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넘 (numnum) [It’s a TRAP!]

 

“뉴웨이브적인 신스 사운드와 록킹한 밴드 사운드가 공존하는 이 강렬하고 유쾌한 댄스뮤직은 사운드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하지만 역시나 여기의 이윤정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더해졌을 때 ‘넘넘’의 음악으로서 완성되고 비로소 밴드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넘넘 (numnum)
It’s a TRAP!
2018.10.11.

 

‘아이콘’이 되어버리는 어떤 이들이 있다. 확고한 아우라와 자신만의 세계로 ‘상징’이 되고 ‘우상’이 되는, 시대를 초월해 언제까지나 그렇게 기억되는 존재들 말이다. 이들은 대체로 후천적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기보다 애초에 남들과는 다른 감각과 시선을 지니고 있던, 태생부터 ‘One of a kind’인 경우가 더 많은 거 같다. (물론 이런 감각에 후천적 노력들이 더해졌겠지만) 한국 대중음악 역사 속의 아이코닉한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윤복희, 나훈아, 김창완, 심수봉, 조용필, 유재하, 서태지, 신해철, 엄정화, GD…적잖은 이름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여기에서 결코 이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이윤정’이다.

 

1995년, 스무살에 처음 들었던 ‘삐삐밴드’의 앨범 <문화혁명>을 통해 접한 이윤정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빨간 펑크 머리에 펑크 의상을 입은 그녀가 “딸기가 좋아”라며 악을 써대는 그 모습은 여전히 모순적 권위들로 가득했던 90년대 한국에서, 혹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파격적인, 혹은 인상적인 순간 중 하나 아니었을까? 이때부터 그녀의 이미지는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기믹을 연기하는 것이라기보다 규격, 획일화, 시스템에서 탈피해 그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역시나. 그녀의 파격은 삐삐밴드를 떠난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본격적으로 전자음악으로 노선을 선회한 이윤정의 첫 솔로 앨범 <진화>는 여전히 이윤정스러우면서도 비슷한 시기에 ‘테크노’를 표방하며 무대 위에서 신나게 살풀이(?)를 해대던 이정현, 채정안 등의 음악과는 감히 비교 불가능한 음악적 성취를 담은, 한국 전자음악의 중요한 기록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고 미술작가 ‘이현준’과의 프로젝트인 일명 ‘토털 아트 퍼포먼스’팀 ‘EE’ 역시 꾸준히 실험적이고도 흥미러운 음악과 비주얼을 선보이며 파격적인 행보를 지속해왔다. (2015년에는 뜬금없이 ‘삐삐밴드’가 재결합, EP를 발매하기도 했는데 이는 밴드의 20주년을 기념하는 이벤트였다)

 

 

어쨌거나 그간의 이 모든 행보를 통해 감지되는 ‘이윤정’이라는 음악가(라기보단 그냥 ‘예술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지만)의 특별함은 ‘파격’, 심지어는 ‘혁명’의 범주에 들어갈 만한 것들을 그저 ‘재미로’ 뚝딱 해버리는 것 같은 특유의 쿨한(?) 태도에 있다. 삐삐밴드의 ‘문화혁명’에서 시작되어 전자음악가 이윤정으로의 ‘진화’를 거쳐 현재의 EE로 오는 모든 과정 속 그녀가 세상에 보여준 모습들은 대부분 당대의 보편적 감각이나 인식들을 훌쩍 뛰어넘는 다분히 문제적인 것들이었건만 정작 그녀에게 이 모든 것들은 그저 ‘흥미 위주의 난입’인 것만 같았고 그래서 내 머릿속 이윤정은 늘 즐거운 혁명가이자 매드 싸이언티스트, 그리고 ‘아이콘’이었다.

 

 

그 이윤정이 새로운 밴드를 결성했다. 밴드의 이름은 ‘넘넘 (numnum)’, 본래 ‘베리베리 (veryvery)’였지만 비슷한 이름의 보이그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꿨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넘넘’의 의미는 충분히 짐작 가능할 것 같다) 프론트우먼인 이윤정 본인과 밴드 ‘뷰티핸섬’ 출신의 베이시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이재(베이스), 밴드 ‘LEMON’의 프로듀서이자 연주자인 승혁(기타/프로그래밍), 그리고 드러머 도연의 4인조인 이 밴드가 무려 ‘붕가붕가레코드’를 통해 발표한 첫 싱글 ‘Its’ a Trap’은 여전히 ‘흥미 위주의 난입’을 하는 이윤정을 만날 수 있어 반갑고 또 기쁘다. 뉴웨이브적인 신스 사운드와 록킹한 밴드 사운드가 공존하는 이 강렬하고 유쾌한 댄스뮤직은 사운드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하지만 역시나 여기의 이윤정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더해졌을 때 ‘넘넘’의 음악으로서 완성되고 비로소 밴드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밴드 스스로 “이제 시작이라 무엇을 할 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만들 예정”이라 밝혔듯 이 밴드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는 알 수 없지만, 철저하게 ‘재미’를 추구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재미가 결코 평범한 방법으로 구현되지는 않을 거라는 점만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사실 지극히도 당연한 짐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그 ‘이윤정’이 만든 밴드니까.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Omega Sapien [Rich & Clear]

