할지라도 그 안에 섬세한 것들은 분명 다른 것들이 있으니까요. 양날의 검 같은 말인 것 같아요.

 

 

두은정 : 밴드 구성으로는 처음 발표하는 앨범이예요. 팀이 꾸려진 후 처음 만드는 이번 앨범의 작업에서 팀으로써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박성훈 : 저는 예전에 다영이가 솔로로 활동할 때부터 세션 드러머로 자주 참여했었어요. 팀과 세션은 다르니까, 그때는 관객들도 아마 공연에서 그런 관계성을 느꼈을 거예요. 그렇지만 밴드로 활동할 때는 개개인의 색깔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인지 공연을 보러 와 주셨던 지인들에게 들었던 얘기가 드럼 연주가 좀 더 돋보이는 부분이 없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어요. 사실 전 밴드의 일원이 됐어도 그런 욕심은 없거든요. 사실 밴드 사운드를 맞추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어느 정도 타협도 해야 하고요. 드럼이라는 악기가 리듬을 치면서 튀는 역할도 분명할 수 있겠지만 저는 서포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조용히 뒤에서 연주를 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기타 사운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드럼이 합쳐 도움을 준다던지 하는 적극적인 것들이요. 이번 앨범에서도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이건석 : 저도 베이시스트로써 성훈이랑 같은 맥락의 생각인데 사실 저도 밴드 내에서 튀는 부분이 없어요. 노래가 더 좋게 들릴 수 있도록 얹는다는 느낌을 주로 살리려고 했요. 이번 앨범에 수록된 ‘푸른소매’라는 곡을 예로 들자면 패드 계열의 라인을 치며 전반적으로 받쳐주는 역할을 맡고 뒤에서 콘트라베이스가 나올 때 받쳐주는 역할. 근데 사실 베이스라는 게 그래요. 베이스는 원래 그런 역할이에요.(일동 웃음) 제가 좋아하는 ‘파라솔’처럼 보컬이랑 베이스를 겸하는 경우처럼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밴드에서의 역할은 도움을 주는 거예요.

 

 

두은정 : 첫 앨범 발매를 앞둔 ‘시작’하는 팀으로서 각자 생각하는 ‘시작’에 대한 생각은.
이건석 : 기대 반 걱정 반이에요. 이전에 안다영 밴드로 활동했을 때 쌓아왔던 것들을 두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다짐이 컸지만 아무래도 못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을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 커요. 그간 함께 활동하며 쌓아왔던 것들이 다 바스러질 것 같기도 하고.
김하람 : 이미 경험해본 것들을 다시 경험해야 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같은 거일 거예요. 저는 우리가 예전에 이런 사람들이었으니 알아달라는 것보다도, 새롭지만 새로움으로써 추구할 수 있는 이 나름의 것들로 더 열심히 활동해서 ‘얘네 좋아서 들어봤더니 보컬이 안다영이었고, 알고 보니 안다영 밴드로 활동하던 걔네였구나’가 됐으면 참 좋겠어요.

 

 

두은정 :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은 어떤 팀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강원우 :‘추억’이 됐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우리 밴드 음악을 들으면서 외로움을 달랜다던지, 내가 이런 음악을 들었었는데 하는 정도로 기억에만 남아도 기쁠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잔향이 됐으면 좋겠어요.
박성훈 : 제가 옛날 영어공부할 때 보던 교육 비디오가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제목도 기억나고 가사까지도 다 기억이 나거든요. 그런 무의식처럼 사람들에게 남았으면 좋겠어요.
김하람 : 다시 꺼내서 들었을 때 그때가 생각난다거나 지금처럼 다시 겨울이 돌아왔을 때 다시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떠오를 만한, 그런 음악을 하는 팀이요.

 

 

[Deep Inside] 마녀. 아름답고 매혹적인, 그러나 치명적인.

Deep Inside #1 CIFIKA, A Space Witch Rises


마녀.
아름답고 매혹적인, 그러나 치명적인.
그 치명적인 매력으로 나를 사로잡아 주문과 마술로 내 영혼을 앗아가는 마녀.

정말 드물게 <마술>, 혹은 <주술>의 이미지를 풍기는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여성일 경우, 나는 종종 ‘아, 꼭 마녀 같아’라는 생각을 한다. 아주 오래 전, 네오-소울 아티스트인 ‘에리카 바두(Erykah Badu)’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그때 난생 처음으로 ‘마녀’라는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 같다.

‘씨피카(CIFIKA)’ 역시 그랬다.
그녀는 돌연 나타났다. 마치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가상의 세계(인터넷)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가상의 악기로 창조한 가상의 소리 위에서 느슨한 춤사위를 펼치는 몽롱한 목소리는 정말 모처럼 ‘마녀’의 이미지를 연상케 했다.

‘씨피카(CIFIKA)’는 한국의 전자음악가다.

CIFIKA. 뭔가 의미가 있을 듯하지만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그저 이름이다. 미국에서 오랜 시간을 지낸 그녀가 Pacifika Avenue(퍼시피카 애비뉴)를 지나가다 문득 ‘퍼시피카’에서 ‘퍼’를 빼보니 그 어감이 마음에 들어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현재는 서울을 거점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그녀는 2015년, 온라인 음악 플랫폼인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처음 등장했다. ‘Cali Vibe’, ‘Race’, ‘Ed Rusch’ 등 인상적인 소품들을 연이어 공개했고 한국 전자음악 씬의 라이징 스타 ‘임레이(Imlay)’와 작업한 싱글 ‘Ritual’, 역시 한국의 비트뮤직 프로듀서인 ‘그레이(GRAYE)’와 작업한 미니멀한 사운드의 댄스 트랙 ‘D.A’ 등을 연이어 공개하면서 공격적이다 싶을 정도의 왕성한 창작욕을 드러냈다. 이후 2016년 6월, 현재의 레이블인 ‘써드 컬쳐 키즈(Third Culture Kids)’를 통해 첫 싱글 <OOZOO>를 정식으로 발매했다.

전자음악 씬에서 흔치 않게 비트 메이킹과 보컬을 동시에 하는 싱어송라이터 아티스트다. 그녀의 정체성이 비트를 만드는 보컬리스트인지, 노래를 하는 비트메이커인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그녀에게 이 두 가지는 별개의 것이 아닌, 하나로 어우러져 ‘씨피카의 노래’로 귀결되는 매우 동등한 비중의, 그리고 상호적인(interactive) 작업이 아닐까-라고 짐작하게 되었다.

사운드 만큼이나 매력적인 가사를 쓴다.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하는 그녀의 가사는 단순한 듯하지만 어떤 힘이 있다. 직설적이면서 은유적이다. 뚜렷한 이미지가 있는 듯하면서 동시에 추상적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말 표현들이 이따금씩 날카롭게 번득이며 뇌리를 직격하는데 이는 그녀의 음악이 제공하는 일종의 쾌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파도처럼 휩쓸리는 스타일이라 너처럼 날 이끌어줄 누군가가 필요해”

<CIFIKA / Cali Vibe>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그녀는 ‘뭔가 있는’ 아티스트라는 거다.

