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V] 포크라노스 오리지널 바이닐 시리즈 3
음악을 소비하는 속도가 어느 때보다도 빨라진 시대. 음반을 구매하기보다 ‘플레이리스트’에 수록된 음원을 디깅하는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을 계속해서 찾고자 하는 소중한 구독자분들 덕분에 포크라노스가 제작한 바이닐이 어느덧 열 타이틀을 돌파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포크라노스의 바이닐을 차근차근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각 작품들의 소개글에는, 음원 발매부터 피지컬 발매까지 전 과정을 함께한 포크라노스 스태프들의 시선이 담겨있습니다.
📀 사비나앤드론즈 <Lasha>
이번에 소개해드릴 작품은 바로 사비나앤드론즈의 정규 3집 [Lasha]. 때마침 얼마 전에 [Lasha]가 24년 한국대중음악상 팝 음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또 엊그제에는 흰 눈이 펑펑 내렸는데, 그 모습이 마치 화이트 ‘크리스블루스마스’가 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세상이 어서 빨리 이 멋진 음반을 소개하라고 종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음반의 전체적인 주제는 난청으로 인해 귀에서 들려오는 이명이 마치 욕조에 귀가 빠진 것처럼 느껴졌다는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인지 ‘귀머거리 인생’이라는 강렬한 표현이나 파도 위에 둥둥 떠다니는 귀라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유독 인상 깊게 남는 작품입니다. 듣는 것에 대한 아픔을 그저 노래함으로 담담히 화답한 만큼, 삶의 나침반을 잃고 헤매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울림을 전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디지털 커버 속 파도의 물결이 보다 확장되어 반짝거리는 [Lasha]의 바이닐 버전은 화이트 색상의 알판 덕분에 진중하면서도 차분한 멋을 담아냅니다. 단정한 세리프 폰트 글귀에 적힌 가사를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는 듯한 기분이 느껴지실 겁니다. [Lasha]의 바이닐은 포크라노스 비스테이지를 비롯한 각종 온오프라인 판매처를 통해 판매되고 있으니, 음반을 소장하고 싶은 분들은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 오늘만큼은 비냉이 아닌, 평냉에 소주 한잔하고픈 익명의 스태프 A
📀 김오키 <스피릿 선발대>
코타르 증후군, 자신이 이미 죽어 썩어가고 있다고 믿거나, 신체가 사라지고 영혼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감정을 걸러내는 법을 배웁니다. 시기, 질투, 분노, 경멸 같은 감정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고 여겨지고, 사람들은 이를 감추거나 회피합니다. 마치 멸치 떼처럼 무리에 섞여 군집을 이루고, 불편한 감정을 제거하려는 항균 작용처럼 말이죠. 하지만 감정을 무조건 제거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요?
‘서로를 바라보다가 죽여버림’에서는 분노와 증오를 마주한 두 사람을 담아냅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표출하고 충돌시키는 방식으로요. 이는 단순한 감정 해소가 아니라, 우리가 회피하는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우리는 때로 ‘코타르 증후군’에 걸린 듯, 자신이 이미 죽은 존재라고 느끼기도 하고,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자기 자신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이 앨범은 세상의 병듦을 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직시하고,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삶과 죽음, 소속과 부조리, 사랑과 분노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더군요.
이번 바이닐 제작을 기념하여 싱어송라이터 ‘김일두(@kimildu)’ 원곡의 ‘가난한 사람들’을 재즈 버전으로 편곡하여 인트로를 장식하였으며,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모빌스 그룹’의 ‘모춘(@mochoon)’이 디자인으로 참여한 바이닐 버전의 새로운 앨범 자켓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살짝 투명한 주황 빛깔의 엘피 판은 역사에서 발굴해 낸 호박화석 같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기에 분노하고, 삶이 소중하기에 부조리함을 느낍니다. 김오키 선생님께서 가라사대, 우리 모두 [스피릿 선발대]를 듣고 살아갑시다. 사랑하며 서로 부둥켜안으며. 아무튼 명반입니다. 고민없이 지금 바로 구매하세요.
– 나도 당신들과 같은 직장인, 스태프 D
📀 The Poles <Anomalies in the oddity space>
청춘에 시작과 끝이 있을까? 청춘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까? 이 모호하고 이상한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더 폴스 (The Poles)’의 [Anomalies in the oddity space]를 들어보길 권해본다. 더 폴스는 삶을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순간의 극점’에 대해 노래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하는 크고 작은 순간들을 ‘극점’이라고 표현하면서 10년 동안 단단하게 쌓아온 아이덴티티를 응축시켜 마침내 폭발시키듯 그들은 이제 우주라는 공간으로 세계관을 확장해 나간다.
