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다 보면 종종 ‘타이틀곡보다 더 내 마음에 드는’ 곡들을 만나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코너 ‘B-Side’는 이렇게 다분히 사적인 경험이 모티브가 되어 출발합니다. ‘B-Side(비 사이드)’는 ‘A-Side’의 반대면, 일반적으로 7인치 싱글 LP 레코드의 뒷면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A-Side에는 흔히 말하는 ‘타이틀곡’이, B-Side에는 정규앨범에 수록하기 모호한 곡이나 커버, 라이브, 혹은 리믹스 등이 부가적으로 수록되었다고 합니다. 코너 ‘B-Side’는 단어 본래의 의미보다 ‘A-Side의 바깥’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둡니다. 비록 타이틀곡은 아니지만 좋은 노래들, 단지 ‘수록곡’이라는 한 마디로 묻어두기엔 아까운 노래들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캐내어 공유하려 합니다.
EP. 1 허시 (Hersh) / 아슬 (Aseul) / UZA (우자)
1. 허시 (Hersh) / Hide & Seek (Feat. Hunjiya) – From the EP [thoughts. II] (2020.04.06)
2019년 7월 [thoughts.]라는 제목의 데뷔 EP로 등장한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허시 (Hersh)’는 아직 많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앞으로 반드시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야 할, 특히 알앤비 음악 팬이라면 꼭 눈도장을 미리 찍어두길 권하는 아티스트다
최근의 알앤비 계열 신작들이 소위 ‘얼터너티브-알앤비’라는 큰 바운더리 내에서 일정 부분 획일화되는 듯한 경향이 감지되는 요즈음, ‘허시’는 특정한 스타일에 스스로를 묶지 않는다. 데뷔 EP [thoughts.]의 수록곡 ‘Feelings (feat. Jade)’에서는 ‘토로 이 모아’(Toro Y Moi)를 연상시키는 청량한 하우스 뮤직의 바이브를 앞세우는가 하면 래퍼 ‘저스디스’(JUSTHIS)와 함께한 싱글 ‘Falling Into You’에선 끈적끈적한 관능이 넘실대는 얼터너티브-알앤비 음악을 제대로 소화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클래식한 알앤비, 얼반, 네오소울까지 두루 섭렵하며 매력적인 음악을 만들어낼 줄 아는 아티스트가 허시다.
최근에 공개한 두 번째 EP [thoughts. II] 역시 마찬가지. 블랙-가스펠 풍의 도입부에서 트로피컬-하우스 스타일의 팝으로 절묘하게 전환하는 타이틀곡 ‘Pray’를 비롯, 다채로운 스타일의 다섯 트랙을 담았다. 이 중 매력적인 음색의 여성 보컬리스트 ‘hunjiya’(헌지야)와 함께한 ‘Hide & Seek’은 이 EP의 유일한 듀엣곡이면서 동시에 가장 팝적인 성향이 강한 곡이기도 하다. 매끈하고 섹시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두 아티스트의 근사한 보컬을 중심으로 몽글몽글한 질감의 신쓰 리드, 심플한 리듬 파트를 중심축으로 근사한 피아노 연주가 곳곳에서 멋지게 엣지를 더하는 이 곡의 도회적인 분위기와 그루브는 그야말로 ‘세련’ 그 자체다.
2. 아슬 (Aseul) / 말해봐요 – From the EP [Slow Dance] (2020.03.06)
전자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셀프-프로듀싱, 인디펜던트, 로파이 등등, ‘아슬 (Aseul)’을 떠올리면 그녀를 수식할 만한 갖가지 키워드들이 자연스레 연상되는데 개인적으로 여기에 ‘베테랑’이라는 단어를 추가하고 싶다. ‘유카리’란 이름으로 첫 앨범 [Echo]를 공개한 게 2012년,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10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하나의 정규와 세 개의 EP, 그리고 여러 개의 싱글들을 꾸준히 발표했으며 이 모든 작업들은 레코드 레이블이나 매니지먼트의 기획이나 지원 없이 철저히 ‘독립적’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자신만의 속도와 호흡으로, 더디지만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아슬이 쌓아온 커리어를 마주하며, 과연 ‘베테랑’이라는 단어만큼 딱 떨어지게 그녀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또 있을까 되묻게 된다.
세 번째 EP [Slow Dance]는 가장 현재의 아슬을 담았다. 이제는 자신의 시그니쳐와도 같은 ‘로파이 사운드’의 일렉트로닉-팝을 정체성의 중심에 두고 그 외 몇몇 장르의 요소들, 다양한 템포와 리듬, 영롱함과 몽롱함을 넘나드는 갖가지 신쓰의 소리들, 소녀의 정서를 품은 가녀린 음색을 솜씨 좋게 버무리고 다듬어 다채로운 분위기를 조성해낸다.
이 작품의 가장 끝에 자리잡고 있는 ‘말해봐요’는 ‘달라서’ 되려 인상에 남는다. 다소 은유적인 가사를 아련히 노래하는 여린 목소리도, 예쁜 곡의 선율도 분명 모두 아슬의 것이다. 하지만 투박한 터치의 소박한 어쿠스틱 기타 리프와 은은하게 그 뒤에 깔리는 피아노, 그리고 하모니카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선율은 장르적으로 다분히 포크에 가깝고, 그래서 이 노래는 – 대체로 전자음악의 범주 내에 있는 – 작품의 다른 곡들, 혹은 그간 그녀가 발표해온 어느 곡들과도 다른 질감의 소리를 낸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쓸쓸함을 품고 덤덤히 흘러가는 이 노래는 앨범의 제목인 ‘느린 춤’과 꼭 어울리는 곡이라 느껴진다. 듣고 있노라면 어떤 뜻 모를 우울, 혹은 공허를 가만히 안고 느리게, 느리게 춤을 추는 누군가가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3. UZA (우자) / Shout (Feat. Lokid) – From the Album [악의 평범성] (2020.04.04)
묘한 우연이라 생각했다. ‘UZA’(우자)의 첫 정규앨범의 제목이 하필 ‘악의 평범성’인 것이. 이 즈음 마침내 수면 위로 부상해 뜨겁게 공론화되고 있던 N번방 사건을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내 머릿속에 가장 자주 맴돌던 말이 ‘악의 평범성’이었기 때문이다. 악인은 결코 다른 모습으로 별다르게 존재하지 않음을, 사실 그저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들의 바로 곁에 머물고 있음을 새삼 곱씹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이 앨범을 만났다. 묘하다-라는 표현 외에 이 느낌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솔로 아티스트로, 또 일렉트로닉-팝 듀오 ‘UZA&SHANE’(우자앤쉐인)의 한 축으로 활약하는 ‘UZA(우자)’ 역시 직접 곡을 짓고,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셀프-프로듀싱 음악가다. 2017년 말에 우자앤쉐인(이하 ‘우쉔’)의 첫 EP로 활동을 시작, 이후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다수의 작품을 선보이는 왕성한 창작욕과 함께 솔로와 그룹 활동을 균형감 있게 양립하며 양쪽 모두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악의 평범성]은 우자의 세 번째 솔로 발매작이자 첫 정규 앨범이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수록곡전부를 직접 썼으며 철저하게 셀프-프로듀싱으로 완성되었다. 이전의 솔로작들과 우쉔의 발표작들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적 특징은 ‘팝의 감각이 굉장히 또렷하다’는 것인데 이는 우자가 뛰어난 팝 보컬리스트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탑라이너이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우자의 음색, 멜로디 메이킹 모두 팝적인 테이스트를 한층 더 끌어올리는 힘이 있고 본작에서도 이 강점들이 여전히 유효하다.
힙합, 알앤비를 넘나들며 꾸준히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동료 아티스트 ‘Lokid’와 함께한 ‘Shout’은 앨범 내에서도 사운드가 센 축에 속하는 곡이다. 잔뜩 찌그러뜨리고 분절된 전자음이 신경질적으로 반복되며 불온하고 음습한 정서를 조성하는 벌스, 멜로디와 리듬 모두 단숨에 변주하며 록킹한 사운드를 쏟아내는 후렴부의 급격한 변화가 이 노래의 매력. 한편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우자와 로키드의 보컬 퍼포먼스다. 흡사 이 곡을 ‘케이팝’으로 느껴지게 할 만큼 매력적인 팝 보컬을 선보이는 우자,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니컬한 바이브의 랩싱잉을 자신에게 주어진 벌스에 툭툭 박아 넣는 로키드는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보컬 퍼포먼스를 통해 사운드적으로는 비교적 심플한 구성을 취하는 이 곡의 인상을 한층 입체적으로 업그레이드한다.
뮤지션들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음악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소개하고 추천하는 것들,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들에 귀를 귀울이면 또다른 세상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은 덤. 어쩌면 인디펜던트 뮤지션들이야말로 가장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장본인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새긴 타투, 읽는 책, 마시는 술, 감상하는 영화 등 음악 외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Offing
레이블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에서 단연 압도적인 개성을 뽐내는 그녀, Offing. 셀프 프로듀싱은 물론 아트 디렉팅까지 스스로 척척 해내는 아티스트인 그녀의 타투를 소개한다.
윤지영
레이블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의 막내 뮤지션, 윤지영. 영화 어벤져스를 보고 영감을 받아 ‘언젠가 너와 나 (Feat. 카더가든)’을 탄생시키는가 하면, 아기자기하고 키치한 영상들로 끊임없이 리스너들과 소통하는 뮤지션이다. 그녀가 몸에 새기고 싶어했던 이야기들을 만나보자.
Jade
‘Jade’라 쓰고 ‘쟈드’라고 부른다. 약 2년 전에 데뷔에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는 뮤지션. 크루아상과 ‘파리 15구’의 우편번호로 프랑스에서의 유년시절을 되새기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으로 초심을 되새기는, 타투만큼이나 사랑스러운 Jade를 만나보자.
“자전적인 얘기를 담은 앨범이다 보니까, 항상 저를 알아 왔고 그 연장선상에 함께하는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친구든, 연인이든, 누구든 간에 상대방에 대한 애정도 계속 갖고 싶고요. 되게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얘기지만 그런 걸 믿고 싶은 요즘인 것 같아요.” 첫 앨범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담긴다 말했다. 그 과정을 지켜봐 온 이들과 함께, 과거의 상처를 딛고 미래를 향해 이상과 낭만을 펼치려 한다. 2019년 6월 발매된 ‘천미지’의 첫 번째 앨범 [Mother And Lover]의 이야기다.
Q. 얼마 전 발매한 EP “몸”은 어떤 앨범인가요?
어떤 몸, 신체를 갖고 살면서 능동적인 주체보다는 대상화되는 객체라는 걸 많이 느끼던 때가 있었어요. 20대 초중반은 방황하면서 사랑을 찾고, 뭔가 결핍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그 상황을 바꾸려 했다기 보다는, 서글프고 불편하지만 그냥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작년 8월에 어떤 일을 겪고, 그런 상태로 지내왔던 것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터져 나왔어요. 더 고민을 하게 되고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담겨있는 앨범이에요.
Q. “Mother And Lover”에서 가져온 곡들도 이어지는 결이 있다고 생각해서 수록한 건가요?
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Mother And Lover”가 나와 상대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것을 얘기했다면, “몸”은 내가 사회와의 관계에서 느낀 것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Mother And Lover”는 내 사랑 방식에 대해 얘기했고, “몸”은 그 방식에 대해 진절머리가 난 거죠. 사랑을 하는 과정에서의 혼란과 불편, 그런 것들이 어떤 연장선이라고 생각했어요.
Q. 첫 앨범 “Mother And Lover”도 소개해주세요.
Mother와 Lover잖아요. 저는 어머니한테서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자랐어요. 어렸을 때 집이 되게 시끄러웠어요.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저를 대했던 사랑방식이, 성인이 된 후 연인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어머니가 불가피하게 집에 안 계실 때가 있었어요. 어느 날 집에 오면 어머니를 볼 수 없는 거예요. 제가 예측할 수 없는 형태였어요. 성인이 되어서 이 사람이 언젠가 나를 떠나겠지 하는 불신과 동시에, 이 사람 너무 잡고 싶어 하는 양가감정으로 이어졌어요. ‘어머니를 너무 사랑하지만 나를 떠나서 미워’ 그런 것들이 사랑방식이 되었고, 제 첫 앨범에서 가장 내보이고 싶은 주제였어요. 지금까지의 삶 중에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내용을 담게 됐어요.
Q. 연인과의 관계에 어머니의 영향이 미친다는 걸 언제 깨달았어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느꼈어요. 어머니의 상황에 엄청 공감하며 자랐거든요. 오빠가 한 명 있는데, 그보다도 딸인 저에게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본인의 불만, 고충 같은 것들을 저한테 말씀하셨어요. 저는 되게 어렸지만, 내가 힘든 것보다는 어머니를 이해해줘야 돼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게 제 삶에서 너무 중요해진 거예요. 한 번은 함께 상담을 받으러 갔어요. 상담사분이 저는 마음의 창에 어머니랑 저, 이렇게 두 사람이 있대요. 어떻게 보면 어머니와 저를 혼동하고 있다는 거예요. 제가 엄청나게 이입을 한 거겠죠. 그런 것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이어졌어요. 연결 고리가 지속되어왔던 것 같아요.
Q. 앨범의 주제로 이 이야기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어요?
사월이가 제 오랜 친구예요. 눈빛만 봐도 알 만큼 가깝게 지내고, 서로의 성장환경이나 현재의 감정 상태에 대해 많은 공유를 하는 사이였어요. 그런 사이였기 때문에 앨범을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전부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다 정리하고 보니 결국에는 엄마라는 키워드와, 사랑을 갈구하던 시절의 내가 중요한 이야기로 남았어요.
Q. 중학교 친구와 함께 작업한 소감은 어땠어요?
되게 재미있었어요. 앨범에 대한 저의 감수성을 가장 잘 아는 친구였기 때문에, 곡마다의 감정을 끌어내는 데에 집중해서 앨범을 만들 수 있었어요. 작업실 침대에 누워서 ‘이 곡을 만들 때는 어떤 감정이었어’ 편하게 얘기들을 주고받았어요. 그러다가 뒤적뒤적하더니 분홍색 선글라스를 꺼내면서 ‘이거 써봐 귀여우면서도 못된 감정이 일어나지 않아?’ 하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요. 곡마다 이해가 없었다면 아마 누구하고도 그런 작업을 못 했을 거예요.
Q. 라이너노트를 작성해준 ‘틸트’는 어떤 공간이에요?
7~8년째 단골인 바예요. 서울 올라온 이후 가장 오래 다니고 있는 곳이에요. 그 당시 집과 되게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마스터분도 그렇고, 공간도 그렇고 편하고 재미있어서 자주 갔어요. 술 마시고 집에 걸어가면서 쓴 곡도 되게 많았어요. 그 시절의 저부터 지금의 저까지 잘 알고 있는 공간이어서 애정이 많아요.