익히 알려졌듯 영국 유명 잡지 ‘Dazed(데이즈드)’가 씨피카의 곡을 비(非)아이돌로는 유일하게 ‘이달의 K-Pop’으로 꼽았다는 사실, 영국의 영향력 있는 음악 채널 ‘Eton Messy(에톤메시)’가 씨피카의 곡을 국내 뮤지션 최초로 소개했다는 사실, 그리고 최근 내한한 서브트랙트(SBTRKT), 블러드오렌지(Blood Orange)의 무대 오프너로 그녀가 연이어 등장했다는 사실까지.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지 1년이 조금 넘은 이 아티스트에게 이렇게까지 쏟아지는 관심들엔 이유가 있을 터. 해답을 찾고자 한다면 이제 막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의 첫 미니앨범 <INTELLIGENTSIA>가 하나의 단초가 될 것이다.

총 여섯 곡을 수록한 <INTELLIGENTIA>는 하나의 일관된 컨셉트 아래 기승전결의 구조를 지녔다기보다는 그녀가 작업한 각각의 노래들을 엮은 모은 일종의 ‘소품집’이다. 그녀 스스로도 이 앨범에 대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가시적인 물음과 비가시적인 물음들을 장르나 컨셉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푼 앨범이자, 나의 첫 번째 음악모음집”이자 “음악가로서의 새로운 시작이자 다음 앨범을 위한 연습의 기록”이라 언급하고 있다. UK개러지(UK Garage), 하우스, 퓨쳐-베이스(Future Bass), PBR&B 등을 넘나들며 장르에 구애 받지 않는 각각의 트랙들은 저마다 확연하게 다른 텍스쳐에도 불구, 그녀 특유의 부유하는 듯한 보컬과 몽환적인 무드가 도드라지는 사운드 하에서 어떤 일관성을 갖는다.

미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과거에서 미래로의 여행’으로 비유하며 그 여정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노래하는 첫 곡 ‘AFTER USA’는 UK개러지(UK Garage) 성향의 트랙으로 신비감을 조성하는 인트로의 신쓰, 미니멀한 사운드와 리듬의 개러지, 복잡하게 중첩되는 전자음, 역시 다양한 형태로 레이어드되는 보컬 등이 다양한 형태로 변주와 충돌을 거듭하며  청각을 자극, 보편적 대중음악을 감상할 때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청취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어지는 ‘I’M AWAKE’는 앞서의 곡보다 보다 뚜렷한 멜로디와 리듬을 지닌, 작품 내에서 가장 팝적인 성향을 지닌 곡이다. 귀에 잘 들어오는 매력적인 멜로디, 심플하지만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쾌한 하우스 리듬, 몇 겹을 포개 신비로운 무드를 연출하는 보컬이 어우러지는 이 곡은 “거친 편견들에 둘러싸여 멋진 품격들을 우린 놓쳐”라 말하며 ‘허상 밖에 있는 진정한 나’를 누군가가 발견해주길 바라고 있다. 팝의 DNA가 선명해 설령 전자음악에 친숙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캐치한 멜로디와 흥겨운 리듬을 두루 갖춘 잘 만든 댄스 음악이다.

일렉트로닉, 트립합, PBR&B 사이를 넘나드는 트랙 ‘My Ego’는 탐미적, 관능적인 분위기가 일품으로 앨범의 메인 타이틀곡으로 낙점된 곡이기도 하다. 본작의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 상당수 트랙의 편곡을 담당한 비트메이커 ‘무드슐라(Mood Schula)’가 함께 프로듀싱한 이 트랙은 흡사 ‘FKA Twigs를 연상시키는, 뇌쇄적이며 초현실적인 섹시함으로 가득하다. 마치 ‘몽마(Succubus)’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요염한 주술적 매력, 내가 씨피카에게서 느낀 ‘마녀’의 이미지는 아마도 이 노래에서 비롯된 것 같다. 트랙 만큼이나 강렬한 비주얼을 선사하는 뮤직비디오도 반드시 감상해보길 권한다.

 

 

혼란에 빠진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은 곡인 ‘Light & Vision’은 테크하우스(Tech House)의 형식과 무드를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앨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차갑고 기계적인 사운드로 숨가쁘게 내달리는 이 곡은 리들리 스콧의 고전 디스토피아 영화인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음습함, 그리고 불안함으로 가득하다. ‘공각기동대’, ‘아키라'(!!!!), ‘매트릭스’ 등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작품들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 분명 색다른 청취의 재미가 있을 것 같다.

‘OOH-AH-OOH’는 개인적으로 이 소품집의 하일라이트로 꼽는 곡으로 앨범에서 유일하게 ‘사랑’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서정적인 일렉트로닉 알앤비 트랙이다. 달콤하고, 다정하고, 또 섹시하다. 몽글몽글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코러스엔 환상적인 분위기가 가득하고 씨피카의 보컬은 특유의 부유감 가득한 목소리로 그 위를 느슨하게 떠돌며 무드를 고조시킨다. 이런 그녀와는 정 반대의 결로, 보다 선명하고 예쁜 음색으로 노래하는 미국 출신의 보컬리스트 ‘두브(DUVV)’의 달콤한 보컬, 그리고 씨피카의 레이블 동료인 래퍼 ‘제이비토(jayvito)’의 멜로딕한 랩의 가세는 이 노래의 알앤비 풍미를 한층 짙게 하는 적절한 스파이스가 되고 있다. ‘지구 밖, 그러니까 달 근처 즈음에서 무중력 상태의 우주를 유영하며 지구를 바라본다면 이런 느낌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곡이다.

“내가 널 쳐다보면 널 / 깊이 날 보지 않아 넌 / 왜, 왜 보지 않니 넌 왜, 왜 보지 않니 넌”

<CIFIKA / Intelligentsia>

앨범과 동명의, 그리고 앨범의 마지막 악곡인 ‘Intelligentsia’는 계몽적인 메시지를 담은 UK개러지 스타일의 감각적인 댄스 넘버다.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 미니멀한 사운드 속에서 씨피카의 노랫말은 ‘넌 어째서 보려 하지 않지?’라는 물음을 던지며 편협함에 갇힌 사람들의 인지확장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본인의 음악이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열게 될 것이라는 의지의 피력.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젊고 재능 넘치는 음악가가 갓 세상 밖에 내놓은 처녀작의 마침표로 일말의 손색이 없다.

 

마녀.
아름답고 매혹적인, 그러나 치명적인.
그 치명적인 매력으로 나를 사로잡아 주문과 마술로 내 영혼을 앗아가는 마녀.
마녀는 이제 당신의 꿈 속에 나타나 그녀의 주문으로 당신의 눈과 귀와 마음을 열려고 한다.
<INTELLIGENTSIA>는 그 매직 스펠의 단지 첫 구절일 뿐이다.

 

[PICK] 오늘도 젊은 우리는, 어리고 서툰 만큼 거칠게 빛난다

어리고 강력한, 그대가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93/94년생 신예 뮤지션

 

*오늘도 젊은 우리는, 어리고 서툰 만큼 거칠게 빛난다.

아는 것보다 알고 싶은 것이 많은 나는 유통사 생활 2년차의 94년생 막내. 故 유재하, 故 김현식과는 같은 공기를 마셔본 적도 없고, 전자양이 ‘아스피린 소년’으로 무대에 오르고 넬(NELL)이 1집 [Reflection Of]로 데뷔를 알리던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한국 대중음악씬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뮤지션들의 등장을 매번 놓쳐 아쉬운데,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살아온 스물 두 해 남짓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내고 나니 정서적으로 이만한 국제 미아도 없다.

