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김사월의 첫 번째 앨범
<수잔>
‘처음’은 특별하다. 설렘과 기대, 긴장과 우려, 장담과 의문 등 복잡한 감정을 겪으면서도 그 의미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특별함이 있다. “그땐 저도 모든 상황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도 모를 이야기를 세상에 많이 남겼을 거예요. 정신없이 흘러갔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이상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최근에는 그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 처음이라 겪을 수밖에 없었던 모든 복잡함을 걷어내고, ‘처음’의 이야기를 상기해냈다. 2015년 10월 발매된 ‘김사월’의 첫 번째 앨범 <수잔>의 이야기다.
곧 있을 공연 준비로 바쁘시겠어요.
엄청 바쁘진 않아요. 공연을 위한 준비로 마음가짐을 세팅하면서도 여유로울 때는 여유로워요. 저는 컴퓨터 앞에서 이십 분 이상 하지 않는 일은 바쁘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휴대폰으로 계속 일을 주고받고 있긴 하지만 막상 바쁘다고 하기엔 이상하더라고요. 제가 약간 일 중독이기는 해요.
최근에 ‘천미지’씨 앨범에도 프로듀서로 참여하셨죠?
네, 맞아요. 저에게 새로운 뉴스였죠. 천미지씨는 중학교 친구였고, 또 운명처럼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된 친구예요. 음반을 내려는 생각만 갖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반년쯤 됐어요. 그 앨범을 작업하느라 최근 6월까지는 굉장히 북적북적하게 살았어요.
프로듀서로 참여한 건 처음이신가요?
누군가를 프로듀싱하는 건 처음이에요. 이 작업을 통해서, 이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게다가 천미지씨의 첫 앨범이라 더 와 닿는 것들이 있었죠. “너무나 오랜 친구고, 내가 이렇게나 좋아하고 응원하고 알고 있는데, 1집만큼은 내가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번 <붉은 늑대> 뮤직비디오에도 함께 출연하셨어요?
맞아요, 친구들이 총출동했어요. 음악을 해오면서도 친구가 별로 없다가, 어느 날 짠하고 친구들이 와르르 생겼어요. 전부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고, 개그 코드도 잘 맞고, 정체성이랄까 가치관이 비슷하니까 서로가 잘 느껴지더라고요. 좋은 친구들이에요.
이전 발매 곡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2집이었죠, <로맨스> 앨범을 냈는데 의도한 것보다 이미지가 밝게 뽑혔어요. 사실 로맨스 앨범이 되게 칙칙한 앨범이거든요. 다행히도 밝아서 로맨스 앨범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죠. <수잔>은 분위기가 무거운 앨범이잖아요. 2집 때는 약간 더 귀엽고 못된 걸 해보고 싶었는데, 그냥 귀엽게만 나온 거죠. “이미지가 너무 선하게 뽑혀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이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지금의 제가 좋아하는 사운드와 비주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2집의 귀여운 이미지가 계속될 것 같았거든요.
이 이후로 따로 계획해 놓은 일들이 있어요?
우선은 <붉은 늑대> 발매 기념 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그 후로는 조금 쉴 것 같아요. 3집에 들어갈 곡들이 모두 구성되어 있어요. 아마 3집을 준비하면서 쉬지 않을까 싶어요.
곡이 많으시네요?
네, 저 곡이 많아요. 아끼는 것보단 가지고 있을 때 빨리빨리 내보여야 좋은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 노래들도 있지만, 대부분 곡이 만들어지고 딱 예쁠 때 내면 참 좋더라고요.
<수잔> 프로필 사진 촬영 / Photo by ‘뇌 (N’Ouir)’
1집 <수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최근에는 수잔 이야기를 할 일이 별로 없으시죠.
네, 거의 없었어요. 1집 땐 제가 신인이었고, 라이징을 하던 시기였잖아요. 인터뷰나 화보 등 많은 곳에서 저를 찾아주셨어요. 그땐 저도 모든 상황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도 모를 이야기를 세상에 많이 남겼을 거예요. 정신없이 흘러갔던 것 같아요. 제가 정신없이 이야기를 남겼기 때문에, 제 음악이 곡해되는 부분들도 있었어요. 그게 참 1집인 것 같아요. 1집을 냈던 당시에는 정말 이상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최근에는 1집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전혀 없고 그랬어요.
