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그 어떤 팀보다도 뜨거운 활약을 해오며 오로지 신인으로서만 가질 수 있는 많은 타이틀들을 거머쥔 ‘안다영 밴드’는 자신들은 ‘사실 이럴 줄 몰랐다’라는 느릿한 말로 그 소감을 대신했다. 그들의 등장 이후를 헤아리게 될 새로운 결과물을 기다리던 팬들에겐 다소 갑작스러운 팀명의 변화에 대해서도 그저 ‘우리가 좋아하는 단어들’이라는 여유도 부린다.
모두 90년생으로 구성된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 표현해내는 젊음의 정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뜨겁고 빠른, 그래서 곧 터져버릴 것 같은 무언가와는 어쩐지 달라 보인다. 본인들의 그 ‘느릿함’에 어쿠스틱한 무드를 얹어 이번 EP에 담아냈다.
사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의 공연을 볼 때면 매번 저들과 다른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몸을 털어 대거나 발을 구르는 동작들을 멀리서 관망하는 나 또한 여기를 부유하는 무언가처럼 느껴질 때면, 이런 게 차라리 이들이 말하는 ‘느린 춤’이 아닐까 하는 상상과 함께.
이들은 이 앨범을 한 권의 책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마치 마침표가 없는 한 권의 단편집 같은 이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을 소개한다.
두은정 : KT&G 밴드 디스커버리, K-루키즈, EBS 올해의 헬로루키까지 그동안 신인 팀을 경합하는 밴드 경연에서 특히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어요.
안다영 : 일단 너무 감사하죠. 모든 걸 할 때마다 될 거라고 생각하고 하는 경우가 없거든요. 결과에서 예상치 못하게 좋은 일들이 생기게 돼서 사실은 뭔가 인정받는 느낌이 드는데, 이건 실력에 대한 인정보다도 그간의 노고를 인정받는 느낌이에요. 경연을 준비하는 과정 외에도 곡에 녹여진 저의 개인적인 아픔이나 슬픔들도 인정받는 것 같아 그런 점에서 기분이 좋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김하람 :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원우형까지 소속되던 순간을 밴드의 완성이라고 치고 얘기를 하자면 사실 우리는 팀을 시작하자마자 ‘5월의 헬로루키’를 나가게 됐어요. 그게 지금의 팀으로써 고작 두 번째 무대였고요. 원우형이 새로 들어오는 건 우리의 내부적인 변화지 공연을 하는 셋 자체가 크게 바뀌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고 어쨌든 공연은 계속할 테니 시작하는 마음으로 뭐든지 하자고 생각했죠. 그 즈음엔 새로운 자극들이 필요했었고 뭔가를 계속 만들어내고 완성도 있게 깎아내기 위한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그런 경연들이 있다고 했을 때 무조건 나가자, 다 한 번 넣어보자 했었죠. 수상을 하자는 목표가 아닌 지금 조합의 우리끼리 더 단단해지기 위해서요. 만남의 빈도도 잦아지고 조금 더 부딪혀 보기도 했고 분명 도움이 된 부분이 있다고 느껴요.
두은정 : 밴드 구성으로는 처음 발표하는 앨범이에요. 팀이 꾸려진 후 처음으로 함께 만들게 되는 이번 앨범의 작업 과정에서 구성원으로써 가지는 마음가짐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안다영 : 제가 솔로에서 밴드를 하기로 마음먹을 때 결정적인 계기는 ‘더 재밌어서’였어요. 솔로 활동을 하면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물리적인 시간들이 있잖아요. 지금도 물론 외로운 순간은 존재하지만 나와 타인, 또 다른 타인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경우의 수가 너무 재밌었어요. 제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걸 가진 누군가와의 접점에서 생겨나는 것들이요.
김하람 : 저는 이 팀의 기타리스트로써 매번 사운드적인 공간감을 채우는 임무가 컸던 것 같아요. 물론 이번 앨범에서도 그 역할이 돌아왔죠. 항상 라이브 할 때나 합주를 할 때 자연스럽게 맡게 되는 역할이기도 했고요. 특히 이번 앨범을 구상하면서는 공간감을 채우면서도 어쿠스틱함을 표현해 내고자 했어요. 똑같은 걸 하더라도 모든 곡에서 그것만큼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두은정 : 팀 내에 또 다른 기타리스트로써 원우 씨의 생각도 궁금하네요.
강원우 : 그간 ‘안다영 밴드’로 선보인 모든 곡들은 다영이가 만든 곡들이잖아요. 사실 저는 제가 잘 모르는 장르라는 생각을 했어요. 평소에 제가 잘 듣던 음악 스타일이 아니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이번 음반을 만드는 입장에서 저는 배우는 입장이었어요. 제가 참여한다기보다는 이런 음악에서는 이런 게 어울리는구나 느끼며 배우는 과정이요. 일단 애들하고 하는 자체가 너무 재미있으니까, 그게 사실 제가 이번 음반을 참여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점이었던 것 같아요.
