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태어난 21세기의 청년들, 20대 남성 뮤지션 특집
데카당, 강태구, 정봉길(바이바이배드맨)
여성 뮤지션 특집에서는 이제까지 규제화된 이미지들을 벗어난 좀 더 포괄적인 여성 뮤지션을 찾아 담고 싶었다면 좀 더 새로운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젊은 남성 뮤지션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펑크에서 소울, 포스트 록 등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대범한 신예 밴드 ‘데카당’, 가장 깊은 곳의 감정을 외롭지만 아름다운 포크의 언어로 주조하는 ‘강태구’, 직선적인 로큰롤에서 신스팝까지 다양한 변화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데뷔 9년 차의 ‘바이바이배드맨(정봉길)’까지. 장르의 혼종이나 과정에서의 연대가 자연스럽고, 본인들만의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21세기의 청년들이다.
힘주어 말하지 않아도, 손을 들어 나서지 않는다 해도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빛나는 시절을 20대라 생각해왔다. 그래서일까, 언젠가 전혜린의 문장 속에 20대의 나를 대입해본 적 있다.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언제나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아마 유일의 선물’이라면 나는 이들을 지금 가장 힘주어 소개해야 하는, 해의 첫 시작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라 하겠다. 매일이 1월이라면 불확실한 것들 속에서도 우리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도, 더 벅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도 있을 테다.
데카당
다소 추상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첫인상을 믿는 편이다. 이들을 처음 만난 순간에 대한 얘기는 언젠가 좀 더 진득하게 풀어놓고 싶어 아껴두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당에 대해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이 언급해야 하는 필연적인 ‘처음’이 있는데, 이들의 라이브를 처음 본 날과 데카당의 데뷔 앨범의 유통 담당자로 이들의 결과물을 처음 만난 일. 사실 공연과 음원이라는 꽤 극단적 첫 인상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내겐 매번 같은 긍정적 충격이었고, 그러니 그 어느 순서였다해도 결국엔 이들에게 반하고 말았을 것이다.
무방비 상태로 접한 이들의 공연은 펑크, 네오 소울, 록 등 그 모든 걸 가로지르는 셋리스트였고 그 안에서도 이들을 지탱하는 묵직한 중심은 소울보다는 록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EP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공연에서 자주 등장하는 ‘각주’, ‘토마토 살인사건’ 등이 곡이 안긴 강렬함 때문이리라. ‘A’나 ‘너와 나’를 변주라고 생각하기도 했을 만큼 실제로 이들의 활동 초반부 라이브부터 자주 선보인 ‘Peter parker’, ‘일당백’ 등의 곡에서의 퍼포먼스는 경구에 가까운 가사보다도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이들의 첫 EP [ㅔ]에는 이들이 본래 싣고자 했던 일부 곡이 빠져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각주’와 ‘토마토 살인사건’이라는 두 곡. 덕분에 다소 일관적이지 않아 보이는 트랙 구성, 변이된 형태의 앨범이 완성이 되었고 되려 관계자들과 리스너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라이브를 처음 보았을 때에 대한 표현에서 쓴 ‘가로질렀다’는 말도 사실 그 때문이다. 녹음 과정에서 의도하지 못했던 사건으로 인해 2곡이나 빠지게 되었다는 이들의 변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물론, 도대체 뭘 더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감이 팽팽한 허공 사이를 가른다. 극단적으로 도치되는 표현임에도 이들의 의도하지 않은 빈틈은 제법 가볍고 매끄럽다. 무엇이 비집고 들어간대도 그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왜냐면 데카당이니까.
장르 자체에 대해 앞서 언급했지만 애써 그것에 대한 이해 없이도 데카당을 좋아할 수 있는 포인트는 충분하다. 95, 96년생의 멤버들로 구성된 20대 초반인 이들의 자연스러웠던 결집의 과정, 의도하지 않은 크로스오버에 대해 더 힘을 주어 이야기하고 싶다. 예술에서 연대가 익숙한 지금의 20대가 선보인 결과물 중 대표적 예로 볼 수 있겠다. 성서에 등장하는 ‘살로메’, 동명의 만화로도 존재하는 ‘우주형제’처럼 문학 등의 타 예술 장르에서 가져온 곡 제목 등 이들의 배경이나 살짝 접어둔 책장 같은 의도를 찾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사실 이들은 스스로가 가져올 본인의 미래를 잘 모르는 것도 같다. 저자는 자기 책의 단점을 알게 되는 첫 번째 사람이자 장점을 알게 되는 마지막 사람이라는 신형철의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뭐 어떠한가. 젊음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아름다운 고집같은 거니까. 사적 체험을 통해 층층이 쌓이는 취향이 만들어낼 아름다운 결과물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저 트랙 제목이나 가사의 배경을 음미하며 데카당의 다음을 기다리면 될 뿐이다.