정신없었던 당시와 달리, 지금 수잔 이야기를 한다면 그때와는 다른 얘기들을 나눌 수 있겠네요.
네,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그렇다면 지금 떠오르는 대로 앨범을 소개해주시겠어요?
당시에 썼던 앨범 소개글이 생각나네요. 새벽 2시쯤에 ‘아름답고 불안한 경험들의 기록’ 하고 썼었어요. 지금 떠오르는 건 나의 예전, 졸업 앨범처럼 나의 예전이 담긴 하나의 모음인 것 같아요.
그 예전을 20대 때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20대 중반에 만들어진 앨범이에요. 그렇기에 20대의 이야기보다는 더 예전, 유년시절이나 10대 때의 마음이 많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조금 부정적이기도 하고, 수줍기도 하고, 어둡기도 한 그런 마음에서 생긴 습관들을 기록한 앨범이에요. 사실 앨범을 녹음하는 게 힘들었어요. ‘김사월x김해원’ 앨범을 낸 후에 제가 너무 겁먹고 있었어요.
어떤 게 무서웠어요?
좋은 평을 듣고 상을 받고, 처음부터 너무 잘되니까 부담을 느꼈던 것 같아요. 당시 사진이나 목소리를 보면 경직된 게 느껴져요. 물론 경직되어 있어서 아름다운 앨범이기도 해요. 사람들이 싫어할까 봐 눈치 보면서 목소리를 내고, 그런 것들이 담겨 있어요. 아마 수잔에 있는 목소리를 지금 다시 내라고 하면 못 내지 않을까요? 당시엔 저의 자연스러운 목소리였지만, 지금의 제가 부르면 작위적인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지금은 당시의 수줍고 경직된 모습들이 많이 해소가 되었어요?
네, 조금은요. 엄청 그렇다고 할 순 없는데요. 그걸 향해서 계속 가고 있어요.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이 있거든요.
4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엔 거리감이 생기잖아요. 지금 와서 수잔 앨범을 돌아보면 어떤 느낌이 들어요?
제가 딱히 완벽주의자는 아닌데, 1집은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프랑수아즈 아르디(Francoise Hardy)’의 <La Question>이라는 앨범이 있어요. 프랑스 샹송 중에 굉장히 위대한 앨범인데, 그런 앨범이 되고 싶었어요. 사운드나 편곡, 악기의 색채감, 태도, 창법 이런 모든 것들에서 오마주처럼 느껴지게끔 하고 싶었어요. 앨범 자체도 완전한 컨셉 앨범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짜맞추려고 노력했어요. 지금 와서 보면 완벽하게 짜맞춘 앨범은 아니지만요. 반면 지금은, 완벽보다는 내가 얼마나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시도해보고 싶어요.
그렇다면 수잔은 소설에 가까울까요, 수필에 가까울까요?
당시엔 소설이 되고 싶었던 거죠. 컨셉 자체가 ‘수잔’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예요. 1번 트랙에서 김사월이 나와서 “수잔이란 사람을 소개합니다.” 라며 수잔을 소개하고, 2번 트랙부터는 수잔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김사월이 나와서 “수잔의 이야기였습니다. 당신이 본 건 수잔의 머리맡이었어요.” 하고 끝내는, 그런 소설을 만들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 이야기가 그냥 드러나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한 겹 막을 만든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제가 만든 이상한 이야기고, 수필이 맞네요.
그 과정에서 빠지게 된 곡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2집에 수록된 <키스>와 <누군가에게>, <세상에게>예요. 그 곡들이 로맨스 앨범에서 중요한 서사를 만들고 있는데, 만약 그 곡들이 모두 수잔에 수록되었다면 지금의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첫 트랙에서 수잔을 소개할 때, 어떤 이야기를 가장 드러내고 싶으셨어요?