하람이한테 조언을 구해서 라이브 때랑은 다르게 시도해본 부분들도 있어요. 실제로 ‘And so it goes’라는 곡 같은 경우는 라이브를 할 때는 기타의 암 부분으로 떠는 느낌을 줬었거든요. 그 느낌이 음원에서는 거슬리더라고요. 다른 기회에는 좀 더 좋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솔직히 저는 제가 기타리스트라는 생각을 잘 안 해요. 프로듀서적인 모습을 가지고 싶어서 매번 기타만 쳐야 한다는 압박감 자체가 없어요. 기타리스트로서 제가 생각하는 멋있는 아티스트는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 기타 치는데 이것저것 다 잘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무척 동경해 왔었고 저도 그런 시도를 해보고 싶었는데, 사실 이번 음반에서는 그렇게 못 했어요.(웃음) 음반을 준비하는 기간의 라이브 때면 몰래 제가 좋아하는 그런 요소들을 슬쩍 넣어 보고 그런 식으로 저의 욕구를 해소했죠.(일동 웃음)
김하람 : 사실 처음 원우형이 들어올 때, 물론 기타 멤버가 한 명 더 있다면 좋겠지만 신시사이저도 다룰 수 있고 다른 효과를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다영 누나가 강원우라는 사람을 딱 데리고 온 거거든요.
강원우 : 마침 기억나는 게 있는 게 제가 들어오고 처음인가 두 번째 합주에 건석이가 도중에 일이 생겨 먼저 가야하는 상황에서 남은 제가 신스로 베이스를 연주했었어요.
김하람 : 추구하는 바도 있겠지만 실제로도 여러 가지 역할을 많이 해요. 라이브 때도 기타 대신 mpc를 연주한다던지.
안다영 : 사실 그래서 재밌는 것 같아요. 실제로 라이브 할 때 기타를 칠 때가 더 많지만 이 사람이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성향이나 기타 플레이 같은 것들이 어떤 면에서 사람이 그대로 나타나거든요. 연주에서. 나는 무조건 리듬 파트이기 때문에 리듬 악기만 쳐야 한다. 나는 연주자이기 때문에 코러스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 있겠죠. 그렇지만 제가 사실 원우 오빠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뭔가를 버려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거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두은정 : 싱어송라이터 안다영으로 불렀던 예전 ep의 곡들을 들어보면 지금과 목소리, 발성까지 완전히 달라진 느낌이에요.
안다영 : 제 경우는 음원과 라이브를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라이브에서는 폭발적으로 뿜어내거나 시청각적으로 시너지를 줄 수 있는 것들을 mp3 파일로 박제시키는 과정에서 우리가 좀 더 가져가야 하는 부분과 덜어내야 할 부분들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점에서 노래의 경우는 좀 더 힘을 빼고 부르되 그것을 통해 본능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예쁘게 부르려고 하지 않는다거나 소리를 내지르는 것도 있고요. 특히 가사가 있는 경우가 힘을 많이 빼고 부르자는 생각을 했죠.
보컬에서 발성의 변화는 일정 부분은 어떤 시도를 통해서 바뀐 것도 있었고, 노래를 많이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톤의 변화가 생긴 것도 있어요. EP [Waves, Smoke, River] 발표 당시에는 보컬은 보컬리스트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그것에 초점을 맞춰서 멜로디를 좀 더 살려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졌어요. 그래서 보컬을 악기 자체로 생각을 해서 기술적으로 잘 부르려고 하기보다 가사가 없이 여음을 부른다던지 하는 종류의 시도를 했죠.
두은정 : 싱어송라이터 안다영에서 안다영 밴드로, 다시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으로 눈에 보이는 큰 변화들이 계속돼 왔어요. 밴드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름을 바꾸는 걸 감행하기까지,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안다영 : 일단 안다영 밴드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건 팀이 꾸려지는 과정에서 참여한 여러 경연들에서 예상치 못한 좋은 성과가 있었고, 공공연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이 있는 그런 곳에서 ‘안다영’이라는 이름을 계속 쓰는 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성격이 다분히 느껴진다고 생각한 거죠. 때문에 안다영 밴드라는 이름으로 어쩔 수 없이 활동할 수밖에 없었어요. 어쨌든 밴드를 하기로 결정을 했으니까 고민을 통해서 얻어진 게 아닌 이름 말고 이제는 잘 갖추어진 옷을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은정 : 새로운 이름은 문장이네요.
