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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us Track] 김뜻돌 – 꿈에서 걸려온 전화

– 안녕하세요 저는 ‘세상 모든 돌에도 뜻이 있다.’ 김뜻돌입니다. 반갑습니다.

 

데뷔가 2017년이었어요. 작년에 앨범이 나왔으니 첫 정규앨범이 나오기까지 총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어떤 계기와 과정으로 정규앨범을 발매하시게 되었는지 여쭙고 싶어요.

 

– 벌써 4년이 흘렀군요. (웃음) 사실 음악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안했었어요. 싱글을 발매했을 때도 제 음악을 들어주시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기니까 ‘아 나 이제 뭔가 계속해도 되겠다.’ ‘계속하라는 뜻이겠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유튜브를 통해 음원을 공개하다가 약간 협박 아닌 협박을 받았어요. ‘우리가 이렇게 응원하는데 음원 언제 낼 거냐?’, ‘정말 염치없는 뮤지션 같으니’ 이런 댓글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 이게 뭐라고, 한 번 내보자’ 해서 갖고 있는 곡들을 한꺼번에 쓸어서 발매한 것이 정규 앨범 <꿈에서 걸려온 전화>입니다.

<꿈에서 걸려 온 전화>에는 유독 김뜻돌의 20대 초반이 많이 담겨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20대 초반을 보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 제가 아직 20대 중반이라 초반과 그렇게 멀진 않지만, 사회과학을 공부하며 뮤지션이 되고 싶었던 대학생으로 20대 초반을 보냈어요. 공부도 재미 있었지만 ‘음악은 언제 하지?’, ‘언제 데뷔하지?’, ‘언제 보여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학교 다녔죠. 밤에 새벽 감성에 젖어서 노래 하나 만들어서 사운드클라우드나 유튜브에 올리고. 그러면서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고, 그러면서 조금 방황도 해보고 재미있던 시절을 보낸 것 같아요.

오늘 행사는 앨범과 관련된 얘기도 들을 수 있지만 동시에 라이브도 들을 수 있는 자리여서요. 공연을 굉장히 오랫동안 하지 않으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되게 오랜만에 선보이는 라이브죠?

 

– 제가 공연을 많이 하는 뮤지션이에요. 앨범 내고 나서 살짝의 번아웃이 왔지만,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으니까 한꺼번에 에너지를 모아서 빵-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죠. 코로나로 인해 오늘은 소수의 현장 관객분들, 온라인으로 보고 계시는 얼굴 모를 팬분들에게 단출한 어쿠스틱 셋으로 저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인스타그램 라방이랑 다르게 조금 흥겹네요. (웃음)

 

‘이름이 없는 사람’을 첫 번째 라이브 곡 고르셨어요.

 

– ‘이름이 없는 사람’은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이에요. 다들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살잖아요. 근데 그것 자체가 자기 자신을 그 이름에 가두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람이 태어나고 살면서 자기 숙명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름이 없는 사람은 자기의 숙명이나 이름이나 그런 걸 다 버린 채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꿈에서 걸려온 전화’에서 저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그 존재도 이름이 없는 사람이에요. 똑같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이 길을 떠나는 내용이에요. ‘이름이 없는 사람’은 앨범의 두 번째 트랙인데요, 그 사람이 전화를 걸고 길도 떠나는 내용을 담은 내용이라고 후에 제가 나중에 스토리를 붙여보았죠.