Q. 마스터 분과도 친하시겠어요.
친하죠. 딱 보면 제 기분이 어떻구나, 아시더라고요. 어쩌다 우울한 날에 가잖아요? 그러면 미지씨 14년도 때 모습 보는 거 같다고 얘기하세요. 예전에는 제가 슬플 때 자주 갔거든요. 자전적인 얘기를 담은 앨범이다 보니까, 항상 저를 알아 왔고 그 연장선상에 함께하는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Q. 바에 다녀왔다가 쓴 곡들은 어떤 게 있어요?
‘I Want To Be Your Mother’ 그 곡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와서, 막 소리 지르고 기타 치면서 불렀던 곡인데 타이틀이 됐어요. 이 곡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Q. 한 곡을 제외하고 모두 영어 가사예요. 그 이유는 뭐예요?
대학에 가기 위해서 일 년 정도 영어만 공부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게 생각보다 재미있었나 봐요. 제대로 된 문장은 아니지만, 영어로 뭔가를 막 쓰니까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외국어라는 게 하나의 감정 분출구가 되었던 것 같아요. 몰랐던 진심이나 깊게 고였던 감정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게 재미있었어요. 당시의 저는 제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어려웠던 것 같은데, 외국어가 하나의 분출구가 되어서 처음 곡을 만들 수 있었어요.
Q. 앞으로도 그런 방식을 택할까요?
안 하고 싶어요. 한 번 영어 가사로 확 표출하고 나니까, 이제 한글 가사에 미련이 생기더라고요. 한글 가사는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즉각 전해지잖아요. 공연에서 노래할 때도 바로 주고받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한글 가사를 더 많이 쓰고 싶고, 이전에 써둔 한글 가사들을 정리해서 앨범을 내고 싶어요.
Q. 첫 앨범 발매되고 기분이 어땠어요?
솔직히 제 앨범에 실린 곡들이 누구한테 위로를 주는 곡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누군가에게 공감대를 형성해서 그게 위로라는 감정으로 전달될 순 있겠지만, 저는 그 곡들을 들으면 불행했던 시기가 떠올라요. 10대 때 고여있던 상처들이 20대 때 자기 파괴적인 행동들로 나오는 순간까지 모든 게 한 선상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앨범을 통해서 상처를 털어내고 극복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또 그 시절을 좋은 방향으로 발산하고 싶었고요. 그때의 나를 이대로 남기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너무 노골적으로 남긴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드디어 미래를 생각할 수 있을 거야 하는 기쁨이 컸어요. 되게 다양한 감정들이 있었어요.
Q. 발매 후에 후련해지셨어요?
되게 밝아졌어요. 자주 보는 사람들은 뭔가 좋아졌다는 걸 느끼더라고요. 그 전엔 되게 우울하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제 얘기를 하는 것도 어려웠고요.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표현하고, 털어내다 보니까 제 생활을 많이 찾을 수 있었어요. 한 번 표출하고 나니까 이전의 어떤 노력보다도 좋은 영향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요.
Q. 좀 더 빨리 털어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곡을 만들어서 남겨놓는 게 그때의 털어내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불안정한 시기였기 때문에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좀 더 좋아지고 나아가고 싶은 욕심은 있었기 때문에, 그때는 순간순간을 열심히 지내고 곡으로 많이 남겨두자는 생각이 더 강했어요. 되게 긴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Q. 앨범이 발매되고 1년 가까이 지났어요. 지금 들어보면 어떻게 느껴져요?
오랜만에 앨범을 다시 들어봤어요. 곡마다 여러 글을 써봤던 게 떠올랐어요. 영어로 된 가사는 그에 얽힌 스토리를 한글로 쭉 풀어 써보기도 했고요. 감정적인 부분에 집중했다 보니까, 지금 들으면 아득하기도 하고 예전 생각도 많이 나고 그래요.
Q. “Mother And Lover”가 어떤 앨범으로 남길 바라요?
앨범 발매기념 쇼케이스를 했을 때, 한 분이 ‘Girl’이라는 곡을 뜻깊게 들었다고 해주셨어요. ‘영어 가사에 한 줄 한 줄 설명을 덧붙이면서 어머니와 함께 들었다, 울기도 하고 되게 좋았다.’ 그 얘기를 듣고 분명히 누군가에겐 공감이 가고 의미가 있는 앨범이 되겠구나 자신감을 가지려 했던 기억이 나요.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은 대한민국 딸들이라면 누구나 가질 것 같았어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 이런 마음들이 보편적일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 딸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어요.
또 다른 하나는, 여성 화자가 남성을 대상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앨범에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그 여성 화자는 남성의 시선으로 비춰진 대상이고요. 왜곡된 시선인데, 정확한 실체는 모르겠지만 여성의 성이 이분법으로 해석된다는 걸 예전부터 느꼈어요. 그거에 대한 혼란과 분노가 담겨있어요. 이런 얘기를 노래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면 좋겠어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와 여성으로써 느끼는 분노, 그 두 개가 가장 중요한 메시지고 잘 전달되었으면 하죠.
Q.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음악에서의 메시지든, 연대를 위한 작은 발언이든 계속해서 용기를 내고 싶어요. 그리고 저의 순간순간을 최대한 많이 남기고 싶어요. 친구든, 연인이든, 누구든 간에 상대방에 대한 애정도 계속 갖고 싶고요. 사랑도 나눠주고 싶고 재미있게 살고 싶네요. 되게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얘기지만 그런 걸 믿고 싶은 요즘인 것 같아요.
<BACKSTAGE!>는 무대 바깥의 이들을 위한 시리즈 인터뷰입니다. 아티스트와 리스너간의 선순환을 도모하고, 나아가 씬의 발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조명할 예정입니다. 조명이 꺼지고, 콘페티가 모두 땅으로 떨어진 다음 날에도 쇼는 계속될 것이니까요.
오랜만에 돌아온 <BACKSTAGE!>가 만나볼 세 번째 주인공이자 2020년 첫 주인공은 뮤직비디오 감독 호빈(hobin)입니다. 선우정아, 서사무엘, 백예린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최근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자신만의 감성과 표현을 지닌 그가 궁금했지만 21세기 정보의 바닷속에서도 그의 이야기는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우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단독으로는 인터뷰가 거의 처음이신 것 같은데요, 실제로도 그러신가요?
네. 크루로 했던 적은 있는데 저는 딱히 안 하는 편입니다. 할 것도 없습니다. (웃음)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안 했던 것 같습니다.
한 4년 전에 보그에서 취재했을 때 외에는 찾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동안 인터뷰를 안 하시다가 그래도 이렇게 이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제가 감사합니다.
커리어 초반부터 짚어나가면서 질문을 드릴 건데요, 찾아본 바로는 2015년 전후로 처음 영상을 시작하신 것 같더라고요.
네. 그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뮤직비디오의 경우에는 저도 연도는 정확히 생각이 안 나는데 연차로는 5, 6년 차쯤 된 것 같습니다.
비메오를 보니 베이 에잇(VEI-8) 2015F/W 필름이 제일 앞에 있더라고요.
그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뭐부터 시작했다’라고 명시할만한 것은 없는데 ‘뮤직비디오 데뷔작’은 있습니다. 그 해였던 것 같긴 합니다.
그게 혹시 언노운 드레스(unknown dress)인가요?
네. 맞습니다. 사실은 말씀드릴 수 없는 입봉작이 하나 있고, 바로 다음에 한 게 언노운 드레스였습니다.
그러면 처음에 영상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어떻게 했더라… 사실 저는 뭔가 말할 게 별로 없는 게, 원래 ‘영상을 해야지’ 했던 사람은 아니어서 연차도 얼마 안 됐고, 영상 쪽 관련 학과를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전공은 원래 건축인데, 학교는 너무 재미있게 다녔지만 (건축 일을) 제대로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음악을 잠깐 하다가 기회가 생겨 패션 쪽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해온 일 중에) 제일 오래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영상 일을 한 기간이랑 패션 쪽 일을 한 기간이 비슷해지긴 했는데, 20대 때는 거의 계속 패션 쪽 일을 하다가 그래픽 디자인도 하고, 옷도 하고, 브랜드 기획도 하고 그랬죠. 어린 나이니까 화가 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화가 많은 성격은 아닌데, 그때 당시만 해도 지금만큼 재미있는 브랜드들이 있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생님들 아니면,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돈을 벌기 위한 패션 사업이 더 많았어요. 근데 저는 디자이너 브랜드이긴 하지만 상업적인 브랜드 쪽에 있었습니다. 음악도 그렇고 영상도 그렇겠지만, 어느 정도 베끼기도 하고 창작을 하기도 하잖아요? 어린 마음에 그게 좀 상처였던 것 같습니다. 좋은 기술을 가진 분들, 좋은 감성을 가진 분들이 그냥 베끼고 그걸 팔고, 팔면서 그걸 잘했다고 칭찬하고 있고, 돈 많이 벌었다고 좋아하고 있고… 그런 시절을 지나면서 잠깐 제 브랜드도 했다가 망했습니다. 화나서 하면 망해요. (웃음) 복구 기간이 지난 후에, 그래도 제일 오래 했던 일이 음악 아니면 패션 쪽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외주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랜서로 기획 일 같은 걸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작은 브랜드에서부터 형, 누나, 동생, 친구들이 하는 브랜드들, 지금으로 치면 ‘20F/W, S/S’ 이런 일들을 받아서 기획해주고, 디자인해주고, 사진도 잠깐 찍었으니 사진 찍어주고 하다가… 그렇게 한 포맷으로 보이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브랜딩이라는 분야가 되긴 했지만, 당시엔 그런 개념이 없었거든요. 패션도 그렇고 건축도 그렇고 영상도 그렇겠지만, 테마가 있어야 가치관이나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들이 굉장히 멋있는 영상물들, 패션 필름이라는 항목 아래에 뭔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근데 한국은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 당시만 해도 그냥 광고 형태로만 나오고 그래서 잘하시는 분들한테 “왜 영상 안 하시냐, 영상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다들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영상 감독님들을 막 찾으러 다녔죠. 근데 말도 안 되는 금액에 하시려는 분들도 없었고, 광고가 아닌 패션 필름으로 생각해주시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못 찾고, “기획은 다 해 놨고 나는 현장에서 할 일도 없으니까, 돈은 안 받을 테니 영상을 꼭 찍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씩 허접한 영상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모르는 지식으로. 다행인 건 원래 제일 좋아하는 게, 지금도 그렇지만, 그림 그리고 영화 보는 게 제일 좋아하는 취미여서 그런 게 조금 도움이 되었나 봅니다. 그래서 허접한데 덜 허접한 게 나왔습니다. (웃음) 그래서 그게 쓰임이 생기고, 쓰임이 생기는 게 주변 디자이너들이나 브랜드들에 조금씩 알려지면서 또 의뢰가 들어오고…
사실 영상은 패션 쪽 일의 한 카테고리로만 일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크루 했던 친구들이 다 한 파트씩 하잖아요? 음악 하는 애, 사진 찍는 애… 저는 그 안에서 제가 제일 형이고 누군가의 일을 조절해주고 정리해주는 그런 파트에 있었는데 “형도 형의 목소리를 내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라는 조언을 많이 해 줘서,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나마 영상은 좀 자유도가 있어서… 돈을 안 받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그런 일들을 좀 더 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영상이 제일 좋아지고 ‘이것만 해도 평생 공부할 게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태 같아서 할 게 많은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영상을 해야겠다고 어느 순간 서른이 넘고, 그 시기에 다들 겪는 힘듦과 비슷한 걸 겪은 후에, 일 하나를 제대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데뷔작이 대부분 그때 나왔거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영상을 해 봐야지’ 정도였는데, 그렇다고 그당시에는 그렇게 진지하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잘하는 분들이 너무 많았고 지금처럼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장비도 잘 안 빌려주고 장비도 무겁고 비싸고… 근데 생각해보면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요샌 너무 쉽게 쉽게 되긴 하니까.
비메오 초기에 올라온 것들을 보면 조기석 작가님이랑 한 아트 필름도 있고, 표현 요소도 강하고 오브제도 강렬한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초반의 스타일이 인상 깊었어요. 지금이랑 많이 다르기도 하고요.
그때는 사실 저는 미술과 패션 기반이었으니까, 영화 연출을 모르던 시절이니까 숨기고 싶어서. 숨긴다기보다는 모르기 때문에 잘할 수 있는 강점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고, 표현하는 게 그때는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저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요소이자 잘하는 쪽이었기 때문에… 그때도 재미있게도 영상 팀인데 영상 팀에 저랑 미술감독 한 명이랑 같이 일했습니다. 이상한 조합이죠? (웃음)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인데. 오히려 지금처럼 거꾸로 공부하게 된 게 저는 좀 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할 게 훨씬 많이 남았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초반에 언노운 드레스의 뮤직비디오를 하게 되신 게 어떻게 보면 첫 뮤직비디오였던 건가요? 그건 어떻게 하게 되신 건가요?
지금은 제가 인스타그램을 하진 않는데, 당시에는 주변에서 다들 하니까 ‘재미있겠다’ 싶어서 저도 한동안은 했습니다. 근데 셀카를 올리는 것도 싫고, 사생활이 보이는 것도 싫어서 그냥 작업물 정도만 올렸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일스타그램”이라고 “그만 좀 하라”고 그랬는데, 그런 걸 올렸을 때 그때 당시 패션 필름들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연락을 주신 게 마이 큐(MY Q) 님이었습니다. 마이 큐 님이 언노운 드레스의 회사에 아트디렉터로 계셨습니다. 그래서 연락을 주셔서 “여기 회사에 이런 음악을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너무 매칭이 잘 될 것 같아서 진행해 보면 어떻겠어요?” 해서 “저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언노운 드레스의 뮤직비디오를 봐도 쉽게 가는 장면들이 없잖아요. 그래서 인상 깊었거든요. 그 후에 2016년에 종현님, 그리고 NCT 127 분들 뮤직비디오도 하셨는데, 이때는 앞서 하셨던 거랑 프로덕션 규모도 그렇고 클라이언트의 크기도 그렇고 많은 게 크게 다르잖아요? 그래서 이 시기에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거든요.
그걸 하고 난 다음에 고민이 생겼지, 그 당시에는 고민은 없었습니다. 제가 ‘이 일을 생업으로 살아야겠다’고 했을 때의 굉장히 큰일이긴 했습니다. 그때는 별생각 없었고, 규모가 커지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그때도 미술감독 딱 한 명 데리고 있었습니다. 어리석게도 그렇게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죠. 근데 신기하게도 그때 당시에 SM 엔터테인먼트에 계시던 민희진 이사님도 그렇고, 담당자분도 그렇고 새로운, 신인 감독들을 발굴해서 재미있는 걸 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근데 너무 신인인, 저 같은 애를 데리고 오신 거였습니다. (웃음) 나이야 신인은 아니지만. 근데 사실 저는 일 자체는 ‘잘했다, 못 했다’를 차치하고서라도 그냥 그분들을 만나서 이 일을 하고, 큰 회사 규모의 일을 배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잘 가르쳐 주셨고, 많이 혼나기도 혼났지만. (웃음) 그러고 나서 느낀 바가 사실은 더 많습니다.