 

“거친 질감의 톤을 공격적으로 뱉어대는 오메가 사피엔의 영어 랩은 언뜻 내키는대로 마구 질러대는 듯 들리지만 사실 비트의 변주와 함께 다채롭게 변화하는 플로우들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훌륭한 설계로 짜여져있어 랩 그 자체만으로도 흡입력이 뛰어나다.”

 


 

Omega Sapien
Rich & Clear
2018.10.03

 

일전에 ‘그랙다니(Grack Thany)’의 래퍼/프로듀서 ‘Black AC’의 싱글을 리뷰하는 글을 통해 현재 한국 힙합, 소위 ‘국힙’ 시장에서 주로 소비되는 음악의 경향들에 대한 생각을 간단히 언급하고 동시에 이와는 다른 노선을 추구하는 그들에 대해 국힙의 관습을 탈피하고 전복, 혁신을 꾀하는 대안적 존재”로 나름의 의견을 피력한 바가 있다. 이것은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힙 씬, 혹은 이를 넘어 한국 대중음악 필드 내에서 이들의 ‘존재의 의미’로도 볼 수 있고 현재 이런 역할을 자처하거나 실제로 수행하는 집단/아티스트가 희소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지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올해 초 불쑥 등장, 의미심장한 행보를 거듭하며 대중들의 가시권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크루 ‘바밍타이거(Balming Tiger)’는 분명 주목의 대상이다.

 

‘바밍타이거’의 기원은 프로듀서 ‘산얀(Sanyawn)’, 비트메이커/프로듀서 ‘노아이덴티티(No Identity)’, 디제이 ‘어비스(Abyss)’ 등이 모여 홍대 ‘호미화방’ 건물 304호에 모여 실험적인 음악을 추구하며 함께 작업을 했던 소규모 크루 ‘마인드 씨어터(Mind Theater)’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모임을 전신으로 여기에 유튜브로 이름을 알린 기괴한 캐릭터의 래퍼 ‘유병언(Byung Un)’, 저 유명한 ‘잊지마(It G Ma)’의 뮤직비디오를 디렉팅한 필르머 ‘잔퀴(jan’qui)’, 다수의 아티스트와 작업한 노련한 비트메이커 ‘언싱커블(Unsinkable),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처음 존재를 드러낸 싱어송라이터 ‘소금(Sogumm)’, 오늘 이 글의 주인공인 래퍼 ‘오메가 사피엔(Omega Sapien)’ 등이 가세하며 현재의 바밍타이거가 되었다. (노아이덴티티는 군 입대 등 개인 사정으로 현재는 탈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8년 초에 첫 번째 믹스테잎 <Balming Tiger vol​.​1: 虎媄304>을 사운드클라우드와 밴드캠프에서 공개하며 처음으로 등장했다. 대체로 서늘한 분위기의-추상적인, 재지한, 혹은 분열적 감각의-비트와 여기에 동반되는 기괴하고 발칙한 유머로 가득한 병언의 랩 퍼포먼스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한편으론 ‘오드퓨쳐(OFWGKTA),’ 혹은 ‘88rising’ 등의 영향을 자연스레 유추하게 하기도 했다. (믹스테잎 제목의 ‘虎媄304’는 이들의 시작점이었던 호미화방 304호를 의미한다) 이윽고 전세계 주요 음원 플랫폼들을 통해 공개된 첫번째 공식 릴리즈인 싱글 ‘I’m Sick’은 분열적이고 싸이키델릭한 정서로 가득한 강렬한 사운드와 랩, 이와 더불어 한국 특유의 BJ 문화를 묘사하는 파격적인 뮤직비디오와 함께 그야말로 인터넷을 활활 불태우며 이들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기까지의 행보를 통해 감지되는 ‘바밍타이거’의 캐릭터는 앞서 언급했던 다양한 집단들과 골고루 교집합을 지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테면 ‘그랙다니’가 지닌 대안적이고 실험적인 면모, ‘88rising’의 ‘아시안 컬쳐’의 쿨함을 알리려는 일련의 무브먼트들, 그리고 ‘오드퓨쳐’의 엽기적인 유머감각 같은 것들. 아무래도 이들은 평범하지 않게 멋있는,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것들을 동시에 하고 싶어하는 집단인 것 같다.