앨범 크레딧을 보면 박문치, 실리카겔의 김한주, 김춘추, 넘넘의 이재, 정우 등 뮤지션들이 프로듀서이자 피쳐링 아티스트로 함께 하셨어요. 첫 앨범을 친한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서 되어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 20대 초반에는 뮤지션 친구를 갖는 게 꿈이었어요. (웃음) 어느덧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생겼고, 제 곡에 잘 스며들 것 같은 능력도 좋은 친구들이에요. 부탁을 했더니 너무 다들 흔쾌히 좋다고 해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죠. 그 과정이 되게 재밌었어요. 보통 회사에서 일을 하면 직급이나 관계 같은 게 있지만 음악은 딱히 그런 게 없거든요. 친구가 뭐 만들다가 “이거 별로지 않냐? 너 근데 오늘 저녁에 뭐 해? 오늘 나랑 놀래?” 하기도 하고. 놀다가도 “우리 작업 얘기는 언제 해?” 이러면서 좀 재밌게 친구들이랑 작업한 기억도 있죠. 저랑 잘 녹아드는 사람을 제가 잘 찾은 것 같아요. 제가 보는 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앨범 발매 전에 먼저 온스테이지로 ‘삐뽀삐뽀’랑 ‘꿈에서 걸려 온 전화’, 사라져’가 라이브로 공개되었죠.

– 앨범을 발매하기 전에 온스테이지를 먼저 공개하면 기대효과가 더 클 것 같았어요.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방법이었더라고요. 온스테이지 댓글에 “여러분 제 유튜브도 팔로우해 주시겠어요? 구독해주시겠어요?” 이런 댓글도 남겼는데, “아우, 뻔뻔함이 아주 좋습니다” 이런 대댓글도 달리고, 그 이후에 진행한 텀블벅도 많이 찾아와주시고.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앨범 아트워크와 뮤직비디오도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 꿈에서 그렇듯 물에서도 저항이 있고 움직이기 어렵다 보니, 꿈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수중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튜디오도 빌리고 처음으로 물 속에서 눈을 떴는데 너무 무섭더라고요. 한 번도 물 속에서 눈을 떠본 적이 없어서요. 근데 내 작품을 만드는 것이고, 내가 돈을 내놨으니까 눈을 떠야 되었던 상황이었는데, 처음 눈 떴을 때 너무 좋더라고요. 앞이 보이는 거예요. ‘어 생각보다 할 만한데? 이제 앞으로 물에서 눈을 떠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뮤직비디오를 찍었죠. 마지막에는 몸, 얼굴 할 것 없이 다 불었어요. 근데 되게 재밌었어요. 인어공주가 된 느낌이었달까요. 하지만 수중 촬영은 이제 다신 안 할 거 같고요. (웃음) 굳이 그런 고생을 사서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다음에는 불을 이용해보고 싶어요. 물에서 해봤으니까 불로 한 번 가보는 걸로.

 

다음 발매작도 굉장히 기대가 되어요. 한국대중음악상이 주목한 올해의 신인이죠.

 

– 수상 소감을 일주일 동안 고민했어요. 종이에도 적어보고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어떤 말을 해야할지 생각했죠. 왠지 내가 받을 거 같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진짜 받을 줄은 몰랐다는 그런 생각, 그런 정도의 소감이었는데 그렇게 말하면 좀 건방지니까요. 저한테 잘 주신 거 같아요. (웃음)

다시 한 번 수상 축하드립니다. 저희는 마지막 라이브 ‘삐뽀삐뽀’ 들으면서 여기서 인사를 드려볼게요.

 

– ‘삐뽀삐뽀’는 제가 노래로 쓴 유서에요. ‘도시 난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스무 살 때 아르바이트 막 하고 자취를 하면서 서울에 대한 로망이 굉장히 컸는데, 막상 자취를 해보니까 세상에 물건은 넘치는데 내 것은 하나도 없고 내 자리, 내 집도 없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때 우연히 고공 크레인 사고 기사를 봤는데 ‘내가 이렇게 죽어도 이 세상은 잘만 돌아가겠구나’ 그런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그런 사회적 이슈를 보면서 내 죽음은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누군가 내 장례식에서 이 노래를 틀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요. 그때 한 번 반짝했던 뮤지션이 아니라, 어쨌든 김뜻돌을 잘 기억해줬으면 하면 생각으로 만든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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