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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STAGE!] 패트릭 코너 Patrick Connor

발행일자 | 2018-09-19

[BACKSTAGE!] 패트릭 코너 Patrick Connor

 

사진 / Douglas Vautour Photography (https://www.facebook.com/DouglasVautourPhotography)

 

<BACKSTAGE!>는 무대 바깥의 이들을 위한 시리즈 인터뷰입니다. 아티스트와 리스너간의 선순환을 도모하고, 나아가 씬의 발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조명할 예정입니다. 조명이 꺼지고, 콘페티가 모두 땅으로 떨어진 다음 날에도 쇼는 계속될 것이니까요.

<BACKSTAGE!>의 첫 번째 주인공은 두인디(Doincie)와 하이징스(Highjinkx)를 대표하는 패트릭 코너(Patrick Connor) 입니다. 어느덧 한국 생활 12년 차에 접어든 그와 함께 한국의 인디 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눠보았습니다. 그 누구보다 한국 인디 음악을 사랑하는 패트릭은 어떤 생각과 고민을 갖고 있을까요. 인터뷰는 동교동 모처에서 진행되었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 두인디 임도연 님이 함께 자리해주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두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CHAPTER 1 / 유년기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패트릭이라고 합니다. 한국에는 12년째 살고 있어요. 처음에는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에) 왔고, 8~9년 전부터 밴드 활동을 시작해서 직접 공연도 준비했는데, 거기에 재미를 느껴 한국 인디 씬을 도와주는 ‘두인디(Doindie)’라는 웹진을 만들었어요.

Q. 어릴 때, 드럼을 배웠다고 들었어요. 몇 살 때 처음 시작했고 많은 악기 중 드럼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드럼은 8살 때쯤 어머니 권유로 처음 시작했어요. 제가 어릴 때 엄마 손을 잡고 움직이면서 엄마를 귀찮게 했더니 엄마가 ‘드럼을 배우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죠. (웃음)

Q. 집에 드럼 세트가 있었나 봐요. (웃음)

네. 지금도 (드럼 세트가) 있긴 한데 잘 안쳐요. 전자 드럼인데, 밑에 사는 사람들 때문에 연주하기가 좀 그래요. 하하

Q. 옛날도 그렇고 요즘도 그렇지만 드럼 세트가 있는 집이 많지 않은 편이잖아요. 패트릭이 어렸을 때, 가족들의 서포트를 많이 받았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네, 맞아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제가 하고 싶은 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좋은 부모님이시죠. 드럼은 2~3년 정도 연주하다가 그만두게 되었는데, 취미가 너무 많아서 드럼에 집중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지만 진짜 포기한 이유는 드럼 연주하기가 너무 어려워졌기 때문이에요. 몇 년 배우다 보니 슬슬 어려운 파트를 연주해야 하는데, 어려워져서 포기하게 됐죠. 드럼보다 더 좋아하는 취미가 많았어요. 승마를 좋아했어요. 거의 매일 밖으로 나갔으니까요.

Q. 고향이 어디신가요?

영국 옥스포드(Oxford) 근처 작은 마을요. 편의점도 하나 없지만, 예쁜 마을이죠.

 

 

Q. 그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어떻게 처음 락 음악을 듣게 되었을까요.

제 친구들 덕분이에요. 당시 친구들이 레딩 페스티벌(Reading Festival)에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러면 누가 페스티벌에 나오는지 친구들에게 들려달라 했죠. 그렇게 처음 알게 된 팀이 트래비스(Travis)였어요. 제가 16살 정도일 때니, 20년 정도 된 일이네요. 그 때가 RATM이나 프로디지(Prodigy)가 활동했을 때에요. 블루톤스(The Bluetones)라는 팀도 있었어요. 그 때는 유명한 팀이었죠.