그 이후로 한동안은 아예 대형기획사 일들을 안 했습니다. 자의적으로. 연락이 사실 많이 오기도 했었고, 오퍼를 주셔도 그 당시에 할 수는 있었습니다. 원래는 그냥 일의 종류보다는 일의 물성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어떤 일이든 재미있게 할 수 있는데, ‘이런 일만 하다가는 내가 너무 늦게 찾은 이 영상 일이 싫어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순간 들기도 했었고, ‘내 색깔도 많이 없다고 생각했던 상태에서 이런 일들을 계속 쌓다 보면 색깔 쌓는 작업이나, 목소리를 내는 작업을 당분간 할 수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또 그런 시절이 그 당시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잠깐 멈추고 다시 패션 필름으로 돌아가서 그냥 개인 작업을 좀 더 늘리면서 일을 했습니다.
이런 고민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 후로는 작품이 많이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2017년에는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들,선우정아의 “구애(求愛)”, 핫펠트(HA:FELT)의 “새 신발”도 있었는데요. “구애(求愛)”는 사실 안무가님이나 무용수분의 역할도 크긴 하지만 “새 신발”은 그 당시에 인상적이었거든요. 뮤직비디오 자체가 가지는 전체 그림도 그렇고, 정말 1차원적이고 원초적인 생각이지만, ‘아 외국을 로케로 이렇게도 풀 수 있구나’를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는지, 혹은 기획을 기존부터 가지고 계셨는지 궁금해요.
좋아했던 장르에 대한 밀도를 만드는 기간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노운 드레스를 보면 댄스 필름의 형식을 띠고 있지 않습니까? 이야기는 조금 모호하게 놔두고. 당시에도 그 일을 하면서 느꼈던 게, 이전부터 저는 ‘표현을 하는 거에 대한 여러 가지 기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패션 필름이 다행히도 저한테는 너무 감사했던 게, 영상적인 규격이나 포맷에 대한 장벽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만들었을 때 정서랑 느낌이 전달되면 좋은 필름이다’라고 해주는 장르여서. 그런 걸 매번 시도하다 보니까 ‘그러면 내가 모르는 분야에서도 재미있는 표현법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다가, 원래도 현대미술이나 현대무용을 좋아해서 그런 것들을 뮤직비디오나 패션 필름에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에 언노운 드레스 (제의)가 들어와서 마침 공부하고 있던 거를 보여드렸더니 너무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했는데, 사실 너무 얕게 알고 있을 때 하다 보니 너무 장르에 대한 존중이 없이 제가 하고 싶은 것만 갖다가 쓴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댄스 필름은 거의 안 찍었습니다. 그걸 연구하는 기간이 필요해서 많이 보러 다니고, 그러다가 “구애(求愛)”를 할 때쯤에 무용수 친구들도 조금 생기고, 무용 감독을 쓰면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무용 감독을 해 주는 친구한테도 ““구애(求愛)”라는 곡이 이런 곡인데 나는 뭔가 장면이나 서사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몸짓과 어떤 행위로 표현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본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걸 더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와중에 다이나믹 듀오 분들 회사에서 “예은 씨(핫펠트)가 나오니까 한번 만나서 얘기를 해 봐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근데 원초적인 건데, 그사이의 시기가 영상 자체에 대해 공부를 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2016, 2017년이. 아이돌 비디오를 찍고 난 후에, ‘내가 왜 이 장르를 좋아하는 걸까?’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면서 원래 좋아했던 영화도 감독 별로 다 다시 보고 영화 책도 엄청 많이 보고, 지금도 사실 봐도 봐도 끝이 없는데, 그러면서 어떤 메시지 혹은 주제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좀 더 담겨 있는 영화들을 제가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술이 멋있고 자극적이고 센 것보다는 이야기 하나가 주는 감동이, 이야기 하나가 주는 질문이 저한테 훨씬 더 큰 파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 너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쯤에 들어서 그때 저한테 생긴 두 가지 기술, 현대무용이랑 영화 두 개를 같이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은 씨에게 “저 요즘 이런 거 공부하고 있고 표현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괜찮으세요?”라고 했더니 자기도 그런 거 한번 해보고 싶다고 그랬죠.
사실은 “새 신발”이랑 한 곡이 더 있습니다. 두 곡의 이야기를 붙여서, “하나는 조금 표현적으로 나머지 하나는 이야기적으로 만들어서 두 개 이야기를 붙이면 좋지 않겠어요?”라고 얘기했더니 좋아하셨고, 같이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은 씨 얘기 중에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그러면 그걸 다른 식으로 풀어서 얘기하면 좋지 않을까요?” 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로 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절대로 연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걸 가진 분들로 하고 싶었고, 외국 로케이션을 선택한 이유는 크게 이유는 없습니다. 사실 저 때까지만 해도 저는 패션 필름을 하다 보니까 외국 모델들이 훨씬 편했습니다. 그래서 외국인으로 표현하는 게 제가 조금 더 많은 앵글과 기법을 가진 것 같다고 얘기를 했더니 자기도 너무 해외 나가고 싶다고, 호의적으로 해 주셔서 이 노래랑 맞는 분위기의 나라를 고르다가 독일이 좋을 것 같아서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두 개가 그나마 제일 잘 접목했던 영상 중에, 그 연도에서도 제일 많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온더레코드(ONTHERECORD) 런칭 때 올라온 영상들도 인상적이었거든요.
네. 1415랑 예인(YEIN) 씨 꺼 말씀하시는 거죠? 그것도 좋아해 주시는 분이 있군요…(웃음) 그건 아마 예은씨 꺼 보고 연락을 주신 것 같았습니다. 아티스트 친구들 만나서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고, 어떤 음악을 앞으로 해나갈 것이고, 어떤 색깔을 가지고 싶은지에 대해서 많이 여쭤보고, 각각의 색깔이 다르신 것 같아서, 그건 제가 풀면 어떻겠냐고 얘기를 해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음악 잘하는 친구들이어서 저는 뭐 그냥 흉내만 낸 것 아닐까 싶습니다. (웃음)
네 팀의 색깔이 각각 선명하게 구별되기도 하고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백년해로도 그렇고 최근에는 백예린 님과 하셨던 “0310”, “포포”, 서사무엘의 “Costal Wave”까지 어떻게 보면 감독님께서 푸셨던 방법이 변주되면서 쭉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 것들은 호빈 님만 하실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그렇게 풀어나가실 때 어떤 것들을 제일 고민하시는지도 궁금했어요. 각 아티스트와 그들의 음악을 가지고 제작하실 때 어떤 걸 가장 고민하시는지?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저도 자잘하게 음악을 하기도 했었고, 음악을 만들 때 즉흥적일 때도 많지만 거의 다 백그라운드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음악이 탄생하기까지. 그래서 그걸 제일 먼저 궁금해합니다. “음악은 어쩌시다가 만드셨어요?”라는 질문을 거의 먼저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반대로 그런 배경지식 없이 음악을 들었을 때의 인상을 바로 말씀드리기도 하지만 거기에 이분의 배경까지 붙여넣으면 더 확장될 때가 있습니다. 그랬을 때 내가 듣는 인상이 대부분의 대중이 들었을 때의 인상일 거고, 설명을 들었을 때 덮이는 인상이 새롭게 보일 다각도의 인상일 텐데 이 두 개가 조금 더 넓게 보일 방법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금 더 활로가 생기는 편입니다. 그래서 담당자들이랑 얘기하기보다는 아티스트랑 직접 얘기하는 걸 더 선호하는 편이고, 근데 아티스트분들 중에서도 얘기를 별로 안 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그걸 물어가는 과정이 어렵다기보다는 저는 재미있어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많이 묻고… 요새는 많이들 비디오에도 넣고 하시는데, 숨겨 놓는 걸 좋아해서, 이분과 나의 커넥션이잖아요? “너와 내가 만나서 새로운 창작품이 나왔으니까, 우리 둘만 아는 걸 넣어주려고 해”라고 하면 자기 얘기도 하고 근래의 이야기도 해주시고, 왜 음악을 하게 됐는지 그리고 왜 이런 앨범을 기획했고 앞으로는 어떤 가사를 만들 거고…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이게 좀 더 넓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조금 숨겨 주면서 이야기를 확장해 가죠.
(제 작품에 관해) 좋게 말씀해주셨는데, 저는 요즘 제가 그러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요새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어쨌든 제 영상 자체가 좀 모호한 편이고 어렵다는 분도 꽤 많아서요. 제가 과도하게, 쓸데없이 세계관을 만들거나 캐릭터를 엄청 이상하게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뮤직비디오라는 플랫폼 안에서는 그걸 다 압축해야 하고, 소거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까 결국에는 설명하거나 감정을 끌어가는 영상의 플롯들을 다 없애는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애초에 의도한 것보다는 축소된 어떤 것들이 계속 나오더라고요. 물론 그 축소된 것 중에서 다행히 잘 버무려져서 좋게 전달될 때가 있고, 반대로 너무 어렵게 ‘뭔 얘기야? 봤는데 잘 모르겠는데?’라는 피드백들이 있어서 처음에는 그걸 즐기기도 했습니다. ‘찾아보면 다 있는데… 좀 잘 찾아봐 줘’ 이렇게. 당시만 해도 누군가와 교감을 하고 공감을 받는 거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땐 오로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표현하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의 온도나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그거에 대해서는 ‘이건 내가 시간이 지나면 더 폭을 넓힐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공감하는지에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결국 노래는 짧기 때문에, (뮤직비디오는) 앞에 말한 것처럼 어떤 상황과 시간, 많은 변수 안에서 많은 해석을 할 수 있는 유니크한 장르인 것 같습니다. 혼자 청음을 하면서 상상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미 음악이 그걸 대신해주는데 내가 굳이 이걸 확장해서 더 어렵게 만들어주면 보시는 분들이 더 어려워하시겠구나’. 그래서 그 많은, 거의 한 문단의 형식의 비디오들을 한 문장화 시키는 작업으로 많이 변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맨날 이만큼 적었다가 얘를 한 문장으로,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게끔 줄이려고 합니다.
사실 욕심은 정말로 길게, 장황하게 감정을 만들어가고 싶죠. 근데 이미 음악이 해주고 있는 역할이 많은데 제가 굳이 그걸 해치는 것 같아서 어떻게 보면 뒤늦게 뮤직비디오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생긴 것입니다. 좀 그런가요? 아주 예전에는 뮤직비디오를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음악을 표현한다는 건 너무 어려웠고, 감독 친구들이 다 똑같은 경험을 했겠지만, 그 노래를 계속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몇백 번 더 듣다 보면 더 힘들어질 때가 있고… 패션 필름 할 때 노래는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냥 재미있게, 음악 만드는 시간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아, 이것만이 내 살길이다’ 이러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그런 것조차도 못하니까, 어떤 한 곡을 뜯어서 분석하고 옆으로 보고 뒤로 보고 앞으로 보고 이런 작업이 당시에는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좀 재미있어졌습니다. 다시 ‘뮤직비디오가 이런 매력이 있구나’, 그래서 ‘아이돌(작업)도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요즘은 나쁜 의도만 없다면 누구의 음악이든지 재미있게 영상화시키고 시각화시키는 작업 자체가 너무나 매력적인 걸 내가 놓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근데 매번 어려운 건 어렵습니다. 한 문장으로 만드는 건 진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웃음) 오히려 옛날엔 시각으로 만드는, 움직이는 영상들이 더 쉽다면 쉬웠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설명을 안 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설명할 것들이 없었습니다. 이거에 이게 너무 어울릴 것 같아서, 그걸 좀 연구해서 나온 어떤 결과물들의 나열? 좋아 보이는 편집점에 대한 나열? 그런 것도 재미있었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제가 좀 욕심이 났나 봅니다. (웃음) 뭔가 감정을 서로 교감을 하고 싶고, ‘그걸 좀 더 해야 죽기 전에 이거보다 좀 더 이야기를 내가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욕심에 자꾸 시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때는 저도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뮤직비디오가 음악을 듣고 상상할 수 있는 폭을 제한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요. 감독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기존에 상상할 수 있는 생각의 여지가 감독님 덕분에 깊어지고 폭이 넓어진 것도 있거든요.
원래 그게 의도이긴 했습니다. (웃음) 다행히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거의 메인 질문에 해당하는 건데, 선우정아 님과 “쌤쌤’부터 “클래식”, “Fall Fall Fall”, “생애”, “To Zero”, “세레나데”, “도망가자”, “Shuthefxxup”, “멀티플레이어”까지 총 아홉 편을 하신 거 맞나요?
그랬나요? 아, 사실 몇 편은 비주얼라이저이긴 했습니다. 규모가 있는 뮤직비디오 편수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정아 씨 덕분에 좋은 작업을 제일 많이 했습니다.
최근에 그런 작업까지 포함하면 앨범에 수록된 곡 중에 영상을 가지고 있는 곡들이 한 아홉 곡 정도가 되더라고요. 정말 많은 걸 찍으셨잖아요? 밀릭(millic) 앨범을 하셨을 때도 영상을 많이 찍긴 하셨는데, 한 아티스트랑 이렇게 여러 영상을 만들고 호흡을 가져갈 때 가장 힘들거나 고민되는 부분이 있으셨다면? 아무래도 한 앨범에 있는 많은 곡을 다 다르게 풀어야 하는 거잖아요?
연작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걸 했던 분이 (선우)정아 씨. 원래는 자이언티가 연작을 제일 많이 했습니다. 공개가 되지 않은 게 많아서 그렇지. 밀릭은 사실 뮤직비디오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같이했었고, 뮤직비디오는 하나 나왔습니다. 그다음에 많이 한 게 비와이랑 작년에 세 개를 같이 했으니까 비와이가 되겠네요. 일단 자이언티 친구는 빼겠습니다. 너무 가까운 사이니까. 나머지 분들은 어떻게 보면 저도 그렇게 될 줄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일을 하게 된 거고, 그 일을 하다 보니 “한 번 더 해요”가 생긴 것입니다. 근데 저는 아까 말했듯이 무슨 일을 하든 장황하게 만들어 놓는 게 재미있습니다. 그런 장황한 것 중에 이만큼 못 쓴 게 있잖아요? 그럼 다음 곡에 이걸 조금 데리고 갈 수 있는 거죠. 그런 거에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이미 ‘세계관을 넓게 잡고 가야지’ 했던 것들, 비와이 작업물 같은 것들은 처음부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나중에 여기까지 갈 수 있으니까 장치를 미리미리 해 놓고 가자’ 이렇게 하고. 이걸 보는 사람들을 속이기도 했다가 감동을 주기도 했다가 멋있기도 했다가, 이렇게 하는 과정들이 저는 너무너무 재미있는 작업이었고.