앨범의 의도된 순서대로 마지막 트랙까지의 재생을 마쳤다면 바이닐을 뒤집기 전 특이점을 발견을 하게 되는데, B 사이드에 담긴 트랙 제목들을 역순으로 읽어보면 ’Anomalies in the’, ‘Oddities’, ‘Space (kid)’ 하고 앨범 타이틀이 된다는 것. 연속되는 인생 가운데 청춘의 시작점을 알 수도, 시작된 청춘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는 것을 방증이라도 하듯, 앨범의 끝인 줄 알았던 극점은 반환점이 되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듯 보이는 일상에 작은 변칙을 선물한다.
영어 가사의 한 가운데 ‘그렇게 어렵진 않아’ 하고 툭 뱉어내는 한글 노랫말처럼 예측할 수 없는 그들의 변주가 갑작스럽기보단 되려 기다려 왔던 계절의 변화처럼 다가오는 이번 앨범이 더 폴스의 첫 바이닐인 것도 더욱 반가운 이유.
디지털 앨범 커버에서 확장된 앨범 자켓과 바이닐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모노톤의 이너슬리브, 그리고 클래식한 블랙 바이닐까지. 이들의 비주얼을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는 아트워크 팀 we are not 0.00의 디자인으로 소장 가치를 더한 더 폴스의 첫 바이닐은 포크라노스 비스테이지를 비롯한 각종 오프라인 판매처에서 만나볼 수 있으니 놓치지 마시길.
– 낭만 빼면 시체, 스태프 F
📀 파란노을 <Sky Hundred>
국내외 많은 분들이 기다리셨을 파란노을의 정규 4집, [Sky Hundred]의 바이닐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여전히 그 수요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에 이어 포크라노스를 통해 제작된 파란노을의 두 번째 바이닐 [Sky Hundred]는 그 안과 밖을 모두 통틀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흩어지고 바래지는 것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게 하는 앨범입니다.
여전히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 잔인하리만치 선명한 청춘의 면면 등을 주제로 삼고 있었을지언정, 언제나 파아란 색감의 자켓을 통해 그 한편에 녹아든 젊음의 가능성을 함께 내비쳤던 파란노을의 초창기 앨범들. 그러나 이번 정규 4집의 선공개 싱글이었던 ‘황금빛 강’을 시작으로, 그의 음악은 해 질 녘 노을처럼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음악을 막 시작하던 시기에 걸쳐있던 빛나는 순간들과 설렘이 어느샌가 희미해졌기 때문일까요. 그 부재와 공허를 통해 깨닫게 된 뼈저린 노스텔지어는 가장 지금의 파란노을을 대변하는 키워드인 듯합니다.
그러나, 식상한 표현일지라도 결코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해가 져도 다시금 아침이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해가 뜨기 전의 새벽녘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아티스트로서의 지난한 고뇌는 분명 발돋움을 위한 성장통이겠지요. 그리하여 [Sky Hundred]는 파란노을이라는 아티스트의 과도기를 장식하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가장 작은 곳에서 쏘아 올려진 그의 음악을 통해 전 세계 많은 팬들과 함께 마음이 동해본 적 있는 리스너라면, 더 나아가 그의 다음 행보를 여전히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앨범을 꼭 한 장 실물로 소장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다가올 아침을 향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유의미한 변곡점으로서 기억될 [Sky Hundred]를 바이닐이라는 불변의 물성과 함께 여러분께 선보입니다.
– 수상할 정도로 카레를 사랑하는 익명의 스태프 B
📀 The Poles <The High Tide Club>
밴드 The Poles(더 폴스)의 첫 번째 정규 앨범 [The High Tide Club]의 바이닐을 소개한다. ‘더 폴스’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정규작을 발매하기까지 5년, 그들은 마치 라인업에서 가장 크고 완벽한 파도를 만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육지에 다다른 서퍼의 모습을 하고 [The High Tide Club]을 선보였다.
첫 트랙 ‘space’로 시작한 앨범은 밀물이 가장 높은 해면까지 꽉 차는 만조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고조되어 ‘High Tide’를 기점으로 다음 때를 기다릴 준비를 하기라도 하듯 ‘space (Acoustic Version)’으로 차분히 마무리된다. 정제된 수미상관의 구조 속에서도 크고 작은 파도를 만들어내며 전형적이지만은 않은 흐름을 보여주는 10개의 트랙들을 통해 그들은 The Poles (더 폴스)의 소리들을 각인시켰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5년 1월 15일, 첫 정규작의 디지털 앨범 발매 3주년을 기념하며 [The High Tide Club]은 포크라노스 오리지널 바이닐로 재탄생했다. 파도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거센 파도에 휩쓸리기보다 오히려 그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서핑을 하는 더 폴스. 지금도 그들은 깊은 바닷속처럼 잠잠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투명하게 새로운 절정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
– 이번 주말에도 도합 50시간을 외출할 예정인 익명의 스태프 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