사실 제가 좋아하는 취미는 모두 밖에서 하는 것들이었어요. 승마, 축구, 골프, 크리켓… 그래서 부모님 차를 타면서 음악을 많이 듣고 그랬죠. 아마, 첫 번째로 본 라이브가 트래비스의 공연이었을 거에요. 그때 처음 트래비스를 보고 라이브 공연의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이후에도 계속 라이브 공연을 찾아다녔는데, 저는 늘 헤드라이너가 아닌 팀들에게서 매력을 느꼈어요. 공연장에 가면 항상 오프닝 팀들이 제일 좋았죠. 그래서 헤드라이너를 보러 가도, 공연이 끝나면 오프닝 팀들에게 사인을 받고 그랬어요. (웃음)

Q. 유년기의 애티튜드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셈이네요.

그렇죠. 두인디를 하는 지금도 헤드라이너보다 로컬에서 활동하는 인디 팀들을 더 좋아해요.

Q. 그때 오프닝을 도맡던 밴드 중에 지금 유명해진 팀들이 있을까요?

거의 다 망했어요. (일동 웃음) 당시 오프닝 밴드였던 리버틴스(The Libertines)를 처음 봤어요. 그래도 그때 영국에서 봤던 오프닝 그룹 중에서 가장 잘된 팀을 꼽자면 리버틴즈에요. 처음 밴드를 시작했을 때, 하우스 파티 같은 공연을 많이 했는데 그 때 술에 취한 상태로 공연을 많이 해서 소문이 많이 났고 금방 유명해졌어요. 지금까지 본 공연을 통틀어도 그때의 리버틴즈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 쇼 중 하나에요.

 

The Libertines

 

CHAPTER 2 / 한국행, 그리고 화난 곰

 

Q. 한국에 오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Computer Science를 전공했어요. 졸업 후 곧바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직장을 얻어 일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6개월 정도 근무하다 그만두게 되었죠.

Q. 포기가 빠르시네요. (웃음)

재미가 없다고 느끼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사무실 안에서 얘기도 잘 안 하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만 보는 일들이 저와 맞지 않았어요. 진짜 재미없다고 생각했죠. 그때부터는 돈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 즈음에, 배낭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배낭여행을 다녀온 다음에는 다른 나라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한국에 오게 된 이유도 어머니 추천 때문이에요. (웃음) 어머니가 영어 가르치는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 추천했고, 저도 재밌을 것이라 생각했죠. 한 달 정도 고민하다 그렇게 한국에 들어오게 됐어요.

Q. 일전에 하세가와 요헤이님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당시 우연히 듣게 된 신중현과 엽전들 음악에 스파크가 튀어 한국에 오게 됐다고 얘기해줬어요. 그래서 저는 패트릭도 한국 음악을 계기로 한국에 오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좋은 이야기는 없어요. (일동 웃음).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중에, 주위 친구들이 모두 일본 혹은 중국을 추천해줬어요. 실제로 중국이나 중국에 가본 친구들도 있었죠. 그런데 한국에 와 본 친구들은 없었어요. 그렇게 오게 된 거죠.

Q. 일종의 도전이네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고 싶었어요. 지금도 큰 결정을 해야 할 때 그렇게 행동하는 편이죠. 많이 고민하게 되면, 그만큼의 결과가 나오지도 않고요.

Q. 그렇다면, 서울로 처음 오게 된 시기는 대략 언제쯤 일일까요?

2006년이에요. 이제 딱 12년 됐어요. 다섯 군데 정도에 교사 신청을 했는데, 바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천안이었죠. 영어로만 말 할 수 있는 유치원이었어요. 천안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무작정 갔어요. 사실 천안에서 할 만한 일은 없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한국 여행을 엄청 많이 가게 됐어요. 거의 주말마다 갔죠. 큰 도시는 거의 다 가봤고, 홍도나 울릉도, 흑산도 같은 곳도 갈 수 있었어요.

선생님으로 지내던 중에 거기서 일하는 동료 중에 기타를 치는 친구가 있었어요. 같이 음악할 사람을 찾고 있던 친구였죠. 저도 마침 천안에서 할 게 없으니 취미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던 참이라 이 친구랑 같이 재밍을 시작했어요. 어릴 때 연주하던 드럼을 그 때 다시 시작하게 된거죠. 베이스 치는 친구도 찾고, 그렇게 천안에서 2년 반 정도 지내면서 공연도 몇 번 했어요. 팀 이름도 있었는데, 지금 기억이 안 나네요. 하하.