안다영 : ‘시규어로스’의 앨범 이름에서 어순을 바꿔서 따왔어요. 회의를 하던 중 잔향이라는 단어를 넣자, 이름이 문장이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들이 있었는데 누군가 저 앨범 이름을 던진 거죠. 어순을 그대로 가져가자니 저희가 지향하는 바와는 다른 점이 있었고 적절하게 어순을 바꾼 거죠.
강원우 : 이건 어떻게 보면 제 의견이 반영된 거기도 해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이름으로 쓰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었어요.
두은정 : 사실 안다영 밴드는 그동안 포스트록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에서 ‘시규어로스’가 연상되는 팀으로 언급되기도 했었고요. 어떻게 보면 그런 이야기들을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했을 것 같은데.
안다영 : 물론 그 팀은 너무 좋지만 우리는 ‘시규어로스 처럼 될 거예요’라는 말은 하지 않아요. 듣는 사람들에 의해서 같은 카테고리로 구분되어 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굵직한 큰 틀은 비슷할지라도 그 안에 섬세한 것들은 분명 다른 것들이 있으니까요. 양날의 검 같은 말인 것 같아요.
두은정 : 밴드 구성으로는 처음 발표하는 앨범이예요. 팀이 꾸려진 후 처음 만드는 이번 앨범의 작업에서 팀으로써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박성훈 : 저는 예전에 다영이가 솔로로 활동할 때부터 세션 드러머로 자주 참여했었어요. 팀과 세션은 다르니까, 그때는 관객들도 아마 공연에서 그런 관계성을 느꼈을 거예요. 그렇지만 밴드로 활동할 때는 개개인의 색깔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인지 공연을 보러 와 주셨던 지인들에게 들었던 얘기가 드럼 연주가 좀 더 돋보이는 부분이 없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어요. 사실 전 밴드의 일원이 됐어도 그런 욕심은 없거든요. 사실 밴드 사운드를 맞추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어느 정도 타협도 해야 하고요. 드럼이라는 악기가 리듬을 치면서 튀는 역할도 분명할 수 있겠지만 저는 서포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조용히 뒤에서 연주를 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기타 사운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드럼이 합쳐 도움을 준다던지 하는 적극적인 것들이요. 이번 앨범에서도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이건석 : 저도 베이시스트로써 성훈이랑 같은 맥락의 생각인데 사실 저도 밴드 내에서 튀는 부분이 없어요. 노래가 더 좋게 들릴 수 있도록 얹는다는 느낌을 주로 살리려고 했요. 이번 앨범에 수록된 ‘푸른소매’라는 곡을 예로 들자면 패드 계열의 라인을 치며 전반적으로 받쳐주는 역할을 맡고 뒤에서 콘트라베이스가 나올 때 받쳐주는 역할. 근데 사실 베이스라는 게 그래요. 베이스는 원래 그런 역할이에요.(일동 웃음) 제가 좋아하는 ‘파라솔’처럼 보컬이랑 베이스를 겸하는 경우처럼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밴드에서의 역할은 도움을 주는 거예요.
두은정 : 첫 앨범 발매를 앞둔 ‘시작’하는 팀으로서 각자 생각하는 ‘시작’에 대한 생각은.
이건석 : 기대 반 걱정 반이에요. 이전에 안다영 밴드로 활동했을 때 쌓아왔던 것들을 두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다짐이 컸지만 아무래도 못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을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 커요. 그간 함께 활동하며 쌓아왔던 것들이 다 바스러질 것 같기도 하고.
김하람 : 이미 경험해본 것들을 다시 경험해야 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같은 거일 거예요. 저는 우리가 예전에 이런 사람들이었으니 알아달라는 것보다도, 새롭지만 새로움으로써 추구할 수 있는 이 나름의 것들로 더 열심히 활동해서 ‘얘네 좋아서 들어봤더니 보컬이 안다영이었고, 알고 보니 안다영 밴드로 활동하던 걔네였구나’가 됐으면 참 좋겠어요.
두은정 :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은 어떤 팀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강원우 :‘추억’이 됐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우리 밴드 음악을 들으면서 외로움을 달랜다던지, 내가 이런 음악을 들었었는데 하는 정도로 기억에만 남아도 기쁠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잔향이 됐으면 좋겠어요.
박성훈 : 제가 옛날 영어공부할 때 보던 교육 비디오가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제목도 기억나고 가사까지도 다 기억이 나거든요. 그런 무의식처럼 사람들에게 남았으면 좋겠어요.
김하람 : 다시 꺼내서 들었을 때 그때가 생각난다거나 지금처럼 다시 겨울이 돌아왔을 때 다시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떠오를 만한, 그런 음악을 하는 팀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