 

‘I’m Sick’으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고 이들의 두 번째 공식 릴리즈는 병언과 더불어 또 한 사람의 랩 퍼포머인 ‘오메가 사피엔(Omega Sapien)’의 싱글 ‘Rich & Clear’다. 바밍타이거의 구성원이 개인의 이름으로 처음 공개하는 작품인 이 트랙은 서울에서 태어나 중국, 미국을 거쳐 현재는 일본에서 거주하며 독특한 감각을 길러온 ‘오메가 사피엔’ 개인의 개성적인 캐릭터, 동시에 앞서 언급했던 ‘바밍타이거’라는 집단의 캐릭터가 적절히 공존한다. (아니, 사실은 그냥 그의 캐릭터가 바밍타이거의 그것과 너무나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뿐일지도)

토속적인 타악기 소리처럼 들리는 타음-이 아닐지도 모르는-사운드를 메인 테마로 여기에 그루비한 리듬, 다양한 소스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프로듀서 ‘리키 카네다(Riki Kaneda)’의 원초적인 바이브 물씬한 비트, 그 위로 거친 질감의 톤을 공격적으로 뱉어대는 오메가 사피엔의 영어 랩은 언뜻 내키는대로 마구 질러대는 듯 들리지만 사실 비트의 변주와 함께 다채롭게 변화하는 플로우들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훌륭한 설계로 짜여져있어 랩 그 자체만으로도 흡입력이 뛰어나다. 한편 일본에서 촬영된, 기괴하고 충격적인 비주얼의 오브제들이 난무하는 뮤직비디오는 이 음악의 괴팍한 멋(?)을 시각적으로 한껏 부스트업시킨다. ‘컬쳐 쇼크’란 것을 직관적으로 체험하고픈 분들께 이 비디오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김사월 [로맨스]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을 기본으로 하는 비교적 심플한 밴드 편성으로 레코딩한 <로맨스>의 전반적인 사운드는 확실히 좀 더 단출하다. 하지만 그 단출함 덕분에 이 앨범 속 김사월은 이전보다 훨씬 가까운 존재로 여겨지고, 특유의 청아한 음성으로 나지막이 부르는, 연애의 생생한 순간과 감정들을 담은 모든 노랫말들은 그래서 한층 생명력을 얻는다. 기꺼이 자신의 개인사를 드러낸 그녀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청자들 개개인의 경험, 속사정들과 자연스레 포개진다.”

 


 

김사월
로맨스
2018.09.16.

 

비가 추적추적 내린 지난 일요일의 홍대, 잔잔한 노래 몇 곡이 이어 흐르던 지하 공연장의 노래 소리가 잦아들자 얼마간의 적막이 찾아왔다. 이윽고 서서히 무대의 막이 오르고 은은한 조명 아래 등장한, 긴 머리에 버건디색 베레모와 검은 상의, 겨자색의 품이 낙낙한 코듀로이 팬츠를 조화롭게 입어 마치 70년대의 프랑스 어딘가에서 온 것만 같은 그녀의 투명한 목소리가 적막을 깨고 노래를 시작하자, 어째서일까. 종일 내린 비 탓에 조금은 눅눅하게 느껴졌던 공기의 질감이 어쩐지 조금 바뀐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시점의 어느 비 내리는 일요일에 김사월은 돌아왔다.

 

사랑은, 연애는, 이별은 언제나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하지만 동시에 가장 보편적이기도 한 무엇이다. 그 양가적 속성 덕분에 ‘로맨스’는 언제나 세상 모든 크고 작은 이야기들의 시작이자 끝이었고 동시에 모든 예술가들의 창작의 모티브이자 원동력, 그리고 확고한 주제였다.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소설, 시, 그림, 그리고 노래들은 저마다 들뜬 감정으로 사랑을 찬양하고, 또 애증의 불구덩이에 이성을 던져 넣은 채 사랑을 증오하기도 했다. 사랑, 이 달고도 쓴 사랑이야말로 어쩌면 삶의 이유, 혹은 본질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첫 앨범 <수잔> 이후 3년, 김사월의 두 번째 앨범 <로맨스>는 제목 그대로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나’-김사월 그 자신이거나 혹은 전작의 주인공 ‘수잔’일지도 모르는 그녀-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나누고(혹은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종국엔 헤어지는, 그렇게 아주 보편적인 사랑의 모습을 큰 얼개로 하는 열두 개의 노래들은 그녀 스스로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연애 편지, 혹은 일기처럼 아주 구체적이고 그래서 더 생생하다. 그 사랑은 뜨겁고, 낭만적이고, 마냥 달콤하지만 동시에 한없이 불완전하다. 사랑으로 채워지고, 채워져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솔직한 욕망은 온전히 충족되지 못해 차츰 결핍되고, 그래서 이 사랑은 점점 삐걱이다가 끝끝내 어긋나고야 만다.