정아 씨 같은 경우는 하다 보니까 더 확장된 건데, “구애(求愛)”에 등장하는 메인 댄서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 때 여자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 두 분이 원래 그냥 친한데, 그분들이 다 “백년해로”에 등장합니다. “고양이”는 고양이로 나오시고요. 댄서분은 어떻게 보면 약간 춤을 알려주는, 진혼곡 같은 걸 알려주는 선생님으로 나옵니다. 저승에 춤꾼처럼 나오는데, 크게 역할에 대한 그런 건 없었는데, 이 두 분을 쭉 가져와서 “백년해로”라는 이야기에다가 한 캐릭터 넣어주고 보니까 이분들의 의미가 조금 확장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나왔던 이영아라는 배우를 제가 다시 다른 비디오에 데리고 왔습니다. “남” 때도 그 고양이 친구가 장례식장 분위기로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댄서 친구랑 교감을 하고. 그래서 그 진혼곡이 좀 확장판이었고, 여기까지 하고 이 두 분은 많이 나와서 잠깐 멈춰 두었습니다. 아직 이분들이 또 나와야 할 이야기가 생각이 안 나서. 아무튼 ‘만약에 영아 씨가 안 죽고 프런트에 없었다면, 현세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라고 했을 때,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봐야지 해서 가지고 왔고. 사실 영아 씨는 다른 비디오에서 그걸 가져온 적이 있습니다. 룸306(Room306)이라는 친구들이 있는데 거기 영아 씨가 한 번 나와요. 그게 현세의 이야기고, 딸로 나옵니다.
아직은 미공개인데, 정아 씨 노래 중에 한 곡이 있는데 거기 주인공으로 이 딸이 다시 나옵니다. 제 계획은 영아 씨랑 이번에 “도망가자”에 나왔던 서영화 배우님이랑 같이 나오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선우정아 월드를 넓혀가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정아 씨도 재미있어하고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에서도 재미있어하시고. 정아 씨가 정말 고민을 많이 하고 곡을 만드시는 분인데 사람들은 그냥 평면적으로 듣지 않습니까? 그걸 좀 입체적으로 들었으면 해서 했던 제일 첫 큰 작업이 “쌤쌤”이었습니다. ‘이번엔 제대로 한번 준비를 해서 하자’. 사실 제일 먼저 말해야 했던 부분이, 뭐가 힘들었는지 물어보셨잖아요? 사실 셋 다 돈이 별로 없는 친구들이었습니다. 비와이가 그나마 제일 많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 거의 1인 아티스트 기반의 비용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어떻게 쪼개서 이 많은 비디오를 헤쳐 나가는가’에 대한 고민이 제일 컸지 사실 작업 자체는 저는 너무너무 또 하고 싶고, 재미있어하는 작업이죠. 사실 (백)예린 씨 것도 원래는 편 수가 더 많습니다. 지금 공개된 두 곡 말고도 원래는 더 찍어 왔습니다. 근데 일단 그렇게 무거운 비디오는 아니라서 ‘이건 시기적으로 조금 뒤에 내자’. 그렇게 조금씩 이 친구의 음악을 더 넓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욕심이기도 합니다. 일할 게 많으면 저는 재미있게 하는 편이라서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종사자 입장에서 호빈 감독님의 작품 중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프로덕션의 규모가 안 보인다는 것 같았어요.
(규모가) 작았다, 컸다 해서요? (웃음)
그런 것도 있고, 그래도 종사자들이 일하다 보면 ‘어느 정도 품이 들었겠구나’ 하는 게 보이잖아요? 근데 호빈 감독님 작품을 보면 항상 가늠이 안 되더라고요.
(돈은) 늘 없습니다. (웃음) 없거나 다 쓰거나. (예산을 받으면) 다 쓰려고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제 제가 다 쓰면 모든 스태프가 다 힘들어해서 절약해서 하려고 하지만.
그렇죠. 사실 그런 부분은 모든 분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하니까요. 유독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소속 가수분들과도 협업을 많이 해주셨는데, 포크라노스에서 나오는 작품들하고도 인연이 있으셔서 최근에는 공(gong)님이 저희랑 같이하게 되셨어요. 앞으로 나올 것부터 하시기로 했는데, 공 님과는 다른 형태의 협업이기도 하고 규모가 있다면 규모가 있는 작업이었어요.
그건 사연이 좀 많습니다. 3년 전에 찍은 것입니다. 엄청 예전에 찍은 작업인데, 공 형님 인생 역경이 많아서 늦게 나오게 된 거라서 저도 참 속상한 게 있습니다.
심지어는 곡도 아직 한참 많이 가지고 계시거든요.
엄청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그 형도 음악밖에 안 하는 사람이라. 저는 고향이 부산인데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는데, 어떻게 보면 서울 친구들이라고 보는 친구 중에 제일 오래된 형 중의 한 명입니다. 그때는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시기도 했었고. 힙합이라는 장르를 알려준 형이었고, 잘 됐으면 좋겠죠.
이제 인터뷰가 막바지입니다. 최근 구인을 올리셨어요. 조금 더 크게 앞으로 가시기 위한 건가요?
저는 그냥 여기가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이것도 사실 평생에 가장 무리를 해서 저한테 쓰는 게 스튜디오를 가진다는 거. 그전까지는 스튜디오도 없었고 애들이랑 공장 같은 데에서 같이 지내고 이랬었는데, 애들이 다 나이가 들면서 결혼을 많이 해서, “우리 좋을 때 헤어지자. 어차피 친구들처럼 지내면 되니까”. 그래서 친구들의 규모를 늘리고 싶은 생각은 원래도 없었고 아까도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말도 안 되는 미술감독을 데리고 있던 시절이 지나고 분야가 좀 더 명확하고 일을 분배해줄 수 있고 서로의 역할을 조정할 수 있는 형태의 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PD도 뽑고, 조감독은 원래 있고, 조연출도 원래 있었는데 이 친구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해서 조연출 한 명 다시 뽑아야겠다 싶어서 그 정도로 올린 것입니다. 제 비디오를 좋게 봐주셨다고 하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대부분 저는 사람이 주제가 됩니다. 전체 비디오가 다 사람이 주제고, 제 모든 관심사는 사람이거든요. 어떤 친구는 자연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는데 저는 사람이 무조건 일차적인 관심사라서 오히려 사람이 제일 어렵습니다. 누군가 함께 있는 거, 함께 일하는 거… 그런 것들이 사실 어려운 성격입니다. 그래서 볼륨을 늘릴 생각은 없습니다. 주변에 친구 감독들 보면 혼자 일하는 친구들도 꽤 많습니다. 아예 혼자 활동하시거나 한 명 정도 데리고 하시는데, 그게 너무 부럽다기보다는 그런 게 성격상 맞는데 또 같이 있으면, 에너지가 생기고 행복해질 때가 있습니다. (웃음)
필름 메이커스에도 배우 모집 공고를 내시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막연한 환상인데 감독님은 다른 노하우가 있으신 줄 알았어요.
노하우는 없습니다. 제가 올린 건 아니고 아마 저희 조감독이 찾을 때 급하니까 올린 것 같습니다. 정말 여러 형태로 사람을 찾고 있긴 합니다. 요새는 좀 고민입니다. 사실 좀 욕심이지만 좋은 기회로 작년 말쯤에는 연기자분들과 작업을 몇 번 했습니다. 사실은 너무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못한 분들에게 말도 안 되는 연기 디렉팅을 하면서 만들다 보니까 누가 봐도 연기적인 게 부족하고, 그래서 그런 걸 안 보이게끔 찍다 보니까 영상 자체가 조금 건조하거나 그걸 숨기기 위한 장치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법만 연구가 되고, 오히려 주변에 영화 하는 친구들 만나보면 연기로 어떻게 더 감정을 살릴지 연구를 해야 하는데 사실 그게 무섭기도 하고. 그런 배우들을 못 쓰니까.
뮤직비디오라는 장르 자체가 배우분들이 별로 안 하고 싶어 하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미지를 소비하는 장르이니까. 근데 정말로 시나리오가 좋고 음악이 좋으면 하고 싶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런 부분을 좀 더 연구하고 공부해서 이분들을 설득해서 작업해 봐야지’, 그리고 ‘그게 좀 더 확장되면 재미있는, 쓰레기라도 괜찮으니, 음악 영화 같은 것도 죽기 전에 한 번 만들어 봐야지’ 이런 꿈 같지 않은 꿈이 있어서 했는데 너무 행복했습니다. 제가 이만한 세계관을 만들어 놨는데 그분이 이 세계에 들어가 주셔서 연기해 주시니까 행복했어요. 그거는 아직도 기억이 많이 나서 또 언젠가 그런 기회가 생기면 계속 그런 작업을 조금씩 해 보고 싶은데, 그래도 이 비디오만의 특별함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연기할 때 ‘이 장르도 이런 매력이 있구나’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기도 하고, 그거에 관해 설명하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그냥 뭐 이미지 찍고 가면 되지’ 이런 분들이 꽤, 반 이상 그렇게 오십니다. 그러면 캐릭터 설명을 주구장창 해도 결국엔 그 감정을 이끌어 나가는 시간이 뮤직비디오는 안 되고, 찍는 순서도 드라마나 영화처럼 못 찍게 됩니다. 저희는 시간이 타이트하니까 힘들어하시죠. 감정 내는 기계처럼 일하시니까. 그래서 최근에는 ‘이런 걸 어떻게 하면 없앨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길어진 코로나19와 자가격리, 세계적인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수업도, 업무도 온라인으로 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아마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이럴 때일수록 안심하지
않고 거리 두기를 실천하기를 권한다. 최근 온라인 스트리밍 이벤트가 늘어나면서 볼 것도, 들을 것도 많아졌다. 마음만 먹으면 평소에 보지 못했던 각종 문화
행사를 방에서 누릴 수 있다. 좋은 음악도 많다. 싱글이
아니라 담지 못했지만, 콧(cott)의 EP [Rotary], 윤딴딴의 [신혼일기], 허니배저레코즈의 [HBRTRX Vol.3], 아슬(Aseul)의 [Slow Dance] 등 앨범 단위로 들을 것도 많다. 이번 달에도 많은 싱글이 나왔지만,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몇 곡을
따로 꼽아보았다. 이번에는 각종 TMI도 방출할 예정. 순서는 무순.
A-FUZZ (에이퍼즈) [The
Lamp is Low]
누자베스(Nujabes)라는 이름을 안다면, 싸이월드에서 좀 놀았다면, 혹은 ‘재즈힙합’이라 불리는 프레이즈 샘플링(Phrase sampling)을 기반으로
한 일본 프로듀서들의 음악을 즐겼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피터 드로즈(Peter DeRose)와 버트 쉐프터(Bert Shefter)의 손을 거쳐 로린도 알메이다(Laurindo
Almeida)가 연주하여 누자베스의 곡에 쓰이기까지 여러 과정과 세월을 거쳤고, 에이퍼즈는
이 모든 과정을 품에 안고(?) 리메이크를 선보였다. 원곡에
해당하는 부분을 하나하나 쫓다 보면 더 많은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되겠지만, 사실 그보다는 도기코기와의
조합이 정말 잘 어울린다.
리유(Riyou) [DREAM in DREAM]
탑밴드3에 등장해 좋은 모습을 보였던,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한 밴드 애프니어(APNEA)를 기억하는가? 실리카겔의 김건재도 있었지만, 보컬에는 리유가 있었다. 애프니어의 주축이자 시그니처, 오마이걸, 우주소녀, 아이즈원까지 케이팝 내에서도 이름을 조금씩 비추고 있는
엔소니우스(Nthonius)가 함께 만들었고, 결과는 전자음악을
결합한 알앤비 음악이 되었다. 워낙 다양한 스펙트럼을 오가는 프로듀서와 자기 색채가 확실한 보컬이 만났기에
표현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두 사람이 앞으로 선보일 음악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비단
두 사람의 커리어뿐만이 아니라, 이 곡이 지니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신미도(SIN MIDO) [죄의 사슬]
다소 거칠고 강렬한 뮤직비디오나 비주얼은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다분하지만, 음악만큼은
많은 사람이 좋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혀 다른 몇 가지 장르를 섞을 때 더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많지만, 화학적 결합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그러한 점에서 신미도는 뛰어난 음악가다. 적어도 하나와 다른 하나를
결합할 때에는 두 가지 모두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신미도에게는 그러한 음악적 배경 혹은 자산이
유효한 듯하다. 키라비(Kiravi)와의 호흡도 인상적이다.
결(KYUL) [Polaroid]
조금씩 성장해가는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결의 신곡. 성대결절로 인해
얻게 되었다고 하는 지금의 목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정돈되어 간다고 느끼게 하며, 간결하고 깔끔한
프로덕션은 점차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의 곡에서 빛나는 것은 보컬과
보컬 라인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더 큰 장점을 느끼는 부분은 사운드다.
작곡, 편곡은 물론 믹싱, 마스터링까지 직접
해내는 그에게는 싱어송라이터로서 가질 수 있는 것 그 이상의 자산이 있다. 그가 발표한 곡을 천천히
정주행해보자.
수림(SURIM) [알 수 없어요]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을 담은 곡이 이토록 차분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 줄이야. 항상
수림의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매번 정화된다는 느낌이 든다.
몇 곡을 이어 듣다 보면 수림이라는 음악가가 어떤 사람인지도 얼핏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하지만
어렵지 않게 다가오고, 진심이 느껴지지만, 오히려 그것이
듣는 이에게 감사함을 준다. “꾸밈없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원테이크로 녹음을 진행했고 녹음 중에 들어간
대화를 삭제하지 않았”다고 하니, 중간에 갑자기 사람 목소리(?)가 나온다고 해서 화들짝 놀라지 말자. 아마 많은 이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곡이 아닐까 싶다.
추다혜 [몽금포]
그런가 하면 매력이 넘치다 못해 그것이 아우라처럼 느껴지는 예도 있다. 씽씽의
일원이었다는 한 줄로는 너무나도 설명이 부족한, 음악극부터 소리까지 다양한 장르와 영역을 아우르는 멀티
엔터테이너 추다혜가 자신의 첫 싱글을 발표했다. 서도 소리, 무가로는
따라갈 자가 없을 듯한 재능 있고 젊은 마스터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뿐이다. 록, 팝의 문법으로 재해석한 몽금포타령에는 흥미로운 편곡이 더해져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독특한 듣는 재미를 준다. 앞으로 더 큰 무언가를 들고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해보자.
