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팝이 유행이다. ‘시티팝’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작년에 비하면 ‘시티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도 보이고*, 여러 디제이들과 음반 가게들도 하나 둘씩 꺼내 드는 요즘이다. 겪어보지 못했던 시공에 대한 ‘향수’ 혹은 환상을 불러 일으키고, 과거 음향 기술의 한계를 의심케하는 비현실적인 완성도를 갖춘 시티팝. 이 범주의 넘버들이 이뤄낸 묘한 현실과의 괴리는 취향의 여부를 떠나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어쩌다 이것이 유행하게 되었을까? 필자는 레트로의 유행과 더불어 80년대 훵크Funk, 디스코, 소울, 팝 등을 샘플링한 베이퍼웨이브의 유행이 시티팝의 재부흥에 큰 동력이 되었다고 보지만, 그 배경은 제각각 보는 관점에 따라 크게 다른 것 같다.
시티팝이란 무엇인가? 카도마츠 토시키Kadomatsu Toshiki 프로듀싱의 안리Anri <Timely!!>(1983)나, 허물어진 훵크, 소울, 발라드의 경계에서 묘한 청량감을 주는 야마시타 타츠로Yamashita Tatsuro의 80년대 발매작들, 훵크Funk와 전자 음악의 조화가 환상적인 사토 히로시Sato Hiroshi의 <Awakening>(1982)과 같은 음악이 전형적인 ‘시티팝’이라 꼽히나, 포크에 가까운 다수의 트랙이 실린 오누키 타에코Onuki Taeko의 <Sunshower>(1977)도 시티팝이고, 재즈를 기반으로 한 호소노 하루오미Hosono Haruomi의 <Pacific>(1978)도 시티팝으로 불린다. 이처럼 시티팝이라 불리는 음악들 모두 적게는 두 개, 많게는 대여섯 개의 장르에 걸친 음악들이니 장르로써의 정의가 모호한 것은 사실이다. 그저 모든 것이 풍요로웠던 80년대 일본 도시의 감성, 혹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당시 이들의 로망(푸른 해변에서의 휴가 등의 이미지)을 담은 음악이라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도시의 감성’과 ‘시대의 감성’은 늘 바뀐다. 80년대의 경제 풍요 속에서 젊음을 불태우던 세대는 한 발 물러서 지금의 청춘들에게 바톤을 넘긴지 오래고, 요즘 세대들의 감성과 정서는 당연히 예전과 같지 않다. 따라서 지금의 새로운 세대가 노래하는 ‘2010년대의 도시 감성’도 엄연히 현대판 시티팝으로 볼 수 있다(물론 80년대의 시티팝과 지금의 시티팝은 누가 들어도 다르다). Cero, Yogee New Wave, Never Young Beach과 같은 일본의 인디 록밴드들조차도 시티팝 혹은 서프팝이 브랜딩의 키워드인 것만 보아도, 분명 시티팝의 범주에 속하는 음악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80년대의 낭만, 여유, 뉘앙스를 표방하며 ‘현대판 시티팝’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부야케이에 더욱 가까운 일본 인디 록밴드의 음악마저 ‘시티팝’으로 정의되며, 도시 감성이라면 모두 시티팝이라 일컫는 지금, 우리나라의 현대판 시티팝을 꼽자면 어떤 앨범이 있을까. 포크라노스의 ‘내 맘대로 시티팝’을 만나보자. 어쨌든, 시티팝은 듣는 이마다 다른 정의를 내리는 머리 아픈 무언가임은 확실하다.
미국의 록밴드 TV on the Radio, Yeah Yeah Yeahs, 드림팝밴드 Beach House의 전담 프로듀서 Chris Coady는 <Genuine>을 프로듀싱하면서 ‘서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곡’이라 코멘트 한 바 있다. 일종의 ‘서울 시티팝’인 것이다. 간간이 치고 나오는 동양적인 사운드는 ‘아시아 어딘가’를 연상케 하지만 그것이 ‘서울’ 그 자체를 떠올리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 더 구체적인 표현이라면 홍수로 범람하는 북촌 한옥마을이라든가 63빌딩의 아쿠아리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어쨌든, 도입부부터 시원하게 펼쳐지는 신스의 멜로디를 타고 트랙 끝까지 헤엄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청량함에 취하게 된다.
‘물’이라는 하나의 소재가 앨범 전체를 관통하지만 그 안에 제각각 희와 비가 있고, 도시와 로맨스도 있다. 알앤비, 소울, 재즈, 훵크Funk가 결합한 그루브는 어둠에 젖은 도시의 야경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도시 일상 속의 낭만도 보여준다. 2번 트랙 ‘숨 Breath (feat. 최삼)’을 제외하고는 가창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가창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디테일한 연주는 언제 들어도 감탄스럽다.
발바닥에 땀나게 서핑하는 사람보다 노곤하게 서있는 야자수가 더 많고, 분주히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까먹는 이들보다 눕듯이 앉아 파도를 응시하는 눈들이 더 많은 해변이다. 작렬하는 태양보다는 선선한 바람이 더욱 쉽게 연상되는 ‘칠Chill한’ 분위기의 로파이한 서프팝. 컨트리의 느낌도 챙기는 몽환적인 기타 사운드와 나른한 보컬이 참 매력적이다.
04. 스쿠비두 <ensemble>
훵키한 베이스 리듬, 낮지 않은 음역의 보컬, 리버브 없는 담백한 사운드. 결성된 지는 20년이 훌쩍 넘은 노장 밴드이지만 전형적인 ‘일본의 젊은 인디 록밴드’라고 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05. 쏠라티 <Movie>
말 그대로 ‘어반팝 밴드’라는수식이 쏙 어울리는 쏠라티. <Movie> 전체적으로 재즈의 분위기가 강하지만 뻔하지 않다. 키보드는 트랙 구석구석에서 미러볼처럼 반짝이고, 림의 보컬은 넘치는 그루브 안에서 절제된 소리를 내주고 있다. ‘숨’부터 ‘끝판왕’까지의 서사도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이, 정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과도 같다.
06. 남녀공룡 <Love Is In The Ear>
남녀공룡의 유일한 발매작이자 벌써 햇수로는 발매된 지 5년이 넘은 EP <Love Is In The Ear>에 콕 집어 언급하고 싶은 트랙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트랙이기도 한 ‘Blueberry Dream’이다. 차갑고 건조한 꿈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 트랙에서 남녀공룡은 속삭임과도 같은 보컬로 잊을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한다. 미니멀한 셋의 높은 밀도가 놀랍고, 작고 사랑스러운 일렉트로닉 팝의 정석과도 같은 모습이 놀랍다.
*영기획(YOUNG,GIFTED&WACK Records) 소속의 골든두들은 문화 웹진 인디포스트에서 두 편에 걸쳐 시티팝의 정의와 대표적인 앨범들을 소개하고, 초대 손님과 함께 시티팝이 성황하던 일본 80년대 당시의 추억을 나누는 대화를 가지기도 했다.
[골든두들의 뮤직 캐러밴] 시티팝에 관한 도시적 대화(1): http://www.indiepost.co.kr/post/2326
[골든두들의 뮤직 캐러밴] 시티팝에 관한 도시적 대화(2): http://www.indiepost.co.kr/post/2407
Editor / 김은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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