강태구
사실 강태구라는 뮤지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채 두어 달도 못 된다. 처음은 지난 11월 발표된 ‘그랑블루’와 ‘내 방 가을’이었고, 그 이후 발매된 ‘Passenger’를 그보다 더 늦게 접하면서 단순한 감상을 넘어 이 강태구라는 뮤지션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분명 부재하는 존재와 기억에 대해서 노래하면서도 참 이상하리만치 덤덤한 그의 보컬이 인상 깊었다. 한숨을 뱉는 것 같다가도 어떤 곡에선 선명하고 단호하게 감정을 전하는 것마저 참 신기해서 몇 번을 갸웃거렸다. 포크라는 장르에 대해 잘 알지못한다는 두려움이, 혹여 조금의 견해를 덧붙여도 그게 이 앨범의 ‘완벽함’에 오기가 될까 싶어 음악이 좋다 언급하는 것도 애써 눌러두었던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두 싱글 모두 오프라인에서 피지컬 음반으로 처음 발표된 [bleu]를 작년 연말 싱글 컷으로 두 곡씩 담아 발표한 것이고, 금번 온라인으로 발매된 정규 앨범 [bleu]는 그 전부를 묶어 디지털 음원으로 발표한 것이다. 2012, 3년도 무렵부터 공연을 하고 앨범을 만든 그는 비교적 최근엔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인’과 만나 전보다 더 아름다운 애상의 정서가 덧대여졌다.
앞서서 말한 그 두려웠다는 표현을 조금 고쳐 주저했다는 표현으로 다시 써본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음악을 좀 더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일종의 죄책감이다. ‘아를’과 함께 한 2013년의 스플릿 앨범을 진작에 접했다면 포크에 대한 내 인상이 좀 더 빨리, 뭔가 더 다른 방향으로 닿지 않았을까. 기껏해야 내 플레이리스트 안에서의 변화겠지만 어쨌든 지난 겨울 사이 크고 작은 변곡 중 하나라고 할 대 강태구의 음악은 내 안의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가장 인상적인 손길이었다.
가사를 더듬다 그의 나이가 20대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고 사실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어딘가에 홀로 오래 남아 그 기억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기웠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의 곡들을 듣는 내내 한 번도 닿아본 적 없는 심해처럼, 내밀한 누군가의 마음속 저 끝을 들여다본 여행을 한 것 같았다. (그의 가사를 인용해보자면)’모두 내 안에 왔다가 떠나가 너무 많은 이별 속에 울었지’만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이, 가본 적 없는 먼 훗날, ‘평생’에 대해 노래하는 이가 보내온 시절은 도대체 어떠할까. 사랑에 있어 한 번도 담담해본 적 없던 나의 지난 20대를 떠올리다 ‘밤의 끝’이라는 곡까지 닿고 보니 그가 겪어온 모든 이별, 실패, 슬픔까지 보였다. 덤덤하게 뱉은 자조적인 토로 이후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바램이 따라붙는다. 동경과 기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어쩐지 그건 지금의 젊은 날에만 가능한 간절한 선언 같았다.
언젠가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이라 믿었던 시간이 참 길었다. 언젠가 헤어진 이의 얘기를 전해 들으며 괴롭고 지난한 연애 내내 내가 그를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어쩐지 또 너무 쉽게 사랑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 상대는 한 번도 닿아본 적 없었지만 그게 세상의 끝일지언정 무작정 닿아보고 싶은 강태구의 음악이다.