Lofibaby(로파이베이비)
[Decalcomanie]
로파이베이비가 [Body Painting]에 이어 이번에는 [Decalcomanie]를 선보인다. 사랑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시각적 표현에 비유하는 두 싱글을 통해 두 번째 정규 앨범에 관한 힌트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섹시하고
강렬한 이전 싱글과 달리 이번 곡은 좀 더 서정적이다. 로파이베이비만의 질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표현의 스펙트럼은 점점 더 정교하게 넓어지는 중이다.
paulkyte(폴카이트)
[Found]
재능 있는 프로듀서이자 피아노 세션이자 싱어송라이터인 폴카이트가 EP 발매
전 선공개 싱글을 조금씩 선보이는 중이다. 폴카이트만의 감성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고 싶다면, 그리고 폴카이트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일단 “Found”와 “서운해” 두 곡을 들어보자. 참고로
폴카이트는 대도서관의 피아노 선생님이자 백예린의 세션 멤버이자 작곡가이기도 하다. 재능 있는 그의 예능적
순간을 보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검색해보자.
YESEO [Beautiful Creature]
어마어마한(?) 해외 팬을 거느리고 있는 예서의 새 싱글이다. 항상 긴 공백을 깨고 온 뒤의 음악은 전작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팬의 입장에서는 기다림의 시간이 싫겠지만 예서는 그만큼의 대가를 들고 돌아오기 때문에 밀당의 귀재가 아닐까
싶다. 이번 싱글은 정규 앨범 발표 이전의 예서를 떠오르게 하면서도,
전자음악의 색채가 강하면서도 밀도 높은 편곡으로 좋은 팝 음악을 완성했다.
데이먼스 이어(Damons Year) [Rainbow]
(식상한 표현이지만) 흉내
낼 수 없는 목소리, 목소리로 만드는 분위기, 덤덤하게 담아내는
진심 어린 가사… 흔히들 이야기하는 입덕포인트가 산더미인 데이먼스 이어가 공연장에서 몇 차례 들려준
바 있는 “Rainbow”를 음원으로 공개했다. 사실 3, 4월에는 계절 특수를 노리는 밝고 예쁜 사랑 노래가 보통 많이 나오는 편인데, 세상이 이러하니 그러한 곡이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렇게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곡이 평소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듯하다.
THREE1989 [Part Time Summer]
에프에스 그린(FS Green)이라는 이름을 쓰던 사내가 있었다.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와의 협업은 물론 보일러 룸(Boiler Room)을 비롯한 여러 플랫폼에 이름을 비추었고 디제이/프로듀서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러던 그가 미다스 허치(Midas
Hutch)라는 또 다른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훵크 사운드를 기반으로 재치 있는 음악을
선보였다. 이태원 소프(Soap)에 가끔씩 나타났고, 지역과 색채를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런 그가 일본의
팝 밴드 쓰리(THREE1989)를 만났다. 쓰리에 관하여
궁금한 사람들은 유투브에 검색해보자. 아이콘티비와 진행한 인터뷰가 있다. 쓰리 또한 일본에서 좋은 음악으로 입소문을 타는 중인데, 이번에
굉장히 신나는 곡을 함께 만들었다. 정말 잘 만들었다. 꼭
들어보자.
이루리 [나의 곁에 있어줘]
사실 이번에 발표한 “나의 곁에 있어줘”는 곡의 구성부터 소리의 구성까지 매력적인 부분이 워낙 많아서 지극히 나의 취향만으로 따지자면 이루리라는 음악가가
발표한 곡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한다. 레니(Leni)가
함께 참여했기에 달라진 부분도 있겠지만, 음악가가 직접 믹싱했다는 점도 (지극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이다. 음악적 면모를 강조하는 그런 점에서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소리가 있었을 것이고, 그게 충분히 드러났다는 것으로 생각해서다. 그러한 부분을 다 떠나서 정말 좋은 곡이다.
Special / 한국 최고의 인디 음악을 하루종일, 포크라노스 유튜브 뮤직 라디오 런칭!
Intro | 포크라노스를 소개합니다.
전에 없던 한국 최고의 인디 음악을 소개하는 포크라노스입니다.
미래의 취향을 발견해보세요! 당신의 음악 친구, 포크라노스로부터.
Review | 2019년 포크라노스 돌아보기
지난 한 해, 포크라노스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포크라노스가 작년 펼친 활약상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텀블벅 오픈
포크라노스 자체를 현실 세계에 더 전파하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포크라노스의 브랜드를 공유하기 위해 지난 10월, 텀블벅을 진행했습니다. 만년 다이어리부터 하루 동안 들을 음악을 기록하는 ’Songs to Listen’ 메모지, 디지털 뮤직 딜리버리 브랜드의 정체성을 반영한 스티커팩과 한정 후드티까지. 포크라노스의 이념과 브랜드를 투영한 머천다이즈는 128%라는 초과 달성과 함께 성공리에 끝이 났습니다.
포크라노스 컴필레이션 Vol. 3 [웅성웅성] 발매
2017년을 시작으로 매년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는 포크라노스. 그 세 번째 컴필레이션이 [웅성웅성]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발매되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의 ‘웅성웅성’에서 착안해, 대중과 평단에서 큰 관심과 주목을 받는 뮤지션을 한자리에 모은 앨범이지요.
데이먼스 이어, 박문치, 까데호, 보수동쿨러 등 저마다의 매력을 지닌 열두 팀은 2020년 현재도 인디/메인스트림 필드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온라인 컨텐츠 제작: 싱글 콜렉션, 첫 앨범 인터뷰, 새가요 라디오
‘큐레이터’이자 ‘크리에이터’를 추구하는 포크라노스 답게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에서 ‘가장 새롭고 신선한’ 음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번 살펴볼까요?
1. 블럭의 싱글 콜렉션
에디터 블럭의 싱글 콜렉션은 한 달간 포크라노스를 통해 발매된 작품 중 주목할만한 열 건의 싱글을 꼽아 소개하는 리뷰 컨텐츠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다양한 작품이 발매되는 현재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 블럭의 날카로운 시각은 음악을 디깅하는 좋은 나침반이 되어 줍니다.
2. 첫 앨범 인터뷰
‘처음’이란 단어는 늘 우리에게 설렘을 안겨다 주죠. 에디터 이지영의 ‘첫 앨범 인터뷰’는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궤도에 진입한 음악가의 처음을 돌아보는 인터뷰입니다.
김사월, 신해경, 구원찬, 김오키 등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만한 뮤지션의 데뷔, 그리고 첫 앨범을 발매하기까지의 여정을 확인해 보세요. 훗날 한국 인디 씬의 사료로도 손색이 없을 ‘첫 앨범 인터뷰’는 음악가의 현재를 담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늘 함께합니다.
3. 새가요 라디오
2018년 11월 처음 시작을 알린 새가요 라디오는 2019년 한 해 동안 격주 목요일 CASPER RADIO를 통해 진행된 오디오 쇼입니다. DJ/에디터 키치킴이 호스트로 함께 한 새가요 라디오는 장차 새로운 K-POP으로 자리매김할 ‘새가요’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창구가 되었습니다.
데이먼스 이어, 오핑, 위수, 피셔맨 등 평소 매스미디어에서 만나기 어려운 음악가들의 이야기와 라이브를 소개했던 새가요 라디오는 12월 신인류와의 방송을 마지막으로 시즌 1을 끝내고 개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모습과 함께 다가올 포크라노스의 오디오 쇼는 어떤 모습일까요?
오프라인 이벤트: Pop-Up Artists
포크라노스가 조명하는 아티스트에게 오롯이 24시간을 집중하는 오프라인 기획 ‘Pop-Up Artists’ 입니다. 전시, 음감회, 라이브, 일일 카페 등 다방면의 형태로 아티스트를 조명한 ‘Pop-Up Artists’에는 오존 (O3ohn),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 데이먼스 이어가 함께 했습니다.
Grand Open | 유튜브 24/7 뮤직 라디오 런칭!
포크라노스의 24/7 뮤직 라디오가 본격적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포크라노스 에디터가 엄선한 한국 최고의 인디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감상하세요. 약 700여곡에 달하는 인디 아카이브를 24시각 제공하는 뮤직 라디오를 포크라노스 유튜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Artwork | 24/7 라디오 아트웍 공개 (by riroo)
크리에이터 리루(riroo)와 함께 협업한 포크라노스의 24/7 라디오 아트웍입니다. 한강을 배경으로 인간과 동물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포크라노스’라는 브랜드명의 어원이 된 공룡과 포크레인이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riroo만의 개성 강한 색채가 오롯이 반영된 아트웍과 함께 즐겨 주세요.
Interview | 리루와의 미니 인터뷰
리루 riroo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일러스트레이션, 애니메이션, 무대 디자인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는 크리에이터이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그림 그리는 리루입니다.
Q. 보통 작업은 어떤 과정으로 진행하시나요?
평소에 관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의 습관을 발견하거나 특정 장소의 사람들로부터 공통분모 찾기 같은 일이요. 그리고 관찰한 것을 잘 기록해두었다가 그림으로 그립니다.
Q. 이번 아트웍 작업을 하며 가장 중점적으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포크라노스의 공룡 캐릭터가 이질적이거나 무서워질까 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원래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동물화시키려고 했지만, 공룡이 생태계 피라미드 가장 꼭대기에 있다 가정하면 결국 모두가 잡아먹히는 상상을 하게끔 할까 봐 스케치 마지막까지 캐릭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Q. 디테일이 많은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꼽는 최애 파트는?
용변 보는 강아지…
Q. 유튜브 24/7 라디오를 감상하며 인상 깊었던 음악이 있었나요? 그 이유도 간단히 소개 바랍니다.
라디오를 듣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뮤지션은 Summer Soul 님 입니다. 알고 있던 뮤지션이지만… 라디오를 통해 목소리를 듣게 되니 반갑더라고요. 목소리가 정말 매력적이시고 영어 발음이 너무 좋아서요.
Q. 본인의 시그니쳐 캐릭터라 할 수 있을 ‘희동이’에 대한 소개를 하자면.
희동이는 ‘서’씨이고 풀네임은 서희동입니다. 8살이고 저희 가족과 같이 살아요. 코리안숏헤어 품종에 고등어 무늬인데 그림으로 보여지는 희동이는 분홍색에 꼬리만 줄무늬입니다.
희동이의 실제 모습과 그림이 다른 이유는 피사체를 실물과 흡사하게 그리면 그림을 보고 상상할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지요. 저마다의 상상 속 희동이가 있다는 건 재밌는 일 같습니다. (사실 똑같이 못 그리기도 합니다.)
Q. 마지막으로, 개인의 향후 계획이 있다면 자유롭게 소개 바랍니다.
5월 디뮤지엄과 구슬모아당구장 전시에 참여합니다. 생일과 관련된 재미난 애니메이션 몇 가지를 준비했답니다. 그리고 6월 경기상상캠퍼스에서 ‘반려동물 유기’ 문제를 지적하는 도자기로 꾸려진 전시도 한답니다. 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2020년 상반기가 지나기 전 저의 만화책이 나온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과 구매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너무 끈끈한 관계였어요. 그래서 어떤 시기에는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어요.” “한때는 사랑하다 증오하고, 창피해하다 만족했지만 지금은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스스로를드러내기 위해 ‘나’는 무엇이든 만들어내고 담아낼 수 있다. 허나 너무 많이 담아냈기에 도리어 그 모습을 마주하기가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나와 나를 분리할 수 있게 된 순간, 그때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8년 3월 발매된 ‘김해원’의 첫 번째 앨범 [바다와 나의 변화 Sea And Myself]의 이야기다.
Q. “바다와 나의 변화 Sea And Myself” 이후로 어떻게 지내셨어요?
같은 해에, 김사월 씨의 앨범 “로맨스”에 참여했어요. 그 후론 “움직임의 사전”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에도 참여했고, 영화 “윤희에게” OST 작업도 했어요. 작년 여름엔 황예지 작가의 사진전 “마고”의 음악 작업을 함께 했어요.
Q. 황예지 작가는 김해원의 앨범에, 김해원은 황예지 작가의 개인전에, 서로의 첫 작업물에 함께 했어요.
그러게요, 이렇게 말로 들으니 더 뜻깊네요. 첫 솔로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 예지 작가의 사진이 가장 많이 생각났어요. 작가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저와 뭔가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번에는 예지 작가가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당신이다, 함께 작업해 보자.” 얘기를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Q. 서로의 작업에 참여한 소감은 어땠나요?
작업 끝나고 나눴던 대화들이 많이 기억나요. 제 앨범이 발표되고, 이 과정에서 느낀 것들에 대해 솔직한 얘기를 나눴어요. 그로부터 오는 배움이 있었고, 이후에 어떤 생각과 행동을 취하면 좋을지 힌트를 얻었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이번 전시 후에는 서로에 대한 유대감이 더 커진 것 같아요. ‘믿음과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작업자가 곁에 생겼다.’는 기분이 들어요. 피처링으로 참여해준 김사월 씨도 제게 그런 사람인데, 작업 끝나고 셋이서 함께 얘기를 나눴어요. 그 대화를 글로 남기기도 했고요. 그런 것들이 참 좋았고 영감을 받는 시간이었어요.
Q.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걱정되는 것들이 많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부분이 그랬어요?
저한테 있어서 앨범의 의미가 계속 변해요. 느낌이 매번 달라요. 그러다 보니, 이 앨범과 나와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된 건가? 내가 이 앨범에 대해 제대로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Q.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되게 좋은 걸 했구나, 싶어요. 오랜만에 큰 소리로 들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게 놀라웠어요.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못 했거든요. 이번에 처음, 그때의 나는 그대로 있었지만 음악은 계속 이어왔구나 라는 거창한 생각을 했어요. 음악이 어떤 시기에만 존재하는 물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얽혀있는 수많은 감정과 음악을 분리해서 들을 수 있게 됐어요.
Q.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계기가 있을까요?
최근이에요. 음악을 시작하고, 이 앨범이 나오기까지 많이 힘들었나 봐요. 어떤 일에 많은 힘이나 울음을 쏟고 나면 지치잖아요.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런 행위를 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이 너무 치열하고 고독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도리어 지금 더 좋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지금의 이 반짝이고 붕 뜨는 감정을 그때도 느꼈을 테지만, 눈치채지 못했던 거죠. 그걸 마침내 알아채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이 작업물에 제가 너무 많이 이입했었어요. 제가 음악의 화자와 동일한 선상을 걸었던 거죠. 어느 정도 분리해야 했는데, 너무 끈끈한 관계였어요. 그래서 어떤 시기에는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어요.
Q. 김사월X김해원, 영화음악의 작업들과 솔로 앨범을 준비하던 과정은 어떻게 달랐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는 이전 작업들에 담긴 것을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른 음악가들을 지켜보고 조력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역할이 아닌 ‘김해원’의 음악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그 욕구를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어서 솔로 앨범 작업을 시작했어요.
