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럭의 싱글콜렉션 – 3월 추천작: 데이먼스 이어, 폴카이트 외
길어진 코로나19와 자가격리, 세계적인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수업도, 업무도 온라인으로 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아마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이럴 때일수록 안심하지 않고 거리 두기를 실천하기를 권한다. 최근 온라인 스트리밍 이벤트가 늘어나면서 볼 것도, 들을 것도 많아졌다. 마음만 먹으면 평소에 보지 못했던 각종 문화 행사를 방에서 누릴 수 있다. 좋은 음악도 많다. 싱글이 아니라 담지 못했지만, 콧(cott)의 EP [Rotary], 윤딴딴의 [신혼일기], 허니배저레코즈의 [HBRTRX Vol.3], 아슬(Aseul)의 [Slow Dance] 등 앨범 단위로 들을 것도 많다. 이번 달에도 많은 싱글이 나왔지만,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몇 곡을 따로 꼽아보았다. 이번에는 각종 TMI도 방출할 예정. 순서는 무순.
A-FUZZ (에이퍼즈) [The Lamp is Low]
누자베스(Nujabes)라는 이름을 안다면, 싸이월드에서 좀 놀았다면, 혹은 ‘재즈힙합’이라 불리는 프레이즈 샘플링(Phrase sampling)을 기반으로 한 일본 프로듀서들의 음악을 즐겼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피터 드로즈(Peter DeRose)와 버트 쉐프터(Bert Shefter)의 손을 거쳐 로린도 알메이다(Laurindo Almeida)가 연주하여 누자베스의 곡에 쓰이기까지 여러 과정과 세월을 거쳤고, 에이퍼즈는 이 모든 과정을 품에 안고(?) 리메이크를 선보였다. 원곡에 해당하는 부분을 하나하나 쫓다 보면 더 많은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되겠지만, 사실 그보다는 도기코기와의 조합이 정말 잘 어울린다.
리유(Riyou) [DREAM in DREAM]
탑밴드3에 등장해 좋은 모습을 보였던,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한 밴드 애프니어(APNEA)를 기억하는가? 실리카겔의 김건재도 있었지만, 보컬에는 리유가 있었다. 애프니어의 주축이자 시그니처, 오마이걸, 우주소녀, 아이즈원까지 케이팝 내에서도 이름을 조금씩 비추고 있는 엔소니우스(Nthonius)가 함께 만들었고, 결과는 전자음악을 결합한 알앤비 음악이 되었다. 워낙 다양한 스펙트럼을 오가는 프로듀서와 자기 색채가 확실한 보컬이 만났기에 표현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두 사람이 앞으로 선보일 음악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비단 두 사람의 커리어뿐만이 아니라, 이 곡이 지니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신미도(SIN MIDO) [죄의 사슬]
다소 거칠고 강렬한 뮤직비디오나 비주얼은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다분하지만, 음악만큼은 많은 사람이 좋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혀 다른 몇 가지 장르를 섞을 때 더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많지만, 화학적 결합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그러한 점에서 신미도는 뛰어난 음악가다. 적어도 하나와 다른 하나를 결합할 때에는 두 가지 모두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신미도에게는 그러한 음악적 배경 혹은 자산이 유효한 듯하다. 키라비(Kiravi)와의 호흡도 인상적이다.
결(KYUL) [Polaroid]
조금씩 성장해가는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결의 신곡. 성대결절로 인해 얻게 되었다고 하는 지금의 목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정돈되어 간다고 느끼게 하며, 간결하고 깔끔한 프로덕션은 점차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의 곡에서 빛나는 것은 보컬과 보컬 라인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더 큰 장점을 느끼는 부분은 사운드다. 작곡, 편곡은 물론 믹싱, 마스터링까지 직접 해내는 그에게는 싱어송라이터로서 가질 수 있는 것 그 이상의 자산이 있다. 그가 발표한 곡을 천천히 정주행해보자.
수림(SURIM) [알 수 없어요]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을 담은 곡이 이토록 차분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 줄이야. 항상 수림의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매번 정화된다는 느낌이 든다. 몇 곡을 이어 듣다 보면 수림이라는 음악가가 어떤 사람인지도 얼핏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하지만 어렵지 않게 다가오고, 진심이 느껴지지만, 오히려 그것이 듣는 이에게 감사함을 준다. “꾸밈없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원테이크로 녹음을 진행했고 녹음 중에 들어간 대화를 삭제하지 않았”다고 하니, 중간에 갑자기 사람 목소리(?)가 나온다고 해서 화들짝 놀라지 말자. 아마 많은 이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곡이 아닐까 싶다.