 

 

Q. 화난 곰(Angry Bear)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서울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밴드도 함께 시작하게 되었죠?

서울을 포함해서 다양한 곳에서 영어를 가르쳤어요. 그러던 2008년, 우연히 강남에 있는 ‘레인보우 바’에 갔는데 그곳에서 당시 화난 곰 멤버 두 명이 어쿠스틱 공연을 하고 있었어요. 드러머가 공석인 상황인 것을 알게 되고 제가 같이 하자고 제안했죠.

Q. 화난 곰으로 총 세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어요.

패트릭: 그 당시만 해도, 한국 팀과 외국 팀이 따로 공연하는 문화가 있었어요. 우리는 한국 팀들과 함께 공연하고 싶었지만, 일정을 잡기도 어려웠고 클럽에 섭외된다 해도 새벽 한 시쯤 무대에 올라가야 했어요.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활동하지 말고, 우리가 직접 공연을 준비해서 한국 팀과 함께 공연할 방법을 고민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그렇게 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화난 곰의 공연을 많이 열다가, 이후에는 자선 공연까지 (기획의) 범위가 넓어졌어요.

도연: 패트릭은 국적 구분 없이 재밌게 공연을 하고 싶어 했어요. 그렇게 한국 팀과 외국 팀이 함께 오르는 시리즈 공연을 열었죠. 제가 패트릭을 알게 된 시기도 그 때 쯤이에요. 6개월 정도 여러 공연장을 거치면서 공연을 했고, 그렇게 모인 입장료와 크라우드 펀딩으로 세빛섬에서 2012년 무료 페스티벌을 열었어요. (시리즈 공연에) 한국 밴드를 섭외할 때부터, 페스티벌에 대한 취지를 설명했어요. 지금 모인 입장료를 바로 주기보다는, 이 금액을 모아서 무료 페스티벌을 열고 그 때 같이 와서 공연을 하자는 이야기를 한거죠. 그렇게 한강에서 페스티벌이 열리게 됐어요.

Q. 처음 기획 공연을 준비할 때부터 페스티벌에 대한 구상이 있었다니 놀라운데요.

도연: 항상 몇 수 뒤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가끔 같이 일하기가 힘이 들기도 해요. (웃음)

패트릭: 그때 기획 공연과 페스티벌을 열면서 한국 팀의 라이브를 많이 봤고 자연스럽게 이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당시에는 한국 음악을 소개하는 웹사이트가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당시 저랑 친한 친구 한 명과 함께 한국인들에게 한국 음악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어보자고 얘기했고, 그렇게 두인디가 시작됐어요.

 

2012년 9월  개최된 <Rock도 Music Festival>

CHAPTER 3 / 두인디를 시작하다

 

http://www.doindie.co.kr/

 

Q. 두인디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 인디 음악을 소개하는 매거진이라고 으레 생각했어요. 두인디를 운영하는 패트릭이 외국인이고, 기사에 늘 영문 번역이 함께 있어서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도 있고요. 하지만 오늘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게 아니었네요. ‘한국인들에게 한국 음악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채널이 없잖아요. 한국의 인디 팀들은 라디오도 나오지 못하고 TV도 출연하기 어려웠죠. 개인 블로그조차 하는 사람도 많이 없었기에, (한국 음악을 소개하는) 미디어가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영문 기사를 함께 실은 이유는 그냥 제가 외국인이기 때문이에요. (웃음) 밴드들이 해외 공연을 위해 비자를 받을 때, 영어로 된 기사가 없으면 비자 받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영어로 된 기사를 만들었던 것도 있죠. 그렇지만 두인디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목표는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 음악을 알려주는 것이었어요.

Q. 처음 두인디를 만든 스타팅 멤버는 패트릭과 알렉스, 두 명이라고 들었어요.

패트릭: 네. 한국 음악에 관심이 많은 미국인 친구였어요. 쾅 프로그램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났죠.

