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면 어떻고 Punk면 어떤가
유통사에서 일하기 전, 음악을 특정 장르로 분류한다는 것이 아주 못마땅하게(?)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만 명의 아티스트가 있다면 만 개의 제각기 다른 스타일이 있다고 믿는 나는, 이들을 장르로 분류한다는 것은 각각의 무궁무진한 개성을 진부한 틀에 한정짓는 것이라 생각했다. 과거 나에게 장르란 것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은, 음악을 수식하는 워딩이나 갈래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 많지 않았던 점도 있고, 음악을 듣는 데에 있어 장르를 따지는 것이 그닥 중요치 않게 여겨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대중들로 하여금 보다 새로운 음악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적절히 가공하고 분류하는 것이 일이 된 만큼, 앨범을 특정 기준에 의거해 분류시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장르에 대한 인식을 키우는 과정 중에 Funk와 Punk의 장르명을 혼동했고, 심지어 그 이전에는 둘 중 하나의 오탈자 정도로 여기고 있었으니 나의 답답함과 부끄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상태인 것을 확인하고는 내심 마음이 가벼워졌지만(?), ‘머리를 볶았으면 Funk, 세웠으면 Punk’라는 옆 부서 팀장님의 터무니없는 팁을 참고해 여러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직접 들어보며 이 둘의 차이를 확실히 알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번 편에서는 내가 겪었던 혼란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만한 앨범을 소개해볼까 한다.
Funk와 Punk의 정의는 귀로 직접 들으며 스스로 세워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나의 경험상, 한 줄 설명과 같은 것들이 명쾌한 답이 되어줄 순 없다. 앞서 말했듯, 하나의 장르 안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개성들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FUNK[훵크]
1. 나잠 수 <사이버가수 아담>
<사이버가수 아담> 발매 자료를 훑으며 추억에 잠기신 (불혹의) 팀장님으로부터 아주 흥미로운 얘기를 듣게 되었다. <사이버가수 아담>의 주인공인 아담은 정말 정규 앨범을 2장이나 낸 발라드 가수였다는 점. 20세기의 그래픽 기술로 탄생한 것 치고는 꽤 잘빠진 이 가수에게는 (어딘가 의도적으로 자아낸 듯한) 고도의 병맛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나름 아티스트 정보라고 알려진 내용이나 그가 결국 활동을 접게 된 슬픈 이유들조차 말 그대로 ‘실소를 금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물론, 이런 아담을 소재로 노래한 나잠 수는 두말할 것도 없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사이버가수로서의 존재론적 슬픔을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의 사운드에 담은 <사이버가수 아담>. 중독성 강한 그루비한 사운드는 둘째치고, 이 싱글이 불러일으키는 오프더레코드 이야기들은 너무나 흥미롭다. 옛날 사람들은 좋았겠다. 그렇게나 재밌는 것들이 많았으니.
2.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니온 라이트>
위 나잠 수가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가장 최신 발매작, <니온 라이트>다. 사실 <니온 라이트>는 Soul에 더 가깝고, 오히려 직전 싱글들인 <웨ㅔㅔㅔㅔ>나 <SQ>, <탱탱볼>이야말로 진짜 펑키한 앨범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온 라이트>를 고른 이유는, 현재 개별적으로 활동중인 멤버 나잠 수와 김간지X하헌진이 각각 술탄 오브 더 디스코와는 또다른 색깔의 음악을 풀어내고 있어, 큰 그림으로는 더욱 다양한 장르를 포용할 수 있게 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모습을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퍼포먼스 위주의 음악과는 다른, 조금은 더 점잖아진(?) 이 그루브 속엔 분명 그 내공이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들의 작품들과 함께 비교해 들어보길 권한다. 이들의 음악이 어떤 변화를 거쳐가고 있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꽤나 흥미롭다. 참,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뮤직비디오는 꼭 챙겨보기를 추천한다. 가관, 아니, 장관이다.
3. 스쿠비 두 (Scoobie Do) <Away>
스쿠비 두는 일본의 4인조 훵크/록 밴드로, 결성 당시 60년대 흑인 R&B 음악들을 커버하며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훵크와 록 모두를 그들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는 노장 밴드이다. Funk와 Rock을 그들만의 스타일로 구현해내는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Funk의 흥과 Rock의 역동성 모두를 느낄 수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생기는 입지와 안정감에 안주하지 않고, 결성된 지 10년이 조금 넘어서는 독자적인 레이블을 설립하기에 이른 이들. 이에 멈추지 않고 한국이라는 새로운 곳에서의 모험을 풀어내며 위 술탄 오브 더 디스코와의 공연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쩌다보니 FUNK의 세 앨범은 모두 붕가붕가레코드의 발매작으로 이루어졌는데, 추후 레이블 특선 편에서 더 흥미로운 앨범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PUNK[펑크]
1. 신해남과 환자들 <Like it!>
런웨이와 매거진 화보에서 주목받던 신해남이 펑크록 밴드 페이션츠(PATiENTS)와 뭉쳐 한 밴드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신해남이 모델로서 더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난데없는 직업 전향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녀에겐 이전에 밴드 다이브스로 무대에 오르던 이력이 있다. 두 달 전, 신해남과 환자들의 첫 데뷔싱글 <야간비행>을 발매할 때만 해도 펑크 락 범주에서는 비교적 차분한 전개와 서정적인 가사가 나왔고, 페이션츠의 음악에서 들리던 재기발랄한 건반이 곡을 전반적으로 감싸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두 번째 싱글 <Like it!>에서 이토록 상큼한 펑크를 보여줄 줄이야! 당돌한 가사와 시원한 사운드가 주는 청량감은 신해남과 환자들의 또다른 정체성인 듯 했다. 펑크의 장르 안에서도 엄연히 다른 두 스타일을 보여준 신해남과 환자들. 이 차이를 보는 맛이 쏠쏠하다.
2. The Brigade <Boys On The Street>
‘국내 펑크 락을 추천해주세요’라고 인터넷에 물어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레이지본과 포브라더스, 그리고 하이힐스 출신의 멤버들로 이루어진 The Brigade. 이들이 기반으로 한다는 Oi! Punk는 계급을 결속시키며 서브컬쳐의 부흥을 이끄는 목적으로 시작된 영국의 스트리트펑크인데, 그래서인지 어딘가 비장하면서도 의기투합하는 목소리가 유독 두드러지는 느낌이 강하다. 가장 먼저는 ‘너의 영광을 만방에 알려라’나 ‘지겹게 부대껴도 나아가자’ 등 집회나 스포츠 응원가 등에서나 들릴 법한 가사가 눈길을 끌고, ‘와다다다’하는 다른 펑크 계열과는 분명히 다르게 안정적인 호흡이 보이는 앨범이다.
3. DTSQ <The Brain Song>
사실 DTSQ는 개러지록을 기반으로 한 음악을 하지만, 펑크의 무드가 살아있어 꼭 소개하고 싶었다. 다른 펑크 음악의 느낌과 비교해보며 들어보길 추천한다. DTSQ의 발매작들은 가사가 모두 영어로 쓰였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그 중 <The Brain Song>은 나름의 서사(?)가 있다는 차이가 있다. ‘뇌’와의 신경전을 재치있게 풀어낸 가사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스틸페이스 레코드의 클럽에서 들을 수 있었던 ‘The Brain Song’의 라이브는 음원보다 훨씬 흥겨웠고, 대개 록음악이 그렇듯 노래가 끝나고는 한참 동안의 여운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Editor / 김은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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