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첫 곡을 재생하면 발걸음 소리와 함께 도슨트가 걸어오며 안내를 시작한다. 공간은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며, 작품이 하나씩 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호기심에 다음 곡을 이어가면 마치 전시장 앞에 있는 소개글처럼 미술에 관한, 그리고 공간에 관한 설명이 자리하고 있다. 2인조 듀오 로파이베이비가 만들어내는 미술관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스크래치, 데칼코마니, 크로키, 수묵, 바디페인팅, 수채, 프로타주에 콜라주까지 다양한 미술 기법을 지닌 작품이 등장한다. 미술 기법과 곡의 이름은 같다. 각 곡은 때로는 크로키처럼 간결하게, 때로는 형형색색의 채색처럼 화려하게 각 곡을 담아냈다. 이들의 두 번째 정규 앨범, [미술관]에 관한 이야기다.
로파이베이비는 2인조 여성 듀오로, say와 zo로 이루어진 팀이다. 지금까지 네이버 온스테이지는 물론 여러 경연을 비롯해 크고 작은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2017년 8월에 첫 싱글을 발표했지만, 그만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기회를 통해 음악성과 실력이 증명되었다는 뜻이다. 이들의 첫 정규 앨범 [N]은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 부문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첫 앨범에서 문학적 장치를 통해 한 편의 소설과 같은 방식을 이뤄냈다면, 이번에는 미술이라는 테마를 빌려 자신들만의 것을 완성해냈다. 개인적으로는 첫 정규 앨범보다 훨씬 완성도 작품성 등 여러 측면에서 한층 더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음악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얼터너티브 팝, 혹은 2020년의 팝 음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장르 음악 팬들도 반할만한 알앤비부터 전자음악은 물론 기타 사운드가 중심인 정적인 느낌까지 다채롭게 채우면서도 완급조절은 물론 일관된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
로파이베이비가 이어가고 있는 또 다른 이름이자 영상을 비롯해 다각적 표현을 선사하는 크루 로파이존에 마련된 미술관은 여러 스타일을 품고 있어 자칫 산만할 수 있는 구성을 사랑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밀도 높은 묘사를 통해 구심점을 탄탄하게 잡아간다. 각 곡이 들려주는 기법은 사람과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과정에서 겪는 순간과 굉장히 흡사한 모습을 지니며 중의적인 의미를 담아낸다. 보는 이에 따라 관계의 모습이 섹시하게 느껴질 수도, 혹은 아름답고 처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로파이베이비의 두 번째 정규 앨범 [미술관]은 말 그대로 어느 한 공간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경험을 전달하면서도, 사랑의 감정에 크게 빠져들만큼 넘치는 긴장감과 간질간질하고 야릇한 느낌을 전달한다. 어쩌면 그것이 미술과 음악 모두 지닌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로파이베이비는 확실하게 성장했다. 이번 앨범이 그것을 증명한다. 아직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면 이번 앨범을 꼭 들어봤으면 한다. 그만큼 좋은 작품이며, 작품을 통해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다. 로파이베이비의 피지컬 앨범 제작과 단독 쇼케이스 개최를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한다. 자세한 정보는 텀블벅에서 확인하실 수 있다. 펀딩 페이지에서 일정 금액을 후원하면 피지컬 앨범(카세트테이프)+앨범 북과 티셔츠, 쇼케이스 티켓을 리워드로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