처음은, 나를 향한 기대치나 인식이 전혀 없는 상태잖아요. 드디어 나를 드러내는 순간, 이래저래 마음대로 해볼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예요. 그런데 저는 김사월X김해원, 영화음악 등으로 제 일부를 내보인 뒤였어요. 그것들은 예상도 못 했던 좋은 반응으로 돌아왔고, 어딘가에 각인된 것 같았어요. 제가 해온 것과 별개로 “이게 진짜 김해원의 음악이에요.” 얘기하고 싶은 앨범을 만들면서 스스로와 싸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동안은 ‘음악을 온건히 잘 담아냈나? 정말 만족스러운가?’ 괴롭기도 했어요.
Q. 마침내 앨범이 발표되고 나선 어땠나요?
아쉽고, 좋고, 드디어 해냈고, 내 것인데 나 같지 않고, 품어주고 싶고, 여러 감정이 들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좀 흘렀어요. 새로운 곡과 다른 작업들이 쌓이면서, 내 음악이 어떤 방식으로 출발했든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한 관점에서 솔로 앨범뿐 아니라 다른 작업들도 모두, 제 것으로 동등하게 바라보게 됐고요. 솔로 앨범만을 ‘나’라고 받아들였던 마음이 달라졌어요.
결과물을 남기는 것은 다음을 기약하는 일이고, 결국 다른 시도도 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지금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뻐요. 한때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간이 흐른 후의 결과물을 마주하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무엇이든 변하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고, 그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Q. 이 앨범에선 김해원의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앨범을 들여다보면 화자가 무언가를 굉장히 갈망해요. 어떤 욕구를 생성하고, 잃어버리고, 그걸 다시 찾으려고 해요. 나라는 사람은 있는데 찾아다녔던 대상은 불분명해서, 앨범을 발표하고 나서도 뭔가를 찾은 기분이 명확하지 않았어요. 이제 생각해보니 그게 ‘나만의 것’이었던 것 같아요. 그 행위 자체가 아름다웠다는 걸 느끼게 됐고,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Q. 왜 ‘바다’를 사용하셨어요?
뭔가를 발화하고, 소리를 내는 데 있어 배경이 필요했어요. 저한텐 그게 되게 중요했어요. 내 배경이 뭘까, 이 음악이 어디로부터 온 걸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게 바다였어요. 무언가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얻게 되는 공간 중 하나가 바다예요. 되게 단순한 생각인데, 이름에 바다가 들어있거든요. 그런 막연한 믿음이 있어요.
Q. 이 앨범을 작업하던 때에도 바다에 가셨어요?
제주도에 몇 번 다녀왔어요. 바다에 가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해요. 저는 익숙한 것은 길게 관찰하지 않아요. 지금 이 골목을 유심히 보지 않는단 말이죠. 감흥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일상적인 공간과 상황에선, 오히려 무언가 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익숙하지 않은 곳에 가면 관찰을 하고,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니까 생각을 많이 해요. 그로부터 감흥을 얻어요. 이 앨범을 만들 때도 그런 기회를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Q. 앨범을 작업하던 때의 어떤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있나요?
혼자 제주도에 간 적이 있어요. 숲길을 지나고 있는데 김이 서린 유리창 너머로 나무가 빼곡하고, 그 사이로 해가 들어왔다 나갔다 했어요. 그 장면이 되게 많이 생각나요. 자연으로부터 감동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도와줬던 친구들 생각도 많이 나요. 몇 개월 전부터, 함께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어 얘기를 나눈 친구가 있었어요. 이제 녹음을 해도 되겠다 싶어 연락했는데,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럼에도 그 친구가, 같이 노래 부르기로 했던 약속을 잘 지키고 싶다는 말을 해줬어요. 그 대화를 나누던 순간이 기억나요.
발매공연을 하던 때도 생각나요. 공연이라는 게 분주히 움직여야 하고, 여유롭게 준비하기 어려운 시간이잖아요. 첫 공연 리허설을 할 때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어요. 무대 위에 걸터앉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던 제 모습이 생각나요. 그 순간만큼은 정말 편안했나 봐요.
Q. 김해원의 다음 솔로 앨범에 대해 구체화된 계획이 있나요?
내년 정도에 무언가를 하고 싶어요.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지금 우선순위가 좀 더 높은 건 김사월X김해원 앨범인 것 같기도 해요. 솔로 앨범은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지만, 조급한 상태는 아니에요. 다른 작업은 조금 쉬고 있어요. 바쁜 시기가 아니기도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볼 작업이 또 들어오겠죠. 그냥 지금은, 음악도 많이 듣고 좋은 상태로 지내고 있어요.
Q. “바다와 나의 변화 Sea And Myself”가 김해원에게 어떤 앨범으로 남길 바라나요?
이 앨범이 저한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사람이 어떤 시기에 존재하면, 음악도 그 시기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나라는 사람은 어떤 시기에 머무를 수 있지만, 음악은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때는 내 음악을 사랑하다가 증오하고, 창피해하다 만족했지만 지금은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뭔가를 시작하려면 안에 있는 걸 한 번 뱉어내야 하는데, 이 앨범이 저한텐 그런 의미가 있어요. 제가 다른 것을 해낼 수 있는 데 많은 도움이 돼요. 지금의 저는 또 다른 걸 하겠지만, 이때 정말 좋은 걸 해냈던 것 같아요. 칭찬해주고 싶어요, 그때를.
집콕 혹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단어가 화두이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자택근무를 하는 요즘, 작은 방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무언가는 필수에 가까워졌다. 실제로 영화를 비롯해 각종 컨텐츠 소비가 많아지고 있는 요즘, 좋은 음악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이 시국에 출퇴근을 하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도 새로운 음악을 만나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이 필요하다. 편안한 노래부터 자극을 주는 노래까지, 다양하게 만나보자.
까데호 – Cyber Holiday (Feat. 넉살)
까데호가 넉살과 함께 싱글을 발표했다. “Cyber Holiday”라는 곡은 요즘처럼 휴가를 갈 수 없는 시기에 화면을 통해 휴가를 가는 모습과 서로가 만나지 않고 소통하는 부분까지 담아냈다. 이보다 더 요즘에 딱 맞는 곡을 찾기 힘들 정도다. ‘코로나 지나면 만나자’는 인사가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솔직히 코로나를 이겨내고 만날 수 있지만 늘 ‘밥 한 번 먹자’고 하고 인스타에서 하트를 주고 받는 우리의 관계가 의자에 앉아서 맞이하는 해외여행만큼이나 편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넉살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진한 랩과 까데호의 부드럽고 유연한 연주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그림 또한 감상 포인트다.
헤이트 (hate.) – Blue.
까데호가 범접할 수 없는 케미를 선보인다면, 헤이트(hate.)는 좀 더 오밀조밀하면서도 치밀하게 연주를 엮는다. 블락스와 겨울에서 봄, 불고기디스코까지 분주하게 활동하는 김형균부터 뉴욕에서 공부도 하고 활동도 하다 돌아온 김영재, 힙합/알앤비 음악 시장에서 최근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제임스 키스에 재즈, 블루스를 비롯해 재달과도 호흡을 맞춘 류인혁, 이유성까지 라인업 조합이 상당하다. 이들의 합을 제대로 느껴보자. “Blue.”라는 곡이 아주 적격이다.
조제(Josee) – 20
아는 사람 사이에서는 유명한, 은근히(?) 많은 사랑을 받는 조제가 “20”이라는 곡을 들고 돌아왔다. 조제 특유의 나른하면서도 선명한 사운드스케이프와 음색이 더해져 그의 노래를 처음 들어도 왜 찾는 사람이 많은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꾸준히 더해질 조제의 음악을 지금부터 천천히 하나씩 복습해보자.
너와 – 보고 싶은 너에게
이성경x이루리로도 알려진 너와는 좋은 싱어송라이터다 보통의 싱어송라이터처럼 간결한 구성으로 곡을 구성하고 노래를 부르지만, 너와의 음악은 시작하는 순간부터 공기가 달라진다. 간결함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보고 싶은 너에게”는 훌륭한 발라드 넘버 그 이상의 감상을 준다. 아마 보컬의 음색, 곡을 구성하는 소리의 질감이 다른 온도를 만든 것이겠지만, “너와”라는 음악가만이 전달할 수 있는 이 감성은 쉽게 짧은 글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꼭 들어볼 것을 권한다.
파효 – 살얼음
“살얼음”은 앞서 선보였던 같은 세 글자 제목의 곡, “종이학”과 “고양이”와는 다르다. 이 곡이 파효라는 음악가의 전체에 있어서 어떤 부분인지, 얼마나 큰 부분인지 내가 감히 가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 막 싱글을 선보이기 시작하는 음악가를 통해 이렇게 마음에 드는 곡을 만나게 되다니 그저 반가울 뿐이다. 서늘한 분위기 가운데 던지는 가사가 박히며, 음색 또한 절묘하다. 순전히 내 취향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곡에서의 미묘한 완급조절과 정서만큼은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김마리 – 나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반면 지금까지 한 번도 소개하지 못했지만 그 사람의 감성이 정말 좋아서 종종 들어온 음악가가 있다. 바로 김마리다. 솔직히 나도 포크라노스 유통작이 아니었다면 발견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일상에서 쓸 수 있는 언어를 이렇게 예쁘게 엮을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이렇게 자신만의 표현으로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다. 간결하고 직관적이지만, 허투루 쓰지 않은 한 줄 한 줄과 그것을 전달하는 목소리가 정말 좋다.
Nubset – 1000/0
갑자기 분위기가 크게 바뀌지만, 넙셋(Nubset)은 ‘얼터너티브 힙합’이라는 키워드와 잘 어울린다. 물론 누군가가 명확한 기준을 내세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안’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 그것이 얼마나, 어떻게 유효한지에 관한 논의도 해야 한다. 그런 복잡한 문제를 제쳐두고, 넙셋은 넙셋만이 줄 수 있는 청각적 쾌감이 있다. 트랙에서 오는 공격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만 것 아니다. 그렇다고 넙셋이 소리를 지르고 소위 말하는 과격한 스타일을 선보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넙셋은 독특한 풀이 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SINCE – NEW SHIT
마이크스웨거를 통해 주목을 받은 신스(SINCE)는 최근 “Raw Sh!t Cypher Vol 02”라는 컨텐츠에서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다. 비록 선보인 랩의 길이는 짧지만 자신만의 무기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듣는 이에게 각인시켜 준 듯하다. 매력적인 톤과 안정적인 스피팅, 속도감 있는 랩에서 오는 타격감과 리듬감은 그 자체로도 실력을 입증하는 동시에 충분한 차별성이 된다. 앞으로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신승은 – 올해의 운세
요즘은 랩 가사에서는 흥미로운 감각이나 무릎을 탁 칠만한 통찰을 찾기 힘들다. 오히려 다른 장르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신승은의 “올해의 운세”가 딱 해당하는 예시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짧다면 짧은 가사 안에는 페이소스부터 시작해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다. 여지를 남기는 결말은 덤.
크리스탈 티 – 그곳에 닿아줘
특정 장르, 특정 지역, 특정 시대, 특정 분위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아트워크부터 영상까지 함께 접하고 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리스탈 티가 하는 음악이 재현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나올 뮤직비디오부터 다음 싱글까지, 더 많은 것이 기대된다.
천미지 – 몸
곡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는데, 호주의 여성학자 엘리자베스 그로스(Elizabeth Grosz)는 몸 페미니즘에 관하여 구체적인 화두를 던져왔다. 남성중심주의적인 사고는 인간의 성별에 따른 육체를 이야기할 때에도 여전히 드러나는데, 이러한 관념을 뒤집기(혹은 깨기, 극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성차화된 몸을 이야기하며 남성의 몸이 지닌 특수성을 지적한다는 것이었다. 천미지는 “성차화된 몸을 가진 사람이 욕망의 대상으로 살아온 삶의 피할 수 없는 위태로움을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소개를 남겼다. 이야기하고 나니 연관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분절되고 타자화되며 욕망의 대상으로만 남은 여성의 몸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인 묘사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얼마나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포크라노스에서 썼던 싱글 콜렉션을 다시
열게 되었다. 다른 글을 써볼까 잠시 고민도 하고 어떤 내용을 담는 것이 좋을까 열심히 궁리했지만, 구관이 명관이라고 하나라도 오래 해보자는 생각에 결국 돌아왔다. 아마
많은 이들이 나처럼 뭔가를 하다 말 것이며, 1월에 만든 다짐이 12월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사실 뭐 어떤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한 해의 시작에 어떤 싱글이 있었는지, 어떤 좋은 음악이 있었는지
천천히 살펴보며 2월의 중순, 숨고르기라도 한 번 해보자. 이미 1월에 짜놓은 계획이 어긋났을 수도 있지만, 좋은 음악을 들으며 잠시 짬을 내 여유를 가지다 보면 또 한 번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딱 열 개만 고르려니 힘들었다.
애리 – 신세계
이 곡은 애리의 신세계이자 우리에게 신세계이기도 하다. 포크 음악, 락 음악으로 분류되던 애리를 이제는 팝 음악, 혹은 전자음악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동시에 곡을 듣는 사람도 새로운 무언가에 눈을 뜨게 된다. 변화가 있지만, 우리는 더 큰 즐거움과 행복을 함께 만나게 되었다. 애리의 음악이 확장하는 과정은 어쩌면 정말 자연스러운 동시에 당연한, 그리고 좋은 음악가가 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일지도 모른다. 과거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던 “신세계”를 생각하면 그 변화의 과정이 더욱 크게 다가오며, 그래서 다음 곡이 더 기대된다.
ACACY – MMMM
재능 있는 래퍼 아카시는 꾸준히 싱글을 발표하며 자신의 특징을 세상에 드러내는 중이다. 사실 그러기에는 아카시라는 음악가가 가진 캐릭터나 성격은 확실하다. 매력적인 멜로디 메이킹은 물론, 때로는 기술적으로 접근하다가도 특정한 무드를 만들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아카시의 음악은 이전 싱글과 함께 모아서 들어봐도 흥미로울 것이다. 신선한 무언가를 원하는 힙합 음악 애호가라면 꼭 들어보자.
천용성 – 중학생
2019년 화려하게 등장하여 많은 주목을 받은 천용성은 다음 작품을 내는 데 있어서 부담스러웠을 법도 한데, 굉장히 자연스러운(?) 싱글을 발표해 자신이 발표했던 음악적 면모의 연장선을 들려준다. “중학생”과 “분더바”는 성격이 다른 두 곡이다. 하지만 천용성이라는 음악가를 이해하는 데에는 다른 방식으로 도움이 되는 곡들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와 지니 매거진에 있으니, 항상 매력적인 문장을 쓰는 그의 글을 읽어보길 권한다.
