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ide: The less important side of a single
음악을 듣다 보면 종종 ‘타이틀곡보다 더 내 마음에 드는’ 곡들을 만나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코너 ‘B-Side’는 이렇게 다분히 사적인 경험이 모티브가 되어 출발합니다.
‘B-Side(비 사이드)’는 ‘A-Side’의 반대면, 일반적으로 7인치 싱글 LP 레코드의 뒷면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A-Side에는 흔히 말하는 ‘타이틀곡’이, B-Side에는 정규앨범에 수록하기 모호한 곡이나 커버, 라이브, 혹은 리믹스 등이 부가적으로 수록되었다고 합니다.
코너 ‘B-Side’는 단어 본래의 의미보다 ‘A-Side의 바깥’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둡니다. 비록 타이틀곡은 아니지만 좋은 노래들, 단지 ‘수록곡’이라는 한 마디로 묻어두기엔 아까운 노래들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캐내어 공유하려 합니다.
EP. 1
허시 (Hersh) / 아슬 (Aseul) / UZA (우자)
1. 허시 (Hersh) / Hide & Seek (Feat. Hunjiya)
– From the EP [thoughts. II] (2020.04.06)
2019년 7월 [thoughts.]라는 제목의 데뷔 EP로 등장한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허시 (Hersh)’는 아직 많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앞으로 반드시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야 할, 특히 알앤비 음악 팬이라면 꼭 눈도장을 미리 찍어두길 권하는 아티스트다
최근의 알앤비 계열 신작들이 소위 ‘얼터너티브-알앤비’라는 큰 바운더리 내에서 일정 부분 획일화되는 듯한 경향이 감지되는 요즈음, ‘허시’는 특정한 스타일에 스스로를 묶지 않는다. 데뷔 EP [thoughts.]의 수록곡 ‘Feelings (feat. Jade)’에서는 ‘토로 이 모아’(Toro Y Moi)를 연상시키는 청량한 하우스 뮤직의 바이브를 앞세우는가 하면 래퍼 ‘저스디스’(JUSTHIS)와 함께한 싱글 ‘Falling Into You’에선 끈적끈적한 관능이 넘실대는 얼터너티브-알앤비 음악을 제대로 소화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클래식한 알앤비, 얼반, 네오소울까지 두루 섭렵하며 매력적인 음악을 만들어낼 줄 아는 아티스트가 허시다.
최근에 공개한 두 번째 EP [thoughts. II] 역시 마찬가지. 블랙-가스펠 풍의 도입부에서 트로피컬-하우스 스타일의 팝으로 절묘하게 전환하는 타이틀곡 ‘Pray’를 비롯, 다채로운 스타일의 다섯 트랙을 담았다. 이 중 매력적인 음색의 여성 보컬리스트 ‘hunjiya’(헌지야)와 함께한 ‘Hide & Seek’은 이 EP의 유일한 듀엣곡이면서 동시에 가장 팝적인 성향이 강한 곡이기도 하다. 매끈하고 섹시한 음색으로 노래하는 두 아티스트의 근사한 보컬을 중심으로 몽글몽글한 질감의 신쓰 리드, 심플한 리듬 파트를 중심축으로 근사한 피아노 연주가 곳곳에서 멋지게 엣지를 더하는 이 곡의 도회적인 분위기와 그루브는 그야말로 ‘세련’ 그 자체다.
2. 아슬 (Aseul) / 말해봐요
– From the EP [Slow Dance] (2020.03.06)
전자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셀프-프로듀싱, 인디펜던트, 로파이 등등, ‘아슬 (Aseul)’을 떠올리면 그녀를 수식할 만한 갖가지 키워드들이 자연스레 연상되는데 개인적으로 여기에 ‘베테랑’이라는 단어를 추가하고 싶다. ‘유카리’란 이름으로 첫 앨범 [Echo]를 공개한 게 2012년,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10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하나의 정규와 세 개의 EP, 그리고 여러 개의 싱글들을 꾸준히 발표했으며 이 모든 작업들은 레코드 레이블이나 매니지먼트의 기획이나 지원 없이 철저히 ‘독립적’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자신만의 속도와 호흡으로, 더디지만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아슬이 쌓아온 커리어를 마주하며, 과연 ‘베테랑’이라는 단어만큼 딱 떨어지게 그녀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또 있을까 되묻게 된다.