‘김사월X김해원’ 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노래를 만들었어요. 제가 인터뷰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 누구도 해본 적이 없잖아요. 그렇게 되면 사람이 살아온 대로 말을 하기 시작해요. 그 후에 실린 걸 보면, 제가 뭘 했는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말을 별로 안 하니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그 과정에서 느꼈던 막막함이 ‘수잔’에 담겨있어요. “살아온 것도 낭비된 것도 아닌 텅 빈 삶이었지 너무 초라해” 이런 가사를 그때 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저는 그래요. 제가 만든 거에 안쓰러움 같은 기쁨을 느낄 때가 있어요. 예전에 써둔 “나 너무 괴로워” 라는 글을 보면서 내가 이때 이렇게 힘들었구나, 하면서 안쓰러운데 또 그게 되게 기뻐요.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는데, 너무 구린 것 같아서 항상 참고 있어요. 예전에, 서울에 혼자 올라왔을 때는 제 어린 시절을 보듬기가 힘들었어요. “여기에 어린 시절의 사월이 있어, 안아주자.”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안아주기가 싫었어요. 그런데 수잔을 만들 때쯤엔 “지금은 그 아이를 안아주고 싶다.” 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으로 수잔을 만들었어요.
<수잔>과 <머리맡>을 제외한 곡들은 그 이전부터 만들어 두셨나 봐요.
네, 11년도쯤에 <콧바람>이란 곡을 만들었어요. 1집이 참 오묘한 게, 친구들끼리 그런 농담도 해요. “1집은 평생 걸리는 거다. 그 당시의 평생이 걸리는 거다.” 만약 스무 살 때 1집을 냈으면 20년이 걸린 거예요. 앨범을 내기까지의 그 모든 게 1집 안에 들어있으니까요. 그래서 1집은 되게 미숙하고 예쁜 것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우연히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 후에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고 들었어요. 그때 부른 곡이 <콧바람>인가요?
아니요, 그때 불렀던 곡은 ‘3호선 버터플라이’의 <꿈꾸는 나비>였어요. 아르바이트했던 곳은 <콧바람>에 등장하는 음반 가게가 맞고요. 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제가 기타 치는 걸 몰랐거든요. “아 얘가 음악을 되게 하고 싶어 하는구나.” 라는 걸 그때 깨달았을 거예요. 저도 누구한테 좋다는 얘기를 들은 게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또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죠.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공연을 시작하신 거예요?
그 일이 계기가 된 건 맞지만, 적극적으로 한다고 해도 막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냥 상상을 적극적으로 하는 거죠. 예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만 상상했다면, 이제는 무대를 상상하고 앨범을 상상하는 식으로요.
솔로 앨범을 내기로 마음먹게 된 건요?
‘김사월X김해원’ 활동 전부터 솔로 앨범을 준비해오고 있었는데, 이젠 이 앨범을 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너무 오랜 기간 곡들이 쌓이고, 동시에 저도 변하고 있는 게 느껴졌어요. 지금 바로 남기지 않으면 이 어린시절이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김해원씨도 이 부분에 공감을 해주셔서 활동을 하던 중에 솔로 앨범을 내게 됐어요.
첫 앨범 작업하면서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썼어요?
보컬이요. 누가 들어도 “끝내준다” 는 생각이 들만한 보컬을 만들고 싶었어요. 당시에 그런 내공이 전혀 없었어요. 전혀 없는데 짜내고 상상하고, 어떻게든 제 안에 있는 마른걸레까지 짜내서, 매력적인 것들을 최대한 끌어다가 만든 게 수잔에 담긴 음색이었어요.
앨범 준비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이 궁금해요.
이것도 역시 보컬이요. 제가 훈련된 보컬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에 믿을 수 있는 건 상상력과 집중력 말고는 없었어요. 이 곡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대한의 장면을 상상해내고, 표현해내는 시도를 많이 했던 앨범이에요. 어떤 곡들은 떠오르는 장면들 때문에 울기도 했어요. <아름다워>라는 곡이 있어요. 이 곡이 정말 빠르게 녹음이 끝났어요.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열차만 한 줄 지나가요. 주변엔 눈이 엄청나게 덮여있고 그 열차 하나만이 칙칙폭폭 지나가는 장면을 상상했어요. 그 기차 안에도 엄청난 디테일들이 있잖아요. 연료는 타닥타닥 타고 있고, 마른 냄새가 나고, 그런 것들을 상상하면서 불렀어요. 제가 집중해서 만들어냈던 그런 장면들이 많이 생각나네요.
<수잔>이 발매된 2015년도의 일상
발매 직후엔 기분이 어땠어요?