 

전작 <수잔>이 풍부한 현악, 관악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동반한 세심한 편곡으로 다분히 영화적인 풍경을 그려냈던 데 비해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을 기본으로 하는 비교적 심플한 밴드 편성으로 레코딩한 <로맨스>의 전반적인 사운드는 확실히 좀 더 단출하다. 하지만 그 단출함 덕분에 이 앨범 속 김사월은 이전보다 훨씬 가까운 존재로 여겨지고, 특유의 청아한 음성으로 나지막이 부르는, 연애의 생생한 순간과 감정들을 담은 모든 노랫말들은 그래서 한층 생명력을 얻는다. 기꺼이 자신의 개인사를 드러낸 그녀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청자들 개개인의 경험, 속사정들과 자연스레 포개진다.

 

전반적으로 포크를 음악적 바탕으로 두고 있는 것은 여전하지만 이전의 김사월과는 다른 모습들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앨범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넘실대는 오르간이 70년대 가요의 밴드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옆’은 그간 그녀의 그 어떤 노래들보다도 댄서블하고 ‘세상에게’는 다분히 ‘팝’적인 접근을 보여주는 곡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제일 많이 듣고 있는 곡인 ‘오렌지’는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든 보싸노바 넘버로 그녀의 투명한 목소리가 사실 보싸에도 아주 제격이라는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게 한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이야말로 김사월의 노래를 듣기에 딱 좋은 계절인 것 같다.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미끄럼틀 (feat. SUMIN)]


 

“‘미끄럼틀’을 통해 드러나는 술탄의 레트로가 단순히 과거 음악의 ‘흥미로운 이미지’만 빌려온, 겉보기만 그럴싸한 카피에 그치지 않고 장르가 가진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멋을 제대로 포착하고 이를 근사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저 재현으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십분 느껴지는, 밴드의 오리지널리티와 시대감각까지 담보하려는 시도마저 함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미끄럼틀 (feat. SUMIN)
2018.09.11.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이하 술탄)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이름을 듣는 순간 단박에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들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70년대 소울, 디스코, 훵크(funk) 풍의 강력한 댄스음악, 그리고 이 댄스음악을 단박에 뇌리에 각인시키는 파격적인 안무와 무대의상을 동반한 라이브 퍼포먼스 같은 것들 말이다. 확실히 한 번이라도 보고 나면 ‘술탄 오브 더 디스코’라는 긴 이름을 다시는 잊지 못할 만큼 그들의 퍼포먼스가 주는 이미지는 대단히 강력하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들 때문에 술탄을 단지 키치함과 코믹함만을 무기로 대중의 주목을 갈구하는 뜨내기 밴드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큰 착각이다. 비록 그들의 시작이 ‘한국 인디씬 최초의 립싱크 댄스그룹’(??)이었다 한들 현재의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디스코, 소울, 훵크, 알앤비 등 흑인음악의 유산들에 단단하게 뿌리를 두고 독창적인 스타일과 탁월한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한국 대중음악의 유일무이한 캐릭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신나는 퍼포먼스 하나만으로 세계 최고의 음악 축제로 꼽히는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심지어 두 번이나 초청될 리는 없는 것이다.

 

올 가을 대망의 정규 2집 발매를 예고한 술탄이 지난 7월의 첫 선공개 싱글 ‘Super Disco (수퍼디스코)’에 이어 최근 새로 선보인 두 번째 싱글 ‘미끄럼틀’은 아주 진득하고 소울풀한 알앤비/소울 넘버다. 혹자는 ‘술탄의 알앤비’가 낯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2015년에 이미 싱글 ‘니온 라이트(Neon Light)’를 통해 정통파 알앤비 발라드를 제대로 선보였던 술탄이기에 이를 너무 생경하게 여기거나 딱히 외도, 혹은 새로운 시도 등으로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오히려 조금 시야를 넓혀 이들의 음악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를 상기하면 이런 작업은 어떤 의미로는 ‘필연적’인 것으로도 바라볼 수 있겠다.

 

 