도연: 두인디를 기획하던 시기에 패트릭이 저에게 두인디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해줬어요. 저 역시 당시 한국 인디 문화를 좋아해서 홍대에 자주 가곤 했는데, 저도 음악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공연 보는 것 역시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두인디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제가 느끼기에, 패트릭은 정말로 한국 음악을 서포트하기 위해 두인디를 만들었어요. 자기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팀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뒤에서 많은 노력을 했어요. 아무 대가 없이 그러한 일들을 꾸준히 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저는 당시에 외국인인 패트릭이 그런 태도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어요.

Q. 두인디에 대한 소개글 중, 제가 흥미롭게 읽었던 파트가 있었어요. ‘We are not a company, We are fans of the scene’이란 글귀였죠. 지금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연스럽게 위 메시지에 수긍하게 되어요. 톱니바퀴가 들어맞는 느낌이에요.

패트릭: 이젠 좀 회사 같아요. (웃음) 하지만 태도는 변하지 않았죠.

 

CHAPTER 4 / Highjinkx

 

https://www.highjinkx.com/

 

Q) 올해 ‘Highjinkx(하이징스)’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했어요.

쉽게 말하자면, 두인디는 한국 팀에게 집중하지만 Highjinkx는 처음부터 해외 아티스트와 함께 협업하는 브랜드로 시작했기 때문에 그 브랜딩을 다르게 한거죠.

Q) 두인디 기획공연인 <FWD>나 Highjinkx에서의 <Focus Asia>와 같은 공연들을 비추어 보면, 늘 떠오르는 신예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기회와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는 ‘오프닝 아티스트’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요. 공연에 서는 아티스트는 늘 ‘CO-헤드라이너’라 생각해요. 특히 <Focus Asia> 공연이 그래요. 나중에 엄청난 아티스트를 데려오게 되면 조인트 헤드라이너라 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되도록 조인트 헤드라이너로 무대를 만들고 싶어요.

지난 차이니즈 풋볼(Chinese Football) 공연도 그렇고, 매닉 쉽(Manic Sheep), 짐앤스윔(Gym and Swim)이랑 했던 <Focus Asia> 공연들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가장 큰 목표는 아시아 밴드들 사이에 파트너쉽과 투어링 씬을 만드는 것이에요.

그리고, 한국 그룹이 없는 내한 공연은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있어요. 큰 내한 공연에서 한국 인디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오면 씬이 훨씬 성장할 거예요. 라디오도, TV도 나오질 않으니 한국 분들도 인디 뮤지션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큰 공연에서 멋있는 팀들을 보여주는 게 맞다 생각해요. 그게 프로모터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기도 하고요. 돈도 중요하죠. 하지만 로컬 씬을 도와주는 것 역시 중요해요. 해외에 가면, 큰 헤드라이너 팀이 공연할 때 항상 멋있는 로컬 아티스트가 오프닝 액츠를 해요.

Q) 되려 ‘왜 연관 없는 밴드가 무대에 올라와서 시간을 잡아먹냐’는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해요.

그런 사람들은 무시하면 되요. (일동 웃음)

 

 

Q) 말씀하신 ‘투어링 씬’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세요.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하 끝잔향)과 함께 진행한 영국 투어도 여기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패트릭: 네. 앞으로 끝잔향과 같은 투어 형태를 아시아에서도 만들고 싶어요. 한국 밴드와 맞는 해외 밴드들을 매칭해서 공연을 만들고, 이렇게 매칭한 팀들이 돈독해지면 나중에 반대로 공연을 가질수도 있고요. 그렇게 아시아 간의 파트너쉽을 만들고 싶어요. 이번 <Focus Asia> 공연을 통해서 아도이가 태국을 가게 됐어요. 짐앤스윔의 매니저가 아도이를 초대했죠. 앞으로도 그런 파트너쉽이 계속 생기면, 밴드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에요.

