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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구속되지 않고 흐려지지 않는’ 여성 뮤지션

발행일자 | 2018-01-08

 

[SPECIAL] 2018년에도 잘 부탁해, ‘구속되지 않고 흐려지지 않는’ 여성 뮤지션

 

요즘은 무언가를 표현할 때 ‘여성스러운’이라는 말 앞에서 망설여질 때가 있다. 음악을 소개할 때면 그런 표현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꽈리를 튼다. 여성에 대한 기준을, 특히 여성이 만드는 음악에 대한 기준을 우리는 그간 어떻게 만들어 왔을까. 알게 모르게 ‘예쁜’ 표현들과 ‘아름다움’의 기준 속에서 규제화되온 여성 뮤지션. 무형의 벽과 틀을 넘어 누구도 부술 수 없는 본인만의 확실한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세 팀의 여성 뮤지션을 소개한다.

자기만의 방에서, 그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어떤 것에도 흐려지지 않은 시야로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글을 쓰라던 버니지아 울프의 문장을 이들의 행보에 대입해본다. 지나온 시간보다 보이지도, 가늠할 수도 없는 앞으로의 미래가 더 기대되는 여성 뮤지션들이다.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의 ‘안다영’, ‘새소년’의 황소윤, ‘김사월X김해원’의 김사월.

 


 

안다영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보컬과 신디사이저를 맡은 안다영을 중심으로 결성된 밴드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은 슈게이징 장르에 기반을 둔 음악이 그렇듯 음원만큼 라이브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팀 중 하나다. 한동안 ‘안다영 밴드’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온 이들은 2016년 일련의 신인 경연 프로그램에서 좋은 성과를 얻는다. 하나둘 멤버가 합류하며 온전한 팀 구성을 장착해 완전체가 된 것도 새로운 이름을 얻은 이 시기다.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로스’의 앨범에서 이름을 따온 이들은 올해 1월 발매된 [우연의 연속에 의한 필연]부터 싱글 [야광바다]에 이르기 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보다는 자연스러운 풍경 그 안에서 느껴지는 심상을 곡으로 담아내는데 집중해왔다. 어쩐지 한밤 중보다는 밤의 시작, 폭풍의 전야 같은 느낌이랄까. 아이러니하게도 라이브에서는 그 반대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언젠가 공연을 하는 안다영의 모습을 ‘맹수’같다 표현한 적 있다. 건반을 치며 노래 부르는 뮤지션의 모습에서 생명력을 느낀 건 생전 처음 느껴본 생경함이었다. 건반을 치는 손이나 펄럭이는 머리칼과 구르는 발짓마저 보는 사람이 의식하지 않고 빠져들게 하는 건 자신의 음악을 체화한 뮤지션이 가진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아닐까. 여성 뮤지션만이 가질 수 있는 라이브에서의 장악력, 특유의 표현과 감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들의 라이브 공연을 한창 찾아다니던 그즈음이었다. 매번 같지만 다르다는 것을 어떤 말로 더 설명할 수 있을까. 그날의 분위기, 기분이 주는 자연스러운 심상들은 이처럼 음원뿐 아니라 공연에서도 이어진다.

보컬이자 팀을 이끌어온 존재인 안다영이 이전의 솔로 앨범 ‘Dreamer’와 ‘Waves,Smoke,River’에서부터 쌓아온 탄탄한 줄기의 확장. ‘야광바다’가 ‘안다영’이라는 존재감과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의 브릿지이자 혼종이라면, 이들이 2017년 선보인 앨범들은 다른 말로 어느 여성 뮤지션의 끝없는 전진과 일련의 성장기라 보아도 좋겠다. 안다영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가장 최근 발매된 ‘야광바다’의 문장을 빌려보자면)아무 부끄럼 없이 ‘옷을 벗고 춤’을 출 수 있는,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폭발력이다.