카세트테이프, CD를 거쳐 디지털 음원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다시금 바이닐에 기웃거리는 우리.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란 젊은 뮤지션들의 앨범에 묻어나는 연륜의 맛은 덜할 수 있어도, 과감한 시도와 변화의 흔적은 단연 독보적이다. 좋은 앨범은 추천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에 욕심이 앞서지만, 10여 년에 걸친 업계(유통사) 경력의 대선배들의 어마어마한 데이터베이스, 넓은 식견과 연륜의 깊이를 보면 아직도 마냥 압도되고 만다. 팔불출 정신을 기반으로, 그저 ‘좋다’는 것 이상의 디테일을 앞세우지 못했던 나에게 또래 뮤지션들의 앨범은 나로 하여금 더 좋은 표현, 더 많은 공부를 꿈꾸게 하는 신선한 자극제이다.

 

1. 신세하 <Timeline>

Egyptian Lover의 리믹스 트랙이 수록된 신세하의 가장 최근 발매작 <Timeline>은 그간 쌓아온 그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싱글이다. 지난 여름, 브루클린에 갔다가 레코드샵 사장님들과 공원에 널브러져있던 사람들로부터 신세하 앨범들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동영상을 찍었었다. ‘라운지 음악’, ‘도도한 빨강이 떠오르는 음악’, ’80년대 훵크(Funk)의 현대판’ 등 각양각색의 코멘트가 나왔다. 그의 앨범 커버 한 장을 가지고도 아날로그부터 디지털 세대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현재 음악 시장에 대한 이야기까지 대화가 이어졌고, 고작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런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수많은 ‘wow’가 쏟아졌다. 과거 캐스퍼 인터뷰를 통해 고교시절 래퍼 김아일과 함께 Prince, Parliament, Sly & The Family Stone와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한 신세하. 그의 뮤직비디오 한 편만 보아도 그가 받았다는 영향은 현재 그의 캐릭터와 스타일링에도 뚜렷이 드러나는데, <Timeline>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2. 오존(O3ohn) <[O]>

오존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신세하의 밴드 크루 <Xin Seha And the Town>의 기타리스트로써의 모습이다. 자연스레 오존의 음악도 올드스쿨, 훵크(Funk) 혹은 뉴웨이브 사운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 걸! 그가 듣고 자랐다는 언니네 이발관이나 한희정, John Mayer 등 국내외 여러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 못지 않은 따뜻함을 가진 데뷔작을 내놓았다. 포근하게 몽롱한 사운드와 거칠지만 정제된 보컬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O]. [O]를 듣게 된다면 그의 친절한 앨범 소개글 또한 놓치지 말 것!

 

3. 위수 <내일도 또 내일도>

그루비한 리듬에 맞춰 까끌한 음색으로 한껏 멋을 내는 보이스가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행과 함께 좋은 보컬의 새 기준으로 통하는 요즘이다. 화려한 애드리브와 폭발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성량에 박수를 치는 걸 보면 3분짜리 노래에도 각본이 확실한 드라마가 필수 요소가 된 것만 같다. 이 획일된 유행이 참 못마땅했는데, 마침 옥상달빛의 청아함과 요조의 차분함이 떠오르는 앳되고 맑은 목소리의 위수를 알게 되었다. 조곤조곤 말을 건네듯, 미세한 그 떨림들까지도 고스란히 담긴 앨범 <내일도 또 내일도>. 축가를 모티브로 써내려갔다는 이 노래를 듣고 있자면 결혼을 앞둔 설렘이 정말 나에게까지 울리는 기분이 든다. 어째서 남녀 보컬이 주고받는 듀엣보다 더 달콤한 건지, 더 황홀한 건지. 물론, 그 느낌 그대로 드러나는 커버도 한 몫 하지만 말이다. 단 한 곡의 데뷔 싱글이었지만, 그렇게 나는 앞으로 있을 위수의 발매작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4. 예서 <Bud>

보물같은 신인 뮤지션들의 선공개 트랙이 올라오는 네이버 뮤지션리그에서 얼마 전 시끌시끌했던 예서의 화제의 신보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퓨쳐(Future) 계열의 씬(scene)이 하루 빨리 몸집을 키웠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에 이처럼 젊은 뮤지션들이 조금씩 등장하는 모습이 굉장히 반갑다. 나의 사운드클라우드나 유튜브 재생목록을 훑고 있자면 지독히도 전자음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취향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이상하리만큼 국내 뮤지션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건 항상 의문이다. 일부러 국내 뮤지션들을 제하고 찾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현재 음악 시장의 규모에 비해 이쪽 동네의 인구수가 적어서가 아닐까 싶다. 만드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사운드클라우드에서는 이미 익히 알려진 그녀이기도 하고, 칠(Chill) 계열의 아티스트들 중 가장 좋아하던 Odesza의 에스닉한 사운드와 Giraffage의 청량함이 떠올라 내심 반가웠던 <Bud>. 요즘 떠오르는 퓨쳐 베이스 신예 IMLAY(예서와 동갑내기)의 리믹스 트랙은 또 어떤지! 듣는 내내 아득하고 싱그러운 분위기에 취할 수밖에 없는 싱글이다.

 

5. 이설아 <네가 곁에 있었으면 해>

노래를 듣기 전,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앨범 커버라든가, 아티스트의 프로필 사진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일시적인 선입견을 바탕으로 막연하게나마 머릿속에 그려놓은 그림이 와장창 깨지던 것 중 하나가 <네가 곁에 있었으면 해>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앞서 싱글로 발매한 <별이 내리는 길목에서> 역시 커버만 보고 간질거리는 발라드를 예상했었다. K팝 스타나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는 듣지 못했던 우리의 소리(?)가 들리던 순간, 같은 이설아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나름의 파격적인 변화가 느껴지던 앨범. 월드뮤직이나 국악과 같은 장르 등에서나 나올 법한 오리엔탈 요소로 가득 찬 <네가 곁에 있었으면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선한 충격이 반가운 것은, 이런 담대한 변화가 어색하기는커녕, 앞으로 이설아가 보여줄 넓은 스펙트럼의 음악이 기대되기 때문이 아닐까.

 

6. 실리카겔 <실리카겔>

일 년 전 진짜 실리카겔 팩에 CD를 끼워 피지컬로 발매한 EP를 보고 극강의 신선함을 느꼈던 나는 앨범을 기다리며 이 음악을 정의하는 방법에 대해 열심히 고민했다. 우리나라에서 슈게이징과 포스트록은 다른 장르에 비해 비교적 생소한 축에 드는데, 그와 동시에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음악들을 쉽고 간결하게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여러 장르나 스타일 등을 인용하는 소개에 대한 욕심(혹은 능력). 하지만 <실리카겔>의 발매 자료를 처음 받던 날, 그 욕심은 단번에 무너졌다. 점심을 먹고 트랙 하나하나를 들어보며 서서히 체하고 있던 것을 기억한다. 앉은 것도 누운 것도 아닌 자세로 의자에 몸을 ‘얹어’ 한 시간 가량 나의 영과 혼을 우주에 맡긴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어땠어?’라는 물음에 그저 ‘좋은데요..’라고 답하던 나 자신이 참 답답했다. 지금도 그렇듯, 간결하고 멋지게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던 나의 페이스북에는 결국 (비참하게도) ‘<실리카겔>을 듣고, 누워서 우주로 가버렸다’는 류의 궁핍한 감탄이 올라갔다. 하지만 이런 멋진 앨범들이 꾸준히 나오는 한, 나의 표현도 조금씩 성장할 것을 믿는다. 뮤지션들이 주는 ‘해석’이라는 의도치 않은 숙제는 매번 어렵지만, 또 매번 재밌다는 것을 알기에.