도연: 사실 저희는 꽤 전부터 ‘아시아’를 생각했었어요. 왜냐면 가깝잖아요. (웃음) 비용도 훨씬 유럽에 비해 적게 들고, 어떠한 이야기가 오가도 좀 더 빨리 이벤트가 성사될 수 있죠. 실질적으로 어떠한 일들이 진행되기에는 (아시아가) 훨씬 더 유리한 조건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태국이나 인도를 포함해서 아시아 음악 씬들이 계속 커지고 있어요. 해외 프로모터나 관계자들을 만나 보면, 그들이 한국 음악에 관심이 많은 걸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결국 성사되지 못하는 이유가 많겠지만, 일단은 한국 내에 씬이 탄탄하지 못한 것도 있고 한국 내에서 투어했던 선례가 없기 때문에 막막함이 들 거에요. 언어적 장벽도 분명 있고요.

<Focus Asia> 같은 공연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면 굳이 저희를 거치지 않더라도 밴드와 밴드 간의 확장과 연결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음악이니까요. (웃음) 음악은 확장성이 넓잖아요. 이러한 뮤지션간의 네트워크가 저희를 통해서 만들어진다면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밴드끼리 이러한 경험들을 교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패트릭: 끝잔향과 함께 영국 투어를 했던 EYRE LLEW가 10월에 서울로 와요. 끝잔향이 유럽 투어 출발하기 전부터 한국 투어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쳤어요. EYRE LLEW와 끝잔향이 영국에서 13개 정도 공연과 페스티벌을 끝냈고, 이젠 EYRE LLEW도 한국에 와서 열 번 정도 공연을 가질거에요. EYRE LLEW는 한국 포함해서 중국, 대만, 싱가폴에서도 공연이 있을거고요. EYRE LLEW가 아시아 투어를 하게 되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끝잔향과 함께 투어를 한다고 보면 되요. 아마 EYRE LLEW, 끝잔향의 스플릿 EP 앨범도 나올거에요. 이번 투어 익스체인지와 같이 한국 아티스트에게 좋은 기회가 될 프로젝트들을 앞으로 많이 만들고 싶어요.

 

 

Q) 추후 <Focus Asia>를 통해 한국으로 초대하고 싶은 팀이 있다면요.

패트릭: 그런 그룹은 많죠. 하하. 최근 일본의 D.A.N.이라는 팀에 관심이 생겼어요.

도연: 저희는 관심 생기는 팀이 생기면 바로바로 연락하는 편이에요. (웃음) <Focus Asia>를 시작으로 양 쪽 나라에 각 밴드들이 소개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Focus Asia>의 다음 스텝이 ‘투어 익스체인지’가 될 수 있는거죠. 거기서 더 확장이 되면 더 큰 프로젝트를 할 수도 있는거고요. 지금은 저희가 구상하는 모든 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Q) 마지막 질문으로 ‘Highjinkx가 그리는 미래 계획’을 준비했지만, 아시아 시장에 대한 고민이나 투어 익스체인지와 같은 좋은 이야기들을 다 해주셨어요. (웃음)

도연: 저희가 작년에 두인디 이름으로 부산 팀이랑 같이 공연을 몇 번 했어요. 지방 밴드들을 서울에 부르고, 반대로도 공연을 하는 식이죠. 당연히 돈이 별로 안 남죠. 하지만 그러한 공연들이 큰 공연들보다 훨씬 중요하다 생각해요. 패트릭과 제가 자주 하는 대화가 있어요. ‘우리가 나중에 아무리 커져도 이런 공연들을 계속 해야 된다’는 이야기요.

영국 같은 나라는 지방마다 씬이 발달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거기도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을 거에요. 계속 교류가 일어나면서 씬이 발전했을거고요. 사실 현재도 많은 한국 팀들이 홍대에서만 공연을 가져요. 처음엔 사람도 없고 어려움이 많이 발생하겠지만, 그럼에도 계속 (지방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문화가 정착되면, 더 많은 공연이 생길 수 있는 발판이 될거에요.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죠.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Editor / kixxikim
joydivision@poclan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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