2018년 한국에서 #알앤비 태그를 달고 태어난 모든 노래들 중 가장 알앤비적인 곡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문득 했을 만큼 제대로 된 알앤비를 선보이는 이 곡은 현재 한국 흑인음악 씬에서 단연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음악가 중 한 명인 ‘SUMIN’(수민)이 노랫말과 곡을 썼고 편곡에도 참여했다. 그간 술탄의 모든 곡을 ‘나잠 수’가 썼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이례적인 시도인 셈인데 이 의외의 조합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그야말로 기대 이상이다. 수민의 솔로가 불쑥 튀어나오는 중반부 이전까지는 낭만적인 선율, 느긋한 그루브, 두툼한 브라스 섹션이 가미된 풍부한 사운드가 이끄는 클래식한 소울 악곡의 모습으로 전개되는 이 곡은 수민의 등장과 함께 급격히 변주되는 리듬, 그리고 신스가 주도하는-왠지 놀이동산의 회전목마를 연상시키기도 하는-사운드가 갑자기 시공간을 현대로 불쑥 옮겨오며 분위기를 극적으로 반전시킨다. 그리고 이 반전된 무드는 곡의 최후반부에 이르러 다시 과거와 뒤섞이고 이제 곡은 마치 소울 밴드 콘서트의 피날레처럼 모든 악기들이 힘껏 소리를 쏟아내며 장중한 엔딩으로 내달린다. 이처럼 독특한 대비를 만들어내는 곡의 구성, 적절한 완급을 동반한 풍부한 사운드의 편곡 등 이 노래는 모든 면에서 도무지 흠잡을 데 없이 근사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최근의 ‘레트로’ 붐이 슬슬 지겹다는 생각이 들고 있던 참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비슷비슷한 장르, 사운드의 음악들이 별다른 차별성 없이 쏟아지고 있다는 인상을 종종 받고 더러는 이런 ‘레트로의 홍수’가 다소 피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 노래에 또 다른 의미를 하나 더 부여하고 싶다. ‘미끄럼틀’을 통해 드러나는 술탄의 레트로가 단순히 과거 음악의 ‘흥미로운 이미지’만 빌려온, 겉보기만 그럴싸한 카피에 그치지 않고 장르가 가진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멋을 제대로 포착하고 이를 근사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저 재현으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십분 느껴지는,  밴드의 오리지널리티와 시대감각까지 담보하려는 시도마저 함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긴 시간 동안 알앤비, 소울 음악의 충실한 팬이었던 내게 무척 반가운 선물인 이 곡은 (적어도 현재까지) 2018년에 만난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 중 하나다.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사람또사람 [모래알]


 

“담백한 통기타 선율이 중심이 되어 빚어내는 아련하고도 유려한 선율, 그리고 잔잔한 물처럼 그 위를 흘러가는 소임의 꾸밈 없는 노래는 어딘지 60년대 포크록 음악들의 목가적 아름다움을 상기시키는 면이 있다. “

 


 

사람또사람
모래알
2018.08.31

 
‘사람또사람’의 음악엔 늘 반짝반짝 빛이 나는 영롱함이 있다. 차근차근 음을 짚어가며 담백하고 청아한 소리를 내는 건훈씨의 기타에서, 음악이 존재하는 공간을 부드럽게 감싸고 채우는 소임의 포근한 신쓰에서, 그리고 두 사람이 덤덤한 목소리로 뱉어내는, 보편적 일상과 보편적 감정을 노래하는 노랫말들에서도 난 종종 어떤 영롱함을 마주한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건훈씨’, 신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소임’ 이 함께 하는 ‘사람또사람’(이하 사또사)의 음악은 사실 은근히 뜻밖의 구석들을 많이 지니고 있다. 평소 두 사람의 수더분한 이미지처럼 대체로 착하고 무던하게 느껴지는 사또사 음악의 선율은 통상 기타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기에 자연히 어쿠스틱한 포크/팝의 성향이 도드라지긴 하지만 정작 음악들을 곱씹어 들어보면 결코 이러한 장르들에만 머물진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스케치한 멜로디를 ‘악곡’으로 실체화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다양한 신시사이저의 소리를 활용하고, 또 종종 빈티지 드럼머신의 통통 튀는 소리들로 리듬을 만들기도 하면서 인디팝, 록, 슈게이징, 혹은 전자음악까지 두루 아우르는 면모를 보여준다. 최근 대중음악의 큰 트렌드인 ‘레트로’의 붐 속에서 아날로그 신스나 드럼머신의 사용은 그야말로 비일비재한 것이지만 정작 사또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형태의 작법을 견지해왔으며 그 결과물 또한 최근의 그것들과는 확연히 동떨어져 있다. 결국 이것은 그저 온전히 사람또사람의 음악일 뿐이다.

 

 

새 노래 ‘모래알’은 소임이 곡과 노랫말을 쓰고 또 불렀다. 메인 프레이즈를 연주하는 어쿠스틱 기타도 소임이 직접 연주, 레코딩했고 이번 곡에서 건훈씨는 가창이나 연주에서는 한 발 물러나 편곡자, 녹음 엔지니어로만 부분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이 곡은 어떤 의미에선 그녀의 솔로 프로젝트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전의 ‘스물아홉 봄’, 혹은 ‘꽃청춘’ 등 소임이 작곡한 곡들을 통해 감지할 수 있듯 그녀가 만들어내는 멜로디의 결은 건훈씨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데 건훈씨의 멜로디가 팝적이고 어딘가 동화적인 순수함을 담고 있다면 반면 소임의 그것은 좀 더 포크, 혹은 모던록 등의 장르적 인상이 뚜렷하다는 느낌을 준다. ‘모래알’ 역시 마찬가지다. 담백한 통기타 선율이 중심이 되어 빚어내는 아련하고도 유려한 선율, 그리고 잔잔한 물처럼 그 위를 흘러가는 소임의 꾸밈 없는 노래는 어딘지 60년대 포크록 음악들의 목가적 아름다움을 상기시키는 면이 있다. 그 무엇 하나 영원하지 않은, 결코 영원할 수도 없는 삶 속 유한성에 대한 깨달음과 거기서 비롯된 서글픈 감정을 “그 뜨거운 모래알들은 언제 어디로 다 사라져버린 걸까”라고 묻는 이 노래는 지금은 곁에 있지만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헤어지게 될, 혹은 어쩌면 이미 곁을 떠나 갔을지도 모를 저마다의 소중한 누군가(혹은 무언가)를 한 번쯤 떠올리게 할 것이다.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어쩌면 바로 지금, 바로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극히도 평범한 사실 하나와 함께.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최첨단맨(ultramodernista) [Whiskey]