추다혜 [몽금포]
그런가 하면 매력이 넘치다 못해 그것이 아우라처럼 느껴지는 예도 있다. 씽씽의 일원이었다는 한 줄로는 너무나도 설명이 부족한, 음악극부터 소리까지 다양한 장르와 영역을 아우르는 멀티 엔터테이너 추다혜가 자신의 첫 싱글을 발표했다. 서도 소리, 무가로는 따라갈 자가 없을 듯한 재능 있고 젊은 마스터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뿐이다. 록, 팝의 문법으로 재해석한 몽금포타령에는 흥미로운 편곡이 더해져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독특한 듣는 재미를 준다. 앞으로 더 큰 무언가를 들고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해보자.
Lofibaby(로파이베이비) [Decalcomanie]
로파이베이비가 [Body Painting]에 이어 이번에는 [Decalcomanie]를 선보인다. 사랑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시각적 표현에 비유하는 두 싱글을 통해 두 번째 정규 앨범에 관한 힌트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섹시하고 강렬한 이전 싱글과 달리 이번 곡은 좀 더 서정적이다. 로파이베이비만의 질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표현의 스펙트럼은 점점 더 정교하게 넓어지는 중이다.
paulkyte(폴카이트) [Found]
재능 있는 프로듀서이자 피아노 세션이자 싱어송라이터인 폴카이트가 EP 발매 전 선공개 싱글을 조금씩 선보이는 중이다. 폴카이트만의 감성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고 싶다면, 그리고 폴카이트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일단 “Found”와 “서운해” 두 곡을 들어보자. 참고로 폴카이트는 대도서관의 피아노 선생님이자 백예린의 세션 멤버이자 작곡가이기도 하다. 재능 있는 그의 예능적 순간을 보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검색해보자.
YESEO [Beautiful Creature]
어마어마한(?) 해외 팬을 거느리고 있는 예서의 새 싱글이다. 항상 긴 공백을 깨고 온 뒤의 음악은 전작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팬의 입장에서는 기다림의 시간이 싫겠지만 예서는 그만큼의 대가를 들고 돌아오기 때문에 밀당의 귀재가 아닐까 싶다. 이번 싱글은 정규 앨범 발표 이전의 예서를 떠오르게 하면서도, 전자음악의 색채가 강하면서도 밀도 높은 편곡으로 좋은 팝 음악을 완성했다.
데이먼스 이어(Damons Year) [Rainbow]
(식상한 표현이지만) 흉내 낼 수 없는 목소리, 목소리로 만드는 분위기, 덤덤하게 담아내는 진심 어린 가사… 흔히들 이야기하는 입덕포인트가 산더미인 데이먼스 이어가 공연장에서 몇 차례 들려준 바 있는 “Rainbow”를 음원으로 공개했다. 사실 3, 4월에는 계절 특수를 노리는 밝고 예쁜 사랑 노래가 보통 많이 나오는 편인데, 세상이 이러하니 그러한 곡이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렇게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곡이 평소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듯하다.
THREE1989 [Part Time Summer]
에프에스 그린(FS Green)이라는 이름을 쓰던 사내가 있었다.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와의 협업은 물론 보일러 룸(Boiler Room)을 비롯한 여러 플랫폼에 이름을 비추었고 디제이/프로듀서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러던 그가 미다스 허치(Midas Hutch)라는 또 다른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훵크 사운드를 기반으로 재치 있는 음악을 선보였다. 이태원 소프(Soap)에 가끔씩 나타났고, 지역과 색채를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런 그가 일본의 팝 밴드 쓰리(THREE1989)를 만났다. 쓰리에 관하여 궁금한 사람들은 유투브에 검색해보자. 아이콘티비와 진행한 인터뷰가 있다. 쓰리 또한 일본에서 좋은 음악으로 입소문을 타는 중인데, 이번에 굉장히 신나는 곡을 함께 만들었다. 정말 잘 만들었다. 꼭 들어보자.
이루리 [나의 곁에 있어줘]
사실 이번에 발표한 “나의 곁에 있어줘”는 곡의 구성부터 소리의 구성까지 매력적인 부분이 워낙 많아서 지극히 나의 취향만으로 따지자면 이루리라는 음악가가 발표한 곡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한다. 레니(Leni)가 함께 참여했기에 달라진 부분도 있겠지만, 음악가가 직접 믹싱했다는 점도 (지극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이다. 음악적 면모를 강조하는 그런 점에서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소리가 있었을 것이고, 그게 충분히 드러났다는 것으로 생각해서다. 그러한 부분을 다 떠나서 정말 좋은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