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 전시 연계 프로그램 [지금 주목해야 할 디자이너 40]에는 양지은 프레스룸 대표가 스피커로서 슈퍼샐러드스터프(SUPERSALADSTUFF) 대표이자 MSB 디자이너인 슈퍼 샐러드(정해리)를 소개했다(유튜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디테일한 소개를 보면 볼수록 그의 이력은 신기하면서도 다양하다. 다양한 이력 가운데서도 역시 음반 그래픽과 아트 디렉팅에 관한 부분에 눈이 가는데, 때마침 이번에 그는 공중그늘의 첫 정규 앨범 [연가]의 커버와 피지컬 디자인을 맡았다. 앨범에 관한 이야기부터 커리어에 관한 이야기까지 짧게 나눠봤다.
반갑습니다. 우선 공중그늘의 이번 앨범 제작에 있어서 어떤 부분을 맡으셨는지부터 여쭤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공중그늘 정규 1집 [연가]의 커버와 피지컬(CD)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앨범 커버, 앨범 디자인이라고 써있는데 그래픽을 맡으신 분은 따로 계신 것 같았어요. 두 분의 역할은 어떻게 나뉘어져 있나요?
3D 그래픽을 만드신 분은 김을지로님입니다. 을지로님은 커버와 피지컬 전체에서 보여지는 물의 질감, 바다 생물들을 탄생시켰어요. 저는 개체의 반짝임, 줌-인/아웃의 정도 등 지면에서의 사용을 고려해 이미지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가사와 함께 디자인 해 종이와 CD라는 매체에 담는 역할을 했습니다.
피지컬 디자인을 하실 때 가장 많이 고려한 부분은 어떤 부분이셨을까요? 공중그늘 멤버들과는 어떻게, 어떤 내용을 소통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에 제작중인 뮤직비디오를 보고, 앨범 컨셉에 관해 내용을 주고 받았습니다. 제 나름대로 키워드를 뽑고 그것을 염두하며 디자인을 했습니다. 키워드는 ‘환상적, 만화적, 초자연, 매끈한, 물 속, 새로이 나아가는’ 등 이었습니다. 앨범 디자인을 의뢰하셨을 때부터 제작이 완료될 때까지 단 한 번도 공중그늘 멤버 분들과 만난 적이 없고 메일로만 소통했습니다. CD가 완성된 후에 처음 뵈었어요!
주얼 케이스를 싼 반투명 PVC 커버부터 내부 오브제 구성이나 배치가 굉장히 특이한데요. 기존의 공중그늘과 결이 맞으면서도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앨범에서는 어딘가 새로운 모습, 좀 더 잘 다듬어진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과 디자인이 잘 맞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음악적인 부분이나 실제로 안에 담겨 있는 컨텐츠를 시각화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먼저 커버와 가사지를 디자인했습니다. 그리고 CDR, 슬리브(패키지)를 구상했어요. 음악을 쭉 들으면서 가사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하는 말을 물이나 공기에 띄운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추상적인데, 그래서 각 트랙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선택하고 빛이 글자에 닿으면 은빛이 나도록 했습니다. 물 속에 있으니까 CD를 가릴 필요가 없고요. 그리고 앨범 어디에도 타이틀인 [연가]를 따로 떼어서 적어두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면 이제 다른 피지컬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도 조금 해볼까 해요. 선우정아님의 [Serenade] LP 때, LP 디자인도 하신 적 있으시죠. 굉장히 깔끔하고 정갈하더라구요. 뒹굴뒹굴의 아름다움(?)과 신선함보다는 좀 더 포멀한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정규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도 있나 싶어서 여쭤봅니다.
[Serenade] 이전에 EP [Stand], EP [Stunning]의 발매가 있었습니다. [Serenade]는 그 시리즈를 하나로 묶어주는 완성형의 정규 앨범이었습니다. EP에서 돌이나 반짝이는 보석 등 오브제와 함께였다면, 정규 앨범에서는 선우정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답니다.