 

[Next Big Thing] Brave new sound! 실리카겔

[INTERVIEW] | Brave new sound! 소리와 영상의 신선한 조합, 밴드 실리카겔과의 인터뷰

네오 사이키델릭, 슈게이징, 드립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신선한 사운드로 매 공연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 밴드 ‘실리카겔’. 연주하는 다섯 명의 멤버와 영상을 담당하는 세 명의 정식 VJ 멤버가 함께 팀을 꾸려나가는 이들은 어찌 보면 밴드로서는 다소 생소한 조합. 그래서였을까.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성기완은 아직 정식 데뷔 앨범도 내지 않았던 시기의 이 밴드에게 ‘Brave new sound!’라는 표현을 썼다. 새로운 형태의 퍼포먼스뿐 아니라 첫 EP부터 최근 발표한 디지털 싱글에 이르기까지 음악적으로도 실리카겔만의 확고한 색깔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데뷔 EP를 들어왔던 청자라면 이번 <두개의 달>은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그것은 지난 곡들과 ‘다름’이 아닌 ‘색다름’쪽에 가깝다. 공연에서 선보이는 셋 리스트의 곡까지 합친다면 ‘여덟 색깔의 다채로운 공감각 스펙트럼’이라는 그들의 모토처럼 한 가지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시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 곡의 시대적 배경은 다소 모호하지만 캐릭터는 확실하다. 곡 내레이션에 등장하는 ‘난쟁이’는 크로마키를 이용한 애니메이션 합성으로 작업된 이번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한다. 그것도 실리카겔 멤버들이 직접 그 캐릭터로 분하여. 그들은 앞서 언급한 모호한 시대적 배경 그러나 확실한 캐릭터, 세계관들이 뒤엉켜 곧 터져버릴 듯한 거대한 행성처럼 보인다. 6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힘차게 그러나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이 곡처럼 말이다.
‘달’을 스토리적 매개체로 삼았던 프랑스 작가 폴 오스터는 ‘태양은 과거고 지구는 현재며 달은 미래다’라는 문장을 본인의 글에서 중요한 키로 삼았는데, 이처럼 ‘달’이라는 존재는 여러 문학, 영화의 매체에서 미래적 대상으로 비유되며 일종의 시대나 시차를 표현하기 위해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실리카겔이 선보인 이번 신곡에서의 ‘달’이라는 단어도 이 맥락에 해당되는 음악적 키워드처럼 보인다. 아마 실리카겔은 이번 <두개의 달>로 본인들의 내일을 설명하고 있는 듯처럼 보인다. 마치 사람들이 이제까지 들어온 곡이 본인들의 전부가 아니라는 듯.
최근엔 “특정장르로 분류하기 힘든 개성 있는 스타일”, “수년 간 홍대에서 본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밴드다” 등의 호평 속에 EBS ‘스페이스 공감’의 2016년 ‘5월의 헬로루키’로 선정되었다. 신예 밴드로서 착실한 노선을 밟으면서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스타일 역시 영민하게 지켜가고 있는 실리카겔. 올해 디지털 싱글 <두개의 달> 발매 이후 더욱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여전히 성장 중인 이들은 사람들이 한 번도 닿아본 적없는 달의 뒷면을 곧 보여줄 것만 같다. 지금, 실리카겔과의 인터뷰.


 

‘too moons’

두은정 : <두개의 달>은 러닝타임이 6분이 넘는 대곡이에요. 실리카겔은 곡 작업에서 멤버들의 참여도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긴 곡을 멤버들끼리 어떤 식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완성해갔는지가 궁금하네요.

구경모 : 이 곡은 짜임새 있게 갔다기보다 기본 틀만 설정을 해놓고 멤버들 각자 성격, 특성에 따라 유기적으로 연주할 수 있게 곡을 ‘놔두었’어요. 곡 자체의 내러티브나 자연스러움을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을 했죠. <두개의 달>은 비교적 자연스러운,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곡이에요.

두은정 : 편곡 과정에서 멤버의 참여로 변화가 된 부분이 있다면.

구경모 : 드럼의 경우, 제가 드럼을 미리 찍어놓은 데모 음원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건 연주하기 불가능한 파트라는 판단을 내린 후 드러머인 건재가 자기가 알고 있는, 할 수 있는 선에서 합리적으로 베리에이션과 변화를 주었죠. 드럼은 그래서 전반적으로 숨이 들쭉날쭉해요. 반복적이라기보다는 좀 더 자유로워 보이는 파트 중에 하나 중에 하나예요.

두은정 : 그런 걸 의도한 건가요.

구경모 : 건재 같은 경우 평상시에도 드럼을 프리하고 재즈스럽게 연주하는 편이라 그 부분에 대해선 어느 정도 감안을 하고 일부러 작업을 했어요. 기타 파트는 두 기타리스트인 웅희와 민수가 도와줬는데, 민수가 주로 메인 테마를 연주하는 파트를 맡아줬어요. 맨 처음에는 다소 멍청해 보이고 엉뚱해 보이는 뉘앙스를 원했었는데 같이 녹음, 편곡을 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논조가 확실한 톤이 됐어요. 이를테면 좀 더 쭉쭉 뻗어나가는 느낌이랄까요. 각종 신스와 여러 가지 퍼커시브(percussive)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면에서는 신디사이저를 맡고 있는 한주가 많은 도움을 줬죠. 한주 같은 경우는 이 곡을 어떻게 더 재미있고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내줘서 지금 같은 다채로운 무드가 형성된 것 같아요.

서로가 상반되기 때문에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되는 모습을 유도하려고 ‘충돌’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경모)

두은정 : <두개의 달> 앨범 발매 소개 글을 보면 유난히 ‘충돌’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돼요.

구경모 :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에 있던 좋은 생각들이 모이고 융합이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그게 ‘새로운 것’이 더 좋은 것이 된다고 생각해요. 만약 ‘이 좋은 요소들이 서로 상반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단어죠. 서로가 상반되기 때문에 부딪히고 무언가 어긋나고 어딘가 부서지고 파괴되고 다시 합쳐지기도 하면서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되는, 그런 모습을 유도하려고 했어요.

두은정 : 이번에 레이블에 소속된 후 경모 씨 곡으로 첫 앨범을 내게 된 기분은 어떤가요.

구경모 : 제가 붕가붕가레코드 소속이었던 밴드 ‘아침’을 굉장히 좋아해요. 지금은 ‘아침’ 대신 밴드 ‘별양’을 하고 계신 권선욱 씨를 특히 좋아하고요. 한때 연정을 품었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로요. (김건재 : ‘아침’은 같이 자취할 때 매일 아침마다 들었었어요. 그래서 항상 ‘뭐냐, 그거 또 듣냐(웃음)’라고 하곤 했죠.) 그래서 좋아하던 팀이 소속되어있던 붕가붕가레코드에 들어가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감격스러운데 이곳에서 내게 되는 첫 디지털 싱글이 ‘구경모’의 곡이라는 게 감격스럽더라고요.