제리케이 – 16 Ain’t Enough
어느덧 16주년이다. 16년이라는 긴 시간 생존하기란 그 어떤 장르에 있는 음악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그 자체만으로 칭찬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단순히 오래 했다는 것만으로 존경 받기는 힘들다. 제리케이는 항상 현재진행형이다. 늘 화두를 던지고, 새로운 옷을 입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런 제리케이가 자신의 16주년을 기념해 싱글을 발표했다. 16마디라는 랩 음악의 상징적인 숫자와도 맞아 떨어지지만 단순히 채우기 위한 16마디가 아닌, 어떤 내용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는 자의 ‘16’이라는 중의적 의미에서 들어볼 필요가 있다.
폴립 – When Wolves Cry
대구를 기반으로 한 밴드 폴립의 “When Wolves Cry”는 어딘가 치열한 듯 보이면서도 안타까움이 느껴지고, 처량함 혹은 외로움마저도 느껴진다. 안현우, 전성현, 김예지 세 사람으로 구성된 밴드의 신곡은 기존에 발표한 “Midnight Witches”의 연장선이라고 하며, 어딘가 투박하고 옛스럽지만 묘하게 에너지도 느껴진다. 폴립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 곡일지도 모르겠다.
류나우 – Love you better
꾸준히 좋은 곡을 발표하는 류나우의 신곡은 기존에 발표했던 일련의 흐름과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 90년대의 알앤비, 80년대의 신스팝에 좀 더 근접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다소 낯설다는 기분, 그 장벽 하나만 넘으면 좋은 음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추천한다.
Jade – Letters
조금씩 다른 결의 음악을 선보이면서도 결국은 하나의 테마, 혹은 색채로 묶일 수 있는 작품을 발표하는 쟈드의 싱글 [Letters]는 한국어와 영어로 가사가 구성되어 있다.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세 언어를 구사하며 쟈드는 언어마다 조금씩 다른 온도를 부여하고, 다른 색채를 풀어낸다. 가사를 어떤 언어로 쓰는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그 차이를 듣는 것도 쟈드의 음악을 감상하는 남다른 포인트가 될 것이다.
형선(HYNGSN) – Cocktail
지난해 [DAMDI]를 통해 주목을 받은 형선(HYNGSN)이 싱글 “Cocktail”을 발표했다. 전작부터 좋은 음악가들이 참여했고, 이번에는 비앙(Viann)과 재규어중사(SFC.JGR)가 지원사격에 나섰다. 재능 있는 네오 소울 음악가의 발견이다.
사공 – 후회를 하네, 다짐을 하네.
매력적인 싱어송라이터 사공이 싱글로는 처음 발표한 앨범이다. 전작에 해당하는 곡이 있기에 찾아서 들어볼 것을 권한다(물론 들어보지 않는다고 하여 이번 싱글을 감상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특정 장르보다는 특정 스타일을, 혹은 감성을 짚을 수 있을 것이다. 옛 한국 음악의 정서도 자연스레 자신의 것처럼 지니고 있어서 한국의 포크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특히 권한다.
jayvito – 돌아가자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알려진 제이비토가 새롭게 싱글을 발표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꾸준히, 묵묵히 이렇게 오랜 시간 자신의 길을 갈 줄은 누가 예상했을까? 그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음악을 해오는 정도로 기억되었다면, 이제 제이비토는 오직 자신만 갈 수 있는 그런 길을 걷는 이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이번 곡은 그 여정 안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동시에 제이비토라는 음악가만의 차별적인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곡 중 하나다.
“그런 부분에서의 기쁨을 모르는 편이에요. 사랑할 때 빼곤 기쁨을 잘 못 느껴요.” “사회에 사랑이 없는 것 같아요. 좀 더 사랑하고 평등하다는 걸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만들었어요.” 1970년대에도, 2010년대에도 여전히 사랑이 없는 사회를 향해 자신의 첫 분노를 던졌다. 7년이 지난 지금, 그는 과연 평등하고 사랑 넘치는 사회를 살고 있을까? 2013년 6월 발매된 ‘김오키’의 첫 번째 앨범 [Cherubim`s Wrath (천사의 분노)]의 이야기다.
Q. 새 앨범 [포 마이 엔젤] 발매하셨죠. 준비 소식 듣고, 실제 발매까지 금방 끝나서 놀랐어요.
녹음 시작하고 발매하기까지 한 달 반 정도 걸렸어요. 특히 일찍 끝난 편이긴 한데, 원래도 엄청 오래 걸리진 않아요. 미리 만들어 놓은 노래들 중에서 앨범에 사용할 곡들을 뽑아 쓰거든요. 음악 관련해선 굳이 오래 걸릴 게 없죠. 오히려 오래 걸리는 건 디자인이나 뮤직비디오 등의 음악 외적 요소들이에요.
Q. 처음 발매하신 [Cherubim`s Wrath (천사의 분노)]는 작업기간이 얼마나 걸렸어요?
수록된 곡은 모두 오래전에 만들어 놓았던 노래들이고, 녹음은 두 달 정도 걸린 것 같아요.
Q. 처음 색소폰 배운 게 25살쯤이라 들었어요. “천사의 분노” 발매까지 시간이 꽤 걸렸는데, 그동안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색소폰 배울 때는 태권도장에서 일했어요. 그러다가 회사도 다니고, 직장인 밴드도 하고요. 2009년쯤부터는 아예 회사도 그만두고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면서 지냈어요.
Q. 그렇게 지내다가 김오키의 앨범을 내기로 마음먹게 된 결정적 계기는 뭐예요?
같이 지내던 친구들이 먼저 권유했어요. 개인 앨범을 내야 하지 않겠냐고, 옆에서 많이들 얘기했어요. 만들어 놓은 노래들도 많았으니까요. 처음엔 음원으로 발매하려던 게 아니라, 기념으로 소장하려고 피지컬 CD를 제작했어요. 그 앨범을 재즈 평론하는 분들이 들었나 봐요. 좋다는 얘기들을 하면서, 그렇게 발매하게 됐어요. 그때는 아무것도 모를 때라 엄청난 걸 하나 보다 싶기도 했어요.
Q. 정신없이 앨범이 발매되고 나선 기분이 어땠어요?
반응이 되게 좋았어요.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고요. 재즈 하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으니까요. 정규 교육을 받고, 유학을 다녀오고, 재즈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데, 제가 갑자기 나타나서 다른 방식들을 막 했으니까요. 이 씬에 들어와서 앨범 내고 활동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한쪽에선 띄워주고 한쪽에선 싫어하니까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Q. 그 앨범으로 최우수 연주상을 받기도 했어요. 그땐 어떠셨어요?
그런 부분에서의 기쁨을 모르는 편이에요. 사랑할 때 빼곤 기쁨을 잘 못 느껴요. 잘 됐다, 이 정도? 그런데 멤버들이 정말 좋아해서, 그걸 보는 게 더 좋았죠. 저를 도와서 같이해준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 좋더라고요.
Q. 앨범 준비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쓰며 작업했나요?
앨범 커버, 삽입된 사진 같은 디자인 요소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지금도 그래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책을 읽고 앨범을 만들었는데, 그 책의 느낌을 표현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그래서 앨범 커버도 재개발 지역을 찾아가서 촬영했고요.
Q.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언제 처음 읽으셨어요?
제대로 다시 읽은 건 2010년쯤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열린책들’이라는 출판사가 있는데, 그 출판사의 책을 읽고 모으는 취미가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도스토옙스키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러다가 매일 같은 책만 읽으니까 다른 출판사의 책도 읽어보자, 하고 읽었던 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어요. 정말 인상 깊게 읽어서 이건 노래로 써야겠다 하고 만들었죠.
Q. ‘꼽추’ ‘칼날’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영희’ 등 책 속 단어를 덧붙임 없이 그대로 사용했어요. 그렇게 직관적으로 표현한 이유는 뭐예요?
책 자체로 큰 충격을 받아서요. 학교 다닐 때 모두가 읽는 책이잖아요. 그때는 못 느꼈던 감정이, 나이 들고 다시 읽으니까 느껴지더라고요. 여러 생각이 들었죠. 지금 학교 다니면서 읽는 책들이 과연 맞는 책인가, 그럼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자랐는데 왜 이 모양인가 했어요. 그런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해서 사회에 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책과 비슷하게 만들었어요.
Q. 여러 단편 중에서 그 이야기들을 뽑은 이유도 궁금해요.
가장 와 닿았던 이야기들이요. ‘칼날’에서 난쟁이 아저씨가 수도관을 고치는데, 난쟁이보다 큰 고물상 사람들이 와서 폭력을 가해요. 신애가 칼을 들고나와서 난장이를 도와주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사회적 약자들이 서로의 상황에서 더 정의감에 불타고, 소설 속 고물상도 따지고 보면 엄청난 힘을 가진 이들도 아닌데 자기 몫 챙기겠다고 또 다른 약자에게 위해를 가하고, 그런 모습들에 화가 났어요.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칼날’을 만들었어요.
Q. 만약 그 책을 지금 읽었다면, 2013년도의 앨범과 비슷한 것들을 느낄까요?
지금 읽으면 그때만큼의 화는 못 느낄 것 같아요. 여러 일을 겪으면서 많이 약해졌어요. 그러려니 하는 것도 있고, 다른 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있고요. 예전엔 많이 직설적이었어요. 지금은 그때보단 덜 진지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것 같아요.
Q. “천사의 분노” 앨범을 지금 되돌아보면 어떤 느낌이 들어요?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됐어요. 음악적 완성도를 떠나 그 앨범을 잘 발매함으로써, 지금까지 음악 하며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저한테 정말 좋은 앨범이에요.
Q. 어떤 부분에서 가장 크게 달라졌다는 걸 느꼈어요?
제 삶이 정말 많이 달라졌죠. 저다운 걸 찾았어요. 말하는 방식이나, 살아가는 방식이나, 행동하는 방식들이요. 좀 더 저 자신에게 맞춰졌어요. 예전에는 남 신경 많이 썼거든요. 남 눈치 많이 보고, 말도 잘 못 하고, 그렇게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화나면 바로 얘기하고, 내키는 대로 해요. 아무리 착하게 대해도 저를 싫어하는 사람은 꼭 있더라고요. 굳이 그런 것까지 신경 써가면서 살 필요가 있나 생각하게 됐어요. 이렇게 하고 싶은 걸 표현하면서 사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아요.
Q. 청자들이 이 앨범을 어떻게 느꼈으면 하나요?
성별을 떠나고 나이를 떠나서 다 같은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억지로 나누고, 사회에 사랑이 없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친절하게 다가가면 작업 건다, 이런 식으로 무언가에 굳이 힘을 주고요. 옆에서 힘들어하는 타인에게는 신경 안 쓰고,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요. 그런 것들이 잘못되어 가는 것 같아요. 다 같은 사람이고 다 되돌아오는 거니까, 좀 더 사랑하고 평등하다는 걸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앨범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런 걸 느껴주었으면 좋겠어요.
Q. 앞으로 예정된 계획들이 있어요?
5월쯤 뻐킹매드니스로 앨범을 낼 예정이에요. 그리고 ‘아티스트’라는 웹툰이 있는데, 그 작품의 앨범이 나와요. ‘이겨내는 것들’ 뮤직비디오 소스를 제공해준 마영신 작가와 함께 하는 작업이에요. 봉식통신판매에서 준비하고 있는 정수민씨, 진수영씨의 솔로 앨범도 각각 나올 예정이고요. 새턴발라드의 라이브 앨범도 피지컬 CD로 발매될 예정이에요. 올해는 김오키 이름으로보다는 팀 이름, 봉식통신판매 작업으로 많이 준비 중이에요. 김오키의 다음 앨범은 내년 초쯤 발매될 것 같아요.
“나는 언제까지 이걸 반복하고 사려나?” 우리의 다음은 처음을 반복한 형태일까, 혹은 처음과는 전혀 다른 형태일까,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초등학교 때 몰래 적어두었던 “내 꿈은 가수”라는 글을, 5년 후에는 기억도 못 하다가 10년 후에는 실천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원하는 모습을 구현해내기 위해, 자신의 처음과 다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가 있다. 2018년 10월 발매된 ‘애리’의 첫 번째 앨범 [SEEDS]의 이야기다.
Q. 헬로루키 대상 축하드려요. 소감이 어때요?
최대한 제 음악을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경연에 참여했어요. 이제까지 지원해 온 일들이 많은데, 서류심사를 통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그 사실만으로 굉장히 기뻤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예선-본선-결선까지 지나왔네요. 힘든 일도 있었지만 너무 재미있었어요. 특히 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여러 사람의 열정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대단하다, 즐겁다라는 감정들이 주를 이루던 시간이었어요.
Q.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을 땐 어땠어요?
생각도 못 한 일이었죠. 정말 많은 힘이 됐어요. 그전까지는 인정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거든요. 스스로도 부족함을 느꼈고, 무시당하는 일도 많았고요. 슬프고, 화나는 감정들이 일반적인 상태였어요. 안 좋은 생각이지만, “내가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갈망을 갖던 때가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정말 큰 힘이 됐어요.
Q. ‘루키’ ‘신인’이라는 단어들이 명확한 의미를 가지잖아요. 이 단어들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궁금해요.
기분 좋으면서도 동시에 불안해요. 다음 작업에 대한 부담일 수도 있고요. 작년에 [SEEDS] 앨범이 많은 주목을 받았잖아요. “너무 좋아요, 이 스타일을 버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감사하면서도 많은 고민이 들더라고요. 이 스타일도 결국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고,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의 일부일 뿐인데, 어떻게 하면 좋지? 다음 작품에서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면 실망했다는 얘기를 듣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어요.
Q.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비 오는 날 씨앗으로 틔우는 여정’에서 다른 스타일에 대한 여지가 보이던 걸요.
네, 일부러 마지막 트랙으로 넣었어요. 앞의 네 곡과 느낌이 사뭇 다르죠. 다른 곡들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는데, 이 곡은 휴대폰으로 녹음했어요. 비 내리는 날, 조율 안 된 통기타 들고, 두세 번 만에 녹음한 곡이에요. 정말 즉흥적이었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나는 언제까지 이걸 반복하고 사려나”라는 가사가 있어요. 저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에요. 모르니까 궁금하고요. 나의 다음은 지금과 유사할까? 전혀 다른 모습이려나? 하는 기대가 있어요. 기대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저의 다음을 준비하고 싶어서 이 질문을 앨범의 끝에 실었어요.
Q. 그 질문의 대상일 수 있는 다음 작업물이, 1월 1일에 발매를 앞두고 있어요. 어떤 곡이에요?
‘신세계’라는 곡이에요. 얘기하면서 보니까, 곡 제목이 1월 1일이라는 날짜와 잘 어울리네요. 살아가면서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과 만나고, 교류하잖아요. 자연스레 그 존재와 함께 하는 더 넓은 세계를 접하게 되고요. 그 과정에서 점점 ‘확장되는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Q. [SEEDS]는 어떤 앨범이에요?
여러 의미로 눈물 나는 앨범이에요. 사실 평소에도 눈물이 많은 편이긴 해요. 앨범 발매되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너무 행복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해요. 첫 앨범이다 보니까 여기까지 지내온 시간과 노력한 일들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생각나요. 너무 많은 것들이 떠오르니까, 한편으로는 훌훌 떠나버리고 싶기도 하고요.
