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원의 첫 번째 앨범
/ ” 바다와 나의 변화 Sea And Myself “
“너무 끈끈한 관계였어요. 그래서 어떤 시기에는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어요.” “한때는 사랑하다 증오하고, 창피해하다 만족했지만 지금은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스스로를드러내기 위해 ‘나’는 무엇이든 만들어내고 담아낼 수 있다. 허나 너무 많이 담아냈기에 도리어 그 모습을 마주하기가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나와 나를 분리할 수 있게 된 순간, 그때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8년 3월 발매된 ‘김해원’의 첫 번째 앨범 [바다와 나의 변화 Sea And Myself]의 이야기다.
Q. “바다와 나의 변화 Sea And Myself” 이후로 어떻게 지내셨어요?
같은 해에, 김사월 씨의 앨범 “로맨스”에 참여했어요. 그 후론 “움직임의 사전”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에도 참여했고, 영화 “윤희에게” OST 작업도 했어요. 작년 여름엔 황예지 작가의 사진전 “마고”의 음악 작업을 함께 했어요.
Q. 황예지 작가는 김해원의 앨범에, 김해원은 황예지 작가의 개인전에, 서로의 첫 작업물에 함께 했어요.
그러게요, 이렇게 말로 들으니 더 뜻깊네요. 첫 솔로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 예지 작가의 사진이 가장 많이 생각났어요. 작가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저와 뭔가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번에는 예지 작가가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당신이다, 함께 작업해 보자.” 얘기를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Q. 서로의 작업에 참여한 소감은 어땠나요?
작업 끝나고 나눴던 대화들이 많이 기억나요. 제 앨범이 발표되고, 이 과정에서 느낀 것들에 대해 솔직한 얘기를 나눴어요. 그로부터 오는 배움이 있었고, 이후에 어떤 생각과 행동을 취하면 좋을지 힌트를 얻었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이번 전시 후에는 서로에 대한 유대감이 더 커진 것 같아요. ‘믿음과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작업자가 곁에 생겼다.’는 기분이 들어요. 피처링으로 참여해준 김사월 씨도 제게 그런 사람인데, 작업 끝나고 셋이서 함께 얘기를 나눴어요. 그 대화를 글로 남기기도 했고요. 그런 것들이 참 좋았고 영감을 받는 시간이었어요.
Q.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걱정되는 것들이 많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부분이 그랬어요?
저한테 있어서 앨범의 의미가 계속 변해요. 느낌이 매번 달라요. 그러다 보니, 이 앨범과 나와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된 건가? 내가 이 앨범에 대해 제대로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Q.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되게 좋은 걸 했구나, 싶어요. 오랜만에 큰 소리로 들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게 놀라웠어요.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못 했거든요. 이번에 처음, 그때의 나는 그대로 있었지만 음악은 계속 이어왔구나 라는 거창한 생각을 했어요. 음악이 어떤 시기에만 존재하는 물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얽혀있는 수많은 감정과 음악을 분리해서 들을 수 있게 됐어요.
Q.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계기가 있을까요?
최근이에요. 음악을 시작하고, 이 앨범이 나오기까지 많이 힘들었나 봐요. 어떤 일에 많은 힘이나 울음을 쏟고 나면 지치잖아요.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런 행위를 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이 너무 치열하고 고독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도리어 지금 더 좋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지금의 이 반짝이고 붕 뜨는 감정을 그때도 느꼈을 테지만, 눈치채지 못했던 거죠. 그걸 마침내 알아채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이 작업물에 제가 너무 많이 이입했었어요. 제가 음악의 화자와 동일한 선상을 걸었던 거죠. 어느 정도 분리해야 했는데, 너무 끈끈한 관계였어요. 그래서 어떤 시기에는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어요.
Q. 김사월X김해원, 영화음악의 작업들과 솔로 앨범을 준비하던 과정은 어떻게 달랐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는 이전 작업들에 담긴 것을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른 음악가들을 지켜보고 조력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역할이 아닌 ‘김해원’의 음악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그 욕구를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어서 솔로 앨범 작업을 시작했어요.
처음은, 나를 향한 기대치나 인식이 전혀 없는 상태잖아요. 드디어 나를 드러내는 순간, 이래저래 마음대로 해볼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예요. 그런데 저는 김사월X김해원, 영화음악 등으로 제 일부를 내보인 뒤였어요. 그것들은 예상도 못 했던 좋은 반응으로 돌아왔고, 어딘가에 각인된 것 같았어요. 제가 해온 것과 별개로 “이게 진짜 김해원의 음악이에요.” 얘기하고 싶은 앨범을 만들면서 스스로와 싸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동안은 ‘음악을 온건히 잘 담아냈나? 정말 만족스러운가?’ 괴롭기도 했어요.