두은정 : <두개의 달> 발매는 여러모로 기념비적이네요.

김한주 : 우선 경모 형이 작곡한 이 곡이 실리카겔을 대표할 수 있는 구실을 톡톡히 하게 됐죠. 저는 그 사실이 참 좋아요. 곡과 더불어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내보이는 자체가 저희에게는 처음이니까. 여러모로 <두개의 달>을 발표하면서 팀 역사에 ‘처음’이 된 이슈가 많아요.

김건재 : 제가 실리카겔로서 실리카겔을 좋아하는 이유가 ‘긴 음악’에 있었는데 요즘 이 친구들이 자꾸 짧게 짧게, 있는 것마저도 자꾸 토막내서 내더라고요. 한주가 보통 만드는 7분, 8분짜리 곡은 아니지만 간만에 6분짜리 대곡이 나왔네요. 3분이면 음악을 뭘 들죠?(웃음) 사실 이 발언은 스스로를 까는 발언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제가 3분대의 곡을 만들었기 때문이죠. 아무튼 결론적으로 러닝타임이 긴 음악이 발표되어서 좋고, 개개인이 자유롭고 즐겁게 놀면서 연주할 수 있는 분위기의 곡이라 더 좋습니다.

최웅희 : 제가 옛날부터 ‘내가 음원을 낸다면’을 가정하고 생각한 게 있어요. 뮤지션에게 첫 음원이이라는 게..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첫 키스를 아무나 하고 싶다기 보다 진짜 의미 있는 사람과 하고 싶다는 생각.(웃음) 그런 마음 덕에  제 역사에 있어서의 첫 음원은 꼭 애착 있는 사람들과 애정 있는 곡으로 하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로 그게 그대로 이루어져서 너무 좋아요. 내 인생 첫 음원을 만들었는데 그게 ‘실리카겔’이라니.

이건 음악을 혼자만 하거나 친구들끼리 할 때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에요. (웅희)

두은정 : 데뷔 EP 발매 이후 반 년 만에 소속사가 생긴 거죠. 그간 인디신의 걸출한 뮤지션들을 배출해온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이하 붕가붕가)와 함께 하게 되었어요.

김건재 : 원래 합주실 벽에 기대 있거나 하는데 이제는 합주하다 나와서 널브러져 있을 소파가 생겨 참 좋습니다.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타닥타닥’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니까 ‘그래, 이제 나도 열심히 업무를 시작해야지!’하는 생각도 들고요. 사실 제가 밖에 나오는 자체를 생각보다 안 좋아해서 나가더라도 혼자 돌아다니는 편이거든요. 소속사가 생기니 그 안에서 회사 식구들과 일종의 동질감, 연대의식이 느껴져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실리카겔 외에도 다른 밴드의 세션을 겸하고 있는데 세션 활동을 하러 간 공연장에서 붕가붕가 소속의 뮤지션을 만나는 경우가 있어요.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면 정말로 같이 한 솥밥 먹는 식구 느낌이 드는 기분이 들죠. 무엇보다 저는 게임 같은 걸 해도 길드 하나를 들어가면 오래 버티는 습관이 있는데, 길드가 사라지거나 도산하지 않는 이상은 계속 붕가붕가 소속으로 있을 것 같네요.(웃음)

김한주 : 사실 붕가붕가에 ‘도전’을 해보자고 의견을 제시한 게 저예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건강하게 일이 진행이 되어 기분이 좋아요. 앞으로도 구성원들과 평화롭게 음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웅희 : 제 차례인가요? 음, 모두들 가족이 생겼을 때의 기분을 생각해 보세요. (실리카겔 : 우리에게 질문하는 거예요?) 네. 질문한 거예요. 저는 우리가 진짜 가족 같아요. 곰사장(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님이 우리 아버지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진짜 가족 같아서 너무 좋아요.

김한주 : 사실 어머니가 곰사장님이라면?

최웅희 : 그건 싫어, 다들 놀릴 거 같아.(웃음) 결론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아까 건재 형의 말처럼 소속감이 느껴지는 것과 동료애가 넘쳐나는 것. 그래서 너무 좋아요. 이건 음악을 혼자만 하거나 친구들끼리 할 때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에요. 솔직히 이런저런 밴드를 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해본 적은 없거든요.

김한주 : 웅희랑 저랑 예전에 스쿨밴드를 같이 했었어요.

최웅희 : 맞아요. 그런 식의 경험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내가 평생하고 싶은 밴드다’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죠. 밴드를 이렇게 진지하게 한 적도 처음일 뿐이 더러 제가 복덩이인지 밴드에 들어오자마자 겹경사도 많고.(일동 웃음) 그중 하나가 붕가붕가와의 협업이기도 하고요. 너무 좋은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music video
[Official] 실리카겔 (Silica Gel) – 두개의 달 (Two Moons)

두은정 : 뮤직비디오의 스토리와 곡의 내레이션은 같은 선상에서 같은 시기에 작업이 진행된 것인가요.

구경모 : 맨 처음 <두개의 달>이라는 곡을 계획했던 것은 정확하게는 2014년이에요. 곡으로 완성되어 내보여진 것은 올해, 2016년이죠. 사실 <두개의 달>을 쓰면서 가장 중요했던 요소는 ‘난쟁이’였는데 이 난쟁이의 운명에 대해서는 곡을 쓸 때부터 결정이 되어있었어요. 난쟁이가 나타나고 결국엔 사라졌다라는 식의 기승전결이 있는 간단한 내용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고요. 지금의 뮤직비디오 시나리오처럼 구체적인 스토리가 나온 건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죠.

cover

실리카겔 데뷔 EP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가지 시각> 앨범 커버

실리카겔 디지털 싱글 <두개의 달> 앨범 커버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가지 시각

아티스트 실리카겔

발매일 2015.08.21.

두은정 : 독특한 패키지의 커버로 주목받아온 실리카겔에게 커버에 관한 질문을 빼놓을 수 없죠. 지난 EP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가지 시각>에 이어 ‘이규찬’ 씨과 실리카겔 VJ 멤버 ‘이대희’ 씨가 공동으로 이번 커버 작업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이 두 명의 디자이너가 하나의 결과물을 위해 어떤 피드백과 작업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네요.

김한주 : 여기 있는 구성원 외에 이규찬 군은 EP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가지 시각> 때도 디자이너로써 참여를 했었고 이번에도 저희가 디자이너로써 섭외를 하게 됐어요. 이대희 형은 실리카겔 VJ 멤버이고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죠. 이번 <두개의 달>은 그 두 명이 커버 디자인 담당으로써 긴밀하게 작업을 한 케이스예요. 아무래도 규찬이가 먼저 일종의 ‘재료’를 제시하면 대희형과 그 재료에 있어 괜찮을지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형태입니다. 이 둘이 멤버들에게 중간 과정 물에 대한 컨펌을 요구할 때가 있었는데, 처음 재료 자체를 만드는 건 규찬 군이었고 그걸 가공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아이디어 내는 것을 대희형과 함께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어요.

두은정 : 실리카겔 멤버들이 ‘이런 형태로 결과물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직접적으로 요구하진 않았나요?