“20세기 중후반 댄스 음악들에 대한 향수, 선망이 묻어나는 레트로 디스코, 신스팝 사운드는 분명 전자음악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레트로의 뉘앙스를 만들어내는 가장 주된 재료인 신시사이저 외에 전주, 후렴 등에서 멜로디를 주도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팔딱팔딱 뛰는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쟁글쟁글한 기타 리프도, 몸이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댄스 바이브를 생산하는 드럼과 베이스의 심플하지만 단단한 리듬 파트도 모두 리얼 사운드로 연주되고 있고 여기서 이 밴드의 정체성을 논할 수 있다.”

 


 

최첨단맨(ultramodernista)
Whiskey
2018.08.22.

 

2018년 6월, ‘최첨단맨(ultramodernista)’의 첫 싱글 ‘Koriga’를 들으면서 자연스레 2013년 5월의 어느 날을 상기하게 되었다. 다프트펑크(Daft Punk)가 새 앨범 [Random Access Memories]를 세상에 공개한 날이었는데 그날 다프트펑크의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흥들을 그로부터 아주 긴 시간이 지난 현재, 최첨단맨의 음악을 통해 다시금 체험하게 된 탓이다.

 

‘최첨단맨(ultramodernista)’(이하 최첨단맨)은 휴키이스라는 솔로 프로젝트로 더 잘 알려진 휴(보컬, 기타)가 밴드 ‘we hate jh’의 구성원이자 ‘스웨덴세탁소’의 세션으로도 활동해온 이상근(드럼), 정진욱(베이스), 그리고 건반 주자인 Dan과 결성한 4인조 밴드로 리얼 사운드로 구현하는 레트로한 디스코, 혹은 디스코에 기반한 댄스뮤직을 표방하고 있다. 록, 포크, 소울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들을 두루 포괄하면서도 그러나 어쨌거나 최종적으로는 ‘팝’으로 귀결되는 음악들을 솔로 커리어 내내 선보여온 휴(휴키이스)이기에 그가 프론트맨으로 나서는 댄스뮤직 밴드라는 게 혹자에겐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그가 ‘Why Can’t You Luv Me’처럼 산뜻한 펑키 그루브를 내포한 댄스 트랙들도 만들고 부른 적이 있음을 떠올려본다면 사실 아주 뜻밖의 일만도 아닌 거 같다.

 

 

최근 공개된 두 번째 싱글 ‘Whiskey’는 첫 싱글 ‘Koriga’와 마찬가지로 이 밴드의 ‘레트로-퓨쳐리즘’적인 DNA가 명징하게 드러나는 곡이다. 20세기 중후반 댄스 음악들에 대한 향수, 선망이 묻어나는 레트로 디스코, 신스팝 사운드는 분명 전자음악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레트로의 뉘앙스를 만들어내는 가장 주된 재료인 신시사이저 외에 전주, 후렴 등에서 멜로디를 주도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팔딱팔딱 뛰는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쟁글쟁글한 기타 리프도, 몸이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댄스 바이브를 생산하는 드럼과 베이스의 심플하지만 단단한 리듬 파트도 모두 리얼 사운드로 연주되고 있고 여기서 이 밴드의 정체성을 논할 수 있다. 더불어 바로 이런 점이 곡의 전체적인 무드와 더불어 서두에서 언급한 다프트펑크의 ‘Random Access Memories’ 앨범을 필연적으로 연상케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프트펑크가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Neil Rogers), 드러머 오마르 하킴(Omar Hakim) 등 달인의 영역에 이른 연주자들과의 협연으로 만들어낸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사운드, 그 사운드로 구현한 복고와 미래가 공존하는 레트로-퓨쳐리즘의 디스코 뮤직. 최첨단맨의 음악은 바로 그것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명백히 과거에 대한 선망을 드러내는 그들의 이름이 하필이면 ‘극단적 현대주의자’(Ultra Modernista)라는 익살맞은 모순과 함께.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Black AC [Hunting Trophy]


 

“곡의 분위기는 시종 불온하기 짝이 없고, 촘촘하게 음절을 쪼개 뱉어 가파르게 내달리는 리듬과 일체가 되는 Moldy와 Vanda의 랩은 잔뜩 날이 서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한편으로는 춤을 추고 싶을 만큼 흥겹고 신난다. “

 


 

Black AC
Hunting Trophy
2018.08.16.