황소윤
(새소년)

새소년을 거론하지 않고 2017년의 인디신을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이 괴물 신인의 등장이 더 놀라운 것은 새소년의 주축이 이제 고작 스물두살이 된 프론트우먼 황소윤이라는 점이다.(심지어 팬들에게 ‘대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새소년의 모태는 10대 시절 황소윤이 만들어온 음악이다. 사운드 클라우드, 유튜브 등에 자신이 만든 음악과 커버 등을 올리며 다양한 장르를 흡수한 창작물들을 쌓아간다. 밤을 새며 작업했다 회상하는 솔로 앨범 [16-19]는 정식 음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본인도 소장할 앨범 한 장 남기지 못할 정도로 꽤 그럴싸한 반응을 얻었고, 같은 대안학교에 다니던 드러머 강토와 전 베이시스트 김푸른하늘을 만나 처음 팀을 이룬 것도 졸업을 앞둔 고교생이던 이즈음이다. 이후 자잘한 클럽 공연을 소화하며 관계자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며 여러 세션이 팀을 거쳐가던 와중 탄탄한 실력의 새로운 베이시스트 문팬시를 만나며 3인조 새소년이 완성된다.


한동안 지금의 [여름깃]이 나오기 전인 2016년경 이들의 클럽 공연을 거의 매주 찾아가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공연을 보고 나면 잘 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참 재미있다고 여기저기 소개하고 싶었다. 아직도 자라는 중이 아닐까 싶게 매주 같고도 다른 하얀 얼굴로 노래하던 그때, 몇 백석 짜리 단독 공연이 1분 만에 매진되는 지금이 무색하게 좁고 퀴퀴하던 어느 클럽 무대에서, 열댓 명도 안 되는 사람들 앞에서 지금과는 다른 버전의 ‘긴 꿈’을 부르던 그는 무대 위에 서면 이상하리만치 자신감이 넘쳤다. 뭐랄까. 나는 공연을 끝낸 그에게 매번 ‘잘 했다’보다 ‘좋았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미묘한 차이지만 전자는 어쩐지 그가 어리기에 함부로 내리는 평가 같아 조심스러웠기 때문이었고, 후자를 선택한 건 덕분에 내가 오늘의 당신의 분위기를 함께 공유했음을 알리고 싶은 까닭이었으리라.

그간의 내가 학습한, 심지어 직접 겪어본 ‘스무 살 여성’에 대한 편향적인 이미지는 어떠했는가. 상대가 가진 능력보다는 나이로 사람을 치환해버리는 건 어디에서나 펼쳐지는 일상적인 편견인 것 같다. 나 역시도 지긋지긋한 교복을 벗고 나서도 그런 상황 앞에 여러 번 놓였고 때론 입이 없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땐 그랬다는 걸 말할 수 있기까지, 하나의 발언권을 얻기까지 나는 각각의 이유로 제한을 느꼈던 여러 나이와 직업을 거쳤고 고달픈 상황을 건너왔다. 하나로 질끈 동여맨 머리에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무대에서 드러누운 채 기타를 치고 흠뻑 젖어 발개진 얼굴로 숨차하던 소윤의 모습이 흥미롭기보단 경이롭게 느껴졌던 건, 그 소녀가 단순히 달뜬 갓 스물이었기 때문이 아닌 앞으로 해야 할 것을 아는 이의 ‘과거’였기 때문은 아닌가 회상해본다.

‘긴 꿈’, ‘파도’에 이어 첫 EP ‘여름깃’에 이르기까지 황소윤이 10대 시절부터 찬찬히 꾸려온 세계관의 너비가 늘어나는 순간을 바라보는 것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자신이 하는 행동을 의식하지 않음에도 모든 이가 의식할 수밖에 없는, 차라리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의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뮤지션의 현재와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모두에게나 기대와 벅참을 안겨주는 일일 것이다.

“한 번도 그런 걸 의식하고 해본 적이 없어요.”

본인 스스로가 그동안 규제되어왔던 틀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는지, 성별에 대한 이분법적인 편견조차 무너트리고 싶고 그게 본인이 할 일이라 말하는 당찬 스물두 살이다. 나는 새소년을, 황소윤을 설명할 때 되려 성별과 나이를 강조해 언급하게 된다. 일상적인 편견의 요소를 되짚어 언급하면서 이걸 깨트리기 시작한 이가 여기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그에게서 느꼈던 감정이었듯 나이도, 성별도 모두 초월하는 이의 시작은 누군가의 학습된 편견마저도 돌이켜보게 하는 법이다. 언젠가 이런 문장을 서두로 어떤 ‘역사’의 처음에 대해 설명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 때쯤이죠. 새소년의 음악이, 그리고 황소윤이 그 모든 것의 시작이었어요.’