김한주 : 커버 작업이 마무리될 때쯤 보여준 시안이 있는데 아무래도 모든 멤버들의 취향에 부합하기는 힘들었죠. 그래서 뻔할 순 있지만 곡 제목이 ‘두개의 달’이니까 ‘달’이라는 오브제를 직접적으로 이용해 디자인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으로 모아졌어요. 지금 선보이게 된 커버는 그런 식의 피드백 끝에 모든 멤버들이 의견이 통일된 이후 그 요구가 적절하게 들어간 결과물이죠.

두은정 : 앨범 발매와 함께 공개된 공연 발매 기념 공연 포스터와 앨범 커버가 ‘달’이라는 같은 오브제를 사용하되 노란색과 파란색의 상반된 색감을 차용하고 있죠. 이번 앨범에 있어 중요한 두 가지 디자인물이 이렇게 다른 색감과 형태를 사용한 것이 재미있어요.

김한주 : 디자이너들이 같은 형태, 다른 색깔의 시안을 여러 개 제시했었는데 팀 내에서 투표를 통해 결정하게 된 거라 전적으로 멤버들의 취향이 반영된 경우라고 할 수 있어요.

실리카겔 <두개의 달> 발매기념 ‘달맞이 큰 잔치’ 포스터

두은정 : 그동안 한주 씨가 작곡한 sister 같은 곡들은 프로그레시브한 느낌에 다소 강한 기조의 곡들이예요. 최근 <두개의 달> 발매 쇼케이스 당시 실리카겔의 전곡을 어쿠스틱 셋으로 편곡하여 진행했죠. 이 어쿠스틱 편곡을 진행하며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췄나요.  

김한주 : 일단 어쿠스틱 셋을 준비하는 데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아무래도 정규 밴들 셋으로 하는 것보다 좀 더 한정된 소스로 음악을 표현해야 해요. 이 소스를 선별하는데 있어서나 정규 편성으로 채워낼 수 있는 공간감과 어쿠스틱을 비교하면 많이 다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장소와의 조화도 더 예민한 부분이 있어요. sister나 Ⅱ같은 곡은 속도감 있는 상황에 여러 가지 요소들이 들어차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어쿠스틱적으로 표현을 한다면.. 저는 풀어내고 싶었어요, 이 요소들을. 가운데 뭉쳐있는 이것들을 좀 더 넓은 공간에서 모든 것들이 여유롭게 이용될 수 있도록 말이죠. 현실적인 예를 들자면 템포를 평소보다 느리게 연주를 한다던지, 아니면 전반적으로 공간감은 여유 있는데 원래 있던 요소들이 빠지지는 않고 더 예쁘게 이용될 수 있는 그런 식의 편곡을 도모한 거죠. 소스 자체에서 향수가 느껴질 수 있을 만한 것을 사용했어요. 사건이 있으면 거기에서 연상되는 소리가 있을 수 있잖아요. 예를 들면 종소리가 들리면 ‘내가 성당 근처에 있구나’라는 즉각적인 연상이 되듯 말이에요. 구체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특정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로 인해서 바로 사람이 감정적으로 무언갈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가 편곡 작업에서 노력한 부분이에요.

두은정 : 웅희 씨는 처음 7인조였던 실리카겔 활동 중반에 투입된 세컨 기타리스트죠. 일명 ‘실리카겔 인턴 기간’이 끝나고 데뷔 EP 발매 이후 정식 멤버가 되었어요.

최웅희 : 처음은 실리카겔 내부에서 사운드를 보충해줄 세션을 쓰려고 의논 중에 한주가 저를 추천했어요. 다른 형들이 다행히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두은정 : 공연 때 기타 외에 다른 악기들도 함께 겸하고 있는데 실리카겔 공연을 하며 포지션이 변화된 건가요?

김한주 : 처음부터 건반도 함께 쳐주길 원했어요.

최웅희 : 그 외 연주하는 다른 악기들은 무얼 할지 딱히 정해놓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세션직을 한주가 처음 제의했을 때 ‘내가 그걸 왜 해. 그 팀 되게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잖아’라고도 했었어요. 다행히 막상 하다 보니 형들이 저를 편하게 대해주었고 그 와중에 앨범 발매 단독 공연도 잘 마무리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죠.

김건재 : 그건 단독 공연 끝나고 단체 채팅방에서 안 나가길래 계속할 건가 보다 생각했어요.(일동 웃음)

최웅희 : 사실 ‘아, 이제 끝인가 보다. 아니, 안돼. 여기서 끝날 순 없어!’라고 생각했죠. 채팅방에서 안 나간 건 제 시나리오에 있던 의도된 행동입니다.(웃음) 공연을 하다보니 점점 더 멤버가 되고 싶었어요. 마침 그때쯤이 실리카겔에서 연주 멤버를 5인조 체제를 생각하고 의논하던 참이라고 했어요.

김한주 : 원래 실리카겔 멤버들이 5인조로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우리만의 미묘한 개그 흐름이 있어요. 웅희가 엄청 웃기고 재밌는 친구거든요. 다행히 웅희군의 개그 스타일과 실리카겔의 대화 흐름이 꽤 잘 맞았어요. 만약 음악적으로 맞아도 얘기가 그런 식으로 안 통하면 적응이 안 돼서 밴드 생활이 힘들 수도 있으니까요.

두은정 : 드러머 건재 씨는 작년 <새삼스레 들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가지 시각> 쇼케이스 당시 작곡한 곡이 공연 셋 리스트에 있었는데 그 이후엔 건재 씨가 작곡한 곡을 만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인지 곡 작업 스타일이 궁금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앨범에서 만나볼 수 있는지 여부도 궁금하고요.

김건재 : 우선 제가 만드는 곡은 대체로 긴 편이에요. 제가 작업하는 스타일이 다소 거칠어서 곡이 나올 땐 하루나 몇 시간만에도 끝내놓고 거기서 손을 안 대기도 하고요. 작업을 하다가 제가 처음 생각한 게 아니라는 판단이 내리면 그걸 전부 지우는 경우도 있어요. 원래 틀을 짜놓고 곡을 써본 적이 없는데 ‘산으로 가는 걸 막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최근엔 아예 섹션을 나누어 놓고 최대한 이 안을 벗어나지 말자고 생각하며 작업을 하고 있어요. 보통 제가 곡을 써서 멤버들에게 들려줄 때 ‘여기는 칠 수 있어? 여기서 리듬은 어떻게 가는 게 좋을까?’라고 묻곤 하죠. 사실 제가 막상 멤버들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구하지 않는 편이기도 해요.

김한주 : 실제로 쇼케이스 때 건재형이 작곡한 곡을 제가 편곡 정리를 했어요. 그런 식의 도움을 주려 한답니다.

김건재 : 최근 작업한 곡은 민수가 들어보고 괜찮았는지 시키지도 않은 기타 백킹트랙까지 데모를 떠주었어요. 경모도 베이스와 드럼 작업 트레이드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이런 멤버들 반응을 보면 최근 작업한 곡들은 전에 들려주던 곡보다는 다들 거부감을 덜 가지는 것 같아요.

두은정 : 아무래도 앞으로 정규 앨범에 수록될 곡들이 궁금하네요. 다음 앨범에 대한 일종의 힌트가 될 수도 있을 듯 한데, 다른 멤버들이 작곡해온 곡들과 아직 많이 노출되지 않은 건재 씨 곡과의 차별성이 있다면.