되게 두근거렸어요. 기분 좋으면서도 불안한 두근거림이었어요. 발표물을 내면, 그때부터 무언가 살짝 변하잖아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이만큼 달라지고요. 그런 걸 느끼면서 이제 진짜 ‘김사월’ 이라는 인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임감을 느꼈죠. 또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들이 한꺼번에 왔어요. 너무 좋은데,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빠르게 오니까 조금 어려웠어요. 어떻게 보면 힘든 일이기도 하잖아요. 힘들다고 말할 법도 한데 그게 너무 걱정되는 거예요. 내가 원했던 거고, 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텐데 힘들다고 말하는 게 너무 민망하고 싫었어요. 그때부터 말하는 거에 조심스러워졌어요. 정리하자면, 엄청나게 떨렸고 조심하게 되었어요.
지금도 그렇게 느끼세요?
이젠 거기에서 많이 자유로워지려고 하고 있어요. 자유로워진다는 의미가 어떤 앨범에서 세계관을 직조할 때 완벽을 기하던 자세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게 아니라, 이걸 만들고 나서 내보일 때 정말 편안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예요. 발표물을 내보일 때 느끼는 불안함이나 떨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 떨림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강하신 것 같아요.
‘테니스코츠(Tenniscoats)’ 라는 일본 팀의 공연을 본 적이 있어요. 무대 아래로 내려와서 자신이 느끼는 걸 자유롭게 표현하더라고요. 멜로디언 하나만 들고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어요. 당시에 저는 너무 많이 긴장하던 시절이었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표현이 저 정도의 편안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는 언제든 그 장면을 떠올려요. 라이브 앨범도 그걸 완전히 떨쳐버리고 싶어서 낸 거였어요.
이미지 트레이닝에 많은 도움이 되었겠네요.
맞아요, 그 사람을 상상하면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요. 올해 ‘김사월 쇼’에서 비슷한 무대를 꾸몄어요. 앵콜 곡 때 관객석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했어요. 저도 너무 좋았고, 보신 분들도 너무 좋았대요. 저 정말 행복했거든요. 누가 행복해하고 있으면 그게 느껴지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어요.
<수잔> 발매 단독 공연이 끝난 후
<젊은 여자>라는 곡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으셨잖아요. 특정 곡이 주목받는 일에 부담도 느끼셨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앨범을 준비할 때는 너무 부담됐어요. 친구들한테 “나 이렇게 써도 되나?” 물어보면서 곡을 만들었어요. 4년 전이니까, 그 당시는 지금보다 더 옛날이잖아요. 매일매일의 논의가 달라지던 때라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너무 무서웠어요. 발매되고 나선, 이 노래에서 용기와 공감을 느낀다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부담이라고 하면, “이럴 때 내가 진짜 말 잘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부담이었겠죠? 이런 이슈가 있다는 것도 반갑잖아요. “이 작은 불씨를 꺼뜨리면 안 되는데, 내가 정말 잘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할게요. <수잔>이 어떤 앨범으로 존재했으면 좋겠어요?
이 앨범엔 저의 순수함 같은 게 담겨있어요. 어떤 사물을 대할 때의 순수함을 말하는 건데, 아까 얘기한 것처럼 노래 부를 때 장면을 상상해내는 그런 순수함 있잖아요. 그래서 그 앨범은 제 눈에 지금도 반짝반짝해요. 다른 사람의 눈에서도 반짝이려면 지금의 저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역으로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제가 앞으로도 좋은 것들을 많이 만들어서, 1집이 계속해서 반짝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갑자기 어른이 되잖아요. 하루 차이로 갑자기 어른이 돼요. “아, 이제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건가?” 하는 시기의 사람들이 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때의 저에게 잘 못 해줬거든요. 스스로를 사랑해주지 못했어요. 그래도 수잔을 만들 때는 그런 저를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 그게 가능해서 만들 수 있었던 앨범이거든요. 그런 앨범을 지금의 제가 사랑함으로써 대신하고 싶고, 그 앨범을 사랑해주시는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계속 메꾸어 나가고 싶어요. 이기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수잔>을 계속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더 해주세요.
제 음악을 들어주시는 분들이 저의 모든 디스코그래피를 좋아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한때는 좋았는데 지금은 별로라고 느끼거나, 예전엔 별로였는데 지금은 좋다고 느끼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꾸준히 좋다고 느끼거나 그 어떤 것이어도 저에게는 다 추억이 되어 있어요. 여러분들이 들어주신 그 모든 것들에 정말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글 : 이지영
사진 제공 : 김사월 / 유어썸머 (Your Sum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