Q. 마침내 앨범이 발표되고 나선 어땠나요?
아쉽고, 좋고, 드디어 해냈고, 내 것인데 나 같지 않고, 품어주고 싶고, 여러 감정이 들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좀 흘렀어요. 새로운 곡과 다른 작업들이 쌓이면서, 내 음악이 어떤 방식으로 출발했든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한 관점에서 솔로 앨범뿐 아니라 다른 작업들도 모두, 제 것으로 동등하게 바라보게 됐고요. 솔로 앨범만을 ‘나’라고 받아들였던 마음이 달라졌어요.
결과물을 남기는 것은 다음을 기약하는 일이고, 결국 다른 시도도 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지금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뻐요. 한때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간이 흐른 후의 결과물을 마주하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무엇이든 변하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고, 그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Q. 이 앨범에선 김해원의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앨범을 들여다보면 화자가 무언가를 굉장히 갈망해요. 어떤 욕구를 생성하고, 잃어버리고, 그걸 다시 찾으려고 해요. 나라는 사람은 있는데 찾아다녔던 대상은 불분명해서, 앨범을 발표하고 나서도 뭔가를 찾은 기분이 명확하지 않았어요. 이제 생각해보니 그게 ‘나만의 것’이었던 것 같아요. 그 행위 자체가 아름다웠다는 걸 느끼게 됐고,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Q. 왜 ‘바다’를 사용하셨어요?
뭔가를 발화하고, 소리를 내는 데 있어 배경이 필요했어요. 저한텐 그게 되게 중요했어요. 내 배경이 뭘까, 이 음악이 어디로부터 온 걸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게 바다였어요. 무언가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얻게 되는 공간 중 하나가 바다예요. 되게 단순한 생각인데, 이름에 바다가 들어있거든요. 그런 막연한 믿음이 있어요.
Q. 이 앨범을 작업하던 때에도 바다에 가셨어요?
제주도에 몇 번 다녀왔어요. 바다에 가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해요. 저는 익숙한 것은 길게 관찰하지 않아요. 지금 이 골목을 유심히 보지 않는단 말이죠. 감흥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일상적인 공간과 상황에선, 오히려 무언가 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익숙하지 않은 곳에 가면 관찰을 하고,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니까 생각을 많이 해요. 그로부터 감흥을 얻어요. 이 앨범을 만들 때도 그런 기회를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Q. 앨범을 작업하던 때의 어떤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있나요?
혼자 제주도에 간 적이 있어요. 숲길을 지나고 있는데 김이 서린 유리창 너머로 나무가 빼곡하고, 그 사이로 해가 들어왔다 나갔다 했어요. 그 장면이 되게 많이 생각나요. 자연으로부터 감동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도와줬던 친구들 생각도 많이 나요. 몇 개월 전부터, 함께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어 얘기를 나눈 친구가 있었어요. 이제 녹음을 해도 되겠다 싶어 연락했는데,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럼에도 그 친구가, 같이 노래 부르기로 했던 약속을 잘 지키고 싶다는 말을 해줬어요. 그 대화를 나누던 순간이 기억나요.
발매공연을 하던 때도 생각나요. 공연이라는 게 분주히 움직여야 하고, 여유롭게 준비하기 어려운 시간이잖아요. 첫 공연 리허설을 할 때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어요. 무대 위에 걸터앉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던 제 모습이 생각나요. 그 순간만큼은 정말 편안했나 봐요.
Q. 김해원의 다음 솔로 앨범에 대해 구체화된 계획이 있나요?
내년 정도에 무언가를 하고 싶어요.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지금 우선순위가 좀 더 높은 건 김사월X김해원 앨범인 것 같기도 해요. 솔로 앨범은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지만, 조급한 상태는 아니에요. 다른 작업은 조금 쉬고 있어요. 바쁜 시기가 아니기도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볼 작업이 또 들어오겠죠. 그냥 지금은, 음악도 많이 듣고 좋은 상태로 지내고 있어요.
Q. “바다와 나의 변화 Sea And Myself”가 김해원에게 어떤 앨범으로 남길 바라나요?
이 앨범이 저한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사람이 어떤 시기에 존재하면, 음악도 그 시기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나라는 사람은 어떤 시기에 머무를 수 있지만, 음악은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때는 내 음악을 사랑하다가 증오하고, 창피해하다 만족했지만 지금은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뭔가를 시작하려면 안에 있는 걸 한 번 뱉어내야 하는데, 이 앨범이 저한텐 그런 의미가 있어요. 제가 다른 것을 해낼 수 있는 데 많은 도움이 돼요. 지금의 저는 또 다른 걸 하겠지만, 이때 정말 좋은 걸 해냈던 것 같아요. 칭찬해주고 싶어요, 그때를.
글 : 이지영
사진 제공 : 김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