김한주 : 평소에 장난친다던지, 이야기하는 걸 보면 굉장히 짓궂은데 막상 곡에는 본인 내면에 있는 착한 모습이 많이 느껴지는 편이에요. 생각보다 원래 되게 착하거든요.(웃음) 짓궂게 대하는 모습 이면에도 되게 상냥한 모습이 있는데 그런 부분이 곡에서 잘 보여요. 제가 만약에 실리카겔이 아닌데 실리카겔 멤버 각각이 쓴 곡을 들려주고 ‘누가 제일 착할 것 같냐’고 물으면 건재형일 거예요. 선한 기운이 많이 느껴져요.

김건재 : 그러니까 곡만 듣고 만났다가는 큰일 날 수 있어요.(웃음) 제 개인적인 생각을 덧대자면 가사 같은 경우는 사람마다 풍기는 그런 기운이 있잖아요. 저는 주로 상냥한 어투의 반말을 많이 쓰는 편 같아요. 예를 들어 한주가 가사에서 ‘~하네요’라는 어미를 자주 쓴다면 저는 ‘~하네’를 주로 사용하죠. 곡의 배경은 소소함보다는 아무래도 웅장한 편을 좋아해요.

두은정 : 건재 씨는 실리카겔 외에도 다른 세션 활동도 겸하고 있죠. 

김건재 : 해오(HEO)라는 팀의 세션도 했었고 지금은 주로 이채언루트의 세션 활동을 하고 있죠. 사실 개인적인 연주 측면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실리카겔에서 가장 저 다운 연주를 해요. 다른 팀 세션 활동을 할 때면 그 팀이 그간 만들어온 것들이 있다 보니 저는 당연히 그들이 그려온 그 선을 넘지 않아야 하죠. 실리카겔에선 좀 더 정직한 연주를 하는 저를 만날 수 있어요.

김한주 : 예전에 해오 세션 활동을 할 때 건재형의 공연을 봤는데 정말 잘 치더라고요. 확실히 다른 매력이었어요.

두은정 :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실리카겔의 향후 활동 계획은요.

구경모 : 올 하반기에 정규 1집을 계획하고 있어요. 지금처럼 재미있는 음악들로 구성될 것이고 발매를 기점 삼아 활동 범위를 차차 넓혀갈 생각입니다.

[Next Big Thing] 더 낯설고 더 새롭게, 푸르내

[INTERVIEW] | 더 낯설고 더 새롭게, 푸르내
홍대씬의 루키로 불리던 밴드 ‘얄개들’의 유완무와 이경환, 이들의 오랜 친구였던 김성준이 만나 지금의 ‘푸르내’를 만들었다. 2014년 결성 이후 2년 만에야 앨범을 내놓은 이들은 이전 밴드 시절의 풋내 어린 청년기를 지나, 느리지만 착실하게 자기들만의 궤적을 그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지난 EP에도 실렸던 8번 트랙 <마음>은 이전 보다 더 빠른 템포로 변화되어 있다.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그 익숙함마저 특별하게 만드는 푸르내와의 대화.

두은정 : 이번 푸르내의 앨범 소개 글은 멤버가 아닌 누군가 앨범을 직접 구매해서 듣는 독특한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떻게 아이디어를 내신 건지 궁금하네요.
김성준 : 그건 제가 썼는데, 팀에서 글을 맡고 있거든요. 대부분의 앨범 소개 글이 시점이 비슷해서 다르게 써보려고 고민하다 앨범을 구매하는 사람의 경험담처럼 써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유완무 : 전 처음에 읽고 사실 ‘이게 뭐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쓰게 된 이유를 성준에게 물었더니 지금하고 똑같은 대답을 했거든요. 그 생각에 대해 수긍을 하고 계속 보다 보니 왠지 괜찮은 것 같더라구요.(웃음) 사실 앨범 소개 글은 대개 주의 깊게 보질 않았잖아요. 만약 이번 저희 앨범 소개 글을 읽게 된다면 앨범에 대해 좀 더 흥미롭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두은정 : 앨범 커버는 뮤지션 ‘기린’ 씨의 그림으로 만들어졌는데 어떻게 작업을 의뢰하게 됐나요. 같은 뮤지션이어서 작업 과정에서의 피드백이 좀 더 수월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유완무 : 경환이가 처음에 정물화로 커버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이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해 고민하다, 저희가 생각나는 사물들을 각자 다섯 개씩 정해서 그걸 기린 씨에게 그중 하나씩만 골라서 정물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하게 됐어요. 커버의 정물 중 향수는 성준이 택한 거고 고기는 저, 수석은 경환.(경환 : 수석을 그려달라고 했는데 바위를 그렸네요. 물론 맘에 들어요) 커버의 그림 외에도 내지에 간간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것도 저희가 고른 각각의 다섯 개 정물들이에요.

두은정 :  각각의 정물들을 선택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특히 커버의 오브제들이요.
유완무 : 저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다섯 개를 생각해보자’라는 주제로 정했거든요. 그리고 그중 하나가 고기였어요.(일동 웃음)
김성준 : 저는 정물화로 그린다고 해서 뭔가 고급스러운 아이템을 생각하다 보니 향수병을 고르게 된 것 같아요.

두은정 : 혹시 성준 씨는 ‘이 디자인의 향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전달하신 건가요. 커버 속 향수는 특정 브랜드가 연상되는 여성용 향수여서 궁금했어요.
김성준 : 향수병이라고만 얘길 하고 디자인은 기린이 했어요. 근데 왠지 저 이미지가 저희 음악이랑도 매칭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유완무 : 향수라고 하면 남자 향수보다는 여성들이 쓰는 향수가 먼저 연상되는데, 아마 기린도 그런 생각으로 그린 것 같기도 해요.

두은정 : 경환 씨는요.
이경환 : 저는 그냥 방을 둘러보고 보이는 것들, 그리고 무작위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을 기린 씨에게 전달했어요.
유완무 : 그러고 보니 셋 다 완전히 다른 생각으로 골랐네.

두은정 : 앨범보다 선공개 되었던 <야생의 밤> 뮤직비디오에 대한 얘기도 듣고 싶어요. 
김성준 : 감독인 시원 씨는 사실 경환에게 기타 레슨을 받는 친구예요. 원래는 의상 관련 전공을 했고 뮤직비디오를 찍어본 적은 없지만 전공과 관련된 영상을 만든 걸 보고 저희가 작업을 같이 해보자고 제의하게 됐죠. 시나리오 같은 경우는 감독이 직접 작업을 했고요. 감독 시원 씨는 ‘코가손’의 프로필 사진을 촬영해주기도 한 인연이 있어요.
여배우로 출연한 ‘금새록’씨는 저희 감독의 사촌 동생이에요. 영화 ‘암살’에 출연도 했던 친구이고요. 남자 배우 같은 경우는 원래 캐스팅되어 있던 분이 있었는데 촬영하기 3일 전 갑자기 캔슬이 됐어요. 결국 지금 출연한 배우 ‘송삼동’씨를 윤성호 감독님을 통해 급하게 소개받게 되었죠.
유완무 : 그 때 제가 신혼여행을 가 있을 때였거든요. 신혼여행 도중 갑자기 상황이 그렇게 된 거예요. 정말 겨우겨우 진행됐죠.
이경환 : 뮤비 장소로는 바로 앞에 도로가 있고 큰 쇼윈도가 있는 곳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서촌에 있는 식당 ‘두오모’ 매니저님과 연이 닿아서 진행이 순조롭게 됐어요.