 
현재의 한국 힙합씬에서 주로 소비되는 음악들을 가장 큰 덩어리들로 툭툭 끊어 분류해보자. 대략 세 부류 정도가 뚜렷하게 눈에 띄는 큼직한 덩어리들을 이룰 것이다. 우선 프로덕션에서부터 실제 구현되는 음악의 형태까지 모든 면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양대 장르(?) 트랩(Trap)과 붐뱁(Boom Bap)이 양 대척점에 설 것이고, 랩-싱잉 스타일에 알앤비, 팝의 DNA를 대거 투여해 탄생한 이지리스닝 성향이 강한 음악들(이걸 뭐라고 부르면 적당할까? 잘 모르겠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이 이 두 지점 사이 어딘가에 두루뭉술하게 위치하는 그림이 내 머릿속에는 그려진다. 아마 한국 힙합, 소위 ‘국힙’을 소비하는 리스너들의 관점도 대개는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여하튼 그들 대부분이 저 세 개의 키워드 내에서 각각 대표적인 음악가들의 이름을 몇 명이라도 어렵잖게 떠올릴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며, 그래서 이 세 가지 경향들을 현재 ‘국힙’의 ‘주류’, 혹은 ‘트렌드’라고 칭해도 딱히 틀린 이야긴 아닐 것이다.

이 같은 기준으로 ‘Grack Thany(그랙다니)’를 바라봤을 때 그들이 서 있는 현재 위치는 확실히 주류의 바깥쪽이다. 프로듀서(겸 디제이), 래퍼 등 다양한 음악가들이 모인, 어쩌면 레이블보다는 ‘집단 혹은 무리’(Collective)로서의 성향이 더 짙은 듯한 이 서울의 언더그라운드 레이블은 힙합을 큰 줄기로 베이스뮤직, 그라임, 정글, 바운스, 드럼앤베이스, 트랜스 등 힙합, 전자음악의 다양한 서브장르들을 넘나들며 힙합이라는 장르, 스타일의 기존의 관습에 부합하지 않는, 되려 이를 해체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듯한 음악을 선보여왔다. 얼터너티브 힙합, 그리고 비트뮤직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 사이에서 그랙다니 음악의 전반적 성향을, 동시에 ‘국힙’의 관습을 탈피하고 전복, 혁신을 꾀하는 ‘대안적 존재’라는 관점에서 이들의 정체성, 태도를 바라볼 수 있을 거 같다.

‘Black AC’는 프로듀서 ‘Sylarbomb(사일러밤)’과 함께 그룹 ‘TFO’의 한 축이었던 래퍼 ’BAC’이 프로듀서로의 본격적 행보를 시작하면서 새롭게 내건 이름으로 지난 3월, Moldy와 So Loki가 피쳐링한 싱글 [Young Sang]으로 처음 등장했다. TFO의 래퍼로서만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의외일 수도 있겠으나 사실 그는 이미 그랙다니의 컴필레이션 <8luminum>에서 두 곡의 비트를 만들어 수록하면서 이후 행보에 대한 단초를 넌지시 남긴 바 있다.

‘Young Sang’에서 합을 맞췄던 래퍼 Moldy(몰디)가 재차 등장하고 역시 <8luminum> 앨범에서 좋은 호흡을 보여줬던 래퍼 Vanda(반다)가 합세하는 등 그랙다니에서 래퍼 포지션에 있는 음악가들이 총출동한 새 싱글 ‘Hunting Trophy’에서 그의 비트는 ‘사냥꾼’(래퍼)들에게 제공된 가상의 ‘사냥터’다. 특유의 묵직한 베이스와 일그러진 노이즈를 바탕에 깔고 그 위에 타이트하게 쪼개지며 곡의 전개에 따라 다채롭게 변주되는 리듬, 조화와 부조화를 넘나들며 불길하고 음습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다양한 전자음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해 창조된 이 판에서 사냥꾼들은 그들이 ‘바보’라 칭하는 대상들을 가차없이 사냥해 여기에 해쉬태그를 달아 벽에 진열하고(#HUNTING TROPHY) 낄낄댄다. ‘헌팅 트로피’ 자체가 유흥적 사냥(트로피 헌팅)의 전리품을 의미하듯, 그들에게 있어 바보들을 사냥하는 이 일련의 행위들은 그리 무겁지 않은, 그저 유흥인 것으로 비춰진다. 이 컨셉트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그들의 사냥감이 되어 끝내 ‘헌팅 트로피’로 진열되는 그 바보들이 정작 ‘돈과 팔로워의 수치’에 목을 매는 이들, 즉 가장 ‘헌팅 트로피’에 집착하는 존재들이라는 아이러니다. 곡의 분위기는 시종 불온하기 짝이 없고, 촘촘하게 음절을 쪼개 뱉어 가파르게 내달리는 리듬과 일체가 되는 Moldy와 Vanda의 랩은 잔뜩 날이 서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한편으로는 춤을 추고 싶을 만큼 흥겹고 신난다. 그건 그들의 사냥이 그저 유흥이듯 그들의 음악 역시 결국은 그저 유흥이기 때문이려나.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더 굿 보이즈 (The Good Boys) [Rehearsal]