김사월
(김사월X김해원)

2013년인지 2014년이었는지 연도는 정확하진 않지만 김사월의 음악을 처음으로 접한 건 ‘접속’이라는 곡의 데모 버전이었다. 첫 솔로 앨범 [수잔]에 실릴 때까지, 마치 테이프 늘어지도록 듣던 옛 시절처럼 한 곡을 죽어라 반복하며 멜로디나 가사, 잡음 한 터럭마저 꽤 오래 곱씹었던 기억이 난다. 그 곡 덕에 긴긴 밤 입이 까슬해지도록 울기도 했고 어느 날은 위로를 받는 덕에 긴긴 밤 잠에 들지 못하기도 했다.

앞서 소개한 ‘접속’외에도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라왔던 데모 중 손꼽아 좋아하는 곡들이 있는데 ‘새’, ‘흠집’, ‘꿈꿀 수 있다면 어디라도’같은 곡들이다. 안착할 곳 없는 감정들을 매만져 노랫말로 틈을 메운 곡들. 그 속 새로울 것 없는 ‘사랑’이란 보편적 정서마저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특히나 그가 쓴 가사 때문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어떤 책에서 본 구절이 생각난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고.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는다고.

언제였을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던 순간이 생각난다. 허공을 돌던 눈빛과 메마른 눈가, 문장 사이 잦은 헛기침, 취기에 벌게진 콧잔등이나 자꾸 매만지는 손가락 끝 같은 것마저 재밌다고 생각이 들던 일. 사랑을 이해하려 노력해서, 너무 많은 책을 읽고 너무 많은 음악을 들은 탓에 판단마저 어려운 걸까. 나는 그날의 장면을 김사월의 곡을 들으며 되짚어보았다. 아, 사소한 것들에서 운명을 느끼고 사소한 것에서 우연이었음을 깨닫고 헤어짐을 느끼는 것마저 사랑이었지. 그렇다, 이건 사랑이구나. 훗날 나의 감정이 오독과 오기라 느낄지언정 누군가를 대신해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 혹은 먼 곳까지 가보는 사람, 그것이 나에겐 ‘김사월’이었다.

 

한창 김사월이라는 존재, 특히 가사에 대해서만 얘기하긴 했지만 2015년 첫 솔로 앨범 <수잔>의 발매 전해인 2014년, 김해원과 함께 한 듀오 ‘김사월X김해원’으로 이미 평단과 리스너의 고른 사랑을 받아온 그다. 각기 활동해오던 이들의 고유의 정서가 농축된 <비밀>이라는 첫 EP로 2015년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상, 최우수 포크 음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단순히 남녀 듀오라는 조합에서 느낄 수 있는 합보다 더 좋은 게 많았다. 각각의 화자로써 각자의 확실한 존재감이 비교적 단출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을 더 풍성하고 특별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이 이후 ‘단편선과 선원들’의 ‘연애’라는 곡에 등장하는 김사월의 목소리를 들으며 확신에 가까워지기도 했다. 누군가와의 협업에서도 그렇지만 혼자일 때도 그의 존재감은 강력하다. 비워진 많은 것들을 스스로 채워내야 하는 일들. 나는 혼자일 때의 존재감을 절대 당연하다 말하고 싶지 않다. 일종의 일대기였던 ‘수잔’에 이은 라이브 앨범 ‘7012’에 대해 본인은 지나온 것에 대한 정리라는 개념으로 말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시간과 공간에 대한 김사월만의 장악력이라 표현하고 싶다.

앨범 프로모션과 관련된 일정을 함께 준비하며 그녀와 나누었던 많은 대화들이 떠오른다. 공연 중간 멘트할 때는 그 수줍은 몸짓과 멘트에 같이 따라 소리 없이 따라 웃기도 했다. 공연을 보면서도 어쩐지 그와 매 순간 대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 무엇도 거짓이라고 느낀 적 없지만 언제 어느 때나 그 작고 사소한 것마저 다 진실돼 보여 김사월에 존재에 대해선 이상하리만치 언제든, 무엇이든 좋았던 것 같다.

‘우리가 동시대에 살아서, 같고도 비슷한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좋아요.’ 언젠가 그런 얘기를 김사월에게 건넸던 것 같다. 이제 나는 김사월에게 되돌려 받을, 내일에 대한 얘기를 기다리고 있다.

Editor / 두은정
youngwave@poclan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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