세 번째 EP [Slow Dance]는 가장 현재의 아슬을 담았다. 이제는 자신의 시그니쳐와도 같은 ‘로파이 사운드’의 일렉트로닉-팝을 정체성의 중심에 두고 그 외 몇몇 장르의 요소들, 다양한 템포와 리듬, 영롱함과 몽롱함을 넘나드는 갖가지 신쓰의 소리들, 소녀의 정서를 품은 가녀린 음색을 솜씨 좋게 버무리고 다듬어 다채로운 분위기를 조성해낸다.
이 작품의 가장 끝에 자리잡고 있는 ‘말해봐요’는 ‘달라서’ 되려 인상에 남는다. 다소 은유적인 가사를 아련히 노래하는 여린 목소리도, 예쁜 곡의 선율도 분명 모두 아슬의 것이다. 하지만 투박한 터치의 소박한 어쿠스틱 기타 리프와 은은하게 그 뒤에 깔리는 피아노, 그리고 하모니카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선율은 장르적으로 다분히 포크에 가깝고, 그래서 이 노래는 – 대체로 전자음악의 범주 내에 있는 – 작품의 다른 곡들, 혹은 그간 그녀가 발표해온 어느 곡들과도 다른 질감의 소리를 낸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쓸쓸함을 품고 덤덤히 흘러가는 이 노래는 앨범의 제목인 ‘느린 춤’과 꼭 어울리는 곡이라 느껴진다. 듣고 있노라면 어떤 뜻 모를 우울, 혹은 공허를 가만히 안고 느리게, 느리게 춤을 추는 누군가가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3. UZA (우자) / Shout (Feat. Lokid)
– From the Album [악의 평범성] (2020.04.04)
묘한 우연이라 생각했다. ‘UZA’(우자)의 첫 정규앨범의 제목이 하필 ‘악의 평범성’인 것이. 이 즈음 마침내 수면 위로 부상해 뜨겁게 공론화되고 있던 N번방 사건을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내 머릿속에 가장 자주 맴돌던 말이 ‘악의 평범성’이었기 때문이다. 악인은 결코 다른 모습으로 별다르게 존재하지 않음을, 사실 그저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들의 바로 곁에 머물고 있음을 새삼 곱씹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이 앨범을 만났다. 묘하다-라는 표현 외에 이 느낌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솔로 아티스트로, 또 일렉트로닉-팝 듀오 ‘UZA&SHANE’(우자앤쉐인)의 한 축으로 활약하는 ‘UZA(우자)’ 역시 직접 곡을 짓고,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셀프-프로듀싱 음악가다. 2017년 말에 우자앤쉐인(이하 ‘우쉔’)의 첫 EP로 활동을 시작, 이후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다수의 작품을 선보이는 왕성한 창작욕과 함께 솔로와 그룹 활동을 균형감 있게 양립하며 양쪽 모두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악의 평범성]은 우자의 세 번째 솔로 발매작이자 첫 정규 앨범이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수록곡전부를 직접 썼으며 철저하게 셀프-프로듀싱으로 완성되었다. 이전의 솔로작들과 우쉔의 발표작들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적 특징은 ‘팝의 감각이 굉장히 또렷하다’는 것인데 이는 우자가 뛰어난 팝 보컬리스트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탑라이너이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우자의 음색, 멜로디 메이킹 모두 팝적인 테이스트를 한층 더 끌어올리는 힘이 있고 본작에서도 이 강점들이 여전히 유효하다.
힙합, 알앤비를 넘나들며 꾸준히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동료 아티스트 ‘Lokid’와 함께한 ‘Shout’은 앨범 내에서도 사운드가 센 축에 속하는 곡이다. 잔뜩 찌그러뜨리고 분절된 전자음이 신경질적으로 반복되며 불온하고 음습한 정서를 조성하는 벌스, 멜로디와 리듬 모두 단숨에 변주하며 록킹한 사운드를 쏟아내는 후렴부의 급격한 변화가 이 노래의 매력. 한편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우자와 로키드의 보컬 퍼포먼스다. 흡사 이 곡을 ‘케이팝’으로 느껴지게 할 만큼 매력적인 팝 보컬을 선보이는 우자,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니컬한 바이브의 랩싱잉을 자신에게 주어진 벌스에 툭툭 박아 넣는 로키드는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보컬 퍼포먼스를 통해 사운드적으로는 비교적 심플한 구성을 취하는 이 곡의 인상을 한층 입체적으로 업그레이드한다.
Editor / 김설탕SUGA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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