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질 때의 감정, 새로운 것에 발을 들이는 순간에 느끼는 감정이란 얼마나 무모한가. 그래도 여전한 호기심과 두려움 속에서도 시도하는게 젊음이라면 그 뜨거운 감정들을 미지의 세계로 발 딛게 하는 무엇 역시 같은 젊음일테다. 태양이 닿은 적 없는 고독의 바다, 바람이 들지 않는 고독의 숲. 혹은 그 둘을 오가며 내면의 말을 살피는 사람. 나는 그런 강태구를 포크의 가장 젊은 현재이자 미래라 소개하고 싶다.
정봉길 (Bye Bye Badman)
“무슨 일이든지 일단 10년만 하면 프로야.”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주변 선배, 지인들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렇다면 고작 20대에 데뷔 9년 차를 맞았다는 사실은 인생에 있어 어떤 의미일까.
지난 2011년 스톤 로지스의 곡 제목에서 따온 ‘바이바이배드맨’이란 이름으로 데뷔한 보컬 정봉길은 10대에 만난 친구이자 동료인 구름(고형석), 곽민혁, 이루리와 햇수로 9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쌓아왔다. 동명의 EP를 발매한 이후 2011년 EBS 스페이스 공감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 2012년 제9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당시 반짝이는 루키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래선지 초기의 바이바이배드맨에게 붙은 ‘직선적’이라는 수식은 단순히 사운드에 대한 설명 말고도 그들의 발전과 성장에 대한 꾸밈에 대한 지칭으로도 꽤 근사하게 어울린다.
밴드의 역사에서 결집이나 연대야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어도 90년 대생의 젊은 밴드 ‘바이바이배드맨’이 ‘글렌체크’와 만나 선보인 활동들 역시 (크루, 신(Scene)의 개념으로 생각해볼 때)2010년대 국내 인디신 역사에 있어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주요한 장면들이라 생각한다. 바이바이배드맨의 디스코그라피에 있어 ‘변화’의 표피를 가진 얕거나 깊은 굴곡들도 그래서 아름다웠다 말할 수 있다.
매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작은 습관이나 취향이 아집이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될 때가 있다.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찾게 되고 내 생활의 단조로움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일들이 꽤 잦다. 타성 속에서 일이나 작업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주변인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바이배드맨, 특히 프론트맨 정봉길이 순수하게 디스코그라피 안에서만 증명해 보이는 자연스럽고 꾸준한 변화는 주목할만하다. 밴드 역사에서 앨범의 주조가 정봉길만의 영역이나 유일한 역할은 아니지만, ‘있어서 보탬이 되는’ 것보다 ‘없으면 안 되는’ 것들의 의미가 얼마나 큰 지에 대해선 사실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을까. 신스팝, 드림팝이 연상되는 일부 앨범에서 그의 보컬이 만드는 이미지, 거기에서 얻어지는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앞으로의 행보에 있어 주목할 만한 지점이라 생각한다.
바이바이배드맨은 작년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의 서브레이블 피치스레이블에 소속되며 4개의 싱글을 연달아 새롭게 발표하는 등 근래 크고 작은 다양한 활동을 했다. 솔로 및 다양한 활동 중인 유일한 홍일점 ‘이루리’, 역시 기타리스트로서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곽민혁’과 작곡과 프로듀싱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구름(고형석)’이 새롭게 가지를 만든 영역도 사실은 바이바이배드맨이라는 한 줄기에서 시작되었다 본다. 다양한 갈래로 대변될만한 팀의 대표적 이미지인 정봉길이라는 캐릭터가 바이바이배드맨 안에서 꾸준하게 만들어내는 곡들은 그게 직진이나 곡선의 변곡일지언정 밴드를 변함없이 ‘고정’시키는 하나의 축이다. 그것이 바이바이배드맨 안에서만 통용되는 언어라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말이다.
기준은 누구에게나 다르겠지만 ‘꾸준함’이란 시대와 계열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일 같다. 이십 대 초반의 나에게 자극을 주었던 또래이자 동료, 혹은 라이벌이었던 이들과 동시대를 함께 하며 성장, 그 이후의 전진을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여전히 무언의 지지를 받는 기분이다. 생각해보면 바이바이배드맨, 그 중심의 정봉길은 이미 생애의 절반을 ‘록스타’로 살아온 셈. 그런 의미에서 남은 전 생애를 다 바쳐야 하는 일,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란 의외로 간단한 질문이 아닐까. 시대는 달라져도 역사는 바뀌지 않고 바이바이배드맨은 여전하다.
Editor / 두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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