 

“트랩, 멈블랩, 랩싱잉의 시대인 2018년에 이들이 불쑥 던져놓는 80~90년대풍의 올드스쿨, 붐뱁의 바이브는 누군가에겐 새로울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힙합의 태동기부터 황금기(Golden Era)로 이어지는 근사했던 시절의 향수를 새록새록 불러일으킬 것이다.”

 


 

더 굿 보이즈 (The Good Boys)
Rehearsal
2018.04.04

 
2018년 현재, 힙합은 바야흐로 랩싱잉, 멈블랩의 전성시대다. 랩과 보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종종 오토튠까지 동원하여 연출되는 보컬 퍼포먼스는 의도적으로 발음을 뭉개어버리기도 하고 가사적으로는 의미와 맥락을 축약, 비약하거나 혹은 아예 거세해 버리기도 한다. 이 경향은 트랙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MC가 박자 안에 언어를 쪼개어 넣는 방식의 다양하고 개성적인 변주로 이른바 고유의 ‘스킬’을 만들어내고, 그 어법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통적인 랩의 형식에 비해 보컬이 비록 트랙의 중심에 서있으되 전면에 도드라지기보다는 곡이 추구하는 (대체로 칠(chill)한) 무드를 조성하는 악기 중 하나로 기능하는 면이 상대적으로 강조되는 듯 느껴진다. 한편 역시 최근의 대표적 경향 중 하나인 클라우드랩 역시 랩의 스킬보다 특유의 무드를 조성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는 점에선 대동소이하다.

 

 

국내외를 구분할 것 없이 이러한 트렌드가 압도적 주류가 되어버린 요즈음, ‘마르슬랭’, ‘리미티드’, 그리고 ‘선호탄’의 3인조 랩 콤보인 ‘더 굿 보이즈(The Good Boys)’의 데뷔 싱글 ‘Rehearsal’은 이 흐름을 전면으로 역행, 되려 신선함을 안긴다. 심플한 붐뱁 리듬 위로 세 사람이 짧은 호흡으로 라임을 주고 받는 유기적인 벌스 디자인과 라이브를 염두에 둔 듯 힘차게 떼창하는 심플한 훅이 만들어내는 올드스쿨 힙합의 무드, ‘더 굿 보이즈’의 음악은 마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캘리포니아의 슈퍼그룹 ‘쥬라식 5(Jurassic 5)’, 혹은 국내로 한정하자면 ‘일 스킬즈(Ill Skillz)’와 같은 올드스쿨 힙합을 컨셉트로 했던 그룹들을 필연적으로 상기시킨다. 더불어 ‘선호탄’과 ‘리미티드’가 뱉어내는 각기 다른 바이브를 지닌 날카로운 하이톤 보컬 사이사이에 ‘마르슬랭’의 묵직한 저음이 적절하게 자리하며 만들어내는 균형감각, 또한 이를 통해 비로소 멤버들 각자가 지닌 개성이 최대치로 도드라지며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낸다는 점 또한 앞서 비교대상으로 언급했던 그룹들과 자연스레 공통분모를 형성하는 지점이다. 여하튼 트랩, 멈블랩, 랩싱잉의 시대인 2018년에 이들이 불쑥 던져놓는 80~90년대풍의 올드스쿨, 붐뱁의 바이브는 누군가에겐 새로울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힙합의 태동기부터 황금기(Golden Era)로 이어지는 근사했던 시절의 향수를 새록새록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더 굿 보이즈’의 존재는 이제 고작 첫 걸음인 이 시점에서 이미 꽤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앞으로 이들이 무엇을 보여줄지 왠지 기대해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끝으로 이들이 이 곡의 정식 발매를 앞두고 티져 격으로 공개했던 ‘OMT’라는 트랙의 짤막한 뮤직비디오를 소개한다. 세 엠씨가 호기롭게 뱉어내는 ‘프레쉬한’ 라임을 듣고 있노라면 당신 또한 나처럼 ‘BACK TO THE OLD-SCHOOL’이라는 저 유명한 프레이즈를 문득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Editor / 김설탕
sugarules@poclan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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