두은정 : 그럼 뮤직비디오의 시나리오, 진행은 전적으로 감독님이 맡으신 건가요?
김성준 : 저희가 레퍼런스를 드리긴 했어요. 색감이나 구도에 참고될 만한 영상을 찾아 보여드리는 식으로요. 큰 틀과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감독님이 가지고 시작을 했는데, 그걸 가지고 여러 번 만나 대화해서 보완해 나가는 식으로 진행이 됐죠.
이경환 : 촬영 감독이랑 스태프들은 다 감독 친구분들이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사실 뮤비에 나오는 요리들은 두오모에 있는 메뉴는 아니에요. 저희 앨범 작업기 사진 찍어주시는 ‘송곳’이라는 작가님이 오셔서 그 요리를 다 해주셨죠. 도와준 모두에게 너무 고마워요.

 

 

두은정 : 뮤직비디오를 보면 주인공 둘이 쇼윈도를 사이에 두고 내내 모르는 척하다 여자 주인공이 갑자기 걸어 들어와서 남자가 앉아있던 자리의 음식을 마구 먹어치워요.

저는 이 두 주인공이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뮤비를 봤어요. 그러다 갑자기 여자가 들어오는 장면을 보며 둘이 원래 알던 사이인데도 그동안 모르는 척하고 있던 걸 의도한 건가 마지막엔 헷갈렸어요.
김성준 : 그런 연출적 아이디어는 감독의 의도인데요. 그 곡 가사 내용이 욕망에 눈이 멀어 거리를 헤매는 내용인데 그런 ‘욕망’을 감독님이 ‘먹는’ 행위로 풀어보겠다고 했어요. 욕망이란 걸 너무 직접적인 장면으로 드러내면 좀 그러니까 그걸 그렇게 마구 먹는 걸로 표현하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
이경환 : 주인공인 둘이 원래 알던 사이였는가는, 감독만 알아요.
유완무 : 대본에는 없었어요.(웃음)

두은정 : 이번 타이틀곡은 <아주 먼 곳>인데 정작 뮤직비디오를 찍은 곡은 <야생의 밤>이예요.
유완무 : <야생의 밤>을 저는 좀 더 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뮤직비디오로 찍으려고 생각하던 곡 후보가 2곡 정도였는데, 제가 이 노래가 더 좋을 것 같다고 밀어붙였죠. 실은 약간 막연한 이유예요. 가사의 경우에도, 요즘은 사랑에 대한 직접적인 얘기들이 더 많지 어떤 욕망에 대해 노래하는 가사가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이 가사가 신선하게 와 닿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는 이번 앨범 수록 곡들이 다 타이틀곡이라고 생각해요. 전 곡들 중에서도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곡으로 생각되는 곡을 고르다 보니 <아주 먼 곡>이 타이틀이 되었지만요. 다른 어떤 곡은 우리의 음악성을 좀 더 보여주고 싶은 거라면 ‘이 노래는 좀 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겠다’ 싶은 걸 생각해 정하게 됐죠.

두은정 : 2014년 데뷔 EP 발매 이후 약 2년간의 꽤 긴 공백이 있었어요. 
유완무 : 이것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선 첫 번째로는 드러머의 탈퇴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새로운 드러머와 맞추는 기간이 다소 길어졌고요. 두 번째는 나의 결혼.(웃음) 장난이고요. 아무래도 각자의 사생활이 제일 크죠. 경환이도 다른 밴드를 하고 성준이는 공부를 하고, 저의 경우에도 결혼 준비를 하느라고 다들 많이 바빴어요. 녹음을 저희끼리 하고 싶었거든요. 그 와중에 시간을 내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여러모로 다음 앨범을 내기까지의 텀이 점점 길어지게 됐죠.
만약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았더라면 아마 앨범 준비를 한 달 만에 다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진짜로. 그게 너무 아쉬워요. 밴드 말고도 우리가 생계를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 아쉽죠.
김성준 :  프로듀서가 없어서 오래 걸린 것도 이유인 것 같아요.(완무 : 맞아, 그런 것도 있어.) 믹싱을 스스로 하다 보니까 어느 정도가 이 곡의 완성이다, 라는 우리 스스로의 기준이 없다 보니까.
이경환 : 보통은 밴드들이 스튜디오에 돈을 내고 그 시간만 딱 하면 그게 데드라인인 거예요. 저희는 각자의 시간도 많이 없고 모두의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지만 무제한으로 쓸 수 있잖아요. 그래서 믹싱하다가 어디서 끊어야 할지 몰라서 계속 진행하기도 했죠.
유완무 : 우리 중에 한 명이 엄청난 경험자라서 다 할 수 있으면 모르는데, 장비가 안 돼서 한 달을 그냥 버리기도 하고. 막상 그렇게 실행착오를 거쳐 준비가 됐어도 프로그램 돌아가는 걸 잘 몰라서 책 사서 그걸 공부하고.(일동 웃음) 앨범이 이렇게 무사히 나오게 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지금 생각하니 그게 그냥 다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두은정 : 곧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가 있죠.
유완무 : 이번 26일 토요일, ‘신도시’에서 해요. 공연장은 제가 그곳에서 하자고 제의했는데 뭔가 재밌는 장소를 찾다가 신도시로 결정하게 됐어요. 생긴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평소에 디제잉이나 행사도 많이 하고 재미있는 공간이잖아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 같아서요.

두은정사실 지역적인 제약이 있잖아요. 대부분의 클럽은 홍대에 밀집되어 있기도 하고요.
유완무 : 보러 오실 분들은 을지로여도 어떻게든 오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웃음)

 


두은정 : 봄이 가까워 오네요. 춘삼월에 맞춰 앨범을 낸 푸르내 멤버들이 개인적으로 가진 올 한해의 목표나 계획들이 궁금해요.
유완무 : 
저는 노래를 많이 쓰고 싶어요. 노래를 많이 써서 김성준에게 가사를 많이 맡길 거예요.(웃음) 그게 저의 음악적인 계획이에요. 그리고 아버지가 칠순이신데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어요.
김성준 :
저도 노래 많이 만드는 게 목표예요. 신곡은 기존 곡들과 색깔을 바꿔보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계속 공부도 하려고 하고요.
이경환 :
다시 백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지금은 레슨도 하고 있고 무엇보다 밴드를 두 개나 하다 보니까 이게 음악을 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게 되고요.

두은정 : 푸르내의 향후 계획은요.
유완무 : 우선 저희 드러머가 새로 바뀌어서 그 친구와 호흡을 계속 맞춰가야 할 것 같아요. 이번 새 드러머는 밴드 ‘ECE’에서 드럼 치던 친구예요. 쇼케이스 이후로 공연을 많이 하고 싶고요. 공연을 하면서 틈틈이 새 곡을 작업하면, 그걸 만드는 대로 싱글도 자주 내고 싶고요.
이경환 : 
성준이가 앞서 말했던 대로 앞으로 나올 노래들은 지금과는 색깔이 많이 바뀔 수도 있어요. 계속 작업을 꾸준히 해서 서너 곡 정도 나오면 앨범이든 어떤 형태가 되던지 빨리 발표를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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