구원찬의 [일지] 같은 경우에는 앨범의 컨셉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느낌이 들어서 앨범의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포크라노스의 컴필레이션 앨범은 반대로 정말 실험적이고 눈에 띄는데요, 과감한 요소를 담는 데 있어 가장 중점이 되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음반 디자인을 할 때마다 재미있고 또 어렵기도 한데요, 아티스트의 개성과 음반 각각이 가지는 다른 이미지를 모두 존중하고싶기 때문입니다. [일지]의 경우에는 실제로 원찬씨의 일지 넘버와 글이 있기도 하고, 컨셉이 명확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포크라노스 컴필레이션 Vol. 3 ‘웅성웅성’]의 경우, 제가 전달받은 것은 많은 아티스트의 음악과 ‘usus(웅성웅성)’이라는 타이틀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차례로 들으면서 자유롭게 디자인했어요. 웅성웅성은 여럿이 모여 내는 소리를 글자로 압축해 놓은 것이니까 오히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보다 소리 즉, 글자를 휘날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천미지 님의 로고나 앨범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슈퍼샐러드님 작업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데요. 어느 정도 자유도나 그런 것들이 보장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초반에 사진이 잘 보이고 중요하게 작용하는 피지컬이면 좋겠다는 대화를 했었어요. 그래서 사진을 최대한 해치지 않고 단정하고 안정적인 그러나 가사의 레이아웃은 조금 어긋나있는 시안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진행을 하다가 미지씨와 저 둘 다 어딘가 찜찜함이 있었어요. 앨범 속 사운드나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에 비해 절제된 디자인이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갑자기 ‘아니에요. 그냥 정말 마음대로 해 주세요! 사진도 자르고 변형해도 좋습니다!’ 라는 말을 듣고 ‘네! 그럼 정말 제 마음대로 할게요!’ 라고 해서 완성된 디자인이네요. 결국 실제로 쓰인 디자인은 가장 높은 자유도 속에서 나온 디자인이고 저와 미지씨 모두 만족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포크라노스와 연관은 없지만, 그래도 린지님 커버 작업이 저는 좋았어요. 아무래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오브제 자체도 그렇지만 폰트와 배치인 것 같아요. 저는 이런 부분은 잘 모르지만 특히 배치는 과감한 듯 균형 있는 그런…
첫 발매였는데요, 그래서 타이틀은 따로 있는데 타이틀을 적지 않고 유리창 위에 아티스트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쓴 듯이, 그리고 크게 만들어 넣었습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좋은걸요!
앨범 작업 외에도 다양한 작업을 하시잖아요. 매우 늦었지만, 본인의 작업 반경이나 주로 해왔던 포맷?을 소개해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앨범 작업 외에는 공연이나 전시회, 영화 포스터, 현수막, 건물 내/외부를 장식하는 디자인, 책 편집, 글을 돕는 삽화(이미지), 브랜드 아이덴티티, 패키지 디자인 등을 합니다. 상품개발도 하고요.
클라이언트가 있는 작업 외에도 디자이너로서 독자적으로 만드신 것도 있으시잖아요. 함께 소개해주시면 슈퍼샐러드님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017년부터 슈퍼샐러드스터프(SUPERSALADSTUFF)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기획-편집-디자인-제작하고 있습니다. 때마다 개인적인 관심을 책으로 변환하고 있는데, 현재까지≪Books in Animation≫, ≪KNOT≫, ≪SUPERSALADSTUFF AND PENPALS≫, ≪CANDLES/pieces≫, ≪Welcome to Coles(콜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를 출판하고 ≪CITY POP Places in Seoul≫을 배포했습니다. 매 년 1개 이상의 성격이 다른 출판물을 발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다시 공중그늘로 돌아오면, 그들의 코멘트를 보면 좀 더 성숙하고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가져가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연가라는 단어가 지닌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에는 확실히 성공한 것 같은데, 의도적으로 기존의 연가라는 단어지 지닌 이미지나 어딘가 레트로하고 귀여운 이런 이미지와 거리를 두기 위해 많이 신경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사실 ‘연가’라는 단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티스트와 이번 앨범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것들, 앞서 언급한 키워드에 집중했습니다.
공중그늘의 음악을 이전에도 들어보셨나요? 음악적인 부분만을 놓고 보았을 때, 이번 앨범을 작업하시면서 좀 더 알게 되었거나 좀 더 느끼게 된 부분이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이전에도 몇 곡은 들어봤어요. 그리고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많이 들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앨범이 좀 더 시원하고 소리가 이전보다 풍부한 인상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음악가도 평론가도 아니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말 할 순 없지만 말이죠. 순서대로 재생했는데 1번 트랙 제목이 ‘새 출발’이고 정말 새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은 청량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감리를 보시거나 실질적인 제작 과정에서 핸들링도 직접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직접 합니다.
끝으로 흔하지도 잦지도 않은 경험이지만, 본인이 디자인한 CD를 실물로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신지 궁금합니다. 특히 이번 앨범을 보셨을 때는 어떠셨나요?
디자인 파일이 제 손을 떠났어도 랩핑까지 완료된 CD를 받기 전에는 그 프로젝트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완성품을 받아보았을 때 비로소 시원한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생각했던 대로 실물이 나왔을 때는 기쁨과 안도가 교차합니다. 이번 앨범에서는 인레이(쥬얼 케이스의 뒷면)를 완전히 비우고 PVC 슬리브를 끼웠는데, 생각했던대로 뒷면이 환하고 반짝여서 기분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