Q. 작업하면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어요?
‘에덴’이라는 곡을 작업할 때였어요. 믹싱 과정에서 주절거리는 듯한 독백을 넣고 싶었어요. 주변에서 무서울 것 같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믹싱 엔지니어분께서 “재미있는데요?”라고 해주셨어요. 저보고 “하고 싶은 거 해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라고 하셨는데, 그게 되게 재미있었어요. 존중받는 느낌이라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나요.
Q. 앨범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뭐예요?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거요. 사운드라든가 외적 스타일이라든가, 앨범을 아우르는 느낌 같은 것들이요.
Q. 공연장에서 공연하던 순서를, 그대로 앨범에 실었다고 들었어요.
제 곡이 길어서 밴드 셋으로 공연을 하면, 30분 동안 최대 네 곡을 할 수 있거든요.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순서를 짜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해졌어요. 항상 ‘어젯밤’을 첫 곡으로 공연을 시작했어요. 사운드가 가장 강렬해서요. 친한 음악가분들은 장난을 치기도 해요. ‘어젯밤’ 첫 마디가 따! 하고 끝날 때 “나다! 나를 봐라!” 이런 게 느껴진대요. 그게 또 기분 좋더라고요.
Q. 그 곡들로 첫 앨범을 발매하고 싶었던 이유는요?
평소에 만만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한가 봐요. [SEEDS] 앨범을 통해서 강렬한 이미지를 보이고 싶었어요. 센 느낌을 줄 수 있는 곡들을 모으다 보니, 그렇게 다섯 곡이었어요. 공연에서 보이고 싶었던 이미지와, 앨범에서 보이고 싶었던 이미지가 같았던 거죠.
Q. 계속 얘기한 강렬한 이미지 외에, 씨앗이라든가 숲이라든가 하는 자연의 이미지도 강해요.
‘에덴’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제목을 못 정했을 땐, ‘에덴’을 ‘자연가’라는 이름으로 불렀어요. 제주도의 곶자왈이라는 숲에서 정말 큰 충격과 위로를 받고 만든 곡이에요. 아름답고 웅장하고, 생명이 돋아나는 게 자연이잖아요. 반면 경쟁하고 환경에 맞춰 변화하고, 죽어가는 것도 자연이고요. 그 설명히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나도 자연의 일부라서 힘들기도 하고 힘내기도 하고, 사는 게 그런 거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자연이 좋았어요.
Q. 숲을 배경으로 공연하면 정말 잘 어우러질 것 같아요.
처음 앨범을 작업할 때부터, 숲에서 라이브 영상을 촬영하고 싶었어요. 한 음악가의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바닥에는 풀만 자라있고, 주변은 울창한 나무로 쌓여있고, 사람 키보다 높은 바위가 하나 있어요. 그 바위 위에 앉아서 혼자 공연하고, 관객들이 그 모습을 아래에서 지켜보더라고요. 그런 것도 해보고 싶어요.
Q. 이후엔 어떤 이미지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좋아하는 게 많아요. 학생 때는 펑크 밴드를 커버해서 공연하기도 했고, 발라드 부르는 것도 좋아해요. 앨범을 낼 때는 공통의 것들을 모아서 내보이잖아요. 여러 이미지를 보여주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고민이에요. 이런 것들을 원하면서도, 확 바꿀 수 있을까? 그렇다고 서글픈 감정을 다 보여준 건 아니거든요. 제가 발매한 다섯 곡 외에도, 서글픈 감정의 곡들은 여전히 존재해요.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아직 남은 게 있어서 고민이에요. 그래도 여러 모습을 빨리 보여주고 싶어요.
Q. 이런저런 과정들을 거쳐오면서, 스스로 달라졌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어요?
제가 창작한 곡으로 이루어내는 모든 활동이, 그 자체로 일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요. 앨범 발매가 굉장히 훌륭한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했고요. 종종 음악을 짝사랑한다고 얘기하는데, 여전히 음악에 절절매면서도 그 음악으로 칭찬받을 때면 너무 행복해요. 정말 오랫동안 짝사랑한 기분이라서 아직도 설레고 즐거워요.
Q. 오랫동안의 짝사랑이라 하면, 언제부터 이어온 건가요?
초등학교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어요. 혼자서 부른다든지, 가창 대회를 나간다든지, 노래하는 것 자체를 좋아했죠. 자우림, Radiohead, Portishead, 언니네 이발관, 네스티요나 등을 알게 되면서 음악에 푹 빠졌어요. 13살 때 ‘나의 비밀’이라고 숨겨둔 글에 “내 꿈은 가수”라고 적었더라고요. 수년 동안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그 글을 발견하곤 무척 놀랐어요. 꿈을 잊은 채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공연 동아리 활동을 해오면서 그 마음을 달랬던 것 같더라고요. 중학교 때부터 밴드부를 하고 싶었는데 반대에 부딪혀 홧김에 풍물부에 들어가기도 하고, 고등학교 땐 실용음악 동아리, 대학교 땐 밴드부 활동도 했어요.
Q. 앨범을 발매한 지도 1년이 지났잖아요. 그 시간들은 어떻게 보내왔어요?
어떻게 하면 저를 더 알릴 수 있을까, 제 앨범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가기도 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수집하기도 했어요. 그들의 음악 외에도 영상, 아트워크, 옷차림까지 모두 좋아했던 거구나 느꼈어요. 이런 콘텐츠들을 만들고 싶다,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어요.
Q. [SEEDS] 앨범에서도 다양한 걸 많이 준비하셨잖아요. 뮤직비디오도 세 편이나 선보였어요.
마음만으론 다섯 곡 전부 찍고 싶었어요. ‘비 오는 날 씨앗으로 틔우는 여정’도 혼자 촬영한 영상이 있어요. 아직 공개하진 않았고 공연장에서 잠깐 튼 정도인데, 이 영상도 언젠가 꼭 공개하고 싶어요.
Q. [SEEDS]가 어떤 앨범으로 남길 바라요?
많이 알려지는 것들이 있고 비교적 덜 알려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제가 10년 넘게 듣고, 좋아하는 음악들만 봐도 그래요.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이 음악이 얼마나 유명한가는 중요하지 않거든요. 그냥 좋은 음악인 거니까요. 제 앨범도 그런 앨범으로 남으면 좋겠어요. 모두한테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한테는 위로가 되는 음악이면 영광일 것 같아요.
잘하려고 하지 말자. 처음이니까, 잘하는 것보단 실수만 하지 말자. “경험이 없는데 완벽에만 초점을 맞추면 분명히 문제가 생겨요.” “내가 정말 전하고 싶은 말은 이만큼인데, 어떠한 규격 때문에 억지로 늘리면 이만큼의 마음이 변질될 것 같아요.” 처음은 누구나 서툴기 마련이고, 급한 마음에 체하기 마련이다. 완벽보단 적당히가, 지루한 것보단 아쉽게 끝나는 게 처음의 미덕이고 용인이지 않을까? 2019년 10월 발매된 ‘데이먼스 이어 (Damons Year)’의 첫 번째 앨범 [” sin ! “]의 이야기다.
Q. 얼마 전에 첫 단독공연을 마쳤어요. 어떠셨어요?
준비하는 내내 계속 긴장 상태였어요. 저한테는 너무 막연한 일이었거든요. 속으로만 ‘언제 하지? 올해 안에 했으면 좋겠다.’ 하다가, 단독공연 언제 하냐는 질문들이 조금씩 들려오더라고요. 무턱대고 “연말쯤에 하려고 해요.” 얘기한 후에, 그 말을 지키기 위해 공연 준비를 시작했어요.
이전까지는 50분, 길면 1시간 셋의 공연을 해왔어요. 혼자서 100분 셋의 공연을 채울 수 있을까, 어색하진 않을까 걱정됐고, 세션 분들이랑 무대에 서는 것도 처음이라 걱정됐고, 경험이 없다 보니까 머릿속이 복잡했어요. 다행히도 여기저기서 도와주시고, 하나하나씩 해나가다 보니 공연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Q. 공연을 준비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뭔가요?
잘하려고 하지 말자. 처음이니까, 잘하는 것보다는 실수만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준비했어요. 억지로 잘하려고 하다 보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아요. 경험이 없는데 완벽에만 초점을 맞추면 분명히 문제가 생겨요. 적당히, 중간만 하자 라는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Q. 포스터가 인상적이었어요.
가독성이 없다는 이유로 디자인이 바뀔 뻔했어요.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하고 싶은 방향을 선택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싶어서 원래대로 제작했어요. ‘데이먼스 이어’라는 걸 또렷하게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너무 광고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진 않았어요. 나를 보러 오는 관객들은, 이름을 떡하니 써놓지 않아도 이게 데이먼스 이어의 공연 포스터라는 걸 알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일/월/년 세 장을 만들었어요.
Q. 이름도 일/월/년 을 의도한 게 맞나요?
네 맞아요. 다만 Day Month Year 라고 하면 너무 뻔할 것 같았고, 사람 이름처럼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Damon 스펠링을 가져와서 Damons Year 라고 썼어요.
Q. 이전까지의 공연에서, 카페 소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요즘은 어때요?
이제는 저를 보러 찾아오신 분들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노래할 때 원두 기계가 함께 돌아갔다면, 요즘은 그런 소음들이 꺼지죠. 예전에는 저 사람들이 나를 알까?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까? 하는 생각에, 말없이 노래만 하다가 끝나는 공연들이 많았어요. 요즘은 제 노래를 듣고 싶고, 저를 아는 분들이 오시니까 조금이라도 더 얘기해주고 싶어요. 누가 듣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조금씩 입이 트이더라고요. 대단하게 정리된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전달하고 싶은 건 전할 수 있는 정도는 된 것 같아요.
Q. 공연 전에 멘트를 준비하는 편이에요?
아니요, 준비하면 오히려 안 되거든요. 멘트도 똑같아요, 잘하려고 하지 말자 라는 마음이에요. 할 말이 없으면 그냥 지나가고, 할 말이 생기면 얘기하자 이런 생각으로요. 말이라는 게 준비하면 할수록 꾸미게 되더라고요. 사실 70 정도의 생각인데, 남한테 들려주려 하니까 100 이상으로 과장하게 돼요. 그런 말들을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Q. 찾아오는 팬들이 생기기 시작한 건, 어느 시점부터였나요?
음원을 발매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생겼어요. 음원을 듣는 사람들이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공연장에서 연락이 오고, 공연을 보러 찾아오고, 저를 더 알릴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겼어요. 특히 올해가 특별한 기점이었어요. 지원사업에도 선정되고, 누군가의 입에서 언급되기도 하고,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요. 사실 단독공연도 매진될 거라고 기대 안 했는데, 되게 신기했어요.
Q. 이번에 첫 EP [” sin ! “]을 발매했어요. 어떤 앨범인가요?
제가 밝은 노래보다는 우울한 분위기의 곡들이 많아요. 이번 앨범은 제 우울을 다 털어내 버리는 앨범이에요. 내년에는 조금 더 밝고, 더 많은 사람이 부담 갖지 않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을 내고 싶거든요. 저의 우울을 다 담아낼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어서, 제 어두운 부분들을 모두 모아서 [” sin ! “]을 구성했어요.
Q. 앨범 이야기가 트랙 넘버의 역순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죠.
처음엔 타이틀곡이 1번 트랙이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노래를 듣다 보니 감정의 기승전결이 보이더라고요. 이 순서대로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싶었어요. 제 감정의 흐름이 확연하게 드러나서, 앨범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면 거꾸로 들어주세요 라는 코멘트를 남기게 됐어요.
Q. 이번 EP를 작업하면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내 얘기로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노래를 만드는 사람은, 내가 평생 끼고 들으려고 곡을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남한테 들려주려고 만드는 거니까, 나 혼자만의 얘기로만 느껴지지 않길 바랐어요. 그래서 제 목소리와 가사가 더 잘 다가가기를 바랐고요. 악기 연주도 최소화해서 어떤 곡은 기타 한 대, 다른 곡은 피아노 한 대, 이런 식으로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에 더 집중했어요.
Q. 곡들이 대체로 짧아요.
2절까지 있는 노래가 몇 곡 안 돼요. 내가 정말 전하고 싶은 말은 이만큼인데, 어떠한 규격 때문에 억지로 늘리면 이만큼의 마음이 변질될 것 같아요. 사진도 애초에 조그마한 걸 억지로 늘리면 픽셀이 다 깨지잖아요. 나는 할 말을 다 했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여기까지야, 그런 생각이 들면 거기서 멈췄어요. 지루한 것보다는 아쉽게 끝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Q. 커버도 직접 촬영하셨다고 들었어요.
지난 6월쯤에, 제 방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창문을 내려다보면 교회가 하나 있는데, 밤이 되면 빨갛게 불이 들어와요. 심지어 방충망도 있는 상태에서 휴대폰을 대고 찍었거든요. 찍힌 사진이 되게 마음에 들었어요. 정사각형의 프레임도, 방충망 덕분에 노이즈 처리된 듯한 질감도 좋았고요. 그래서 앨범의 커버로 사용하게 됐어요.
Q. 앨범이 발매되고 나서는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생각보다 별거 없구나 싶었어요. 노래가 정말 많잖아요. 사람들이 내 노래에 집중하게 만들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더 분발하고,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지금 이렇게 나에 대한 관심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힘껏 열심히 해야겠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잖아요. 음악 할 때 가장 힘든 게 무관심이에요. 제가 5년 정도 음악을 해왔는데, 무관심 속에서 지내온 시절이 너무 길어서요.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Q. 이런 시기들을 지나오면서 스스로가 달라졌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을까요?
예전에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어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몰랐고, 사람들 눈에 내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몰랐고요. 올해 들어서 조금씩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내 어떤 점을 좋아하고, 내 음악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이진 않지만 막연하게 알게 됐어요.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를 말하니까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한 번도 지어내서 얘기한 적이 없거든요. 저 사람도 나랑 같은 사람이구나,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예전엔 상담 치료를 받는 게 저의 결함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 번 극복하고 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더라고요. 조언해줄 수도 있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위로를 원하는 사람들이 제 음악을 찾지 않나 싶어요.
Q. 올 한 해는 데이먼스 이어에게 어떤 해였나요?
올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쭉 멍한 상태예요. 어떤 일들이 완전히 받아들여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좋은 일이 생겼는데, 다 받아들이기 전에 또 다른 일이 생기고, 또 다른 일이 생겼어요. 이것들이 꼬리를 무니까 거짓말 같기도 하고, 어딘가 계속 붕 떠 있는 느낌이에요. 이러다가 삐끗해서 실수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들고요. 많이 덜렁대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계속 되뇌고 있어요. 좀 더 차분하게, 덜 좋아하려는 마음으로 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